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학생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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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독립운동 지식정보자원관리에 관한 연구 (The Management Knowledge Information Resources of Student Independent Movement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 장우권
    •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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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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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3-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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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이 연구는 문헌정보와 아카이브적 측면에서 학생독립운동의 지식정보자원관리에 대한 효율적인 자료수집, 자료해제, DB구축과 아카이브를 제시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연구는 학생독립운동과 지식정보자원 관련 문헌적 고찰과 일제식민지 치하 학생독립운동 시발과 그 운동과정에서 생성된 자료들의 유통과 이들 자료들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에 대한 실제적 조사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운동과 투옥 그리고 재판의 과정에서 다양한 문헌정보를 생산했으며 이것을 기반으로 정보자원관리와 아카이브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연구의 결과는 학생독립운동의 지식정보자원에 대한 가치와 역량을 나타내고 진일보한 학생독립운동 연구와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광주학생독립운동 독서회 아카이빙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Archiving of Gwangju Student Independence Movement Reading Club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 장우권
    • 한국문헌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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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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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93-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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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이 연구는 광주학생독립운동과 독서회의 활동에서 생산된 자료수집과 자료해제를 통한 내용과 서지를 조사하여 독서회의 아카이브 형성과 효율적인 관리 방안을 제시하는데 있다. 이 연구는 문헌조사와 독립운동 관련 기관과 조직 등을 방문, 자료조사, 면담 등을 활용하여 이루어졌다. 연구의 결과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의의, 3차례 발생, 참여학교와 학생 수, 독서회조직과 활동, 독립운동 참여형태,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록정보, 기록정보자원의 특징, 기록정보자원관리 현황, 기록정보자원의 수집체계와 아카이빙, 기대효과와 활용방안을 제시하였다.

광주학생독립운동 연구 지평의 확장을 위한 중국 신문 사료 연구 (A Study on Chinese Newspaper Records for Broadening Intellectual Horizons of Gwangju Student Movement)

  • 박성우
    •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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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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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1-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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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1929년 발생한 광주학생독립운동 관련 연구는 2018년 이후로 연구주제를 다변화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국외 확산 과정에 관련한 연구들이다. 그러나 이들 연구는 사료의 부족, 새로운 방법론의 부재 측면에서 한계를 보인다. 따라서 이 연구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국외 전파 과정을 문헌정보학에 기반을 둔 정보 전달 과정으로 분석하였다. 이를 위해 첫째, 새로운 중국 신문 사료를 발굴하고, 둘째, 2-모드 네트워크 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 신문 16종에서 125건의 중국 신문 사료를 발굴해냈고, 이중 104건이 신규 발굴된 사료이다. 둘째, 선행연구에서 주장된 최초 보도보다 더 앞선 기사가 발굴되었다. 셋째, 중국의 북경·사천·상해·천진·호남 지방에서 서울의 1·2차 확산 시위와 광주의 사건을 중심으로 보도했다. 이 연구는 광주학생독립운동 연구의 확장 및 다변화를 꾀했다는 데에서 의의가 있다.

광주학생독립운동 중국 신문 보도에 관한 기술적 연구 (A Descriptive Study on Chinese Newspaper Coverages of Gwangju Student Movement)

  • 박성우
    • 한국문헌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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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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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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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새로운 사료의 발굴은 향후 연구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며 새로운 해석과 연구의 확장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연구의 목적은 새롭게 발굴된 광주학생독립운동 관련 중국 보도의 특성을 내용적 측면에서 기술하는 것이다. 특히, 중국 보도가 동일한 표현과 내용을 담고 있어, 한국이나 일본의 어떤 자료를 동일하게 인용했고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파악하고자 했다.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최초 보도라고 새롭게 주장된 1929년 12월 6일의 보도와 광주학생독립운동과의 연관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12월 6일의 서울에서의 격문 배포와 체포 사건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이라는 구체적인 명시는 없지만,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지지하기 위해 행해진 최초보도로 보아야 한다. 둘째, 선행연구들에서 해당 신문의 자체 보도로 알려진 내용은 사실 한국이나 일본 현지의 앞선 보도에서 인용된 것임을 밝혔다. 셋째, 보도 내용은 신문사의 정치적 특성에 따라 피인용보도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동경의 베트남 학생들, 1906-1909 (Vietnamese Students in Tokyo, 1906-1909)

  • 정연식
    • 동남아시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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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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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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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1905년에 시작된 베트남 동유운동의 목적은 베트남의 젊은이들을 일본에서 공부시켜 독립과 근대화를 이끌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08년 일본 정부의 강제 출국 조치로 인해 동유운동이 중단됨으로써 목표했던 바를 이루는 데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200여 명의 베트남 학생들이 수년간 유학을 한 결과가 어떠한 형태로든 베트남 근대사에 족적을 남겼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간의 연구는 동유운동을 주도했던 판보이쩌우(Phan Bội $Ch{\hat{a}}u$)에 집중함으로써 학생들의 면면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바가 없다. 이 연구는 당시 일본으로 유학했던 학생들에게 초점을 두어 그들이 누구인지 무엇을 공부했는지, 또한 당시 사회주의 사상 전파의 중심이었으며 아시아 각국의 혁명가들이 집결해있던 동경에서 학생들은 어떤 영향을 받고 어떻게 연계되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학생들 대부분은 동아동문서원이라는 중국인 유학생 예비학교의 특별반에서 일본어와 기초적인 초등교육 과목을 이수하는 데 그쳤고 단 세 명의 학생만이 군사예비학교인 진무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즉 고등교육을 받은 학생은 전무했던 것이다. 강제 출국되기까지 그 기간이 짧았던 것이 가장 큰 원인임에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동유운동 자체가 철저히 준비되고 계획되지 않았던 점도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학생 선발에 대한 규정 없이 기본적으로 누구든지 수용함으로써 학생들의 절대다수가 10대 초중반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독립과 혁명을 위한 인재 양성이라는 취지와 관계없이 다수의 학부모들이 동유운동을 단순히 자녀교육의 수단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을 입학시킬 학교 섭외조차 되지 않았고, 그 결과 전적으로 일본 내 조력자들의 호의에 의지해 동아동문서원에 설치된 베트남 학생들만을 위한 특별반에 만족해야 했다. 따라서 대부분의 베트남 학생들은 일본에서 공부했지만 실제로는 고립된 상태에서 외부세계를 경험할 수 없었고,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의 혁명적 사상을 이해하거나 수용하기에는 부족한 나이였다. 요컨대 동유운동의 실패는 그 기간이 짧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짧은 기간 내에서도 교육의 질적 수준이 낮았다는 데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일본에 유학했던 베트남 학생들의 전체 명단은 현재 실종된 것으로 보이며 다만 산발적인 정보를 종합하여 약 20여 명에 관한 성명과 간단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정보와 더불어 추후 더 많은 기록이 발굴된다면 베트남 현대사에서 그들의 이름이 등장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재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3·1운동 신문조서(訊問調書)를 통해 본 조선인들의 '불만'과 '독립'- 학생과 농민을 중심으로 ("Discontent" and "Liberation" of Koreans Found in the Interrogatories for the March 1st Movement: With a Focus on Students and Farmers)

  • 윤현상
    • 한국교육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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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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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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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논문은 국사편찬위원회의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3.1운동편을 통해, 신문조서에 드러난 학생과 농민들의 진술에 드러나는 특징을 포착하려 하였다. 국사편찬위원회 신문조서에 어떤 사람들이 조사를 받았는지를 우선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주로 경성의 학생, 경기도의 농민들이 조사받은 기록이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다음 그들이 3.1운동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추적하였다. 신문조서에서 말한 불만사항들을 정리하고, 그러한 불만이 '독립'과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주로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불만을 명확하게 표현하였던 데 비하여, 농민들은 총독정치 하에서의 생활 및 세금 문제에 불만을 품고 있었고, 스스로의 불만을 명확히 표현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 중에서도 처벌을 경감받고자 하는 태도를 뛰어 넘어, 불만은 없지만 독립은 필요하다는 방식의 사고를 하는 조선인들이 확인된다. 이들은 우선 독립 만세를 외친 이후에 감옥에서 독립의 의미를 깨닫기도 하였다. 3.1운동의 의미는 행위 이후에 사후적으로 의미가 부여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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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의 「만주기사(滿洲紀事)」 분석을 통해 본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의 하급교육기관 실태 - 유하(柳河)·통화현(通化縣)을 중심으로 - (Actual Condition on Preliminary Educational Organizations of Sinheung Military Academy Confirmed from Manjugisa by Yi Sang-nyon - Focused on Liuhexian·Tonghuaxian)

  • 박성순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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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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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3-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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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신흥무관학교는 신민회 인사들의 숙의에 따라서, 국망 직후 서간도에서 독립전쟁을 위한 배후기지로서 가장 먼저 설치된 곳이었다.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부터 1920년대까지 약 10년 간에 걸쳐서 무려 3,500명의 독립운동 간성들을 배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10년 세월 동안 많은 수의 학생들이 어떻게 충원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다. 필자는 신흥무관학교의 학생 충원문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상룡(李相龍)의 "만주기사(滿洲紀事)"를 주목하게 되었다. "만주기사"는 총 16편에 이르는 연작 시이다. 이상룡은 신흥강습소를 설치한 후부터 양성한 군사가 오륙백에 이른다고 회고하였으나, 지금까지 연구자들은 이 부분을 단지 문학적 수사로 치부하여 간과한 측면이 있었다. 한편 제6편에서는 추가가에 정착한 후 8년 동안 건립한 소학교가 30개 소에 이른다고 회고하였다. 필자는 이를 바탕으로 신흥강습소 초기부터 길러낸 5백 명 이상의 학생들이 신흥무관학교 학생들을 포함하여 인근의 하급교육기관, 즉 소학교 학생들을 통칭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그 소학교들을 구체적으로 증명하였다. 유하 통화 지역 소학교 학생들은 졸업 후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은 학규에 따라서 2년 간 의무적으로 인근 소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군사교육을 포함한 소학교 교육을 담당하였다. 결국 신흥무관학교와 그 인근의 소학교들은 독립전쟁이라는 큰 목적 하에서 서간도 한인들에 의해서 유기적으로 운영되었던 커다란 독립운동의 군영이었던 셈이다.

광주학생독립운동가 장재성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Establishment of Digital Archives by Jang Jae-seong, a Gwangju Student Independence Activist)

  • 김문희;장우권
    • 한국기록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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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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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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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이 연구의 목적은 광주학생독립운동가 장재성 디지털 인물 아카이브 구축안을 제시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사용된 연구의 방법은 첫째, 장재성 관련 문헌연구를 하였다. 둘째, 국가기록원, 국가보훈처 등 장재성과 관련된 기록 현황을 조사하였다. 셋째, 장재성의 가족과 전문가 인터뷰를 실시하였다. 연구결과, 장재성 아카이브는 기록콘텐츠와 해설콘텐츠로 설계하였다. 또한 기록물 보유기관과의 콘텐츠별 매핑을 통해 연계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기록콘텐츠는 이용자가 검색을 통해 소장처별로 연결 된 상세 내용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또한 현재까지 광주학생독립운동가들의 아카이브가 구축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해당 사건에 대한 인물들을 함께 아카이브로 구축, 데이터를 제공하는 안을 제시하였다.

한국의 명소 - 대구 Tour 골목길 투어

  • 사)한국건설안전기술협회
    • 건설안전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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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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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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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1919년 3/1운동 당시 신명여고, 계성고교 등 고등학생 800여명이 솔밭에 모이 있다가 이 길을 통해 도심지로 달려 나가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곳입니다. 해설자의 설명에 투어 참가자들의 눈빛이 빛난다. 테마투어의 새장을 연 대구 골목길 투어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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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녀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행태와 가족관계 정도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 최은희;남은우;윤세영
    • 한국보건교육건강증진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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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보건교육건강증진학회 2009년도 춘계학술대회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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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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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목적 : 청소년의 행태와 가족관계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중학생의 학교내외 생활지도 및 정신건강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 필요한 기본 정보를 제공하고자 함. 조사방법 : 원주의 한 남녀공학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2008년 11월 25일부터 12월 11일까지 설문조사를 실시함. 총 454명의 중학교 3학년 학생 중 377명이 조사에 참여하였음. 척도는 신체증상, 식사장해, 우울감, 대인관계, 무력감, 충동성 등 정신건강에 관한 6척도와 31개 항목으로 구성됨. 통계분석은 독립변수인 행태변수와 가족관계 변수를 교차분석을 시행하였고, 변수간의 평균간 차이검증은 t-test와 ANOVA를 시행하였고, 정신건강 관련요인 규명을 위하여 회귀분석을 실시함. 결과 : 성별에 따라 아침에 상쾌하게 눈이 떠지는지, 취침시각, 공부시간, 핸드폰 유무, 다이어트 경험, 운동 횟수, 취미여부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였음. 가족구성인원 변수에 따라 가족에게 고민상담, 집안 일 돕기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였음. 종속변수인 정신건강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변수는 가족과 고민상담, 가족과 식사, 아침에 상쾌하게 눈이 떠지는지, 아침식사여부, 공부시간, 운동 횟수였음. 가족과 식사를 하는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그리고 12시 이전에 취침하는 학생들이 12시 이후에 취침하는 학생들보다 정신건강이 좋은 것으로 나타남. 토의 및 결론 : 중학생들의 정신건강 지도를 위해서는 행태변수와 가족관계 변수를 고려하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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