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Korean Economic History

검색결과 508건 처리시간 0.032초

국내 윤활유 유통 현황과 프랜차이즈 채널 판매에 관한 사례 연구 (Case Study for Distribution Channel of Lubricants and Franchise Network of Korea)

  • 감우균;이상윤
    • 한국프랜차이즈경영연구
    • /
    • 제4권1호
    • /
    • pp.91-112
    • /
    • 2013
  • 현대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자동차 등 모든 운송 수단과 생산 시설을 보유한 산업체에서 필수 불가결하게 사용하고 있는 윤활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함께 각각의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산업재이며 소비재이기도 한 윤활유 유통과 관련하여 국내 시장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고, 세분화된 시장과 그 용도의 차이점을 조명하여 각각의 특색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대규모 제조사와 중소기업인 대리점, 부판점, 소매상으로 이어지는 유통 채널의 특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자동차용 윤활유 판매와 관련하여 프랜차이즈 정비업체에 대한 현황을 이해하여 판매 확장 가능성을 알아본다. 그리고 윤활유 제조업체와 유통 채널의 역할과 필요한 요건을 확인하며, 채널에 존재하는 문제점에 대한 개선 방안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생물다양성에 대한 기후변화의 영향과 그 대책 (Effects of climate change on biodiversity and measures for them)

  • 안지홍;임치홍;정성희;김아름;이창석
    • 한국습지학회지
    • /
    • 제18권4호
    • /
    • pp.474-480
    • /
    • 2016
  • 본 연구에서는 지구적 차원에서 생물다양성의 성립 배경과 그동안 일어난 변화 그리고 기후변화가 생물다양성 및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고 그 영향을 줄이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였다. 생물다양성은 생명체의 풍부한 정도이며, 생물을 구분하는 모든 수준에서의 다양성을 종합적으로 의미한다. 즉, 생물다양성은 유전자, 종 그리고 생태계 전반과 그들의 상호작용을 아우른다. 이는 생태계의 기반을 구성하며, 모든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의존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생물다양성은 주로 인간 활동에 의해 점점 더 위협받고 있다. 지구상의 생물은 생명이 탄생한 이래 약 40억년의 역사를 통해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한 결과, 약 1000만 내지 3000만종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게 되었다. 생물다양성을 구성하는 무수한 생명들은 각각의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관계 속에 얽혀 있다. 우리들이 현재 생활하고 있는 지구의 환경도 이러한 생물체의 방대한 연관성과 상호작용에 의해 긴 세월 동안 만들어져 왔으며, 인류도 하나의 생물로서 다른 생물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주위의 생물들이 없다면 사람도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인류는 최근 수 백 년 간 과거의 평균 멸종속도를 1000배 가량이나 가속시켜 왔다. 우리는 미래 세대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라도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는 한편, 지속가능하게 이용할 책임이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어왔으나, 동시에 이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반도 국가라는 지리적 특성에 의해 본래 풍부했던 생물다양성을 빠르게 소실시키는 결과를 야기하였다. 한국인은 오랫동안 농업, 임업 그리고 어업을 해오는 과정에서 자연과의 공존을 통해 독특한 고유의 문화를 창조하였다. 그러나 근래 서구문명의 유입과 과학 기술의 발전 과정에서 이러한 자연과의 관계는 멀어지게 되었으며, 자연과 문화 사이의 조화로운 조합에 의해 창출된 고유한 풍토는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한국의 인구는 세계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과는 반대로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인구 감소에 의한 자연의 회복에 발맞추어 급속한 인구 증가 및 경제 성장으로 인해 훼손된 생물다양성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한 이래 다섯차례의 대멸종이 있었다. 현대의 대멸종은 매우 급속히 진행되고 있으며, 인간 활동에 의한 영향이 주요 원인인 점에서 이전의 것과 구분된다. 기후변화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으며, 생물다양성은 이러한 변화에 매우 취약하다. 만약 생명체가 변화하는 환경에서 '진화를 통한 적응', '생존가능한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 등과 같은 생존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이들은 절멸할 것이므로, 기후변화가 지속된다면 생물다양성은 극도로 훼손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훼손정도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후변화가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적극적이고 심도있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생물계절의 변화, 식생 이동을 비롯한 분포 범위의 변화, 생물 간 상호작용의 부조화, 먹이 사슬 이상에 기인한 번식 및 생장률 감소, 산호초 백화현상 등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으로 등장하고 있다. 질병의 확산, 식량 생산 감소, 작물 경작지 범위 변화, 어장 및 어업시기의 변화 등은 인간에 대한 영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우리는 온실 가스 배출량을 감소시켜 기후변화 완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온실가스 배출을 당장 멈추더라도, 기후변화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런 점에서, 기후변화 적응 전략을 준비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 될 수 있다. 생물다양성에 대한 기후변화 영향의 지속적 모니터링 및 보다 적합한 모니터링 체계 구축이 선행과제가 될 수 있다. 생물다양성이 성립할 수 있는 생태적 공간의 확보, 이동 보조 및 남북을 이어주는 수평 및 저지대와 고지대를 이어주는 수직적 생태네트웍이 기후변화에 따른 생물다양성의 적응을 돕는 대안으로 추천될 수 있다.

숫자로 본 대한지리학회 60년 (Sixty Years History of the Korean Geographical Society as a Numerical Record)

  • 형기주
    • 대한지리학회지
    • /
    • 제40권6호
    • /
    • pp.748-761
    • /
    • 2005
  • 본 연구는 대한지리학회 60년의 역사를 그 체제, 예산, 간행물, 회원수, 전공, 논문 등을 통해서 그것이 어떻게 변하여 왔는지를 밝히고, 동시에 학회 60년 역사의 시기구분을 시도 한것이다. 한국에 있어서 서구식 근대지리학의 역사는 불과 60년, 대한지리학회가 창립(1945년 9월11일)되면서 비로소 시작된다. 1960년 IGU 스톡홀름 총회 때, 겨우 국제적 회원국으로 가입하였고, 1963년에 대한지리학회 학회지 창간호가 탄생하였다. 이로부터 불과 40여년 만에 한국은 제 29차 국제지리학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루면서 새천년을 시작하였으니 대한지리학회는 한국의 경제성장 만큼이나 급성장한 셈이다. 학회의 회원수는 1966년에 불과 116인이었으나 2004년 현재에 약 1000인에 이르고, 박사학위 소지자는 1960년에 단지 2인이었으나 2004년에 388인, 이중에 약$43\%$는 외국에서 받은 학위이다. 전공별 회원수는 경제${\cdot}$사회지리 분야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도시${\cdot}$인구지리 분야이다. 최근10년 동안에 생태지리학을 포함한 자연지리와 지리교육, GIS분야의 전공자수가 급증하고 있는데, 이것은 시대의 요구를 잘 반영하는 현상이다 학회지 창간호가 탄생한 것은 1963년이지만 이것이 정기간행물이 된 것은 1966년 부터이고, 1993년부터 영문판을 포함하여 계간 및 격월간으로 간행되고 있다. 학회지에 계재한 논문의 편수를 보면, 1960${\~}$70년대에는 연간 평균7편, 1980년대에 약 11편, 1990년대에 24편, 새천년에 와서 무려 52편으로 급성장하였다. 1990년대 이후 논문을 계재할 기회가 많아졌고, 회원들의 연구활동이 고무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회지에 실린 전공분야의 분포를 보면, 역시 경제${\cdot}$사회지리 분야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생태학을 포함한 자연지리학 분야, 그리고 도시 인구지리 분야이다. 앞에 지적한 전공 회원수와 함께 논문계재 편수에 있어서도 문화${\cdot}$역사분야, 지리교육 분야, 응용 및 GIS 분야는 최근에 급성장하는 추세이다. 대한지리학회는 회원수나 그 활동으로 보아서 급성장하고 있으며 국제화 되고있다. 그리고 지난 60년의 역사를 시기별로 나누어 성격을 부여한다면 (1)창립과 혼돈기($1945{\~}1959$), (2)재건기($1960{\~}1969$), (3)체제정비기($1970{\~}1989$), (4)약진기($1990{\~}1999$), (5)국제화시기($2000{\~}\;$)로 나눌 수 있다.

여성의 임금수준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 분석 (The Effects of Female Wage on Fertility in Korea)

  • 김정호
    • KDI Journal of Economic Policy
    • /
    • 제31권1호
    • /
    • pp.105-138
    • /
    • 2009
  • 지난 20여 년간의 지속적인 출산율 감소 현상에 대응한 최근의 정책논의에서 출산율 감소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많이 이루어진데 반해 실증적 연구 결과의 양은 아직 빈약한 수준이다. 본 연구는 출산율 감소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로 이해되는 여성의 임금수준이 1980년대 이후의 출산율에 미친 영향을 실증적으로 분석한다. 기간모형을 이용하여 출산율의 한 구성요소인 출산 간격을 분석한 결과, 1980년부터 2005년까지의 두 번째 출산확률의 감소 중 여성 임금의 변화가 약 17%를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의 한계로 인해 통제되지 못한 변수가 존재하나, 최소한 여성의 임금수준이 출산에 미치는 총체적 효과의 크기를 제시하는 하나의 추정치로서 의미가 있다. 임금으로 표현되는 여성의 노동시장에서의 기회비용 상승이 자녀에 대한 수요를 감소시킨다는 사실은 출산율 저하가 경제발전에 따르는 현상임을 암시한다. 따라서 출산율 제고와 여성의 고용 증진은 동시에 추구해야 할 정책목표로 보이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는 자녀양육에 대한 여성의 노동시장에서의 기회비용을 줄이는 포괄적인 가족친화정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 PDF

맹자사상의 사회복지적 함의 (Mencius Thoughts on Social Welfare)

  • 김영민
    • 한국철학논집
    • /
    • 제57호
    • /
    • pp.91-125
    • /
    • 2018
  • 본 논문은 사회복지 관점에서 바라 본 맹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맹자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사회복지 사상은 현세적이고 인본주의적으로 이는 지금의 사회복지 이념에 근접해 있다. 사회복지는 18세기 산업혁명 이전부터 박애사업, 구제사업, 자선사업 혹은 사회사업 등의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복지란 사회 구성원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삶의 조건을 보장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사회 통합과 안녕을 달성하려는 사회적 활동의 총체를 뜻하기도 한다. 이는 사회구성원의 생활하는 삶의 상태이며 안정(Well bing)을 의미한다. 안정은 최소한의 물질적 욕구와 심리적 안정을 말한다. 맹자의 항산 항심론과 공정한 조세 제도, 정전제를 통한 경제제도의 실현은 사회복지 이념인 사회구성원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고 행복을 증진 충족시키며, 궁극적으로는 사회 통합과 안녕을 달성하려는 사회적 활동의 총체와 뜻을 같이 한다. 맹자의 사상에는 백성을 중시한 민본사상이 내재해 있으며,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불안과 불평등의 문제를 왕도정치에서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맹자의 왕도정치는 물질적 안정을 기반으로 한 민본사상과 효제를 근본으로 하여 도덕성의 교육으로 백성들의 행복감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고 최소한의 물질적 안정과 심리적 안정을 사회복지제도와 복지정책의 주요 요소로 하여 최저생활 보장, 사회적 평등,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 확대 및 생활의 질 향상 등이 사회복지의 주요 이념이다. 맹자의 사상 안에는 이와 같은 사회복지의 주요 이념이 모두 포괄되어 있다. 특히 맹자는 정치적으로는 위정자의 인정을 바탕으로 하고, 경제적으로는 주나라의 정전제를 시행하여, 윤리 도덕적으로 안정된 사회가 확립되기를 원했다. 그 사회는 바로 백성을 근본으로 하는 사회이며, 그러한 사회의 실현이 맹자가 원했던 이상사회였고, 맹자 사회복지사상의 목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맹자의 사상 속에서 오늘날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사회복지 이념과 이를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실천윤리로서의 규정을 살펴보았다. 또한 맹자의 사회복지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당시의 사회적 배경과 경제적 상황, 정치적 관념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는 맹자의 사상 속에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사회복지적 요소를 심층적으로 고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로컬, 룸펜, 경제적 인간, 곽하신 소설의 세 좌표 (Local, Jobless Person, Homo Economicus, Three Axis of Kwak Hashin's Works)

  • 김양선
    • 대중서사연구
    • /
    • 제26권3호
    • /
    • pp.161-188
    • /
    • 2020
  • 이 논문은 현대소설사 연구에서 잊힌 작가 곽하신의 소설세계의 전체 면모를 복원, 분석함으로써 문학사의 외연을 확장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곽하신 작품세계의 단절 내지 비연속성에 주목하여 식민지기와 전후로 시기를 크게 분절하고, 각 시기 작품세계의 특징을 로컬(식민 시기), 룸펜(전후), 경제적 인간(전후 일부 단편, 장편대중소설)이라는 세 좌표를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2장 '로컬-『문장』지의 세계관'에서는 30년대 후반 『문장』지에 집중 발표된 곽하신의 소설이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비애, 전근대적인 시간의식, 로컬-향토에 대한 지향성을 뚜렷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일제 말기 문학의 한 흐름인 반(反)근대의 미의식을 구현하였다고 평가하였다. 3장 '룸펜-전후 남성(성)의 형성(1)'과 4장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 경제적 인물의 등장-전후 남성(성)의 형성(2)'에서는 50년대 말 전쟁이라는 비상시국을 경유해 전후 저개발 자본주의 국가에 진입한 한국사회의 현실이 한편으로는 룸펜, 루저 남성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공리주의나 승자독식의 세계관을 체현한 남성이라는 대조적인 남성-젠더의 출현으로 형상화 된다고 파악했다. 50년대 말 '룸펜' 소설들은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허약한 남성(성)을 통해 보여주었다. 남성-젠더/지식인은 삶의 토대가 마련되지 못 한 전후 현실에서 자신의 무능력과 불안을 여성/아내에게 투사하거나 도덕이나 친밀성보다 생존을 도모하는 길을 취한다. 특히 4장에서 분석한 대중소설 <여인의 노래>, <무화과(無花果) 그늘>에는 입신출세를 위해 동료를 배신하거나, 음모를 꾸미거나, 연애관계를 이용하여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성취지향적인 남성인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체현한 경제적 인간들이 등장한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하는 약육강식의 경제적 인간이 전후 남성 젠더로 구축되는 과정을 선악의 대립이라는 대중소설의 형식을 빌려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곽하신은 식민 시기 한국어로 글쓰기, 문학 하기의 마지막 세대에 해당한다는 점, 저널리즘적 세태묘사, 대중소설의 양식을 빌려 전후문학의 범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문학사의 주변에서 외연을 확장한 작가로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1950년대 중반 이후 농림/농업고등학교에서의 농악(農樂) 교육이 한국농악 현대사에 끼친 영향과 의의 (Impact and significance of Nongak(農樂) education in Agricultural High School since 1950 on the modern Korean Nongak History)

  • 양옥경
    • 공연문화연구
    • /
    • 제40호
    • /
    • pp.111-136
    • /
    • 2020
  • 해방이후 국가적 초기화 상황과 다를 바 없는 국면에서, '민족주의'는 정부에 의해 혼돈과 분열의 상황을 극복하고 사회적 결속력을 높이기 위한 이념적 도구로 선택되었고, 많은 전통예술 그 중에서도 '민속예술'이 '민족예술의 정수'로 상징화되었다. 이와 함께 농악, 민요, 민속놀이, 무용 등과 같은 기층의 예술양식들이 이전의 지역 공동체사회보다 더 확장된 사회-국가로 불려나오게 되고, 그에 부응한 여러 사회문화적 현상이 잇따르게 되는데, 그 영향이 학교 교육의 범주에서도 발견된다 학교 안에서의 국악-민속예술 교육이 촉발되어 농악을 비롯하여 민속무용, 민속음악 등이 전문예술인들의 지도 하에 교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수되게 된다. 그로 인해 전문 민속예술인 양성을 목적으로 한 마땅한 교육기관이 극소수에 불과했던 당대에 농악인재를 양성하는 역할을 대행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현상은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보다 실업목적형 학교인 농림고/농업고에서 두드러진다. 그리고 그 교육성과는 당대를 넘어서 현재의 농악 전승 현장까지 연결되어 있으며, 각별히 한국 근현대농악사에 여러 유의미한 사실들을 낳았다. 본 글은 세 지역 농림고/농업고의 농악부 운영 실례를 통시적으로 살펴보고, 그것이 현재의 한국 농악 전승 국면과 어떤 사실관계에 있으며, 그에 대한 농악사적 의의와 시사점을 규명한다.

전주 남부지역 쥬라기 화강암질 저반체의 지열사와 융기사: 피션트랙 열연대학적 해석 (Thermal and Uplift Histories of the Jurassic Granite Batholith in Southern Jeonju: Fission-track Thermochronological Analyses)

  • 신성천
    • 자원환경지질
    • /
    • 제49권5호
    • /
    • pp.389-410
    • /
    • 2016
  • 옥천대 남서부인 전주-김제-정읍일대 쥬라기 화강암질 저반체로부터 구한 FT 연대는 넓은 범위에 걸쳐 나타난다: 스핀=158~70 Ma; 저콘=127~71 Ma; 인회석=72~46 Ma. 교란되지 않은 일차냉각 및 리셋 또는 부분감소된 FT 연대, 그리고 일부 트랙 길이 측정자료에 기반한 열연대학적 해석을 통해 화강암체가 겪은 복잡한 지열사를 규명하였다. 이 화강암체의 전체 냉각사는 정출 후 $300^{\circ}C$ 등온선까지의 비교적 빠른 전기 냉각(${\sim}20^{\circ}C/Ma$)과 $300^{\circ}C-200^{\circ}C-100^{\circ}C$ 등온선을 거쳐 현재 지표온도에 이르기까지의 매우 느린 후기 냉각($2.0{\sim}1.5^{\circ}C/Ma$)으로 특징지어진다. 이 쥬라기 화강암체의 많은 부분은 일련의 후기 백악기 화성활동에 의해 적어도 $170^{\circ}C$ 이상(최고 >$330^{\circ}C$)의 다양한 수준에 달하는 지열상승을 겪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양한 후기 화성암체들의 두 지점으로부터 중복측정된 FT 저콘 연대의 일치된 결과는 그들의 생성시기를 잘 정의한다: 석영반암=$73{\pm}3Ma$; 섬록암=$73{\pm}2Ma$; 유문암=$72{\pm}3Ma$; 장석반암=$78{\pm}4Ma$ (전체 가중평균=$73{\pm}3Ma$). 이들 후기 화성암체와 페그마타이트 암맥군의 관입은 온천개발지역(화심, 죽림, 목욕리, 회봉 등)을 위시한 연구지역 내에서의 후기 지열상승에 주요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 화강암 저반체의 후기냉각이 지표면의 침식-삭박에 따른 상대적 융기에 의해 근본적으로 규제되었다고 가정하면, 전기 백악기 이후의 융기는 연간 평균 약 0.05 mm (즉 백만 년에 약 50 m)의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되었다. 100 Ma, 70 Ma, 40 Ma를 기준으로 현재까지의 총융기량은 각각 5 km, 3.5 km, 2 km 정도로 추정된다. 여러 지점의 일정한 융기량은 암체 전체가 광역적으로 고르게 융기하였음을 지시한다.

노동청 기록의 재조직에 관한 연구 - 국가기록원 소장 기록을 중심으로 - (Research on the Re-organization of the Administration of Labor's Records in the custody of the National Archives)

  • 곽건홍
    • 기록학연구
    • /
    • 제23호
    • /
    • pp.141-178
    • /
    • 2010
  • 노동정책 수립과 생산현장에서 노동법령을 관철하는 행정기관으로서 노동청은 주로 기술 실무적인 기능을 수행하였다. 노동청 잔존 기록 또한 노동정책 결정과정을 알 수 있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며, 불균형적으로 존재하는 행정기록의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노동청 잔존 기록은 이관 당시의 무질서한 편철 상태가 유지되어 있어 기록철명으로는 기록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비록 기록철을 찾았다고 해도 일일이 기록건과 내용을 파악해야 하는 수고를 이용자가 부담해야 한다. 노동청 잔존 기록을 재조직하기 위해 노동청의 기능을 4단계로 분해하여 잔존 기록을 연계하였다. 또한 '기록물 개요 목록'을 작성하여 이용자가 더 많은 기록 정보를 이용하여 기록에 접근할 수 있도록 구상하였다. 아울러 선후행 관계를 알 수 없는 잔존 기록에 대한 '논리적 재편철'을 제안하였다. 이와 같은 잔존 기록 재조직 방식은 향후 기록의 기술과 검색도구 제공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물론 노동기록의 수집 평가 정책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사 맵(map)을 작성하는 것은 노동기록 수집 전략의 출발점이다. 이를 통해 이용자는 잔존 기록에 대한 접근을 구조적으로 할 수 있다. 노동사 맵 작성을 위해서는 먼저 잔존 노동기록의 광범위한 조사 분석이 필요하다. 경제사회분야 행정기관은 물론이고, 수사기관, 국회 등의 잔존 기록을 조사 분석해야 한다. 이와 함께 노동사 주요 사건과 활동을 주제별, 시기별로 표상화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이를 바탕으로 잔존 기록과 연계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노동기록 수집과 구술사 프로젝트의 수행 등에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 시기의 대항기억과 재생산된 기록의 역사 담론 전시 『Rise and Fall of Apartheid : Photography and the Bureaucracy of Everyday Life』를 중심으로 (The Counter-memory and a Historical Discourse of Reproduced Records in the Apartheid Period : Focusing on 『Rise and Fall of Apartheid: Photography and the Bureaucracy of Everyday Life』)

  • 이혜린
    • 기록학연구
    • /
    • 제74호
    • /
    • pp.45-78
    • /
    • 2022
  •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인종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1948년부터 1994년까지 시행했다. 이 정책의 주요 내용은 백인과 인도인, 혼혈인, 흑인 등 인종을 계급화하고, 계층에 따라 거주지와 개인 재산 소유, 경제적 활동 등 모든 사회적 행위를 제한하는 것이었다. 백인을 제외한 모든 인종이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았고, 탄압받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시민들은 무차별한 폭력을 일삼는 정부에 저항하였고, 이들을 지탄하는 여론은 지역 사회를 넘어 세계 곳곳으로 확대되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 중 하나는 폭력 현장을 자세히 기록한 사진 이미지들이다. 민중 탄압을 포착했던 외신 기자들은 물론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사진작가들은 개인의 차원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는데 몰두했다. 이들이 현실을 알리려는 의지가 없었고 실제로 이를 사진으로 기록하지 않았다면, 많은 사람이 인종 차별로 기인한 사태의 참혹함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에 본 논문은 아파르트헤이트의 여러 단면을 포착해 그와 관련한 여러 기록을 전시한 『Rise and Fall of Apartheid: Photography and the Bureaucracy of Everyday Life』를 주목하고, 사진에서 묘사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자행된 인종 차별의 면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전시는 아파르트헤이트가 시작된 1948년부터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잘못된 역사관을 바로잡으려는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한 1995년까지의 시기를 다룬다. 전시에 출품된 수많은 사진은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피터 마구베네(Peter Magubane), 이안 베리(Ian Berry), 데이비드 골드블라트(David Goldblatt), 산투 모포켕(Santu Mofokeng) 등이 촬영한 것으로, 다양한 아카이브를 비롯한 박물관, 미술관, 언론 매체의 소장품이다. 전시에 출품된 사진들은 일차적으로는 사진작가들의 작업 결과물이다. 사진 작품인 동시에 1960년대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과거를 증명하는 매체이지만 역사학이나 기록학적인 관점보다는 사진사와 미술사의 영역에서 주로 다루어졌다. 하지만 전시된 사진들은 기록물로서의 특성이 있고, 그 안에 담긴 맥락 정보는 역사를 다양한 시각으로 되짚어볼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기존에 연구된 영역에서 확대하여 다양한 시선으로 당대를 살펴보고, 이를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전시에서 선보인 사진 작품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공식 기록에 포함되지 않은 사건과 사람을 증명하고 서술한다. 이런 점은 보통 사람들의 기억, 개인의 기록을 통해 사회적으로 소외된 인물과 사건을 역사적 공백으로 편입시키고, 여러 매체로 재생산되어 기록 생산의 맥락을 강화하고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