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ies in Philosophy East-West (동서철학연구)
- Issue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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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ges.9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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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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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5-1968(pIS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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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13-8828(eIS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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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s of Academic Category and Modern Learning in Nishi Amane and Choe Han-gi's Philosophy
니시 아마네와 최한기의 '학역(學域)'과 근대학문의 구상
Abstract
This study compares Nishi Amane and Choi Han-gi's designs of modern learning in 19th century. Nishi and Choi had a strong belief that human learning had advanced in history. Nishi had gained such an idea of academic progress through Comte's empirical philosophy and Western natural science, on the other hand Choi Han-gi came to the idea of such academic progress through studying Western natural science which was translated to Chinese. However, Nishi and Choi were very different in their acceptance of Western natural science into their academic systems and in designing new modern learning. Two goals of Nishi's modern learning were the division of academic disciplines, and the design of integrated academics by an interconnection of academic disciplines. Nishi divided all disciplines into three larger frameworks of Intellectual Science, Physical Science, and Common Science, and placed detailed subjects within them. In particular, Intellectual Science and Physical Science correspond to today's Humanities and Natural Science. Nishi could effectively achieve the classification of such learning by dividing ri(principle) of Confucianism to the laws of the human world and the laws of the physical world. Nishi tried to pursuit Philosophy by again linking these divided disciplines together. In Nishi's academic methodology, the influence of Comte's philosophy of revealing sociology through the study of the natural sciences was well represented. Choi Han-gi also paid attention to the establishment of integrated learning through the distinction of academic studies and reunion of such disciplines. Choi was not as elaborate as Nishi in terms of division of studies. Whereas Nishi divided the learning into Intellectual Science and Physical Science by the distinction of the law of the physical world and the law of human world, Choi Han-Gi thought that all subjects shared the so-called law of ki(vital force). Nishi thought that the reunification of all learning could be achieved by reconnecting the law of the physical world and the law of the human world. As a result, howerer, Nishi's academic chain, and his philosophy was not successful. After Nishi's thinking, Japanese academic society was dominated by Dualistic concepts such as natural sciences and humanities, subjectivity and objectivity, and Nature and humans. Choi's view of dividing all disciplines with the universal law of ki was more vague than Nishi's one. However, Choi's ki-science, although lacking concreteness, was able to escape the dual cognitive structure that East Asians had since Nishi. It is worth noting that Choe's philosophy leaves possibilities for new modern study.
본 연구는 19세기 한일 양국의 두 사상가 니시 아마네와 최한기의 '학역' 과 근대학문의 구상을 비교 검토한 것이다. 니시와 최한기는 역사상 학문이 진보해왔다는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상가는 서양의 자연과학을 자신들의 학문 체계 안에 수용하고, 새로운 근대학문을 구상하는데 있어서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였다. 니시의 근대학문 구상에 나타난 두 가지 특징은 학문 제영역의 구분과, 학문의 연쇄를 통한 통합학문의 구축이었다. 즉, 니시는 학문을 보통학, 심리상학, 물리상학이라는 큰 범주로 구분하고, 그 안에 세부적인 학문들을 배치시켰다. 특히 심리상학과 물리상학은 오늘날의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에 해당하는 것으로, 니시는 성리학의 리를 심리와 물리로 구분함으로써 그 같은 학문 영역의 분류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나아가 니시는 일단 그렇게 구분한 학문들을 다시 상호 연쇄시킴으로써 백교일치의 학으로서의 철학을 완성하고자 했다. 이 같은 니시의 학문 방법론은 자연과학의 연구를 통해 사회학(인간학)을 밝히려는 콩트 철학의 영향이 잘 드러난 것이다. 최한기도 학문 영역의 구분과 학문의 상호 연쇄를 통한 통합학문의 구축에 관심을 기울였다. 최한기는 학문 영역의 구분에 있어서 니시보다는 구체적이지 않았지만, 자신의 학문을 이른바 기학으로 총칭하고, 그 아래에 오늘날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에 해당하는 학문들을 배치시켰다. 그런데, 니시가 성리학적 리의 구분을 통해 학문을 물리상학과 심리상학이라는 큰 범주로 나누었다면, 최한기는 기학의 모든 학문들이 이른바 운화기의 보편적 법칙을 다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니시는 학역을 통해 분류한 근대학문의 제 영역을 다시 하나로 통합시킴으로써 백학의 통일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니시에 따르면, 그것은 결국 물리와 심리를 재차 연결시킴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는데, 이 같은 학문 방법론은 그가 리의 연결에 좌절하면서 사실상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니시 이후, 일본에는 물리와 심리, 주관과 객관, 자연과 인간이라는 이항대립적 사유구조가 정착했으며, 그것은 곧 니시를 통해 근대 서양학문의 인식적 난제들이 일본에 이식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든 학문들을 운화기라는 보편적 법칙과 관련짓는 최한기의 학문관은 니시보다 비약적이고 모호했다. 그 같은 경향은 기학의 보편성을 다소 직관적으로 주장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최한기의 기학은 비록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었지만, 학문의 근저에 기라는 통일적 관점을 유지시킴으로써, 이원적 인식의 난제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아울러 학문의 연쇄와 통합의 가능성을 남겼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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