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사품은 이순신의 위대함을 기억하는 상징물이자 삼도수군통제사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의물로서 400년간 통제영과 충렬사에 배향되어 있었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1966년 보물 제440호로 지정되었으나 중국에서 전래된 유물이라서 그동안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팔사품 유물을 중심으로 문헌기록이나 회화 및 한중 관련 자료를 비교 분석하여 양식적 특징을 알아내고, 유물의 제작 연대나 제작지 및 역사적 가치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현존하는 8종의 유물 중 5종은 본래의 것이고, 3종은 후대에 새로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전자는 도독인(都督印)·영패(令牌)·귀도(鬼刀)·참도(斬刀)·곡나팔이며 1598년 이전 명나라에서 제작되어 진린 장군에 의해 전래된 것이었다. 후자는 깃발[독전기(督戰旗)·홍소령기(紅小令旗)·남소령기(藍小令旗)]들이며 19세기 조선에서 제작한 것이었다. 특히 전자의 유물을 양식적으로 분석한 결과 명 황실의 품격이나 공식적인 성격보다는 개인적이며 광둥지방의 토착적인 특색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팔사품을 중국 명나라 신종황제가 이순신에게 하사한 것이라기보다는 진린 장군이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통제영에 남긴 것임을 밝혀내었다.현존하는 팔사품 유물은 시기별로 명칭이나 품종과 수량 및 부속품에서 변화가 있었는데, 이것을 시대에 따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17세기 조선의 지식인들은 도독인만 주목했다. 그 도장은 명대에 제작된 것은 확실하나, 사인(私印)이어서 진린 도독의 것으로 여겨진다. 둘째, 18세기에는 '팔사물'로 불렀고 8종 14점이며, 1795년 발간된 『이충무공전서』 「도설」에서 확인된다. 이들 중 도독인을 비롯한 5종의 유물은 크기에서 기록과 유사하나, 형태나 문양은 조선에서 발견할 수 없는 이국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중국 광동지방의 향토성이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19세기에도 '팔사물'로 불렀고 8종 15점이며, 1861년 신관호가 그린 <팔사품도> 16곡 병풍에서 확인된다. 도장함과 영패주머니 및 3종의 깃발은 가죽이나 천처럼 쉽게 훼손되는 재료에 조선식 글자와 문양을 넣어 새로 제작한 것이다. 보존에 취약한 유물들은 19세기 말 이후에도 계속 개비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팔사품은 이른 시기에 보물로 지정되었지만 이후 정부의 무관심과 공식적인 기록의 관리 소홀로 오류가 많았다. 앞으로 이에 대한 정부 당국의 관심과 유물의 안정적인 보존을 위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렇게 팔사품이 영원히 보존될 때 16세기 말 일본의 침략 야욕을 한중 양국의 협력으로 이겨낸 역사를, 또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한국의 이순신장군과 중국의 진린도독을 함께 기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천약(崔天若 1684경~1755)은 동래(東萊) 출신 무인(武人)으로 1713년부터 왕실의 공역을 담당한 별간역(別看役)이었다. 그는 능묘석물, 건축, 옥공예, 주조(鑄造) 등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해 당시 사대부들은 '최천약은 형태가 없는 물건을 잘 창조한다[천약선창의(天若善創矣)].'라며 그의 재주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1713년 옥보(玉寶)의 거북이[귀구(龜瞿))를 깎는 것을 시작으로 왕실 공역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1720년대에는 자신만의 옥보 거북이 양식을 만들어 냈다. 왕실 공예품 중에서 동인(銅人 1741년)은 우리나라 유일의 금속제 침구동인상(鍼灸銅人像)으로 인체 각 부분의 표현이 사실적인 작품으로 최천약이 감동(監董)한 작품이다. 1731년 인조 장릉 병풍석에 십이지신상 대신에 모란과 연꽃을 조각한 최천약은 이때부터 왕릉 및 사대부묘 석물에 감동을 시작하여 단경왕후 온릉(1739년), 의소세손묘(1752년)에서 초상조각에 가까운 문인석을 제작하기도 했다. 최천약은 공민왕릉 무인석을 모델로 조현명묘 무인석(1752년)을 제작하고, 그가 1755년 사망하자 후배들은 조현명묘 무인석을 계승해 박문수묘(1756년)와 정성왕후 홍릉 및 인원왕후 명릉 무인석(1757년)을 조각한다. 그 결과 14세기 말 공민왕릉 무인석의 충갑(衷甲), 흉갑의 매듭, 대(帶)의 화문(花紋) 등이 18세기 무인석에도 나타나게 되었다. 의소세손묘 문인석 조현명묘 무인석 등 최천약이 제작한 문무인석들은 초상조각으로도 손색 없으며, 조선 후기 조각의 대표작으로 김하정(金夏鼎) 변이진(卞爾珍) 등 별간역(別看役)들과 김천석(金千碩) 박필심(朴弼深) 등 최고의 석수(石手)들이 있었기에 제작 가능한 작품들이었다. 이러한 최천약이 제작한 다른 문무인석의 발굴 및 다른 별간역들의 활동과 작품 등의 연구를 통해 조선 후기 능묘석물의 실체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본 연구는 경복궁 옆 송현동 일원에 문화공원을 조성하기로 계획된 사실을 배경으로 '송현(松峴)'이라는 장소가 인식되었던 조선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관련 문헌과 도면자료를 분석하여 주요 시기의 역사문화경관을 파악하였다.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송현동 일원의 경관을 통시적으로 고찰하기 위하여 주요 필지의 소유주를 파악하고 토지이용과 경관구성요소를 추출하였다. 1392년 조선의 건국 이래 송현은 풍수지리사상에 의하여 '경복궁의 내청룡(內靑龍)'으로 이해됨에 따라 국가에 의해 '소나무숲'이 관리되었다. 1410년 태종이 실시한 전제 개혁과 도시계획의 영향으로 국가 창고 '분감(分監)'이 세워지고 영세한 과일가게 '우전(隅廛)'이 조성되었다. 19세기 이후에는 상류층 가옥으로서 '가성각(嘉聲閣)', '창녕위궁(昌寧尉宮)', '벽수거사정(碧樹居士亭)'이 존재하였다. 1919년 조선식산은행이 부지를 매입하면서 대규모 관사단지인 '식은사택(殖銀舍宅)'이 조성되었으며, 이는 1948년 미국으로 이양되어 '미국대사관 직원숙소'로 사용되었다. 둘째, 도출한 시기별 경관구성요소의 존속기간과 함께 위치를 비정하여 물리적 실체를 파악함으로써 시대별 사회상과 결부된 입지관(立地觀)의 변천을 확인하였다. 풍수지리적 세계관 속에서 궁궐의 왼편을 비보(裨補)하는 '내청룡'으로 인식된 소나무숲은 부지 서쪽 고지대에 있었다. 동시기 동쪽의 평탄한 구역은 각종 정부시설과 시장에 인접한 길목에 다양한 계층이 모여드는 '여항(閭巷)'으로 여겨졌다. 19세기 이후 소나무숲에는 경화세족(京華世族)의 원림이 들어서 '성시산림(城市山林)'으로 이해되었다. 오랫동안 도심 속 대형 필지로 존재하였던 송현동 일원은 20세기 일제에 의해 '이상적 건강지(理想的 健康地)'라는 관념 아래 개발되었다. 이로써 조선시대 전통적 복거관(卜居觀)을 고수해 온 송현동 일원의 장소성이 단절된 것이다.
This study examined Cheon SunEui(全循義)'s lineage, life, ChimGuTaekllPeonJip(鍼灸擇日編集) and SikRyoChanYo(食療纂要)'s subjectmedical history. Cheon SunEui(全循義)'s position underestimated that it's associated with the reality of politics in the early years of the Joseon dynasty medical history. Accordingly, Cheon SunEui(全循義)'s the healing art and studies remain poorly characterized. To understand the role of Cheon SunEui(全循義)'s studies, we examined that his lineage and life. We made a complete translation Cheon SunEui(全循義)'s ChimGuTaekllPeonJip(鍼灸擇日編集) introduction and confirmed importance alternative choice in the practice of acupuncture and moxibustion. We also identified that SikRyoChanYo(食療纂要) introduced hothouse methods using Korean paper and ondol, food store and fish store methods. is not too much to say that this book is one of the diet of our time. These results demonstrated that Cheon SunEui(全循義)'s life and literary work feel keenly the necessity of study in korea medical history. Because of the actual politics place estimate, Cheon SunEui(全循義)'s life and science underestimate. However, his books excavated. Old values cut red tape, following studied realized about his medical art and medical ideas.
In this study, YakMyeongSi were considered to define relations of Tradional Korean Medicine(TKM) and literature. In the introduction, present related studies were searched to clarify YakMyeongSi are completely different from medical property songs(YakSeongGa). Related data about YakMyeongSi and YakSeongGa were extracted for the initial findings. In chapter 2, medical name verse was defined as 'a type of free verses with one or more medical names in each verse to be interpreted ordinarily' based on records and examples of YakMyeongSi. In China, it originated from "Book of Odes" and "Songs of Chu", and it was most popular in the Song-China. Medical names actually referred to medical names in the early forms of the Warring States Period, but the complete form of YakMyeongSi started to appear in the Tang-China. In chapter 3, 34 YakMyeongSi and 5 related data were suggested in tables as the present conditions of Korean YakMyeongSi. With actual examples, better comprehension of YakMyeongSi were intended. Also, the fact that Korean YakMyeongSi were completed in forms at the end of Goryeo and beginning of Joseon dynasty. The motivations of writing YakMyeongSi were also studied. Medical names were put into verses because they well expressed landscapes and emotions. Propagation of medical knowledge was the basis of YakMyeongSi. There are limits in defining the relations of TKM and literature with some YakMyeongSi. More studies must be carried out on YakMyeongSi in various records with details and interests. Also, study to define general relations of TKM and literature must be carried out together by examining TKM in literary forms such as medical introductions or medical property songs and literature pieces that expressed principles and materials of TKM.
본 연구의 대상본인 계미자본 "사시찬요(四時纂要)"는 조선 초기 주자소(鑄字所)에서 태종(太宗)의 명에 의하여, 주조(鑄造)된 활자인 계미자(癸未字)(1403-1420)를 이용하여 인출 및 간행된 농서(農書)이다. 이제까지 동북아에서 알려진 "사시찬요(四時纂要)"의 판본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간행본이며 본문의 내용은 월령식(月令式) 농가잡록(農家雜錄)이 수록되어 있고, 그 주제는 '농업', '농 부산품 가공', '의약 위생', '기구수리 보관', '상업 경영' 등이다. 구체적으로는 "사시찬요(四時纂要)"를 소개하고 분석하여 그 가치와 의미를 파악한 후에 나아가 판본간의 비교, 계미자 소자(小字)의 자형(字形), 조판기술(組版技術)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으며 특히 책의 인면(印面)을 중심으로 글자를 소자(小字), 특소자(特小字), 극소자(極小字)로 구분하여 그 기능과 특징을 살펴보았다.
This study is to comprehend the interior space of the Royal Palace in the 15th Century, the early years of Joseon Dynasty. The subject of this study is limited to the center of the Royal Palace, that is Jeongjeon(正殿, the royal audience chamber) and Haengrang(行廊, which encloses Jeongjeon on four sides and has many rooms). It is very important to understand the usage of the interior space because the architectural space consists of the space unified by the organic function of the interior and the exterior space. But there are few studies on the interior space of Jeongjeon and Haengrang at the Royal Palace. Therefor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the interior space of those buildings. The result of this study is following. Haengrang has several uses such as a night duty room, a storehouse, a government office or a banquet hall etc. So the interior spaces were finished with various methods that were suitable for the use of each room, and the material of the floor were the ground, Maru(the wooden floor) or Ondol(the Korean traditional heating system) There were held many kinds of ceremonies in Jeongjeon, and the government officials could not enter the inside of that building and took part in the ceremony on the front court of Jeongjeon, except the men performing the ceremony. But the high ranking officials could enter the inside when King gave a banquet and there, they prostrated themselves before King. They sat down with their legs crossed on the ground floor instead of sitting on a chair. When King held tea ceremony with Chinese envoys in Jeongjeon, they sat on Gyoui(交倚, a kind of armchair). Then, the government officials performing the ceremony in Jeongjeon prostrated himself around the King and the Chinese envoys and others stood around them.
Smallpox and measles might be the typical epidemics through Choson Danasty. Especially Sookjong was the first king who suffered from smallpox during the period of his reign. This study was examined critically focused on the Clinical Records about Smallpox which occurred in the 9th year of Sookjong's reign. The clinical records in Seungjeongwon Ilgi("承政院日記") was the main source and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was reffered. It tells us that Sookjong caught infectious disease, smallpox spread in town and the whole process of smallpox. Seungmagalgeuntang(升麻葛根湯) and hwadoktang(火毒湯) were given at the early term for treating Sookjong's smallpox, but later on, Bowontang(補元湯) was given for the treatment of smallpox. It showed us the medical view which placed emphasis on the vital force of human body. A dermatologist, Yoo Sang had joined since the beginning of the treatment and Siyakchung(侍藥廳) was established for Sookjong. Sasunghoichuntang(四聖回天湯) which was Chunyoohyung(全有亨)'s prescription showed us enough clinical experience and the ways of treatments. At the same time, the medical culture at that time was well known through the fact that smallpox was taboo among the royal family.
This study is focused on the man's costumes of Sadangpae(the troupe of performers) shown in Gamrotaenghwa (감로탱화) during the late Chosun dynasty. Originally Gamrotaenghwa was used as a painting for a Buddhist praying ceremony, 또Young-ga-cheon-do-je(영가천도제). It shows us the lives of the commoners in those days. Gamrotaenghwa reflects the changes of costume style in the late Chosun period. The early styles of po(포, coat) for male performers in the 17th century were changeui(창의) and dopo(도포), which had the front panels(seop) overlapped deeply and sleeves that got wider as time passed. After the 18th century, Male performers wore a simpler coat such as sochangeui(소창의), which had narrow sleeves and long slits on the both sides. Especially the coats of acrobats were fastened on the center front with buttons. Heuklip(흑립: black hat), somoja(소모자: small cap) and jeonlip(전립: wool hat) were used as hats for the male performers. Originally, heuklip was the hat that represented the noble status: yangban(양반). However, it was popularized among the commoners in the late Chosun period. As time passed on, the heuklip became more popular and its shape also changed. Somoja and jeonlip were shown throughout the entire Gamrotaenghwa. Unlike heuklip, those were common hats for Sadangpae. The costumes of entertainers shown in Gamrotaenghwa were very similar to those of the commoners. However, it seems that there were some differences of the costumes depending on the roles they performed.
피맛길은 서울 종로의 이면 도로로서 조선전기에 기원한 6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골목길이다. 이 연구는 피맛길을 중심축으로 발달한 피맛골을 현대 도시의 대표적인 '뒷골목' 중 하나로 정의한 다음, 이곳의 역사지리를 통해 그 기원과 경관을 추적하고 장소 기억이라는 개념을 동원하여 피맛골의 장소성을 사회문화지리적 관점에서 해석하였다. 이 과정에서 피맛골의 장소성을 세 가지 층위에서 추출하여 병치할 수 있었는데, '서발턴의 공간 vs. 탈주의 공간', ' 망각의 공간 vs. 회상과 생성의 공간', ' 화석의 공간 vs. 삶의 공간'으로 각각 명명하고 서술하였다. 연구자는 이들의 검토를 통해 '앞길' 종로의 뒤안길이었던 이곳에서 퇴적된 중층적 장소 기억들과 피맛골을 둘러싼 이들 간 경합 관계를 고찰하였고, 이를 토대로 현대 도시가 지닌 공간성의 또 다른 일면을 구성해 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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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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