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Oddly Shaped Stone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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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眉叟) 허목(許穆)의 연천 은거당(恩居堂) 정원 복원을 위한 연구 - 십청원과 괴석원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Misu Heo Mok's Eunguhdang's in Yeoncheon for the Garden Restoration - Focusing on the Ten Evergreen's Garden and Oddly Shaped Stone Garden -)

  • 노재현;김화옥;박율진;김영숙;박주성;신상섭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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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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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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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 연구는 미수 허목의 정원 유적인 연천 은거당의 공간구성 및 정원적 특질을 구명하기 위해, "미수기언" 등의 시문과 고지도 그리고 소치 허련의 <연천 태령십청원도>를 중심으로 은거당의 입지와 핵심 정원인 십청원과 괴석원의 공간구성, 정원식물과 시설 등을 조사 분석한 것으로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은거당의 건물은 안채, 사랑채, 별묘 그리고 행랑채 등이며 정원은 안채와 별묘 사이의 십청원과 녹봉으로 이어지는 후원 그리고 사랑채 전정의 괴석원 등으로 모두 괴석을 정원시설로 중요하게 활용한 것으로 확인된다. "십청원기" 등 기문 분석과 후손의 인터뷰 결과, 십청원은 하도를 표방한 용도서를, 괴석원은 낙서를 상징한 귀문원을 구현하고자 한 석정(石庭)의 형태를 갖는 정원으로 추정된다. 또한 십청원에 도입된 상록식물은 용도서에 등장하는 십장청(十長靑)의 식물과 일치하는데 이를 통해 맑고 시원한 이미지를 추구한 것으로 판단되며 괴석과 함께 활용함으로써 성리학적 격물치지(格物致知)와 불로장생의 도가적 이상세계의 소우주를 구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괴석원과 주변에 도입된 화려한 화목과 화초는 귀문원에서 찾을 수 있는 변화의 용(用)을 의미하며 십청원의 상록식물과 대비를 이룬다. 더불어 은거당 정원에 도입된 괴석은 미수의 전서체에서 느껴지는 기이함과 동질의 미적 대상으로서 창고미(蒼古美)와 고태미(古態美)를 창출하고자 한 것으로 파악된다. 궁극적으로 미수는 상록식물로 바탕을 삼고 화훼류로 변화를 꾀하며 기(氣)의 체(體)와 골(骨)에 해당하는 괴석을 둠으로써 그 뜻을 더욱 견고히 한 것으로 추론되며 이는 은거당의 정원적 특질로 귀착된다. 본 연구에서 얻어진 은거당 정원의 의장적(意匠的) 특질은 향후 은거당 복원의 기초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조선 후기 상류주택 사의당(四宜堂)의 공간체계와 조경문화 (Space Organization and Landscape Culture on Upper-class's House('Sauidang') in Late Period of the Joseon)

  • 신상섭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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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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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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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홍경모(1774~1851)가 기술한 '사의당지'를 원전으로 조선시대 후기 경화세족의 저택 '사의당'의 입지와 공간구성 체계 및 조경문화를 추적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사의당은 정명공주(선조의 딸)가 홍주원과 혼인한 후 인조에게 하사받은 대지면적 530여칸 규모(약 $1,750m^2$)의 저택으로 목멱산, 도봉산, 그리고 인왕산과 장원봉이 풍수적 사신사 구조를 이룬 생룡형(生龍形) 길처에 자리했다. 한양 남부방 목멱산 아래 북동향으로 자리하였는데, 동쪽에 본채(정당) 영역을 설정하여 안뜰과 후정을 가꾸었고, 서쪽에 별당 영역(사의당)을 설정하여 원림을 조성했으며, 바깥마당은 채원을 일구어 버드나무가 줄지어 심어진 큰길과 연결되었다. 사의당을 심원(沁園: 공주의 원림)으로 비유하였고, 남쪽으로 화원과 화계가 어우러진 원림을 가꾸었으며, 북쪽으로 한양성 안팎을 부감(俯瞰)할 수 있었다. 뜰에는 정심수와 분경(盆景)을 가꾸었고 괴석과 화목 등으로 불로장생을 염원하거나 신선경의 세계를 상징화 하는 등 정신세계의 풍요를 추구했다. 식재 수종은 38종이 도입되었는데, 직접 나무를 땅에 심는 지종(地種)과 화분에 가꾼 분종(盆種)으로 구분하였고, 1점식, 2점식, 3점식, 4점식, 5점식, 8점식, 9점식 등 다양한 식재가 이루어졌다. 조경시설 요소로 태호석, 괴석, 석대(石臺), 석주(石柱), 옥대(玉臺), 석구(일영대), 담장과 울타리, 석계(石階), 섬돌, 누(樓) 등이 도입되었다. 한편, 왕희지의 난정수계서, 소식의 취옹정기, 조맹부의 적벽부, 안평대군의 비해당첩 등 조경문화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진귀한 명품을 소장하며 즐겼다.

동궐도(東闕圖)에 나타난 괴석(怪石)의 배치특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Oddly Shaped Stone's Arrangement at Donggwoldo)

  • 정우진;김화옥;박율진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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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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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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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연구는 동궐도에 나타난 괴석의 배치를 바탕으로 조선시대 궁궐에 쓰인 괴석의 배석형식과 활용을 고찰한 것이다. 동궐도에서 축선을 보조하여 정형성을 형성하는 괴석 배열의 종류는 단식, 대식, 연식으로 구분된다. 단식은 기존 건축물을 통해 형성된 축선상에 괴석 1개를 배치하여 시각적 초점을 부여하거나 중심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대식의 경우, 주로 건물 양옆에 괴석 2개를 대칭구도로 놓아 건축물에 질서와 위계를 부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또한 세 개의 돌을 나열한 연식은 주석(主石)의 역할을 하는 가운데 돌이 축선 상에 놓여 강한 방향성과 정면성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괴석 배치법은 수목의 배식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으로, 수목의 요점식재와 대칭식재 방법에서 유사성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괴석과 수목은 장소의 성격과 규모에 따라 취사선택될 수 있으며, 축 형성과 정형적 공간창출의 효과는 근본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의 결과를 바탕으로 동궐도 괴석의 배치 특성을 고찰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괴석은 중요한 건물에 위계를 표현하기 위해 설치되어 구심적인 공간을 창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둘째, 괴석간 거리는 가운데에 있는 건축물의 크기에 비례하여 조정되었으며, 이는 중심축과 좌우 대칭물 간의 비례적 균형구도를 통해 안정감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셋째, 불규칙한 괴석의 외형이 규칙적인 대칭성을 형성하는데 제한요소가 되므로 석함을 활용하여 정형성을 더하였다. 넷째, 연식(3입식) 배치에서 가운데 괴석에 변화를 주어 중심성을 강조하였다. 다섯째, 괴석은 타 점경물의 종류와 배합 및 위치조정이 수월하도록 크기를 제한함으로써 얻어지는 이동성이 있었다. 여섯째, 사의적 대상으로 감상되던 궁궐 괴석은 근본적으로 수석과 동질적인 개념의 조형물 이었으며 감상되는 방법, 형태, 구성에서 같은 맥락으로 전개되었다. 일곱째, 연식으로 놓인 괴석은 짝수일 경우 균등분할 식으로 배치되며, 홀수일 경우 중심 괴석을 중심으로 나머지가 대칭하도록 배열하는 방법을 따랐다. 이상의 배석원칙은 조선 궁궐에서 괴석을 제작하고 활용했던 특징적인 방법으로 판단된다.

중국 명·청 양주 염상원림의 설계원리 및 조영특성 (A Design Principles and Characteristics of the Garden of Salt Merchant in Yangzhou, China's Ming and Qing Dynasties)

  • 신현실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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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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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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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연구는 명·청 시대 양주 염상원림의 특성을 살펴보고자 문헌자료의 수집, 분석하여 원림조영의 배경을 살펴보았으며, 현전하는 염상원림의 설계방식, 구성요소 등을 살펴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과거 양주지역은 고대 대운하의 구축을 기원으로 문화적,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염상들은 부를 축적하면서 무역을 통한 원림조영재료의 확보, 후학양성을 통한 정치적 배후세력 형성, 외래문화 유입 등의 배경 하에 많은 원림들을 조성하였다. 둘째, 양주 지역 염상들은 교류와 휴식의 장소로서 원림을 조성하기 위해 원림전문가들에게 원림 설계를 의뢰, 조영하였으며, 가산과 장랑을 활용한 경관변화 연출, 건축요소를 이용한 공간의 명확한 구분, 물과 인접한 경점에 건조물 배치 등을 통해 실용적이고 미적인 기능을 갖춘 원림들을 소유하였다. 셋째, 양주 염상원림들은 전면의 건조물 중심 상업공간이 위치하고, 후면에는 원림을 중심으로 하는 설계특성을 지닌다. 상업구역의 원림은 건조물 전면부를 중심으로 자투리 공간에 화분이나 괴석, 대나무, 담장문양을 활용한 간단한 형태로 조성하였다. 후면의 원림은 운하와 연결된 물길이 원림 전역에 굴절된 이수체계를 형성하고, 지당과 어우러진 첩석, 석교, 석방 등이 도입되었으며, 다양한 소재와 문양의 포장, 양주 지방의 기후와 색채 대비를 고려한 수목의 도입 등이 설계에 반영되었다.

아회도(雅會圖)에 나타난 조선후기 원림문화 (Landscape Gardening Culture in Late Joseon Dynasty Depicted in 'Ahoi-do' Paintings)

  • 임의제;소현수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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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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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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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연구는 조선후기에 성행한 아회도가 기록화의 가치를 지님에 주목하여 도판 자료를 분석함으로써 당시의 원림문화를 고찰하였다. 그 결과 아회도에 묘사된 원림의 경관과 이용행태의 양상을 다음과 같이 도출하였다. 첫째, 제택에서 아회의 주된 장소는 사랑마당과 후원이었으며, 대저택에서는 높은 담장 위에 정자를 설치하고 샛문을 두는 등 외원(外園)의 경영과 이를 염두에 둔 입지 선정이 주목된다. 둘째, 화훼류를 심은 화분은 주택 정원에서만 사용하고, 사랑마당의 화오(花塢)에 식물 없이 화분과 괴석분을 놓은 경우가 있었으며, 송첨과 그늘시렁 같은 식물 재료를 이용한 전통 차양시설을 설치하였다. 셋째, 제택과 별서 원림에서 괴석이 중요한 경관요소였으며, 일부는 태호석(太湖石)으로 묘사되어 조선후기 원림에 실제 도입된 것인지 그 여부가 주목된다. 넷째, 별서 원림은 목책, 바자울, 토담 등 다양한 재료로 낮은 울타리를 설치하여 차경을 도모하고, 마당을 확보하여 지당, 괴석과 노송, 대나무, 매화, 버들, 오동, 연, 파초를 심어 인위적 정원을 조성하였다. 다섯째, 조선후기 경화사족(京華士族)은 제택과 인접한 한양의 승경지에 별장형 별서를 조영하였다. 여섯째, 누정 원림은 수림(樹林), 기암(奇巖), 단애(斷崖), 수석(水石)이 아름다운 계류변의 자연성이 높은 지역에 입지하였으며, 정자의 뒤편은 대나무 숲으로 위요하고 앞쪽에는 소나무, 은행나무, 버드나무 정자목을 식재하였다. 일곱째, 아회의 장소로 선호되었던 승경의 구조는 기봉(奇峰)과 단애가 골격이 되고 폭포가 어울려 원경을 이루었으며, 부감(俯瞰)이 가능한 산봉우리 너럭이나 송림, 버드나무, 매화가 있는 계류변 너럭바위가 아회의 적지였다. 여덟째, 원림에서 소나무가 다른 수종에 비하여 선호된 수종으로 추정되며, 특히 노송(老松)을 단식(單植)하여 상징성을 강조하였다. 아홉째, 전다(煎茶)를 위한 이동식 다로(茶爐) 시설이 네 가지 유형의 원림 모두에 도입되었다. 열 번째, 길상적 경관요소들이 어우러진 원림은 문인들의 금기서화(琴棋書畵) 및 전다를 통한 탈속적 아회를 위한 풍류의 장이었다.

19세기 서울 옥호정(玉壺亭)과 석파정(石坡亭)을 통해 본 정원 특성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 of Garden through Okhojeong Garden(玉壺亭) And Seokpajeong Garden(石坡亭) in the 19th Century Seoul)

  • 이원호;김동현;김재웅;신현실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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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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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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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연구는 옥호정과 석파정을 대상으로 두 정원의 특성을 규명하기 위해 조영 배경과 공간구성, 정원구성요소를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옥호정과 석파정은 조선 후기 권력가의 정원으로 정치적 기반 및 부의 축적을 통해 당대의 고급 기술과 자본이 투여되어 창출된 정원문화를 현실화할 수 있었다. 또한 단순 상위계층의 정원문화가 투영된 각각의 정원이 아니라 옥호정이 석파정의 조영에 관련 있었음을 조영자 간의 관계분석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둘째, 옥호정과 석파정의 공간구성은 생활공간을 중심으로 각각의 작은 정원공간이 정자 단위로 분화된 공간 구성으로 분절된 집산적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정원공간은 정자의 경영을 통하여 해당 지역의 경관에 대한 주제를 부여하였으며, 식재 및 단의 처리로 경계를 설정하고 계절별 경관의 다양화를 통해 단위 공간 내 다양한 원예 요소를 도입하는 등 각 공간에 장소성의 부여가 시도되었다. 셋째, 옥호정의 공간구성을 도식화하고 이를 석파정과 비교분석한 결과, 옥호정의 조영특성 대부분이 석파정에서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석파정의 정원이 옥호정의 공간구성기법을 그대로 수용하거나 조성 과정에서 변용되는 등 정원의 구성기법이 반영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넷째, 조선 후기 화훼에 관한 취미는 단순한 애호의 차원을 넘어 벽의 단계로까지 접어든 경우가 적지 않다. 옥호정과 석파정에서는 당시 진귀하게 여겨지는 기화요초 및 수반, 석상, 괴석, 분재, 석가산, 등나무 시렁 등 다양한 정원소재들이 정원구성요소로서 각 공간에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익산 왕궁리유적에서 후원의 위상과 의미에 대한 연구 (A Study on the Position and Meaning of the Back Garden in Wanggung-ri Site, Iksan)

  • 전용호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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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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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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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익산 왕궁리유적의 후원은 구릉상에 복잡한 수로체계를 통하여 정원과 연결된 구조로 동아시아 조경사에서 상당히 독특한 면모를 한 백제 조원기술(造苑技術)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후원은 구릉상에 입지하여 최소한의 물로 조경 효과를 높이면서도 집중 호우시 침수 피해를 줄이고, 궁성 중심 공간에 필요한 용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역U자형 대형수로와 이에 연결된 수로, 곡수로 및 집수시설로 이루어진 복잡한 수로 체계를 갖추고 있다. 특히 역U자형 대형수로의 내부에서 물이 고이는 지점이나 그 가장자리에 크기나 형태가 다양한 괴석으로 장식한 조경시설도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후원의 중심부인 구릉의 상면에는 원형 초석 시설로 둘러싼 내부에 방형 초석을 사용한 정면 4칸, 측면 4칸의 건물지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구릉의 좌 우 사면에는 말각장방형의 석축시설로 일부분이 감싸져 있는 공간 내부에 건물도 확인되었다. 아직까지 말각장방형의 석축시설의 기능 및 역할에 대해서는 잔존 상태가 좋지 못하여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그 내부의 건물과 관련된 시설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익산 왕궁리유적의 후원은 백제의 전통적인 조원 수법인 방지(方池) 스타일의 정원에 물을 끌어 들이거나 내보기 위한 곡지(曲池) 스타일의 수로(水路)를 함께 지니고 있다. 아울러 익산 왕궁리유적의 '정원'과 '후원'은 상호 유기적인 연결체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익산 왕궁성의 내부에 있는 '궁원(宮苑)'으로 보고자 한다.

동궐도에 보이는 궁궐정원의 조영수법 (A Study on Design Techniques of Palace Gardens presented in Donggwoldo)

  • 진상철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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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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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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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이 연구의 목적은 "동궐도" 에 담겨있는 모든 정원 요소를 각 원(院)별로 나누어 세밀하게 살펴봄으로써 궁궐정원의 조영특성 및 수법을 파악 하여 전통계승을 통해 현대 정원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에 있다. 연구 방법으로는 동궐도에 나타나 있는 궁궐정원의 모습을 정원 요소별로 관찰하여 특성을 파악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동궐도에 나타나는 정원 요소로 괴석과 연못, 건물과 마당, 경계와 영역, 수목 등이 있으며. 공간에서 확인되는 각 구성요소의 배치특성을 파악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가 도출되었다. 입기의 경우 동궐도내의 원(院)은 명당 내부의 최적지를 선택하여 각각의 대지를 기존의 지형과 건물의 용도에 따라 적극적으로 자연을 변형하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식재는 궁궐을 조성하면서 기존 수목을 그대로 활용하여 원칙적인 식재 방법이나 수종의 선택 기준은 확인되지 않았다. 대칭식재를 한 점이 특징으로, 이러한 대칭식재 방법은 음양 표시의 작정관(作庭觀)으로 보인다. 수종의 선정에 있어서는 상징적 의미가 강한 수종을 선택하여 식재하였다. 지당은 궁궐정원에서 대부분 관념적, 추상적 형태를 상징하는 원형으로 나타나며, 중락(衆樂)의 장소로 빈번하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정자를 만드는 형식은 일정하지 않았고, 형태적으로는 삼각, 사각, 오각, 육각, 팔각 등에서 십자모양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하게 조성되었다. 괴석과 석함은 주로 침전 주위와 동궁처소 그리고 후원에 배치되어 있었다. 화계(花階)는 주로 침전의 후면 및 동궁전, 공주의 처소 등 주로 부녀자의 거처에 나타난다. 취병(翠屛)은 자연과 단절하는 장벽이 아니라 선택적 인입을 하는 체와 같이 자연의 기를 안도하는 의도로 설치하였다. 우리나라의 정원은 구성방식에 있어서 서구나 중국의 경우와 매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조선시대 궁궐정원은 형식에 있어서는 엄격한 유가적 규범이 적용되었고, 작정 수법은 신선사상을 많이 차용하였다. 그러면서도 소탈한 측면을 가지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조선 후기 회화작품에 나타난 취병(翠屛)의 특성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Chuibyong(翠屛: a Sort of Trellis) in Paintings of Late Joseon Dynasty)

  • 정우진;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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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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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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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 연구는 회화자료의 분석을 통해 조선시대 취병의 특성과 제요소를 고찰한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조선시대 회화자료 25종에 대한 분석 결과, 취병은 주로 사생활 보호를 위한 차폐시설과 부지의 공간을 분할하는 구획시설로 기능하였으나, 내적으로는 정원에 품격과 아취를 부여하는 소품으로 설치되었다. 특히 취병 주변으로 학, 사슴등의 동물상 및 소나무, 파초, 대나무, 오동나무 등의 식물상과 괴석, 연못, 정자 등의 다양한 정원요소들이 나타났는데, 이것들은 이상적인 문인정원에 구비되어야 하는 일련의 조합으로 파악되었다. 둘째, 취병은 중국 고사(古事) 속 문인문화를 표상하는 관념적인 물상으로 인식되었다. 그러한 이미지는 고스란히 정원문화 속에 투영되었는데, '인물고사도 속 원림'을 모방 재현하는데 있어 취병은 중요한 경물로 사용되어 왔다. 셋째, 형태 기능 측면에서, 조선시대 회화 속에 나타난 취병들은 기본적으로 차폐 및 구획의 기능이 주요하였다. 사람 키를 웃도는 담장이나, 심지어 중국 대문 앞뒤에 설치되는 영벽의 높이까지 솟아 있기도 하여 공간적 필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취병이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넷째, 취병은 특정한 기능이나 입지상황 때문에 설치된 것보다는 당시 국내에 유행한 명대 문인문화의 유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중국에서 전해진 서원아집도 등에 나타난 취병의 도상은 한양을 중심으로 부유층의 저택에서 재현되었는데, 취병을 통해 부귀와 문인의 기상을 표현하려 했던 초기양식이 궁궐 및 상류층의 주택에서나 조성될 수 있는 고급 정원요소로 전화되었다. 또한 19세기 중엽 이후 취병의 활용은 평민의 주거양식으로 확산되는 이른바 저변화의 양상을 보였으며, 이는 취병이 토착화된 전개로 간주된다.

'전라구례오미동가도(全羅求禮五美洞家圖)'를 통해 본 운조루(雲鳥樓)의 공간배치계획과 경관 고찰 (A Study on the Space Planning and Landscape of 'Unjoru(雲鳥樓)' as Illustrated in the Family Hereditary Drawing, "Jeolla Gurye Ohmidong Gado(全羅求禮五美洞家圖)")

  • 신상섭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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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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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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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계화기법(界畵技法)으로 그린 '전라구례오미동가도(全羅求禮五美洞家圖)'를 통해 운조루(雲鳥樓) 살림집의 공간배치계획과 경관 기법을 고찰한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오미동가도'는 창건주 류이주(柳爾?)가 용천부사로 재임할 때(1782년) 설계도면을 보내 집을 짓게 하였다는 점, 정형화된 풍수적 사신사 구조의 자리잡기와 기본계획도 성격이 농후한 점, 그리고 합각지붕이 1804년에 솟을대문으로 중수되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운조루 창건시기(1776~1783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운조루는 지리산 노고단(祖山)과 형제봉을 주산(主山)으로, 오봉산(案山)과 계족산(朝山)을 안대로 자리했는데, 동쪽으로 흐르는 동방천(外明堂水)을 표현하는 등 배산임수 풍수국면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다. 셋째, 운조루는 직교 축선에 위계를 설정하여 품(品) 자형 건물군이 5영역으로 분화된 구조인데, 바깥뜰 외원과 뒤뜰 후원을 갖춘 5동(棟) + 6마당(庭) + 2원(園)의 토지이용체계를 가진다. 넷째, 심미성과 풍수적 화기비보(火氣裨補)를 겸한 바깥뜰(외원)의 조성은 연못(방지원도형)을 중심으로 유교와 도교적 관념 등 상징적 경물(景物)을 대입시켜 지속 가능한 생태정원을 구축하고 있다. 다섯째, 사랑마당에는 화계(花階)와 화오(花塢)를 가꾸었고, 괴석, 학과 매화나무, 소나무, 위성류, 초화류 등 조경 요소를 활용하여 선경의 이상세계를 구축함은 물론 정심수를 도입하는 등 형이상학적 상징성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사랑채 누마루에서 조망되는 원경과 중경, 그리고 앙부(仰俯) 경관 등 자연의 경(景)이 내부로 관입되거나 외부로 확장되는 차경(借景)과 관경(觀景)의 미를 발견할 수 있다. 여섯째, 북쪽 담장 밖의 소나무 총림과 조산(造山)은 주거환경의 쾌적성 제고 측면은 물론 풍수적 채움의 미학이 고려된 전통조경기법 사례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