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Summary/Keyword: 시대적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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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테이키(作庭記)」의 작정원리 연구 - 풍수론(風水論)을 중심으로 - (A Study on Garden Design Principles in "Sakuteiki(作庭記)" - Focused on the "Fungsu Theory"(風水論) -)

  • 김승윤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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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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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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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 연구는 11세기말경 일본 헤이안 시대에 편찬된 것으로 알려진 조원고서 "사쿠테이키(作庭記)"를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고찰한 것이다. "사쿠테이키"는 동아시아에서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가장 오래된 조원이론서라 할 수 있는데, 대륙(한국과 중국)에서 연원한 일본 고대 정원문화의 지혜가 축적되어 있다. 정원문화와 관련된 동아시아의 전통 작정원리 중본 연구에서는 건강하고 복된 거처를 찾는 문화에서 형성된 풍수론(風水論)에 기반을 둔 것들을 추출하여 해석하였다. 풍수론은 중국 한나라 때 음양오행론과 함께 형성되어 정원을 포함한 인간의 거처 조성에 폭넓게 활용되었다. 이 전통은 한반도를 통하여 일본에 전래되고, 또 중국과의 직접 교류를 통해 일본 문화에 통합되었다. "사쿠테이키"에 나타난 작정원리들 중 동아시아의 풍수론에 근거한 것들은 "사신상응의 땅", "사방에 나무심기", "기의 흐름", "곡선과 비대칭", "산은 제왕 물은 신하"라는 주제어로 요약될 수 있다. "사신상응(四神相應)의 땅"과 "사방에 나무심기"라는 작정원리는 풍수의 "명당론(明堂論)"에 해당된다. "사쿠테이키"에서 말하는 사신상응의 땅은 동쪽에 유수(流水), 서쪽에 대도(大道), 남쪽에 연못(池), 북쪽에 언덕(岡)으로 둘러싸인 지세를 말하며, 중국의 양택풍수서인 "택경(宅經)"에 기원한다. 이 원리에 따라 도시가 계획되었고, 그 축소 모델로 귀족의 저택이 만들어졌다. 인공으로 조성된 사신(四神)인 계류와 연못이 있는 정원(南庭)은 명당자리에 해당된다. "사쿠테이키"에서는 또한 이와 같은 사신(유수, 대도, 연못, 언덕)이 없을 경우 사방에 나무를 심어 대신하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식재법은 "택경"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6세기 중국의 농서인 "제민요술(齊民要術)"에도 유사한 내용이 있다. 또한 식재하는 나무의 숫자를 추적한 결과, 고대 역(易)의 원리인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숫자와 관계가 있고, 한국의 "산림경제"에 나오는 용도서(龍圖墅: 하도(河圖)의 원리에 맞춘 별장)의 식재원리와 연결된다. 다음 "기의 흐름"과 "곡선과 비대칭"의 원리는 풍수의 "생기론(生氣論)"에 해당된다. "사쿠테이키"에서는 순류와 역류 방향을 통해 기의 올바른 흐름이 제시되고 있으며, "사쿠테이키"에서 제안하는 구불구불한 계류의 곡선, 다리와 돌의 비대칭적 구성, 그리고 연못의 들쭉날쭉한 가장자리선 등은 모두 기가 모이도록 하는 방법으로, 풍수의 생기론과 상통하는 원리이다. 마지막 원리인 "산은 제왕, 물은 신하"는 풍수의 "형국론(形局論)"에 해당된다. "사쿠테이키"는 정원을 만드는 의미를 산은 제왕, 물은 신하, 돌은 보좌신(輔佐臣)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왕이 보좌신의 도움을 받아 백성을 잘 다스리는 상황을 돌의 도움으로 산(흙)이 물을 조절하는 생태적 현상에 비유한 것이다. 이는 자연 지형을 사회체제나 인물, 동물, 사물 등에 비유하여 설명하는 풍수의 형국론과 통한다. 이상과 같이 "사쿠테이키"에 나타난 주요 작정원리들은 동아시아 전통인 풍수론의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사쿠테이키"는 일본의 특정시대에 특정한 정원의 작정법을 기술한 책이지만, 거기에는 일본 고대의 정원문화, 나아가 동아시아 고대 정원문화의 지혜가 종합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그 중요성을 발견할 수 있다.

국가안전관리: 한국의 시민보호(위기재난관리) 체계에 관한 비판적 고찰 (Homeland Security Management: A Critical Review of Civil Protection Mechanism in Korea)

  • 김학경
    • 시큐리티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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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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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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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안전관리(위기재난관리)체계를 지탱하고 있는 기본법은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이다. 이러한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하에서 우리나라의 국가안전관리체계는 위기와 재난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이른바 삼단체계(중앙정부, 시도, 시군구)를 채택하고 있다. 통합위기관리체계(IEM)는 일차적으로 지역 대응기관의 조정과 협력(Coordination and Cooperation)체계를 중시하는 개념이며, 특히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기관과 기관 간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통합위기관리체계의 흐름에 발맞추어 영국과 미국의 국가안전관리체계는, 지역사회 내의 지역대응기관들이 중앙정부나 연방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없이 일차적으로 시민보호와 관련된 문제(위기 및 재난)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영국과 미국에서는 위기와 재난의 범위가 아주 광범위하고 복잡한 경우, 이로 인하여 중앙정부의 조정과 협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에만 비로소 중앙정부의 개입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한국의 국가안전관리체계는 지시와 통제(Command and Control) 중심의 중앙집권화 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위기재난 발생시(중요도에 관계없이) 중앙 정부가 쉽게 지역단위의 지휘체계를 무시하고 이를 통제하고 간섭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불확실성, 비친숙성 및 비예측성이 증폭되고 있는, 이른바 '위험사회(Risk Society)' 또는 '포스트모던 사회(Post-modern Society)'라고 일컬어진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과연 우리의 하향식 국가안전관리체계가, '위험사회(Risk Society)'와 '포스트모던 사회(Post-modern Society)'의 불확실성, 비친숙성, 비예측성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지 의문점이 제기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 논문은 한국의 시민보호체계도 영국과 미국의 위기재난관리시스템과 마찬가지로 분권화된 조정과 협력모델(Coordination and Cooperation)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체계 하에서 우리나라의 시민보호체계 및 안전관리체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국가안전관리체계의 발전 방향에 대한 정책적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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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해외인질납치테러 대응방안 (A Study on Responses of the Korean kidnapping Terror in overseas)

  • 정준식;김원기
    • 시큐리티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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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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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9-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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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세계화시대에 해외투자와 무역, 선교, 여행 등으로 우리국민의 활동영역이 해마다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위험지역에 노출된 한국인들의 인질납치의 가능성과 위협은 매우 높아졌다. 테러조직이나 공해상의 해적집단들이 인질 납치를 자신들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 인식하면서 세계적으로 인질납치가 갈수록 빈발하고 있다. 서방 사람들을 주로 납치했던 국제 테러단체들이 공격 대상을 확대하여 한국인을 포함시킴에 따라 2004년 김선일 납치살해사건, 2007년 7월19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 세력의 선교봉사단 피랍사태, 2009년 3월15일 예멘의 한국인 관광객 폭탄테러사건 등의 사태가 발생하였고,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공해상의 해적집단에 의해 선박과 함께 한국인의 인질납치 사건(동원호 납치사건, 마부노호 인질납치사건 등) 또한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질납치는 사건의 특성상 무력으로 해결하려다 실패하고 인질이 살해될 경우 심한 도덕적 비난을 감수하여야 하고 해당 국가기관에 엄청난 압력과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해당 정부나 기업이 웬만하면 몸값을 지불하고 해결하려 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에서는 해외에서 발생한 한국인의 인질납치사건을 분석하고 종결과정을 통해 나타난 문제점을 도출하여 우리국민의 안전과 국가위기의 상황을 다시 인식하고 그에 따른 해외한국인에 대한 인질납치사건의 예방과 대응 방향을 제시하는 목적에서 전개되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도출된 내용을 통해 향후 해외한국인에 대한 인질납치사건에 대한 예방과 기본방향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통제력 감소와 제도권 밖의 사건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명확한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 둘째, 국제정치에 대한 이해와 한국의 총체적 외교역량을 재차 점검할 필요가 있다. 셋째, 위험지역에 대한 철저한 정보역량과 위험지역에 무방비 상태의 한국 국민이 노출되는 것을 사전에 적극적으로 방지하는 등 정부의 적극적인 기법연구와 대책이 필요하다. 넷째, 한국인은 대내외적으로 국민 개개인의 안전 불감증 고취와 테러에 대한 경각심을 더욱 높여야 하며, 정부의 시책에 적극 따를 수 있는 국민의 공감대 형성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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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의 안티 종교운동 (Anti-religious Movements in Contemporary Korea)

  • 강돈구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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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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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1-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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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논문은 한국 종교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의 대대적인 표출 현상(안티 종교운동)을 정리하고 유형화한 뒤 그 의미를 분석한 글이다. 이를 위해 먼저 현대의 범세계적인 종교변동부터 살폈다. 세계종교는 지구촌 의식 출현에 영향을 받아왔다. 그 결과 그들은 과거와의 연속성을 유지한 채 여러 종교의 공통 기반 위에서 보편성을 획득하려하고 있다. 그러한 모습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계속 유지하려들거나, 전통을 재창조하려하거나 혹은 현대에 맞게 변용시키거나, 혁신적으로 변화를 추구하거나, 민족주의와 결탁하거나 하는 여러 유형으로 중첩되어 나타나곤 한다. 세계종교에서 살필 수 있는 이러한 변동들이 한국 사회에서는 어떻게 관찰되는가? 대체로 현 시대의 한국 종교상황은 개신교에 대한 비판이나 혁신 요구, 소수종교에 대한 공격, 학계와 언론의 종교 개혁요구, 종교무용론 전파, 유튜브 등 인터넷과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종교 비판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종교 비판은 안티 종교운동으로 읽혀진다. 종교 외적으로는 서구 학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종교무용론이나 과학 또는 역사적 관점에서의 종교 비판 이론이 서점을 중심으로 전파되고 있으며, 종교 내적으로는 개신교를 중심으로 자신의 내부를 반성하고 새로운 초종교적 영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과거에도 물론 종교 일반과 특정 종교에 대한 비판은 제기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안티 종교운동은 그 내용과 맥락에서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개신교에 대한 적극적이고 전반적인 비판 운동은 분명 새로운 현상임에 틀림없다. 적어도 개신교가 주요 대상이기는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안티 종교운동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종교변동을 살필 수 있는 주요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천문연구원 원외 원로 구술사연구 - 방득룡 전임 노스웨스턴 대학교 천문학 교수 사례 - (An Oral History Study of Overseas Korean Astronomer: John D. R. Bahng's Case)

  • Choi, Youngsil;Seo, Yoon Kyung;Lee, Hyung Mok
    • 천문학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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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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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3.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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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한국천문연구원은 2017년 제1차 구술채록사업에 이어 2020년 제2차 사업을 진행하면서 최초로 원외 원로에 대한 구술채록을 시도하였다. 국가 대표 천문연구의 산실로서 연구원 존재 의의를 확립하기 위하여 원내 원로에 국한되었던 구술자 대상을 확장한 것이다. 그 첫 외부 구술 대상자로 방득룡 전임 노스웨스턴 천문학과 교수를 선정하여 2020년 7월부터 준비단계에 들어갔다. 방득룡 전(前)교수가 첫 번째 한국천문연구원 원외 인사 구술자로 선정된 이유는, 그가 우리나라 천문대1호 망원경 구매 선정에 개입한 서신(1972년)이 자료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천문연구원에서 2017년에 수행한 제1차 구술채록사업에서 구술자로 참여한 오병렬 한국천문연구원 원로가 기증한 사료들은 대부분 연구원 태동기 국립천문대 구축과 망원경 구매 관련 자료였으며 이 가운데 1972년 당시 과학기술처 김선길 진흥국장에게 Boller and Chivesns(사(社))의 반사경을 추천한 방득룡 전(前)교수의 서신은 한국 천문학 발전사에서 중요한 사료였다. 연구진은 이 자료를 시작으로, 방득룡 전(前)교수의 생존 여부와 문서고의 공기록물들에서 그의 흔적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는 실제 세계와 한국천문연구원 문서고 깊숙이 기록물들 모두에서 상존하고 있었다. 1927년생인 방득룡 전(前)교수, Dr. John D. R.은 미국 플로리다 한 실버타운에서 건강한 정신으로 생존하여 있었고 연구진의 인터뷰에 흔쾌히 응했다. 2020년 9월 16일에 한국천문연구원 본원 세종홀 2층 회의실에서 영상통신회의로 그와의 구술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이 구술인터뷰는 원외 인사가 대상이란 점 외에도 방법적으로는 전형적인 대면 방식이 아닌 영상 인터뷰였다는 점에서 코로나 시대의 대안이 되는 실험적 시도였다. 현대 한국천문학 발전사의 재조명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1960년대 초반부터 1992년 정년퇴임까지 30년을 미국 유수 대학교 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활발한 활동을 해 온 한국계 천문학자가 우리나라 최초 반사망원경 구매 선정에 적극 개입하였던 역사는, 공문서 자료들과 서신 사료들에 이어 그의 육성으로 나머지 의구심의 간극이 채워졌다. 또 구술자 개인이 주관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기억'이 중요한 아카이빙 콘텐츠 확장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구술사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관점을 주었다. 애초 연구진이 방득룡 전(前)교수의 공식 기록에서 아카이빙의 큰 줄기로 잡았던 것은 1948년 도미, 1957년 위스콘신 대학교 천문학 박사학위 취득, 1962년부터 노스웨스턴 대학(일리노이주 에반스턴)의 천문학 교수진, 1992년 은퇴로 이어진 생애였다. 그러나 그와의 구술 준비 서신 왕래와 구술을 통하여 알게 된 그가 인생에서 중요시 여겼던 지점은, 1948년 도미 무렵 한국의 전쟁 전 상황과 당시 비슷한 시기에 유학한 한국 천문학자들의 동태, 그리고 1957년부터 1962년까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M. Schwarzschild 교수와 L. Spitzer 교수를 보조하며 Stratoscope Project를 연구하였던 경험이었다. 기록학적 의미에서도, 전자를 통해서 그와 함께 동시대 한국 천문학을 이끌었던 인재들의 맥락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며, 후자를 통해서는 세계 천문학사에 큰 영향을 미친 석학에 대한 아카이브 정보와의 연계 지점과 방득룡 전(前)교수의 연구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은 추후 방득룡 콘텐츠 서비스 시에 AIP, NASM, Lyman Spitzer 콘텐츠, 평양천문대, 화천조경천문대, 서울대와 연세대, 그리고 한국천문연구원까지 연계되어 전 세계 폭넓은 이용자들의 유입을 유도할 수 있는 검색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번 방득룡 구술사 연구에서 구술자 개인의 주관적인 소회가 공식 기록이 다가갈 수 없는 역사적 실체에 일정 부분 가까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하여 개인의 역사는 공동체의 역사로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연구진은 방득룡 전(前)교수의 회상을 통하여 구술자 개인의 시각으로 한국과 미국 천문학계의 공동체 역사를 재조명할 수 있었고, 이것을 아카이브 콘텐츠 확장 서비스에 반영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연구를 통하여 다양한 주제의 아카이브로 연동될 수 있는 주제어와 검색도구를 구술자 개인의 회상으로부터 유효하게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향후 한국천문 구술아카이브의 확장을 통하여 보다 다양한 활용과 연구 재활용의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는 최근 기록학계에서 대두되고 있는 LOD(Linked Open Data)의 방향성과도 흡사하여 한국천문학 구술사연구의 차세대 통합형 기록관리의 미래모형을 기대케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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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암(豹菴)의 「호가유금원기(扈駕遊禁苑記)」에 나타난 궁원 유람행사의 내용과 의미 (Content and Meaning of Royal Garden Sightseeing Event in Pyoam's 「Hogayugeumwongi」)

  • 홍형순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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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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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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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연구의 목적은 표암의 "호가유금원기"에 담긴 궁원 유람행사의 내용과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본 연구의 방법은 사료에 담긴 내용과 의미를 고찰하고 해석하는 기술(description)적 연구방법이 사용되었다. 본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왕이 친히 신하들에게 궁원을 안내하고 설명한 일을 기록한 "호가유금원기"는 한국의 조경문화사에 있어 매우 귀한 사료이다. 이러한 일은 중국은 물론 조선시대에도 전무후무한 일이다. 2. 특히 이 일을 기록한 사람이 당대에는 시 서 화 삼절로 이름이 높았고 후대에는 '예원(藝苑)의 총수(總帥)'로 평가받는 표암 강세황이라는 점은 이 사료의 가치를 더한다. 3. 이 유람 행사의 성격은 정조의 집권 초반기에 친정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규장각의 완비, 왕의 위엄을 나타내는 어진 도사 등에 기여한 근신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였다. 정조는 자신의 정치 이념을 실현하는데 공이 큰 근신들의 노고에 대한 은전을 베풀기 위해 궁중 내에 금단의 공간인 금원을 활용하였다. 4. 창덕궁 후원에 대한 유람 동선의 하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후원을 유람하는 동선이 고정적이지는 않았으나 이것은 이날의 가을 정취를 즐기기 위해 정조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최선의 유람 동선이었을 것이다. 5. 이 행사의 특징은 격식이 없고 다소 즉흥적인 '유람'이었다. 즉 정조 치세 중반 이후에 신하들에게 베푼 '상화어조연(賞花漁釣宴)'은 꽃구경과 낚시, 시 짓기 등 행사의 개최시기와 형식, 참가자격 등의 틀을 갖춘 궁중 '연회'였음에 비해 이날의 행사는 비교적 사적이고 자유로운 '놀이(遊)'였다고 판단된다. 본 연구는 관련 사료들의 고찰을 통해 "호가유금원기"를 쓴 전후 맥락을 비롯해 이에 담긴 내용과 의미를 고찰하였다는 의미가 있다. "호가유금원기"는 귀중한 문화콘텐츠로서 추후 궁원 관람에 있어 스토리텔링 자원으로서 활용 가능할 것이며 이에 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고종연간 집경당(緝敬當)의 운용과 궁중(宮中) 서화수장(書畵收藏) (The Collection of Paintiongs and Calligraphy at Jipgyeong-dang Hall during King Gojong's Reign(1897~1907))

  • 황정연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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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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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7-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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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본 논문은 경복궁 집경당의 운용과 수장품의 내역을 통해 고종연간 궁중 서화수장의 추이를 살펴본 것이다. 그동안 집경당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한 채 건립시기는 경복궁 중건공사가 이루어진 1867년 이후이며 주로 내외신 접견처로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이글에서는 집경당과 한 건물로 배치된 함화당의 상향문과 기타 관찬사료의 기록을 통해 집경당이 1890년경에 건립되었으며, 그 운용에 있어서도 국왕의 접견처보다는 주로 고종의 강학(講學) 공간이자 풍부한 서책과 서화를 보관한 궁중 도서관, 서화수장처로서 기능을 하였음을 조명하였다. 서책을 보관한 장서각이 궁궐의 특정 영역과 관계없이 분포했던 반면, 서화작품을 수장한 수장처는 조선후기 이후 연침(燕寢) 영역에 위치하기 시작했다. 고종과 비빈들의 침전 영역에 속한 집경당이 서화수장처로 이용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특히 고종연간에는 건청궁과 집옥재를 중심으로 국가의 문화적 기틀을 마련하고자 한 정책으로 인해 경복궁 연침영역에 궁중 도서관이 밀집해 있었다. 당시에는 헌종에 의해 발전한 19세기 전반의 궁중 서화수장에 힘입어 각 궁궐마다 선왕선후의 초상, 그들의 어필, 조선왕실 서책, 그밖에 국내외 서화가들의 작품이 다량으로 소장되어 있었다. 한편, 고종의 적극적인 외국서적 수입정책과 개항기라는 시대상황과 맞물려 궁중으로 유입된 서화자료의 내역은 크게 달라져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1800연대를 전후로 간행된 중국 청대 서화, 화보(畵譜), 총서류 및 일본화보, 서양지도가 상당량 유입된 정황이 파악됨에 따라 조선 고유의 작품을 위주로 했던 전통적인 수장 성격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이러한 집경당 소장 서화의 외래적인 성격은 19세기 서화단에 있어 김정희 일파를 중심으로 한 청대 첩학(帖學) 비학파(碑學派) 서풍(書風)의 수용, 그리고 장승업 조석진 안중식 등이 청대 산수 인물화풍을 적극 수용하여 중국화풍의 대대적인 유행을 가져온 경향과도 상통한 맥락이었다고 하겠다.

한국만화에 있어 대상의 사실적 표현과 그래픽 노블의 연관관계에 대한 연구 - 권가야의 <남한산성>작품을 중심으로 - (A Study of the Relationship between Realistic Expression of Objects and Graphic Novel in Korean Comics - Focused on the work by Kwon, Ga-Ya -)

  • 박희복;김광수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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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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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6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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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회화에 있어서 대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은 19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G.쿠르베가 당시의 아카데미즘 화풍에 반항하면서 사실주의를 주창하였고 이에 동조하는 H.도미에나 F.밀레와 같은 화가들에 의해 사실주의풍의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제작되었다. 이후 사실주의는 미술을 비롯해서 문학영역 전반에까지 확대되었고 예술작품과 문학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만화 또한 회화의 한 형식으로서 그 역사적 맥락을 같이하며 사실주의적인 만화가 당시의 화가나 만화가들에 의해 제작되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실주의 만화(Realism Comics)는 사실에 기초해서 이야기를 다룬 만화로서 내용적으로는 당대의 사회적 현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재현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중의 하나였지만 시각적 측면 즉, 대상의 표현 면에서는 반드시 사실적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198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을 띈 그래픽 노블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래픽 노블은 슈퍼 히어로물이 넘쳐나던 미국 만화시장에 문학성과 예술성이 강한 형식과 양식을 갖추고 나타났으며, 그 주요 특징으로는 내용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그 서사구조나 그림들이 그래픽으로 연출된 소설이나 문학작품을 보는 듯 복잡하고 섬세하며 예술적 작품성까지 지니고 있다. 그래픽 노블에서 보여 지는 사실적 표현의 특징들은 이전의 만화작품과 비교하여 볼 때 상당히 큰 차이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시대의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개성이 강한 작가주의적 그림 스타일의 특색을 보이며, 작품의 완성도가 상당히 높으면서도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표현기법이나 방식들로 인해 회화나 일러스트와 같이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최근 국내에서도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가 잇따라 개봉되어 흥행에 성공하면서부터 원작 그래픽 노블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증가되었다. 따라서 많은 원작 그래픽 노블이 번역되어 판매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과 유행에 발맞추어 한국의 일부 작가들이 그래픽 노블류의 작품들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래픽 노블을 표방하며 제작되어진 국내 작품들을 살펴보면 그 형식과 정통성 측면에서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본 연구는 한국적 그래픽 노블의 대표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권가야의 <남한산성>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특히, 대상의 사실적 표현이라는 시각적 측면에 중점을 두고 그 특징들과 유사성 등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본 연구를 통해 국내 그래픽 노블에 대한 정체성과 현주소를 되짚어보고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일본의 그래픽 노블과는 차별화된 우리만의 독창적인 소재를 개발, 활용함으로써 한국적 그래픽 노블이 경쟁력을 갖춘 만화의 한 장르로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더 나아가 침체되어 있는 국내 만화시장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한국과 미국의 가정과 교육과정 실행 과정 사례 연구 (A Case Study of the Implementation Mechanism of Home Economics Curriculum in South Korea and the U.S.)

  • 김은정;권유진;이윤정
    • 한국가정과교육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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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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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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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교육과정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든 것 혹은 학생들을 위한 교과의 구체적 계획인 교육과정으로 정의된다. 이 교육과정의 목적과 목표, 그리고 교육과정의 주체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양하다. 이 과정에서 한국에서는 국가수준 교육과정을 포함하여 경기도 교육청의 가정과 교육과정 및 중학교와 고등학교 각 1개교의 교육계획서, 수업 계획서를 분석대상으로 선정하였고, 미국의 국가수준의 내용표준을 포함하여 3개 주의 교육과정과 워싱턴 주에 소속된 중등학교에서의 지도계획서과 평가계획서를 분석대상으로 선정하여 이를 맥락적인 측면에서 비교 분석하고자 하였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국가가 교육과정의 주체이며, 교육과정 기초연구를 시작으로 교과교육과정 고시와 교육과정 해설서를 제시한다. 이를 토대로 다양한 출판사에서는 전문가 집단으로 집필진을 구성하여 교과서, 교사용지도서 등을 집필하고, 이를 시도교육청 및 각급 학교에 보급한다. 이 중에서 각급 학교의 교사는 가정교과 수업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교과서를 선택하고, 이를 수업에 활용하는 일련의 과정(mechanism)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과정 운영의 방식은 교육과정의 통일성을 기해 학생들을 동일한 척도로 교육하고 이를 평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장점이 있으나, 획일화된 교육으로 인해 학생들의 창의적이고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최근 한국에서는 국가수준 교육과정을 시도교육청 수준에서 재구조화하여 학교 교육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과 교육과정 운영의 주체가 다른 미국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서, 그 장단점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함을 시사해준다. 이 연구를 통해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개정 방향은 물론 가정교과 교육과정 적용을 위한 지침(framework) 및 안내(guidelines) 개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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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대 북경팔경(北京八景)의 경관인식 변화에 대한 고찰 (A Study on the Changes of Landscape Perception for 'Bejing-Palgyeong(北京八景)' in China)

  • 권지영;김성균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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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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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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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북경팔경과 관련된 시문과 서화를 비롯하여 고지도·고문헌 등을 분석하여 북경팔경의 시대별 변천과정과 경관인식 변화, 북경팔경의 물리적 경관요소 및 구조분석과 국가경영과의 관계, 마지막으로 북경팔경의 장소화과정을 고찰하였다. 북경팔경의 경점은 도성 밖과 안으로 각각 네 곳씩 분포하고 있으며, 도성 밖은 모두 황제의 휴식처이자 북경의 산수경관의 중심인 서산 지역에 집중되었고, 도성 안의 경점은 궁궐의 황제원림에 두 곳, 성곽 주변의 마을 두 곳에 분포하고 있다. 즉 북경팔경은 초기 조성될 때부터 황실, 황제, 황궁과 밀접하게 관련된 장소로 선정하였으며, 금 이후 원·명·청대를 거치면서 황제를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이 국가경영에 활용함으로써 점점 도성팔경으로서 성격이 짙어졌다. 도성 내 두 곳은 신선과 황제를 동격화하여 칭송하였으며, 도성 밖 두 곳은 도성주변의 마을 경관의 모습을 담고 있으면서 통치를 받는 백성들의 편안한 삶을 묘사하고 있다. 결국 팔경의 대부분 조망지역은 황궁과 황제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북경팔경의 물리적 경관을 요소별로 살펴보면, 수도방비·인재선발·농사에 대한 내용을 담은 국가경영과 황제 칭송, 북경 민가의 모습을 담고 있다. 건륭제는 중국의 팔경(경관) 문화를 소상팔경(북송)→서호팔경(남송원말)→연경팔경(금대)→북경팔경(명대)→건륭제의 연산팔경(청대)으로 역사적 맥락을 계승하려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비석과 원림 조성을 통해 북경팔경의 장소화하는 과정을 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