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Forest and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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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치유효과의 불교적 고찰 (A Buddhist Study on the Effect of Forest Healing)

  • 서병찬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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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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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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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산림치유를 불교적 관점에서 분석하여 그 효과를 향상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숲은 어떤 종교보다도 불교와 깊은 인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붓다의 일생은 숲과 나무와 이어져 있으며, 이는 숲의 영성적 본질과 역할에 기인한다. 치유(治癒)란 심신(心身)의 고통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불교에서는 실천수행법을 통해서 해결한다. 감각제어에 대한 생각, 탐욕, 좋지 않는 감정 등 망상이 일어나는 현상을 정확하게 이해함으로써 불필요한 자극이나 외부대상을 추구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인간은 아름다운 자연경관 속에서 오감(五感)을 통해 감각기관상의 쾌적함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된다. 산림(숲)에 들어가면 오감의 작동으로 제 6 의식(意識)이 망상(妄想)을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 좋은 환경들이 숲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산림이라는 자연 환경적 치유인자와 불교이론에 근거한 효과를 선행연구를 토대로 분석한 예비연구다. 불교가 산림치유에 미치는 치유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지를 고찰한 결과, 기존 산림치유기법과 더불어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 효과성 검증은 차후 실험연구 등을 통한 후속연구과제로 남겨두고 본 연구가 산림치유효과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Cultural Symbolism and Acculturation of Temple Plants in China: Focused on 'Bodhi Tree'

  • Chai, Tian-Long;Rho, Jae-Hyun
    • 인간식물환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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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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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77-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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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Background and objective: Plants in temples are the results of cultural symbolization that embraces the experience and enlightenment of humans about life. As a way to improve the acceptance of the foreign religion, China gave cultural symbolization to plants in temple gardens through integration with traditional cultures and the understanding of the nature of plants themselves. This study aimed to identify cultural symbolism and signs of acculturation associated with Buddhist plants, targeting Bolisu, the most essential and symbolic plant in temple garden forests in China and Korea. Methods: The morphological and ecological characteristics of plants, functions, the texts that contained the history of Buddhism and literary works were examined through literature review, and the relation of Ficus religiosa with its planting conditions and nature, and Buddhist culture was explored. In addition, the cultural value of Buddhist plants themselves in establishing temples and the reason why Bolisu was planted in temples were reviewed through time series analysis. The obtained results were interpreted using an inductive method to identify substitutes for F. religiosa, cultural symbolism and signs of acculturation. Results: F. religiosa as one of the three holy trees and the five trees and six flowers in Buddhism is known as the original Bolisu. Since it grows well and is widely distributed in regions that accepted Indian Buddhism, it became the most representative holy tree in Buddhism. From the perspective of tree shape and nature, F. religiosa is in line with the Buddhist spirit of saving those in need with mercy and redeeming mankind, and figuratively shows that perfection can be attained like the fruit of Bolisu. Chines Buddhism had adopted highly symbolic plants for a long period of time as a means to spread the same belief and doctrines as Indian Buddhism. In China, however, there were only limited areas suitable for the growth of F. religiosa, and for this reason, borrowed Bolisu trees including Tilia. miqueliana, T. mandshurica and T. amurensis and other plants such as F. virens Ait. var. sublanceolata, G. biloba and M. alba were planted as a substitute in most regions, having been given with symbolism and belief as Bolisu. Conclusion: Chinese Buddhism planted the same plants as Indian Buddhism in order to enhance symbolism and also similar substitutes to express the same symbolism. This is a kind of acculturation and its influence and customs were not limited to China, but were introduced to Korea, The difference between China and Korea was that G. biloba was excluded from the substitute for Bolisu in Korea.

주요 사찰에 일제가 심은 전나무 노거수의 식재의미 연구 (A Study on Reasons for Planting Abies holophylla by Imperial Japan in Korean Temples)

  • 박찬우;정미애;이연희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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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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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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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 고는 주요 사찰에 노거수로 현존하는 대부분의 전나무는 일제에 의해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동안 신목(神木)으로 심어졌다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연구되었다. 전나무 노거수의 현존량과 식재위치 특성, 전나무 노거수의 식재시기 특성, 일본의 고대신앙과 전나무의 연관성을 분석하였다. 전나무 노거수를 신목이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일본 신사에서는 가도로부터 뻗은 참배로에 가장 많은 신목이 심겨지는데, 우리 사찰에서는 일본의 참배로와 비슷한 공간인 일주문에서 누문 사이에 가장 많이 심겨진 식재위치의 공통점 때문이다. 둘째, 몇 개의 주요 사찰에서 가슴높이 직경이 가장 큰 전나무를 조사한 결과, 100cm에서 60cm 사이의 범주여서 일본 불교의 조선 개교 원년인 1877년부터 일제강점기 1945년 사이, 2015년 현재 70년생에서 138년생 사이에 포함되는 크기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셋째, 1877년 일본 불교계가 조선개교를 시작하면서 일본 고대사에 있는 신공황후의 삼한출병을 보살펴준 스와대사의 신(神)을 일제의 수호신으로 삼고, 우리나라 주요 사찰에 현신시키기 위하여 전나무를 심었을 것이라고 하는 연관성이 너무도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우리 사찰의 전나무 노거수는 강제적이었든지 부지불식간에 식재되었든지 그 식재의미에 대한 적절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현재의 거목으로 성장하였다. 본고의 주장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본 이슈에 대한 논의를 기대한다.

백두대간의 사찰림 황악산과 직지사의 식물상 (The Flora of Mt. Hwang-ak and Jikjisa, Temple Forest in Baekdudaegan)

  • 손용환;박성혁;서한나;박완근;손호준
    • 한국자원식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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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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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5-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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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본 연구는 황악산(경상북도, 김천시)과 직지사 경내 식재종에 대한 식물상 조사로 2019년 4월부터 10월까지 총 12회에 걸쳐 관속식물 분포를 조사하였다. 조사된 전체 분류군은 96과 312속 462종 4아종 59변종 9품종 총 534분류군이 자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조사된 식물 중 한국특산식물이 13분류군, 산림청지정 희귀식물 멸종위기종 1분류군, 위기종 2분류군, 취약종 4분류군, 약관심종 10분류군, 자료부족종 1분류군 총 14분류군으로 확인됐다. 침입외래식물은 광분포 등급14분류군, 심각한 확산등급 5분류군, 우려되는 확산등급 3분류군, 경미한 확산등급 7분류군, 잠재적 확산등급 5분류군, 총 34분류군으로 귀화율은 6%, 도시화지수는 10%로 나타났으며, 약용식물은 167분류군으로 종합되었다. 직지사 경내에 식재종은 43과 64속 68종 6변종 7품종 총 81분류군으로 일부 희귀 및 특산식물 7분류군, 약용식물 44분류군으로 다른 사찰과 중복되는 종은 41분류군(51%), 빈번 중복종 7분류군(9%)으로 한국의 불교식물에 해당하는 식물은 33분류군으로 확인되었다.

조선왕릉의 조영의도, 이념, 사상, 미의식에 관한 연구 (A Study on Constructional Intention, Idea, Thought and Aesthetic Consciousness of Joseon Royal Tombs)

  • 최종희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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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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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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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는 세계유산으로서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 진정성, 완전성을 지닌 조선 왕릉의 입지, 배치 및 공간구성, 구성요소(건축, 조경, 석물, 조각) 등에 내재되어 있는 조영의도, 이념, 사상, 미의식 등을 구명하기 위해 수행되었다. 세계유산 조선왕릉 40기를 연구대상으로 문헌조사와 현장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조영의도, 이념, 사상의 기원을 살피기 위해 조선왕릉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의 왕릉과 통일신라시대의 왕릉도 살펴보았다. 조선왕릉은 고려왕릉, 특히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현정릉 능제를 많은 부분 계승하였으나, 불교국가였던 고려와 달리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예법에 따라 조영되었으므로, 공간구성이나 구성요소에서 특색이 나타난다. 조선왕릉의 선지와 입지에서는 풍수사상의 길지 즉, 배산임수의 지형을 잘 갖춘 곳을 택하였으며, 배치 및 공간구성은 유교사상에 따라 이루어졌는데 이는 유교의 위계질서가 반영되도록 능역을 조성한 것이다. 공간구성요소에서는 건축, 조경, 석물, 역사경관림에서 유교사상, 불교사상, 도교사상이 각각 혹은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제례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유교적 예법에 따라 행해지는 제례의식을 통해 조선왕릉의 조영의도, 이념, 사상에 연결된다.

근세조선의 왕목-사직수, 문화사회적 임업, 그리고 문화적 지속가능성 (The Royal and Sajik Tree of Joseon Dynasty, the Culturo-social Forestry, and Cultural Sustainability)

  • 이정호;전영우
    • 한국산림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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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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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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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환경을 조성하고 보전하는 인간과 문화'의 새로운 시각에서 지속가능한 숲 관리는 '문화적 지속가능성' 개념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문화적 지속가능성은 환경을 조성하고 보전하는 문화의 높은 기여도를 강조하는 것이다. 본 연구는 근세조선의 '문화사회적 임업'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서 현대의 문화적 지속가능성에 필요한 함의들을 추출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조선의 첫 번째 왕이었던 태조와 관련하여 소나무(Pinus densiflora)는 조선의 왕목이었고 왕도정치의 이념을 지지하는 성리학적 신앙과 예제 체제 속에서도 가장 상위에 속하는 사직제례와 관련 있는 사직수(社稷樹)였다. 사직 제례의 숭배대상은 토지신(社)과 곡식신(稷)인데 고대 사회의 수목신앙을 이으면서 유교적 신앙 및 예제에 편입된 것이 토지신이며 토지신의 구체적 모습이 사직수이다. 왕목과 사직수로서의 소나무는 조선 왕실 통치의 종교-정치적 정통성을 지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소나무의 종교-정치적 상징성은 여러 측면으로 표현되었다. 소나무는 조선 조정이 주관하는 예제가 봉행되는 신전과 사당을 위해서도 물적 기반으로도 쓰였다. 소나무의 이런 역할은 왕실 능원림, 왕실 관곽재를 위한 황장봉산의 소나무 숲, 왕의 거처 도성 내외사산 소나무 숲의 조성, 방제, 보전, 관료적 관리로 확대 표현되었다. 문화사회적 임업의 역사적 사례인 이러한 소나무 숲의 종교-정치적 관리 체계는 조선의 경제적인 숲 관리 체계인 송정이나 조선 전기의 의송처와 금산의 소나무 숲 및 조선 후기의 봉산 체계의 소나무 숲의 경영과도 비교가 가능하고 공통성과 고유성을 함께 보여준다. 왕실의 소나무 문화는 대중적 의식에도 영향을 끼쳐 백성들이 금표가 있는 능원림, 금산, 봉산에서 시행된 금양(禁養)된 토지 또는 숲과 바꾸어 쓸 수도 있는 '말림갓'이라는 순한국어 단어를 형성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근세조선은 사직단, 능원림, 황장금산 및 황장봉산, 도성내외 사산의 소나무숲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사회적 임업을 실행하였다. 조선 시대 소나무 숲의 보전과 경영에는 풍수지리, 민속신앙, 불교적 요소가 통합된 조선의 성리학적 신앙과 예제가 경제적 목적보다도 더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이 여러 세대를 걸쳐 장기적인 문화-자연적 평형이나 균형을 이루는 것이 문화적 지속가능성인데, 숲과 환경을 조성하고 보전하는 현대인이 문화-자연 유산을 발굴하고 여러 세대에 걸친 보전으로 변환하며, 문화적, 사회적, 정신적 필요를 충족하는 환경과 인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초학제적 지식인 지속가능성 과학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근세조선의 사례 연구의 함의로 추출되었다.

역사적 문화환경의 창조 -고대정원문화를 중심으로- (Traditional Korean landscape garden with special attention)

  • 민경현
    • 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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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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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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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5
  • Korean Landscape Garden may be described according to its stage of development. In the primitive agricultural era, the garden was preceded by vegetable yards and at this time rock arranging (Soo-Sok garden) was initiated together with the megalithis culture of dolmens, heavenly altars and tumuli. In the early Three Kingdom period palace gardens were built on a grand scale and toward the end of fourth century temple garden were introduced along with Buddhism. These gardens evolved to the flourishment of "HWAGE"(terraced gardens) rock arrangements of ZEN, early KOR-YO period. Especially since the middle of KOR-Yo period the "IM-CHUN"(forest and pond) garden became popular, while during Cho-Son period "HWAGE" in the back yard, pond and pool garden and "IM-CHUN" style country villa became fashionable. The Korea traditional Landscape garde may be characterized that first it is a nature Landscape style, which makes the maximum accomodation with the surrounding nature. Secondly, the Korean garden is built creatively by utilizing the elements of its climate and topography, Kogu-Ryo, Paik-Je great-Kaya and Sil-Ra had developed original a castle town plans and beautiful gardens rock arrangements which precede the equivalent style of China and set the prototype for Japan. The Landscape art of waterfalls and rock arrangements at An-Ap-Chi garden of 7th century has no equals in China and set the origin of pond style of Japanese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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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경관(原型景觀)의 개념 정립 및 형성요인 연구 (A Study on the Meaning and the Factors of Formation of the Prototypal Landscape)

  • 강영은;최동욱;홍성희;정윤희;김상범;임승빈
    • 농촌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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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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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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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This study is aimed at the necessity application in 'Prototype' general concept on discovering cultural identity landscape of our national characteristics landscape research. Accordingly, It is considered landscape, fundamental concept, the prototypal landscape concept from previously researches that have been used. At the same time, the concept of prototypal landscape has been established by commenting a point of view which is defining previous researches that controverted prototypal landscape, then establish concept of prototypal landscape and derive attribute by comparing and considering similar terminology of prototypal landscape. Previously, research prototypal landscape in depth by applying defined concept of prototypal landscape and considering inherence ideological and environmental background prototypal figure and structure. Formation pattern of the prototypal landscape is classified in both philosophical formative primary factor from philosophy, religion and environmental formative factor of human that accumulated cultural life from a region and life. Examples of forming the prototypal landscape by philosophical formative factor are classified as 'Feng-Shui(the theory of divination based on topography)', 'Yin-Yang theory', 'Confucian idea theory' 'Philosophical Taoism', 'Buddhism theory' and 'Nature theory' then environmental formative factor are interpreted by 'Taekliji(determining of advantageous land)', 'Imwon(forest) economical geography', 'land use', 'topography' and 'terrain' as examples. This study is anticipating a new point of view and an establishment of reliable preservation to our characteristic of the prototypal landscape by considering concept of prototypal landscape and formative factor as studying limits of prototypal landscape and researching concentrated origination of the prototype.

전통재식 행단(杏壇)의 원형과 세종리 은행나무의 천연기념물적 가치 연구 (A Study on the Traditional Planting Prototype of Haengdan(杏壇) and Natural Monumental Value of Ginkgo Tree in Sejong-ri)

  • 신현실;최병기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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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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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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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전통재식의 하나인 행단의 원형과 천연기념물 식물의 가치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은행나무의 천연기념물로서의 가치를 도출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은행나무는 높은 환경 적응력과 실용성, 관상용 가치를 지님과 동시에 유교 및 불교사상과 관련이 깊은 다수의 수목들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둘째, 은행나무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살펴본 결과, 은행나무는 공자의 유교사상을 상징함으로써 행단, 행정의 장소성을 지니게 되었으며, 불교에서는 사찰의 창건이나 고승의 업적, 민간에서는 자손의 번영과 가풍의 계승을 염원하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다. 셋째, 행단은 1024년 공자의 손자인 공도보가 사당 개축 가운데 단을 설치하고 은행나무를 식재하고 "행단"이라 명명한데서 비롯되었다. 그 후 명대 왕재진의 행단시(杏壇詩)에 행단의 수목을 홍행(紅杏)으로 기록하여 살구나무로 변용하였으나 이는 은행나무와 한자의 독음이 같은 이유에서 온 오류와 도교사상의 영향으로도 볼 수 있으나 한국은 최초의 은행나무를 사용한 행단을 고수해왔다. 넷째, 생물학적으로 세종리 은행나무는 암수 한 쌍의 구성이 특징적이며, 경관적으로도 용트림 형상의 수나무와 수직형태의 암나무가 대비를 이루고 있다. 또한 진정성과 완전성 측면에서 고려시대 충신 임난수 장군과 은행나무의 관련성이 여러 문헌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조시대(李朝時代)의 임지제도(林地制度)에 관(關)한 연구(硏究) (A Study on the Forest Land System in the YI Dynasty)

  • 이만우
    • 한국산림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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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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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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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
  • 토지국유원칙(土地國有原則)을 표방(標榜)하고 "공사(公私) 공리(共利)"를 기본원칙(基本原則)으로 하고 있었던 고려조(高麗朝)의 시전과제도(柴田科制度)도 집권력(執權力)의 약화(弱化)로 인(因)하여 조만간(早晩間), 붕괴(崩壞)되고 말았던 것이나 임지제도(林地制度)에 있어서는 분묘설정(墳墓設定)의 자유(自由)와 개간장려(開墾奬勵)를 이용(利用)한 삼림(森林)의 광점(廣占) 및 전시과제도(田柴科制度)로 인(因)한 시지(柴地)의 수조권위양(收租權委讓)으로 유래(由來)된 사적수조권(私的洙組權)이 결부(結付)된 삼림(森林)의 사점현상등(私占現象等)이 점차(漸次) 발전(發展)하여 고려중기(高麗中期)의 국정해지기이후(國政解地期以後)에는 대부분(大部分)의 삼림(森林)이 권력층(權力層)의 사점지(私占地)로 화(化)하여 왔었다. 고려조(高麗朝)의 모든 제도(制度)를 그대로 계승(繼承)한 이조(李朝)는 건국후(建國後) 국가소용(國家所用)의 삼림확보(森林確保)를 위(爲)한 삼림수용(森林收用)의 제도확립(制度確立)이 긴요(緊要)하였음으로 전국(全國)의 삼림(森林)을 국가권력(國家權力)에 의(依)하여 공수(公收)하고 국가(國家)와 궁실소용이외(宮室所用以外)의 모든 삼림(森林)은 사점(私占)을 금(禁)한다는 "시장사점금지(柴場私占禁止)"의 제도(制度)를 법제화(法制化)하였고 도성주변(都城周邊)의 사산(四山)을 금산(禁山)으로 함과 아울러 우량(優良)한 임상(林相)의 천연림(天然林)을 택(擇)하여 전조선용재(戰漕船用材)와 궁실용재(宮室用材)의 확보(確保)를 위(爲)한 외방금산(外方禁山)으로 정(定)하고 그 금양(禁養)을 위(爲)하여 산직(山直)을 배치(配置)하였다. 그리고 연병(練兵)과 국왕(國王)의 수렵(狩獵)을 위(爲)한 강무장(講武場)과 관용시장(官用柴場), 능원부속림(陵園附屬林)의 금벌(禁伐), 금화(禁火)를 제정(制定) 등(等) 필요(必要)에 따라 수시(隨時)로 삼림(森林)을 수용(收用)하였으나 고려조이래(高麗朝以來)로 권력층(權力層)에 의(依)하여 사점(私占)되어온 삼림(森林)을 왕권(王權)으로 모두 공수(公收)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이조초기(李朝初期)에 있어서의 집권층(執權層)은 그 대부분(大部分)이 고려조(高麗朝)에서의 권력층(權力層)이었던것 임으로 그들은 이미 전조시대(前朝時代)로부터 많은 사점림(私占林)을 보유(保有)하고 있었던 것이고 따라서 그들이 권력(權力)을 장악(掌握)하고 있는 한(限) 사점림(私占林)을 공수(公收)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그들은 오히려 권력(權力)을 이용(利用)하여 사점림(私占林)을 확대(擴大)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왕자(王子)들도 묘지(墓地)를 빙자(憑藉)하여 주(主)로 도성주변(都城周邊)의 삼림(森林)을 광점(廣占)하고 있던 터에 성종(成宗)의 대(代) 이후(以後)로는 왕자신(王自身)이 금령(禁令)을 어기면서 왕자(王子)에게 삼림(森林)을 사급(賜給)하였음으로 16세기말(世紀末)에는 원도지방(遠道地方)에 까지 왕자(王子)들의 삼림사점(森林私占)이 확대(擴大)되었고 이에 편승(便乘)한 권신(權臣)들의 삼림사점(森林私占)도 전국(全國)으로 파급(波及)하였다. 임진왜란후(壬辰倭亂後)에 시작(始作)된 왕자(王子)에 대(對)한 시장절급(柴場折給)은 삼림(森林)의 상속(相續)과 매매(賣買)를 합법화(合法化)시켰고 이로 인(因)하여 봉건제하(封建制下)에서의 사유림(私有林)을 발생(發生)시키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권신(權臣)들도 합법적(合法的)으로 삼림(森林)을 사점(私占)하게 되었고 따라서 이조시대(李朝時代) 임지제도(林地制度)의 기본(基本)이었던 시장사점금지(柴場私占禁止)의 제도(制度)는 건국초(建國初)로부터 실행(實行)된 일이 없었으며 오로지 국가(國家)의 삼림수용(森林收用)을 합법화(合法化)시키는 의제(擬制)에 불과(不過)하였던 것이다. 금산(禁山)은 그 이용(利用)과 관리제도(管理制度)의 불비(不備)로 인(因)하여 산하주민(山下住民)들의 염오(厭惡)의 대상(對象)이 되었음으로 주민(住民)들의 고의적(故意的)인 금산(禁山)의 파괴(破壞)는 처음부터 심(甚)하였고 이로 인(因)하여 국가(國家)에서는 용재림확보(用材林確保)를 위(爲)한 금산(禁山)의 증설(增設)을 거듭하였으나 관리제도(管理制度)의 개선(改善)이 수반(隨伴)되지 않았음으로 금산(禁山)의 황폐(荒廢)는 더욱 증대(增大)되었다. 영조(英祖)는 정국(政局)을 안정(安定)시키기 위(爲)하여 경국대전이후(經國大典以後) 남발(濫發)된 교령(敎令)과 법령(法令)을 정비(整備)하여 속대전(續大典)을 편찬(編纂)하고 삼림법령(森林法令)을 정비(整備)하여 도성주변(都城周邊)의 금산(禁山)과 각도(各道) 금산(禁山)의 명칭대신(名稱代身) 서기(西紀) 1699년(年) 이후(以後) 개칭(改稱)하여온 봉산(封山)의 금양(禁養)을 강화(强化)시키는 한편 사양산(私養山)의 권한(權限)을 인정(認定)하는 등(等) 적극적(積極的)인 육림정책(育林政策)을 퍼려하였으나 계속적(繼續的)인 권력층(權力層)의 삼림사점광대(森林私占廣大)는 농민(農民)들로부터 삼림(森林)을 탈취(奪取)하였고 농민(農民)들 이 삼림(森林)을 상실(喪失)함으로써 국가(國家)의 육림장려등(育林奬勵策)은 효과(効果)를 나타내지 못하였던 것이다. 임진왜란후(壬辰倭亂後)의 국정해이(國定解弛)로 인(因)한 묘지광점(墓地廣占), 왕자(王子)에 대(對)한 삼림(森林)의 절급(折給) 권세층(權勢層)에 대(對)한 산림사점(森林私占)은 인허(認許)하는 입안문서(立案文書)의 발행등(發行等)으로 법전상(法典上)의 삼임사점금지조항(森林私占禁止條項)은 사문화(死文化)되었고 이조말기(李朝末期)에 있어서는 사양산(私養山)의 강탈(强奪)도 빈발(頻發)하고 있음을 볼수 있다. 이와 같이 이조시대(李朝時代)의 시장사점금지조항(柴場私占禁止條項)은 오로지 농민(農民)에게만 적용(適用)되는 규정(規定)에 불과(不過)하였고 이로 인(因)하여 농민(農民)들의 육림의욕(育林意慾)은 상실(喪失)되었으며 약탈적(掠奪的)인 삼림(森林)의 채취이용(採取利用)은은 금산(禁山), 봉산(封山) 및 사양산(私養山)을 막론(莫論)하고 황폐(荒廢)시키는 결과(結果)를 자아냈으며 권력층(權力層)의 삼림점탈(森林占奪)에 대항(對抗)한 송계(松契)의 활동(活動)으로 일부(一部) 공산(公山)이 농민(農民)의 입회지(入會地)로서 보존(保存)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不拘)하고 일제(日帝)는 이조말기(李朝末期)의 삼림(森林) 거의 무주공산(無主公山)이 었던것처럼, 이미 사문화(死文化)된 삼림사점금지조항(森林私占禁止條項)을 활용(活用)함으로써, 국가림(國有林)으로 수탈(收奪)한후(後) 식민정책(植民政策)에 이용(利用)하였던 것이나, 실제(實際)에 있어서 이조시대(李朝時代)의 삼림(森林)은 금산(禁山), 봉산(封山), 능원부속림등(陸園附屬林等)의 관금지(官禁地)와 오지름(奧地林)을 제외(除外)하고는 대부분(大部分)의 임지(林地)가 권세층(權勢層)의 사유(私有) 내지(乃至)는 사점하(私占下)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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