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이순신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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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에 기록된 안편도로 추정되는 섬에 대한 연구

  • 고광섭;김득봉
    • 해양환경안전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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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양환경안전학회 2018년도 공동국제학술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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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7-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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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난중일기의 기록 중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 이후 한반도 서남해안을 항해하면서 조선수군의 새로운 본영을 물색하고, 명량해전 이후의 조선수군의 전략을 구상하던 장소로서 전시 임시 전략지휘소로서 의미가 큰 안편도(발음도)의 현재의 지명으로 추정되는 섬들 중 팔금도를 대상으로 항해 과학적 관점에서 조명하고 분석한 내용이다. 분석 결과 이순신 장군과 그의 참모들이 올라가 주변을 조망한 위치로 추정되는 섬 중의 하나인 팔금도의 채일봉과 금당산에서 관측한 방향이 난중일기에 기록된 내용과 일치하지 않은 부분이 많음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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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에서 본 이순신의 꿈과 인격의 몇 가지 측면: 분석심리학적 입장에서 (Dreams of Admiral Yi Sun-sin (1545-1598) in Nanjung Ilgi (Diary in War Time) and Some Aspects of His Personality: From Jungian Viewpoint)

  • 이부영
    • 심성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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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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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9-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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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이순신 ≪난중일기≫를 중심으로 이순신의 인격의 몇 가지 의식적 측면을 살펴보고 이순신의 꿈을 분석심리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무의식의 목적의미를 추론하고자 하였다. 그의 인간성은 알려진 바와 같이 충, 효를 철저하게 실천했고 나라를 위해 헌신한 영웅의 상과 일치한다. ≪난중일기≫에는 그의 강직함과 함께 매우 인간적인 감성, 오해와 정치적 박해를 겪어야하는 말할 수 없는 고통, 절망과 고독, 육친을 잃은 통곡이 숨김없이 묘사되고 있다. 일기쓰기와 이순신의 '아니마'의 또 다른 표현인 달밤의 시, 피리와 거문고 소리, 그리고 또한 불가해한 꿈을 보고 점을 쳐서 미래를 알아봄으로써 그는 그의 고독을 스스로 치유했다. 미래의 영웅을 키우고 이끌어준 어머니의 위대한 역할과 융이 말하는 모성콤플렉스와의 관계를 살펴보았고, 이순신이 평생 괴로워한 '흉인', 원균이 이순신의 '그림자'로서 이순신이 의식화해야 했던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었다고 추정했다. 이순신의 죽음을 둘러싼 추측은 근거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난중일기≫에 기술된 이순신의 꿈 중 꿈의 내용이 조금이라도 기술된 꿈 32개와 이순신의 조카 이분(李芬)이 남긴 ≪이충무공행록≫에 수록된 꿈 3개, 총 35개를 살피고 특히 원형적 꿈을 분석심리학적 입장에서 해석하였다. 그 결과 첫째로 받은 인상은 꿈이 이순신에게 '신격에 의해 선택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되풀이 알려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순신은 이를 바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한 태도 때문에 오히려 자아의 팽창에 빠지지 않았다. 동시성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꿈과 이에 대한 이순신의 태도를 소개했다. 건강을 해치거나 편견에 빠질 위험을 경고하는 꿈도 있었고 '아니마'상, '자기'의 상징, 창조적 변환의 상징도 꿈에 나타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임을 시사하는 꿈이 있었다. 그는 이를 몰랐거나 알았더라도 그런 생각에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현세적 왕보다 더 위대한 호국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항상 천명(天命)을 살폈다. 그리고 천명은 그를 영웅의 길로 인도하면서 영웅신화에 불가결한 고행의 시련을 주었다. 박해자와 위로하는 자가 함께 그의 길을 인도했다. 그의 어머니, 원균, 선조, 그리고 영의정, 유성용까지 모두 이순신 영웅신화를 구체화하는데 기여했다. 이순신은 죽고 신이 되었다.

이순신의 『충민공계초(忠愍公啓草)』에 대한 서지적 고찰 (Bibliographic Study on 『ChungMinKongKeicho (忠愍公啓草)』 by YI Sun-sin)

  • 노승석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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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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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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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이순신(李舜臣)이 임진왜란 중 조정에 보고한 장계(狀啓)가 그 당시와 후대의 등록(謄錄) 형식에 따라 3자에 의해 등서되어 현재 장초(狀草), 계초(啓草), 계본(啓本) 등으로 전한다. 특히 전라좌수영의 수군절도사로 재직할 때 작성된 "임진장초(壬辰狀草)"는 대표적인 장계로 많이 알려졌다. 최근에 분실되었다가 소재가 확인된 "충민공계초"는 "임진장초"와 함께 후대의 이순신 장계류에 전범이 될 만큼 사료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국보급 유물이다. 그러나 이 책이 이순신 관련한 새로운 책인지 아니면 기존에 분실되었던 장계별책인지 불분명한 상태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이에 대한 서지적인 고찰을 통해 관련 내용을 고증하였다. "충민(忠愍)"은 이순신이 사후에 사용했던 명칭이었고, 1662년에 장계가 등서되어 "충민공계초"가 완성되었다. 여기에는 "임진장초"에 없는 12편이 더 들어있는데, 그간 분실된 것으로 알려진 장계별책에도 "임진장초"에 없는 12편이 더 들어 있었다는 점이 서로 일치하는 점이다. 특히 1928년 일본인들이 촬영한 사진 11장의 형태와 내용이 "충민공계초"에 들어있는 12편과 완전 일치한다. 조선사편수회에서 이 책을 "별도로 초사(抄寫)한 계초(啓草) 1책"이라고 한 점, 이 책의 12편으로 장계를 보충한 점, 홍기문과 이은상이 장계초본에 기존 "임진장초"에 없는 12편이 더 들어있다고 한 점, 조성도가 12편을 따로 별책본으로 분류한 점 등은 12편이 들어있는 장계별책을 "충민공계초"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준다. "충무공계초"는 편수가 총 62편이므로 12편이 더 들어있는 분실된 장계별책으로 보긴 어려울 것이다. "충무공유사"의 "충무공계본"은 모두 16편이다. 본문에는 이두문이 그대로 실려 있고, 뒤의 3편은 "충민공계초"원문과 동일하다. 지금까지 이두문이 그대로 실린 것은 1935년에 간행된 조선사편수회의 "임진장초"가 유일했는데, "충무공계본"의 간행된 시기가 오히려 이를 앞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충민공계초"가 장계별책이라는 것에 대한 반론은 이은상이 "장계등본 별책의 일기 1장"이라고 한 말에 근거한다. 1953년 설의식이 "이순신수록 난중일기초"에 "무술일기" 초고 사진 1장을 도판으로 처음 소개하였다. 이은상도 "무술일기"에 장계초본 별책 속의 친필 일기초 2면을 첨가했고, 다시 "장계 등본 별책 끝에 최후 10일 동안의 일기 한 장"과 "별책부록"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이 의견은 설의식이 정확한 출처를 모르고 소개한 "무술일기" 초고 사진 1장"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은상은 "충무공유사"를 장계관련 책으로 잘못 파악하고 "장계등본 별책의 일기 1장"이란 말을 하였다. 이는 실제 원본상황과 다른 잘못된 견해이므로, 굳이 이를 정정한다면 "충무공유사의 일기 1장"이라고 해야 한다. 따라서 일기 1장이 딸린 장계별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므로 반박의 근거가 잘못된 것이다. 요컨대 "임진장초" 이외의 모든 장계들을 장계별책이라 할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통상 지칭되었던 장계별책에 유독 12편이 더 실려 있다고 한다. 이 점이 다른 장계류와 차별화된 점이다. 그러므로 여러 장계이본 중에서 유일하게 12편이 더 수록된 "충민공계초"가 기존에 알려진 장계별책이라는 견해에 더 무게가 실릴 것이다.

난중일기에 기록된 안편도(발음도)의 지리적 위치에 관한 실증 연구 (A Critical Review of the Geographical Location of Anpyeon-do(Baleum-do) Written in the Nanjung Diary by Admiral Yi)

  • 고광섭;박태용;김득봉
    • 한국항해항만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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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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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69-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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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난중일기에 나타난 지명에 대해 현재의 행정지명과 위치는 대부분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량해전 이후 한반도 서남해안을 항해하면서 이순신과 조선수군이 체류했던 장소 중 1597년 10월 11일 일기에 기록된 안편도의 현재의 지명과 위치가 어디인지 번역자 또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다를 뿐 아니라,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연구는 안편도로 추정되어 온 기존의 장소에서 관찰한 지형지물의 방향과 위치가 실제 위치와 방향을 비교하여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분석하였고, 연구자들이 새롭게 탐사한 섬과 산에서 관찰한 지형지물의 방향과 위치가 실제 안편도와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분석하고 평가하였다. 그 결과 난중일기에 기록된 안편도는 현재의 안좌도에 있는 매봉산임을 확인하였다.

국보 제76호 임진장초(壬辰狀草)의 지질분석과 보존처리 (Material Properties and Conservation of Imjin Jangcho (Drafts of Imjin War Reports of Admiral Yi Sun-sin) of the 76th National Treasure of South Korea)

  • 정선화;신효영;홍순천;송정원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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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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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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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국보 제76호 지정문화재는 난중일기(임진일기, 계사일기, 갑오일기, 병신일기, 정유일기, 속정유일기, 무술일기) 7책과 서간첩 및 임진장초 등 총 9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충사 소장 유물로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장군이 직접 기록하였다는 역사성과 학술연구자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UNESCO가 지정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2013년 6월)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이 중 임진장초는 충무공이 임진왜란 중 선조 25년(1592) 4월 1일 전라좌도수군절도사 재임시로부터 동왕 27년(1594) 정월 10일 삼도수군 통제사를 겸직할 당시까지 정황(情況)을 비롯하여 출전경과(出戰經過), 군사상의 건의사항, 진중의 경비 및 준비상황들을 정확하고 상세하게 장계(狀啓)한 내용을 다른 사람이 등초(謄草)한 책이다. 또한 조정의 임금님께 올린 보고서(장계, 狀啓)의 초본으로 1책(?), 반엽(半葉), 오침안정법, 선장본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본 논고에서는 임진장초에 대한 손상유형과 보존상태 및 보존처리 내용에 대하여 기술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조선시대 고문헌이며 국가지정 중요 지류문화재의 보존처리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기억방식을 통해 본 임진왜란의 서사 양상 (Phases of the Discourse Through the Way of Remembe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 음영철;박은미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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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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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1-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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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임진왜란을 통해 본 기억의 서사 양상을 고찰한 것이다. 연구방법으로는 기억과 망각의 변증법을 활용하였다. 연구된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20세기까지 임진왜란과 이순신 중심의 기억 서사의 주류를 이룬 것은 이순신의 영웅담론이었다. 임진왜란 당대에 씌여진 "징비록"과 "난중일기"는 임진왜란에 대한 객관적 묘사와 주관적 묘사가 서사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이 중심이 되어 서술하였기에 백성과 격군의 겪은 임진왜란의 참상을 반영하지 못한 것은 한계로 지적할 수 있다. 둘째,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창작된 김훈의 "칼의 노래"는 기존의 영웅 담론에서 벗어나 인간 이순신의 내면을 독백의 형식으로 그려내었다. 임진왜란과 백성 중심의 서사는 전란에 참여한 해상의병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임진왜란에 대한 다른 서사를 보여주었다. 김한민 감독의 <명량>은 임진왜란에 대한 기존의 기억 방식을 수정한 것으로, 수많은 전쟁 장면을 통해 임진왜란 승리의 주역이 백성이고 이순신은 부수적임을 보여주었다. 역사의 진실은 기록된 것만으로는 전부를 알 수 없다. 소설과 영화와 같은 문화 텍스트는 임진왜란의 기억방식을 영웅이 아닌 개인에 두었으며 백성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음을 보여주었다.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에 기록된 기상자료의 분석 (Analysis of Weather Records in Admiral Yi Sun-sin's Nanjung Ilgi)

  • 서명석;차소영
    •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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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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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9-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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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In this paper, the weather records in 'Nanjung Ilgi' were investigated and the weather characteristics of the southern coast of Korea (SC_Korea) was discussed. The Nanjung Ilgi is a personal diary written by admiral Yi Sun-sin from January 1592 to November 1598 during the 7-year war caused by the Japanese invasion. He is a respected great leader in the history of world naval warfare, winning all 23 battles against the Japanese. Of the 1593 days of diaries currently preserved, only 42 days have no weather records. Weather was recorded in detail, including sky conditions, precipitation, wind characteristics and others. Weather records were extracted from the diary, converted to the solar calendar, and compared with the meteorological data of Yeosu. The average annual precipitation day is about 90 days, which is similar to the current 95~100 days. As in the current climate, precipitation frequently occurs for about 30 days in summer, but less than 15 days in other seasons, and the rainy season starts from June 14 to 21 and ends from July 6 to 17. It seems that the abnormal cold and heat phenomena, which deviate significantly from the seasonal average climate, occurred on 6 and 21 days, respectively, over 7 years. This means that the weather records of Nanjung Ilgi can be used as valuable data on the climate of SC_Korea in the late 16th century. The fact that he recorded the weather even in such extreme battle conditions shows that he clearly recognized the importance of weather in warf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