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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직단(社稷壇)의 입지(立地)와 공간구성특성(空間構成特性)에 관한 기초연구(基礎硏究) (Basic Studies on the Location and Spatial Organization Characteristics of the Seoul Sajikdan)

  • 최승식;심우경;유종호;전혜원;최종희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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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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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6-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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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연구는 조선시대 국가대사 중 하나인 사직대제를 행하는 장소로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서울 사직단의 조경적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기능론적 단계로 조영실제, 입지, 공간구성 특성을 구명하는데 목적을 두고 수행되었다. 연구방법은 문헌조사와 현지조사로 구분하여 이루어졌으며,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조영의 경우 태종16년(1416) 사직단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이후 임란, 숙종, 일제강점기 때 공간구성의 변화를 거쳤으며, 복원사업 (1988)이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둘째, 입지의 경우 사직단은 한양의 내사산(內四山) 중 우백호(右白虎)인 인왕산의 남동쪽으로 뻗어내려 온 산맥과 연접하며, 서북쪽이 높고 동남쪽이 낮은 서고동저의 지형을 보이며, 매동초등학교, 사직주민센터, 단군성전 등이 공간을 한정함을 파악할 수 있었다. 셋째, 공간구성의 경우 중앙에 사단과 직단이 음양을 이루어 배치되고, 유원과 주원(周垣)의 사면에 유문과 신문(神門)을 두어 중심과 사방위를 가진 오행적 구성을 보임을 파악할 수 있으며, 사직단의 부속건물들은 기능의 유사성과 이용의 편의성을 고려하여 배치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넷째, 구성요소의 경우 단유시설로는 사직대제(社稷大祭)를 봉행 시 제사를 올리는 사단과 직단과 두 단을 위요하는 유원, 유원 밖의 담인 주원 등이, 건조물로는 사직단 대문, 신실, 안향청 등이, 조경수목으로는 소나무가 주수종이었으나, 왕벚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 일반적인 조경수가 식재되어 정비가 요구된다 하겠다.

풍수지리로 본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Daesoon Jinrihoe Yeoju Headquarters Temple Complex as Viewed within Feng-Shui Theory)

  • 신영대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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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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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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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논문은 구천상제를 신앙의 대상으로 여기고 음양합덕·신인조화·해원상생·도통진경을 종지로 하여 상생의 등불, 수도의 터전, 인존시대를 여는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을 풍수학의 형기(形氣)적 이치를 통해 개벽공사 성지(聖地)임을 밝히고자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의 지리적 위치, 산수의 음양관계, 지맥(地脈)의 행도(行度) 과정 등 풍수지리 전반에 걸쳐 고찰이 필요하다 하겠다. 동시에 인간개조와 정신개벽으로 포덕천하(布德天下), 구제창생(救濟蒼生), 지상천국(地上天國) 건설을 목적으로 포덕(布德)·교화(敎化)·수도(修道)의 기본사업과 구호자선사업·사회복지사업·교육사업의 3대 중요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는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이 후천개벽의 인존시대를 열어갈 풍수적 적지임을 말해주는 용(龍), 혈(穴), 사(砂), 수(水)의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도 매우 중요하다. 종단의 중심인 여주본부도장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풍수적 국세를 두루 갖추고 있다. 인류 해원상생(解冤相生)의 중심인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에 대한 풍수적 고찰을 통하여 풍수적 상징성과 보은상생(報恩相生)의 윤리 실천을 통해 미래를 밝혀 나갈 생왕지지(生旺之地)에 대해 탐색하고, 팔방(八方)의 상서로운 기운이 모인 이곳 본부도장의 영험한 명당국세의 수도처적(修道處的) 지세와 형국, 맑은 수기(水氣)와 어울린 지맥(地脈), 산수유정한 국세, 용혈사수(龍穴砂水)의 이치에 부합한 여주본부도장의 풍수적 입지를 밝히고자 했다. 따라서 본 논문의 주제인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의 풍수적 입지와 관련하여 현장을 중심으로 산과 물의 흐름을 풍수지리 이치에 근거하여 살피고 주변의 산세가 어떤 형태로 호응하고 있는지를 전반적으로 살펴보았다. 여주본부도장을 중심으로 사신사(四神砂)인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의 포국(布局)과 입지의 연관성을 고찰하고자 형기론(形氣論)을 중심으로 전래 된 전통 지리서(地理書) 등을 토대로 여주본부도장의 풍수적 연구의 타당성을 뒷받침하고자 했다.

동아시아 맥락에서 바라본 한국에서의 위험경관의 생산 (The Production of Riskscapes in the Korean Developmental State: A Perspective from East Asia)

  • 황진태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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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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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8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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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울리히 벡(Ulrich Beck)의 위험사회 개념은 위험을 둘러싼 공간적인 감수성이 부족하면서 특정 위험이 발생하고, 전개되고, 다면적으로 인지되는 역동적인 측면들이 누락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적 접근으로 벡의 위험사회론을 공간적으로 발전시킨 데틀레프 뮐러만(Detlef $M{\ddot{u}}ller$-Mahn)의 위험경관(riskscape) 개념을 소개하고, 이 개념을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이론화를 시도한다.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론의 핵심적인 전제는 적극적인 '국가의 역할(the role of the state)'을 주문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경제성장 및 근대화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이 두드러졌다는 사실은 벡의 용어를 빌리자면 경제성장과 근대화의 댓가로 원자력 발전소와 같은 '만들어진 위험들(manufactured risks)'의 형성에 국가가 깊숙이 연루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동아시아 근대화와 위험사회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가에 대한 분석이 긴요하다. 보다 구체적으로, 한국의 원전입지정책을 사례로 1) 단기간에 동아시아 경제성장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지배적 사회세력이 지역의 위험은 축소하고, 경제성장의 가치를 지역의 위험보다 우선시하는 국가적 차원의 위험경관을 형성하였음을 밝히고, 2) 또한 다양한 우발적 계기들(정치적 민주화 혹은 대규모 재난의 발생 등)에 의하여 다른 사회세력들이 생산한 위험경관들이 기존의 국가적 차원의 위험경관과 대립할 수 있음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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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정원의 지식정보 전개와 수용 - 15~19세기 편찬된 정원 및 화훼 관련서적을 중심으로 - (The Development and Acceptance of Knowledge Information in Garden of Joseon Dynasty - Focusing on the Garden and Flowering Books Compiled from the 15th and 19th Centuries -)

  • 김동현;이원호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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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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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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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15~19세기 편찬된 조선시대 정원 및 화훼 관련서적을 대상으로 통시적 분석을 통해 시기별 정원에 대한 지식정보가 전개되는 특징을 도출하고, 그 요인을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정원 및 화훼 관련서적을 편찬한 저자들의 관계성을 살펴본 결과 조선시대 실학의 계보와 유사한 특성을 보이고 있었다. 강희안의 실학적 면모는 후대 실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이수광은 연행의 경험을 통해 정원 관련 지식을 축적하였다. 이후 중농학파 홍만선의 이념은 남인 계열의 유박과 관련이 있으며, 서유구 또한 중농학파의 경세론과 중상학파의 인물들과 교류를 통해 실학을 통합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다. 류중림은 『산림경제』를 증보하면서 중농학파와의 관계성이 나타났다. 둘째, 『양화소록』과 『지봉유설』 「훼목부」, 『산림경제』 「양화」, 『증보산림경제』 「양화」, 『화암수록』, 『임원경제지』 「예원지」에는 정원 식물의 특성과 재배법, 관리방법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임원경제지』 「이운지」, 「상택지」, 「섬용지」에는 정원의 입지선정과 시설 배치, 조성방법, 재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 정원 관련 서적의 서술방식은 개론이 55%로 가장 높았고, 방법론의 제시(42.8%), 이기론(15.5%), 분류(12.4%), 제도(1.9%) 순으로 확인되었다. 셋째, 정원 관련 지식정보의 비중을 기준으로 시기별 정원 관련서적들을 분류한 결과 17세기 이전 편찬된 『양화소록』과 『지봉유설』을 전기, 18세기 편찬된 『산림경제』와 『증보산림경제』를 중기, 19세기 편찬된 『임원경제지』가 후기로 분류되었다. 정원 관련서적들은 전대에 수록된 중국 고서와 저자의 경험, 의견들이 후대 정원관련서적에 인용되었으며, 저술 당시 발달한 농업기술과 전문지식을 반영한 정원 관련 지식의 보강이 이루어졌다. 넷째, 시기별 정원 지식정보의 전개와 수용양상을 분석한 결과, 전기에는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화훼를 다루고 있었다. 이후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중국의 방대한 정원 관련 지식정보가 유입되어 사대부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지식 섭렵의 일환으로 정원 조성에 대한 당위성을 확보하였으며, 이를 통해 정원에 대한 전문성이 확장되었다. 19세기 정원 조성의 유행에 대응하여 그간에 집적된 정원 관련 지식정보를 바탕으로 전문서적이 저술되면서 초기 정원 식물의 수집과 관리에서부터 정원 조성의 당위성, 조성방법, 향유방식, 자아실현 등의 체계가 정립되었다.

명곡(明谷) 최석정(崔錫鼎)의 논설류 산문 연구 (A study about Myeonggok(明谷) Choiseokjeong(崔錫鼎)'s persuasive style(論說類) proses)

  • 권진옥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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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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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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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논문은 조선 중후기의 대표적인 소론(少論) 계열 인물인 명곡(明谷) 최석정(崔錫鼎, 1646~1715)을 대상으로, 그가 남긴 산문 가운데 논설류 문장을 고찰한 글이다. 최석정은 남구만(南九萬, 1629~1711), 박세채(朴世采, 1631~1695)의 제자이면서 조선 중후기 소론의 영수로 활약한 인물이다. 남구만-최석정-조태억(趙泰億, 1675~1728)으로 이어지는 조선후기 소론의 계보를 잇는 중심인물로서 정치사와 사상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기존의 연구는 주로 정치사적, 사상사적 입지와 의의를 밝히는 데에 치중하였고, 학문적으로는 예학(禮學), 산학(算學), 어학(語學) 분야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문학에 대한 연구는 소략하다 못해 전무한 게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최석정의 문학 가운데 논설류 문장에 집중하여 그 문학성을 가늠하고자 한다. 그 예비적 고찰로서 1장에서는 최석정의 문학에 대한 제 평가들을 살펴보았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최석정의 문학에 대한 평가는 일정 수준을 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의 문학에 대한 연구도 유의미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2장에서는 "명곡집(明谷集)" 소재 논설류 산문을 개관하였고, 3장에서는 최석정의 논설류 문장의 특징적인 면모를 살펴보았다. 최석정이 지은 논설류 문장은 총 14편으로, 그 창작시기는 문과에 급제한 1671년 즈음부터 생의 마지막까지 걸쳐있다. 이 가운데 본 논문에서 분석 대상으로 삼은 글은 "순욱론(荀彧論)", "부자대가론(夫子待賈論)" 그리고 "문언계사변(文言系辭辨)"이다. 기존의 논의를 뒤집는 역발상이 돋보이면서 구성면에서 독특한 면모를 보이는 글이 "순욱론"이라면, 설득력을 높이는 유비(類比)를 활용하여 논의를 전개하되 기존의 시각을 전환시킨 글이 "부자대가론"이다. 또한 상대방 주장의 대전제(大前提)를 무너뜨려 반박하는 논리적 정합성을 보이면서도 어휘나 문장, 구성의 형식미에서도 그 공력을 들인 글이 "문언계사변"이다. "순욱론"은 순욱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제시한 논설류 문장이다. 그의 재능과 행적, 처세와 절의에 대해 다양한 평가들이 있었는데, 이처럼 첨예하게 갈리는 논란 속에서 자신의 식견과 통찰로 순욱의 인물상을 새롭게 제시한 글이 바로 "순욱론"이다. 특히 이 작품은 액자식 구성을 보이는데 '재능을 구사하는 어려움[재난(才難)]'이라는 의제 안에 다시 '순욱에 대한 논의[순욱론(荀彧論)]'를 개진한 점이 특징적인 면모라 할 수 있다. "부자대가론"은 어제응제(御製應製)로 지은 글인데, 공자(孔子)의 "팔아야지, 팔아야겠지. 그러나 나는 좋은 값을 기다리는 사람이다.[고지재고지재(沽之哉沽之哉), 아대가자야(我待賈者也).]"라는 언급을 의제(議題)로 삼은 것이다. 이 글은 무엇보다도 유비(類比)를 적극 활용하였는데, 이러한 유비의 활용은 주제를 구현함에 있어 설득력을 높이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한편 최석정은 기존의 논의와 궤를 같이 하여 공자의 입장에서 논의를 전개하다가 끝부분에서는 군주의 입장에서 논의를 전환시켜 군왕에 대한 권면으로 논설류 문장을 끝맺음하였다. "문언계사변"은 "주역(周易)"의 "문언(文言)"과 "계사(系辭)"가 공자의 저술이 아니라는 구양수(歐陽修)의 논의에 정면으로 조목조목 반박한 글이다. 이 글의 특장은 반박하는 논리의 정합성도 있겠지만 어휘나 문장, 단락 구사의 측면에서도 탁월하다고 평가할 만하다. 최석정은 구양수가 대전제로 삼은 논리를 반박하는 기제로 삼았다. 또한 이 글은 구성의 측면에서 보면 총 다섯 단락으로 구성하되 각 단락은 정연하게 안배하였다. 또한 순차적으로 논거들을 제시하되, 뒤로 갈수록 논거의 중요도가 강화되는 점층법을 구사하였다.

가람(嘉藍) 이병기 생가(李秉岐 生家) 수우재(守愚齋)에서 찾는 소박함과 선비정신 (The Rusticity and Spirit of Scholars Found at Suwoojae, the Birth House of Garam Byungi Lee)

  • 김정식;노재현;김정문;오현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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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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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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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 연구는 가람의 문학적 성과 중 자연관 등에 대한 문헌조사를 바탕으로 가람 이병기의 생가 수우재에 대한 실측 도면조사 그리고 현지답사 등의 고찰을 통하여 가람의 시조 문학적 특성의 가장 핵심어로 회자(膾炙)되는 '소박함'과 '선비정신'이 정원의장 및 공간특성에 어떠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는가를 고찰한 것이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수우재의 입지는 용화산 줄기를 배산으로, 동쪽으로 노령산맥의 지맥에서 분기된 천호산을 안산으로 입지하며, 가람 시의 회고와 애착공간으로 자주 드러나고 있음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수우재의 장소성은 인걸지령론(人傑地靈論)과 관련된 양택 명당과 관련 깊은 것으로 해석된다. 2. 조선 후기인 1844년에 가람의 조부 이조흥에 의해 건립된 수우재는 안채의 일부가 정지(부엌)와 이어진 ㄱ자형의 고패집으로 구성되었으며, 4칸의 사랑채와 3칸의 고방채, 안채의 뒤쪽에 장독대를 중심으로 여유로운 민가 정원구성을 이루고 있다. 3. 수우재 내 외의 공간구성은 담장과 건축물의 영역이 세분화된 가운데 동선 변화가 나타나고 있어 시선의 다양함을 느낄 수 있으며, 승운정을 비롯해 정원 곳곳에서는 가람의 존재감 및 일상생활이 녹아든 시적 세계가 담긴 철학적인 영역의 공간감이 감지된다. 4. 수우재의 주요 정원시설은 사랑채 전면에 위치한 단아한 장방형의 연지, 곳곳에 산치(散置)된 괴석 그리고 차경 목적으로 낮게 둘러친 담장 등에서 소박한 미의식을 바탕으로 한 선비의식과 자연친화적 정원 면모를 읽게된다. 5. 수우재의 조경식물 중 주로 연지 주변에는 배롱나무, 살구나무, 일본목련, 산수유, 향나무, 배롱나무, 동백나무 등이 식재되었으며, 내원에는 감나무, 대추나무, 자두나무, 모과나무 등 유실수 위주의 실용적 식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승운정 후면에 악센트용으로 식재된 수령 200년 이상의 탱자나무는 특히 주목된다. 6. 가람의 시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자연을 관조하는 시이고 다음이 풍류를 담은 시이듯 수우재 주변의 다채로운 자연경관적 요소는 가람 시의 시적공간으로 설정된 자연공간의 소재 및 주제를 전환되는 모티브적 환경으로 보이는데 이는 승운정기(勝雲亭記) 등에서도 나타나는 자족의 심정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된다.

담양소쇄원(潭陽瀟灑園)과 소주창랑정(蘇州滄浪亭)의 조영사상과 경관구성요소에 관한 의미(意味) 비교연구 (A Semantic Comparative Study of Formative Idea and Landscape Elements Composition of Damyang 'Soswaewon(潭陽瀟灑園)' & Suzhou 'Canglang Pavilion(蘇州滄浪亭)')

  • 위첨첨;김재식;김정문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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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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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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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신흥유학 성리학을 바탕으로 조영된 조선시대 별서원림인 소쇄원과 중국 송대 성리학 생성기(生成期)에 조영된 창랑정을 비교 고찰하여 원림문화의 조영사상과 구성요소의 의미론적 해석에 관한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소쇄원은 한국 별서원림 중에서도 성리학사상을 오롯이 구현하였으며, 중국 창랑정은 현재까지 잘 보존된 가장 연원이 깊은 중국의 사가원림으로서, 조영 시기는 소쇄원보다 약 500년가량 앞서며 조영자인 소순흠 또한 송대의 사대부로서 창랑정 조영배경에는 성리학이라는 뿌리 깊은 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 둘째, 소쇄원과 창랑정 두 원림 모두 은일사상(隱逸思想)에 뿌리든 둔 자연친화(自然親和)성향이 두드러진다. 특히 소쇄원은 산림에 입지한 형태로 은일(隱逸) 중에서도 '소은(小隱)'이며 창랑정은 도시에 입지한 '중은(中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셋째, 소쇄원과 창랑정의 명명(命名)에 상징의미가 배태된 원림요소들을 비교분석하면, 소쇄원은 자연합일(自然合一)된 원림으로서 유불선(儒佛仙)의 다양한 사상들이 습합되어 발전된 중국 송대 성리학 사상이 원림조영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으며, 현재 창랑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상징요소들의 의미해석의 밑바탕으로 작용하고 있다. 넷째, 사상적인 변화는 반드시 원림의 형식적 양식이나 요소들에 체현(體現)됨으로 원림요소를 비교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소쇄원은 최대한 자연을 활용함으로써 최소한의 인공을 가미하여 조영된 원림임을 알 수 있다. 즉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을 결합함으로써 공간의 의미적인 특징을 표출하고자 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로 소쇄원의 대봉대는 조영자의 이상을 표현하는 장소이며, 창랑정은 높은 담장 내에는 원내의 경치가 새롭게 창출되고 속세와의 단절감을 둔 채 재현된 자연을 구축함으로써, 창랑정은 가산 위에서 주변의 가경을 관조하며 삶을 성찰하는 공간으로서의 장소성이 감지된다. 한국과 중국은 같은 문화적 뿌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원림의 양식이나 성격에서는 다양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각 민족의 특성과 결합하여 원림을 형성하였고, 상이한 결과를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선 궁궐 입지 선정의 기준과 지형에 대한 연구 - 경복궁과 창덕궁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Topography and the Criteria of Choosing the Location-Allocation of Palaces - Focusing on Gyeongbokgung Palace and Changdeokgung Palace -)

  • 김규순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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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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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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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조선의 궁궐은 크게 법궁(法宮)과 이궁(離宮)으로 분류된다. 이와는 별개로 정궁(正宮)의 개념이 있다. 법궁은 정궁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지만, 이궁이 정궁으로 활용되는 것은 정치적인 상황에 따른다. 한양 최초의 궁궐은 경복궁이며 법궁으로 지어졌다. 경복궁의 자연 지형은 왕권을 상징하는 백악산을 배경으로 하였으며 사신사가 뚜렷하다. 궁궐의 입지도 왕의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도록 궁궐 밖에서 잘 보이는 장소를 선정하였으며, 백악산의 능선을 따라 하나의 축선을 기준으로 일직선상에 삼문삼조를 배치하여 왕권의 정통성과 위계질서와 통일성을 추구하였다. 이궁(離宮)은 왕의 요구나 왕실의 수요 또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건축되었으며, 왕실의 일상생활 공간으로서 복수의 축선에 의해서 독립적이고 다양한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법궁은 양(陽)의 지형을, 이궁은 음(陰)의 지형을 선택하였으므로 전각을 배치하는 준거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조선 궁궐의 조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왕기(王氣)였다. 궁궐 건설의 중요 요소는 풍수기맥과 금천이다. 풍수기맥은 왕기를 수용하는 통로였고, 금천은 왕기가 궁궐 밖으로 퍼져나가지 않게 하는 방법론이었다. 전형적인 풍수 지형을 선택한 법궁(法宮)인 경복궁의 경우 풍수 요소를 적재적소에 적용하고 있어서 풍수 원리를 충실하게 반영하였다. 반면에 이궁(離宮)은 비정형적이고 온전하지 않은 풍수 지형에 지어졌다. 풍수는 조선시대 지배계층의 자연관이며 지리관이었다. 이들의 지리관을 살펴봄으로써 전통문화 계승과 복원에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조선시대 무장읍치(茂長邑治)의 원형경관 고찰 (A Study on Prototype Landscape of Mujang-Eupchi(茂長邑治) during Joseon Dynasty)

  • 심순희;송석호;김충식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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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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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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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연구는 전통도시인 조선시대 무장읍치(茂長邑治)의 입지특성을 고찰하여 원형경관을 규명하는데 주력하였다. 요약된 결과는 다음과 같다. 무장읍치는 태종17년(1417)에 축조된 무장읍성(茂長邑城)을 중심으로 동쪽에 향교를 세워 문묘를 조성하고, 서쪽에 사직단을 두었으며, 읍성 내에 성황사를 세웠고, 북쪽의 진산(鎭山)인 한제산에 성황단과 여단을 배치한 유교적 공간체계를 보였다. 진산에 위치한 성황단의 경우 읍성 내의 성황사와 공존체제를 유지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읍성의 남문 앞으로 V자형 풍수계(風水溪)가 흘러 안산(案山)인 남산 앞에서 수구(水口)를 이루는데, 고을의 기운을 보호하기 위해 남지(南池)인 홍문제(紅門堤)를 조성하고 관풍정(觀豊亭)을 조영하였다. 19세기에 홍문제는 무흥제(茂興堤)로, 관풍정은 무흥당(茂興堂)으로 개칭된 것으로 보았다. 남지에는 원도를 비롯하여 읍수(邑藪)가 식재되고 송덕비와 당산목, 돌당산이 수구막이 역할을 하며 읍치 입구를 비보한 특징을 보였다. 그러나 1955년경에 남지가 매몰되고 이후 시장이 들어서면서 원형의 모습을 잃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1914년 일제강점기 부군면 통폐합(府郡面 統廢合)으로 멸실 위기에 처한 고을의 칠거리 명칭과 위치를 구명하였다. 칠거리당산은 음양론에 따라 주로 할아버지당산 입석과 할머니당산 신목이 구성의 주체가 되었다. 칠거리당산은 마을을 수호하려는 공동체적 신앙장소로서 마을 경계에서 출입을 관장하는 일곱 관문 역할과 읍치내맥을 비보하는 입지특성을 보였다.

한국의 지리공간분석 및 모델링 연구 (Geospatial Analysis and Modeling in Korea: A Literature Review)

  • 이상일;김감영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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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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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06-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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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이 논문의 연구 목적은 한국 지리학계에서 이루어진 지리공간분석 및 모델링 분야의 연구를 개관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지리공간분석과 모델링이라는 분야는 공간데이터분석 및 공간통계학, 공간최적화, 지오시뮬레이션 관련 연구를 의미하는 것으로 한정한다. 한국의 지리공간분석과 모델링 분야는 컴퓨터 혹은 분석 지도학과 GIS가 도입된 1990년대의 초기 단계를 거쳐, 관련 연구 논문이 쏟아진 2000년대의 성장 단계로 이행했으며, 현재 성숙 단계를 향해 진화하고 있다. 공간데이터분석과 공간통계학 분야에서는 공간적 포인트 패턴 데이터, 에이리어 데이터, 지구통계학적 데이터, 공간적 상호작용 데이터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공간최적화 분야에서는 시설물 입지문제, 구획문제, 경로설정 문제 등에 대한 모델의 개발 및 적용과 관련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지오시뮬레이션 분야에서는 셀룰라 오토마타와 관련된 연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에 비하여, 에이전트 기반 모델링은 이제 시작단계에 있다. 이 모든 연구 성과들 중 몇몇은 표준 기법의 단순한 적용을 넘어 방법론적 진보를 이끌어 낸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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