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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림의 종조성과 환경인자간 상관관계 (A Study on Correlation between Species Composition and Environmental Factors in Abies koreana Forest)

  • 박병주;김지동;이준우;조승완;허태임;이동혁;변준기
    • 한국자원식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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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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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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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본 연구는 국내 대표적인 구상나무 자생지인 덕유산, 지리산, 한라산 대상, 종조성과 토양이화학적성질과 경관지수를 이용하여 구상나무 분포와 환경요인간의 상호관계를 분석하여 향후 구상나무 보전을 위한 기초자료를 마련하는 것이다. 표본점 조사구는 총 121개소를 조사하였다. 토양이화학적 성질의 경우 대부분 한라산에서 높은 수치로 기록되었으며, 지형지수는 덕유산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고 습윤지수는 한라산, 광량은 지리산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ordination 결과 덕유산과 한라산의 구상나무림 종조성이 매우 이질적인 종조성으로 나타났다. 구상나무의 흉고단면적의 경우 한라산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으나, 활엽수 흉고단면적은 적어 한라산의 구상나무림이 육지에 있는 구상나무림 보다 순림형태로 나타났다. 치수발생량은 덕유산에서 매우 저조하여 향후 후계목의 수가 적어 점차 쇠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치수발생수 뿐만아니라 향후 치수의 생장량에 대한 모니터링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환경인자와 구상나무 식생요인간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면, 한라산 지역은 지형습윤지수와 큰 영향이 없었으며, 지리산 및 덕유산은 지형습윤지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치수발생과 관련하여 지리산과 여러 환경인자간의 상관관계가 통계쩍 유의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상나무림의 쇠퇴와 유지와 관련하여 국내 학계에서 여러가지 가설이 제시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단기간의 조사를 바탕으로 한 분석이라는 점에서 연속적이고 여러 지형상황에 따른 모니터링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해양성기후인 한라산 지역과 대륙성기후를 나타내는 덕유산, 지리산 지역의 구상나무림의 쇠퇴 및 유지와 관련한 환경인자는 지역적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국악교육 자료로서의 의궤(儀軌) 활용 방안 모색 (A Study on the Methods of Education for Court Music Utilizing Uigue(儀軌))

  • 이정희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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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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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25-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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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의궤(儀軌)는 궁중행사보고서로, 기록문화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 내용이 상세하다. 그리하여 학계에서는 의궤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의궤를 일반인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대중서를 출판하고 다큐멘터리도 제작하였다. 그러나 아직 교육계에서는 의궤가 활발하게 사용되지 않는 상황이다. 우리의 미래를 주도할 학생들에게 문화적 자부심을 심어주고 궁중음악문화의 우수성을 전하기 위해 의궤를 교육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개발, 도입되어야 한다. 특히 국악교육 부분에서 궁중음악을 교육할 때 의궤를 사용하면 유익하다. 대부분의 궁중음악 레파토리가 느리고 장중하여 궁중음악 자체를 먼저 노출시키면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궤에 수록된 다양한 시각자료를 통해 먼저 궁중음악을 '보여주는' 교육방법을 모색해 보았다. 즉 의궤에 수록된 악기 그림, 악대 그림, 춤 그림, 공연 무대 등을 교육자료로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 지를 살펴보았다. 본고에서 선별한 자료 외에도 의궤에는 궁중음악 교육 자료로 활용할 것이 많다. 아울러 의궤 뿐 아니라 오례서(五禮書), 악서(樂書), 도병(圖屛), 관찬 악보(樂譜) 등으로 넓혀서 궁중음악문화를 입체적으로 교육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교육현장에서 다양한 궁중악무 관련 자료를 통해 품격 높은 궁중음악 관련 자료를 보여주는 일이 궁중음악을 들려주는 일과 함께 나아간다면 더 나은 교육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백제양식석탑의 형성과 전개의 시발점(始發點) (A Starting Point of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Baekje-style Stone Stupa)

  • 전지혜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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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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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2-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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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미륵사지와 정림사지 석탑은 한국석탑의 시원인 동시에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백제석탑이다. 따라서 이 둘의 특징을 살펴보는 작업은, 넓게는 한국석탑, 좁게는 백제양식석탑을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백제의 뛰어난 건축술은 기록에도 전하듯이 아비지가 신라의 국가적인 사업인 황룡사목탑의 건립에 초청된 것을 통해서 알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석탑과 관련된 기술과 양식이 신라에 전파되었음도 짐작된다. 그러나 신라통일을 맞이하여 백제석탑의 양식을 공유하는 석탑들이 일순간에 단절되었다고 보는 것은, 문화와 예술이 계승 발전된다는 측면에서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현재 학계에서는 여타의 백제지역 석탑들을 모두 고려시대 건립된 백제계 석탑이라는 틀로 규정하여, 일률적인 편년 아래 두고 있다. 등장요인으로는 불교의 대중화, 지방 호족의 지원, 문화의 복고적 경향 등을 들고 있는데, 과연 이것만으로 백제양식석탑이 약 300년간의 공백을 깨고 한 순간에 등장할 수 있었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물론 경주지역처럼 활발하지는 않았지만, 백제양식석탑이 일부 지역에 한정되어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본 논문에서는 전개의 시발점에 초점을 맞추어, 백제양식석탑이 미륵사지와 정림사지 석탑을 통해서 형성되고, 그후 왕궁리 석탑을 통해서 전개가 시작되었음을 고찰해 보았다.

석가탑 출토 묵서지편의 석탑 부재 관련 용어 고찰 (On the terminology for pagoda subsidiaries in the manuscripts excavated from Seokgatap pagoda)

  • 주경미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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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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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9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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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1966년 해체 수리된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에서는 여러 가지 사리장엄구와 묵서지편들이 출토되었는데, 이들은 한국 불교사 및 불교미술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본고에서는 석가탑에서 출토된 묵서지편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석탑 부재 관련 용어들을 정리하고, 이러한 새로운 용어들의 의미를 현존하는 유물과 비교하여 파악해 보았다. 석가탑 묵서지편은 크게 (1)<무구정광탑중수기(無垢淨光塔重修記)(1024)>, (2)<서석탑중수형지기(西石塔重修形止記)(1038)>, (3)<불국사탑(佛國寺塔) 중수포시명공중승소명기(重修布施名公衆僧小名記)(1038)> 등 세 종류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석탑 부재 관련 용어들은 무구정광탑중수기와 서석탑중수형지기에서 기록되어 있다. 무구정광탑중수기에는 앙연대(仰蓮臺), 화예(花?), 통주(筒柱), 절석(節石), 통석(筒石), 분복(盆覆) 등 10개의 석탑 부재 관련 용어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석탑 상륜부 부재의 명칭으로 추정된다. 한편, 서석탑중수형지기에는 두정석(斗頂石), 상층석(上層石), 통주(筒柱), 통주석(筒柱石), 하층금당석(下層金堂石), 초층금당대석(初層金堂臺石), 월개석(月蓋石), 지대(地臺) 등의 여러 용어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현재의 석가탑 석탑의 탑신 및 기단부 부재와 크기 및 위치가 대부분 일치하여 주목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석탑 부재 관련 용어들은 고려시대 11세기 불교계에서 실제로 사용되었던 것이지만, 현대 학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들과는 큰 차이가 있다. 아직까지 묵서지편의 판독과 해석은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중국, 일본의 중세 문헌의 관련 용어 및 다양한 실물 자료와의 비교 연구를 통해서 보다 정확하게 판독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묵서지편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다양한 용어들의 분석을 통해서, 한국 불교사 및 불교 미술 연구가 한층 더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한국(韓國) 『상서(尚書)』학(學) 연구(硏究)의 회고(回顧)와 전망(展望)

  • 진역령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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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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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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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한국에서의 유가(儒家) 경전의 수용은 삼국시대에 시작되었으며, 이는 신라(新羅)시대 태학(太學) 교육 중의 한 과목이 "상서(?書)"였다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상서(?書)"는 고대 정치제도 및 정치사상과 매우 긴밀한 관련을 갖는 경전인 까닭에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통치자들의 시정방침(施政方針)상의 중요한 근간(根幹)이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상서(?書)" 연구를 통해서 경서 내용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정치사상도 알 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 있어서 경학 연구는 중국과 달리 전통적 사서오경(四書五經) 혹은 십삼경(十三經)이 아니라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또한 개별 경전에 대한 연구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사서(四書)"의 경우, 특히 "논어(論語)"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삼경(三經)의 경우, "주역(周易)"이나 "시경(詩經)"은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으나, 한국에서 "상서(?書)" 연구는 아직 전자만큼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또한 성균관대학교에 발간한 "한국경학자료집성(韓國經學資料集成)"을 살펴보면, 한국 경학 저술 총 145권 가운데 "상서(?書)" 부분이 22권을 차지하고 있다. 즉 거의 6분의 1이 "상서(?書)" 관련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는 "학술총람"과 공구서(工具書) 전자 시스템에 수록된 1901년부터 2014년 상반기에 이르기까지의 100여 년 동안 한국(韓國)에서 발표된 "상서(?書)" 관련 학술단행본 학위논문 학술지논문 등을 검토하고, 이를 통해 한국에서의 "상서(?書)"학(學) 연구(硏究)를 회고(回顧)하고 또 그 미래를 전망(展望)해 보도록 할 것이다. 전적으로 보면 한국 "상서(?書)"학 연구는 3가지를 포함한다. 첫째는 한국에서 중국 고전 "상서(?書)" 원전(原典)에 대한 탐구(探究)인데 이를 '중국 "상서(?書)" 연구' 라고 칭하였다. 둘째는 조선시대 유학자의 서경 저술을 중점 대상으로 연구하는 것으로 이를 '한국 "서경"학 연구'라고 이름 하였다. 셋째는 한국 이외 다른 나라 학자들의 조선시대 "서경" 저술에 대한 연구이다. 이상 3가지를 모두 대상으로 삼아야 온전한 한국 "상서(?書)"학 연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의 연구 방향은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역본의 연구 (2)학파별 연구 (3)문헌적 연구 (4)경연과 과거시험의 각 나라 비교 연구이다. 한국 "서경"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는 조선시대의 사상과 문화 특히 정치사상을 파악할 수 있으며 또한 전통시대 동아시아 각국의 학문 양상까지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아직까지 한국의 학계에서 한국 "서경"학을 중심으로 하여 이러한 측면을 밝히는 연구는 부족한 편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그렇기에 연구할 영역이 더욱 많은 셈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연구영역들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 앞으로 더 깊이 있고 폭 넓은 연구가 진행되기를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의료사고 및 의료분쟁에 대한 치위생사의 인식도 조사 (A Survey on the Perception of the Counterplans of Medical Accident and Dispute of Dental Hygienist)

  • 오진호;권정승;안형준;강진규;최종훈
    • Journal of Oral Medicine and 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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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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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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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치의학계에서는 의료사고를 일으킬만한 중환자나 응급환자의 빈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의료분쟁에 휘말리는 경우가 적었으나 요즈음은 의료분쟁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치과진료의 특성상 항상 보조인력이 한, 두명씩 치과의사의 진료를 도와주어야 하고, 치과의사의 의료사고로 인해 의료분쟁으로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의료법에서 정한 치과 보조인력의 진료영역에서 의료사고 및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의료기관의 친절도, 서비스 불만 등 진료외적인 요인은 치과 보조인력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본 연구는 2006년 현재 종합병원, 치과병원 및 의원에서 치과진료 보조업무를 하고 있는 치과위생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다. 회수된 275명의 설문분석을 통하여 응답자에 관한 기본적인 자료조사 및 환자의 불평, 불만 및 의료분쟁 경험도와 함께 의료관계법의 이해도를 측정하고, 치과진료 및 의료분쟁에 대한 전반적인 의식성향을 비교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1. 설문응답자 중에서 향후 의료사고 및 분쟁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또는 의구심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경우가 274명 중 251명(91.3%)이었다. 2. 치과위생사의 업무, 진료에 대한 환자의 불평, 불만 경험률은 29.5%(81명)으로 나타나 치과관련 의료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3. 전체유형별 항목에 따른 환자의 문제제기 건수를 보면 직접적인 진료행위와 관련된 문제보다 불친절 및 진료비 등의 진료이외의 문제 제기가 1805건 중 349건(19.3%)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4. 세부유형별 항목에 따른 환자의 문제제기 건수를 보면 환자가 치료와 관련하여 충분한 사전설명이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고 문제시 한 경우가 1805건 중 129건(7.1%)으로 가장 높았다. 5. 치과위생사가 스케일링 시술 후 환자 진료기록부에 기록하는 경우는 267명 중 252명(94.4%)으로 나타났으나, 스케일링 시술 후 주의사항 설명 사실을 진료기록부에 기록하는 경우는 55명(20.8%)에 불과했다. 6. 치과진료에 있어서 환자가 언급하지 않으면 특별히 전신질환 유무를 조사하지 않는 경우가 6명(2.2%)으로 조사되었다. 7. 환자 진료와 관련되어 응급상황 발생 시 응급조치를 시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치과위생사는 104명(38.0%)으로 조사되었다. 8. 근무지에 응급상황 발생 시 조치에 필요한 장비 및 약품을 구비해둔 경우는 115명(41.8%)으로 나타났다. 9. 의료분쟁 발생 시 문제해결에 있어 의무기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응답한 경우는 268명(97.81%)으로 나타났다. 10. 의료분쟁 시 문제해결에 있어서 치료 전 설명 및 동의의 의무의 이행 여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응답한 경우가 272명 (99.3%)으로 나타났다. 11. 의무기록의 의무보관연도가 10년이라고 옳게 응답한 경우는 160명(58.4%)에 불과했다. 12. 치과위생사의 업무를 벗어난 파노라마사진 촬영을 해도 된다고 응답한 경우가 124명(45.3%), 치경부 레진수복을 해도 된다고 응답한 경우가 71명(25.9%), 유치발치를 해도 된다고 응답한 경우가 37명(13.5%)으로 나타났다. 13. 환자의 비밀누설 금지와 관련하여 환자의 상태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응답한 경우가 24명(8.8%)으로 나타났다. 14. 의료분쟁의 예방 및 대책에 관한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 272명(99.3%)이 필요하고, 167명(61.0%)이 시급하다고 답하였다. 15. 재학 중 의료분쟁의 예방 및 대책에 관한 관련교육을 수료한 적이 없다는 경우가 186명(64.2%), 졸업 후 의료분쟁의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보수교육을 수료한 적이 없는 경우가 212명(77.4%)으로 나타났다. 16. 향후 의료분쟁이 증가할 것으로 생각된다는 응답은 256명(93.4%)이었고, 그 원인으로는 83.3%가 인터넷, 방송 등의 매체를 통한 정보습득 기회의 확대를 꼽았다. 이상의 결과를 종합해보면 치과위생사와 관련한 환자의 불평, 불만 및 분쟁도 경험률이 응답한 치과위생사의 29.5%를 차지하고 있으며, 의료법에서 정한 의료인의 의무와 치과위생사의 직무범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으로 조사되어 앞으로 의료분쟁이 더욱 증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의의무, 설명 및 동의의무 등의 의무를 다함은 물론, 이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여야 하며, 의료법과 의료분쟁에 대한 예방 및 대책과 관련된 교육기회를 확대하여야 할 것이다.

서울시·경기도·강원도지역 구곡·동천 위치연구 (Study On the Geographic Locations of Gugoks and Dongcheons in Seoul, Gyeonggi-Do and Gangwon-Do)

  • 강기래;이해주;김희채;이현채;김동필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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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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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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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유교의 사상적 완성을 구현하기 위한 구곡(九曲)과 동천(洞天)의 문화는 조선시대에 널리 성행하였다. 이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학주자(學朱子), 존주자(尊朱子)의 기치 아래 자연 속에서의 심신수양을 통한 주자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진리의 체득을 위한 과정에 있다는 자기 위안의 행위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의지의 표출로서 각 지역의 경치가 좋은 곳에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모방한 '구곡'과 이상향을 나타내는 '동천'을 설정하고 경영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구곡 동천은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학계에 보고된 우리나라 전체 구곡은 약 60여 개소에 이르며, 동천은 이보다 더 많지만 정확한 위치나 집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서울, 경기, 강원도에 산재하고 있는 구곡 동천에 대한 위치확인을 위해 수행되었다. 구곡과 동천의 위치에 대한 정보는 선행연구와 보고서, 인터넷 검색과 각 지역 문화원의 발간 서적을 통해 수집하였다.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각 지역에 실재하는지에 대한 답사를 진행하였고, 위치정보를 획득하였다. 이 외에 상상 속의 구곡 동천이나 멸실된 곳, 출입이 불가능한 지역 등을 정리하였다. 서울과 경기도 강원도의 구곡은 8개소로 파악되었다. 이 중 그 위치나 기록 등이 비교적 명확한 곳이 곡운구곡과 옥계구곡이다. 벽계구곡과 수회구곡은 서로 위치나 명칭이 서로 겹치기도 하고, 설정한 시기나 경영자가 명확하지 않다. 서울의 우이구곡은 홍양호가 설정하였으나 그 위치가 일부는 확인되고 일부는 위치의 논란이 있으며, 일부는 훼손되어 있다. 서울 경기도와 강원도의 동천은 모두 38개소로 파악되었다. 서울지역에 위치한 동천은 16개소이다. 이 중 실제 존재하지만 출입이 금지된 곳은 도화동천과 양산동천, 쌍류동천 등이다. 경기도 지역의 동천은 13개소이며 온수동천은 개발로 인해 그 위치를 알 수 없으며, 귀래동천은 기록만 있고 실제로 확인은 불가한 곳이다. 강원도 지역의 동천은 9개소이다. 화음동천은 곡운구곡의 상류에 위치한 화음동정사지(華陰洞精舍址)를 잘못 표기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아욱(葵菜), 접시꽃(蜀葵), 닥풀(黃蜀葵), 해바라기(向日葵)에 대한 문헌고찰 (The Bibliographical investigation of the mallow, hollyhock, darkpull, sunflower)

  • 김종동;고병희
    • 사상체질의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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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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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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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1. 연구 목적 사상의학(四象醫學)에 있어서 식이요법은 체질진단, 약물치료와 아울러 정신과 육체의 균형 및 조화라는 입장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학자들간의 체질음식에 대한 리견(異見)으로 인하여 혼란이 있어왔다. 따라서 중요한 식품에 대한 역사적 유래, 특성, 효능에 대한 문헌고찰을 통하여 사상체질 식이요법의 이론적 배경을 제시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백채지주(百菜之主)라 할 수 있는 아욱(葵菜)은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 나라에서만 국이나 찌개에 넣어 식용(食用)되고 있다. 이러한 아욱은 접시꽃(蜀葵), 닥풀(黃蜀葵), 해바라기(向日葵)와 같이 공통적으로 이름에 규(葵)가 들어가고 성질이 비슷하기 때문에 같이 고찰하였다. 특히 해바라기에 대한 문헌정리가 없는 학계에 해바라기 도입연대를 추정하고 규(葵)를 해바라기로 오역함에 따른 폐단을 정정하는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2. 연구 방법 본초서(本草書) 뿐만 아니라 농서(農書), 유서(類書), 개인문집 등을 비교 분석하였다. 3. 연구 결과 (1) 규채(葵菜)는 '아부실(阿夫實) ${\rightarrow}$ 아욱(阿郁) ${\rightarrow}$ 아옥(아혹) ${\rightarrow}$ 아욱'의 표기변천을 거치며, 동규(冬葵)를 돌아욱이라하는 까닭은 해를 넘기는(돌) 아욱이라는 뜻이다. (2) 아욱의 향일성(向日性)은 충(忠)과 지(智)를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촉규(蜀葵) 황촉규(黃蜀葵) 향일규(向日葵)의 향일성(向日性)과 맞물려 확대 해석하기에 이르렀다. (3) 黃蜀葵(닥풀)를 一日花(일일화)로 보았으나 해바라기가 도입된 이후 황촉규(黃蜀葵)와 해바라기를 혼동하여 닥풀을 해바라기(向日花)로 잘못 인식하기도 하였다. (4) 현존하는 문헌 중 해바라기에 대한 최초기록은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1795)이며 1700년대 초기에서 중기사이에 도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5) 일부 사전류의 잘못된 기록으로 인하여 규(葵)에 대한 해석의 혼란을 가져왔으나 이는 바로 잡아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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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단종의 가봉태실에 대한 문헌·고고학적 검토 (A Historical and Archaeological Study on Gabong Taesil of King Dangjong in Joseon)

  • 심현용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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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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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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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의 가봉태실이 현재 두 곳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즉 하나는 경남 사천시의 소곡산에, 다른 하나는 경북 성주군의 법림산에 있는 것이다. 한 임금의 가봉태실은 두 개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학계에서 논란이 되었다. 필자는 경북 성주에 있는 태실이 단종의 가봉태실이며, 경남 사천에 있는 단종 태실은 예종의 장자인 인성대군의 태실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현존 유물에 대한 세밀한 검토를 하지 못하여 이번에 문헌기록과 유물을 비교 연구하게 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 1. 단종의 태실은 아기태실과 가봉태실로 두 개가 있다. 즉 최초 단종의 아기태실은 1441년 윤11월 26일에 성주 선석산 태봉에 조성되지만, 1451년 성주 법림산으로 이안되어 2차 아기태실이 조성된다. 그후 세조에 의해 1458년 태실이 철거된다. 그러나 법림산 태봉에는 가봉태실석물이 잔존하고 있어 이를 근거로 단종이 임금으로 등극한 후 재임기간(1452~1455)에 가봉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2. 사천의 태실이 단종의 태실로 정착하게 된 이유는 숙종 때 단종 복위과정과 관련성을 두었다. 복위되면서 왕의 격식에 맞게 태실도 보수되는데, 이때 사천의 소곡산 태실을 단종의 것으로 잘못 알고 보수하였다고 보았다. 또 가봉시기는 단종이 복위되어 장릉 개수 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1699~1719)으로 추정하였으며, 의궤와 가봉석물에 난간석이 없는 것은 추봉된 임금의 무덤에 난간석을 하지 않고 간략히 조성하는 왕릉의 예처럼 태실도 난간석을 설치하지 않게 되었다고 보았다. 3. 지금까지 사천의 태실을 단종 태실로 알고 있던 것은 오류이며, 1462년에 장태된 인성대군의 태실로 결론지었다. 이는 서삼릉 태실에 있어야 할 단종 태실은 없고 인성대군 태실이 조성되어 있는 점에 착안을 하였다. 즉 1928년 이왕직이 사천의 단종 태실을 봉출하여 서울에 보관하다가 1930년 서삼릉으로 옮겨 갈 때 태지석의 명문에 단종이 아니라 인성대군 태로 기록되어 있음을 알게 되어 서삼릉에는 단종 태실이 아닌 인성대군 태실을 조성한 것으로 보았다. 이를 위해 일제강점기 때 서삼릉 태실을 조성하면서 남긴 "태봉"과 사천 태실 서삼릉 태실에서 출토된 유물을 그 근거로 제시하였다.

보물 제440호 통영 충렬사 팔사품(八賜品) 연구 (A Study on the Palsapum (八賜品, Eight-Bestowed Things), Treasure No. 440, in Tong-Yong Shrine to the Loyal Dead in Korea)

  • 장경희
    • 역사민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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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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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5-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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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팔사품은 이순신의 위대함을 기억하는 상징물이자 삼도수군통제사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의물로서 400년간 통제영과 충렬사에 배향되어 있었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1966년 보물 제440호로 지정되었으나 중국에서 전래된 유물이라서 그동안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팔사품 유물을 중심으로 문헌기록이나 회화 및 한중 관련 자료를 비교 분석하여 양식적 특징을 알아내고, 유물의 제작 연대나 제작지 및 역사적 가치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현존하는 8종의 유물 중 5종은 본래의 것이고, 3종은 후대에 새로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전자는 도독인(都督印)·영패(令牌)·귀도(鬼刀)·참도(斬刀)·곡나팔이며 1598년 이전 명나라에서 제작되어 진린 장군에 의해 전래된 것이었다. 후자는 깃발[독전기(督戰旗)·홍소령기(紅小令旗)·남소령기(藍小令旗)]들이며 19세기 조선에서 제작한 것이었다. 특히 전자의 유물을 양식적으로 분석한 결과 명 황실의 품격이나 공식적인 성격보다는 개인적이며 광둥지방의 토착적인 특색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팔사품을 중국 명나라 신종황제가 이순신에게 하사한 것이라기보다는 진린 장군이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통제영에 남긴 것임을 밝혀내었다.현존하는 팔사품 유물은 시기별로 명칭이나 품종과 수량 및 부속품에서 변화가 있었는데, 이것을 시대에 따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17세기 조선의 지식인들은 도독인만 주목했다. 그 도장은 명대에 제작된 것은 확실하나, 사인(私印)이어서 진린 도독의 것으로 여겨진다. 둘째, 18세기에는 '팔사물'로 불렀고 8종 14점이며, 1795년 발간된 『이충무공전서』 「도설」에서 확인된다. 이들 중 도독인을 비롯한 5종의 유물은 크기에서 기록과 유사하나, 형태나 문양은 조선에서 발견할 수 없는 이국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중국 광동지방의 향토성이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19세기에도 '팔사물'로 불렀고 8종 15점이며, 1861년 신관호가 그린 <팔사품도> 16곡 병풍에서 확인된다. 도장함과 영패주머니 및 3종의 깃발은 가죽이나 천처럼 쉽게 훼손되는 재료에 조선식 글자와 문양을 넣어 새로 제작한 것이다. 보존에 취약한 유물들은 19세기 말 이후에도 계속 개비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팔사품은 이른 시기에 보물로 지정되었지만 이후 정부의 무관심과 공식적인 기록의 관리 소홀로 오류가 많았다. 앞으로 이에 대한 정부 당국의 관심과 유물의 안정적인 보존을 위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렇게 팔사품이 영원히 보존될 때 16세기 말 일본의 침략 야욕을 한중 양국의 협력으로 이겨낸 역사를, 또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한국의 이순신장군과 중국의 진린도독을 함께 기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