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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강쇠가>에 나타난 '성'의 표면화 전략과 미디어서사로의 전이 (A Study on the Strategy of Revealing 'Sex' in and its Transferring to Media Narrative)

  • 정제호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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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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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7-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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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변강쇠가>는 우리 문학 중에서도 성적인 요소의 활용이 대단히 많은 작품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변강쇠가>는 단순히 음란한 작품으로 치부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변강쇠가>를 면밀히 살펴보면 그 음란함의 이면에 당대 현실에 대한 다양한 문제의식이 숨어 있음을 포착할 수 있다. 특히 강쇠와 장승의 대립을 통해 제시되는 유랑민과 지역 공동체 간의 갈등은 현실의 질곡을 드러내는 장치로 쓰인다. 다만 현실의 질곡을 야기한 존재들에 대한 비판이 성적 요소들 뒤로 숨어 그들에 대한 진정한 문제 제기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변강쇠가>의 표면이 성적 요소들로 채워지면서 그 속에 문제들은 감춰지는 것이다. 이러한 <변강쇠가>의 성 표면화 전략은 미디어서사로의 전이 과정에서도 유사하게 드러난다. <변강쇠가>는 1980년대에 영화화된 이후 최근까지 계속해서 새롭게 재창작되고 있다. 다만 이들 작품들은 <변강쇠가>의 성적 요소들만 수용하여 극대화한 B급 에로영화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변강쇠가> 속에 담긴 현실의 문제나 다양한 의미들은 사라진 채 더욱 원초적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형태로만 전이된 것이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변강쇠가> 자체의 의미나 내용은 사라지고 오로지 성적 요소의 이미지화만 남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변강쇠가>의 미디어서사로의 전이 과정에서 성적인 요소가 더욱 강조된 것은 당대 현실과도 관계가 있다. 군부에 의해 장악된 정치 환경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해 많은 에로 영화가 창작되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결국 <변강쇠가>에서 나타난 성의 표면화 전략이 미디어서사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더욱 극대화되며, 당대 현실을 가리는 장치로 활용된 것이다. 하지만 이후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처럼 새로운 작품들이 시도되고 있다. 이는 획일화된 <변강쇠가>의 기표를 넘어 작품에 대한 향유 방식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향후 <변강쇠가>에 대한 여러 새로운 해석이 더욱더 기대되는 바이다.

북한의 무인기 위협과 대응 자세 (A Study on North Korea's UAV Threat and Response Stance)

  • 김현식;박찬영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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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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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7-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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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4차산업혁명과 더불어 '무인화' 영향이 전 세계 모든 분야에 미치고 있고, 특히 군사 분야에서 '무인화'는 주된 전투체계의 한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최근, 우리 영공을 침범하여 서울까지 내려온 북한 무인기 사태로 우리 군은 위기에 직면한 상태이다. 이에 우리 군은 북한의 무인기를 포착하고 격멸하겠다는 의지표명과 대응방안을 천명했다. 하지만 무인기의 기술발전은 지속되고 있고 활용 방안 또한 확대되고 있어 현 수준에서의 무인기 대응 방안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또한 북한의 위협은 무인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은 사실상 핵 보유국가이자 7차 핵실험을 앞두고 있고 2022년 한 해에만 38차례, 67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는 등 미사일 기술도 고도화 되고 있다. 또한 우리에게 치명적 위협이 될 수 있는 5대 핵심 전략무기를 개발하고 있고 북한의 강력한 재래식 전력은 북방한계선 일대에 다수 포진되어 있고 장사정포의 포구는 수도권을 향해 있다. 지금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북한의 무인기 위협을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한의 위협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명확하게 우선순위를 정하여 제한된 예산을 사용해야 무인기 위협 이외의 북한의 전반적인 위협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동관왕묘의 어제(御製) 현판(懸板)의 유형과 내용 분석 (An Analysis on Types and Contents of Hanging Boards Inscribed with King's Writings in Donggwanwangmyo[East Shrine of King Guan Yu])

  • 장경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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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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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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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관우를 모신 동관왕묘에는 51점의 현판이 소장되어 있다. 이것들은 조선의 국왕이나 명 청대 사신 및 장군들이 쓴 것이다. 그동안 현판에 대한 연구는 궁궐에 소장된 것들이 주로 연구되었고, 동관왕묘의 것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본고에서는 조선후기 국왕의 글씨로 만든 현판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그 내용과 형식을 분석하였다. 내용상으로는 현판의 제작자와 제작시기 및 제작배경을, 형식상으로는 현판의 유형과 재료 및 시기별 양식 변천을 밝혀 보았다. 이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우선, 동관왕묘에 국왕 글씨로 만든 현판은 총 7점이 현존하고 있다. 숙종이 쓴 1점, 영조가 쓴 4점, 고종이 쓴 2점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건물의 이름을 쓴 편액(扁額)과 동관왕묘에 방문한 느낌을 시로 쓴 시액(詩額)으로 나뉘었다. 특히 후자는 국왕이 봄과 가을에 능행(陵幸)하면서 동관왕묘에 들렀을 때 썼으며, 관우의 의리와 충성을 통해 왕실의 안녕을 도모하고자 의도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다음, 국왕의 현판은 명 청대 사신이나 장군의 것들과 비교할 때 재료나 형식면에서 차별화되었다. 바탕은 청색[회회청(回回靑) ]이나 주색[주칠(朱漆)] 및 옻색[흑칠(黑漆)]으로서, 먹색[묵(墨)]이나 흰색[분질(粉質)]으로 된 현판보다 고급 재료로 칠하였다. 글씨는 양각으로 새긴 위에 금(金)으로 칠하였다. 현판의 형식은 4면이 모판처럼 $45^{\circ}$로 비스듬하며 단청기법으로 꽃문양이나 칠보문양을 그렸고, 그 좌우와 아래로 길게 빼 당초문양을 장식하였다. 이것은 '사변형(斜邊形)'이라고 부르는 형식이며, 나머지 3종류의 형식보다 품격이 높아 최고 수준의 것이었다. 이처럼 국왕의 글씨를 새긴 현판의 존재를 통해 조선후기에 동관왕묘는 국왕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군인들의 충성심을 강조한 정치적 공간으로서의 위상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밖에 명대 사신이나 청대 장군의 글씨로 제작된 현판과 형식 비교나 시기별 양식적 변천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 한다.

아프가니스탄 틸랴 테페의 사르마티아(Sarmathia)식 검집 패용 방식의 전개 과정으로 본 동서교섭 (Thinking in Terms of East-West Contacts through Spreading Process of Sarmathia-Pattened Scabbard on Tillya-Tepe Site in Afghanistan)

  • 이송란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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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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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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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최근 북방유목민족인 사르마티아에 관한 고고학적 자료들이 증가하면서 사르마티아인들의 활동 양상과 그 실체들이 조금씩 규명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사르마티아인들의 동서 교역의 활동 양상을 사르마티아식 검집의 확산 지역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사르마티아인들의 검은 스키타이나 페르시아인들이 사용한 아키나케스(Akinakes)의 계보를 잇는 것이지만 손잡이나 패용 방식에서 손쉽게 칼을 뺄 수 있도록 변화되었다. 즉 양 측면에 달린 4개 돌기에 끈으로 연결한 검집을 허벅지에 부착시키는 패용 구조로 변한 것이다. 사르마티아식 검은 기원전 5세기 파지리크시기 알타이 지역에서 처음 등장한 이래 사르마티아인들의 활동 중심지인 남시베리아, 박트리아, 파르티아, 로마로 확산되었다. 이 글에서는 동서 교섭의 요충지인 박트리아지역에 속하는 아프가니스탄 틸랴 테페 4호묘에서 출토된 검집에 관심을 두었다. 사르마티아식 검을 패용한 채 매장되었던 틸랴 테페 4호묘의 묘주는 당시 쿠샨왕조의 지배하에 있었던 박트리아에서 상당한 위치의 인물로 파악된다. 묘주가 2자루의 사르마티아식 검을 패용하고 있었던 것은 박트리아에 사르마티아의 영향이 상당이 수용된 사실을 의미한다. 사르마티아인들이 동서교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국산 물자를 실크로드에 공급하였던 이들의 역할과도 관련이 있다. 이에 사르마티아인들이 활동한 북방 초원 루트에 중국 한대 동경, 메론형 구슬, 수정구슬 등의 장식구슬, 금환연접구슬 등 중국 특히 비단이 생산되었던 남중국의 공예품들이 출토되는 경위에 관심을 가졌다. 모자이크 구슬은 당시 남중국 그리고 사르마티아와의 관계에 의한 것으로 살펴보았다. 거리적으로 먼 사르마티아와 남중국이 교섭할 수 있었던 중간 매체로는 흉노가 주목된다. 이와 관련하여 흉노의 유적에서 남중국에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는 금환연접구슬이 발견되는 점을 참고하였다. 남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유행한 금환연접구슬이나 모자이크구슬이 아프카니스탄의 틸랴 테페 유적에는 없는 반면 같은 초원길로 연결되는 사르마티아 유적이나 흉노의 몽골 유적에서 등장하는 점이 흥미로운 것이다. 이는 남중국과 사르마티아, 흉노와의 연결 루트를 상정하게 한다. 한편 사르마티아인들의 중심연대인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 사이 초원루트와 남중국을 잇는 교통로로는 운남에서 미안마를 지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을 지나 인도 동부로 들어가는 서남실크로드로 판단된다. 1세기 동서교섭의 루트에는 북방 초원 루트, 남해 루트, 오아시스 루트 등 다양한 루트가 존재한다. 이들 루트들은 운반, 집산되는 물자의 특성이나 당시 정치적 관계에 의해 다양하게 사용되고 형성되었다. 이 글에서는 인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남중국을 잇는 최단거리의 길인 서남루트가 북방 유목민들인 사르마티아인들에 의해 사용되고 개척된 상황을 살펴본 것이다.

노인의 사회경제적 상태, 건강상태, 건강행태와 건강관련 삶의 질의 관계: 성별 차이를 중심으로 (Gender differences in the impact of socioeconomic, health-related, and health behavioral factors on the health-related quality of life of the Korean elderly)

  • 문성미
    • 디지털융복합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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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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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9-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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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연구의 목적은 우리나라 노인의 사회경제적 상태, 건강상태, 그리고 건강행태와 건강관련 삶의 질의 연관성을 성별로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14년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남성노인 688명, 여성노인 898명의 자료를 2차분석 하였다. 건강관련 삶의 질은 European Quality of Life 5 Dimensions (EQ-5D) Index를 이용하였다. 일반선형모형을 이용하여 추정평균과 표준오차, 계수추정치, 그리고 신뢰구간을 산출하였다. 노인의 건강관련 삶의 질과 가장 연관성이 큰 변수는 우울이었고, 주관적 건강인식과 걷기활동 또한 유의한 연관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시간이 적정하지 않을 경우 건강관련 삶의 질이 유의하게 낮았다. 한편, 주거형태와 교육수준은 여성 노인의 건강관련 삶의 질과 유의한 관계가 있었고 체질량지수는 남성 노인의 건강관련 삶의 질과 유의한 관계를 보였다. 본 연구결과는 우울의 관리 및 예방이 노인의 건강관련 삶의 질을 유지 증진시키는데 핵심적임을 보여주고 있고 신체활동의 경우 걷기활동과 같은 저강도 신체활동에 초점을 두는 것이 적절함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독거 여성노인과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저학력 여성 노인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요구된다.

3·1운동 신문조서(訊問調書)를 통해 본 조선인들의 '불만'과 '독립'- 학생과 농민을 중심으로 ("Discontent" and "Liberation" of Koreans Found in the Interrogatories for the March 1st Movement: With a Focus on Students and Farmers)

  • 윤현상
    • 한국교육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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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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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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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논문은 국사편찬위원회의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3.1운동편을 통해, 신문조서에 드러난 학생과 농민들의 진술에 드러나는 특징을 포착하려 하였다. 국사편찬위원회 신문조서에 어떤 사람들이 조사를 받았는지를 우선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주로 경성의 학생, 경기도의 농민들이 조사받은 기록이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다음 그들이 3.1운동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추적하였다. 신문조서에서 말한 불만사항들을 정리하고, 그러한 불만이 '독립'과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주로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불만을 명확하게 표현하였던 데 비하여, 농민들은 총독정치 하에서의 생활 및 세금 문제에 불만을 품고 있었고, 스스로의 불만을 명확히 표현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 중에서도 처벌을 경감받고자 하는 태도를 뛰어 넘어, 불만은 없지만 독립은 필요하다는 방식의 사고를 하는 조선인들이 확인된다. 이들은 우선 독립 만세를 외친 이후에 감옥에서 독립의 의미를 깨닫기도 하였다. 3.1운동의 의미는 행위 이후에 사후적으로 의미가 부여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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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간행된 한국학 분야 영문학술지의 연구 동향 분석 (Research Trends in English-Language Journals of Korean Studies Published in Korea)

  • 김민정;이혜은
    • 한국비블리아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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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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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5-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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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본 연구는 국내에서 간행된 한국학 분야 영문학술지의 연구 동향을 분석하기 위해 수행되었다. 연구의 대상은 A&HCI 및 SCOPUS에 등재된 한국학 분야 영문학술지 4종으로, Korea Journal 768편, The Review of Korean Studies 466편, Seoul Journal of Korean Studies 285편, Acta Koreana 321편 등 총 1,840편을 선정하였다. 이를 대상으로 내용 분석, 저자 분석, 저자 키워드 빈도분석, 토픽모델링을 수행하였다. 연구의 결과 한국학 연구는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체육학 순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세 영역 모두 2000년 이후 출판 논문의 수와 범위가 크게 성장하였다. 연구의 대상 시기는 현대, 조선 후기, 근대 일제강점기 순이었다. 논문 저자의 소속 기관은 국내 소속 기관의 저자가 73.34%였으나, 국외 소속 기관 저자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저자 키워드는 'Korea'(41번), 'Buddhism'(20번), 'Koreanwar'(18번) 'Joseon'(18번) 등이 상위 키워드로 도출되었다. 토픽모델링에서는 '한국 문화, 문화 전파 현상', '한국 현대 정치사', '한국 사회 민주화 과정', '일제강점기 시대상', '한국 고유 종교철학', '한국 고대사' 등 총 6가지의 토픽이 확인되었다. 이 연구를 통하여 최근의 국제적인 한국학 학술 커뮤니티의 관심사와 연구영역을 파악할 수 있었다.

베트남전쟁 메모리얼에 나타난 기념문화 (A Study on Commemoration Culture of Vietnam War Memorials in Vietnam)

  • 이상석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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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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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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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베트남에 있는 베트남전쟁 메모리얼을 대상으로 메모리얼의 유형적 특성, 설계개념 및 내러티브, 입지 및 공간적 특성, 도입요소의 특성, 조경디테일에 나타난 표현 내용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하여 베트남전쟁 메모리얼에 나타난 기념문화를 분석하였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오랜 전쟁으로 인해 베트남전쟁 메모리얼은 군인묘지, 전적지, 전쟁박물관, 비극적 장소, 평화공원 등 10가지 유형으로 다양하게 나타났으며, 이중에서 전통적 양식에 근거한 군인묘지, 장소성을 강조한 전적지와 비극적 장소, 전쟁 승리와 잔혹함을 표현한 전쟁박물관, 평화공원이 특징적인 유형으로 나다났다. 2. 메모리얼에 나타난 주요한 설계개념 및 내러티브는 희생자 추모, 국가에 헌신, 전쟁승리와 저항, 장소적 기념성으로 나타났으며, 국제적인 민간단체의 협력에 의해 만들어진 미라이 평화공원(My Lai Peace Park) 및 한-베 평화공원(Han-Viet Hoa Binh Cong Vien)에서 비극적 사건을 극복하고 평화를 도모하는 개념을 적용하였다. 3. 메모리얼은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 DMZ) 및 전쟁 루트였던 호치민 트레일(Ho Chi Minh Trail), 그리고 베트남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주요한 도로인 A1 국도 주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밖에 하노이 및 호치민 등 도시에 전쟁박물관 및 모뉴멘트가 조성되었다. 묘지 및 추모 메모리얼에서는 문과 기념탑(또는 제단)을 연결하는 축을 중심으로, 좌우에 묘역이 배치되는 전통적 공간체계를 따랐으며, 전적지 및 비극적 장소에서는 장소성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설계를 통한 특정적인 공간 형태보다는 상징적 요소를 도입하여 기념성을 구현하였다. 4. 기념조각 및 기념탑은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의 대표적 양식으로 전쟁승리 및 저항정선을 표현하기 위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고, 포획한 무기를 전시하고 박물관에 사진 및 모형 등 자료를 전시하여 전쟁의 긴장감과 리얼리티를 보여주고 있으며, 유교 및 불교 등 전통문화에 근거한 상징요소를 도입하여 추모감을 높였다. 5. 기념조각이나 기념벽에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이용한 사실적 표현을 강조하였다. 또한 상징적 문구로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TO-QUOC-GHI-CONG 토국기공(士-國-記-功)'에서 전사자의 업적과 국가적 관심을 나타냈으며, 이와 반대로'Quagmire'는 미군 참전용사들이 베트남에서 겪은 혼란스럽고 어려운 전투 상황과 베트남전쟁에 대한 미국사회의 혼돈을 묘사하는 정치사회적인 메타포(metaphor)로서 사용되었다. 베트남전쟁 메모리얼에는 민족주의, 애국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등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복합되어 있고, 유교 불교 도교 음양오행사상이 잘 나타났다. 한편, 유교적 전통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전쟁에서 영웅적 여성의 모습을 강조하였으며, 일부 메모리얼에서 베트남전쟁에 대한 국내 외적 갈등이 내포되었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하여 향후 미국에 있는 베트남전쟁 메모리얼의 설계특성을 연구하여 전쟁에 대한 인식 및 기념문화적 특성에 대한 비교연구가 필요하다.

길상(吉祥)을 상징하는 수복(壽福) 중심의 전통적인 디자인 콘텐츠 개발에 대한 방향성 연구 - 문화상품디자인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Development of the Traditional Design Content in health and longevity based on the Lucky Signs)

  • 정수연;홍동식
    •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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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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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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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한국은 6.25, 일제식민통치 및 남북분단, 군사독재 정치로 인해 정체성을 형성한 독자적 국가 이미지를 창출함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현대에는 각종 행사와 K-POP등 한류열풍을 일으키며 한국의 정체성을 찾고 전파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한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이미지와 문화상품들이 여전히 부재이기에, 고유문화와 관련된 디자인 콘텐츠 개발 및 전문적인 문화상품 디자인 개발이 필요하다. 프랑스, 일본 등 디자인 강국들은 국가적 디자인 정책 사업에 자국의 전통문화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디자인 사업에 집중하는 내용이 국가적 핵심 디자인사업이다. 한국의 전통 콘텐츠도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이미지 디자인 개발 및 연구가 필요하다. 본 연구에서는 한국의 대표적인 길상문화인 오복(五福) 중에서 옛사람과 현대인에 이르기까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염원하는 수복강녕(壽福康寧) 즉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과 관련된 옛사람들의 예술품을 연구하여 이를 통해 문화상품 디자인 적용 및 디자인 콘텐츠의 활용으로 발전시켜 현대의 '100세시대' 라는 트렌드에 맞는 한국의 주체적인 디자인 상품과 이미지를 제작함에 있어 다양성과 방향성을 제시함에 고찰해보고자 한다. 한국의 전통예술품에 나타나는 길상문화 중에서 대표적인 수복강녕의 이미지를 국립민속박물관의 수복(壽福) 관련 특별전에 근거한 이미지들을 중심으로 연구하여, 주요하게 사용된 특징과 의미를 발견하고, 반복되는 패턴 및 문양콘텐츠를 연구하여, 현대적 문화상품디자인에 적용되고 있는 디자인 사례를 조사하여 분석한다. 또한 수복과 관련된 디자인 콘텐츠를 통해 한계점을 알고 활용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첫째, 문화상품은 디자인 상품 개발 부족, 홍보처와 판매처 부족,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부족이라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국가적 차원의 정책적 지원과 의식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둘째, 시장의 요구에 맞는 가격의 합리화가 필요하다. 셋째, 실용성을 갖춘 문구류와 생활용품 위주로 전통적 디자인을 활용 및 보급시켜야 문화상품 디자인과 전통관련 콘텐츠가 더욱 쉽게 정착화 되고 보급화 될 수 있다. 넷째, 한국문화사상과 미의식 연구가 바탕이 된 다양한 한국적 이미지의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 조형적 이미지만 개발할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들의 한국적 문화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다섯째, 전통적 제작방식과 소재도 현대에 존중받아야 하나, 전통을 소재로 현대적 제작방식의 제품들이 경제성과 내구성도 함께 갖추며 다양하게 개발되어야 한다.

≪난중일기≫에서 본 이순신의 꿈과 인격의 몇 가지 측면: 분석심리학적 입장에서 (Dreams of Admiral Yi Sun-sin (1545-1598) in Nanjung Ilgi (Diary in War Time) and Some Aspects of His Personality: From Jungian Viewpoint)

  • 이부영
    • 심성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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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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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9-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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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이순신 ≪난중일기≫를 중심으로 이순신의 인격의 몇 가지 의식적 측면을 살펴보고 이순신의 꿈을 분석심리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무의식의 목적의미를 추론하고자 하였다. 그의 인간성은 알려진 바와 같이 충, 효를 철저하게 실천했고 나라를 위해 헌신한 영웅의 상과 일치한다. ≪난중일기≫에는 그의 강직함과 함께 매우 인간적인 감성, 오해와 정치적 박해를 겪어야하는 말할 수 없는 고통, 절망과 고독, 육친을 잃은 통곡이 숨김없이 묘사되고 있다. 일기쓰기와 이순신의 '아니마'의 또 다른 표현인 달밤의 시, 피리와 거문고 소리, 그리고 또한 불가해한 꿈을 보고 점을 쳐서 미래를 알아봄으로써 그는 그의 고독을 스스로 치유했다. 미래의 영웅을 키우고 이끌어준 어머니의 위대한 역할과 융이 말하는 모성콤플렉스와의 관계를 살펴보았고, 이순신이 평생 괴로워한 '흉인', 원균이 이순신의 '그림자'로서 이순신이 의식화해야 했던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었다고 추정했다. 이순신의 죽음을 둘러싼 추측은 근거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난중일기≫에 기술된 이순신의 꿈 중 꿈의 내용이 조금이라도 기술된 꿈 32개와 이순신의 조카 이분(李芬)이 남긴 ≪이충무공행록≫에 수록된 꿈 3개, 총 35개를 살피고 특히 원형적 꿈을 분석심리학적 입장에서 해석하였다. 그 결과 첫째로 받은 인상은 꿈이 이순신에게 '신격에 의해 선택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되풀이 알려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순신은 이를 바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한 태도 때문에 오히려 자아의 팽창에 빠지지 않았다. 동시성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꿈과 이에 대한 이순신의 태도를 소개했다. 건강을 해치거나 편견에 빠질 위험을 경고하는 꿈도 있었고 '아니마'상, '자기'의 상징, 창조적 변환의 상징도 꿈에 나타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임을 시사하는 꿈이 있었다. 그는 이를 몰랐거나 알았더라도 그런 생각에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현세적 왕보다 더 위대한 호국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항상 천명(天命)을 살폈다. 그리고 천명은 그를 영웅의 길로 인도하면서 영웅신화에 불가결한 고행의 시련을 주었다. 박해자와 위로하는 자가 함께 그의 길을 인도했다. 그의 어머니, 원균, 선조, 그리고 영의정, 유성용까지 모두 이순신 영웅신화를 구체화하는데 기여했다. 이순신은 죽고 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