This research carried out ancient technique and composition of the relics recovered from the octagonal nine-storied pagoda of Woljeongsa temple using the scientific methods and obtained the following results. Firstly, The silver sarira inner case is consists of Ag, its materials comes out near 98wt%and comparing with the relics of Hwangnamdaechong, the contents of Ag and Ni are almost same with it. Secondly, The bronze sarira outer case, its contents of Cu is almost same with pure copper of which average is 99.7wt%. So, it should be named the copper sarira outer caserather than the bronze sarira outer case that has been called. Thirdly, The bronze mirror, though the contents of tin and lead are less than other contents which have been studied, they tend to have white color so they need to be made a close study. Especially, Because cultural property of nondestructive surface analytic method is not analyzed by the analysis of cross section and the moisten analysis, it may be occurred analytical errors by other factors.
이 연구는 현재 오대산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는 $\boxDr$全身舍利經$\boxUl$에 대한 서지학적 고찰이다. 먼저 이 연구에서는 월정사의 연혁에 관한 문제를 문헌사료를 통해서 水多寺 장로 有緣이 13세기 중반 무렵에 改稱했던 것으로 새롭게 조명해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月精寺 八角九層石塔의 건탑 및 全身舍利經의 조성 또한 유연의 중창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고찰한 바, 이 중창시기에 석탑과 다라니경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황룡사지 9층목탑지 사리공 출토 금동팔각사리소탑의 보존처리를 실시하였다. X-선 조사를 통해 옥개 방사상으로 문양이 존재하고 있음을 새롭게 밝혀졌다. 도금층은 아말감도금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하나로 조성되기 전에 각각을 먼저 도금하였다. 결실부위를 복원하고 받침대와 지지대를 만들어서 기단부, 상판, 탑신, 옥개의 순으로 조립하였다.
This design proposal was presented to a design competition for renovation of the Pagoda Park, located in Chongro-2ga, Chongro-gu, Seoul, where the first ˝Manse˝ (hurrah) Movement fighting against Japanese colonization, broke out on March 1st, 1919. The park has been considered to be the first modern park in Korea also. The objectives for the design were to make a sacred place to commemorate the 3.1 ˝Manse˝ Movement, to preserve and symbolically memorialize historic remains of the old ˝Wongaksa˝ Temple, an to provide natural and rest areas for citizen. For the space composition, three axes symbolic of, ´freedom and independence´, ´mercy´, and ´nature´, were created. For the freedom and independence axis, exiting facilities, such as statures and monuments related to the 3.1 Movement, were relocated centering around the octagonal pavilion, which was the starting point for the movement, to give order of the site. For the ercy axis, symbols of traditional temple structures, such as, ´Iljugate´-´Pian bridge´-´Chongwang gate´-´Haetal gate´-Pagoda-Buddhist sanctum, were created to symbolize the temple remains and placeness. For the nature axis, tree groves, walking trails, and rest areas for citizen were provided around the site. As a whole the design provided structural orders from secular spaces outside to sacred spaces inside.
월정사팔각구층석탑 부재인 화강암의 구성광물은 석영, 사장석, 미사장석, 흑운모이다. 이 석탑은 금속 장식물과 보조물에서 생성된 녹흔에 의한 황갈색 변색과 기단부와 옥개석 상부에 서식하는 침해생물로 인하여 표면이 훼손되어 있다. 세척 예비실험 결과 옥살산을 사용한 습포법은 제거횟수에 따라 철이온의 용출량이 증가하고 암석의 구성성분인 Mg, Al, Ca 이온의 용출량은 미약하므로 이 세척법은 제거횟수가 증가함에 따라 제거효과가 높고 암석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판단된다. 침해생물 제거에 이용한 건식세척은 생물제거는 가능하나 미소토양 제거가 어렵고, 증류수를 사용한 습식세척은 미소토양 제거가 가능하였다. 이를 근거로 보존 처리에서 침해생물은 건식세척과 습식세척으로 제거하였고 녹흔은 옥살산을 사용한 습포법으로 제거하였다. 그리고 녹흔의 원인이 되는 금속물의 녹을 물리적으로 제거한 후 철제 금속물은 renaissance wax를 사용하고, 동제 금속물은 B.T.A법을 사용하여 방청처리 하였다.
월정사 탑돌이는 광복 이후 재현된 첫 번째 불교민속놀이로 불교문화로서의 대표성과 역사성을 지닌 주요 무형문화재이다. 월정사 탑돌이는 한국 고유의 전통성과 강원도의 정체성이 내재된 불교민속유산이라는 점에서 지정 가치가 크다. 전국 사찰에서 탑돌이가 시연되고 있지만 무형문화재 지정을 기반으로 체계적인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는 월정사 탑돌이가 유일하다. 월정사 탑돌이의 문화재 내재적 가치에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탑돌이는 부처님, 탑에 대한 예경방식의 총체적 표현물이다. 월정사 탑돌이의 원형은 추정하기 어려우나, 월정사의 역사성으로 보아 고구려 계통의 놀이와 신라 복회(福會)에 닿아 있다. 고구려벽화의 달, 오대산 화엄사상경 배경과 팔각구층탑의 본질의 측면에서 우요삼잡의 예법에 부합한다. 탑돌이 때 처음에는 범종, 고(鼓), 운판, 목어의 사법악기(四法樂器)만 쓰이다가 후에 삼현육각(三弦六角)이 합쳐지고, "보렴"과 "백팔정진가"을 부른 것을 보면 처음에는 순수한 불교의식이던 것이 차츰 민속화해서 민중 속에 전파된 것을 알 수 있다. 월정사 탑돌이의 전형은 회향의례의 환희심을 체험하는 우요삼잡의 풀이와 관련된다. 절에서 대재(大齎)가 있으면 신도들은 공양을 올린다. 이때에 염불, 범음(梵音), 범패(梵唄)가 따르며, 재가 끝나면 신도는 승려와 함께 불탑을 돌면서 부처님의 공덕을 빌고, 또 저마다의 기원을 빈다. 일신의 왕생극락은 물론 국태민안을 빌어 태평성대를 누리고자 하였다. 큰 재일수록 많은 신도들이 모이며 따라서 탑돌이도 성황을 이루었다. 법음(法音)에 맞춰 제각기 소원을 외면서 탑을 도는 모습은 엄숙하였다. 월정사 탑돌이의 변형과 융합에 대한 발상은 전형 곧 문화재 지정의 취지 유지와 정체성 차원을 살리되 전승의 공연화를 위한 계승적 전략이 필요하다. 한국탑돌이는 4월 초팔일과 중추절인 한가위 날에는 탑돌이가 있었다. 탑돌이의 공연성은 스님이 염주를 들고 탑을 돌면서 부처의 큰 뜻과 공덕을 노래하면 사찰 신도들이 그 뒤를 따라 등을 밝혀 들고 탑을 돌면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회향형(回向型) 불교민속놀이에 있다. 공연성 활성화는 신행 보유자 전승교육, 전문가 자문의 다차원 접근, 원형 재현의 담론 등을 단계적으로 보강하여야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황룡사 구층목탑은 백제의 장인 아비지(阿非知)에 의해 선덕여왕 13년(645)에 건립된 것으로 전한다. 이후 고려 고종 25년(1238) 몽고군의 침략으로 사찰이 완전히 불타버리기 전까지 약 700년 동안 당시대인의 정신문화 속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상징이자 호국불교의 구심체로서 존재하였다.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문헌기록과 발굴조사 자료를 근거로 황룡사 창건 목탑에 대한 구조와 전체적인 형태에 대한 다양한 복원안을 제시해왔다. 하지만 그들이 제시한 황룡사 목탑의 모습은 기본적으로 현재 남아 있는 목탑지의 외형적인 형태와 단순한 목구조를 가정한 사각구층의 형태였다. 이는 관련 자료의 부족과 제한된 지식으로 인해 황룡사 창건 목탑의 기술적 계보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부족한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새로운 자료의 발견과 고대 대형 불탑의 구조 체계에 대한 인식 정도에 따라 충분히 수정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본고에서는 2005년부터 진행된 <황룡사 복원 연구>를 통해 정리된 목탑지에 대한 재분석 자료를 근거로 동아시아 고대 불탑의 구조 체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 속에서 황룡사 창건 목탑의 계보와 구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함을 제안해보고자 한다. 황룡사 창건 목탑은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걸쳐 적어도 두 번의 큰 중창을 겪는 동안 기단의 규모와 평면 형식 등이 변화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에 따라 상부 구조에도 큰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발굴조사 결과 드러난 유구에서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하는 구층목탑과 관련된 흔적은 현재 판축으로 조성된 기단토와 심초석 정도이며, 그외 초석과 기단 석재 등 대부분은 9세기 이후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황룡사 창건 목탑의 실질적인 구조는 당시 동아시아 대형 불탑의 변화과정 속에서 이해하여야 하며, 기술적 계보는 북조의 영향을 받은 백제의 대형 불탑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에 표현된 9층 마애탑의 모습과 황룡사지 강당지에서 출토된 금동제 불탑 난간편 분석을 통하여 파악된 고고자료를 근거로 황룡사 창건 목탑의 이미지를 추정해본다면 외형상으로뿐만 아니라 구조적으로도 지금까지 우리가 인식하고 있던 순수한 목구조를 한 사각구층탑과는 다른 형태로 파악되는데, 아마도 실심체를 갖춘 이원 구조의 팔각구층탑일 것으로 파악된다.
This study aims to discover historical trends and change of form of all stupas in India with observation of field study that is as direct as possible, by classifying, analyzing, and synthesizing the stupas. Study of Indian stupa in Korea has a number of shortcomings since only introductory partial approach has been made in order to seek the origin of Korean pagoda. This study also aims to correct errors of stupa terminology in Chinese character committed by misinterpretation of Hindi language which was established by precedent Japanese scholars several decades ago. Piled-up stupas were totally destroyed by pagans, therefore their remains tell us only of structure, material, sizeand disposition. However remains of carved stone at torana and drum give us clues as to the original form of stupa and worshipping activity, as well as change to a more luxurious form. Many rock cave stupas of India show us both simple forms matching the ascetic age of early Buddhism and luxurious changes in Mahayanan era introducing us to statues of Buddha. Indians recovered the spheric form of 'anda,' a Hindi term meaning cosmic egg, from the hemispheric form of the piled-up stupa. Therefore we might discard the erratic term of 'bokbal', which means an upset vessel. Railings and parasols became main factors of stupa design. Carved railings around stupa became a sign of divinity. Serious worshipping activity made drums long or high and created multi-embossed stripes. Bases of circular drums of some cave stupas changed their shapes to rectangular or octagonal. Single parasols became multiparasols of affluent flowerlike curved stems on carved stupa. Multistoried, elongated and high parasols of Gandhara stupas are closely related to such factors as diverse changes of form in Indian subcontinent. Four-sided torana gate and ayaka column of the circular form of original stupas suggest the rectangular form of subsequent East Asian pagoda, and higher and wider base of Indian stupas became the origin of East Asian rectangular pagoda.
"Stupa of Buddhist Monk, YeomGeo"(844) is known as the earliest Seon-stupa relic remains in Korean peninsula, from which, during late Silla and ealy Goryeo period, there were more than 30 of stupa was built on such canon. and became the well-known material culture in Seon Buddhism in late Silla period. In $9^{th}$ century, with the JeonDeong(delivering the light of Seon)from Tang to Silla, the culture of "GeonTapIpBi(building the pagoda and erecting stele)" was also moved in. And it was right after the style of monk's stupa had been methodically changed in china, from having the room in stupa for the corpse, named as "QuanShenSheLi", to the lessened stupa that contain the cremated. Analyzing the "Master ChengGuang's stupa"(807)and its stele, it can be found the correspondences of octagonal plan and the subjects of ornamentation to that of Stupas built in Silla, reveals they were made by the same canon. By the document in the stele, surmising the historical cause of alteration in Chan stupa, there was the most famous zen master ShenHui at the time, who has the most important role of making the NanZongChan to get the authenticity in Chan Buddhism. His reliqury was the first ${\acute{s}}ar{\bar{i}}ra$ casket discovered among Chan monks' relics, consequentially it was to influence to Chan cuture and size the monks 'stupa for his ${\acute{s}}ar{\bar{i}}ra$. The stupa of master ChengGuang, by its shape and geological location, is the lost piece in the Puzzle of Chan stupa culture between Silla and Tang.
The records of about 60 travel essays of the Hall of Bhaisajyaguru(Healing) Budda which was built in Chung Yang Temple passed down since 1525. The chronological change of that Hall architecture according to each period was traced upon. The building structure of the Hall of Bhaisajyaguru Budda which has a roundabout way, and 6 pillars inside, sometimes each 6 pillars inside and outside is hexagonal, one story building in Japanese colonial period(picture 3-1) or the present(picture 3-3). The panaromic picture of Chung Yang Temple shows no alterations of the layout of buildings(picture 1-1), in which the Hall of $Praj{\tilde{n}}{\bar{a}}$(般若殿), the main building in the center and the Hall of Bhaisajyaguru(Healing) Budda, three story stone pagoda, stone lighthouse in front of it became the central axis. The Hall of Bhaisajyaguru(Healing) Budda remained as it was until Japanese invasions in 1592 and 1597. However, it was greatly damaged by the flood in 1717. It was newly built by Lee Ha Gon's leading in 1717-1732. At that time, the interior design was changed. With Bhaisajyaguru(Healing) Budda, 53 Buddhas and ${\acute{S}}arira$ of Stone stupa which show itself by the flood in 1717 was located in the image of the Mountain of Chunchuk or Cheontae like Yu Jeom Temple. The doors of this Hall are located in the front and back. In the four walls each, two realistic and cubic buddhism pictures were drawn, The color of those picture was partly taken off in 1671 and repainted in 1714. The new building in 1717-1732 regained its colorful appearance. However, the names written beside each Images of Buddha disappeared. The notable remark in these records is that some of these travel essays in 17th-18th centuries was calling this hexagonal hall as the octagonal one. It is very important records because it means that before 1525 the octagonal hall might have existed. Chung Yang Temple was rebuilt between 1976 and 1985 after the destruction in the Korean War. After the records are carefully read, the full scale excavation about this historic site was not done yet. The interesting issue of the existence of octagonal building will be resolved by the full scale exca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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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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