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팔각목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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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皇龍寺) 구층목탑지(九層木塔址) 사리공(舍利孔) 출토(出土) 금동팔각사리소탑(金銅八角舍利小塔)의 보존처리(保存處理) (Conservation of the Sarira Reliquary from the Pagoda of Hwangryong-sa Temple Site)

  • 박학수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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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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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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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황룡사지 9층목탑지 사리공 출토 금동팔각사리소탑의 보존처리를 실시하였다. X-선 조사를 통해 옥개 방사상으로 문양이 존재하고 있음을 새롭게 밝혀졌다. 도금층은 아말감도금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하나로 조성되기 전에 각각을 먼저 도금하였다. 결실부위를 복원하고 받침대와 지지대를 만들어서 기단부, 상판, 탑신, 옥개의 순으로 조립하였다.

황룡사 창건 구층목탑 단상 (A Study on the Architecture of the Original Nine-Story Wooden Pagoda at Hwangnyongsa Temple)

  • 이주헌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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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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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6-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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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황룡사 구층목탑은 백제의 장인 아비지(阿非知)에 의해 선덕여왕 13년(645)에 건립된 것으로 전한다. 이후 고려 고종 25년(1238) 몽고군의 침략으로 사찰이 완전히 불타버리기 전까지 약 700년 동안 당시대인의 정신문화 속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상징이자 호국불교의 구심체로서 존재하였다.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문헌기록과 발굴조사 자료를 근거로 황룡사 창건 목탑에 대한 구조와 전체적인 형태에 대한 다양한 복원안을 제시해왔다. 하지만 그들이 제시한 황룡사 목탑의 모습은 기본적으로 현재 남아 있는 목탑지의 외형적인 형태와 단순한 목구조를 가정한 사각구층의 형태였다. 이는 관련 자료의 부족과 제한된 지식으로 인해 황룡사 창건 목탑의 기술적 계보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부족한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새로운 자료의 발견과 고대 대형 불탑의 구조 체계에 대한 인식 정도에 따라 충분히 수정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본고에서는 2005년부터 진행된 <황룡사 복원 연구>를 통해 정리된 목탑지에 대한 재분석 자료를 근거로 동아시아 고대 불탑의 구조 체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 속에서 황룡사 창건 목탑의 계보와 구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함을 제안해보고자 한다. 황룡사 창건 목탑은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걸쳐 적어도 두 번의 큰 중창을 겪는 동안 기단의 규모와 평면 형식 등이 변화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에 따라 상부 구조에도 큰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발굴조사 결과 드러난 유구에서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하는 구층목탑과 관련된 흔적은 현재 판축으로 조성된 기단토와 심초석 정도이며, 그외 초석과 기단 석재 등 대부분은 9세기 이후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황룡사 창건 목탑의 실질적인 구조는 당시 동아시아 대형 불탑의 변화과정 속에서 이해하여야 하며, 기술적 계보는 북조의 영향을 받은 백제의 대형 불탑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에 표현된 9층 마애탑의 모습과 황룡사지 강당지에서 출토된 금동제 불탑 난간편 분석을 통하여 파악된 고고자료를 근거로 황룡사 창건 목탑의 이미지를 추정해본다면 외형상으로뿐만 아니라 구조적으로도 지금까지 우리가 인식하고 있던 순수한 목구조를 한 사각구층탑과는 다른 형태로 파악되는데, 아마도 실심체를 갖춘 이원 구조의 팔각구층탑일 것으로 파악된다.

강원도 지역 석탑 조영(造營)의 양식적 교류양상 (Stylistic Interchange Patterns of Stone Stupa Construction in the Gangwon-do Region)

  • 전지혜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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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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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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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시는 불교의 상징적인 건축물인 불탑(佛塔)은 불교 전래 후 7세기 무렵 기존의 목탑에서 한국의 자연적인 토양에 적합한 석탑으로 재탄생하였다. 이후 9세기 무렵 석탑의 건립이 중앙으로부터 지방으로 확산되면서 획일성을 탈피한 다양한 석탑들이 전국적으로 건립되었고, 오늘날에 이르러 '석탑의 나라'로 불리게 되었다. 본고에서는 9세기부터 본격화되는 석탑건립의 지방화 현상에 따라 각 지방에 건립되는 석탑 사이에 어떠한 양식적인 교류가 있었는지에 대해 주목하여, 약 50여 기에 달하는 강원도 지역 석탑 중 몇 기의 사례를 선정하였다. 첫 번째로 강원도 지역의 신라석탑 중에서도 현재 승탑과 동일한 사지(寺址)에 소재하고 있는 선림원지(禪林院址), 진전사지(陳田寺址), 거돈사지(居頓寺址)의 석탑과 승탑에 대해 비교했다. 이는 9세기는 선종의 전파에 따라 불교가 지방으로 확산되면서 이와 함께 석재라는 동일한 재료를 사용하는 석탑, 승탑, 석등, 불대좌(佛臺座) 등의 불교 조형물 역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양식적인 교류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층수와 평면형태가 완전히 이질적인 월정사(月精寺) 팔각구층석탑과 신복사지(神福寺址) 삼층석탑의 양식적인 공통점에 관한 비교이다. 이 두 기의 석탑은 대표적인 고려석탑으로 월정사 석탑은 다각다층의 고구려계 석탑으로, 신복사지 석탑은 매 층탑신받침을 감입한 사례로 일찍이 알려져 왔다. 즉 두 석탑은 상당히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탑 앞에 놓인 원통형 보관의 석조보살좌상뿐만 아니라 석탑 역시 동일한 장인집단에 의해 건립되었을 만큼 양식적으로 충분한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본고는 석탑의 단순한 양식적인 언급에서 나아가 그 양식을 토대로 석탑의 조영에 따른 교류양상을 추적해 보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