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흑색화약)의 최초로 발명된 사실은 초석 의 제법 및 그 정제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인들은 이미 11세기초부터 초석의 제법을 알고 있었으며, 그들이야말로 화약원료인 초석의 제법을 세계에서 가장 최초로 발명해 낸 사람들이다. 에지프트인들은 그것을 중국의 눈이라고 불럿으며, 초석이 유럽에 전파된 시기는 성길은오이 1218년 서정작업중 패르시아의 성첩를 공격하기 위하여 화약을 사용한데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에 화약 및 초석의 제조기술이 중국으로부터 도입된 시기는 1374년이며 화약을 최초로 한국에서 만들어낸 사람은 최무선이였다. 이조시대에 접어 들면서 초석, 화약 및 화포의 제조기술은 최해신에 의해서 매우 발전해 나갔다. 그러나 1597년 일본의 왜군이 한국을 침공해 왔을때(임진란) 왜군은 성능좋은 조총으로 한국군을 괴롭혔으며 이에 맞서서 이순신장군이 이끄는 한국의 수군은 거북선에 장비한 성능좋은 화포로서 일본수군을 전멸시킬 수 있었다. 한국의 근대화약기술은 1930년부터 1945년 사이에 4개의 화약공장이 건설됨으로서 매우 발전했다. 본 연구는 한국에 화약기술이 전래된 경위를 조사하였으며 차후화약기술에 대해서 연구하고져 하는 연구자에게 연구 자료를 제공 하고져 시도했다.
선생안은 인명부로써 관원의 성명 부임일 체직일 내직 거직 본관 자 과거 급제 여부까지 다양한 정보를 수록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조선시대 인사 관련 자료에서는 살펴볼 수 없는 지방 수령과 중인들의 관직생활에 대한 선행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조선시대 선생안의 현황과 분류조차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이에 따라 본고는 조선시대 선생안의 현황과 분류 그리고 선생안 자료의 자료적 특징에 대해서 밝히고자 한다. 현재까지 전하고 있는 조선시대 선생안은 176종이다. 이 선생안들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47건), 서울대학교 규장각(80건), 국립중앙도서관(24건), 기타 소장처(25건)에 소장되어 있다. 장서각에는 왕실관련 선생안이, 규장각에는 중앙관청 관련 선생안이, 국립중앙도서관과 기타 소장처에는 지방관청 관련 선생안이 소장되어 있다. 다만, 본고는 접근 가능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선생안 47건에 대해서 중심으로 그 내용을 검토하였다. 앞서 밝힌바와 같이 장서각 소장 선생안은 대체로 왕실과 관련된 선생안이다. 이를 분류해보면 중앙관청 선생안 18건, 지방관청 선생안 5건, 왕실관련 선생안 24건이다. 이를 다시 내용으로 분류해보면, 의례 및 외교 관련 관청 선생안 6건, 왕실 관리 관청 선생안 12건, 지방 관청 선생안 5건, 혼전 능원 선생안 14건, 왕실 교육 선생안 10건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선생안에 수록된 성명 본관 자 과거 급제 여부 제수일 부임일 체차일 내직 거직 등의 내용을 검토한 결과는 다음의 여섯 가지 특징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수록 인원에 대한 기본적인 인적 사항을 알 수 있다. 둘째, 각 관청 및 관직의 재직기간과 승직 및 체직 사유를 알 수 있다. 셋째, 관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넷째, 내직과 거직을 통해 조선시대 인사행정 시스템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 다섯째, 각 관청별로 특별히 중요한 날을 알 수 있다. 여섯째, 포폄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법전에 기록된 내용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조선시대 현실의 모습이며, 이를 통해 조선시대 인사행정 시스템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다. 다만, 정밀한 검토를 하기 위해서는 현재까지 전하는 선생안 176종에 대한 DB화 작업이 필요하며, 이후 기존에 구축된 방목 족보 등의 자료와 연계하여 데이터를 분석해나간다면 조선시대 인사행정 시스템을 알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Myeong(明) Dynasty Period put together clinically various medical theory in Song(宋) Dynasty and Geum-Won(金元) age, organized medical system. They have been developed in theory, which thought of Byeonjeungronchi(辨證論治) more important, and clinical part which included diagnosis, therapy, prevention. In that age reactional medical thought was in fashion because of affect of Ihak(理學), therefore pediatrics have been affected from them. Especially, looking at the symptom of Byeonjeungronchi doctors, Manjeon(萬全), Nobaeksa(魯伯嗣), Wangdaeryun(王大綸), Wanggeungdang(王肯堂), Nuyeong(樓英) had succeed to Jeoneul(錢乙)' the five viscera Byeonjeung(辨證) system. Manjeon advocated Samyuyeosabujokron(三有餘四不足論) about Jangbu(臟腑) and organized the curative principle about Ojangheosil(五臟虛實). Gupyeong(寇平), commented on diagnosis of five viscera and classification of disease of five viscera. Wangdaeryun in the close of Myeong Dynasty Age explained main pulse, pulse of illness in detail according to weakness or strength of five viscera, pathological or physiological features of five viscera and Saenggeuk(生克) relation of Ohaeng(五行) in the book of "Yeongdongryuchwe(嬰童類萃)". Wanggeungdang and Nuyeong had organized system of argument which classified disease as a result of symptom of five viscera. "Yugwajeungchijunseung(幼科證治準繩)" and "Uihakgangmok(醫學綱目) Soabu(小兒部)" had been written by this principle. Nobaeksa had arranged the principle of cure about five viscera and explained method of common use about each organ's disease. Besides, Seolgi(薛己), Janggyeong-ak(張景岳), insisted about Myeongmun(命門) because he thought of Bisin(脾腎) of children and vigor by nature importance. Seolgi had applied and used very well Bojung-ikgitang(補中益氣湯) based on Idongwon(李東垣)'s Biwiseol(脾胃說) and controled and helped spleen and stomach. At the same time, he took a serious view about supplementing children's Sin-gi(腎氣) according to so many spleen and stomach disease was fallen because they couldn't make warm the spirit of Jungju(中州), result of weakening Hwa(火) of Myeongmun. Also Janggyeong-ak took a serious view strengthen of Bisin, so he assorted and used Insam(人蔘) and Buja(附子) to supplement children's weaken energy in kidney Jeonggi(精氣).
조선시대 말기인 1885년에서 1926년에 조성된 괘불은 18점이 현존하고 있는데, 그 중 12점이 서울 경기지역 사찰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 초기의 능침사찰(陵寢寺刹)과 원찰(願刹)은 왕실의 후원을 받았으나 태종의 오교양종(五敎兩宗)의 혁파로 인해 불교의례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사찰도 피폐해졌다. 그러나 18세기 말부터 다시 왕실과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존속해온 사찰은 다시 번창하게 되었다. 국내 외의 사회적인 혼란했던 이 시기는 국가 및 왕실의 안녕을 빌고 망자(亡者)의 극락왕생을 위한 대중적인 사상이 괘불에서는 새로운 경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괘불에 보이는 새로운 도상은 1853년 남호당 영기(南湖堂 永奇)(1820~1872)가 삼각산 내원암에서 판각 간행한 ${\ll}$아미타요해경(阿彌陀要解經)${\gg}$ 권수 판화에 그려진 아미타삼존도로부터 시작된다. 고려 말에 유행한 수월관음도의 재등장은 망자추선(亡者追善)과 제난구제(諸難救濟)의 역할과 허응당 보우의 〈수월도장공화불사여환빈주몽중문답(水月道場空華佛事如幻賓主夢中問答)〉이라는 도량의식의 '수월도양공화불사(水月道揚空華佛事)'의 허상과 망상이라는 도량의식,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만일회의 성행 등이 괘불 도상과 연관되면서 새로운 도상 출현은 조선 말기 괘불에 새로운 이슈로 나타난다는 점이 주목된다. 괘불의 화풍도 진하고 탁하고 채색과 음영법, 초본을 여러 번 활용한 동일한 도상에서 중앙집권적화된 화사계보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도 이 시기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DongUiBoGam(東醫寶鑑) is Joseon's classic medical text that has great significance in the medical history of Korea. However, the context of the treatments of accupuncuret&moxibustion in the book are hardly studied. This study is for the purpose of examining the treatments of accupuncuret&moxibustion in DongUiBoGam(東醫寶鑑), and it starts with studying the accupuncuret&moxibustion part of DongUiBoGam(東醫寶鑑)'s NaeGyeong Chapter(內景篇) for starters. Through this study, the following could be known. 1. In DongUiBoGam(東醫寶鑑)'s NaeGyeong Chapter(內景篇), it is written that it quoted many various books, but actually, most of the parts are quoted from LouYing(樓英)'s YiXueGangMu (醫學綱目). 2. LouYing(樓英)'s YiXueGangMu(醫學綱目) is a work of the Ming Dynasty, which is when China's study of accupuncure&moxibustion was completed and many books on accupuncure&moxibustion were published. 3. However, in DongUiBoGam(東醫寶鑑), it mainly quotes from YiXueGangMu(醫學綱目), instead of these professional acupuncture&moxibustion texts. This is because this book is a comprehensive medical text with various medical theories, which share the same flow with DongUiBoGam(東醫寶鑑), and at the same time, it organized the treatments of accupuncure&moxibustion in a big scale in various ways.
Haeju was home to the Hwanghae-do Provincial Office and a hub for supporting the northwestern regions of Korea. Local commerce expanded in Haeju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based on its abundant resources and regional products, leading it to evolve into a large city. King Seonjo temporarily resided in Haeju while seeking refuge from the Japanese Invasions of Korea, and Yi Yi (sobriquet: Yulgok) secluded himself in Seokdam in Haeju in his later years. King Seonjo's residence in Haeju and Yi Yi's retirement there boosted interest in the city among the literati and influenced its places of scenic beauty. The development of its local history and literary achievements were documented in a wide variety of historical records and visual materials. Eight scenic views in Haeju became famous through a poem written by Seong Su-ik in the late sixteenth century. Around the mid-eighteenth century, eight new scenic views became popular. Local officials and travelers from other regions produced a vast body of prose and poetry focusing on the landscape and society of Haeju, playing a crucial role in raising awareness of its scenic attractions. Most surviving visual materials related to Haeju were created in and after the nineteenth century. Many of them illustrate both landscapes and the everyday lives of people. Among them, paintings of scenic spots created by Jeong Seon (sobriquet: Gyeomjae), who never actually visited Haeju in person, raises some of the issues posed by relying on indirect materials. In contrast, Eight Scenic Views of Haeju, which is presumed to have been produced by a local painter, appears to have accurately highlighted the characteristics of each scenic spot. Moreover, Haejudo, a folding screen presenting a panoramic view of Haeju, incorporates content from paintings depicting eight scenic views, in this case Eight Scenic views of Haeju. This practice can be observed in visual materials of other provincial cities.
본고는 이설의 문집인 "복암집"에 실려 있는 한문산문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본고에서는 이설의 한문산문 내용 분석에 앞서서 이설의 가문과 이설이 살아온 과정을 살폈다. 이설은 조선조의 명문가인 연안 이씨의 후손으로 그 선조들은 대대로 문장가였으며, 직계 조상인 이귀와 그 아들들은 반정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바로 잡기도 하였다. 이설의 한문산문을 분석한 결과 "화이론(華夷論)의 구현과 항일 의지, 사회 안정을 위한 시무 방안 제시"로 대별하여 제시하였다. 전자에 대해서는 일본에 의해 망해가는 조선의 암울한 현실을 제시하고 무엇이 문제인가를 서술하였다. 그러면서 청을 배반하지 말고 일본은 축출해야 할 원수 나라임을 밝히고 있어 이설의 확고한 항일 의지를 알 수 있다. 후자에서는 조선 후기에 있었던 난민과 동학의 무리들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방안을 제시해 놓고 있다. 그 방안을 보면 "애통하는 조서를 내려 뉘우치는 뜻을 보이고 백성을 위로하기, 진휼(賑恤)하는 정치를 급히 시행하여 흩어져 있는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기, 궁궐을 엄히 지키어 간세배(奸細輩)의 출입을 끊기, 구하는 길을 널리 열어 놓고 여러 사람의 계책을 듣기, 원병의 도움을 믿고 무비(武備)를 늦추지 말기" 등이다. 이상의 서술로 볼 때 이설은 의리를 목숨보다도 중요하게 여겼고, 자신이 옳다고 여긴 것은 행동으로 옮겨 실천하려고 노력한 인물이라 평할 수 있다.
국보 제76호 지정문화재는 난중일기(임진일기, 계사일기, 갑오일기, 병신일기, 정유일기, 속정유일기, 무술일기) 7책과 서간첩 및 임진장초 등 총 9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충사 소장 유물로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장군이 직접 기록하였다는 역사성과 학술연구자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UNESCO가 지정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2013년 6월)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이 중 임진장초는 충무공이 임진왜란 중 선조 25년(1592) 4월 1일 전라좌도수군절도사 재임시로부터 동왕 27년(1594) 정월 10일 삼도수군 통제사를 겸직할 당시까지 정황(情況)을 비롯하여 출전경과(出戰經過), 군사상의 건의사항, 진중의 경비 및 준비상황들을 정확하고 상세하게 장계(狀啓)한 내용을 다른 사람이 등초(謄草)한 책이다. 또한 조정의 임금님께 올린 보고서(장계, 狀啓)의 초본으로 1책(?), 반엽(半葉), 오침안정법, 선장본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본 논고에서는 임진장초에 대한 손상유형과 보존상태 및 보존처리 내용에 대하여 기술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조선시대 고문헌이며 국가지정 중요 지류문화재의 보존처리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조선(朝鮮)의 보천가(步天歌) 가운데 가장 나중인 1862년에 간행된 신법보천가(新法步天歌)를 연구하였다. 청(淸)에서 들어온 신법천문학(新法天文學)의 영향으로 구도보천가(舊圖步天歌)의 성도(星圖)만을 고쳐서 새로 신도보천가(新圖步天歌)를 간행하였다. 그러나 옛 가결(歌訣)이 새로운 성도(星圖)와 맞지 않았고, 이에 따라 천문학자를 뽑는 과거 시험에 혼란이 일어났다. 이것을 극복하고자 조선(朝鮮)의 관상감(觀象監)은, 1845년에 청(淸)에서 간행된 흠정의상고성속편(欽定儀象考成續編)의 권(卷)3인 성도보천가(星圖步天歌)를 전재하고 주석을 달아, 1862년에 신법보천가(新法步天歌)를 출간하였다. 이 책은 중인(中人)인 이준양(李俊養)이 편찬하고 토대부(土大夫)인 남병길(南秉吉)이 교정(校正)하였다. 우리는 이준양(李俊養)의 열대기를 처음으로 재구성하였다. 신법보천가(新法步天歌)에는 기존의 조선(朝鮮) 보천가(步天歌)들이 갖는 특정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즉, 각 숙(宿)의 제목이 기존의 형식을 따르고 있고, 또한 기존의 조선(朝鮮) 보천가(步天歌)들에 천하기몰(天河起沒)이 있음을 의식하고 흠정의상고성속편(欽定儀象考成續編)의 권(卷)31과 권(卷)32의 천한적도경위도표(天漢赤道經緯度表)를 바탕으로 천한계도(天漢界度)를 저술하였다.
이 연구는 중국의 송 원대 임제종(臨濟宗) 양기파(楊岐派)의 승려인 몽산(蒙山) 덕이(德異)의 저술 "몽산화상육도보설(蒙山和尙六道普說)"의 간행 현황을 파악하고 현존(現存) 판본을 분석한 것이다. "육도보설"은 현재 중국에는 없으며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입장에서 육도(六道)와 사성(四聖)을 더한 십계(十界)를 내용으로한 설법집이다. 조사 결과 전국 주요 사찰에서 개판된 판본은 모두 22종이 현전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22종을 대상으로 형태 분석과 행자수를 바탕으로 계통 분석을 시도한 결과 절첩장본을 제외하고 모두 사주단변, 10종은 흑구와 내향흑어미가 쌍으로 나타나는 조선 전기의 전형적인 판식을 보이고 있었으며 계통 분석에서는 13자본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시기 및 지역 분석에서는 15세기에서 16세기에 전라, 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 간행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은 고려 말에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래 조선시대 15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 활발히 간행된 현상을 보이고 있어 이 시기에 몽산의 선사상이 우리 불교계에 끼친 영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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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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