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Scenic 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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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락원 영벽지의 원형 파악을 위한 3D 스캔기술 연구 (A Study on 3D Scan Technology for Find Archetype of Youngbeokji in Seongnagwon Garden)

  • 이원호;김동현;김재웅;박동진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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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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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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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 연구는 성락원(명승 제35호) 영벽지 공간의 원형 파악을 목적으로 주변지형을 포함한 3D 정밀데이터 취득을 통해 연못부 지반의 원형 추정을 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영벽지 석구조물에 대한 용도 및 구조를 살피는 것은 이전의 형태를 밝히는데 단서가 될 것이라 판단되며, 3D 스캔방법의 적용은 주변지형을 포함한 전체적 구조를 살피는데 용이하였다. 둘째, 실측결과, 조사대상 암반부는 남북으로 7,665mm 동서로 7,326mm의 규모를 지니며, 석구조물은 $1,665mm{\times}1,721mm$의 정방형을 이루고, 그 내부에는 지름이1,664mm 반구형이며, 기단 아랫부분에는 암석이 남북 $1,006mm{\times}328mm$규모로 떨어져 나간 흔적이 발견되었다. 셋째, 영벽지 내부의 지형을 기록함에 있어 다중해상도 방식을 사용하여 광대역스캐너를 이용한 스캔작업 후 스캔데이터를 정합하여 Polygon Data로의 변환과정을 거친 후, 이를 정밀스캔데이터와 병합하여 메쉬데이터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해상도 사진과 3차원 지형데이터를 오버랩하여 작성하였다. 넷째, 이 작업의 결과로 석구조물 서측에 회유하는 경사진 암반부 물길이를 확인되었으며, 방지원도형의 석지로 추정되는 수경시설물의 하부구조가 확인되어 암반부에 인공적으로 음각한 것임을 확인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1960년대 이전의 지형과 상황을 비교연구할 수 있는 토대를 생성하였다. 더불어 입체적 정밀실측데이터의 취득과 함께 발굴 당시의 원형을 디지털상에서 영구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향후, 이 데이터는 다양한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영벽지 석구조물의 용도 및 보존관리방안을 수립할 기초자료로 사용될 것이다. 또한 금번 연구에서 밝혀진 3D 실측의 용이성이 정원연구에 다양하게 활용되어지길 기대한다.

양양 죽도의 장소성과 지형경관의 지명 고찰 및 비정 (A Placeness and Identification on the Place Names of Geomorphological Landscape in Jukdo, Yangyang)

  • 노재현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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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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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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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양양 죽도의 지형 형성과 경관안내판, 경관해설판에 드러난 의문에서 시작된 본 연구는 죽도 경관의 올바른 인식과 경관자원탐색의 일환으로, 문헌연구와 현장조사 그리고 관련자 인터뷰 등을 통해 죽도 자연경관의 특성을 정리하는 한편, 전래 문화경관에 대한 지명 고찰과 경물 비정(批正)을 추구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는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양양 죽도는 푸른 대나무가 가득했기 때문에 이름 붙여진 섬으로, 최소 14세기 전반 이전부터 18세기 중반 이전까지 주변에는 바다와 죽도를 관망하기 위한 관란정이 존재했다. 원래 섬이었던 죽도가 모래의 퇴식작용에 의해 육계도로 연륙화된 시기는 대략 19세기 후반 이후로 추정된다. 죽도에는 오랜 시간 풍화로 형성된 다채로운 풍화지형과 해안지형 그리고 구조지형이 발견된다. 그중 풍화혈의 일종인 타포니와 나마 지형경관은 죽도에 전래되는 전설과 시문의 핵심적 이야기와 관련된 경관요체이다. 죽도에는 총 7개소의 바위글씨가 존재하는데 해안에서 발견되는 방선암, 농구암, 청허대, 연사대 등은 신선 풍류와 은자(隱者) 모티브를 바탕으로 한 경물로 보인다. '정씨세적(鄭氏世蹟)'이란 바위글씨를 통해 볼 때 죽도의 주된 경관 향유자는 18C 중반의 초계정씨(草溪鄭氏) 가문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관찬지리지나 시문으로 볼 때 죽도는 '죽도선구(竹島仙臼)', '죽도 돌구유', 또는 '신선절구' 등을 주요 모티브로 한 선교적(仙敎的) 색채가 짙게 전승됐다. 이 '신선의 돌절구'라 알려져 온 경물은 형태나 크기 그리고 기능으로 유추해 볼 때 나마 지형의 선녀탕이 아닌 별도 공간에 형성된 포트홀인 것으로 확증된다. 따라서 근대 명명된 선녀탕은 흥미 본의의 터무니없는 '이름붙이기'의 산물로 보인다. 현재의 경관 안내와 해설 내용은 죽도의 장소성과 부합되지 않을 뿐 아니라 전승되어 온 문화경관과 일치되지 않는다. 향후 경관안내판과 해설판 등 관련 경관정보는 양양 죽도의 경관정체성을 제고하기 위해 신선 관련 스토리 및 모티브를 적극 부각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정릉(貞陵) 이장과 광통교(廣通橋) 개수를 통해 본 조선 초기 지배 이데올로기의 대립 (Collision of New and Old Control Ideologies, Witnessed through the Moving of Jeong-regun (Tomb of Queen Sindeok) and Repair of Gwangtong-gyo)

  • 남호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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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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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4-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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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정릉(신덕왕후릉)의 축조와 이장에 얽힌 논란은 조선 초기, 신구(新舊) 지배 이데올로기 사이의 충돌이 잘 드러난 사례이다. 태조의 경처였던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은 도성 안에 조성되지만 태조 사후, 태종에 의해 도성 밖으로 이장되고 그곳에 남아 있던 석물들은 청계천의 광통교를 보수하는데 쓰인다. 야사에서는 태종이 강씨를 저주하기 위해 도성 밖으로 능을 옮기고 남은 석물들로 광통교를 만들어 사람들이 밟고 다니게 했다고 전한다. 태조 말년, 강씨와 태종은 대립하던 관계였으나 태조가 왕으로 옹립되기 전까지는 오히려 정치적 동반자에 가까웠다. 정릉이나 광통교와 관련된 실록의 기록은 더 담백하다. 정릉의 천장은 능묘가 도성 안에 있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는 의정부의 상언을 따른 것이다. 광통교 개수를 위해 정릉을 격하하고 이장시켰다는 주장에는 사실 관계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논자는 광통교 개수에 정릉의 석물이 재사용된 것에 대해 당시 도성 안팎에서 건축자재소요량이 급증하여 효율적인 조달 필요성이 대두되었을 가능성을 상정하였다. 정릉이 도성 안에 조성되었다가 다시 도성 바깥으로 이장된 원인은 태조와 태종이 가졌던 사상적 배경의 이질성에서 찾았다. 태조는 유교국가의 통치자였으나 죽은 왕비를 위해 도성 내에 원찰과 무덤을 조성한다. 여기에는 불교의 힘을 빌려 죽은 신덕왕후의 권위를 위의하고 지지세력을 규합하고자 한 노림수가 있었다. 원의 다루가치 집안에서 태어나 지방군벌로 성장한 이성계는 높은 유학적 소양을 가지지는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오히려 호불적 성향을 띄는 구체제의 인물이었다. 반면 태종 이방원은 고려 말 과거시험에 급제했던 엘리트 유생이었으며 주자학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유교국가에서 도성이 가지는 상징성에 대한 이해가 더 깊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삼국시대 이후, 율령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 시스템이 정립된 이래로 도성 바깥에 무덤을 만드는 경외매장의 원칙은 거의 예외 없이 지켜져 왔다. 정릉은 태조 개인의 강한 의지로 도성 내부에 조성되지만 왕 이전에 유학자였던 태종에게 이러한 모습은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태종은 즉위 후, 주도적으로 도성 재정비를 추진하는데 이는 '예치'를 강조하는 유교 이데올로기를 한양도성의 경관에 명확하게 구현하고자 한 의지의 발현으로 보여진다. 정릉의 이장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 아래 진행되었던 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유기농업단지 주요경관요소의 물리적 관리방안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Morphological Management of Major Landscape Elements in Organic Farming)

  • 안필균;공민재;이상민;김상범;조정래;김남춘;신지훈
    • 농촌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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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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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7-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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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Up to date, the majority research on the major landscape elements in organic farming has been mainly focused on the practice of seeking efficiency. The problem is that this type of study contributes to polluting the agricultural environment and damaging the ecological circulation system. As an alternative, there is a growing body of research on organic farming, but it is not widely applied that research on how to manage the landscape considering the scenic characteristics of farming villages practicing organic farming. Therefore, this study was carried out in the conservative aspects of rural landscapes in order to effectively manage the landscape of organic agriculture and, intended to be used to maintain and preserve natural and ecologically harmonious landscapes by deriving management methods suitable for landscape elements targeting the major landscape elements of the organic farming complex. To carry out, this study performed the experts survey which is composed of 13 major landscape elements, including rice paddies and fields, monoculture and diverse crops, dirt roads, windbreak trees, accent planting, dum-bung(small pond), natural small river, natural waterways, plastic film houses, one-storied houses, and pavilion. As a result, Farm land was formed in a square shape, concentrated in an independent space, planted companion plants around the crop, and covered with plants to manage the borders. As for the surrounding environment, it was analyzed that the aspart road system circulating through the village, the evergreen broad-leaved windbreak forest around the cultivated land, and the accent plant located at the entrance of the village were suitable. The hydrological environment consists of Round small pond made of stone in an open space, natural rivers around the village, and natural channels around the farmland, and The Major facilities are suitable for greenhouses that are shielded by plants in independent regions, and wooden duck houses located inside the cultivation area are suitable and The settlement facilities were analyzed to be suitable for single-story brick houses located in independent residential areas, pavilion located with greenery in the center of the village, and educational spaces shielded with wood from arable land. If supplementary evaluation criteria suitable for the management of organic farming landscape are additionally supplemented based on the results derived from this study, It is expected to enhance the landscape value of ecologically superior organic farming.

고보리 엔슈(小堀遠州)의 작정기법 (A Garden Making Methods of Enshu Kobori)

  • 홍광표;최미영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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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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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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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고보리 엔슈(小堀遠州)의 정원이 그때까지 조성되어 온 기존의 일본 정원양식과는 다르다는 것을 분석하여 그의 독특한 작법(作法)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다. 고보리 엔슈는 기존의 가레산스이 정원이 돌과 모래를 재료로 조성되는 양식적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가레산스이 양식을 창안하였다. 그는 사쯔키철쭉을 강전정하여 돌과 조화를 이루도록 연출하였는데, 이러한 엔슈의 작법은 키레이사비(綺麗)라는 미적원리에서 비롯되었다. 그러한 까닭에 엔슈의 정원은 일견 화려하면서도 단순한 정원미를 보이는데, 이것 역시 그가 창안한 독창적인 정원기법이다. 고보리 엔슈가 창안한 특유의 정원양식은 새로운 것은 추구하던 에도(江戶)시대의 사람들의 문화의식과 공가(公家) 문화가 확산되는 문화적 바탕이 작용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연유 때문인지 고보리 엔슈는 의식을 위한 형식적 차원의 정원보다는 관상 위주의 정원을 설계하고 조성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고보리 엔슈가 작정한 라이큐지(?久寺), 다이치지(大池寺), 쇼덴지(正傳寺), 난젠지호죠(南禪寺方丈), 곤치인(金地院)을 대상으로 정원의 위치, 정원의 도입요소, 정원의 구성, 정원의 배경, 돌의 사용, 식물, 경관을 고찰하여 고보리 엔슈 정원의 독창성을 규명하였다.

경산시 보호수의 현황분석 및 활용방안 (Analysis of Current Status and Utilization of Protected Trees in Gyeongsan City)

  • 김근호
    • 농업생명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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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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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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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의 목적은 경산시 보호수의 환경분석, 보호관리 및 활용 실태 등의 조사 분석을 통한 합리적인 관리 및 활용방안을 위한 기초자료를 제시하는데 있다. 조사한 결과를 보면 경산시가 지정한 41개소에 보호수 55주가 있고 총 종수는 8종이며, 수종으로는 회화나무 (30.9%)와 느티나무 (23.6%)순으로 가장 많았다. 보호수의 유형으로는 당산목이 45.5%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는 풍치목이 36.7%를 차지하였다. 200년~300년 사이의 보호수가 21주로 전체 38.2%를 차지하였고, 수고는 15 ~ 20 m 사이의 보호수가 경산시 보호수의 54.6%를 차지하였다. 보호수의 입지 유형을 보면 마을형이 34%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도로변형이 19.5%로 많았다. 식재유형은 독립수가 전체 보호수의 78%를 차지하였다. 보호수의 근원부는 나지상태가 58.5%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는 쇄석 및 자갈이 19.5%를 차지하였다. 토양경도는 평균 9.64 mm로 나타났고 보호책은 9곳에 설치가 되어있고 석축이 있는 곳은 22개소로 전체 53.7%로 조사되었다. 외과수술을 받은 보호수는 38주로 전체 70.9%를 차지하였고 표지석은 보호수 전체의 80.5%인 33개소에 설치되어 있었다. 쉼터로 이용되고 있는 곳은 13곳으로 전체 31.7%를 차지하였고 시설물은 주로 정자, 의자, 간단한 체육시설, 야외테이블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본 연구에서 기존쉼터를 정비하거나 보호수 주변을 정비해서 소규모 공원화가 될 수 있는 지역을 제시하였다. 향후 농촌지역 공원녹지 공간 확보 및 지역민의 공동체회복을 위한 보호수 주변 소공원 조성 가능성을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데 그 의의가 크다고 사료된다.

무수동 유회당 원림(하거원(何去園))의 산수체계와 공간구성 (A Study on the Natural Landscape System and Space Organization of Musudong Village's Yuhoidang Garden(Hageohwon))

  • 신상섭;김현욱;강현민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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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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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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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대전 무수동에 가꾸어진 유회당 원림(하거원)의 산수체계 및 문화경관 구성요소를 '유회당집'(18C)에 근거하여 분석한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유회당(권이진)은 보문산 남쪽 지맥 무수동에 자신의 이상세계를 반영한 하거원 원림을 경영했다. 즉, 1707년 마을 뒷동산에 선묘를 자리잡은 이후 시묘소(삼근정사) 조성, 1713년 납오지, 1714년 반환원, 그리고 1727년에 외부공간을 확충하여 하거원 원림을 완성했다. 마을의 산수체계는 대둔산-오대산-보문산이 차례로 이어져 주맥을 이루는데, 주산인 보문산의 지맥(응봉)에서 동쪽으로 뻗은 구릉이 청룡이며, 보문산의 서쪽 지맥(천근과 사정)이 백호이고, 남산은 안산이 된다. 한편, 주륜산에서 발원한 서남쪽 내(川)가 외명당수가 되고, 응봉에서 발원한 계류(내명당)가 마을 동쪽을 관류하여 남서쪽으로 출수되는 배산임수 체계를 보여준다. 마을 동쪽으로 펼쳐지는 계류와 자연 암반 등 자연경관을 활용하여 조성된 초기의 정원(반환원)은 납오지, 활수담, 고수대, 수미폭포, 도경(복숭아나무 오솔길), 오덕대(감나무), 매룡(매화나무), 샘, 배경대 등으로 구성되었다. 반환원을 확장하여 조성된 하거원은 계류와 4개의 연못, 5개의 대(臺)와 3개의 대숲(竹林), 그리고 석가산 축경원 등 수목석 경색(景色)이 어우러진 원림을 구축했다. 의미경관 요소로 (1) 부모님 추모를 위한 유회당, (2) 가문 화합을 염원한 납오지, (3) 절개를 귀하게여긴 고수대, (4) 덕과 지혜의 의미를 일깨운 오덕대, (5) 고매한 인간됨을 염원한 수미폭포, (6) 상서로움을 취한 요천대, (7) 은일자의 삶을 대입시킨 수만헌과 기궁재, (8) 가문과 학문 발전을 염원한 활수담, (9) 선조의 은혜를 일깨운 몽정, (10) 은둔자의 모습을 표현한 석가산, (11) 묘역지킴의 기쁨과 은퇴후의 삶을 위한 하거원 등을 들수 있다. 하거원의 공간구성체계는 (1) 유회당 내원(內園: 납오지와 죽천당, 오덕대, 도경과 후정 등), (2) 수만헌별업(유회당 후원(後園): 석연지와 요천대, 수만헌과 배경대, 암석원 등), (3) 석가산(12봉) 축경원(縮景園, 수만헌 동원(東園): 활수담과 수미폭포, 12봉 가산 등), (4) 마을 뒷동산에 자리잡은 선조들의 묘원(墓園), 그리고 여경암 암자와 산신각(공동체 토속신앙 제례처), 거업재(서당) 등은 유불선(儒彿仙)이 융화된 선경처로서 원근의 계절미를 시원스럽게 부감(俯瞰)할 수 있는 차경원(借景園)으로 구성된다.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를 통해 본 조선시대 읍치(邑治)의 공간구조와 관아(官衙) 조경 - 평안도 영유현과 황해도 신천군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Spatial Structure of Eupchi(邑治) and Landscape Architecture of Provincial Government Office(地方官衙)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rough 'Sukchunjeahdo(宿踐諸衙圖)' - Focused on the Youngyuhyun Pyeongan Province and Sincheongun Hwanghae Province -)

  • 신상섭;이승연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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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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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6-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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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조선후기 문신 한필교(1807~1878년)가 관직을 역임했던 읍치를 대상으로 제작한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 화첩의 평안도 영유현과 황해도 신천군 읍치를 분석 자료로 활용하여 실증사료로서의 가치추적, 공간구조 등의 전형성 정립, 관아조경 및 문화경관 특성 도출 등을 시도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풍수형국도' 성격을 겸하며 사방전도묘법으로 그려진 "숙천제아도"의 읍치도는 조선시대 지방고을의 터잡기와 공간구조는 물론 환경설계원칙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고을 치소(邑治)는 남북 중심축선에 위계를 설정한 배산임수 체계이며, 전조후침(前朝後寢)의 관아시설, 그리고 3단1묘의 제례처 등 도성에 준한 토지이용과 배치규범을 적용하고 있다. 교통요충지에 자리한 고을 치소는 어귀 장터마당을 결절점으로 안길을 따라 북쪽으로 향하면 관아 문루에 다다르는 노단경이 형성되고, 고갯길 또는 물길을 따라 외부 바깥길로 이어지는 체계를 갖는다. 즉, 동선체계는 바깥길-고갯길-어귀길-장터마당-안길-또는 샛길로 수용력과 위계에 따라 분절되며 3거리 길로 접합되는 양상이다. 지방관아의 토지이용은 3조(三朝)의 개념(외조, 치조, 연조)을 반영한 위계적 구성인데, 동헌의 후원과 객사의 별원을 포함하여 3문3조2원(三門三朝二園)의 공간체계를 보여준다. 고을의 뒷동산 소나무 숲, 명당수인 남천, 안산(案山)에 해당하는 조산(造山), 비보숲 읍수(邑藪) 등 풍수적 경관짜임이 작용되었는데, 겨울철 북서풍 차단과 여름철 상승기류 형성 등 에너지 보존, 색체 항상성, 자연재해 방지와 심리적 안정성 등 쾌적성 조건에 부합되는 환경지속성이 추출된다. 한적한 곳에 자리한 향교는 별도의 원림을 가꾸지 않았으며, 누정은 심신수양, 안분지족, 자연회귀 같은 상징적 가치, 정치적 행사와 윤리관 반영, 유흥상경 등 문화경관 양상이 다양하게 표출되는데, 객사에는 기와를 얹은 와정(瓦亭)이, 동헌과 내아에는 네모꼴 연못을 두고 소박한 모정(茅亭)이 도입되는 차별성을 보여준다. 관아에 지표경관으로 문루가 자리하고, 군사훈련 및 심신수양을 겸한 사정(射亭)이 필수시설로 도입되었다. 아사의 앞뜰은 네모꼴 마당(庭)으로 조경처리를 하지 않은 반면, 정청의 뒤뜰(後園)과 객사의 별원(別園) 등은 장식적으로 가꾸었다. 이러한 관아조경은 공간 성격 및 위계를 반영하되 기능적 지속성(차폐와 방화, 미기후조절 등)과 심리적 건전성, 상징성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경관미학이라 하겠다. 한편, 소나무, 느티나무, 배나무, 버드나무, 향나무(또는 노송), 연(蓮), 화목(花木) 등이 조경식물로 활용되었는데, 환경심리적 가치가 부가된 배후숲, 조산숲과 비보숲 등과 함께 건전한 문화경관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결과를 일반화 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조선시대 읍치의 공간구조 및 환경설계 원칙이 제도적 틀 안에서 정형성으로 작용되고 있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카츠라리큐(桂離宮, 계리궁)의 형성배경 및 공간특성 (A Study on Formative Background and Spatial Characteristics of Katsura Imperial Villa)

  • 염성진;안승홍;윤성융;윤상준;손용훈;이원호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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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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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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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한국과 일본의 정원문화는 공통적으로 중국의 원림문화의 영향을 받아 발전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 서로 다른 정원문화의 발전을 통해 정착되어 왔다. 본 연구에서는 일본의 대표적 정원조성양식인 회유식정원의 원류인 일본의 황실정원인 카츠라리큐(桂離宮, 계리궁)의 정원에 대한 이론적 고찰을 통한 형성배경 및 조성주체를 파악하고 현장조사 및 관리자 인터뷰를 실시하여 공간구성요소의 특징을 살펴봄으로서. 일본의 정원문화에 있어서 중요한 사례인 카츠라리큐에 대한 기초적 지견을 얻고자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첫째, 카츠라리큐는 겐지이야기(源氏物語, 원씨물어)에 기반을 둔 왕조문학을 통해 와카(和歌, 화가)에 통달한 토시히토친왕(智仁親王, 지인친왕)과 아들인 토시타다친왕(智忠親王, 지충친왕)에 의해 2대에 걸쳐 약 30년에 달하는 기간을 들여 완성한 최초의 치센슈유(池泉舟遊, 지천주유)카이유시키(回遊式, 회유식)정원으로 정원의 공간구성은 크게 육상과 섬, 수공간으로 구분되며 총36개의 공간구성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둘째, 카츠라리큐는 쇼킨테이(松琴亭, 송금정), 쇼카테이(賞花亭, 상화정), 쇼이켄(笑意軒, 소의헌) 등의 다정(茶亭)을 두어 원지(園池)를 중심으로 주유(舟遊)를 주목적으로 조성되었으며 이는 당시의 놀이문화를 정원에 도입한 것이다. 셋째, 원지의 서쪽에 위치한 건축물인 코쇼인(古書院, 고서원)의 북쪽에 성토를 하고 돌담을 쌓아 주변보다 높은 지형을 형성하고 그 위에 차정인 겟파로(月波樓, 월파루)를 만들어 카츠라리큐만의 경관특성인 동산에 떠오르는 달을 조금이라도 오랫동안 즐기려하였다.

둔덕리 이웅재고가(李雄宰古家)의 공간 및 경관 구성적 특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Spatial and Visual Composition of Yi Ung-Jae's Old House, Dundeok-ri)

  • 노재현;이정한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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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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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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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전통정원의 가치 발굴과 재조명을 목적으로, 임실 이웅재고가의 공간적·시각적 배치 특성과 경관과 정원 구조를 검토하여 전통정원으로서의 문화재적 가치를 부상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시도되었다.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고가가 입지한 둔덕리 동촌마을은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형국으로 3개로 모인 물줄기 북측에 전착후관한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단구대와 삼계석문의 경승을 갖는 동촌마을은 노적봉과 계관봉은 안산(案山)으로 한 '지네가 하늘을 나는 형국(飛天蜈蚣形)'의 길지로 이해된다. 이웅재고가는 16C 중반 춘성정 이담손에 의해 조영된 전북지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가이자 조선 왕실가문의 종가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및 일제강점기 일본에 저항한 충정과 대문채의 효자정려 그리고 편액과 주련에 담긴 충효의 가풍은 물리적인 가옥의 가치를 부상시키는 요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경사진 지형에 거스르지 않게 배치된 사랑채나 안채의 배치 그리고 높은 돈대에 올린 사랑채는 최대한 원경을 차경하는 효과를 거두며 왕가 건물로서의 위엄성과 위계성을 높이고 있다. 또한 사주문과 중문을 통한 안채 진입방식, 넓은 후원과 채원의 할애 그리고 안채에 배려된 공루 등의 가옥 구성은 일반 사대부가에 비해 매우 독특하다. 그러나 전후관계로 보면 사당을 주변으로 넓은 후원을 안배함으로써 유교적 이상을 실현하는 한편 자연과의 조화를 꾀하고 있다. 한편 지금은 교란·훼손되었으나 외원에는 비교적 넓은 면적을 갖는 방지원도형(方池圓島型)의 지당(池塘)이 존재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고가에서 주목되는 식재수종은 후원의 소나무, 팽나무, 감나무, 매화, 홍단풍 그리고 측정의 산수유를 비롯하여 외원의 자두나무 등이다. 석축 위로 조성된 화계는 고가의 정원상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공간으로 정원 특성을 잘 간직한 공간이지만 화계 식생경관에 어울리지 않게 종 다양성과 사당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함이 극도로 높아 식재의 짜임새를 상실한 느낌이다. 이웅재고가는 조선 전기 궁궐 밖에 조성된 궁가(宮家) 건축의 한 단면을 보여줄 수 있는 조영물이라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이웅재고가의 관리 개선방안을 제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