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한국 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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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리에 변환 근적외선 분광분석기(FT-NIR)와 적분구를 이용한 근대 한지 기록물의 산성도 비파괴 평가방법에 대한 연구 (The study of nondestructive method for measuring the acidity of the recent record paper in Hanji by using FT-NIR spectroscopy and Integrating sphere)

  • 신용민;박성배;김찬봉;이성욱;조원보;김효진
    • 한국펄프종이공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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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펄프종이공학회 2011년도 추계학술발표회 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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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5-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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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에서는 1900년대 이후 근대 한지로 작성된 기록물의 상태를 가능한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도구를 연구하고자 비파괴적인 방법으로 분석을 실시하였다. 종이 기록물의 경우 그 자체가 원본임으로 파괴적인 방법으로 분석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원본을 파괴하지 않고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본 연구 목적에 적합한 비파괴 분석을 위해 근적외선 분석 장비 중에서 정밀도와 정확도가 좋은 푸리에 변환(Fourier transform) 분석기(spectrometer)를 사용하였다. 또한 측정 대역은 근적외선(NIR) 전체 영역 모두를 측정할 수 있도록 $12,500{\sim}4,000cm^{-1}$ 범위에서 측정하였으며, 분석 대상 한지 기록물을 측정하기 위하여 적분구(integrating sphere)에 접촉하도록 구성 하였다. 한지 기록물의 보존상태를 평가하기 위한 인자로는 화학적 변화 정도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산성도(pH)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이들 인자와 근적외선 스펙트럼과 상관관계를 확인하였고, 이때 최적 상관계수를 찾기 위하여 측정한 스펙트럼을 전처리 하였다. 전처리 방법으로는 다산란보정(MSC)과 Savitzky-Golay의 1차 미분을 이용하였다. 상관계수는 부분최소자승법(PLS, Partial least square)으로 확인하였다. 산성도(pH)의 경우에 전처리를 하지 않았을 때의 상관계수($R^2$)는 0.92, 표준예측오차(SEP)는 0.24이었고, 전처리를 하였을 때의 상관계수($R^2$)는 0.98, 표준예측오차(SEP)는 0.19 이었다. 따라서 전처리하였을 때 상관계수와 표준오차가 향상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1차 미분을 하였을 때의 상관계수($R^2$)는 0.98, 표준예측오차(SEP)는 0.09로써 가장 좋은 표준 예측오차를 얻었다. 따라서 전처리하기 전의 상관계수와 표준오차가 오히려 좋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한지 기록물을 적분구와 근적외선 분석기를 이용하여 비파괴적인 방법으로 보다 빠르게 상태를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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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시기의 기록관리 (Record management in Great Han Empire)

  • 이영학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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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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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3-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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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1894년 6월에 갑오정권이 새로 등장하면서 근대적 개혁정책을 실시해갔다. 기록관리제도에서도 이전과는 크게 달랐다. 정부의 각 부처에 독자적인 기록관리부서를 설치하고, 기록관리 프로세스를 규정한 법률안을 공포하였다. 또한 독자적 연호 표기 및 국한문 혼용을 포함하여 공문서 양식을 전면 변경하였으며, 공문서 원본의 보존을 확대하였다. 고종은 1897년 10월에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갑오정권기에 약화된 왕권을 강화하면서 자신이 구상하는 개혁정책을 실시해 갔다. 먼저 왕권을 제한하였던 내각을 폐지하고 의정부를 복설하였으며, 왕권 견제를 위해 왕실과 정부를 분리하면서 만들었던 궁내부를 한층 확대 강화해갔다. 아울러 황제권을 강화해가는 물리적 기반인 군대와 경찰 및 재정 등의 영역을 고종이 직접 장악해가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리하여 원수부, 경부를 직접 창설하여 황제 직속으로 하였으며, 황제 산하의 재정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궁내부 산하 내장원에서 국가의 여러 세금을 직접 징수하도록 하였다. 대한제국기의 기록관리제도는 갑오정권기의 그것을 계승하였다. 먼저 정부와 황제 직속의 권력기구에서는 기록관리부서를 설치하였다. 의정부와 정부 부서는 물론이고 황제권을 뒷받침하는 특별기구인 궁내부, 원수부, 경부, 통신원, 지계아문 등의 권력기관에서도 문서과와 기록과를 두어 기록관리를 독자적으로 행하도록 하였다. 정부 업무의 효율을 증가시키고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록관리부서를 분립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다음으로 부서마다 약간 차이가 있지만, 현용기록과 비현용 기록을 관리하는 부서를 분립하였다. 대체로 문서과에서는 현용문서의 접수와 발송 및 기안을 담당하였으며, 기록과에서는 주요 문서 및 영구보존문서의 보존 및 편찬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기록의 생애주기(life cycle)를 고려하고, 기록물 평가를 염두에 두면서 기록관리를 행하고자 하는 인식이 근대적 형태로 발현되었던 것이다.

<옥소선 이야기> 속 소시민적 욕망의 성취와 한계 (The Achievements and Limitations of Petit Bourgeois Desires in "Oksosun Story")

  • 이원영
    • 고전문학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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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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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7-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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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이 연구에서는 천예록 소재 <옥소선 이야기>를 통해 작중 인물의 소시민적 욕망의 면모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소시민적 인물의 욕망과 그 지향성은 다분히 세속적이며 이기적이다. 이러한 인물상은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시기에 대두하기 시작한 중립적 존재로서의 소시민적 특성과 많이 닮아있다. 이 소시민이란 개념은 현대의 대중 및 서민의 한 특성을 가리키는 데에도 자주 사용된다. 소시민적 태도에 대한 지금의 이해와 작품 속 인물들의 특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 소시민에게 중요한 것은 사회에 대한 원대한 지배이념이나 현실개혁 의지가 아니라, 무엇보다 자기 삶의 만족을 이루고자 하는 현실적이고도 일상적인 욕망의 성취와 안정이다. 이에 주체가 어떠한 욕망을 가지는 지에 따라 충족의 태도와 과정에서 반사회적이거나 이기적인 경계적 특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 행동의 반경은 거대한 현실의 지배체제 속에 국한되어 있고, 자신의 소유와 만족을 충족하는 것에 개인적인 삶의 목표가 그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생이 사랑을 추구하기 위해 가족과 사회를 저버리고 자란과의 결연을 충족하지만, 반사회적 태도로 끝까지 사회와 대립하기 보다는 과거급제를 통해 가정과 사회 속의 재진입하여 안정을 획득하는 것과 통한다. 또한 본 작품이 현재적으로 유의미한 이유는 사랑이라는 인간 본연의 자기 욕망을 발견하고, 그것을 긍정하여 충족하고자 반봉건적 행위-불효, 불충, 불열-마저 감행하며 움직인 생의 주체적 행보에 있다. 이러한 생의 욕망 추구에 힘입어 옥소선도 관기라는 자신의 신분적 굴레를 벗어나 사랑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자기욕망을 긍정하게 되어 사회제도로부터 일탈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 과정에서 자기 행적의 사회적 한계점을 인식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자구적 방식으로 노력한다. 이에 과거급제라는 개인의 지적능력 실현으로 사회에 재진입하는 점에서 소시민적 욕망의 성취와 한계의 일면을 찾을 수 있다. 조선 후기 근대로의 이행기 때에는 개인적 욕망과 자유의지에 목마른 근대적 인간형과 함께 주체적 삶에 대해 아직 이질적 몰이해 상태인 봉건적인 인간형이 혼재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는 지금, 여기의 현재적 상황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작품은 현실의 거대한 장벽 안에서 왜소한 '자기'의 존재적 각성과 미진하게나마 발현되는 주체적 욕망에 큰 가치를 부여하며 이를 조명하고 있다. 나아가 현실논리 속에 실패를 경험한 개인의 경험과 각고의 노력을 소소한 성취로서 긍정한다. 이렇듯 스스로의 만족을 향한 행복을 능동적으로 추구하며 인간답게 사는 삶을 권면한다는 점에서 본 작품은 현대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문학적 의미를 발한다.

한국의 사회변동과 여가의 의미변화: '놀고 있네'에서 '신바람'으로 (Social Changes and Changes of the meaning of leisure in Korea)

  • 최석호
    • 한국심리학회지 : 문화 및 사회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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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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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5-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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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기존의 여가연구는 이론을 결여한 경험적 연구 위주로 진행되어 왔다는 점과 사회구조와 개인의 인성을 분리하여 연구를 진행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본 논문은 문명화과정론에 입각하여 한국사회가 구조적인 변동을 겪음과 동시에 구성원인 한국인의 인성 역시 변동을 겪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해방을 맞은 한국사회는 근대적 국민국가 건설에 돌입하였으며 급속한 경제성장을 거듭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민주화를 달성하였다. 그러나 세계화로 대별되는 제3의 사회변동에서 경제위기를 겪고 국민은 민족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함과 동시에 군사모형에서 합리적 지배모형으로 지배연합이 바뀌는 변동기의 갈등을 경험한다. 이 과정에서 여가의 사회적 의미도 '놀고 있네'라는 비아냥에서 '신바람'이라는 긍정적인 변화의 과정을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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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를 활용한 전통 문화 원형의 문화콘텐츠화에 관한 연구 - 문화원형을 소재로 한 미디어아트 작품 사례를 중심으로 (Practical Use of New Media in Making Cultural Content of The Cultural Archetype)

  • 임경호;김민경;최문선;윤준성
    • 한국HCI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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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HCI학회 2008년도 학술대회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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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4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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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문화원형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았다. 정부 주도의 문화콘텐츠 산업 육성 정책하에 문화 원형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으며, 특히 2002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KOCCA)의 '우리 문화원형의 디지털콘텐츠화 사업'에서 전통문화를 소재로 하여 문화콘텐츠를 기획, 생산, 유통하여 문화가 이 나라의 장래를 이끌어갈 핵심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임을 점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문화원형의 디지털콘텐츠화 사업'을 시작한 지 6년이 지난 지금, 사업성괴를 살펴보았을 때 그 평가는 긍정과 부정으로 엇갈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엇갈린 평가와는 별도로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사업방식이 아니더라도 우리 문화원형이 문화콘텐츠로써 탈바꿈되어 대중들 앞에 자연스럽게 등장시 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문화원형과 문화콘텐츠에 대하여 개념적으로 살펴보고, 문화원형이 문화콘텐츠가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문화원형의 문화콘텐츠화 방법론으로써 조선시대의 회화와 전통무용, 개화기 및 근대의 사진, 그리고 민속놀이 등의 문화원형을 소재로 한 미디어아트 작품 사례를 분석하여 뉴미디어를 활용한 전통 문화원형의 문화콘텐츠에 대한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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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희곡 <동상기(東廂記)>의 구성과 야담 <동상기찬(東廂記纂)>과의 연계성 (A Study on the Configuration of Chinese Drama and the Connection between Yadam )

  • 김준형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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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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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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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1791년 6월 12일, 노총각 김희집과 노처녀 신덕빈의 딸의 혼인이 이루어 졌다. 이 혼인식은 국가가 주도해 시행한 일종의 노처녀노총각 혼인 프로젝트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 혼인은 인륜의 시작으로, 때를 놓치면 천지의 조화로운 기운[和氣]이 상한다던 당대 통념을 염두에 둔 정조가 진두지휘한 국가 정책이었다. 정조는 이 사건을 이덕무에게 기록하게 했는데, 그것이 <김신부부전>이다. 민간에서도 이 혼인에 주목했는데, 이옥(李鈺)은 희곡의 틀을 빌어 <동상기>를 창작했다. <동상기>는 가난한 백성에게 덕화를 베푼 임금을 찬양한다는 주지 아래, 오락적 요소를 가미한 텍스트다. 희곡을 모방했지만, 공연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동상기>를 두고 수준 낮은 작품이란 평가는 이를 고려하지 않고 완정한 극적 구성물로 이해했던 결과다. <동상기>는 극 형식만 차용했을 뿐, 주된 목적은 임금의 덕화를 찬양하되 다양한 오락적 요소를 틈입시킴으로써 축제의 장을 담아내려 했다. <동상기> 4개의 절(折)마다 각각 다른 문체가 사용된 것도 그러하다. 1절과 2절에는 설화와 속담, 3절에는 판소리, 4절에는 연극을 배치시켰다. <동상기>를 통해 공연하겠다는 의도 대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여러 문체를 적용한 것이다. 이후 1918년 한남서림 주인 백두용은 이옥의 <동상기>에 기존 야담 <동상기찬>을 더한 동상기찬을 출판한다. 기존 연구에서는 <동상기>와 <찬>을 별개의 텍스트로 인지했지만, 기실 둘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애초 김신 부부가 임금이 살펴줌으로써 인륜의 도리를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백두용은 근대로 전환하는 도정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봐 줄 것을 고대했다.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 백두용은 그 단서를 임금이 가난한 백성에게까지 눈길을 미쳤던 <동상기>에서 찾았던 것이다. 그에 따라 백두용은 이옥이 쓴 정일(正目)을 각각 '재현(才賢)', '덕혜(德慧)', '권택(眷澤)', '복연(福緣)', '보유(補遺)'로 분류하고, 기존 야담에서 해당 범주에 맞는 작품을 선취하여 <찬>을 만들었다. 그러니 <동상기>와 <찬>은 '지기(知己)'라는 연결 고리로 이어진다. 실제 백두용은 1절에서 4절까지를 '누군가가 나를 알아줌 → 내가 누군가를 알아줌 → 적선→ 여경(餘慶)'으로 각각 구성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구체화했다. 우리가<동상기>와 <찬>을 분리시켜 다룰 수 없는 까닭이다.

국유림성립(國有林成立)의 사적배경(史的背景)에 관(關)한 고찰(考察) (A Study of Historical Background to the National Forest Formation)

  • 호을영
    • 한국산림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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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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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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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6
  • 국유림성립(國有林成立)의 녹유(綠由)는 근세(近世)에 근대국가(近代國家)가 형성(形成)되면서 산림(山林)을 국가재원(國家財源)의 일부(一部)로 조성(造成)시키는 동시(同時)에 산업발전(産業發展)에 기여(寄與)케 하며 아울러 국토보전(國土保全), 수원함양등(水源涵養等)의 공익기능발휘(公益技能發揮)를 목적(目的)으로 하고 있으며 그 성립과정(成立過程)은 각국(各國)의 실정(實情)에 따라 차이(差異)가 있으나 대부분(大部分)은 중세(中世)의 왕후(王侯), 영주(領主)들의 산림(山林)을 모체(母體)로 하고 있다. 한국(韓國)의 국유림성립(國有林成立)의 과정(過程)은 구한말(舊韓末) 일제(日帝)의 식민지정책(植民地政策)의 소산물(所産物)로서 산림자원수율(山林資源收率)을 목적(目的)으로 임상(林相)이 우량(優良)한 대면적(大面積)의 산림(山林)을 집단적(集團的)으로 국유림(國有林)에 편입(編入)하여 영림창(營林廠)을 설치(設置)하고 대량적(大量的)인 작벌(斫伐)을 감행(敢行)한데서 녹유(綠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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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수학 교재 연구 (Mathematics Textbook in Korea (1880-2016))

  • 이상구;이재화;김영구;이강섭;함윤미
    • 한국수학교육학회지시리즈E:수학교육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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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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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9-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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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우리나라의 근 현대 수학 교재는 19세기말 아라비아 숫자를 이용한 필산(筆算)이 산학전문가들에게 소개되면서 선교사와 서당에서의 서양수학 교육을 시작으로 1894년 6월 28일 갑오교육개혁을 통하여 수학교육이 공교육에 포함된 이후 공식적으로 발간되기 시작하였다. 1905년 조선통감부를 통한 수학교과과정의 소개와 1910년 이후 일제강점기, 또 1945년 이후 군정에서의 수학교재 그리고 1948년 정부 수립이후 2015년 개정 수학과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형식으로 발간되어 왔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 말기부터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 해방 후 미군 군정청, 대한민국 교육과정의 변화를 거치면서 개발되어 소개된 근 현대수학 교재들의 특징을 시대별로 분류하여 소개한다.

조선 개항장의 감리서(監理署)와 기록 - 부산항을 중심으로 - (The Superintendent Office (Gamriseo) at the Open Ports in Joseon Dynasty of Korea and Related Records: Focused on the Busan Port)

  • 송정숙
    • 한국기록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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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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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5-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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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이 연구는 개항장에 한시적으로 설치되었던 감리서의 설치과정 및 관련 기록을 부산항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먼저 감리서가 요구되는 시대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부산항이 개방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보고, 감리서 기록이 생산되는 맥락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 감리서의 직제와 설치와 폐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다음으로는 감리서가 업무를 수행하면서 생산하거나 접수한 기록을 감리의 기능에 따라 교섭기록, 재판기록, 경무기록, 통상기록, 목민기록, 일록의 여섯 유형으로 나누어 각 기록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부산항의 개방과 관련한 조약과 감리서의 설치와 폐지에 관한 칙령들은 "고종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 연대기 자료와 "한말근대법령자료집"에 게재되어 있다. 감리서에서 생산하거나 접수한 원본 문서는 대부분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데, 목록이나 해제만 제공되고 있으며, 일부는 "각사등록"과 "구한국외교관계부속문서"에 게재되어 있다. 이러한 감리서 관련 기록들 가운데 "고종실록"만 국역되어 있으므로 연구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국역과 원문 서비스 제공이 시급하다.

"백두산행기"에 나타난 윤화수의 장소인식과 지리지식의 유형 (Yun Hwasu's Understanding of Place and the Types of Geographical Knowledge Shown in the Book of Baekdusanhaenggi)

  • 강순돌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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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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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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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고는 1927년에 발행된 "백두산행기"에 담겨있는 저자 윤화수의 장소인식과 지리지식의 유형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 책은 일기를 이용해 산행의 전 과정을 일자별로 상세히 기록한 것이다. 또한 이 책은 백두산 여정 중에 관찰되는 자연과 인문의 객관적인 현상과 사실뿐 아니라 그것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 또는 평가, 느낌까지도 담고 있다. 윤화수는 애국계몽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민족의 근대화와 독립을 위해 민중들을 교육하고 계몽하는 일에 전념하였던 사람이며, 중등학교용 지리교과서 "최신조선지리"를 간도에서 발행한 인물이다. 저자는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장소인식의 기반 위에서 관념적이면서도 긍정적으로 우리 장소를 인식하였다. 이는 저자가 낙토 또는 영지라는 장소인식을 가지고, 불리한 자연환경을 지닌 간도나 백두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두산행기"에 나타난 지리지식은 크게 지리내용과 지리개념이라는 유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리내용은 자연지리(기후, 식생, 지형과 식생 지형의 경제적 이용)와 인문경관(취락경관과 그 변화, 문화경관)이라는 유형으로, 지리개념은 위치, 거리, 지역이라는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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