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교원이란 유치원에서 대학에 이르는 각급 학교에서 직접 원아(園兒)와 학생을 교육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때 각급 학교는 사립학교와 국공립 학교 모두를 포함한다[1]. 교육기본법 14조 제①항에서는 ‘학교 교육에서 교원(敎員)의 전문성은 존중되며, 교원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는 우대되고 그 신분은 보장된다’라고 하며, 교원의 전문성은 물론 자질과 품성, 그리고 윤리의식을 강조하였다[2]. 그런 가운데, 박아청[3]은 교사의 자질과 조건으로 ‘지식, 성격, 교육기술, 교직에 대한 태도’ 등을 언급하였고, 노종희[4]는 조직 헌신과 교직 헌신의 개념적 차이를 규명하면서 교직 헌신의 개념화 측정 도구 개발에서 교직 헌신의 기본 요인으로 ‘전문의식’, ‘교육애’, ‘열정’의 3개 요인을 언급하였다. 따라서 교원의 전문성을 비롯한 교사의 자질, 교직에 대한 태도 등은 교원에게 필요불가결한 항목이라 하겠다.
많은 직장이 그렇겠지만 교직도 일정 연령이 되면 학교를 떠나야 하는 정년 제도가 있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명예퇴직을 비롯하여 질병, 사망, 결혼, 징계, 이직 등의 이유로 인한 퇴직도 있으며, 교육부의 교육통계 분석 자료에 의하면 2019년 이후 5년간 정년퇴직을 하는 교원 수도 꾸준히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5].
표준국어대사전[6]에 따르면 은퇴(retirement)는 ‘직 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 냄’으로 정의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7]에서는 은퇴를 ‘직장이나 일을 그만두고 퇴직연금을 받거나 수입이 없는 상태, 또는 일 년 내내 직업이 없는 상태’라고 정의하며 인간의 발달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생애 주기의 주요한 변화이자 노년기의 생활과 역할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호숙[8]의 연구에서는 은퇴개념을 한 시점에 결정된 사건이나 불가역적 사건으로 보는 것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으며, 은퇴개념을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되는 사건이나 상태가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보고 있다. 이수진·이해랑·최현자·김난도·나종 연의 연구[9]에서도 은퇴는 그저 장소의 상실일 뿐 앞으로 인생이란 마라톤은 계속된다는 개념과 더불어 주 된 일자리에서 물러나 일을 하지 않거나 소일거리 정도의 일을 하고 있는 상태와는 달리, 경제, 시간, 건강, 직 업적 역할, 관계의 측면에서 변화를 인지하고 스스로의 상황과 요구에 맞는 행동을 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으로 정의하고 있다. 남순현[10]의 연구도 같은 맥락에서 노인의 은퇴 후 삶의 적응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은퇴가 단순히 노동시장에서 물러나는 현상이 아니라 주 노동 시장에서 이탈하는 일련의 과정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은퇴는 노년기의 생활과 역할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만큼 매우 중요한 삶의 전환점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평균 수명이 늘어나 은퇴 후 살아갈 기간이 긴 만큼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관심은 증대되고 있다.
한편, 한지형의 연구[11]에서 은퇴 전 일자리에서의 근속 연수가 짧을수록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 반면, 근속 연수가 길어질수록 일자리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져 은퇴 후에 더 큰 상실감을 경험한다고 보고하고 있다[11]. 교원 은퇴자들은 대부분 교직에서 짧으면 30년, 길게는 40년 이상 근속하게 된다. 따라서 한지형의 연구에 의하면 교원 은퇴자들은 교직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 은퇴 후 상실감을 겪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교원 은퇴자들이 상실감으로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또 다른 에너지를 갖고 삶의 이모작을 실행하여 삶의 또 다른 행복을 추구하는지에 대한 주제는 교직에서 30여 년 동안 근무를 하고 정년퇴직을 한 연구자의 주된 관심이 아닐 수 없다.
교직 생활 30년~40년, 자신의 삶의 가장 많고, 중요 한 부분을 교직에 몸담고 있었기에 교원 은퇴자들의 삶을 수치화하고 비교·분석하는 양적 접근만으로는 한계 가 있다고 생각하여 이들의 삶을 한층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질적 연구 방법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질적 연구 방법 중의 하나인 생애사 연구 방법으로 교원 은퇴자의 전체 삶과 이들이 겪어낸 변화무쌍한 경험들을 사 회·문화적 맥락과 연결하여 연구하고자 하였다. 그 이 유는 참여자의 생애는 삶의 주체자로서 주어진 환경과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상황에 부딪히며, 해결하고, 극복하는 존재로서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12]. 그뿐만 아 니라 개인의 삶 전체를 조망하는 생애사 연구는 시간의 연속성, 주관성, 이야기식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 삶의 힘들었던 이야기, 의미 있었던 시간, 생의 전환점 등이 현재 삶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를 볼 수 있기도 하다[13].
본 연구는 연구 참여자들의 긴 생애를 통하여 삶의 전체를 조망해 보고, 시간의 연속성 속에서 교직 생활의 힘들었던 이야기, 어떠한 과정으로 교직을 선택하였고, 교직 이전의 삶이 어떻게 교직 생활에 영향을 미쳤는지 탐색하고 그들의 교직 경험이 은퇴 후에 그들에게 주는 의미를 들여다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에게 은퇴 이후 새로운 삶의 의미와 노후 생활의 행복에 대한 개인적·사회적 필요가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목적으로 다음의 몇 가지 연구 문제를 설정하였다.
첫째, 성장기의 경험이 교육에 미친 영향은 어떠하였는가?
둘째, 사회·경제적으로 변화하는 교육 현장 속 직업 정체성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셋째, 퇴직 사건은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넷째, 교직 경험이 퇴직 후 삶의 이모작에 어떻게 영 향을 미치는가?
다섯째, 자기 삶의 통합감은 무엇이며,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 등이다.
Ⅱ. 연구 방법
본 연구는 생애사 연구로 진행하였다. 생애사 연구는 참여자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통해 현상이 생성되는 맥락을 이해하는 질적 연구 방법이다[14]. 생애사 연구 방법은 참여자들의 긴 생애를 조명해 보고, 공통적인 특징들과 그들의 생애가 은퇴와 관련해서 갖게 되는 의미들을 조명하는데 의의가 있다. 민성은·최성호·김영천 (2017)은 생애사 연구의 방법적 과정과 개요를 제공한 연구에서 생애사 자료 분석의 틀로 6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이 중, 어린 시절의 경험을 시작으로 하여 최근에 이르는 경험들이 분석되는 ‘연대기적 시간 순서로 분석 하기’ 방식이 있는데, 본 연구도 연구 참여자들의 생애를 연대기적 시간 순서에 따라 분석하였다. 이렇게 분석한 이유는 교원으로서 평생을 지낸 교원 은퇴자들의 생애를 어린 시절부터 들여다보고 어떠한 요소들이 교직에 영향을 미쳤는지 알기 위함이었다[15].
1. 연구자 및 연구 참여자
본 연구자는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교육기관’이라는 울타리에서 직업인으로 긴 세월을 보냈다. 30여 년의 기간 동안 교사와 장학사와 원감을 거쳐 정년퇴직하였다. 퇴직한 지 2년째인 현재 일반대학원에서 상담심리 학과 박사과정 수학 중이다. 나 자신이 교원 은퇴자로서, 나를 포함한 교원들의 전반적인 생애의 행적과 은퇴 이후의 삶의 변화 그리고 삶의 정체성에 관하여 상 당한 호기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연구자는 정년퇴직을 한 다음 해인 2019년에 정부의 노인 일자 리 사업으로 6개월간 한시적으로 시행되었던 사업에 참여한 바 있다.
연구 참여자들은 본 연구자가 퇴직 후, 위에 언급한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여 만난 10여 명의 유·초·중 등 교원 은퇴자들 중, 연구 시점 기준으로 서울, 경기지 역에서 퇴직한 지 3년 이내의 각급 학교 교원 4명을 선정하였고 또, 퇴직 3년 이내의 공립유치원 교원 은퇴자 한 명을 추가 선정하여 5명을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유·초·중등 교원을 골고루 포함하고 퇴직 교원이라는 연구 참여자의 특성이 반영되어야 하므로 목적 표집으로 선정하였으며 퇴직을 하고 나서 오랜 기간이 경과했 을 경우에는 연구 효과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어 퇴직한 지 3년 이내의 대상자로 제한하였다. 이들의 은퇴 시점의 직책은 중등 교장, 초등교감, 유·초·중등 교사로 직책이 골고루 분포되어있었으며, 본 연구를 위하여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들을 기꺼이 제공해주었다. 연구 참여자들은 [표 1]과 같다.
표 1. 연구 참여자
2. 자료 수집
자료 수집은 목적 표집으로 선정한 연구대상자 5명으로부터 2020년 4월 30일부터 7월 9일까지 약 70일간에 걸친 심층 인터뷰로 이루어졌다. 인터뷰는 개인별로 3회, 총 시간은 180분∼250분 이상을 심층 면담으로 실시하였다.
연구 참여자에게 인터뷰를 통해 얻은 연구 자료는 익명으로 처리될 것이며 연구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을 것을 분명하게 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전생 애사 공개와 서너 번의 심층 인터뷰에 대한 부담을 완 화하고자 인터뷰 초반에 전체 연구 참여자가 함께 모이는 기회를 마련하여 연구의 취지, 목적, 인터뷰 방법, 녹음 등의 절차에 관해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시간을 다시 한번 가졌다. 연구자와 연구 참여자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6개월간 함께 활동한바 있으므로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원활한 인터뷰 진행을 할 수 있었다. 한 참여자는 첫 회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120분 이상을 소요하기도 하였다. 연구는 심층 인터뷰로 충분히 가치로운 자료들을 얻었다.
질문지 문항은 반 구조화 된 질문지로 참여자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인터뷰는 자료의 수집과 분석이 함께 이루어지도록 하여 질문의 내용을 수정·추가해 가며 인터뷰 가이드를 만들어 적용하였다. 면담 중에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나 궁금한 것은 곧바로 질문하거나 다음 인터뷰 회차에 추가로 질문하여 시간이 지난 뒤에라도 대화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도록 하였다. 세 차례의 인터뷰가 끝난 후에 더 궁금하거나 보충이 필요한 질문은 전화로 주고받고 이 외에도 메일과 카카오톡 등으로 필요한 사진이나 기타 자료들을 얻었다.
인터뷰 장소로는 상담실, 시민공원, 카페 등 연구 참여자가 편하게 생각하는 곳으로 하였다. 또 질문을 포함한 모든 인터뷰 내용은 연구 참여자의 동의를 얻어 녹음하였다. 인터뷰와 녹음이 끝난 후에는 다시 들으면서 녹음 자료를 모두 한글파일로 변환하여 목록을 만들어 저장하였다.
인터뷰 질문은 Erikson의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를 참고하여[21] 연구 참여자의 기억으로 답변이 가능한 여섯 단계로 구성하였다.
인터뷰 질문 내용은 다음 [표 2]와 같다.
표 2. 인터뷰 질문 내용
연구 참여자들은 생애에 대한 경륜과 경험을 두루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으며, 자료 수집은 어려움이 없었다. 각각의 자료 수 집은 개별인터뷰 계획을 세워 진행했으며 다음 [표 3]은 자료 수집을 위한 인터뷰 일정이다.
표 3. 자료 수집 일정
3. 자료 분석
본 연구는 질적 연구의 한 방법인 생애사 연구 방법으로 접근하였다. 참여자들의 인터뷰 자료들을 우선 Colaizzi(1978)의 연구 방법을 활용하여 축어록을 분석하였다[16]. 분석하는 가운데 연구자의 가치판단을 멈추고 참여자들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현상[17]만을 바라보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연구자가 가진 선입견으로 참여자의 주관적 진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그런 후에 참여자들의 인터뷰 자료들을 일련의 과정을 거처 분석하였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17]. 첫째, 코딩 과정에서는 문서화된 인터뷰 자료를 읽어가면서 떠오르는 주제와 관련하여 이름이나 의미를 기록하였다. 연구 참여자 다섯 명의 코딩을 다 마치고 나서, 참여자 전체의 코딩 자료를 다시 읽으며 떠오르는 의미로 코딩의 이름을 변경하기도 하였다. 코딩한 의미에는 번호를 붙여 후에 의미를 찾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둘째, 범주화를 하기 위해서 이름이 붙은 코드들을 모아 상위 범주로 묶었다. 범주화에서는 코딩보다 더 추상적인 이름이 붙여졌다. 범주의 이름이 연구 목적과 관련이 있도록 하기 위해 범주화 과정에서 많은 이름의 변화와 코드의 범주 간 이동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범주 확인을 통해서 범주가 잘 구성되었는지 원자료와 비교하면서 연구 문제와 관련된 자료를 잘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자료를 분석하고 수정하였다. 또한, 전체 분석과정 중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지속적인 비교, 대화 내용을 소리 내어 읽기, 음성 파일 확인하기 등으로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검토하였다. 그리고 15회에 걸친 인터뷰 기간을 4월 30일부터 7월 9일까지로 공백 기간 없이 길게 하여 자료의 수집과 동시에 분석이 이루어지고 분석 중 연구 목적에 맞도록 인터뷰 질문을 추가하거나 수정하는 것으로 연구 목적에 초점을 맞추어 나갔다. 최종적으로 생애 주기에 맞추어 연구 참여자들의 진술들을 참고로 이야기 주제를 도출하였다.
4. 윤리적 고려 및 타당화
본 연구자는 대학원 박사과정 수학 중에 질적 연구 방법에 대한 과목을 수강하면서 탐구 유형에 따른 차이에 주목하게 되었고, 특별히 생애사 연구를 위하여 한 학기 동안 훈련을 받았다. 또 연구자가 연구수행의 전 과정을 알고 실천해 나가야 할 가치나 규범인 연구윤리와 연구의 전 과정에서 객관성, 정직성, 개방성, 공정성, 책 무성 등을 지키고자 노력하였다.
연구 참여자를 위해서는 개인의 생애 전반에 걸친 심층 면접 중에 개인의 행보가 드러날 수 있으므로 참여자의 개인정보에 관한 비밀을 지키는 연구의 윤리적 고려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인터뷰나 연구 참여자 확인 중, 또는 원고작성 과정 중 언제라도 연구 참여자의 요구가 있을 시 연구를 종료할 수 있음을 알렸고, 인터뷰를 통해 얻은 연구 자료는 익명으로 처리하였으며 연구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는 윤리적인 노력을 하였다. 또한, 여러 횟수에 해당하는 긴 기간 동안 기꺼이 연구에 도움을 준 연구 참여자들과 신뢰하는 관계로 그들의 삶을 존중하며 고스란히 이해하고자 하였고 연구자의 주관 성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연구 타당도 확보를 위해서는 Merriam[18]의 여섯 가지 주요 타당성 전략 중 ‘삼각검증법’, ‘연구 참여자 확인법’, ‘동료검토법’, ‘연구자의 편견공개법’을 활용하였다. ‘삼각검증법’으로는 다수의 연구자가 자료수집, 검색, 분석 등에 최종적으로 참여하여 단독 작업에 따른 편견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도교수와 박사과정 대학원생, 그리고 현직 교장 등의 의견을 반영하였다. ‘연구 참여자 확인법’으로는 연구의 분석과정에서 연구 참여자에게 자신의 의견이 왜곡되지 않고 제대로 분석되었는지에 관해 1차 개념화 자료를 메일로 발송하여 검토받았다. ‘동료 검토법’으로는 Guba(1985)가 제시하는 방법을 활용하여 질적 연구를 수행하게 된 박사과정 중에 있는 동료 연구자 3명에게 분석 자료와 연구 결과에 대한 검토를 10회기 이상 Zoom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자료를 공유하며 검토하였다. 연구자의 편견공개법으로는 연구 참여자와 함께 연구자의 정보도 함께 소개하는 것으로 하였다[19].
질적 연구에서의 신뢰도가 높다는 것은 연구의 결과물을 얼마만큼 동일하게 다시 내놓을 수 있는지에 관한 정도이다[20]. 유기웅·정종원·김영석·김한별(2019)은 질적 연구에 대한 논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질적 연구에서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전략으로 ‘삼각검증법’ 외에 ‘연구자의 견해’, ‘감사추적기법’ 등을 들었다. 본 연구에서는 신뢰도 확보를 위해 연구자의 인식론적 관점과 연구 의도, 연구의 사회·역사적 맥락에 대하여 충분히 기술하였다. ‘감사추적기법’으로는 연구가 완성되어 가는 시점에서 연구 결과물이 도출된 경위와 근거의 전후 관계를 파악하도록 제3자에게 요청하여 검증하였다.
Ⅲ. 연구 결과
1. 범주와 개념화
참여자들의 인터뷰 자료를 분석하여 다음과 같이 6개의 이야기 주제와 34개의 개념들을 도출하였다. 이야기 주제는 Erikson의 8가지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를 참고로 하여 연구 참여자들의 기억이 가능한 여섯 단계로 선정하였다. Erikson에 의하면 인간은 전 생애에 걸쳐 주요한 발달 관문인 ‘위기’를 통과해야 하며 각 위기는 사회적 성격을 띠며 그것을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하는 가는 이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21].
표 4. 이야기 주제와 요약된 범주
2. 생애 요약
연구 참여자들은 대부분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들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꼈던 연구 참여자는 심층 면접으로 들어가서야 기억 들 속에 감추어진 행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자신이 불 행했었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로는 시대적, 지리적 배경으로 인해 먹을 것이 부족해서거나, 살림은 풍족했으나 화목하지 않은 대가족의 분위기 등이 이유였다. 그러나 성장한 후에서야 자녀에게 희생한 어머니와 대화조차 못 할 만큼 무서웠어도 나를 사랑했던 아버지를 느끼고 깨달았다.
연구 참여자들은 홀로서기 위하여 성장하면서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참여자들이 겪은 상황들은 어린 연구 참여자가 감당하기 힘든, 또는 어른들이나 가족의 영향으로 어쩔 수 없이 마주한 상황들이었다. 연구 참여자들이 겪은 좋은 만남은 향후 진로 결정이나 정서적인 안녕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인터뷰 중에 싫었던 만남이라고 이야기하였으나 이러한 만남도 결국에는 교직 생활을 하는데 자원으로 작용하여 학생과 아동 지도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연구 참여자들은 사회생활 초기에 좌충우돌 초임 교사 시절을 겪어내고 혼신을 다하여 수업에 임하였다. 선생님들은 각자 젊은 시절의 열정 어린 수업에 대해 만족하였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따뜻한 가정을 이루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아동이나 학생들을 만나면서 서서히 교육관을 확립하게 되었다. 흔들리던 직업 정체성이 확립되고 본인이 처한 자리에서 각자에게 맞는 사명감을 확립해 나아갔다. 이들이 교육관과 사명감을 확립해 나아가는 데는 성장기의 달거나 썼던 여러 경험이 초석이 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연구 참여자들은 상호 의존과 봉사의 시기에 세련된 교사로서, 직업인으로서, 가장이거나 가족의 중요 일원으로서 치열한 삶을 살아냈다. 학교에서 중책을 맡으며 본인의 발전을 위해, 또는 승진을 위해 노력하였고 동시에 자녀에 대한 책임은 물론, 본인과 가족의 건강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삶의 무게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표현하였다. 또한 학생들에게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로서 좋은 영향을 주는 교사가 되고자 노력하며, 미성숙을 성숙으로 이끄는 임팩트 있는 사람이 교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연구 참여자들은 자아통합의 시기에 ‘과연 학생한테 잘하기만 했을까?’ 하는 회의감과 ‘다시 기회가 주어지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교직 생활을 평가하며 미련을 나타냈다. 한 참여자는 살면서 갈등과 고민의 원인이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되며, ‘삶에 음지와 양지가 있다고 해도 결국 모두 하나’라는 생각을 하고, 깨달으니 마음이 편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퇴직 무렵부터는 옛날의 원망, 분노 같은 부정적 정서 가 없어졌다고 하였다. 또 건강 문제로 죽고 싶은 우울감이 몰려왔으나 옛 우울을 불러들였다는 자각을 하면서 극복한 참여자도 있었으며, 자연과 내가 일치됨을 느끼며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은퇴 후 연구 참여자들에게 퇴직은 하나의 큰 단계를 무사히 마친 홀가분함으로, 편하고 자유로이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었다. 생을 돌 아보고 잘 살아왔다고 느끼며 교직을 끝까지 마무리한 것에 감사하였다.
반면에 평생 열심히 일해 온 이들에게는 보람없이 하루를 보내게 되는 성취감 없는 삶이 낯설고, 물 위에 떠 있는 부초처럼 소속이 없는 삶에 대한 허전함이 있었다. 어느 직업에서나 비슷하겠지만 퇴직 후의 현실적 문제에 대한 커리큘럼이 없다고 느끼며 준비 못 한 퇴직은 자격이나 연령 등의 제약이 많아 구직도 힘들다고 하였다. 결국 적절한 퇴직 준비를 하지 못하였고 만만치 않은 삶과 현실의 벽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새로운 전문직 공부를 시작하여 미래를 개척하는 참여자도 있었다. 연구 참여자들은 인터뷰를 하면서 삶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고 또,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인터뷰의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였다.
3. 시기별 삶의 이야기
3.1 의존의 시기: 원가족의 영향,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다
참여자 대부분이 어렸을 때에 겪은 행복했던 기억들 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참여자 E는 어릴 때에 놀던 팽나무 언덕에 대한 기억이, 어른이 되고 퇴직을 한 지금까지도 항상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의 놀이 기억과 시골집 앞마당과 주변의 움직임과 풍경, 그리고 그때 먹었던 알싸하고 달큰한 옛스러운 맛까지, 지금 생각하면 혐오스러울 수도 있는 어린 시 절의 시각적인 자극도 행복으로 기억하고 있었으며 특히 자연과 함께 한 어린 시절은 초등학생 지도에 도움 이 되었다고 했다. 아팠을 때 사랑을 준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얼굴도 지금 생각하니 행복한 기억이었다고 했다. 참여자 C는 여러 형제 중에서 불행했음에도 엄마를 독차지하여 엄마와 단둘이 시장에 갔을 때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시골 초가집 뒤에 밭이 있어서 온갖 채소를 다 길렀어요. 심지어 저절로 자란 익모초즙을 짜 먹었고, 엄청 썼지요. 재래식 변소 옆에 돼지우리도 있었고 마당을 어슬렁거리던 닭들, 장독대 뒤에 앵두나무와 굵은 송충이도 기억이 나요 ”. “한번은 돼지고기 먹고 체해서 학교에 못 가고 집에 누워있었는데 엄마가 걱정스런 얼굴로 간호해주던 장면이 생각나 요. 그것도 지금 생각하니 행복한 기억이었어요”. “어릴 때 그 경험들이 초등학교 교사를 하는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하지 않았나......”.(참여자 E)
“우리 일곱이니까 나 혼자만 사랑받기가 힘들었잖아. 일곱이, 전쟁이었어요. 그러니까 엄마랑 시장 가면 내 얘기 들어 주고, 거기 팥죽도 잡채도. 맛있는 거 많아요. 그렇게 먹으면서 제일 행복했어요. 무서운 아버지도 벗어나고, 잔소리하는 할머니도 벗어나고 할아버지, 인상 쓰는 할아버지도 벗어나고, 고모들의 그 억압에서도, 그럴 때 너무 행복했어요.”(참여자 C)
3.2 반의존의 시기: 홀로서기 위한 노력, 갈등과 좌절은 삶의 에너지가 되다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교원 퇴직자들에게도 갈등과 좌절의 시기와 사건들이 있었다. 그들은 어리거나 젊은 시절의 좌절과 갈등을 잘 승화시켜 후학을 양성하고 삶을 살아가는 데에 에너지로 사용하였다. 참여자 A는 중학교 시절에 수업료 납부 독촉과 담임과의 갈등으로 집을 나갔던 일이 있었다. 그로 인해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고 대화할 친구도 없이 외로웠으나, 이 사건이 도서관에서 책을 가까이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전공을 선택한 이유가 되었고 후에 학교에서 학생을 지도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또한, 배고픈 고등학교 시절에 다과회로 알고 참여했던 교외 활동이 교사 생활 중에 도움이 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것이라고 하였다. 참여자 E는 잠깐 가족과 분리되었던 불안정한 시기에, 좋아하고 존경하는 담임선생님과의 관계에서 공부 잘하는 똑똑한 문제아로서 오해와 갈등으로 인해 겪은 나름의 모욕적이고 수치스러운 기억이 있었다. 자신의 행동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선생님과 뒷날 그 갈등을 풀어내기는 했지만, 이 사건은 교사로서 아이들을 대하는 최소한의 행동 기준으로 작용하였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내가 가출을 해가지고 상당히 어려운 시절을 겪었어. 친구도 없고 엄청나게 위축이 된 거야. 그래서 도서관을 찾은 거예요. 그게 나한테 도움이 됐지, 많이. 그래서 나는 중학교 다닐 때도 힘들었지만.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던 그 경험이 내 인생을 살아가면서 행복이 됐어.” (참여자 A)
“고등학교 때 우연한 기회에 흥사단이라는 단체에 들어갔어요. 우연한 기회에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다과회 가자고 하여 솔깃하여 그곳에서 제가 ‘3분 스피치’훈련을 받았어요. 그 훈련이 제 인생에 엄청 도움이 되었어요. 제가 보람을 느낀 것은 저희 반이 공부를 가장 못 하는 반이에요. 그런데 3개월 후에 국어가 저희 반이 1등이었어요. 그러니까 요즈음으로 치면 논술훈련을 시킨거지요. 그게 제가 지금까지 교사하면서 제일 잘했던 것 같아.”(참여자 A)
“교사가 되고 난 이후에 항상 ‘아! 교사가 순간적인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 할 경우에 이렇게 평생 가는 트라우마를 줄 수 있다.’ 그걸 마음속에 담고 ‘나는 그런 선생은 되지 말아야지’. 그래서 항상 아이들에게 말 한마디 표정 하나라도 아이들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 된다’ 하는 게 늘 교사로서의 모토같이 평생 가슴에 남아있었어요.”(참여자E)
3.3 반독립의 시기: 일과 사랑, 사회 초년생의 고군분투 이야기
본 연구의 연구 참여자들은 대부분 1970년대 말부터 근무하였다. 긴 재직기간만큼 사회·경제적 변화와 함께 교육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인한 급격한 산업발전으로 분배의 불평등이 대두하여 교원의 급여가 일반회사나 은행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터무니없이 적은 기간이 있었다. 1980년에는 교육 정상화 및 과열 과외 해소 방안을 발표하며 대학본 고사 폐지, 교육대학의 수업연한 연장, 중학교 의무교육 실시, 그리고 1997년에는 공립 초등학교에 영어가 정규과목으로 도입되었다. 1998년에는 정부에서 초·중등 교원의 정년을 준비 없이 65세에서 62세로 단축하였다[22]. 이러한 변화를 겪으면서 참여자들은 다음과 같이 사회 초년생으로 고군분투하며 적응해나갔다. 그들은 등록금을 안 내면 퇴학당하던 시절을 학생과 교사로 겪어내기도 하였다. 연구 참여자 중에는 의도하지 않았던 진로에 대하여 직업 정체성에 대한 막연함과, 교사가 되고자 선택하였으나 쉽지만은 않았던 초임 시절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나는 처음부터 교사가 되겠다 해서 된 게 아니라, 내 형 편에 맞게 돈이 안 드는 학교를 가다보니까 교대를 가게 된 거예요. 그래서 첫 학교 발령받았을 때 심하게 고민을 했죠. 그래서 첫 학교에서 엄청 고민하다가, ‘그래도 이게 참 괜찮 은 직업 같다. 내가 사명감으로 교사가 된 건 아니지만, 최소한 직업인으로서 부끄럽지 않게는 살자’. 그러면서 좀 흔들리는 마음을 잡았죠.”(참여자 E)
“그 때, 어찌어찌해서 ‘고등공민학교’라고 알아요? 제가 거기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거기 오는 애들이 대부분 불우한 애들이에요. 그런데 지금도 가슴이 너무 아파요. 제가 월요일쯤 들어가서 수요일쯤 되니까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어요. 정규 고등학교에서. 갈등 되지요. 그래서 그 다음 다음날 옮겼어요. 그래서 나오면서 애들한테 인사말을 나누는데 입 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아, 그때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아, 나 돈에 팔려갔구나!’. 제가 경제적으로 너무 어렵게 되어 서......”(참여자 A)
“그래서 내가 선생을 하려고 했던 이유도 ‘나처럼 돈이 없어서 못 배우는 애들 만큼은 안 되겠다.’ 그래서 선택을 한 거야. 내가 옛날에. 거기 사립학교에서...... 내가 그랬어. 집주인한테. 내가 돈이 좀 필요한데 나 돈 좀 빌려 달라고. 내 가 봉급 받아서 드릴테니까. 애들 열 명 정도 치를 내가 빌 려갖고 그걸로 애들 것 내버렸어.”(참여자 A)
3.4 상호 의존의 시기: 인생을 위한 봉사, 사랑과 열 정으로 일구어낸 수확
이 무렵의 교사들은 경력으로 볼 때, 직업인으로서 학교생활에 무르익은 시기이다. 교사들은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에서 공부한 이론 외에, 교육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아동·청소년관과 교육관, 교직관을 확립한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 참여자들은 교육에 매진하고 봉사하여 나름의 열매를 얻었다. 공부도 좋지만, 각자가 가진 소질을 계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참여자 E는 게임에 빠진 학생의 마음을 다독여서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도왔다. 참여자 C는 경력 교사로서 후배 교사들에게 수업 컨설팅을 해주는 것에서 보람을 느꼈다. 참여자 A는 연극 지도를 하면서 고락을 함께했던 기억으로 지금도 그 학생들이 생각난다고 하였다. 또한, 가사 일을 돕느라 학력이 달리는 학생에게 부모를 설득하여 공부할 시간을 마련하도록 하고 따로 지도하여 성적을 올렸던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였다. 또한, 직업을 초월한 노력으로 영어 실력을 키워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88올림픽 자원봉사와 교사를 대상으로 한 영어교육 연수 등에서도 보람을 찾았다.
“얘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전학을 왔는데. 공부를 잘했는데, 스타크래프트에 빠진거야. 밤새 게임을 하고 지각을 하잖아. 아무리 패도 지각을 해. ‘아, 매로는 애를 못 잡는구나. 마음을 잡아야겠구나.’ “나와, 밥이나 한 끼 먹자. 이제 고2 니까 결정을 해야지. 너도 이제 졸업하면 사회인이야. 프로 게이머 할래? 공부할래? 너는 공부에 소질이 있으니까 공부하면 된다.” 얘가 그래갖고 서울대 갔어.”(참여자 D)
“그러니까 수업컨설팅, 그래서 나는 우리 후배들이...... 우리는 다 시행착오 하면서 했잖아요. 근데 조금만 툭 해줬으면 우리가 빨리 스킵해서 그거(성장) 해야 할 부분도 있었을 거잖아요. 너무 즐겁고 보람 있었어요. 그동안 내가 했던 게 후배들에게 컨설팅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너무 즐거웠고......우리 선생님들의 열정에다가 불을 지피고 싶은 마음 있잖아요.”(참여자 C)
“현장에 와서 연극부를 조직하고 연극부를 했어요. 도와주 는 사람들이 나타나더라고요. 서울에 있는 연극단체들이 와서 지도도 해주고 막상 연극 할 때 와서 분장도 해주고. 학 부형들이 물품도 지원해주고, 그때 너무 감동받았어요. 학생들에게 라면 먹여가면서 작품을 끝냈을 때. 학생들이 저를 껴안고 울 때 저도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그게 애들하고 고 락을 같이하면서 힘들었지만. 지금도 걔들이 생각나요.”(참여자 A)
“애가 고등학교 1학년인데 중학교 1학년 수준도 안 돼. 영어, 수학 이런 게 하나도 안 되는 거야. 그래서 물어봤더니 맨날 집에 가면 리어카 끌고 나가서 시내 다니면서 짬밥 거둬다가 집에서 돼지 키우고 그러는 거야. 과수원도 하고. 그래서 내가 얘네 집에 엄마를 오라고 해서 ‘아니 돼지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주일에 몇 번만 시키고 몇 번은 공부해 라. 그래서 중학교 1학년 영어책 구해줬어. ‘너 이거 오늘 한 페이지 이거 외워 와.’ 매일 한 페이지씩, ‘무조건 외워.’ 3개월을 시켰다니까. 수학도 산수 시켰어. 얘가 나중에는 중학교 2학년 과정까지 다 마쳤어. 그러니까 조금 성적이 올라가더라고.”(참여자 A)
3.5 자아통합의 시기: 나를 알아감, 경험과 깨달음은 삶을 영글게 하다
인생 후반기를 훌쩍 넘어선 교원들은 교직이라는 특정 직업인으로서뿐 아니라 평범한 인간으로서도 삶을 통해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참여자들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 중에 연구자도 ‘아하! 그러하구나!’ 하고 숙고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중에는 지인이 써준 좋은 글을 보고 나서 깨달았던 이야기와 하나님을 만나 자존감을 찾고, 책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가족 이야기도 있었다. 몸이 아파 힘들고 죽고 싶던 와중에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아픔이 오히려 득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옛날에 힘들었던 일들이 하나의 점에 불과한, 아무것도 아닌 것을 깨달았다고 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왜 갈등하고 고민해 왔던가를 근본적으로 보면 만족을 못 했던 거지요. 근데 알기는 다 아는데, 알기만 할 뿐이지 깨닫지는 못했다. 그래서 아, 결국에는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내가 만족할 줄 몰랐구나. 그래서 한 생각을 바꾸면 된다. 오늘 그 부처님 오신 날인데 오늘 부처님 오신 날 법어가 또 재미있어요. 뭐냐하면 ‘만유일체유심조(萬有一 體唯心造)’입니다. 그냥 내 마음속에 있는 세상이 바뀌더라.” (참여자 A)
“아, 그때 나 깨달았어요. 하나님의 도움으로 내 존재 자체가 사랑하는 거로 정체성이 확립되니까...... 나의 불만과 그 이유가 남편이 아닌데도 내 눈이 그렇게 보이는 거잖아 요.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그때 무얼 보았느냐 하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이 사람이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었구나! 그래서 부부 사이가 좋아졌어요. 고난이 유익이었어요.”(참여자 C)
“이제는 그 옛날에 힘들었던 게 하나의 점에 불과해. 이제 진짜 마음이 편해. 새로운 삶을 사는 거죠. 그러니까 이렇게 무색무취하게, 사실상 모든 게 ‘진공묘유’에요. 마음이 참 느긋해졌어요.”(참여자 B)
3.6 은퇴의 시기: 인생을 위한 새로운 출발, 아름답고 훌륭한 삶으로 인생의 여유를 맛보다
연구 참여자들은 은퇴 후에 ‘지금’, ‘학교 밖에 존재하는’, ‘나’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는 남이 아닌 나의 요구에 귀 기울이고 통제 나 책임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자유인으로서 천천히 여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퇴직은 자신에게 보상이나 선물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듯 아름답고 훌륭한 삶으로 인생의 여유를 맛보고 있으나, 반면에 평생을 공부하고 일하며 바쁘게 산 경험으로 시간적 여유로움이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교원 은퇴자들은 대부분이 아름답고 여유로운 삶 중에서도 ‘일할 수 있는 나이에 노는 것은 개인적, 국가적 손실’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무엇인가 일을 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인생 2막을 위한 부단한 노력, 그리고 삶의 이모작을 위한 영원한 전진이었다.
“슬로우 템포로 좀 여유롭게 살자, 내가 쑥을 뜯고 싶으면 가서 쑥을 마음껏 뜯고. 나눠주고...... 너무 재밌고 행복해요. 퇴직 사건이라고 하면 나한텐 ‘보상’이라는 말이 생각이 나 요. 보상과 감사 다 주어진 선물 같은 거에요. 내가 그동안 남의 요구에 귀 기울여서 살았는데, 이제는 나의 요구에 귀 기 울이는.”(참여자 C)
“그전에는 애들을 때리지도 못 하게 하니까 내가 술을 먹 어갖고 얼굴이 시커맸어. (퇴직하고) 술을 끊었어. 그리고 처음에 자전거를 탔어. 너~무 좋은 거야. 그러니까 이제 자유인 이 된 거지. 자율적으로, 내 생활을 하는 거지. 퇴직 전 같으면 뭔가에 대한 통제를 받아야 하니까. 책임감도 있고.”(참여자 D)
“퇴직하고 나서 똑같은 자연인 이○○으로 돌아온 거지, 내 가 뭐 교감이었는데, 내가 선생인데 그런 거는 일절 없어요....... 그냥, ‘수고했다. 큰 무리 없이 무사히 정년할 수 있어서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그러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참 잘했다. 정말 수고했다. 내 삶에 있어서 그냥 내 인생에 한 단계를 무사히 잘 마쳤다는 홀가분함.”(참여자 E)
“저는 그때도 이야기했지만, 이런 거 봤을 때 내가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이라 그랬어. 하~나도 부러운 거 없어요. 스트레스라는 것도 없고.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게 인생이지, 의미를 쫓아 가는 게 아니에요. 지나 보니까 참 교사가 가장 위대한 직업이야. 난 참, 그런 걸 한번 이야기하고 싶어.”(참여자 B)
그리고 삶의 이모작을 위한 영원한 전진
“아무 데도 소속감이 없는, 말하자면 부초라고 그러죠. 물에 떠 있으면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부초처럼, 어디에도 소속된 데 없이. 뿌리박힌 데가 없이 약간 그게 공허하달까? 뭔가 내가 이루는 성취감이 있어야 되는데 요즘은 성취감을 맛보는 게 없다 이거야.....”(참여자 E)
“그리고 배움은, 요새도 공부해요. 경기 시청자미디어센터 가서 시간만 맞으면 공부해요. 그리고 또 이제 자격증 같은 거. 늦었어도 그냥 목적 없이 하고.”(참여자 B)
“지금 대학원을 다니고 있죠. 사회복지사 그거 한다고. 그로 인해 삶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아직은 단정을 못 하겠어. 하여튼 내년까지는 그거를 따면 그. 영역은 좀 넓어지겠지. 사실 내가 원했던 거는 그건 아니었어. 방향이 좀 수정된 건 데...... 지금 내가 사회복지를 하면 나중에 봉사하는 거지, 뭐.”(참여자 A)
“파출소에다 서류를 넣었어. 초등학교 거기서 오후 1시부터 세 시간 동안 하는 거니까. 그것도 두 사람이 짝을 지어 갖고 순찰하고 그러는 모양이더라고. 여기 어디 학교 배정해 주겠지. 세 시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할 만하지. 그런데 이제 원래 그게 3월달부터 하기로 되어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참여자 D)
Ⅳ. 논의 및 결론
1. 연구 결과 요약 및 논의
본 연구는 생애사 연구로서 교직에서 은퇴한 유·초· 중등의 남·여 교원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느끼는 은퇴의 의미와 적응과정을 탐색하여 개인적·사회적 필요가 무엇일지 알아보고자 연구를 계획하였다. 연구문 제에 따라 얻어진 결과는 아래와 같다.
첫째, 교원 은퇴자들은 미성숙한 어린 시절에 각각 그가 처해있는 환경과 상황에 따라 적응하며 성장한 경험이, 교직 수행과정에서 학생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자 하는 행위에 기여하거나 최소한 교사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위의 하한선을 잡는데도 영향을 주었다. 자연과 함께하며 성장하여 교원으로서의 생활을 해 온 교원은 퇴자의 삶은 김은주와 김정미의 연구[23]에 나타난바 와 같이 ‘명사들의 어린 시절은 자연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놀이를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펼쳐가는 과정에서 리더십과 책임감,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을 배워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한 것과 같다[23]. 이처럼 교원 은퇴자들의 어린 시절은 학급을 이끄는 리더로, 학생을 배려하는 교사로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한 기틀 마련의 장이었다.
둘째, 독립의 시기에 교원 은퇴자들은 사회·경제적으로 변화하는 교육 현장 속에서 전문직으로서의 교직 특성을 내면화하며 여물어갔다. 김영천 등(2003)은 교사로서 사는 것은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힘들고 혼란스러운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과 맥을 같이하면서[24], 개인의 삶의 맥락들은 개 인적·사회적 요소가 서로 상호작용하여 생성된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참가자들의 어려움의 극복은 초임 교사의 심리적 소진 양상을 규명한 연구[25]에서와같이 다양한 방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소진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홍우림(2015)의 연구와 같았다[25]. 또 한 초임 교사들은 자신의 부족한 지식이나 기술에 대해서 능동적으로 문제를 보완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하며 전문성을 갖춘 교사로 변모해 가고,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 속에서 교직의 문화와 특성을 내면화하는 과정을 경험한다고 한 김한별[26]의 연구가 뒷받침되었다.
셋째, 상호 의존의 시기에 교원 은퇴자들은 점차 소명감이 생기고, 충고와 사랑으로 학생을 잘 길러낸 것은 물론, 전문성 향상을 위한 꾸준한 노력으로 단순 직 업인을 넘어서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이는 교사가 지각한 교사-학생 관계 또한 학생이 지 각한 교사-학생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요인임이 밝혀졌다고 하며 교사 자신의 지각적 노력이 학생의 성취요인에 간접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와 같다[27]. 또 연구에서[28] 지식학습의 전 과정 이 교사 개인의 사적인 노력에 좌우되는 경향이 많았다 는 점은 연구 참여자들이 사랑과 열정으로 일구어낸 수확을 대변해 주고 있다.
넷째, 자아통합의 시기에 교원 은퇴자들은 새로운 변화가 없이 있는 그대로 자아 통합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이들은 삶의 마감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모든 것이 하나라는 공(空)의 생각을 하며 정년을 맞이한 것에 감사함을 표현하였다. 또 교사가 참 위대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는 교직이 갖는 긍정적 소명 의식이라고 한 김진한(2017)의 연구 결과와 같은 맥락이며[29], 이 들의 만족감이 말해주듯 교원이 미치는 행위의 영향이 다수의 대상에게 미친다는 점에서 교원 은퇴자들에게는 은퇴 전의 직업에 대한 보람이나 만족감이 다른 직종과 대비될 정도로 크다 할 수 있다.
다섯째, 은퇴의 시기에 교원 은퇴자들은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한편 여유로운 시간을 많이 힘들어하였다. 이것은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또 가르치기 위해 다시 배우는 삶을 오랜 기간 살아온 교직의 특성이다. 김 미정·채명신(2019)의 연구에서 노년기 평생교육이 자아존중감과 자아통합감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 연구에 의하면 고무적이다[30]. 또 꾸준한 학습은 은퇴 후 탐색과 숙고의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고 성취감을 느끼는 자기 주도적 학습에 집중한다는 연구 결과[31]도 있으며, 앞에서 언급한 제한된 영역인 ‘취업’이나 ‘봉사’ 등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도 의미를 두고 있었다. 노인의 자아 통합감 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평생교육활동 참여와 자원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삶의 만족도를 제고하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안화순·문재우 (2018)의 연구와 같다[32]. 또 교원 은퇴자들이 여유로운 시간에 대하여 불편한 정서를 호소하는 것은 베이비 부머 공무원들의 은퇴 불안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경제적, 신체적, 사회적, 심리적 불안의 정도[33]와 관련이 있었다.
2. 연구의 의의 및 제언
본 연구는 은퇴한 교원들의 삶에 대하여 연구하고, 시사점을 제공하였다는 면에서 의의가 있으며 심층 인터뷰를 통한 질적연구로서의 결과를 도출하였다. 그러나 질적연구로서의 연구는 교원은퇴자에게 일반적으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 유·초·중·고교의 은퇴교원 5명을 대상으로 하였으므로 적은 수의 연구 대상은 연구의 제한점으로 들 수 있다.
후속 연구를 위한 제언으로는 교원 은퇴자가 느끼는 불편감과 구직 동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은퇴의 시기에 은퇴 이후의 구체적인 삶의 계획력과 그 실천의 결과에 대한 연구가 집중되어서 은퇴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은퇴연구에 이바지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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