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는 주체의 권리 개념이 등장한 근대 서구 사상 이후 철학적으로 주요한 개념이다. 타자에 대한 여러 정의와 논의가 있었다. 본고에서는 '타자'를 정의 짓기보다는 '타자와의 관계 맺기'를 중심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특히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논의를 중심으로 '타자성과 윤리'에 주목하고자 한다. 레비나스는 타자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는데 이는 다문화 사회에 도래한 현 사회에서 소통의 패러다임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다름'에 대하여 경계-짓기보다는 타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공존을 도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때의 '공존'은 중심부로 포섭하여 중심부의 확대를 가져오는 형태가 아니라 탈중심을 통해 서로 연합되는 것이어야 한다. 본고에서는 서사에 재현되는 타자와의 공존의 양상을 분석하여 그 가능성을 밝히고자 한다. 서사란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자 경험을 구성하는 인지적 과정이다. 인간은 서사에 자신을 스스로 투사하고 이해하려 한다. 서사에 나타나는 타자성을 분석하여 타인에 대한 공존의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본고는 기예르모 델 토로의 을 텍스트로 하여 작품 내 캐릭터의 형상화 방식과 관계 맺기의 스토리텔링을 분석함으로써 공존의 가능성과 방향을 제언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불안정한 지지면에서 런지운동과 지면에서 런지운동 후 동적균형운동의 변화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보수훈련군, 밸런스패드훈련군 ,지면훈련군으로 나눠 런지운동을 시행하였다. 그 결과 기능적 팔뻗기검사는 보수훈련군과 지면훈련군에서 유의하게 증가하였으며, Y 균형검사에서는 밸런스패드훈련군에서만 유의하게 증가하였다. 각 군간의 유의한 차이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지면훈련과 불안정한 지지면에서의 런지운동의 차이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런지운동이 균형능력에 영향을 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연구는 우리 나라 내수면 양식 어류중 특히, 백점충으로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 무지개송어(Oncorhynchus mykiss)와 한국산메기(Silurus asotus)에 기생한 백점충을 연구 대상으로 하여 시험관내에서 수온, pH, 염분 및 포르말린이 Tomite 생성에 미치는 영향과 충체 감염기예 관한 실험을 실시하여 본 충의 생물학적 성상을 조사하였다. 실험 수온 $9\sim28^{\circ}C$의 범위에서 수온이 높을수록 Tomite 생성률이 높아져 Tomite 생성은 수온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수온 $26^{\circ}C$ 때 최고의 생성률을 나타내어 이 수온이 본충의 번식에 최적 수온인 것을 확인하였다. 수온별 pH, 염분 및 포르말린 Tomite 생성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실험 PH 6.0~8.1의 변화는 Tomite 생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수온 $10\sim28^{\circ}C$의 조건에서 pH 6.9는 각각의 수온 시험구에서 최고의 Tomite 생성률을 보여주어 최적 pH 조건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수온 $10\sim28^{\circ}C$의 조건에서 염분 농도 9‰ 이상과 포르말린 농도 15ppm 이상의 실험구에서 Tomite가 생성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염분 및 포르말린은 Tomite 생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충체는 염분 및 포르말린의 저수온 시험구에서 폐사 시간이 연장된 결과를 보여 주어 고수온에서 보다는 저수온에서 충체가 염분 및 포르말린에 대하여 내성이 높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연 감염된 무지개송어 유래의 Trophont, Protomont 및 Theront를 무지개송어 치어에 노출시켜 백점충 감염 여부를 확인한 결과, Theront 단계가 감염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 논문에서는, '다윈의 불독' 등 그의 다른 측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학교 과학교육의 개척자로서의 헉슬리 (T.H.Huxley) 생애와 활동을 종합적으로 조망하였다. 의심의 여지없이 헉슬리는 빅토리아 시대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여러 가지의 정부 및 비 정부 조직의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 그리고 연설과 집필에 대한 타고난 능력을 통해서 과학의 진흥과 학교 과학교육의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인물이기도 하였다. 헉슬리는 데본셔 위원회 등 다양한 왕립 조사위원회 활동들에 참여하였으며, 왕립학회 등 여러 곳의 중요한 과학단체의 회장직을 수행하였고, 또한 여러 권의 매우 영향력 있는 책자들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특히 과학교육자로서의 그의 면모를 요약하면, 스스로 30년 이상 생물학과 생리학을 가르쳤던 뛰어난 과학교사였으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각종 교육 개혁 활동들을 주도한 인물이었고, 과학교사교육자 및 과학기예부의 과학시험관 그리고 각급 학교용 과학교재의 집필가로서 다양한 측면에서 학교 과학교육을 개혁하고 그 수준을 높이려고 노력하였다. 과학교육의 개척자로서의 헉슬리의 이러한 역할은 학생의 과학학습 활동에 대해 보다 철저하게 이론적으로 무장한 채 그의 뒤를 이어 등장하였던 암스트롱(H.E.Armstrong)이라는 전문 과학교육자의 활동으로 이어졌다.
본 연구의 일차적 목적은 지난 40년간 일어난 초고속 경제성장의 경험에 유념하면서 한국 여성노동력의 성격변화와 그 대응양식으로서 노동(관련)정책을 해당 정권별(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로 구분하여 살펴보는 것에 있다. 60년대 초반 산업화 도입기부터 역대 정권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여성노동력을 저임금-단순-미숙련-산업인력으로 주변화시켜 왔음을 관련자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60년대 산업화 초기에는 노동집약적 산업에 저임금 산업인력으로 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기예는 저임금을 특징으로 하는 전통적 여성직종에 집중배치되었다. 80년대 들어서는 의류 전자 신발 등의 업종으로부터 집단해고 또는 대량감원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IMF 경제위기 전후 90년대는 비정규진 노동의 확산과 고용불안정 혹은 실업이 한국 여성노동의 현실에 충격을 주어 여전히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놓여있다고 하겠다. 한편 정부 측의 다양한 대응양식으로서 노동(관련) 정책이 제안되고 있으나, 불합리한 노동 현실의 근본적인 대안으로 평가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의 목적은 "만기요람(萬機要覽)" "군정편(軍政篇)" 시예(試藝)를 통하여 훈련도감(訓鍊都監), 금위영(禁衛營), 어영청(御營廳)의 군사들에게 어떠한 단병무예(短兵武藝)가 시행되었는가를 검토하였다. 이에 대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훈련도감(訓鍊都監), 금위영(禁衛營), 어영청(御營廳) 군사들의 단병기예들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실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시행된 대표적인 시예(試藝)로는 중순(中旬)과 관무재(觀武才)였다. 둘째, 중순(中旬)의 특징은 응시자지원 제한규정에서 왜검교전수(倭劍交戰手)가 예도(銳刀)와 협도(挾刀)를 응시할 수 없고, 예도(銳刀)와 협도수(挾刀手)가 왜검교전(倭劍交戰)을 중복해서 응시할 수 없었다. 셋째, 관무재(觀武才)의 특징은 보군(步軍) 별기(別技)로 왜검교전(倭劍交戰), 예도(銳刀), 협도(挾刀), 언월도(偃月刀), 제독검(提督劍), 본국검(本國劍), 기창(旗槍), 등패(?牌), 낭선(狼?), 죽장창(竹長槍), 당파(??), 권법(拳法), 곤봉(棍棒), 목장창(木長槍) 등 14기가 지정되어 시행되었으나 목장창(木長槍)을 제외한 13기는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보이는 무예들이었다. 넷째, 시예(試藝)는 군사들이 자발적으로 평상시에 개인기량을 연마하여 평가하고 자신의 무예실력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우수한 군사들에게 포상을 내리는 좋은 제도였다. 따라서 이 연구를 통해 조선후기 중앙 군영에서 단병무예(短兵武藝)가 갖는 구체적인 실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This paper aims to research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the archival systems in the Primorskii Krai of the Russian Federation. The history of the archives in this region might be divided into the three periods. The first period extended from the territorial acquisition of the Far East to 1938, when the international situation reached the crisis. From then to the end of the Second World War the history of the archives of the Primorskii Krai underwent the second period. The third period has ranged from 1945 to the present day. As the imperialistic countries, including England, Germany and Russia, claimed and conquered the lands in China in the last decade of the nineteenth century, the Russian government was forced to produce a lot of records, which resulted in the establishment of the several archival institutions in the Far East region. Although the Soviet government issued "Decree On the Reorganization and Centralization of Archival Affairs in the Russian Socialist Federated Soviet Republic" in 1918, the political turmoils prevented the Primorskii region from constructing the archival system. However, A. P. Georgievskii and his colleagues made desperate efforts to arrange the archival administration. Thanks to their struggles, the Far Eastern Republic, a buffer state, which existed from April 6, 1920 to November 14, 1922, passed the autonomous regulation, which defined the organization of the committee for the archival administration in the Primorskii region. The Primorskii Krai Archive originated from the committee. As the international situation became aggravated in the East Asia, the Soviet government made a decision to evacuate the records from the Far East region to the western Siberian cities like Tomsk, Omsk and Minusinsk. It was on August 1943 that the Central National Archive of the Far East of RSFSR was established in Tomsk. After the end of the Second World War, the main archival institutions of the Primorskii Krai, that is, the Central National Archive of the Far East of RSFSR and the Primoskii Krai Archive have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archival administration in this region. The archivists have not only prepared the catalogues, but also proceeded the descriptions of the archival collections. Furthermore, the archival institutions of the Primorskii Krai have published a series of archives and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the archival system in the Far East of the Russian Federation. It might be concluded that the archives of the Primorskii Krai, reaching were the products of the desperate efforts which the archivists of this region made from the 19th century to the present day, regardless of the political changes.
이 논문은 허규의 완판창극 <흥보전>(1982)과 <흥보가>(1984)의 창극술과 그 의의를 논한 것이다. 판소리 <흥보가>가 두 편의 완판창극 <흥보가>로 구현되는 과정에서의 창극술과 그 의의를 논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창극술'은 창극의 양식적인 면과 내용적인 면을 통해 어떠한 미적 의식을 드러내는지를 논하는 것으로 연출가가 완판창극을 통해 지향하는 의식에 관한 것이다. 허규의 완판창극 <흥보가> 창극술은 우화적이고 신명나는 놀이의 정서 속에서 '가난과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몸을 파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해학적으로 드러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적인 연극성'과 '한국적인 놀이성'을 융합시킨 창극술을 통해 '형제 간의 우애'라는 주제의식을 넘어서 '가난으로 인한 서러움'이라는, 당대 및 동시대에도 공감할 수 있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킨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흥보의 '나누는 삶'을 통해 한국 전통연희의 '놀이성'을 단순한 기예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생의 삶'을 추구하는 '신명'의 정서로 구현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논문에서는 허규의 '민족극'론이 당대에 드물게 서양 연극술과 전통연희의 무대화라는 융합적인 사유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연출가 의식으로 인해 새로운 주제의식을 만들어내면서 관객과의 공감대를 확장하려는, 즉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창극술'이 구현되었음을 논한 의의가 있다. 완판창극이 단순히 공연시간만이 길어진 형식의 것이 아니라 허규의 '민족극'론을 토대로 한, 융합적인 인식을 토대로 하는 창극술을 지향하고 있음을 밝힌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근대를 맞아 외국의 공연예술이 조선에 소개되었을 때, 조선의 연희자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이를 받아들이고 자국화하기 위해 노력한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일제 강점기에 발행된 여러 자료 속에는 우리 공연예술의 일정 부분을 담당했던 마술 공연과 이를 현재화하기 위해 애썼던 조선인 연희자의 흔적을 다수 찾을 수 있다. 본고에서는 각종 자료 속에 편린처럼 남아있는 조선인 마술사들의 등장을 알리고 그들의 연행양상을 밝히는 것에 일차적인 목적을 두고 있다. 외래의 공연예술 중 마술은 그간 전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공연예술로 소개되었으며, 많은 호기심과 관심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마술의 옛 용어는 환술(幻術) 혹은 환희(幻戱)인데, 우리 공연문화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분야였다.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때 초빙된 일본인 마술단 쇼쿄쿠사이 덴카쓰(松旭齋天勝) 일행은 경성협찬회의 후원과 ≪매일신보≫의 선전으로 마술의 대명사로 등장했다. 이들이 연행하는 마술은 신문물의 상징이면서 대중오락의 전성기를 알리는 예비신호와도 같았다. '마술'을 연행하는 '배우'의 위치는 전통연희 담당자들에 큰 자극이 되기도 했다. 당시엔 마술을 기술(奇術)이라고 불렀는데, 다동기생조합의 기생들이며 무명의 조선인 연희자들이 이 기예를 배워 무대에 서기도 했다. 이후 1920년대 중반이 되면 자기 이름을 걸고 마술단을 조직해 공연에 나선 조선인들이 여럿 등장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러시아 유학 출신의 김문필과 천도교의 후원을 받은 박창순, 김완실 등이 있다. 이들은 조선인 마술사로서 이름을 알렸고 전국 순회 공연에 나서서 조선 관객의 갈채를 받았으나, 극단 운영이 오래가지 못했다는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한편 마술을 일종의 사기수법에 연결시켜 사회문제로 비화되는 사건도 종종 나타난 것이 1920년대이다. 다만 조선인 마술사의 등장이 새로운 공연물에 대해 적극 임하는 조선인 연희자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본고는 19세기 한문장편소설의 하나인 "옥수기"의 남녀결연담에 나타난 재자가인소설의 면모를 고찰하였다. "옥수기"는 남녀 간의 결연을 중심으로 하는 작품으로, 결연담 위주의 서사구조를 취하고 있다. 복수인물의 결연담이 반복되는 구조를 통해 다양한 결연 양상을 보여주며, 결연담을 제외한 여타 사건과 삽화는 결연의 계기가 되기도 하며 보조적 역할을 한다. 작품 초반에 주인공의 부모의 결연담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주인공과 형제들의 결연과 관련된 예언을 배치함으로써 이후의 서사가 결연담 위주로 흘러갈 것임을 암시한다. 결연을 이루는 남성인물들은 문장력을 갖춘 인물들로 풍류적 면모를 지니고 있고, 가인들은 재색을 갖추고 있다. 남성인물들은 편력적으로 보일 정도로 결연에만 관심을 두고 있으며 각각 다수의 여성과 결연을 맺는다. 결연은 중세적 신분 질서를 충실히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처가 되는 인물과 첩이 되는 인물의 형상을 상이하게 설정한 것은 사대부 남성의 위치에서 이상적으로 바라는 처와 첩의 인물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처가 되는 인물들은 절의, 효, 지식, 내조 등이 강조되며 집안의 대소사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반면에 첩이 되는 인물들은 재주와 기예가 강조되며 혼인 후에는 그 역할이 축소된다. 즉, 처는 유교적 교양과 지식을 겸비하고 있으며 남편을 내조하고 가정을 잘 꾸려갈 수 있는 인물로 형상화되어 있고, 첩은 처와의 관계에서 보다 정(情)이 강조되며 함께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인물로 형상화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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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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