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이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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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연문장전산고』 사전(祀典)의 건축 관련부분 해석과 연구 (A Study on the Texts Related to Ancestral Ritual Building in 『Ohju Yeonmun Jangjeon Sango』)

  • 백소훈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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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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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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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Ohju Yeonmun Jangjeon Sango" written by Lee, Gyu-gyeng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encyclopedias in the period of Chosun-Dynasty. There are two chapters related to architecture in this book, one is "ancestral rite governance·human"chapter, and the other is "architecture·human" chapter. Both of them are hard to understand because they are written in ancient Chinese and consist of various quotations in ambiguous way. This paper as a partial study is deal with the former. It makes difference between writter's original texts and quotations through textual research, and translates to modern Korean, and analyze information about ancient architecture in texts. The texts can divide to three sections. The first introduces three Chinese architectural theory books as "Gogonggi(考工記)", "Yeongjo Beopsik(營造法式)" and "Mokgyeng(木經)", and mentions about the prototype of the royal ancestral ritual building in "Gogonggi Toju(考工記圖注)". The second quotes "Seoyeong(書影)" to introduce "Yeongjo Beopsik". The third quotes "PaePyeon(稗編)" to introduce "Yeongjo Beopsik" and "Mokgyeng", and mentions about the counting unit of columns of the royal ancestral ritual building. Although the purpose for these quotations is not directly mentioned, but we can find it is intended to explain the architectural prototype and lay-out of the royal ancestral ritual building.

문헌을 통해 본 녹나무[장(樟)]의 오류 고찰 (The review of Cinnamomum camphora SIEB.'s mistake in historical documents)

  • 김규섭;이창훈;김세호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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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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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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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 연구는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고문헌에 출현한 녹나무의 기록을 고찰한 논문이다. 녹나무의 한자 표기인 '장(樟)' 자를 바탕으로 녹나무의 정의와 용도를 살펴보았고, 현대적 개념과의 오류 사례를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제시하고자하였다. 첫째, 녹나무에 대한 정의와 사례를 분석한 결과, 현재 녹나무로 해석되는 남(枏) 남(楠) 예(豫) 장(樟) 가운데, '장(樟)'이 현대적인 개념의 녹나무에 가장 부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과거의 기록에서 녹나무가 생육 불가능한 지역에 출현하는 모습을 확인하였는데, 녹나무는 대표적인 남부수종이니 녹나무가 아닌 다른 나무를 녹나무라 지칭한 오류로 사료된다. 셋째, 다른 수종과 오인한 사례들을 추적하여 기록을 고찰한 결과,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중 "침뇌변증설"에서 모감주나무와 혼동했을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이상 본 연구에서 살펴본 녹나무의 경우 외에도 여타 문헌에 나타난 오류 사례의 검증이 요구된다. 또한 현대의 성상별 기준과 문헌의 대조를 통해 선별하는 과정을 병행하여, 녹나무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도출할 후속연구를 기대하는 바이다.

19세기 조선 의약 풍경과 '약로(藥露)' - 신대우 가계 기록물과 서유구, 이규경의 저술을 중심으로 (An Aspect of Medical Life and Yakro in Joseon in the 19th Century Based on the Records of Sin Dae-woo's Family, Seo Yugu, and Lee Kyugyung)

  • 전종욱
    • 한국의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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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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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5-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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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Sin Dae-woo was a scholar representing the Ganghwa School in the late Joseon Dynasty. He was Jeong Je-du's grandson-in-law and also in charge of organizing Jeong Je-du's collection of writings. His three sons had a particularly close relationship with their father, so even when they published a collection of writings after his father's death, the names of the three were combined and marked as Jin-jak-shin. The records they left include Seokcheon Il-seung, who described the history of the family along with the collection of writings, Seongdo Il-rok, a diary of the time of Seongcheon Busa, and many letters exchanged over time. These records draw attention as they contain records of medical life, such as eye diseases that the family suffered, infectious diseases that caused many casualties, and Yakro (distilled herbal essence) that showed records of being used for treatment at the time. In this paper: 1) We examine the medicines, prescriptions, acupuncture, and medication used to treat eye diseases. 2) We carefully examine the epidemic, the responses of the parties to it, and the attitudes of those who stood at the boundary between death and life. 3) We look for clues to the use of Western-origin drugs called Yakro. Intellectuals of the time looked deeper into Lee Kyugyung's book and Seo Yu-gu's book on how they were reflected in Joseon's medical life. In conclusion, in the 18th and 9th centuries, we see that the influential families of the Ganghwa school freely brought in famous acupuncturists, used prescriptions that were included in medical books or not, and used Yakro from western origin that were not traditional methods of Joseon. Thus, we reveal that doctors of the Joseon had the capacity to pursue their medical life more actively and had open-minded exchanges than our existing perceptions.

조선후기 유서류(類書類)에 나타난 민속종교 자료 (The Materials on Korean Folk Religions in the Encyclopedic Literatures of Late Joseon Dynasty)

  • 서영대
    • 역사민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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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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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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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이 글은 조선후기의 대표적 유서인 이수광(李晬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홍만선(洪萬選)의 『산림경제(山林經濟)』·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수록된 민속종교 관련 자료들을 살펴본 것으로, 먼저 4종의 유서에서 민속종교 관련 항목들을 추출하여, 그 내용을 표로 제시하였다. 다음으로 이들 유서류에서 언급된 민속종교 관련 자료들의 성격과 내용을 살펴보았다. ① 이들 유서들은 전대의 것이 후대의 것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면서 많은 공통점을 가지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저술 목적에 따라 차이가 있다. 즉 『지봉유설』·『성호사설』·『오주연문장전산고』는 백과전서식 저술답게 민속종교의 다양한 측면을 전하는데 비해 『산림경제(山林經濟)』는 실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와 그 해결이란 실천적 내용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② 이들 유서는 민속종교를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했다. 그것은 이들 유서가 기본적으로 유교적 관념에 기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전한 부정에는 이르지 못하고, 영험성의 일부를 인정하기도 했다. ③ 조선시대 민속종교의 신앙대상들, 즉 성황신·업신·질병신·금부대왕신(金傅大王神)·정득양(鄭得揚)·관왕신(關王神)·부근신(付根神) 등에 대한 유서류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④ 이들 유서류들은 귀신에 대해서도 공통적으로 관심을 보였는데, 그들의 귀신론은 기본적으로 성리학에 기초한 것이면서도 그 영험성으로 말미암아 민속종교의 귀신론을 일부 수용하고 있다. ⑤ 이들 유서류에서는 공통적으로 점복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개인의 운명에 관한 점복은 부정적으로 인식했고, 농사의 풍흉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이해하려 했다. ⑥ 이들 유서류에는 저주와 벽사에 관한 항목들도 상당수 있어, 이를 살펴보았다. ⑦ 무격은 민속종교의 성직자로서 민속종교의 핵심에 서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들 유서류에서 공통의 관심사가 되었다. 이들 유서에서 무격은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그 영험성의 일부는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들 유서류들은 비록 민속종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고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조선후기 민속종교의 다양한 사실들을 전한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를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이들 유서류들은 향후 민속종교 연구에서 반드시 심도 있게 검토되어야 할 자료라 하겠다.

한국 속화(俗畵)(민화(民畵))에 표현된 식물의 상징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Plant Symbolism Expressed in Korean Sokwha (Folk Painting))

  • 길금선;김재식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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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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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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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속화(俗畵 또는 민화(民畵)) 속의 도입요소를 대상으로 식물의 상징성을 추적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우리 민족의 토속성 짙은 그림이자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속화(俗畵)'라는 용어는 고려시대 이규보(1268~1241)의 '동국이상국집'에서 발견할 수 있고, 그리고 조선시대 초기 '속 동문선'과 강희맹(1424~1483)의 '사숙재집', 조선시대 후기의 '일성록(1786)', 유한준(1732~1811)의 '자저(自著)', 이규경(1788~?)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등에서 다양하게 추적할 수 있다. 특히,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인사편 서화(書畵)의 제병족속화변증설에 의하면 "민간에서 속화라고 불렀다"라는 기록이 발견된다. 2. 시대사적으로 한국의 속화는 농경문화의 자연관을 원초적으로 반영한 선사시대를 거쳐, 우주관을 반영하고 영혼불멸의 사상을 채색화 형태로 표현한 삼국시대, 추상적인 도형과 초자연적인 무늬를 공간 속에 상징화시켜 종교적으로 표현한 고려시대, 그리고 자연관, 심미적 가치, 상징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되어 대중화되고 한국 고유의 정체성으로 자리매김한 조선시대 등 시계열적 변화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3. 한국의 속화 1,009점을 대상으로 분석한 소재는 식물요소 35종, 동물요소 37종, 자연요소 6종, 기타요소 5종등 총 83종이 출현하고 있다. 4. 속화에 표현된 식물 요소의 미학적 분석에 따른 형태미의 경우 모란도는 음양오행의 원초적 세계관을, 매화도는 역동적인 운치와 생태적인 조화원리를, 구도미의 경우 책가도는 복합 다시점 구도이면서도 강한 주목성을, 병화도는 역원근법에 의한 색의 강한 대비를, 독서여가도는 직선과 사선을 이용하여 자연과 인공요소의 질서정연한 균제미를 담백하게 표현하고 있다. 한편 색채미의 경우 오방색(동(東), 서(西), 남(南), 북(北), 중앙(中央)) 또는 오채색(적(赤), 청(靑), 황(黃), 백(白), 흑색(黑色))의 경우 주술적 또는 종교적으로 활용하거나 자연법칙과의 상관관계를 상징적으로 대입시키고 있다. 5. 한국 속화에 등장하는 각 요소들의 도입방식은 단순한 자연계 형태 모방을 뛰어 넘어 우주 내에 존재하는 본질의 의경을 통해 회화적 예술성을 바탕으로 자연관과 접목된 '상징성'으로 승화시켰다. 즉, 한국의 속화에서 추적할 수 있는 동 식물의 '상징성'은 종교적, 사상적, 생태적, 철학적 측면이 복합적으로 작용되어 자유 분망하면서도 독특한 표현으로 과학적 인식체계가 아닌 상징적 인식체계로, 현재 속에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우리 민족의 집단적 문화 정체성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한국의 속화(또는 민화)는 우리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 민족의 생활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배어든 자연관이자 토속성 짙은 의미경관요소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생활문화 속에 뿌리 깊게 배어 있었던 속화는 시대적 변천과정을 거쳐 그 의미와 감정이 현격히 퇴색되었다. 오늘날 주거생활이 아파트문화로 전이되고 가치관의 혼돈이 심화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속화가 갖는 미학적, 상징적 가치는 정신적 풍요를 건전하게 지켜주는 상징 자산으로 전승되어 우리의 정체성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당위성을 갖는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