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모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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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지연구(體育之硏究)」속 청년 모택동(毛泽东) 체육사상에 관하여 (A Study on the Sports Ideas of Mao Ze Dong, a young man in the "Ti-Yu zhi Yan-Jiu")

  • 신의연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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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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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7-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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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연구에서는 실제 청년 모택동(毛泽东)이 1917년 『신청년(新靑年)』잡지에 직접 작성 투고한 「체육지연구(體育之硏究)」라는 문장을 직접 해석하고 분석하여, 이후 그의 이 체육에 대한 사유가 이후 그의 체육사상 형성과 현대 중국의 체육 발전에 미친 직간접적 영향이 무엇이었는지를 정리하고자 하였다. 구체적 연구 방법으로는 원문 「체육지연구(體育之硏究)」중 청년모택동의 특이한 체육에 대한 생각이 담겨있는 서론과 본론 2조항과 6조항을 주로 인용 발췌하였다. 그는 이 문장에서 첫째, 그는 체육교육의 목적이 구국에 있음을 밝히고 당시 체육교육의 폐해를 일부 언급하며, 실질적인 체육교육이 되어야 함을 이야기하였다. 두 번째, 그는 심신일원론적인 체육사상을 제시하였다. 세 번째, 그의 체육사상에 따른 실천은 예외적으로 소박하고 실질적이었다. 대표적으로 「체육지연구(體育之硏究)」에서 제시하는 모택동이 고안한 6가지 체력운동실천방법이 중요한 예시가 된다. 결론적으로 이 문장에서 모택동(毛泽东)은 체육을 통해 덕육과 지육의 부족한 부분을 극복할 수 있으며, 적극적인 체육활동은 개인의 자아실현을 앞당기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모택동(毛泽东)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후 근 30년간 중국 최고 통치자로서 본인이 직접 '장강 수영' 등 체육활동의 적극적인 실천을 강조하였고, 중국 전역에 체육교육과 신체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체육사상은 1960년대 이후 중국의 엘리트 체육이 급속히 성장하고 중국 전역에 사회체육의 기초가 다져지는 기반이 되었다.

개혁개방 이전, 중국 대외원조의 성격에 대한고찰 -마오쩌둥의 역할을 중심으로

  • 최승현
    • 중국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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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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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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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中国对外援助的历史可以追溯到中华人民共和国成立初期. 从50年代初對越南的援助开始, 其范围逐渐扩散到了整个第三世界. 它规模也一直呈增加趋势, 直到70年代初已超越了世界最富有国家对外援助的规模. 对此, 相关研究通过"国家利益"的分析框架去硏究中国对外援助的动机及背景, 即, 建國初期的中國之所以积极推动对外援助, 是因为要争取安保及外交利益的. 笔者怀疑通过"国家利益"的角度理解及評價中国之对外援助是否妥当, 于是考察了中国的对外援助与国家利益之间的相关关系. 结果, "改革开放"前的中国之对外援助與其說是为"国家利益"而提供的, 還不如說是基于"无产阶级国际主义"的盲目实践, 同是为确立毛泽东绝对权威而采用的极端手段.

모택동(毛澤東)의 「체육지연구(體育之硏究)」 다시 읽기 (Re-reading "Ti-Yu zhi Yan-Jiu", by Mao Ze Dong)

  • 신의연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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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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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3-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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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체육지연구(體育之硏究)」를 통해 살펴본 모택동의 주장은 과거 중국의 전통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매우 과감하고 참신하게 체육이 왜 필요한지, 왜 당시의 지식인들이 운동을 하지 않는지는 촌철살인방식으로 정확한 지적을 하고 있는 저술이다. 그리고 앞의 저술이 공허한 이론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자신이 직접 창안한 '육단운동'을 소개하며, 실생활에서 구체적인 실천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체육지연구(體育之硏究)」속 모택동의 체육사상은 단순한 건강증진이 아닌, 5.4 신문화운동과 궤적을 같이하며 강건한 신체를 바탕으로 한 나라과 민족을 위한 구국사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체육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한 장래에 전 중국을 영도할 지도자 모택동의 대의적 구상과 연결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과 과학기술

  •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 과학과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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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8호통권3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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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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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통치자의 과학기술 리더십] 정책조정자형 과학기술 리더십 전환시급, 체계적 보좌기초 목표달성체제 구축해야/ [국내 역대대통령의 과학기술 정책] 박정희대통령 과학기술 초석놓고 전두환 이어 김대중대통령 변화기 진입/[외국 역대대통치자의 과학기술 정책/미국] 역대 대통령 '과학기술은 국력' 인식, 레이건은 '스타워즈'로 소련붕괴 불러와/[외국 역대대통치자의 과학기술 정책/일본] 역대 총리 6명이 과학기술청 장관 출신, '나카소네수상' 원자력 선진국 기틀 마련/[외국 역대대통치자의 과학기술 정책/중국]'모택동' 국방기술 개발에 총력 핵탄 완성, '등소평' 과학기술은 제일의 생산력 강조/[외국 역대대통치자의 과학기술 정책/영ㆍ독ㆍ불ㆍ러]프랑스 - 과학기술 선진국 나폴레옹과 드골 초석, 러시아 - 레닌 이후 모든 통치자 科技 위해 정책 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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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농촌합작체계의 형성과 전개(1919-1958) -서구 공상적 사회주의와 협동조합사상의 영향을 중심으로-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China's Rural Cooperative System(1919-1958): With Influences of Western's Utopian Socialism and Cooperative Ideas)

  • 박경철
    • 농촌지도와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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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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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11-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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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This study is mainly to investigate the influences of both Western's utopian socialism and cooperatives ideas on the process of China's rural cooperation from 1919(the occurrence of 5.4 movement) to 1958(the completion of People's commune). To accomplish this, first, we will discuss that how these two ideas emerged as an alternative to Western capitalism in the before/early 20th century were introduced into China and how these ideas effected on the process of the China's Communist Revolution. Then, we will review the process of China's rural cooperation during the 1950s' new socialist nation-building period since the foundation of New China(1949), the sharp debates about rural cooperation in the process of its realization, and the reasons of radically promoting rural cooperation in the late 1950s. Finally, through these debates and experiences regarding rural cooperation in rural China during 1919-1958, any implications in solving rural cooperation problems of contemporary China facing difficulties will be provided.

연안(延安)의 문화운동론(文化運動論)과 지식인(知識人) 연구 - 연안(延安) 전기(前期)의 문예계(文藝界)를 중심으로 (Cultural movement and Intellectuals in Yan'an: focused on the Literary world of the former period of Yan'an)

  • 김은희
    • 중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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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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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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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이 글에서는 광의의 시기구분에 따른 延安時期를 문화운동론의 차이에 근거하여 '延安 前 期(1935.10-1941년)'와 '延安 後期(1942년-1948.3)'로 구분하였다. 이 글에서는 延安 前期의 사회현상으로서 지식인의 대거 유입, 이들의 문예 및 문화 관련 기구와 단체로의 조직화, 공산당중앙의 문화정책과 문화운동론, 그리고 延安 지식인의 토론 및 논쟁 등의 양상을 폭넓게 살펴보았다. 이 글은 특별히 延安 前期의 문화지형과 문화심리에 드러난 다양성과 개방성에 주목하였으며, 延安의 지식인집단과 문예계가 자율성과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고찰하였다.

계몽과 현대성 - 중국 신좌파의 현실인식과 지향- (Enlightenment and Modernity: Chinese New-left's Understanding the realities of society and moving toward)

  • 박영미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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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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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47-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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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1990년대 중국의 지식인들은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고 자본의 지배가 심화되는 중국 사회의 변화에 직면했고 이를 설명해야 했다. 신좌파는 중국에서 자본주의적 발전이 가속화되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했고, 신자유주의와의 논쟁은 1990년대 사상계의 큰 쟁점이 되었다. 이들은 '개혁'은 자유방임적이며 부가 집중되는 자본주의가 아닌 정치와 경제의 민주의 확대를 통해 사회분배의 공정성을 보장하여 빈부의 격차가 확대되는 것을 피해야 하는 것이며, '개방'은 자본의 논리를 무조건 받아들여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계로 편입되는 것이 아닌 차이와 다원성의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것임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 서구 중심의 '계몽'과 '현대성'을 재검토하고, 모택동 사회주의를 재평가하며, 이를 기반으로 개혁개방 이후의 사회주의를 비판한다. 신좌파는 특히 계몽과 현대성이 어떻게 인식되었고,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지를 깊이 있게 논의한다. 지금까지 중국에서의 계몽이 서구화와 동일하게 생각되었음을 반성하고, 현대성에 내재한 모순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중국의 역사 속에 존재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서양과 중국, 전통과 현대의 낡은 이분법을 넘어서 새로운 전망과 대안을 모색한다.

중국 현대미술에서의 판화 매체 확장을 일으킨 쉬빙(徐冰) 작품 연구 (A Study on Xu Bing's artworks Contributed to expansion of printmaking in Contemporary Chinese Art)

  • 송대섭;조예인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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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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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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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논문에서는 중국 문화대혁명 이후 마오쩌둥(모택동(毛澤東), 1893-1976)의 공산당 통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정치적, 사회적인 배경과 서구 모더니즘의 급속한 유입과 이를 통한 중국 내 전위적인 미술계 움직임 등을 살펴보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중국 판화 매체 확장에 기여한 쉬빙((徐冰), 1955~)의 작품을 중심으로 다루어 보고자 했다. 특히 1985년을 기점으로 미술계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85신조미술운동(85新潮美術運動)'과 1989년 베이징에서 개최한 <<중국현대예술전(中國現代藝術展)>>은 기존의 중국 미술로부터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이슈이다. 역사적인 변혁과 새로움을 지향하고자 했던 '85신조미술운동' 작가들은 자신들만의 민간 전시회를 주도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펼쳤다. 이러한 미술계 흐름 속에 문화대혁명 이후, 국가미술관인 베이징 중국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회를 개최하여 행위예술, 설치미술, 회화, 조각 등 다양한 시각예술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였지만, 대담한 행위예술과 노골적인 설치작업 등으로 정부로부터 두 차례 전시 중단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으며, 일부 작가들은 행위예술을 펼치다 경찰서에 연행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가운데 판화를 전공한 쉬빙은 초반에 그가 관심을 가졌던 판화가 갖고 있는 제작과정과 반복이라는 특성에 주목한 실험들을 보여주는 작업을 하다가, 1988년 그의 대표작인 <천서(天書)>(1988)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쉬빙은 직접 글자를 고안하고 나무에 새겨 2000여개의 문자를 만들었고, 그것을 단순히 인쇄 책자 형태를 넘어선 설치작품으로 관람객들에게 보여줌으로서 그는 서구의 미술 형식을 취하면서도 '한자'라는 중국적인 내용을 결합한 아방가르드 작가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 다음 해인 <<중국현대예술전>>에서 <천서>가 가혹한 평가를 받고난 후, 쉬빙은 중국에서의 마지막 작업인 <담장을 두드리는 귀신(귀타장(鬼打墻))>(1990)을 1990년에 제작만하고 전시는 하지 못한 채 결국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그 당시 중국 사회는 천안문사태라는 엄청난 소용돌이와 함께 문화대혁명의 소멸과 덩샤오핑(등소평(鄧小平), 1904-1997)의 개혁기를 맞이하며 혼란한 시대를 보내고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쉬빙의 초기 판화작업부터 1991년 미국으로 도미하기 전까지의 작품들을 살펴봄으로써 판화 매체가 지닌 재생산성, 복수성 등의 특성을 활용한 형식적 실험들을 거쳐 어떻게 중국 전통적 요소를 활용하여 시대를 대표하는 아방가르드 작가로 될 수 있었는지를 고찰해보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