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_신진 양계인을 찾아서 - AI 아픔 딛고 새로운 도약을 - 종계: 풍전부화장/남형진 이사 -

  • Published : 2010.01.01

Abstract

Keywords

▲ 부화장 전경(주당 23만수의 병아리를 생산할 수 있다.)

▲ 차세대 종계부화업계를 이끌어갈 풍전부화장 남형진 이사

금년도 육용종계 업계는 병아리 가격이 높게 형성되면서 외부적으로 볼 때 종계업계가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하지만 실상 내부적으로 들어가면 종계생산성이 1~2년 사이에 급격히 하락하면서 업계의 어려움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평이다. 또한 종계업계도 계열화 참여비율이 높아지면서 종란 납품계약 관계가 미묘하게 얽히면서 향후 종계부화업계의 한 과제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1960~70년대 종계부화업계가 중심이 되어 현재까지 업계업 발전이 이어져 오고 있다. 세대가 흐르면서 이제는 양계업 전체적으로 2세대 양계인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추세이다. 종계부화 분야도 이러한 추세가 이어지고 있으며, 향후 종계부화업계를 이끌어 갈 차세대로 주목받고 있다. 따라서 본고는 고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HPAI)의 아픔을 뒤로하고 새롭게 재기를 다지면서 농장을 이끌어 가고 있는 풍전부화장 남형진(38세) 이사의 농장 생활과 2010년 새해 설계를 들어보았다.

수려한 풍광속의 풍전부화장

충북 충주시 노은면 안락리에 위치한 풍전부화장은 52,892㎡(약 16,000평) 부지에성계사 8동에 4만수, 육성사 5개동에 2만수, 부화장 1개동에 주23만개의 병아리를 생산하고 있다.

▲ 성계사 전경(8동에 4만수 규모)

농장 내부에는 수목림이 둘러싸여 있으며, 농장 오른편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끼고 천혜의 지형을 자랑하고 있다. 성계사와 육성사를 경계로 넓은 인공연못이 조성되어 수십종의 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어 농장이라는 생각을 잠시 잊게 해준다.

풍전부화장은 남형진 이사의 선친인 故 남광풍 사장이 1978년 경기도 광주지역에서 종계장과 식당을 함께 경영하다 종계사업의 발전가능성을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1991년에는 충주에 새 부지를 마련하여 제2농장과 부화장을 운영해 오다 1997년 광주의 제 1농장을 정리하고 충주로 농장을 확장, 이전하면서 현재의 풍전부화장이 탄생하였다.

운명의 AI 발생

2003년 12월 고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가 국내에 처음 발생하면서 국내 양계업계는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사람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인수공통전염병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닭고기와 계란의 소비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질병이 발생된 농장의 닭들은 모두 살처분 되었을 뿐 아니라 이 농장과 역학관계에 있는 농장, 부화장들은 함께 폐기처분이 이루어졌다.

이 와중에 풍전부화장은 고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로부터 피해갈 수 없었다. 최초 발생농장이 충북 음성의 한 종계장으로 보도되었고 이곳 위탁종계장으로부터 종란을 받아 부화시킨 곳이 충주에 위치한 풍전부화장이었기 때문에 종계장의 종계는물론당시부화중이던 70만개의 종란을 모두 폐기시키고 장기간 부화를 중단해야만 하는 엄청난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

이러한 심적인 고통을 받던 남광풍 사장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풍전부화장의 위기는 극에 달했다. 추후 정부에서는 역학조사를 통해 최초 발생 농장이 종계장이 아닌 충남 천안의 종오리 농장이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면서 누명을 벗을 수 있었지만 모든 사태가 전개된 후에 구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당시 학업중이던 큰 아들 남형진 이사가 농장의 어려운 상황을 끌고 가야 했으며, 부친의 절친한 친구인 홍광표 사장이 기꺼이 경영을 맡아주어 풍전부화장의 재기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홍광표 사장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천호부화장 생산 상무를 역임한 바 있으며, 이후 영육농산과 해표푸드서비스에서 중책을 맡아온 실력자로 잘 알려져 있다. 홍사장의 경영하에 우여곡절 끝에 입추를 시킨 종계가 성적을 잘 내주었고 경기 회복에 힘입어 풍전부화장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학업을 접고 시작한 종계업

남형진 사장은 어려서부터 부친이 경영하는 종계장의 일을 도우면서 자연스럽게 양계업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학교에서도 가업을 잇기 위해 천안연암대학교에서 축산을 전공하는 등 전문지식을 습득하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양계업에 입문하기 전에 더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건국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 대학원까지 마칠 수 있었다. 2003년 말 대학원 졸업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부친의 사고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 자동화로 이루어진 쾌적한 계사내부 광경(성계사) 

과거 종계장에서 일한 경험은 있지만 부친께서 남겨놓은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너무나 혹독한 시험이었다. 남 이사는 홍광표 사장의 도움을 받아 진정한 종계부화인으로의 역할을 하나씩 배워가고 있다. 남 이사는 홍광표 사장에 대해 ‘어둠속에서 반딧불처럼하나의 빛을 비춰 방향을 밝혀주는 이정표’라고 표현 하였다. 생산관리부터 행정까지 전문분야 깊숙이 알고 있기 때문에 농장의 방향을 잡아가는데 큰 힘이 되고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부친의 친구분이기 때문에 아버지와 같은 분으로 항상 격려해주고,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다. 때로는 질책도 많이 들을 때도 있지만 이러한 것이 향후 남 이사의 미래를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홍 사장으로부터 성실성을 몸소 배우고 있다. 실제로 홍 사장은 경기도 구리에서 충주까지 일요일을 뺀 나머지 날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출퇴근 할 정도로 열성적이다. 홍 사장은 종계부화업계와 평생을 함께 지내왔으며, 풍전부화장과의 인연으로 지금까지 종계부화업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 농장이 위기에 처했을 때부터 경영에 참여하여 큰 힘이 되어주고 있는 홍광표 사장(우)과 함께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농장경영

풍전부화장은 지난해 육성장 증설과 내부 시설 개선을 위해 사업계획을 세웠지만 육성장 증설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9억원(6억원 정부보조)의 자금으로 슬랫 및 내부 자동화에 투자하였다. 그 결과 9명이었던 농장인력을 6명으로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남형진 이사는 농장을 경영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커뮤니케이션(대화)이라고 말한다. 자주 직원들과 대화를 하고 가족처럼 대하는 것이다. 2004년 부친이 별세하고 홍광표 사장이 일을 함께 맡아주면서 기존의 직원들과 의견충돌이 생긴 적이 있다. 농장의 주인이 바뀌다 보니 그동안 근무해 오던 직원들이 잘 따르지 않는 등 농장관리에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남형진 이사는 홍사장과 협의 하에 마음이 맞지 않는 직원들을 전면 교체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도 하였다. 직원과 간부 간에는 몸짓만 해도 통할 수 있는 교감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위해 서로의 마음을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는 대화가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사양관리에 있어서도 닭의 편에 서서 관리하기를 주문한다. 물론 모든 시스템이 자동화로 이루어져 과거보다는 신경을 덜 쓸 수도 있지만 계사 내에서 작업을 하다 내부온도가 덥다고 휀을 가동시킨다든지 하는 사사로운 일들이 간혹 발생할 수도 있어 이러한 점을 중점적으로 강조한다. 현재 현장에는 이윤철 농장장과 전승태 부화실장이 실무를 맡아 풍전부화장을 통해 좋은 병아리가 농가에 공급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나가고 있다.

농장 방역은 필수조건

풍전부화장은 어느 농장 못지않게 방역의식이 강하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AI에 대한피해를 가장 많이 보았기 때문에 앞으로는 이러한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철저를 기하는 것이다. 사실 풍전부화장은 사람이 드나들 수 없는 지역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차단방역 시설이 굳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지리적인 장점을 지니고 있다.

농장과 부화장으로 들어오는 길은 오직 한 곳으로 통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사료차량, 노계차량 등 관련 차량 이외에는 접근이 불가능하다. 차량이나 사람이 출입 시에는 반드시 소독을 하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차단방역 또한 완벽하다. 하지만 명절 때 성묘객들이 출입하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남 이사는 처음에 성묘객들과 많은 실랑이를 벌이면서 푯말까지 농장입구에 표시했다. 5년이 지난 지금 성묘객들이 알아서 소독을 하고 드나들 정도로 이제는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될 일이 되었다. 물론 계사 내부에 진입할 때도 반드시 발판소독조에 소독을 하고 소석회에 다시 한 번 발바닥을 처리 한 후 관리에 들어간다.

▲ 명절때 성묘객들의 소독을 유도하는 푯말 

▲ 차단방역은 제1의 원칙(농장입구)

휴지기도 장기간 설정해 두는데 풍전부화장은 닭을 빼고 최소한 2개월간 농장을 비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물론 계분을 계분처리장에 모아놓고 계사내부 물청소, 소독, 생석회 도포 등을 처리한 후 2개월 간 비워두면 입추준비는 끝나는 것이다.

2010년 바램

남 이사는 농장과 부화장을 이끌어 온지 5년이 지나면서 이제 조금 눈이 떠지는 것 같다고 언급하고 앞으로 업계에 많은 변화들이 예상되는 만큼 이 변화에 최대한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나갈 것을 다짐했다.

종계부화인들의 모임인 PS친목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일선에서 경영에 참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양지부화장, 효동농장 등 2세대 양계인들과 어려운 문제를 스스럼 없이 논의하기도 한다. 향후 남 이사는 이러한 2세대 양계인들과 모임을 결성해 업계를 이끌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농장계획에 있어서는 육성장과 성계사의 증설을 계획하고 있다. 풍전부화장은 1년에 3개의 계군이 있어야 지속적으로 부화장을 움직일 수 있는데 아직 2회전 밖에 할 수 없어 시설확보가 가장 큰 숙제로 남게 되었다. 현재로서는 못했던 공부에 대한 욕심이 있지만 농장이 안정화를 찾게 되면 향후 이룰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남 이사는 협회의 역할에 대해 비전을 제시하고 강력한 정책을 펼칠 때 농가들이 호응을 해줄 것이라 언급하고 2010년에는 협회의 이러한 모습을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