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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가로수 역사와 수목 고찰 (A Study on the History and Species of Street Trees in Seoul)

  • 송석호;김민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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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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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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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서울시 가로수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 수종 선정을 위한 기초연구로써 고문헌에 기록된 가로수 역사와 수종을 고찰하였다. 또한 다양한 수종 대안을 위해 전통조경수목을 고찰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가로수 역사는 고구려 양원왕(陽原王) 2년(546), 고려 명종 27년(1197) 등에 가로수로 추정되는 기록이 남아있으나 사료적 명료성은 부족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조선 초 세종 23년(1441)에는 국가의 역로(驛路)에 표목(標木)으로 가로수를 심은 것이 확인되며, 표목으로 식재된 가로수는 느릅나무와 버드나무가 확인된다. 조선 초 가로수제도의 시행은 단종 1년(1453) 기록으로 알 수 있으며 큰길 좌우로 소나무, 잣나무, 배나무, 밤나무, 회화나무, 버드나무 등이 식재되었고, 세조 5년(1459)에는 길가에 뽕나무를 심었다. 영조 연간에 그려진 정선의 『압구정』이나 『진헌마정색도』에는 가로수가 열식되어 있으며 이는 왕들의 행차, 한양 출입의 주요 도로, 마장(馬場)의 장소성, 수해에 따른 도로 보호와 표식 등의 복합적인 요인이 고찰되었다. 정조 연간에는 왕의 능 행차에 연관되어 소나무, 전나무, 버드나무 등의 가로수를 열식한 사례가 두드러지며, 이는 왕이 지나는 연도(輦道)와 해당 능역을 성역화하려는 가로수 식재기법으로 보았다. 개항 이후 고종 32년(1895)에는 국가에서 도로 좌우에 가로수를 심을 것을 장려하였고, 근대적 가로수 식재개념이 도입되었다. 당시 한양의 가로수는 사시나무가 속성수로써 주요하게 식재되었다. 서울시 가로수로 활용 가능한 고문헌 출현 교목은 삼국시대 17분류군, 고려시대 31분류군, 조선시대 55분류군이 추출되었으며, 16분류군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모두에서 중복적으로 3회 출현한 수목으로 역사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우수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외래수종이 유입되고 법제가 변화하면서 가로수제도의 현대적 수용이 이루어졌다. 1936년 경성부 권역의 확대에 따른 가로수 6개년 식수계획(1934-1940)이 시행될 당시 경성의 10대 가로수 수종은 '모니리페라'로 불린 현재 미루나무의 아종, 이태리포플러, 사시나무, 은백양 등의 포플러류가 1~4순위로 가장 많이 식재되었으며 수양버들, 아까시나무, 버즘나무, 양버즘나무, 은행나무, 네군도단풍이 5~10순위로 나타났다. 1930년대 중후반부터 버즘나무와 양버즘나무가 새로운 가로수로 소개되며 대규모 식재되기 시작하였고, 1942년부터는 피마잠의 장점이 있는 가죽나무를 가로수로 권장하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 1957년 가로수 수종은 양버즘나무, 은행나무, 이태리포플러, 가죽나무, 미루나무, 수양버들 순으로 나타나 일제강점기 수종들의 순위변화를 보였으며, 양버즘나무와 은행나무의 비중이 높은 점에서 당시의 식재 경향이 현재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네시아 이슬람 극단주의 실태 연구 (A study on the recent trends of Islamic extremism in Indonesia)

  • 윤민우
    • 시큐리티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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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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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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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연구는 인도네시아 이슬람 극단주의 역사와 최근의 인도네시아의 국제 이슬람 극단주의의 확산 실태를 조사한다. 이 연구의 수행을 위해서는 인도네시아 이슬람 극단주의 관련 문헌조사와 관련자들의 질적 인터뷰를 병행한다. 문헌조사를 위해서는 미디어 보도, 관련 연구 보고서와 논문 등을 수집하고 활용한다. 질적 인터뷰를 위해서는 국내체류 인도네시아 학생들과 체류자들, 인도네시아인과 결혼한 한국인 배우자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선교사들 등을 포함한다. 이들에 대한 질적 인터뷰는 30분에서 2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연구대상의 모집단을 사실상 특정화 할 수 없으며 연구주제의 성격상 인터뷰 대상에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편의 샘플과 눈덩이 샘플 추출 방식을 활용하였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극단주의는 뿌리가 깊고 일반적으로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같이 이슬람 극단주의가 공고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다른 무슬림 국가들과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한다. 즉, 서방 제국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슬람 원리주의가 시작되었으며, 독립이후 근대국가 발전과정에서 소외되었고 소련-아프간 전쟁을 거치며 극단화 폭력화 하는 과정을 거쳤다. 또한 9.11테러 이후 국제적 이슬람 극단주의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글로벌 지하드에 편입되는 발전경로를 보여준다. 이러한 역사적 발전 궤적은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극단주의가 상당히 조직적이고 공고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한편, 최근 들어 IS와 알카에다 등의 국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동아시아 확장전략에 따라 인도네시아로의 침투와 확장이 관찰된다. 이는 특히 인도네시아의 소외되고 낙후한 시골지역에서 보다 뚜렷이 관찰된다. 이러한 인도네시아에서의 국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확산은 지리적 근접성, 국내 상당규모의 이주자 공동체의 존재 등의 사실을 고려할 때 직접적으로 우리 국가에 위협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도네시아 내에서의 이슬람 극단주의 확산 동향에 대한 주의와 관심은 시기적으로 매우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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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보안산업의 역사적 기원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Historical Origin of Private Security Industry in Korea)

  • 이창무
    • 시큐리티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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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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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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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보안산업은 급속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고 보안산업관련 연구 역시 최근 크게 늘고 있다. 그러나 보안산업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아직까지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국내 보안산업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연구는 매우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인 사료(史料)를 통해 볼 때 국내 보안산업은 그 기원을 장보고의 활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의 사서(史書)에 장보고의 청해진 설치와 해적 소탕 등의 활약상이 기록되어 있으며,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해 해적소탕과 해상무역 보호라는 보안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로 해상무역권이라는 이권을 취하고 막대한 경제적 부(富)를 축적했다는 점에서 보안산업 활동을 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즉, 장보고가 당시의 고질적인 사회경제적 문제였던 해적을 퇴치하고 해상무역을 보호하면서 경제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 활동을 벌였다는 점에서 장보고의 활동은 보안산업의 영역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장보고의 활동과 비슷한 역사적 기록이 장보고 이전에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보안산업 활동으로 판단된다. 역사적 기록에 나타나는 장보고의 활동은 당시 중국은 물론 이슬람 문화권과 유럽에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근대적 성격의 보안산업 형태와 기능을 수행했다고 여겨진다. 세계 보안산업의 역사에 있어서 장보고 활동의 의의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세계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장보고의 보안산업활동 및 세계 보안산업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적절한 평가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향후 후속연구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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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상무(貿易商務)에의 역사적(歷史的) 어프로치와 무역취인(貿易取引)의 전자화(電子化)" (E-Commerce in the Historical Approach to Usage and Practice of International Trade)

  • 춘홍차
    • 무역상무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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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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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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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The author believes that the main task of study in international trade usage and practice is the management of transactional risks involved in international sale of goods. They are foreign exchange risks, transportation risks, credit risk, risk of miscommunication, etc. In most cases, these risks are more serious and enormous than those involved in domestic sales. Historically, the merchant adventurers organized the voyage abroad, secured trade finance, and went around the ocean with their own or consigned cargo until around the $mid-19^{th}$ century. They did business faceto-face at the trade fair or the open port where they maintained the local offices, so-called "Trading House"(商館). Thererfore, the transactional risks might have been one-sided either with the seller or the buyer. The bottomry seemed a typical arrangement for risk sharing among the interested parties to the adventure. In this way, such organizational arrangements coped with or bore the transactional risks. With the advent of ocean liner services and wireless communication across the national border in the $19^{th}$ century, the business of merchant adventurers developed toward the clear division of labor; sales by mercantile agents, and ocean transportation by the steam ship companies. The international banking helped the process to be accelerated. Then, bills of lading backed up by the statute made it possible to conduct documentary sales with a foreign partner in different country. Thus, FOB terms including ocean freight and CIF terms emerged gradually as standard trade terms in which transactional risks were allocated through negotiation between the seller and the buyer located in different countries. Both of them did not have to go abroad with their cargo. Instead, documentation in compliance with the terms of the contract(plus an L/C in some cases) must by 'strictly' fulfilled. In other words, the set of contractual documents must be tendered in advance of the arrival of the goods at port of discharge. Trust or reliance is placed on such contractual paper documents. However, the container transport services introduced as international intermodal transport since the late 1960s frequently caused the earlier arrival of the goods at the destination before the presentation of the set of paper documents, which may take 5 to 10% of the amount of transaction. In addition, the size of the container vessel required the speedy transport documentation before sailing from the port of loading. In these circumstances, computerized processing of transport related documents became essential for inexpensive transaction cost and uninterrupted distribution of the goods. Such computerization does not stop at the phase of transportation but extends to cover the whole process of international trade, transforming the documentary sales into less-paper trade and further into paperless trade, i.e., EDI or E-Commerce. Now we face the other side of the coin, which is data security and paperless transfer of legal rights and obligations. Unfortunately, these issues are not effectively covered by a set of contracts only. Obviously, EDI or E-Commerce is based on the common business process and harmonized system of various data codes as well as the standard message formats. This essential feature of E-Commerce needs effective coordination of different divisions of business and tight control over credit arrangements in addition to the standard contract of sales. In a few word, information does not alway invite "trust". Credit flows from people, or close organizational tie-ups. It is our common understanding that, without well-orchestrated organizational arrangements made by leading companies, E-Commerce does not work well for paperless trade. With such arrangements well in place, participating E-business members do not need to seriously care for credit risk. Finally, it is also clear that E-International Commerce must be linked up with a set of government EDIs such as NACCS, Port EDI, JETRAS, etc, in Japan. Therefore, there is still a long way before us to go for E-Commerce in practice, not on the top of information manager's de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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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수혈침구도경(銅人腧穴鍼灸圖經)"의 침구 문헌적 특징에 관한 연구 (A Study about Characteristics of literature of acupuncture and moxibustion in "Dong-insuhyeolchimgudogyeong(銅人腧穴鍼灸圖經)")

  • 김기욱;박현국
    •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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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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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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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The acupuncture and moxibustion documentary characteristics of the "Dong-insuhyeolchimgudogyeong(銅人腧穴鍼灸圖經)" can be summarized into 5 parts such as the following. 1. The Index of Books lists the author of "Dong-indogyeong" as 'Wang-yuil(王惟一)' in some and 'Wang-yudeok(王惟德)' in others. Of these 'Wang-yudeok' is the name in the printed book and 'Yuil(惟一)' was the name it was changed into in order to make it different from the emperor Jinjong(眞宗) of the Song dynasty. Also, the sequence differs greatly among the original editions and sometimes even conflicts within itself, which makes very likely the possibility that the author of this book is not just one person, and that Wangyuil is just the main editor or screener. 2. The original printed edition of the Song(宋) dynasty has 3 volumes and the Cheonsoeng Seokgak(天聖 石刻) of the Song dynasty also has 3 volumes, but 'Hyeolsudosu(穴腧都數)', 'Sumyeongdanggyeolsik(修明堂訣式)', and 'Pichimgugyeol(避鍼灸訣)' were added to the 3rd volume. Of these three 'Pichimgugyeol(避鍼灸訣)' explains the 'Chimgupigijido(鍼灸避忌之圖)' of the 2nd volume in writing, 'Sumyeongdanggyeolsik(修明堂訣式)' explains the three human drawings from the front, side and lying down views in writing and was used to make bronze figures. 'Hyeolsudosu(穴腧都數)' was possibly used to draw acupuncture points when making bronze figures. During the Daejeong(大定) era of the Keum(金) dynasty Jinssi(陳氏) from the Pyeongsuseobang(平水書坊) revised this book and carved it into 5 volumes, and of those the 1st and 2nd volumes have characters that are very different from those of the rubbed copy of the stone carvings[石刻 拓本] from the Myeong(明) dynasty, which shows that it was taken from another book and not from the original text. The 3rd volume has added content from the stone carvings about accupuncture and moxibustion contraindication(鍼灸禁忌). During the Myeong dynasty the 3 volumes of the "Dong-indogyeong(銅人圖經)" were carved on wood based on the Jungtong Sukgan(正統 石刻), and there were many reprints with the contents that are almost all the same, but the order of the original edition were not all the same. When analyzed from many angles, the original printed copy was carved after the Jungtong(正統) of the Myung dynasty. 3. The content on transport points[輸血] in "Dong-indogyeong(銅人圖經)" comes mostly from books like "Oedae(外臺)" 'Myeongdang(明堂)', "Taepyeongseonghyebang(太平聖惠方)" 'Chimgyeong(鍼經)', "Yeongchugyeong(靈樞經)", Wangbing(王冰)'s annotation of "Somun(素問)", "Cheon-geumyobang(千金要方)" 'Chimgu(鍼灸)', and does not have much new content added by Wang-yuil(王惟一). However when Wang quotes past documents, little is summarized, some are edited and most do not have their origin indicated(the titles of other books quoted in the book are to give some supplementary explanation or are copied from another book). 4. There are many mistakes Wangyuil made in using documents and doing historical research and they can be seen in two fields. One is that he did not fix the errors of past documents, and the other is that he did not know the sequence of past documents or did not understand the meaning of the text. 5. The content Wangyuil newly added can mostly be seen in the few annotations and aneo(按語) under the original 'Geumbu(今附)'('Sinbu(新附)'). In order to see Wang's scholarly ideas and achievements we must rely on this part and the meridian entry of the transport points[輸血歸經] in the first part of the book. However we must not give credit to Wang for work that was done by former gener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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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이전 문헌에 기록된 전 조리법의 문헌적 고찰 (A Bibliographical Study of Korean Fan Fried Side dishes(Jeon) in Korean Literatures before the 1900s)

  • 최영진
    • 한국식품조리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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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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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29-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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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Jeon refers to a type of Korean cuisine used as a side dish, made with various ingredients such as meat, vegetables, or fish, mixed with flour batter and coated with egg batter and then pan-fried on both sides with oil so that heat spreads through them well. The aim of this study was to provide a cornerstone of further research on Korean dietary life, by reviewing types, recipes and names of Jeon recorded in ancient cookbooks (Korean literatures) and by analyzing changes in recipes to make Jeon, which our ancestors used wisely as one type of side dish. Considering developments and changes recorded in old documents, the Jeon recipe appeared relatively later than the recipes for grilling, steaming et al, which had been developed much earlier, and it had not been recorded until the 1600s. Changes of Jeon recipes by time period are as follows. In the 1600s, there were three recipes: frying only with grain batter after preparation of ingredients, frying right after preparation of ingredients, and putting ingredients on already fried watery batter. These three recipes were still used in the 1700s, in addition to a new recipe, in which ingredients were oil-fried to be skewered. Today's recipe in which prepared ingredients are fried after getting coated with flour and egg only appeared in 1800s. This has been the main recipe for Jeon ever since. In that time period, there was more variety of recipes and ingredients than before. For instance, Jeon was used for soup or steamed dishes instead of being served as a dish itself. Buchimgae with mixed ingredients was also considered Jeon. In the 1900s, there appeared more names for Jeon as more sorts of ingredients got used, even though there were no new recipes for Jeon. The above-mentioned historical records show that traditional recipes for Jeon have been applied to various dishes, using diverse ingredients, and it might be a smart solution to today's problematic dietary habits involving excessive intake of nutrients, in that it provides a healthy way to add fat. In the same sense, the recipe for Jeon can play an active role in internationalization of Korean foods, in which healthiness is a main feature. According to ancient documents, the recipes for Jeon were used even for meals that were not side dishes, such as Jun-Gwa (Jung-Gwa), Jun-Yak and fried rice-cake. Also, there were dishes using the same recipes even without carrying the name of Jeon, like Buchim or Jijim. This might be worthy of further examination in culinary science.

행정박물의 근대문화유산적 가치와 보존방향 (The Modern Cultural Heritage Value and Conservation of Documentary Art Records)

  • 강대일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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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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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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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행정박물이란 공공업무의 활동을 반영하는 유형적 증거물로서 역사적 상징적 문화적 예술적 가치를 지니는 영구기록물이며, 공공기관의 업무수행과 관련하여 생산 및 활용한 형상기록물로 행정적 문화적 예술적 가치가 높은 기록물이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는 행정박물을 기록물관리 범위에 처음으로 편입시키고 있으며, 기록물관리법령 제3조에서는 행정박물의 보존 및 관리체계를 법제화하고 있다. 행정박물의 관리는 형태 재질별 분류만으로는 기록으로서 행정박물의 특성을 반영하기 어렵다. 행정박물은 일반적인 기록물과 비교해 다양한 연유에서 수집되기 때문에 행정박물에 대한 기초적인 재질 조사와 적합한 보존 및 관리 방식이 필요하다. 행정박물은 문화재로서 아직 그 수요량이 많지 않으나, 국민 의식수준 향상 및 알 권리를 위한 행정박물의 공개 가능성이 증가되고 있으며, 향후 역사 및 문화의 해석을 위해 보존 활용 가능하며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우선적으로 행정박물의 보존적인 측면에서 열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각 유물별 손상등급을 부분적으로 분류, 관리하여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표준조사카드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다양한 재질의 행정박물에 대한 관리 및 운영 방안을 체계적으로 확립하고 행정박물을 보존적인 측면에서 연구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육성하여 종합적이고 선진화된 행정박물의 보존 복원 및 활용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록물용 KORMARC 데이터필드 개발을 위한 메타데이터 요소에 관한 연구 (The Study on the Metadata Elements to Develop KORMARC Datafield for Archives)

  • 박진희
    • 정보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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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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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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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본 연구는 기존의 도서관정보시스템에서 기록물을 검색 이용할 수 있도록 기록물용 KORMARC 데이터필드 개발을 위한 메타데이터 요소를 설정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본 연구에서는 ISAD(G)2에서 제시하고 있는 7개 영역 외에 보존영역(conservation area)과 물리적 기술영역(physical description area)을 추가하였다. 그리고 ISAD(G)2는 26가지 요소만을 제시하고 있어 상세수준의 기술요소를 필요로 하는 기관에서는 불충분하다는 선행연구에서 제시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분석결과를 토대로 영역별 하위요소를 종합하여 선정하였다. 둘째 우리나라 기록물의 특수성을 기술요소에 반영하기 위해 사무관리규정시행규칙과 전자정부 구현을 위한 행정업무 등의 전자화 촉진에 관한 법률에서 제시하고 있는 종이 공문서 및 전자문서 서식의 분석을 통해 선정한 기록물 기술요소를 추가하였다. 또한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공개여부 및 등급, 공개일자, 공개범위, 보존기간, 보존등급, 보존가치, 기록물의 상태기술 요소를 추가하였다. 셋째, 기록물 관리를 위해 512 생산일자 관련주기(creation dates note)와 555 검색보조도구주기(finding aids note), 583 작업현황 주기(action note), 584 추가주기(accumulation note) 데이터필드를 새롭게 설정하였다. 또한 245 표제저자 사항(title statement), 300 물리적 기술(physical description), 306 재생/연주시간(playing time), 506 접근제한주기(restriction on access note), 534 원본주기(origin version note), 535 원본/사본의 소장처주기(location of originals/duplicates note) 540 이용과 복제제한에 관한 주기(terms governing use and reproduction notes), 541 직접적 출처주기(immediate source of acquisition note), 545 행정연혁/개인이력주기(biographical or historical note), 581 출판주기(publication note), 850 소장처(holding institution) 데이터필드의 식별기호를 재구성, 추가하였다.

무용 기록으로서의 구술사 (Oral History as a Record of Dance)

  • 이은주
    • 트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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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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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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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무용은 '몸'을 표현의 도구로 사용하는 예술이다. 또한 한 번 행해지면 소멸되는 무형체성과 일회성을 특징으로 한다. 즉 무용은 살아있는 몸의 예술이기 때문에 문자로 기록하는 것은 난해하다. 오늘날 영상이라는 디지털매체의 발달은 기록을 용이하게 했지만 이 역시 여전히 무용작품의 시각적인 면만을 기록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춤의 기록과 보존이 중요한 것은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자 현재적 시점에서 재현과 해석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무용가의 기억을 통한 기록방법인 구술사는 이를 가능하게 열어준다. 무용가의 언어로 자신의 삶과 예술을 기억하며 채록하고 연구하는 구술사는 무용의 기록방법으로서 무용가를 주체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이를 근거로 현재적 시각에서 무용사 뿐 만 아니라 무용이 사회와 맺게 되는 상호작용을 읽어냄으로써 역사를 보는 다양한 관점을 지니게 한다. 따라서 무용분야 구술사는 무용가의 구술을 채록하여 기록으로 남긴다는 의의와 함께 여기에 함께 기록되어진 '인간과 사회적 관계'들을 남기는 것이다. 이렇게 기록되어진 무용분야 구술사는 분석과 해석이 더 해져 무용사 읽기, 역사 읽기의 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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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패션에 나타난 앤드로지너스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Androgynous Expressed in Contemporary Fashion)

  • 김경옥;금기숙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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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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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9-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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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
  • The pursuit of freedom by the individual--desire to be liberated from all forms of restrictions-- is one of the defining character-istic of the modern society. As costume is, in part, a product of the spirit of the times, it was only natural that this desire for freedom would find its expression in modern costume as well. Among various forms of restrictions, differentiaton by sex has placed one of the most significant binding influences on individual behavior. From early times, the dichotomous division by sex was incorporated into the disign of costume, and the traditional differestriction of costume by sex imposed a significant restriction on the background,“the modern androhynous look”was born as a by-product of the sexual liberation movement in the second half of the 20th century, based on the concept of the individual as a complete human being rather than as a member exclusively of either the male or the female sex. This paper seeks to examine the androgynous look within a coherent theoretical frame-work, and explore new design possibilities by analyzing and understanding the visual characteristics of the androgynous look. In addition, this paper seeks to define the functional aspects of the androgynous look based on the premise that costume is an embodiment of the spirit of the times. As for research methodology, both theoretical and historical methods are employed. Through a theoretical examination of historical documents, the meaning of the androgynous look is explored from various angles, and order to examine its place in modern fashion, an-drogynous styles are categorized and system atically analyzed. The main findings of the paper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 1. Androgyny is a compound word consisting of“andro-”(meaning man) and“gyn-”(meaning woman). In modern times, this word has been associated with the socio-cultural aspect of gender rather than the physical or physiological aspect with the pshchological characteristics of the male and female sexes. Androgynous styles also appear in fashion and general arts such as drama, film, dance, and music. In fashion, the androgynous look, represented by the visual superimposition of “masculine”and “faminine”elements, has emerged as a major element of the 20th-century costume, and has gained broad acceptance among those free spirits wishing to be liberated from the conventional conceptions of male clothing, and the unisex look. 3. The androgynous look in modern fashion reflects the spirit of the 20th century society and culture, and performs various functions as follows : expression of fun, change in gender roles, expression of the inner consciousness, and pursuit of the ideal human 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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