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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출토 장택고씨 복식유물에 관한 연구 (A Study on Excavated Costumes of the Go′s of Jang Taek)

  • 안명숙;김은정
    • 한국의류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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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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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35-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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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This paper studied the excavated costumes of the Go's of Jang Taek that had been found in Kwangju metropolitan city in 1986. The excavated costumes mainly show Po(포) including Chopni(첩리), Dapho(답호), Danryung(단령), Jikryung (직령). In addition, there are some kinds of trousers, hat, korean socks. The meanings of excavated costumes of the Go's of Jang Taek are the followings: 1. They offer the important research materials to studying of general dress. 2. They offer actual proof materials of 15-16 century in opposition to depending on documentary records. 3. They offer the useful informations on the form, textile, dyeing because of good condition. 4. They offer the variety of Po that many persons weared at that times. 5. They offer the practical and rational construction by folding pleats and needlework. 6. They did not quilted padded clothes in comparison with other dress at that times. 7. They offer the important materials on the trousers. In the near future, we will study excavated costumes on dyeing, textile structure, trousers formation and s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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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대(宣祖代) 공신초상(功臣肖像)의 복식 고찰 (A Study on the Costumes of Meritorious Vassals' Portraits in the reign of King Seonjo)

  • 이은주;김미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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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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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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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연구는 현전하고 있는 선조대 공신 초상화를 임란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초상화에 표현된 복식 양상을 초상화와 관련 유물, 문헌자료를 토대로 살펴본 것이다. 공신초상은 공신 책록 당시에 그려진 공신화상도 있었으나 후대에 그리거나 이모된 것도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해당 시기의 모습을 어느 정도 보이고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연구 대상에 포함시켰다. 공신초상은 사모와 단령, 품대, 흑화로 구성되는 의례용 단령인 흑단령 차림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흑단령 관복을 분석하기 위해 사모의 높이와 모정의 형태, 양각(兩角 사모뿔)의 형태와 문양, 단령의 문양과 무의 양식, 단령의 옆선 처리방식과 흉배 품대, 단령의 받침옷인 답호(??)와 철릭[帖裏]의 색상, 흑화 등을 살펴보았다. 임란 이전 광국 평난공신 초상화는 한응인(韓應寅) 초상화(1점)가 분석 대상이었는데 사모는 조선시대 사모 중 가장 높은 높이였으며 사모뿔에서는 당상관 이상만 사용할 수 있는 운보문(雲寶紋)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흑단령은 '밖주름무'가 달린 만자운문(卍字雲紋)의 아청색 단령에 운안흉배(2품)가 달렸다. 허리에는 학정대(종2품)를 띠고 있었는데 학정대는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에 기록되어 있는 자헌대부(정2품) 품계와 일치하지 않았다. 당상관용 홍색 답호와 녹색 철릭의 단령 받침옷, 그리고 흑화 등을 확인하였다. 임란 이후 호성 선무 청난공신 초상화는 이항복(李恒福) 초상화를 포함하여 18점을 분석하였다. 사모의 높이는 이전 시기보다 낮아졌고 운보문의 사모뿔은 상대적으로 넓어 보이는 형태였다. 흑단령은 '뒤뻗침무'가 달린 만자운문의 아청색 단령이었으며 흉배와 품대는 공신 책봉 당시의 품계와 거의 일치하였으나 2점(신잡 김새신)의 예외가 있었다. 따라서 공신초상은 책봉 당시의 품계로 그리는 것임을 재확인하였다. 흑단령의 받침옷 중 녹색 답호(11점), 남색 답호(4점), 다홍색 답호(3점)가 확인되었으며 철릭은 남색(10점), 녹색(6점), 홍색(1점), 유청색(1점)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삼공신의 흑단령 받침옷으로는 임란 전과 동일한 당상관용 홍색 답호와 녹색 철릭으로 표현되는 것이 옳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조선시대 남자 포제에 나타난 복식이미지(제1보) -남자포제 이미지구성 요인 및 유형별, 시기별 복식이미지- (Costume Images of the Chosun Period′s Po for Men(Part I ) - Constituent factors, Type, Reflection of the Period -)

  • Ju-Yeun Do;Young-Suk Kwon
    • 한국의류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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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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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95-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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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본 연구는 조선시대 남자 포제(포제에 나타난 복식이미지의 구성요인을 밝히고 남자포제 유형별(철릭, 답호, 직령, 도포, 창의, 주의), 시기별(전기, 중기, 후기) 복식이미지를 알아봄으로서 조선시대 남자포제가 가진 복식이미지를 밝혀 현대 전통복식 디자인에 응용될 수 있는 기초적인 자료를 제공하고자 한다. 의복 자극물은 남자 평상복을 중심으로 하여 조선초기(1477년∼1543년)의 남자 포제로는 철릭, 답호, 직령 3점과 조선중기(18세기)는 도포, 창의 2점, 조선후기(17세기 후기∼20세기 초)는 주의 1점으로 하였고, 당 시대의 정화한 복식이미지를 살펴보기 위해 유물을 복원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이것을 모델에게 착장시켜 슬라이드로 제작한 후 자극물로 제시하였다. 의미지분척도외 구성은 자유언어연상법으로 형용사를 수집하여 23쌍의 형용사쌍을 구성하였다. 패널단은 대학생 남·여 총 600명으로 하였고 자료분석은 SAS을 이용하여 요인분석 분산분석 등을 사용하였다. 1. 조선시대 남자 포제의 요인구조는 품위성 요인(25.2%), 활동성 요인(l4.2%), 관할성 요인(37.9%), 현시성 요인(6.7%), 경연성 요인(5.7%)으로 구성되었으며, 이들 5개 요인의 전체변량 62.7% 중에서 품위성 요인, 활동성 요인, 관할성 요인이 전체변량의 50%를 넘어서 이 세 요인이 남자 포제에서 기본적으로 느껴지는 중요한 요인임을 알 수 있다. 2. 조선시대 남자 포제 유형별 복식이미지의 차이를 알아본 결과, 철릭은 가장 부자연스러운, 주름있는, 곡선적인, 부드러운, 특이한 이미지의 포제로 나타났으며, 답호는 가장 절제된, 직선적인 딱딱한, 특이한 이미지로, 직령은 가장 비활동적인, 답답한, 전통적인 이미지로 도포는 가장 품위있는. 관할한 이미지로 창의는 다른 포제에 비해 평범한, 단순한, 이미지로 주의는 가장 품위 없는, 일상적인, 활동적인, 단순한, 순수한 이미지의 포제로 평가되었다. 모든 남자포제가 전통적, 순수한 이미지의 포제로, 철릭을 제외한 모든 포제가 단순한 이미지로 나타나 조선시대 남자 포제가 공통적으로 가지는 이미지는 단순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남자 포제의 시기별 복식이미지에서는 조선전기(철릭, 답호, 직령)의 포제는 관할성 요인이 높은 의례적인, 관할한, 특이한 이미지로 평가되었고 조선중기(도포, 창의)의 포제는 품위있는, 절제된, 풍성한 이미지로 평가되었으며, 조선후기(주의)의 포제는 활동적인, 단순한, 직선적인 이미지로 나타났다. 따라서 시대별 남자 포제의 이미지는 시대적 여건과 상황에 따라 변화되어 왔으며, 시대에 따라 추구하는 이미지가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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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답호(塔胡) 연구 - 17세기 전기까지 - (A Study of Dap-ho(塔胡) in Joseon Dynasty - Until the Early $17^{th}$ Century -)

  • 송미경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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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9권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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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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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The study is about 'Dap-ho', a kind of men's coat in the early, and mid period of Joseon Dynasty. The study examined the kinds, color, and fabric of Dap-ho from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It also examined the characteristic, and the change of shape through excavated costume, and the period is limited until early 17th century. In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there is record of Dap-ho from King Sejong period to Gwang-hae-gun period. After 160 years, it appears again in King Young-jo period, and remains until King Soon-jong period. It was mentioned 168 times, from over 100 cases. There are 26 colors of Dap-ho from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and among them, green appears the most. Thin fabric, like Joo [紬], Sa[紗], and Cho[綃] was used often, and there are records of double layered, and cotton padded Dap-ho. The period when Dap-ho appears as excavated costume is almost the same as,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and disappears after the decease of Dae-ho Kang(1541-1624), and Sun-un Yun(1580~1628). After in this period, Dan-ryung, and Jik-ryung changes into double layered clothes, and Jik-ryung functioned as the underclothes of Dan-ryung, instead of Dap-ho. The excavated costumes of Hwak Kim(1572~1633), and Eung-hae Lee(1547~1626) proofs this. But Dap-ho was called 'Jun-bok', 'Dugree', Que-ja', and 'Dap-ho' until the later period of Joseon Dynasty.

조선시대 공신 초상(功臣肖像)의 관복(제2기) 고찰 (A Study on the Official Uniform (2nd period) of Meritorious Vassals' Portraits in the Joseon Dynasty)

  • 김미경;이은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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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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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2-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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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조선 전기 적개공신(1467, 1476 초상 제작)과 정국(1506)·정난공신(1507), 위사공신(1545) 초상까지를 아청색 흑단령 차림이 등장하여 정착하는 '관복 제2기' 공신 초상으로 규정하고 적개공신 손소, 오자치, 장말손 초상 3점, 그리고 정국·정난공신 유순정과 홍경주, 정국공신 이우와 유홍의 초상 4점, 총 7점을 대상으로 분석하였다. '예복 흑단령' 차림의 적개공신 초상의 사모는 성종 초 높아졌던 모체가 다시 낮아졌고 모정은 둥글게 표현되었다. 너비가 넓은 타원형의 사모 양각에 무늬는 표현되지 않았다. 아청색 단령과 답호, 철릭에도 무늬가 표현되지 않았다. 단답호와 철릭의 색상이 각각 녹색과 홍색으로 통일되었으며 단령과 답호의 무는 '안팎주름무'로, 신발은 백화로 표현되었다. 적개공신 초상은 책록 시의 품계가 아닌, 초상 제작 시의 품계로 그려졌음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시복 흑단령' 차림의 정국·정난공신 초상은 사모의 경우, 적개공신 초상에서 낮아진 사모 모체의 형태는 그대로 유지되었으나 모정 부분이 조금 좁아지고 앞으로 휜 형태로 변하였으며 사모 양각은 전체적으로 너비가 균일한 타원형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사모 양각에도 무늬가 표현되지 않았다. 당하관 초상의 복식에는 무늬가 표현되지 않았으나 당상관 초상의 복식에는 운문(雲紋) 등이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또 단령은 안감 없는 홑단령으로 표현되었다. 당상관 초상에서는 홍색 답호와 녹색 철릭을, 당하관 초상에서는 녹색 답호와 남색 철릭이 표현되었다. 따라서 당상·당하 신분에 따라 받침옷의 색상이 구별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단령과 답호에는 '안팎주름무'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신발은 흑화로 표현되었으며 흉배와 품대는 공신 책록 당시의 품계가 반영되어 있었다. 한편 위사공신 초상은 확인할 수 없었으나 명종대의 기록화를 통해 중종대의 단령 제도와 유사함을 알 수 있었다. 이상으로 살펴 본 제2기 적개공신 공신 초상을 통해 흑단령 차림을 공신 초상의 관복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는 점, 공신 초상 제작 시기의 품계를 초상에 반영하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국공신 초상 이후 복식에 무늬가 표현되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흑단령의 무늬 유무로 당상·당하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표현된 관복 모습은 당시의 관복 규정이나 관행과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출토복식 중 포류에 사용된 직물유형 연구 (A Study of Textiles used for Po(overcoat) in the Excavated Costumes of the Chosun Dynasty)

  • 조효숙;임경화;김지연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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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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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3-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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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This study examined textiles used for the ancient costumes that are excavated from tombs of the Chosun dynasty, focusing especially on Po(overcoat). The result of the study is that silk occupies 79.8% of all the textiles used for Po, and cotton and linen follow. The weaving method of silk was primarily plain and satin weaves. However the use of twill, gauze, and double weave, that had led weaving methods of silk during the Koryo dynasty, are considerably decreased in Chosun dynasty. Danlyeong(단령) and Cheollik(첩리) had been made of various textile fabrics like cotton, linen, silk and blended fabric before Imjinwaeran(임진왜란). After the war, they were simplified in gauze weaved silk or satin weaved silk, And also patterned fabric were widely used for them than other Po. Simple fabrics like cotton, linen and plain weaved silk had been used for Aekjureum(액주름) and Jiklyeong(직령) before Imjinwaeran. After the war, Jiklyeong was used as underwears of Danlyeong, so it was made of high quality patterned silk. Dopo(도포) and Changuiryu(창의류) were mainly excavated from tombs after the war, high quality plain weaved silk are used than gorgeous Patterned silk. For the Dopho(답호) and Bansuui(반수의), before the war, they were made with various textiles such as plain weaved silk, twill weaved silk, satin weaved silk, cotton, linen, and blended fabric. But after the war plain weave was mainly used. In Jangui(장의), since it was mostly for women, many kinds of women's patterned silk were used in than any other Po. There were only a few excavation of Simui(심의) and most of them were made of ramie and were hemmed in black satin without pattern.

조선시대 답호의 조형특성을 응용한 디자인 연구 (A study on the design using characteristic the Joseon dynasty Dap-ho)

  • 염순정;김은정
    • 한국의상디자인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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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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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7-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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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The sleeve is closely connected with activity in terms of costume. As a kind of overcoat, Dap-ho of the Joseon Dynasty is short-sleeved or sleeveless. Dap-ho, with simple sleeves is convenient for layering and taking off and since it is easily adjustable using a gusset, a slit, or coat string, and this can be applied to layered look-related designs. This study aims to suggest a design item, which sustains the existence of traditional costumes and facilitates diverse layered looks and co-ordination, using the formative elements of Dap-ho. For this study, theoretical backgrounds and relics of Dap-ho of the Joseon Dynasty were analyzed, based on the previous studies, ancient literature,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and relics preserved in museums. The analysis targeted nine relics that show the birth and death years and the constructive changes in shapes, colors, materials of Dap-ho. Formative elements of Dap-ho were applied to the designing and the manufacturing of clothes for middle-aged women in their fifties and the research conclusions are as follows. First, from a morphological perspective, the silhouette, gusset, slit, and the indirectly attached coat string of Dap-ho are good to be used as various design items for covering the body shapes of middle-aged women, and the short-sleeved or sleeveless type is convenient to be layered. Second, when it comes to the material, it is possible to emphasize a traditional image and practicality at the same time by mixing and matching the Hanbok cloth and cotton. Third, in relation to the colors, the coexistence-based color arrangement method considering the theory of Yin and Yang can be applied to modern clothes and this makes it possible to express a traditional image in a harmonious way.

조선시대 공신초상(功臣肖像)의 관복(제1기) 고찰 (A Study of the Gwanbok (1st period) of Meritorious Vassals' Portraits in the Joseon Dynasty)

  • 김미경;이은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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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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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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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연구는 공신초상의 관복 제1기를 하향뿔의 사모와 잡색 단령 시기로 규정하고 성종 7년(1476) 이전에 그려진 조선 초 개국공신(1392)에서 성종 초 좌리공신(1471)까지의 공신초상 관복의 특징을 고찰한 것이다. 관복 제1기에 속하는 공신초상(이모본) 중 이제(개국), 이천우(정사·좌명), 마천목(좌명), 신숙주(정난), 설계조(정난), 그리고 이숭원(좌리) 공신초상 등 관복 표현이 비교적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6점을 선정하고 관복 구성품별 조형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조선 초 삼공신(개국·정사·좌명)의 사모는 모체는 낮고 모정은 둥글며, 사모의 하향각(下向角)은 좁고 짧은 형태였으나 단종대 이후 정난·좌리공신 사모는 모체가 높아지고 사모의 하향각도 두 배 정도로 길어졌다. 그리고 관복 제1기 공신초상의 사모뿔에는 무늬가 표현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개국 초에는 단령의 색상 규정이 없었으나 대체로 옅은 색의 단령으로 표현되었다. 세종대 이후 예복용 흑단령 제도가 시작되었으나 공신초상 관복에는 흑단령 제도가 반영되지 않았으며 단종대 이후에는 담홍색 단령으로 표현되었다. 단령 겉감에는 무늬가 표현되지 않았으며, 옆트임에는 '안주름무'가 표현되었다. 단령 받침옷 답호와 철릭 역시 통일된 색상은 없었으나 정난공신 이후에는 청색 답호와 초록색 철릭을 착용하는 경향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품대는 공신의 품계를 나타내는 역할을 하였다. 단종대 이후 흉배제도가 제정되었으나 제1기 공신초상 중에는 정난공신 신숙주 초상에서만 유일하게 흉배가 표현되었다. 단령에 신는 화자는 조선 초 삼공신 초상에서는 흑화가 확인되었으나 단종대 이후 정난·좌리공신 초상에서는 백화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일부 공신초상의 흑화와 백화 솔기선 부분에 연금사로 장식한 휘(揮)가 확인되었는데 휘 장식의 화자는 3품 이상이 신던 협금화를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의 병행수입에 따른 정책의 유효성 평가: 럭셔리 의류브랜드 (Evaluation on Effectiveness of the Parallel Importation Policy in Korea: Luxury Apparel Brands)

  • Kwon, Soongi
    • 한국의류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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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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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83-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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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연구의 목적은 병행수입제도의 정책운용적인 관점에서 고가품 수입의 큰 비중을 차지 하고있는 럭셔리의류 브랜드를 중심으로 병행수입제도 도입 이후 현 시점에서 공정경쟁의 관점에서 병행수입의 문제점 추출과 대안을 도출함으로써 정책적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연구 방법은 문헌조사와 in-depth 인터뷰를 실시하였다. 연구 결과 제도적 측면에서는 병행수입제도 도입 당시 병행수입과 직접 관련된 지적재산법과 독점규제법 사이에는 전용사용권자의 보호와 규제라는 입법적 목적이 서로 다른 이유로 병행수입 도입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상표권 침해 기준의 모호, 세관절차에 있어서의 문제점 등이 추출되었다. 럭셔리의류 산업적 측면에서 병행수입제도는 수입물품의 가격인하를 선도하여 소비자 이익 증진에 기 여 하는 반면에 명품의 유통경로가 다양해짐에 따라 위조상품의 처벌실적 이 증가하고, 이월상품과overrun된 제품의 저가수입 등의 문제점이 야기되고 있다. 이에 대한 정책적 해결방안으로는 공정거래법의 개정을 통한 병행수입 허용기준의 보완, 지적재산권법 에 병행수입허용 규정 명시 , 소비자 관점에서의 병행수입 제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 전달 등의 내용 보완이 이루어져 야 한다. 본 연구의 시사점은 정책당국에게 경쟁조건의 Global Standard라는 견지에서 제도적 운용의 개선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하는 논거와 토대를 제공하였다. 또한 전용사용권자와 병행수입업체에는 정보의 비대칭성에 의존한 판매전략을 지양하고 소비자 보호와 적 정 한 상표권 보호의 합리적 조화가 궁극적으로 생존의 핵심전략임을 인식시켜 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가치관은 이들의 의복관심과 의복착용 그리고 구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포제로 평가되었다. 모든 남자포제가 전통적, 순수한 이미지의 포제로, 철릭을 제외한 모든 포제가 단순한 이미지로 나타나 조선시대 남자 포제가 공통적으로 가지는 이미지는 단순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남자 포제의 시기별 복식이미지에서는 조선전기(철릭, 답호, 직령)의 포제는 관할성 요인이 높은 의례적인, 관할한, 특이한 이미지로 평가되었고 조선중기(도포, 창의)의 포제는 품위있는, 절제된, 풍성한 이미지로 평가되었으며, 조선후기(주의)의 포제는 활동적인, 단순한, 직선적인 이미지로 나타났다. 따라서 시대별 남자 포제의 이미지는 시대적 여건과 상황에 따라 변화되어 왔으며, 시대에 따라 추구하는 이미지가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이러한 논란의 해결방안으로 관세법 고시에 의한 우회적 도입을 결정한 정부의 방침에 대해 제도적 측면에서의 문제점으로 저작권 침해 기준의 결여다.lavonoid 함량의 판단지표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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