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History Education

검색결과 2,123건 처리시간 0.025초

<창선감의록>의 적장자 콤플렉스 (The Legitimate and Eldest Son Complex in Changseongameirok)

  • 조광국
    • 고전문학과교육
    • /
    • 제38호
    • /
    • pp.65-101
    • /
    • 2018
  • <창선감의록>은 종법주의가 확립되는 흐름 속에서 차세대 가부장인 적장자에 의해 발생하는 가문의 위기를 정면에 내세워 그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을 선보였다. 본고에서는 그 문제의 발생과 해소 과정을 적장자 콤플렉스 차원에서 해명하고자 했다. 화춘의 적장자 콤플렉스는 카인 콤플렉스, 특히 카인의 장남 콤플렉스와 같은 양상을 보이는바 보편성을 지니며, 한편으로 시대적 작품적으로 적장자 콤플렉스라는 특수성을 띤다. 화춘의 적장자 콤플렉스는 화춘 개인을 넘어서 심부인의 종부 콤플렉스 그리고 조월향의 총부 콤플렉스와 결합하면서 확대 심화되어 마침내 가문 차원의 콤플렉스로 자리를 잡는 일련의 과정을 밟는다. 이에 <창선감의록>은 우리 문학사에서 적장자 콤플렉스를 노련하게 다룬 최초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확대 심화된 적장자 콤플렉스는 차남 화진에게 전가되어 그가 짊어지고 해소해야 할 것이 되는데, 화진은 지극한 효제로 가문 차원에서 자리를 잡은 적장자 콤플렉스를 해소하기에 이른다. 화진의 효제는 심부인 화춘 모자에 대한 효제를 넘어서서 가문에 대한 효제로 수렴된다. 그 가문에 대한 효제라는 것이 일정 부분 종법질서에 흠결이 없는 가문에 대한 효제의 성향을 띠는바, 종법주의 실현의 요체로 작동한다. 그와 관련하여 효제는 그 자체를 위하는 무조건성과 그 자체에 복이 내재되어 있는 필연적 보상성을 띰으로써 종법주의 이념에 당위성과 필연성을 부여한다. 그리하여 화진의 효제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화욱(가부장)-화춘(적장자)-화천린(입후자)'의 종법주의를 실현하는 요체로 구현된다. 그런데 종법주의가 어떤 상황을 막론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구현되는 것은 아니고, 왕가의 경우에는 종법에서 벗어나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다소 유연하게 구현되는 양상을 띤다. 이렇듯 적장자 콤플렉스의 해소를 통해서 종법주의가 실현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작품 곳곳에 근원적인 죄의식과 심리적 고통이 매우 강하게 배어난다. 그런 죄의식의 고통은 적장자 콤플렉스 내지는 적장자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이는 종법주의가 반드시 실현해야 할 이념으로 제시될수록 그에 상응하여 언제든지 적장자 콤플렉스가 분출될 수 있음을 방증한다. 적장자 콤플렉스가 표리관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가린-미하일로프스키의 『조선설화』에 나타난 '수달 전설'의 결합 양상과 청에 대한 인식 (The Aspects of Type-Combination of 'Otter Legend' in 『the Joseon tale』 and recognition of the Qing Dynasty and the Joseon Dynasty)

  • 하은하
    • 고전문학과교육
    • /
    • 제37호
    • /
    • pp.253-281
    • /
    • 2018
  • 이 논문은 19세기 말 가린-미하일로프스키에 의해 채록된 "조선설화" 속 수달 전설의 특징과 그 의미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조선설화"에 수록된 64편의 설화들은 1898년 두만강과 압록강 유역에서 채록된 것으로 이른 시기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전승되던 설화의 일면을 보여주지만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우리에게 소개되었다. 이후 선행 연구를 통해 "조선설화"의 대체적인 성격과 연행 과정에 대한 정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개별 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아직 미흡하다. 이에 본고에서 조선과 만주의 기원을 다루는 설화 <수달에 관한 전설>을 중심으로 그 이야기의 형식적 특징을 살폈고, 나아가 이야기 속에 형상화된 누루하치 가문과 이성계 가문의 대결 양상에 개입하고 있는 서술시각의 의미에 대해 논의해 보았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수달에 관한 전설>의 형식적인 특징은 '야래자 유형'과 <물 속 미륵 귀에 건 아버지 유골>, 눈 빛 강한 이인, 정충신 일화처럼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설화 유형이나 화소를 재구성하여 새로운 혼합형 설화로 만들어냈음을 밝혔다. 각각의 서사 논리를 지닌 기존의 설화들을 재배치하면서 <수달에 관한 전설>에는 여러 변형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다양한 종류의 변형을 가로지르는 일관된 논리는 누루하치 가문과 이성계 가문 간의 비교와 대결을 뚜렷하게 만들기 위해 개별 설화를 활용하려 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청나라의 기원이 되는 누루하치 가문의 신성성은 확대되고 구성원들의 인품도 높여졌다. 반면 조선의 기원이 되는 이성계 가문은 누루하치 가문에 비교해서 비범성이 떨어지고 능력도 떨어졌다. 그런데 이것은 청나라에 대한 선망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청나라와 조선의 혈통은 관련이 있다는 생각에 기반하고 있었다. 19세기 말 한반도 북부에서 채록된 설화에 담긴 인식은 청나라에 대한 재조명인 바, 청은 조선의 또 다른 혈통이기 때문에 청나라가 천하를 통일했던 경험을 조선 또한 공유해야 한다는 것임을 확인했다. 그것은 후일 금나라의 역사를 민족사의 관점에서 포섭하고 만주와 조선을 단군대황조의 후예이며 한 겨레로 보는 대동(大東)사관과 닮아 있는 것이기도 했다.

천수사(天壽寺)와 <대인(待人)> 화운시 연구 (A Study on the Cheonsu-Temple天壽寺 and the echo verse poems to 'Waiting'待人)

  • 안순태
    • 고전문학과교육
    • /
    • 제33호
    • /
    • pp.121-152
    • /
    • 2016
  • 천수사(天壽寺)는 고려조에 개성(開城) 동쪽에 있었던 사찰로 왕조 교체기에 폐사(廢寺)되었다. 천수사가 있던 자리는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영송(迎送)하는 사람들이 많아 조선 초 그 터에 역원(驛院) 천수원(天壽院)이 설치되었다. 이후 1476년 개성부 유수 이예(李芮)가 천수원 곁에 천수정(天水亭)을 건립하면서 천수사의 자취를 이었다. 조선 전기까지 오가는 사람들로 번화하던 천수원과 천수정은 17세기경에 사라지고, 이후 그곳은 황량한 들판으로 변했다. 고려 말에 여러 시인들이 천수사에 들러 시를 남겼거니와, 그 가운데 특히 최사립(崔斯立)의 <대인(待人)>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조선조에도 천수사에서 지어진 시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최사립의 <대인(待人)>에 화운한 것들이었다. 천수사는 왕조 교체기에 사라졌지만 19세기까지도 그 이름이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최사립의 시 덕분이었다. 이 시는 벗을 기다리는 이의 설렘과 초조함, 실망감 등 기다림이 내포할 수 있는 다양한 심경을 회화적이면서도 역동적으로 그려 후세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표현하였다'는 등의 절찬을 받기도 했다. <대인(待人)>에 화운한 시들은 스무 편이 넘는다. 이 화운시들은 대체로 시기별로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조선 초에는 정영위(丁令威)의 요동학(遼東鶴) 고사를 차용한 화운시들이 자주 눈에 띈다. 선술(仙術)을 닦아 학으로 화(化)해 천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정영위가 읊조린 시변(時變)의 무상함을 옮겨와, 천수사의 풍경은 전조(前朝)와 다름이 없는데 그 풍경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바뀌었음을 읊은 것이다. 이후 중종(中宗)이 이곳에 행차하면서 중종을 비롯한 여러 신하들이 일련의 차운시를 지었는데 이 시들은 대체로 왕조의 흥망을 심상(尋常)한 것으로 읊고 있다. 이는 어제시와 응제시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17세기에 천수원과 천수정이 사라지면서 이곳은 인적 드문 황량한 곳으로 변했다. 그러한 광경을 목도하고 쓴 화운시에는 쓸쓸한 정조가 깃들어 있음을 살폈다. 화운시는 원운(原韻)을 염두에 두고 지은 시로, 형식은 물론 의경(意境)까지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대인(待人)> 화운시들은 화운시 일반과는 구별되는 특징이 보인다. <대인(待人)>이 이루어진 공간이 '천수사'이고 <대인>에 대한 화운한 시인들은 원운과 특정 공간(천수사)을 모두 염두에 두고 시를 제작해야 했다. 그 결과 형식과 의경 모두 원운을 따른 시작이 산생되기도 하였고 형식은 원운을 따르되 의경은 원운과 달라진 것도 나타나게 되었다.

이문건 시묘살이를 통해 본 조선중기 유자(儒者)의 상례(喪禮) 고찰 (Confucians Funeral Rituals during the mid-Joseon Dynasty Lee Mun Geon'Mourning beside His Mother's Grave)

  • 조은숙
    • 고전문학과교육
    • /
    • 제33호
    • /
    • pp.153-184
    • /
    • 2016
  • 본고는 묵재 이문건(1494-1567)이 어머니 고령 신씨(高靈申氏; 1463-1535)의 시묘살이를 하며 기록한 상례(喪禮)에 대한 고찰이다. 상례는 죽음에 대한 의례이다. 이문건이 행한 죽음의례, 즉 시묘살이 상례(喪禮)에 개인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참여하였는가에 초점을 두어 살펴보았다. 즉 이문건이 실천한 시묘살이 상례의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그 의례가 지향하는 바의 의미와 조선중기 사대부 일기의 글쓰기를 통해 당대인의 효의 실천과 죽음에 대한 제반 인식을 유추해보는 데 그 의의를 둔다. 조선중기 사대부들은 법제화에 의한 상례 준수로 인식변화를 끊임없이 시도하지만, 기나긴 역사의 밑바탕에 깔린 인간의 의식세계를 완전히 개조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중국과 조선은 문화적 배경이 달랐음을 인정해야만 하였다. 중국의 제도인 "주자가례"를 조선에 끼워 맞추려고 한 것은 처음부터 문제를 배태하고 있는 것이다. 신주(神主) 중심의 조상 제사와 가묘(家廟) 설립의 중요성을 "주자가례"에서 백 번 강조하지만, 조선중기 사대부는 무덤 속에 누워 있는 부모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것이다. 사당과 시제(時祭)보다는 무덤과 묘제(墓祭) 및 기제사(忌祭祀)가 조선중기의 사대부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다. 이런 모순 속에서 조선중기 사대부는 죽음에 대한 의례로서 시묘살이 상례를 수용하고 실천하였다. 고대인 혹은 중세인이 아니라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죽음에 대한 지배적 생각, 즉 현세와 정신적 물질적 생활을 지속한다는 계세사상(繼世思想)을 뿌리 채 뽑아버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만약 이 사상이 없다면 인간의 죽음 역시 고속도로 위에서 차에 치여진 동물의 사체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시간이 변해도 형태는 바뀔지언정 죽음에 대한 의례 자체를 끊임없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중기 사대부의 시묘살이는 효의 실천과 죽음에 대한 의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향가, 문학적 재미의 원천 (Hyangga, a source of literary interest)

  • 신재홍
    • 고전문학과교육
    • /
    • 제32호
    • /
    • pp.5-27
    • /
    • 2016
  • 본고는 향가의 재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논하였다. 향가의 문학적 재미와 의미는 향가를 통해 사유하고, 느끼고, 자아를 찾는 데 있다고 보았다. 이는 어떤 문학 장르라도 가능하지만 그 속에서 향가만이 갖는 재미의 영역을 찾는다면, 변증법적 사유 구조 즐기기, 당대성을 지닌 서정주의에 젖어들기, 작품의 장소를 자아와 관련짓기 등을 들 수 있다. 향가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변증법적 사유 구조에 기초한 문학 장르이다. 10행 향가가 3구 구성의 형식일 뿐 아니라 4행, 8행 향가에서도 3단의 의미구성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하여 향가를 향유하는 데에는 장르 자체에 내재한 변증법적 사유 구조를 체화하는 경험이 중요하다. 변증법적 사유를 통해 향가 이해가 심화되는 한편 향가를 향유함으로써 변증법적 사유 자체를 즐길 수 있다. 현존 향가는 모두 개성 있고 풍부한 서정을 보여 준다. 향가에 담긴 정서는 인간 보편의 정서와 함께 역사적 특수성에서 나온 정서가 합쳐진 것이다. 향가의 문학적 흥미는 그 서정의 보편성과 특수성, 구체성과 핍진성에서 연유한다. 굳세고 의연한 기상이나 금기를 깰 정도의 풍류가 깃든 정서 등 신라 시대에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은 매력과 미감을 지닌 정서로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향가의 장소성은 개별 작품에 담겨 있고, 우리가 작품을 감상할 때 그 장소성의 관여에 따라 재미와 의미를 얻는다. 향가와 관련된 장소는 오늘날에도 그 좌표축에 위치하고 있기에 향가가 향유되었던 과거와 오늘의 우리를 연결하는 고리가 된다. 향가는 우리 삶의 터전인 이 땅에서 일어난 사건의 장소에서 감흥을 얻어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향가의 장소성은 우리가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역사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와 같이 향가의 재미와 의미는 변증법적 사유 구조, 서정주의, 장소성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영역들을 확장해 나간다면 향가 향유의 드넓은 지평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광주권번을 통해 본 광주지역 판소리의 전승양상 (Transmission of Pansori In Gwangju Region : A Case Study Of Gwangju Gwonbeon)

  • 이명진
    • 공연문화연구
    • /
    • 제36호
    • /
    • pp.137-167
    • /
    • 2018
  • 광주권번은 호남의 대표적인 권번으로, 일제강점기부터 1951년 광주국악원이 창립되기 이전까지 광주지역의 국악교육을 수행한 곳이기도 하다. 광주국악원 역시 광주권번의 후신으로 광주의 국악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지역 유지들이 힘을 모아 세운 기관이다. 따라서 근현대 광주 국악사를 거론할 때 광주권번은 빠지지 않는 이름이다. 그럼에도 광주권번 자체는 물론, 관련 연구 등은 아직 미비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파악된 광주권번에 대한 연구는 권번운영과 무용 분야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광주는 지역적 특성상 판소리가 활성화되었던 곳이다. 1918년 당시 기생에 대한 기록인 "조선미인보감"에 의하면, 다른 지역에 비해 광주권번의 기생들은 판소리에 특화되어 있기도 했다. 또한 광주권번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또 학생으로 교육을 받았던 인물들 중 오늘날 대중적으로 알려진 수많은 명창들이 있다. 이들이 증언하는 광주권번과의 인연은 광주지역의 판소리 전승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이다. 하지만 광주권번과 판소리의 상관성은 아직까지 제대로 연구된 바 없는 실정이다. 특히 광주권번에 관한 판소리 명창들의 증언은 현재 파편적으로 존재하고 있어 그 가치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광주권번과 광주국악원의 창립은 광주지역 국악인 양성교육을 위한 초기 사설학원으로서 판소리 교육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으며, 광주지역의 국악을 본격적인 궤도에 올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이에 필자는 곳곳에 파편적으로 존재하는 명창들의 증언을 한 곳에 모으는 작업에 중요성을 두고 본 논문을 작성하였다. 이를 통해 광주권번과 광주국악원에서 활동했던 명창들의 활약을 재구성할 수 있었고, 일제강점기부터 1973년경까지 광주지역의 판소리 전승양상과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논문을 기점으로 광주지역 판소리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관련 연구가 보다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교수·학습자료용 기록정보 콘텐츠 서비스의 구성 및 개발 (Composition and Development of Archival Content Service for Teaching-learning Materials)

  • 심성보
    • 기록학연구
    • /
    • 제16호
    • /
    • pp.201-256
    • /
    • 2007
  • 최근 국가기록원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등 한국의 주요 아카이브즈와 매뉴스크립트 보존소는 학생과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기록정보 서비스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에, 영국의 TNA와 미국의 NARA 및 LC에서 제공하고 있는 학생과 교사 대상의 기록정보 서비스 선진사례에 대한 분석과, 한국의 기록관리 현실 및 교육과정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하여, 학생과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기록정보 서비스의 개발과정에서 발생할 주요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의 해결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학생과 교사 대상의 기록정보 서비스는 '서비스 개발을 통한 이용 활성화'와 '기록관리 품질의 점진적 향상'이라는 목적하에 진행되어야 한다. 고객군은 '한국사 교수 학습 당사자로서의 학생과 교사'로 세분화하여 식별할 수 있다. 교육과정과 교육환경을 분석한 결과, 기록정보는 교수 학습자료용으로 개발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록정보를 콘텐츠화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서비스의 성격은 '교수 학습자료용 기록정보 콘텐츠 서비스'로 개념화할 수 있다. 콘텐츠 서비스를 개념화하고 구성한 후 실제로 개발하는 전 과정에서는 다음의 사항이 핵심적이다. 첫째, 고객 중심의 서비스로 개발되어야 한다. 둘째, 기록관리의 체계화와 전통적인 기록관리 서비스의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발되어야 한다. 셋째, 교육용 서비스 담당자를 중심으로 한 협업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넷째, 기록정보와 주제별 교수 학습활동이 연계될 수 있도록 개발되어야 한다. 다섯째, 콘텐츠의 수량보다 콘텐츠의 품질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여섯째, 다른 기관과의 서비스 제휴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한편, 초 중 고 교육과정이 개정되어 2011년에는 모든 국사 교과서가 새로운 내용으로 보급될 예정이고, 서책형 교과서뿐만 아니라 디지털 교과서도 개발되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볼 때, 이 시기에 학생 교사 대상의 서비스가 획기적으로 발전된다면, 기록문화의 창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시기를 적극 활용하여, 한국사를 교수 학습하는 430만명의 학생과 1만 4천명의 교사가 한 학기에 한 번 이상 교수 학습자료용 기록정보 콘텐츠 서비스로 교수 학습하게 한다는 비전을 수립하고, 교수 학습자료용 기록정보 콘텐츠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개발 보급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항을 추진할 것을 제언한다. 첫째, '고객 중심의 서비스' 개념을 확립하고 체계화해야 한다. 둘째,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심도 깊게 분석해야 한다. 셋째, 교육용 기록정보 콘텐츠 서비스 방법론을 개발해야 한다. 넷째, 기록관리 전문가집단과 교사집단의 전략적 협력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다섯째, 2011년까지의 단계별 추진 과제와 추진 일정을 수립해야 한다. 기록문화의 창달을 위한 알찬 씨앗이 초 중 고등학교에도 하루빨리 뿌려지기를 기대한다.

Development and Testing of the Model of Health Promotion Behavior in Predicting Exercise Behavior

  • O'Donnell, Michael P.
    • Korean Journal of Health Education and Promotion
    • /
    • 제2권1호
    • /
    • pp.31-61
    • /
    • 2000
  • Introduction. Despite the fact that half of premature deaths are caused by unhealthy lifestyles such as smoking tobacco, sedentary lifestyle, alcohol and drug abuse and poor nutrition, there are no theoretical models which accurately explain these health promotion related behaviors. This study tests a new model of health behavior called the Model of Health Promotion Behavior. This model draws on elements and frameworks suggested by the Health Belief Model, Social Cognitive Theory, the Theory of Planned Action and the Health Promotion Model. This model is intended as a general model of behavior but this first test of the model uses amount of exercise as the outcome behavior. Design. This study utilized a cross sectional mail-out, mail-back survey design to determine the elements within the model that best explained intentions to exercise and those that best explained amount of exercise. A follow-up questionnaire was mailed to all respondents to the first questionnaire about 10 months after the initial survey. A pretest was conducted to refine the questionnaire and a pilot study to test the protocols and assumptions used to calculate the required sample size. Sample. The sample was drawn from 2000 eligible participants at two blue collar (utility company and part of a hospital) and two white collar (bank and pharmaceutical) companies located in Southeastern Michigan. Both white collar site had employee fitness centers and all four sites offered health promotion programs. In the first survey, 982 responses were received (49.1%) after two mailings to non-respondents and one additional mailing to secure answers to missing data, with 845 usable cases for the analyzing current intentions and 918 usable cases for the explaining of amount of current exercise analysis. In the follow-up survey, questionnaires were mailed to the 982 employees who responded to the initial survey. After one follow-up mailing to non-respondents, and one mailing to secure answers to missing data, 697 (71.0%) responses were received, with 627 (63.8%) usable cases to predict intentions and 673 (68.5%) usable cases to predict amount of exercise. Measures. The questionnaire in the initial survey had 15 scales and 134 items; these scales measured each of the variables in the model. Thirteen of the scales were drawn from the literature, all had Cronbach's alpha scores above .74 and all but three had scores above .80. The questionnaire in the second mailing had only 10 items, and measured only outcome variables. Analysis. The analysis included calculation of scale scores, Cronbach's alpha, zero order correlations, and factor analysis, ordinary least square analysis, hierarchical tests of interaction terms and path analysis, and comparisons of results based on a random split of the data and splits based on gender and employer site. The power of the regression analysis was .99 at the .01 significance level for the model as a whole. Results. Self efficacy and Non-Health Benefits emerged as the most powerful predictors of Intentions to exercise, together explaining approximately 19% of the variance in future Intentions. Intentions, and the interaction of Intentions with Barriers, with Support of Friends, and with Self Efficacy were the most consistent predictors of amount of future exercise, together explaining 38% of the variance. With the inclusion of Prior Exercise History the model explained 52% of the variance in amount of exercise 10 months later. There were very few differences in the variables that emerged as important predictors of intentions or exercise in the different employer sites or between males and females. Discussion. This new model is viable in predicting intentions to exercise and amount of exercise, both in absolute terms and when compared to existing models.

  • PDF

스포츠 분야 사회적기업의 모델 탐색: 조직형태 및 과제 (Exploring the Model of Social Enterprise in Sport: Focused on Organization Form(Type) and Task)

  • 박상현;박주영
    • 산업융합연구
    • /
    • 제22권2호
    • /
    • pp.73-83
    • /
    • 2024
  • 이 연구의 목적은 스포츠 분야 사회적기업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여러 문제점들을 조직의 관점에서 진단하고 필요한 과제 및 시사점을 도출하는 데 있다.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크게 세 가지 단계로 구분하여 연구를 진행, 결과를 도출하였다. 첫 번째로는 스포츠 분야 사회적기업의 주요 현황 및 특성 등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배경 및 기원, 법제 및 정책, 조직목표, 조직구조 및 절차, 조직특성 등의 측면을 중심으로 현황을 분석하였다. 스포츠 분야 사회적기업은 초기단계로서 정부의 사회적기업 정책목표는 재정투입을 통해 단기간 내 사회적기업의 수를 늘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개별 기업들의 수익창출 여력이 미흡하여 정부의 보조금 지원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스포츠 분야 사회적기업의 기능수행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적 요인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상황적 요인인 조직의 가치와 이념, 기술, 역사 등을 검토한 결과, 스포츠 분야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아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을 받는 경우 정치적 통제는 어느 정도 강하고 시장에 노출 정도는 심하지 않은 '관청형' 조직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도출할 수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에서는 스포츠 분야 사회적기업에 적정한 조직의 형태를 갖추기 위한 과제 및 시사점을 도출하였다. 스포츠 분야 사회적 기업 생태계가 어느 정도 정착된 이후에는 현재의 '관청형' 조직에서 '국민기업' 조직으로 점차 나아갈 필요가 있다. 이는 정부의 제한된 재정 수준을 감안해서도 그러하며, 단기적인 생존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스포츠 분야 사회적기업이라는 조직이 살아남을 수 있기 위해서도 그러한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의약내용(醫藥內容) 분석 (Study on Medical Records In ${\ulcorner}$the Historical Records of the Three Kingdoms${\lrcorner}$)

  • 신순식;최환수
    • 제3의학
    • /
    • 제2권1호
    • /
    • pp.35-54
    • /
    • 1997
  • We tried to observe the features of ancient medical practice by analysing the records related to medicine in the book, ${\ulcorner}$the Historical Records of the Three Kingdom${\lrcorner}$ of which content includes the features of medicine in mythology, plague, delivery of twins, drugs, medical system, shamanism, constitutional medicine, psychiatry, forensic medicine, deformity, a spa, medical phrase, health and welfare work, religion, death. physiological anatomy, Taoist medicine, acupuncture, the occult af of transformation and etc. Our initial concern was about where to draw line as of medical field and we defined medicine in more broad meaning. The book ${\ulcorner}$the Historical Records of the Three Kingdoms${\lrcorner}$ describes the world of mythology by way of medicine which is not clearly a conventional one. There appears records of birth of multiple offsprings 7 times in which cases are of triplets or more. Delivering multiple offsprings were rare phenomenon though such fertility was highly admired. This shows one aspect of ancient country having more population meant more power of the nation. Of those medical records conveyed in that book includes stories of childbirth such as giving birth to a son after praying, giving birth to Kim Yoo-shin after 20 months after mother's dream of conception, and a song longing for getting a laudable child. Plagues were prevalent throughout winter to spring season and one can observe various symptoms of plagues in the record. Of these epidemic diseases, cold type might have been more common than the heat one. Appearance of epidemic diseases frequently coincided with that of natural disasters that this suggests a linkage between plague and underlying doctrine on five elements' motion and six kinds of natural factors. There exists only a few names of diseases such as epidemic disease, wind disease, and syndrome characterized by dyspnea. Otherwise there appeared only afflictions that were not specified therefore it remains cluless to keep track of certain diseases of prevalence. Since this ${\ulcorner}$Historical Records of the Three Kingdoms'${\lrcorner}$ wasn't any sort of medical book, words and terms used were not technical kind and most were the ones used generally among lay people. Therefore any mechanisms of the diseases were hardly mentioned. Some of medicinal substances such as Calculus Bovis, Radix Ginseng, Gaboderma Luciderm, magnetitum were also in use in those days. 53 kinds of dietary supplies appears in the records and some of these might have been used as medicinal purpose. Records concerning dicipline of one's body includes activities such as hunting, archery, horseback riding etc. In Shilla dynasty there were positions such as professor of medicine, Naekongbong(內供奉), Kongbong's doctor(供奉醫師), Kongbong's diviner(供奉卜師). As an educational facility, medical school was built at the first year of King Hyoso's reign and it's curricula included various subjects as ${\ulcorner}$Shin Nong's Herbal classic${\lrcorner}$, ${\ulcorner}$Kabeul classic of acupuncture and moxbustion${\lrcorner}$, ${\ulcorner}$The Plain Questions of the Yellow Emperor's Classic of Internal Medicine${\lrcorner}$, ${\ulcorner}$Classic of Acupuncturer${\lrcorner}$, ${\ulcorner}$The Pulse Classic${\lrcorner}$, ${\ulcorner}$Classic of Channels and Acupuncture Points${\lrcorner}$ and ${\ulcorner}$Difficult Classic${\lrcorner}$. There were 2 medical professors who were in charge of education. To establish pharmacopoeia, 2 Shaji(舍知), 6 Sha(史), 2 Jongshaji(從舍知) were appointed. In Baekje dynasty, Department of Herb was maintained. Doing praying for the sake of health, doing phrenology also can be extended to medical arena. Those who survived over 100 years of age appear 3 times in the record, while 98 appears once. The earliest psychiatrist Nokjin differentiated symptoms to apply either therapies using acupuncture and drug or psychotherapy. There appears a case of rape, a case of burying alive with the dead, 8 cases of suicide that can characterize a prototype of forensic medicine. Deformity-related records include phrases as follow: 'there seems protrudent bone behind the head', 'a body which has two heads, two trunks, four arms.', 'a body equipped with two heads' In those times spa can be said to be used as a place for he리ing, convalescence, and relaxation seeing the records describing a person pretended illness and went to spa to enjoy with his friends. Priest doctors and millitary surgeons were in charge of the medical sevice in the period of the Three Kingdoms by the record written by Mookhoja(墨胡子) and Hoonkyeom(訓謙). Poor diet and regimen makes people more vulnerable to diseases. So there existed charity services for those poor people who couldn't live with one's own capacity such as single parents, orphans, the aged people no one to take care and those who are ill. The cause of affliction was frequently coined with human relation. There appeared the phenomenon of releasing prisoners and allowing people to become priests at the time of king's suffering. Besides, as a healing procedure, sutra-chanting was peformed. There appears 10 cases of death related records which varies from death by drowning, or by freezing, death from animals, death from war, death from wightloss and killing oneself at the moment of spouse's death and etc. There also exist certain records which suggest the knowledge of physiology and anatomy in those times. Since the taoist books such as ${\ulcorner}$Book of the Way and Its Power(老子道德經)${\lrcorner}$ were introduced in the period of Three Kingdoms, it can be considered that medicine was also influenced by taoism. Records of higher level of acupuncture, records which links the medicine and occult art of transformation existed. Although limited, we could figure out the medical state of ancient society.

  • 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