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영화관에서 발행한 주보와 전단 등 인쇄물에는 영화관의 프로그램과 상영·배급, 주요 행사 등의 정보가 담겨 있어 그 가치가 상당하다. 이를 통해 해당 영화관의 정체성과 선전 전략, 관객성 등 당시의 영화문화를 복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들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1926~1937년에 영화상설관 단성사에서 발행한 주보와 전단에 대해 소개하고, 영화관이 발행한 프로그램 인쇄물을 영화에 종속된 부가물로서 영화 역사의 단편으로 귀속시키는 것을 넘어, 문자문화와 영상문화, 관객과 영화가 교호하던 독립된 미디어로서 고찰하고자 한다. 1920~1930년대에 단성사는 조선극장, 우미관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주보와 전단의 발행을 선전 전략의 핵심으로서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이 시기 단성사는 수영사(秀英社)를 비롯한 경성 남촌의 여러 인쇄소를 통해 주보와 전단을 발행함으로써 당대의 선전전(宣傳戰)에서 우위를 점하며 영화문화를 주도하게 된다. 단성사에서 발행한 인쇄물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미디어가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매개성'을 전략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는 크게 세 가지 차원과 관련되어있다. 첫째는, 주보와 전단이 지면을 통해 문자문화와 영상문화를 매개하는 방식이다. 단성사의 인쇄물은 '명멸하는 미디어'로서, 짧은 수명을 상쇄하기 위해 문자와 영상을 변증법적으로 매개하여 하나의 지면에 감각적이고 직관적으로 배치하는 전략을 취했다. 둘째는, 당대의 관객을 팬(fan)으로 호명하며 영화문화와 매개하는 방식이다. 단성사의 인쇄물은 끊임없이 관객을 팬으로 호명하고, 이들을 충성도 높은 집단으로 조직하면서 관객과 영화 사이를 매개하였다. 셋째는, 식민지 조선과, 영화로서의 '세계'를 매개하는 방식이다. 당시의 조선인들은 인쇄매체를 통해 조선과 세계의 '차이'를 감각하고 인식하였다. 본 논문은 이와 같이 1920~1930년대 경성의 문화지형에서 단성사의 인쇄매체가 '명멸하는 미디어'로서 독립된 문화영역을 구축하였음을 밝힐 것이다.
This paper examines printed materials such as weekly newsletters and leaflets issued by Dansungsa, a movie theater in Colonial Korea for a promotional purpose as independent modern media. During the 1920s and 1930s, in tandem with the development of the incipient printing houses in Namchon, Gyeongseong, including Suyeongsa, Dansungsa published promotional prints including weekly newsletters and leaflets in a serial manner to compete with Joseon-gukjang and Umigwan. As these materials contain various information including movie programmes, spectatorship, distributional channels, and promotional strategies that bears witness to theater culture of this time, this paper focuses on the dynamics where not only text and image but also audiences and filmic texts are mediated one another. To this end, the paper has three objectives. First, I argue that weekly newsletters and leaflets can be considered as 'flickering media' that meddles in text and image culture. Second, Dansungsa's promotional prints interpellated film audiences as a loyal fan group while mediating audiences and filmic texts. In doing so, I suggest that these print materials established its own cultural domain differentiated from filmic culture itself. Third, these ephemeral materials contributed to narrowing the gap between colonial Joseon and the World in its imaginary geography through the function of medi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