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경기도 지역 석탑의 건립 현황과 양식 분석을 통해 경기도 지역 석탑이 갖는 특징과 의의를 밝히기 위한 것이다. 경기도 지역에 불교가 유입된 이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불상, 석탑, 승탑, 마애불 등 다수의 불교 조형물이 조성되었으며, 이 가운데 불상과 더불어 신앙적인 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불탑이다. 이후 고려~조선을 거치는 동안 경기도 지역에도 많은 사찰이 건립되었으며 그에 따른 석탑 건립도 성행하였다. 본 논문은 경기도 지역 내 지정된 석탑을 기본으로 48기의 석탑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분포 현황을 보면 한강을 기준으로 경기 북부보다는 남부에 집중 건립되었는데, 중심이 되는 지역은 안성, 이천, 용인, 여주 등이다. 이는 지역적 특수성도 기인하지만, 북부에는 석탑을 건립하는 대형 불사가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시대별 특징을 보면 통일신라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석탑이 남아 있어 석탑이 꾸준히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주로 고려시대 석탑이 집중 건립되었는데, 고려 전기에 남부 지역에서 활발히 건립되었으며, 고려 후기에는 경기도 전역에 걸쳐 석탑이 건립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한양과 가까운 지역 및 왕실과 관련이 깊은 사찰들에 석탑이 건립되어 당시 시대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다. 석탑은 지역적 특수성, 즉 교통의 요지인 곳에 주로 건립되었는데 안성, 이천, 용인, 여주 등 전략적 요충지로서 주목되는 지역에 불사가 성행하였고 그로 인해 석탑 건립이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술사적 의의를 살펴본 결과, 성주사지 석탑의 영향을 받아 어비리 삼층석탑에서 별석 초층탑신받침이 확인되는 점, 고려시대 석탑 중 백제계 석탑은 확인되지 않고 주로 신라계 석탑과 고려 양식 석탑이 건립되었다는 점, 탑신 결구 방식과 탑신 제작 방식에서 전국적으로도 사례가 많지 않은 특징이 나타난다는 점, 마지막으로 석탑 장엄조식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The history of paper folding had continued before that the paper manufacturing technique was spread in the 3rd century and it was used for witchcrafts and rituals. Fold means as was used with the word Cheop and Jeopji.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the conical hat with fabric spread as customs, then it was made of the paper that led the popularization of paper folding form the early Joseon Dynasty. Paper crafts and living things with paper are mostly derived from fabrics except the paper written for saint's name related God. In the period of the tribe nation, witchcrafts and rituals brought to Japan via the Korean Peninsula, as a result Kami which means God in Japanese that becomes the paper. The first folding fan was made to develop from the fan, Baekseopsun in the end of Goryeo Dynasty. It was an outstanding application of paper folding crafts. Since the early Joseon Dynasty, paper flower folding has considered as the virtue of savings and has developed one of the Korean traditional paper arts. Paper folding has also developed in the practical uses like the other Korean paper arts but paper folding that was developed as seasonal customs, playing or religious purpose showed a different trend from Korean paper arts.
선생안은 인명부로써 관원의 성명 부임일 체직일 내직 거직 본관 자 과거 급제 여부까지 다양한 정보를 수록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조선시대 인사 관련 자료에서는 살펴볼 수 없는 지방 수령과 중인들의 관직생활에 대한 선행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조선시대 선생안의 현황과 분류조차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이에 따라 본고는 조선시대 선생안의 현황과 분류 그리고 선생안 자료의 자료적 특징에 대해서 밝히고자 한다. 현재까지 전하고 있는 조선시대 선생안은 176종이다. 이 선생안들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47건), 서울대학교 규장각(80건), 국립중앙도서관(24건), 기타 소장처(25건)에 소장되어 있다. 장서각에는 왕실관련 선생안이, 규장각에는 중앙관청 관련 선생안이, 국립중앙도서관과 기타 소장처에는 지방관청 관련 선생안이 소장되어 있다. 다만, 본고는 접근 가능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선생안 47건에 대해서 중심으로 그 내용을 검토하였다. 앞서 밝힌바와 같이 장서각 소장 선생안은 대체로 왕실과 관련된 선생안이다. 이를 분류해보면 중앙관청 선생안 18건, 지방관청 선생안 5건, 왕실관련 선생안 24건이다. 이를 다시 내용으로 분류해보면, 의례 및 외교 관련 관청 선생안 6건, 왕실 관리 관청 선생안 12건, 지방 관청 선생안 5건, 혼전 능원 선생안 14건, 왕실 교육 선생안 10건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선생안에 수록된 성명 본관 자 과거 급제 여부 제수일 부임일 체차일 내직 거직 등의 내용을 검토한 결과는 다음의 여섯 가지 특징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수록 인원에 대한 기본적인 인적 사항을 알 수 있다. 둘째, 각 관청 및 관직의 재직기간과 승직 및 체직 사유를 알 수 있다. 셋째, 관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넷째, 내직과 거직을 통해 조선시대 인사행정 시스템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 다섯째, 각 관청별로 특별히 중요한 날을 알 수 있다. 여섯째, 포폄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법전에 기록된 내용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조선시대 현실의 모습이며, 이를 통해 조선시대 인사행정 시스템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다. 다만, 정밀한 검토를 하기 위해서는 현재까지 전하는 선생안 176종에 대한 DB화 작업이 필요하며, 이후 기존에 구축된 방목 족보 등의 자료와 연계하여 데이터를 분석해나간다면 조선시대 인사행정 시스템을 알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빈전(殯殿), 진전(眞殿), 산릉(山陵) 등 다른 상장례 공간에 비해 비교적 적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혼전공간(魂殿空間)을 대상으로, 혼전공간을 구성함에 있어서 어떤 요소들이 영향을 주었고, 내부의 구성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왔는지에 관한 분석을 통해 혼전공간의 위치관계 및 궁궐별 구성을 분석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조선시대 의례 중 흉례에 있어서 혼전(魂殿)은 사상적, 종교적인 면뿐만 아니라 기능적이고 건축적인 특성도 함께 지니고 있다. "국조오례의", "혼전도감의궤", "조선왕조실록" 등을 분석하여, 국상 시 사용되는 혼전를 중심으로 혼전과 주변 공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들을 정리하면서, 각각의 궁궐에서 혼전의 위치가 어떠한 상징성을 갖는지에 관한 의문점을 풀고 궁궐별 혼전공간이 규칙화된 특징이 존재하는지 비교하였다. 본 연구를 통하여 조선 초기에는 경복궁 자선당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로 갈수록 창덕궁 선정전은 주로 왕이 이용하고, 창경궁 문정전은 주로 왕후가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혼전을 선정함에 있어 정치적 공간이 필요해 편전의 사용을 꺼린 기록들과 조선후기로 가면서 조선 초기 편전공간으로 사용되었고 혼전으로도 사용되었던 공간들이 용도의 변화가 생기며 다른 곳으로 편전(便殿)을 이동한 분석들을 통해 편전이 아닌 다른 곳을 혼전으로 사용하려고 했음을 분석하였다. 조선시대 각 궁궐에는 "국조오례의"에 따라 혼전의 주요 공간이 구성되었고, 혼전의 주변전각들은 궁궐의 특성에 맞게 배치되어 일정한 패턴의 공간이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영산재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래 한국불교의례를 대표하는 독보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근년에 수륙재에 대한 활발한 연구로 영산재보다 수륙재가 역사적인 유래와 규모가 더 광대하고 국가주도로 설행되었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영산재를 중심으로 다양한 의례가 있었던 것으로 보았던 관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본고에서는 영산재의 한국적 기원과 전개과정을 문헌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영산재의 현재적 의미를 고찰해 보고자 하였다. 영산재는 조선초에 간행된 "진언권공"(1496)에서는 '작법절차'라는 항목으로 나타난다. 이 절차는 조선중기 인조 12년(1634)에 간행된 "영산대회작법절차"에도 나타난다. 여기에는 '영산대회작법절차'로 명시되어 있다. 이것은 조선후기 "오종범음집"(1661)이나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1721)에도 영산작법, 영산대회작법으로 명시되고 있다. 근대기 <독립신문>의 기사에는 영산제로, "석문의범"(1935)에는 영산재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조선초와 그 이후의 것들에서 달라진 점은 창혼(唱魂)이 더해진다는 것이다. 이로써 조선초의 영산회가 부처님의 설법장면 등 가르침을 의례로 외형화하는 교화적인 내용이 중심이었다면, 중기 이후에는 창혼이 더해지면서 추천(追薦)의 개념이 추가되어 불교 교화와 망혼의 천도가 함께 설행되었다.
전라북도 남원시에 위치한 광한루원은 조선시대 관아건축물인 광한루를 중심으로 주변에 조성된 정원과 함께 조선시대 대표적인 관아정원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소이다. 그러나 광한루원은 현재 조선시대 관아정원으로서의 특성과 이미지보다는 지역문화인 춘향전의 배경 장소로서의 인식이 높은데, 이는 춘향전의 한문본인 "광한루기"에 광한루가 춘향전의 배경장소로서 나타났기 때문이며, 1930년대 이후 춘향사당의 건립과 춘향제가 열리면서, 조선시대 관아건축물로서의 인식보다는 일제강점기 시절 민족의식 고취와 춘향의 절개를 추모하는 장소로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관아건축물로서의 인식보다는 춘향전의 배경장소로서의 인식이 높아지며 관아정원으로서 보전, 관리되기 보다는 춘향전의 배경장소로서 민가주택정원이나 지역문화 행사장으로서 관리되면서 무분별한 수목의 식재와 구조물 조성, 공간구성에 의해 관아정원으로서의 특성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따라서 광한루원을 조선시대 관아정원으로서 보전, 관리해 가기 위해서는, 현재 광한루원에 조성된 수목, 구조물, 공간구성 등을 조사하고, 이를 문헌분석을 통해 파악된 광한루원의 원형과 비교, 분석하여, 광한루를 중심으로 조성된 관아정원 지역과 춘향전의 배경장소를 구분하여 정비, 관리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광한루원은 관아정원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며, 전통공간인 광한루를 중심으로 펼쳐진 춘향전은 전통의 맥을 잇는 지역문화로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This study is about 'asymmetry triangle-Mu' Jeoksam and Hansam in the early days of Joseon Dynasty. A study was done regarding the records of Jeoksam and Hansam in literature, the present state of the excavated 'asymmetry triangle-Mu' clothing Jeoksam and Hansam, and finally a deduction of the reason for the appearance of the 'asymmetry triangle-Mu' clothing Jeoksam and Hansam. The width of front length of 'asymmetry triangle-Mu' clothing in the early days of Joseon Dynasty is 29.5~35 cm and the width of one breath of the sleeve is 29.5~35 cm. The width of 'asymmetry triangle-Mu' is 9.5~16 cm and it is relatively big. Comparing to the width of one breath of the sleeve, it is almost 1:2.2~3.6 ratio. Therefore, when the sleeve was cut, the Mu was linked in order to save fabric the gusset of sleeve had to be folded and turned, and finally it became asymmetric. As a result of the above consideration, since the width of upper garments of $16{\sim}17^{th}$ century was big, the wearing of short tops of Jeoksam or Hansam without side vent as a small 'triangle-Mu' was uncomfortable. Because of this reason, the size had no option but to become bigger. So, during the $16^{th}$ and $17^{th}$ century, a period where mass production of fabric was difficult, the 'asymmetry triangle-Mu' type was considered to be a reasonable cutting method. After the middle of $17^{th}$ century, it can be estimated that 'asymmetry triangle-Mu' clothing disappeared according to the narrow aspect of clothing type.
This article studied women's headdresses that appeared in the paintings of Joseon Dynasty. This examined the shapes of women's headdresses painted in genre paintings, record paintings and nectar ritual paintings from Joseon Dynasty and compared them to literatures and relics in order to analyze their types and characteristics. Headdress can be categorized into three types: (1) square cloth worn on the top of the head; (2) a kind of small cap; (3) Cloth that completely covers the head. The first type of headdress resembles the shape of Garima. In the early period of Joseon Dynasty, it was worn not only by Gisaeng, but also by both upper and lower class women. The second type of headdress includes a cap made by connecting several cloths, round cap, and cone-shaped cap. These two types are worn on top of the head. However, sometimes these were worn between the head and the chignon to fix the chignon. Also, these were used as hair accessories for decorative purposes. In particular, old women wore these headdresses and braided their white hair around them to fix the chignon. This way, the headdress not only kept the head warm, but also hid the old women's scanty hair. Headdress was usually made of black fabric and it was a simple hair accessory that replaced the wig. The third type of headdress was widely worn among lower class women. The cloth completely covered the head so that the hair would not fall when working. It also provided protection from cold and hot weather. According to paintings, there were many ways of wearing the cloth around the head.
The present research aims to consider the real remains of 2 suits of Kasaya owned by the Hwaeom Temple(華嚴寺) based on research results about Kasaya in the meanwhile. The present research on 2 suits of remains which are Royal gifts given to monk soldiers in case of a national crisis of the Joseon Dynasty has a big meaning in examining characteristics of Kasaya and grasping characteristics and structure of the 17th century's Kasaya of the Joseon Dynasty through dense survey and analysis according to components. If examining characteristics of Kasaya, the Kasaya of the Great Monk Seo San(西山) is composed on the basis of an initial form of Sun and Moon Light Patch's generation and the Kasaya of the Great Monk Byeok Am(碧巖) has a form that is separately attached through production of embroidery patch as a process of being settled down. If examining what surrounds gold thread in the girth and expression of Sumeru and Chaeunmun(彩雲紋), the composition of a form similar to an insignia badge, so because this is a Royal gift, this can be estimated as being analyzed in a Buddhism aspect by devising a design from the insignia badge at the time, with a meaning like an official uniform given to a monk. Although the insignia badge is a square, it seems that the Sun and Moon Light Patch is made as a rectangular form corresponding to the structure of Kasaya. In addition, it is thought that what the Samjoko(三足烏) idea which is a symbol of the Sun based on Buddhism and Taoism is used together with Yijoko(二足烏) even in expression of the Sun and Moon Light Patch in the Joseon Dynasty which was a Confucian country has a relationship with what a bird was expressed in the insignia badge of winged animals.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not only to trace the examples of 'Chesanja' from the texts and artifacts, but also to restore the terminology of the lost traditional Joseon embroidery technique. 'Chesanja' came on Mongolia and Yuan period affected embroidery techniques of the neighboring countries. Therefore, this study will focus on investigate the process of changing 'Chesanja' into Guya(Goya) through ${\ll}Barktonsa{\gg}$ the foreign language transcriptions of the Chosun dynasty, and examine the generation, fashion, and destruction of this technique with the social technical usage. Around the 16th century of the Joseon Dynasty, 'Chesanja' had been actively used as a decorative techniques to dairy products as well as a Buddhist memorial goods embroidered. Accor- dingly, in the "Beonnyeok-Baktongsa"(1515) appeared together written records with 'Chesanja' 'Gwiyeo[귀여]' the Eonhae(Korean annotation) only had emerged in the Joseon Dynasty. It was still a technique to decorate the edges of royal pillow in the mid-17th century. And we have checked from the text "Baktongsaeonhae"(1677) also. Despite this by the mid-18th century, the term in "Baktongsa-sinseok"(1765) and "Baktongsa-sinseok-eonhae"(1765) had disappeared. This phenomenon suggests the possibility that the production and utilization of 'Chesanja' required the sophisticated process for the ruling class had been declined with the custom of embroidery based on the gradation by colorful threads as the preferred technique. Therefore, 'Chesanja' and 'Gwiyeo'[귀여] disappeared from the records but they can be found in the artifacts of the royal family of 19th century. So Chesanja is calls Guya(Goya) and exists as unique technic only in the royal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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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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