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업 현안 및 발전방안 - 친환경 축산이 가야 할 방향

  • 임석호 ((사)한국친환경인증기관협회)
  • Published : 2018.04.01

Abstract

Keywords

친환경 인증은 기계적인 법 적용을 넘어선 전문성의 영역이다!

2017 년 8월에 시작된 계란 살충제 검출 파동의 불똥은 친환경 인증제도로까지 번져나가 수많은 인증 농가의 인증취소, 인증기관의 지정 취소 및 업무정지로 이어졌고, 이는 곧 친환경 인증제도 자체에 대한 심각한 신뢰도 하락의 결과를 가져왔다.

인증기관을 관리·감독하는 정부의 기계적인 법 적용으로 성실하게 인증업무를 수행해온 기관들의 소속 심사원들 생계까지 위협받는 것은 물론 인증기관이 인증한 인증품, 나아가 친환경 인증제도에 대한 신뢰도에 치명적 상처가 생기는 현실을 보며 인증기관의 관계자 중 한 사람으로서 참담함을 느껴야 했다. 1,000여 농가 중 3~4 농가 생산과정 조사 누락으로 3개월 업무 정지, 1,000여 농가 중 1~2 농가의 생산물 검사 누락으로 업무정지 6개월 또는 1,000~2,000여 농가 중 1~2개 농가에 대한 행정처분 시행이 적합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역시 업무 정지 6개월 등 누가 봐도 과도한 처분이 이뤄졌다. 심지어 법을 집행하는 관리·감독 기관의 공무원들조차 현재의 행정처분 기준이 과도한 점이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인증기관에 대한 과도한 규제와 행정처분의 영향은 인증 농가들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인증 농가의 사소한 실수에도 강력한 처벌 위주의 행정처분이 시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 농업의 위력

필자는 농업대학을 갓 졸업한 1991년부터 2009년까지 대안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재배학과 토양학 등을 가르치며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유기농업실습포를 운영해봤다. 1990년대 초인 그 당시에는 유기농업이나 친환경 농업이라는 말도 없었고 그저 무공해농사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유기농업 첫해에 오이 하우스에 새까맣게 달라붙은 진딧물을 방제하기 위해서 담뱃재도 태워보고 양잿물도 뿌려봤지만, 소용이 없어 결국 눈물을 머금고 다 갈아엎었던 기억도 난다. 그러나 2년, 3년이 지나가면서 점차 지력이 좋아지고 생태계가 회복되면서 오이가 튼튼하게 자라나니까 진딧물도 더 이상 오이를 괴롭히지 못하고, 그나마 있던 진딧물들도 천적인 칠성무당벌레 등에 의해 제압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친환경 농업의 위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친환경 농업은 병들었던 생태계를 회복하고, 자자손손 물려줄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토양을 만들어내는 위대한 사업이다.

그런데 왜, 현재에 이르러서는 친환경 농업에 종사하는 인증 농가와 인증기관들이 이처럼 과도한 규제에 시달려야 되는 것일까?

물론 일부 농가나 인증기관들의 부적합한 행위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관리·감독 기관의 전문성 부족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해외 유기인증심사 사례

필자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국내 친환경인증심사원과 더불어 IFOAM(국제유기농운동연맹) 유기인증심사원 역할을 수행한 적이 있다.

3년여에 걸쳐 IFOAM 평가사들로부터 관리·감독을 받아본 결과, IFOAM 평가사들의 전문성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4일에 걸쳐 감사를 받았는데 하루는 사무실에서 종일토록 서류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다음 날은 필자가 현장에서 인증농가를 심사하는 모습을 입회하여 지켜본다. 그리고 심사원이 무엇을 보는지, 어떤 것을 물어보고, 어떤 자료를 요구하는지 지켜본다. 농가에서 자료가 없다고 할 때 어떤 식으로 대응하는지도 유심히 살펴본다. 이 모든 감사를 마치고 본국에 돌아가서 A4 용지 십여 쪽이 넘는 보고서를 보내온다. 보고서에는 잘된 점과 잘못된 점이 기록되어있으며 작은 실수에 대해서는 주의 또는 권고를 하고 중대한 과실에 대해서는 벌금 500불과 같은 과징금이 부과된다. 인증기관의 치명적인 결함이라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 결함이 고쳐질 때까지 업무 정지를 명하고 있다. 기간은 정해지지 않았으나 시정조치가 이뤄질 때까지 업무 정지 상태로 있게 되기 때문에 인증기관은 최대한 신속히 시정행위를 마무리하고자 노력한다. 관리·감독 기관의 행정처분이 과도하게 느껴지지 않기에 솔직하게 위반 행위에 대해서 인정하고 조언을 구한다. 인증기관에 대한 이러한 행정처분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처리되기에 치명적 결함이 아닌 한 인증기관의 신뢰도 저하, 나아가서 친환경 인증제도에 대한 신뢰도에는 전혀 지장을주지 않게 된다.

이처럼 전문 평가사로부터 한 번씩 감사를 받게 되면 그 인증기관과 담당 심사원의 업무 전문성은 크게 향상될 수밖에 없다. 전문성이 확보된 인증기관과 인증 심사원은 인증 농가들의 위반행위를 적발하거나 미리방지하는 능력이 뛰어나게 되어 인증 농가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 대신 효율적인 인증심사행위가 가능하게 된다.

인정기구의 전문 평가사에 의한 관리 감독 제도는 IFOAM 뿐 아니라 유럽 유기농 인증제도, 미국 유기농 인증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평가사들의 유기인증 관련 경력이 대부분 10년을 넘어선다. 자연히 전문성도 확보되어 있고 모호한 인증기준에 대한 유권해석도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다. 이에 따라 인증기관들의 전문성도 확보되고 인증농가에 대한 관리감독도 합리적으로 이루어진다. 인정기구의 전문성 확보가 인증기관과 인증 농가의 전문성 확보로 이어지고 해가 갈수록 인증제도가 안정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국내 현실과 발전방안

우리나라 인정기구의 현실은 어떠한가? 농림축산식품부나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하 농관원)의 친환경인증 담당자들의 경우 2년 또는 3년 정도 근무로 전문성이 생길 즈음에는 타 부서로 이동한다. 2년이나 3년 정도 근무하면 그나마 다행스럽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1년도 채 근무하지 못하고 새로운 직원으로 교체되는 경우도 많다. 농관원의 각 지원에서 친환경인증기관을 감사하는 공무원들은 친환경 인증 심사를 한번도 해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친환경 인증 업무에 대해서 전문성이 생기기도 어려울뿐더러 생길만하면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상당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문성이 생길 수 있는 여지가 부족하다 보니 인증기관을 감사할 때 법 규정만을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인증기관들도 행정처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합리적이고 종합적인 판단보다는 법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인증 농가를 심사할 때도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다 보니 영농일지, 시비처방서, 각종 성적서 등의 문서자료들부터 확인하느라 바쁘다. 친환경 농업을 한다면 퇴비는 어떻게 마련하고, 주변 생태계는 얼마나 회복이 되어서 어떤 천적들이 생겨나고, 어떤 잡초들이 자라나는지, 가축들의 건강상태는 어떤지 등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을 제대로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이런 와중에도 책임감 있는 공무원과 인증 심사원, 양심적이고 성실한 인증 농가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친환경 인증제도는 여전히 그 위상을 유지하고는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언제든지 위태로워질 수 있는 친환경 인증 제도를 굳건하게 하기 위해서 더욱 매진할 필요가 있다. 인증 농가는 더욱 양심적으로 친환경 인증기준을 지켜야 할 것이고, 인증기관은 더욱 공정하게 심사해야 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IFOAM, EU(유럽유기인증제도), NOP(미국유기인증제도) 등의 유기농 선진국들의 제도와 같이 인증기관을 관리·감독하는 인정기구의 전문성 확보라고 강조하고 싶다. 정부에서는 인증기관 심사원들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서 관련 기사 자격증 획득을 필수요건으로 하고 있다. 인증기관들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이상으로 인정기구로서의 전문성 확보 또한 필수불가결한 때가 되었다.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추고 친환경 인증제도 전체가 낡은 시스템을 벗고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위로부터의 변화와 혁신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친환경 인증제도는 기계적인 법 적용을 넘어 전문성의 영역에서 다뤄져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