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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mal Changes and Features of Japanese Private Documentaries Since the 1990s

1990년대 이후 일본 사적(私的) 다큐멘터리의 양식적 변화와 특징

  • 김도형 (선문대학교 역사문화콘텐츠학부 강사)
  • Received : 2020.08.31
  • Accepted : 2020.09.14
  • Published : 2020.09.28

Abstract

As movies entered the digital age, they quickly changed from group creation to individual creation. In particular, documentary films began to produce diverse and excellent works while dealing with extremely personal subjects and themes rather than heavy subjects. Especially in the 1990s, when the digital era began in earnest, Japan began to shift away from heavy political and social topics from documentaries to extremely personal subjects, and the subject matter became very diverse. In this paper, we would like to examine the concept, type, and characteristics of private documentaries that emerged as new forms of documentaries following the advent of the full-fledged digital era since the 90s, citing concrete examples of representative private documentary works since the 90s in Japan.

영화는 이른바 집단작업을 통해 제작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들어와서는 누구나 간편하게 촬영하고 손쉽게 편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혼자서 제작하는 1인 제작시스템이 활성화되면서 제작 주체의 단위가 집단에서 개인으로 변화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특히 디지털 시대가 본격화되는 90년대에 일본을 중심으로 다큐멘터리에서 무거운 정치적, 사회적 주제에서 벗어나 지극히 개인적인 소재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제작 주체와 양식의 변화, 그리고 주제도 매우 다양화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90년대 이후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의 도래에 따른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양식으로 대두된 사적 다큐멘터리의 개념과 유형, 표현양식의 특성에 대해 일본의 90년대 이후 대표적인 사적 다큐멘터리 작품을 구체적으로 예를 들며 살펴보고자 한다.

Keywords

I. 서론

걸어 다니면서 HD(High Definition) TV를 시청할 수 있고 50년 전 서울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으며 필름 없이도 수만 장의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시대이다. 또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으며 태아에게도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엑스레이, 콩보다 작은 크기의 카메라로 신체 내부를 자세히 볼 수 있는 의료 시스템도 있다. 이것들은 모든 것이 디지털 기술에 의한 것이다.

영화에서의 초고해상도 디지털 카메라에 의한 촬영 도입이 급증했던 것은 합성과 CG가 많이 이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필름시대에는 그와 같은 작업을 할 경우 복사에 복사를 거듭하게 되고 화질이 열화하기 때문에 합성을 해야 하는 경우는 디지털로 대체한 후 해야 했다. 이러한 디지털 영상기술이 발달하게 된 것은 사실 방송사의 절실한 필요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뉴스나 드라마, CF 등도 모두 필름으로 촬영했지만 이를 일반 시민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다시 전자신호로 변환해야 했다. 디지털 기술은 비디오 카메라에도 큰 변화를 주어 뛰어난 화질을 유지하면서도 소형화, 경량화, 저가화의 비디오 카메라의 탄생을 보다 가속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초반 이전 카메라의 촬영 부분인 카메라와 녹화 부분에 해당하는 레코더가 합쳐진 형태의 캠코더(Camcorder)라는 획기적인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다큐멘터리 현장에도 급격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게다가 1984년에는 8mm 비디오가 등장하자 급격하게 촬영 장비의 크기가 작아지고, 또, 시간적으로도 충분한 촬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듬해인 1985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충격을 줬던 한 손에 들고 촬영할 수 있는 소위 핸디캠이 등장했다. 이 핸디캠은 영화제작 주체와 대상이 일부 전문가 그룹에서 일반 시민 즉, 가정과 개인으로 확대되는 가장 큰 도약을 가능케 한 사건이었다.

이런 움직임은 다큐멘터리 제작 현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무거워 다루기 힘들었던 필름 카메라를 가볍고 저렴해진 소형 캠코더로 바꾸는 제작자가 줄을 이었다. 이에 따라 아마추어 개인 영화의 제작 붐이 일었던 시기도 소형 비디오 카메라가 일반 대중에게 보급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막대한 산업구조 시스템 속에서만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던 영화제작이 그런 구조적 관례에서 벗어나 개인에게로 옮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문자세대에서 영상세대로의 시대적 변화는 우리들의 인식과 관심을 반영한다. 이는 디지털 기술이 생산 양식과 같은 거시적인 측면과 아울러, 인간 개개인의 사고와 생활방식, 이들이 누리는 문화적 양상까지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1]. 그 결과, 개인의 손에 의해 직접 제작되는 영상 콘텐츠가 방대한 수에 이르러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다. 인간의 수만큼 많은 주제와 소재가 출현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게다가 저가 PC가 논리니어 편집기능을 기본적으로 갖추게 되면서 모든 디지털 전자제품이 영상이나 음악 등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시스템 규격화에 발맞춰 호환성 향상에 전념해 왔다. 이런 현상은 서로에게 더욱더 강한 자극을 주었고 영화제작에 있어 직접적인 저변 확대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본연구에서는 디지털 영상시대가 도래하면서 대두되었던 주관적 관점에서 출발한 작품들을 통해서 영상표현의 주체와 대상의 변화, 그리고 표현방식 혹은 제작 방식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연구대상과 범위로는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는 이론적 배경으로 사적 다큐멘터리의 개념과 사적 다큐멘터리의 유형과 양식적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두 번째로는 본격적으로 디지털 시대로 접어든 시기인 90년대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그리고 급속도로 사적 다큐멘터리 창작물이 각종 영화제에 등장하기 시작한 나라 중 하나가 일본이다. 이에 1990년대 이후 일본에서 제작되어 각종 영화제에서 주목받으며 개인적 다큐멘터리 제작에 불쏘시개 역할을 했던 대표적인 작품들을 구체적으로 예로 들어, 각 작품의 주제, 이야기 전개의 특성, 제작 주체의 시점이나 주변 환경 등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면서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의 경향과 양식 등에 대해 분석한다. 세 번째로는 다양한 모습으로 양산되는 개인적 영상 콘텐츠가 갖는 주관적 접근의 한계와 주제적 확대의 가능성에 대하여서도 살펴보고자 한다.

Ⅱ. 이론적 배경:사적(私的) 다큐멘터리에 관한 이해

1. 사적 다큐멘터리의 개념

본 논문에서 말하는 ‘사적’이란 단순히 영화의 본질적 문제에 해당하는 ‘일반에 개봉한다’라는 의미에서 오는 ‘공적’의 반대어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흔히 다큐멘터리하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콘셉트의 내용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적 다큐멘터리라는 것은 그것의 반대 개념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영화란 인간의 예술이자 시각적 표상의 예술이다. 시각적 지식을 뇌에 전달하는 인간의 눈에 의해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다. 영화든 그림이든 작품을 보는 것은, 예를 들어 일상의 시각이 ‘자연스럽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일상과는 다르다. 작품을 보는 것, 그것은 시각의 자연 위에 ‘보는 것의 두께’를 형성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작품이 완전히 새롭게 재검토되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즉, 이 ‘보는 것의 두께’가 다시 칠해지는 것이다. 사실 작품이란 한 장의 캔버스, 한 편의 필름이라는 물질적 존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보기의 두께’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2]. ‘볼 수 있다’라는 것은 영화적 표상이 스크린 또는 화면에 나타나 단순한 물리적 존재에서 심적 표상으로 보편화되는 것이다.

한편, 표준어 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사적’은 ‘개인에 관계되는 것. 공적인 일이 아닌 것’이라고 의미하고 있다. 반대어에 해당하는 ‘공적’은 ‘공적인 것. 공공에 관련된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두 말의 관계는 양식적인 관계에 있어서의 반대어이므로 본 논문에 있어서는 다른 각도에서 의미를 비교해 가고자 한다.

일본 문학의 독특한 장르 중 하나인 ‘사소설(私小說)’의 의미를 보면 사적 다큐멘터리의 ‘사적’이라는 것과 맥락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자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고 자신의 생활이나 경험을 허구를 배제하여 쓰고, 자신의 심경을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일본 근대문학 중 특유의 소설의 한 형태. 자기소설[3]’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러한 풀이는 바로 사적 다큐멘터리의 개념을 이해하기에 가장 가까운 해석이 아닌가 생각한다.

2. 사적 다큐멘터리의 주체 문제

단순히 사회적 문제나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서 벗어난 지극히 사적인 주제를 개인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제작된 작품들의 기원을 폭넓게 살펴본다면 영화의 초기 형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이고, 디지털 캠코더가 가정으로 보급되기 이전 필름 기반의 무비카메라로 결혼식이나 입학식, 졸업식이나 운동회를 가정에서 찍었던 개인 제작자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다만, 전통적인 영화개념에서 그 카테고리를 나누어 본다면 분명 하나의 장르로 그 맥락을 함께하는 표현양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 ‘사적’이라는 것으로 가장 간결하고 완벽한 매체가 바로 일기일 것이다. 일기는 나에 의한, 나를 위한, 나의 다큐멘터리이다. ‘영상으로 그려낸 나의 일기’처럼 하루의 사사로운, 혹은 기억에 남는 일상의 단편을 영상으로 남기는 것이 ‘사적 다큐멘터리’라 한다면 주체와 대상에 대해 이해하기는 좀 더 쉬울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원래부터 전통적으로 존재하고 있던 ‘다큐멘터리의 방법’이 새로운 전개를 보이기 시작했다.

사적 다큐멘터리라고 불리는 부문은 그 ‘사적’이라는 표현이 갖는 의미와 정신을 영화의 경제적, 문화적 입장과 관련시켰을 때 아직도 분명한 장르로서의 분류와 의미상의 진의가 혼란스러운 상태인 것은 분명하다. 사적이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를 내포한 말들이 다큐멘터리를 수식하는 형용사로 오래전부터 쓰여 왔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개인’, ‘셀프’, ‘인디펜던트’, ‘독립’, ‘자주’ 등의 말은 개별적으로는 그 의미가 엄연히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바로 ‘1인’ 혹은 ‘혼자’라는 의미의 뉘앙스가 강하게 담겨 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또 이러한 말이 들어맞는 작품이라도 그중 2개 이상의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거나 혹은 모든 것들이 전부 해당하는 작품도 있을 것이다.

또한, 개인창작 영상작품의 증가에 박차를 가한 것이 다양한 영상공모전일 것이다. 대규모의 국내외영화제에서도 전문 영화제작작가 아닌 일반인들이 제작 주체가 되고 지극히 사적인 주제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군들을 별도의 섹션으로 다룰 정도로 제작과 배급환경이 활발히 그리고 급속도로 대중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영화제가 아마추어 크리에이터 및 학생 제작자들의 응모를 기대했고 이에 반응한 것이 일반 시민과 학생이었다. 이는 당연히 일반 시민들에게 개인적, 혹은 개인에 의한 영화제작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큰 역할을 했다. 영화제 입상자 중에도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가 늘어난 것도 저예산과 적은 인원, 친근하고도 일상적인 테마에서도 제작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는 개인 레벨의 제작이 손쉬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적 다큐멘터리에서 사용되고 있는 이 ‘사적’이라는 말을 다큐멘터리의 일련의 제작 상황에서 보면 '자기 자신의, 자기 자신을 위한, 자기 자신에 의한'이라는 마치 미국의 모 대통령이 남긴 말처럼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적이라는 말을 단독으로 놓고 보면 영화라는 예술 장르에서는 상당히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도 분명하다. 전통적 양식의 영화라고 하는 것은, 영화 탄생 초기부터 불 꺼진 어두운 극장 공간 안에서 여러 명이 함께 감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즉, ‘개인’이 아닌 ‘공(公)’ 혹은 ‘공(共)’의 환경이다. 그렇다면 이 표현 자체가 하나의 장르로서 구분한다는 것은 모순이며 영화의 근본적인 정의에 반하는 것일까. 영화는 개봉되거나 혹은 대중에게 보여야 진정한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에는 누구라도 동의할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개봉 혹은 공개를 통해 야기되는 모든 일이나 공유한 정보 등이 갖는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공적인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그만큼 영화는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이 큰 것이다. 특히 다큐멘터리에서 검증되지 않은 개인적인 감상이나 상상, 혹은 지극히 주관적인 주장이나 추측 등은 자칫 사회적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미하는 사적이라는 말은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마무라 타이헤이의 저서 《기록영화론》에는 그것의 진정한 의미와 연결되기에 적절한 단서를 찾을 수 있는 언급을 발견할 수 있다. “문학에서의 ‘나’는 ‘나’라는 글자가 단순한 관념이기 때문에 모든 독자는 ‘나’가 될 수 있다. 즉 ‘1인칭’인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나’조차도 화면 속에 나타나면 마치 다른 사람이 된다. 즉 ‘삼인칭’인 것이다[4]” 다만 여기서는 기록영화에 대해 논하고 있을 뿐 사적 다큐멘터리에 대해서는 전혀 반대의 해석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기록영화는 사건, 사고, 사물 등을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찍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3. 사적 다큐멘터리의 양식적 특징

이러한 사적 다큐멘터리로 불리는 작품들의 공통된 양식적 특징에 대해 살펴보자. 가장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1인칭(the first person)’이라는 개념일 것이다. 말하는 사람 즉, 화자는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사적 다큐멘터리를 ‘셀프 다큐멘터리(self-documentary)’나 ‘다큐에세이’ 등과 함께 쓰이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그래서 사적 다큐멘터리, 셀프 다큐멘터리, 개인 다큐멘터리, 다큐에세이 등의 용어를 구분해서 쓸 정도로 그 경계선이 명확하다거나 작품들의 양식에서의 차이가 뚜렷하지 않아 관련 연구가 보다 체계적으로 폭넓고 깊게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혼용해서 써도 무방하리라 생각된다.

사적 다큐멘터리는 역사적 사건이나 정치, 사회적 문제에서부터 가족사나 개인 경험과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를 담아내면서 현대 다큐멘터리의 가장 두드러진 경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5].

한편, 다큐멘터리 전체를 ‘1인칭’이라며 모리 타츠야는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모든 영상은 주관의 산물이다. 카메라만 손에 들고 그냥 생각 없이 찍지 않는 이상-이 경우에도 정확히 말하면 주관이나 작위적임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피사체가 동물이든 사물이든 예외는 없다. 즉 지금까지는 현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던 내가 부당 체포의 사건을 계기로 주관적으로 찍는 것에 눈을 떴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때까지 주관적으로 찍고 있었을 텐데, 다만, 그 사실에 자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6].”

모리 타츠야는 1998년 자신이 제작한 다큐멘터리[A]라는 작품에 대해 회고하면서 언급했던 내용에 따르면 그 의미가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의 수많은 서브 장르에는 그렇지 않은 사례가 얼마든지 많이 있다. 교육영화, 문화영화, 선전영화 등도 이러한 개념으로 묶는 것은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1인칭’이라고 하는 것은 ‘주체’이면서 ‘화자’인 감독이 ‘나’, ‘저’, ‘내’ 등이 되어, 작품 속에서 진행의 주체로서 등장하므로 한층 더 주관적이면서 보는 사람과의 사이에 친밀감이 생긴다.

두 번째 특징으로 들 수 있는 것은 개인적(private, personal)인 경향이라는 점이다. 주제와 내용, 소재의 근간 등이 개인적 관계 속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 소재나 내용을 말해 가는 관점도 주관적이다. 또 여기에는 집단에서 떨어져 존재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즉 어떤 집단이나 단체, 혹은 국가가 갖는 미리 정해진 틀이나 고정관념 등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발상과 도전이 가능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 문제는 사적 다큐멘터리의 특징 중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특징을 규정짓는데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자전적(autobiographical)인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개인적(private; personal)’과 함께 같은 의미로 흔히 쓰이는 것 같지만, 이는 일기의 형태에 기본적인 형식을 두면서 전체적으로 일기영화적인 작품도 있지만, 일반 다큐멘터리 속에 부분적으로 자전적 형식을 도입하기도 한다.

네 번째는 자문적(ask oneself)이라는 입장을 들 수 있다. 자신에게 물어보면서 영화가 진행되는 형식적 특징을 말한다. 그리고 스스로 그 답을 찾기도 하고, 내 주위의 사람 또는 자신이 속한 사회 속에서 그 답을 찾기도 한다. 자성적인 특징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다섯 번째로는 자기 반영성(self-reflexivity)이다. 자신의 간접적, 직접적인 경험이나 체험 등을 바탕으로 주제나 이야기가 세워지고 그에 따라 영화가 진행된다. 그러나 자신의 경험이나 체험이 반드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자기 자신을 한 걸음 떨어져 관찰하거나 혹은 자기 주변 환경에 자신의 경험이나 체험을 대입함으로써 비로소 자기 정체성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자기반성적인 경향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열거한 특징들을 살펴보면 서로 겹치기도 하고 교차하거나 혼용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극영화적 요소와 공통분모를 이루기도 하고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 있어서는 상호보완적인 혼용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Ⅲ. 일본 사적(私的) 다큐멘터리의 양식적 변화와 특성

1. 일본 사적 다큐멘터리의 미학적 다양성

일본의 독립제작 영상작품의 보급과 유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성된 독립영상제작자 네트워크인 ‘비디오 액트 그룹’의 멤버 츠치야 유타카 감독의 <새로운 신(1999)>이라는 작품에서 우익 펑크 밴드의 보컬리스트 아마미야 카린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아내지 못하고 자살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구한 것은 바로 ‘우익사상’을 향한 열정이었다.

한편 츠치야 유타카 감독은 반제국주의 사상의 좌파 주의자이다. 그는 아마미야와 밴드의 멤버인 그녀의 동지 이토 히데토에게 반감을 느끼면서도 우익과 좌익이 공통적으로 사회에 대한 폐쇄적인 모습을 갖는 것에 대해 흥미를 느껴 비디오 카메라를 건네주며 아마미야 자신과 주변의 일상을 촬영하게 한다. 카메라는 이러한 특이한 삼각관계를 묶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시작하게 된다. 또한, 카메라를 들고 북한여행을 하던 도중 전 일본의 적군파 테러리스트를 만나기도 하고 우익 그룹의 회합에 참여하기도 하고, 또 소속되어 있던 단체를 탈퇴하기도 하며, 때로는 스스로 카메라를 향해 독백을 하기도 한다. 그러던 그녀는 마침내 자립의 길을 향해 걸어가려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작품 속에서 감독 자신은 카메라를 등장인물에게 맡기게 되면서 본인 스스로도 카메라의 대상이 되어 영화를 찍어 나가기 때문에 세 사람의 관계가 감독과 출연자의 주종관계가 아닌 모두 다 작품 속에 존재하는 주인공이자 화자로 설정되면서 자신들의 현실 세계가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이 영화는 1999년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비평가연맹 특별언급상을 수상하면서 2000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한 문제작으로 주목받았다.

디지털 비디오의 보급과 인터넷 SNS의 보편화로 인해 지금까지 국가 및 산업자본에 독점되었던 TV 뉴스나 정보 공유의 주체가 시민 그룹 쪽으로 넘어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일본의 이러한 비디오 액트 그룹의 많은 작품이, 전해야 할 메시지의 임팩트에만 신경을 쓰는 나머지 다소 구태의연한 교조주의적인 작품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즉, 작품을 보기도 전에 이미 하고 싶은 말을 다 알아버리는 주제 지상주의적인 작품들이 너무나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 왔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제작 양식 속에서 디지털 비디오의 카메라가 지극히 개인적인 사적 공간까지도 파고 들어감으로써 도저히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의 제작 방식으로는 담을 수 없는 부분까지도 고스란히 기록했다는 것이다. 특히 카메라 앞에서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진솔함이 단순한 기록에서 진심의 전달이라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하고, 북한여행에서 아마미야 카린이 찍은 사생활 영상들은 실제 작품 속에서 전술적으로 유용하게 활용된다. 그러한 감독의 숨은 전략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성공했다는 점은 사적 다큐멘터리가 갖는 커다란 강점이기도 하다.

감독이 아닌 출연자 아마미야 카린의 사적 비디오 영상들은 그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역할을 해버린 것이다. 구일본 제국주의의 늙은 군인은 아직도 혼자서 산속에서 고구마를 캐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과 우익활동가의 무의미한 모습을 훌륭하게 폭로한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아마미야 일행들이 정치 문제를 얘기할수록 디지털 비디오에 비춰지는 그들의 사적인 모습들은 그들의 삶의 존재에 대한 불안과 고독을 그려내고 만다. 거기에는 사적 다큐멘터리 속에 존재하는 디지털 비디오가 담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모습들을 읽어 내는 새로운 시점이 제시되어 있다[7].

재일교포 3세 마츠에 데츠아키가 만든 <안녕 김치(1999)>는 감독 스스로가 자신과 할아버지의 뿌리를 살피며 자신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셀프 다큐멘터리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데츠아키 바보'라는 할아버지의 유언이 늘 가슴에 못 자국처럼 남아 있던 데츠아키는 한국과 할아버지의 일생에 대하여 알아보기 시작한다. 친구들에게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밝히기도 하고, 정말 먹기 싫은 김치를 먹으려고 필사의 노력을 하기도 한다.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한국계 일본인인 가족들이 걸어온 역사와 현재를 손자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다큐멘터리다.

마츠에 데츠아키 감독은 1977년 도쿄에서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당시 일본영화 학교의 졸업작품으로 제작한 <안녕 김치>가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아시아천파만파특별상, NETPAC 특별상, 2000년도 문화청 우수영화상 등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얻었다.

나와 가족이라는 아주 사적인 주제를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하며 유머러스하고 재치 넘치는 입담을 섞어가며 1인칭 시점에서 찍는다. 하지만 자신과 할아버지를 둘러싼 배경에는 ‘재일’, ‘조국’ 등 다양한 키워드가 나타난다. 이윽고 감독은 할아버지를 통해 자신과 가족의 뿌리를 알게 된다. 자신 ⇔ 할아버지 ⇔ 재일(조국)이라는 접근방식 속에서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다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

작품 속 감독은 마치 요즘 잘나가는 유튜버처럼 에너지 넘치고 독설과 풍자를 끊임없이 쏟아내면서도 재일 교포 3세라는 인간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영화 밖에서도 그 열정 어린 모습 속에 꾸밈없고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로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간 내내 열심히 자신의 영화 선전을 위해 전단을 이리저리 뿌리며 다니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그런 마츠에 감독은 이 작품을 제작하기 전까지는 전혀 자신의 뿌리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살아왔고 그러한 감독은 친척들의 질책과 가르침을 받는 것이 너무 순수하고 재미있게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이런 점 또한 감독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로 작용하게 된다[7].

자기 자신과 가족, 친척 그리고 자신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역사에 무관심한 한 청년의 소소한 여행은 그의 유일한 친구인 비디오 카메라가 가감 없이 담담하게 기록해 나가고 있었다. 이 작품도 테마, 제작 방법, 제작 규모 등의 점에서 보면 ‘셀프’, ‘자주’. ‘독립’, ‘개인’ 등의 말로 수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감독 개인이 본 ‘재일교포의 정체성’ 문제도 매우 굵직하게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다. 자기 자신의 뿌리를 찾는 지극히 홈비디오이기도 한 이 작품은 처음 공개된 영화제 기간에도 연일 만석이었고, 매일 그의 주변으로 관객이 몰려들어 마치 인플루언서를 방불케 했다. 개인적 가족사에 대한 사적 다큐멘터리로서의 미학과 상업적인 성공 둘 다 거머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카토 하루요 감독의 <치즈와 구더기(2005)>는 감독이 암과 투병 중인 어머니의 일상과 그 죽음에 카메라를 들이댄 작품으로 홈비디오적인 사적 다큐멘터리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촬영 당시 전혀 영화제작에 경험이 없는 아마추어였던 가토 하루요 감독은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어머니의 병이 낫는다는 기적을 믿고 아주 특별한 촬영을 하는 것이 아닌, 일상적인 촬영을 조심스럽게 시작한다. 홈비디오처럼 가족들 사이에 존재하는 카메라는 시한부적인 삶에 목말라 하며 혼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어머니와 고령 할머니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상과 시골 마을의 조용한 풍경 들을 담담하고 차분하게 응시하며 그저 기록할 뿐이었다. 감독은 암과 싸우며 하루를 살아가는 어머니가 기적적으로 나아 완성된 영화를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용기를 주기 위해 찍는 거라고 말하며 카메라의 시선이 어머니에게 조금이나마 용기를 주고 병이 나아야 한다는 자신감과 책임감을 주는 도구로 활용했다. 그러나 비로소 곧 찾아오는 어머니의 죽음을, 카메라는 온화하게 그저 시선을 함께할 뿐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핵심적인 것은 정작 제대로 찍지도 못했다는 공허함을 자각하고 지난 추억을 더듬어 보시는 할머니와 감독 자신의 심정을 담담하게 기록해 나간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 다큐멘터리는 2005년도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오가와 신스케상과 국제 비평가연맹상을 수상해 2관왕을 했으며 프랑스 낭트 3대륙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등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영화적인 스펙타클한 투병을 통한 통절함이 드러나 있는 것도 아니고 감상에 빠지지도 않고, 다만 가족과의 시간을 조용히 카메라는 응시한다. 감독이나 출연자의 작위적인 모습들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뿐이다. 어머니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중환자인 것을 제외하면 흔한 지방 소도시 소시민의 삶의 단편이 홈비디오로 점철되어 있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그 흔한 세상 이야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삶과 죽음이 자그마한 비디오 카메라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러한 세계관을 완성시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감독의 우직하면서도 일관된 ‘보통의 시선’이며, 다큐멘터리 작가로서의 너무나도 맑고 악의 없는 눈길이다[8].

전술한 세 작품 모두 카메라의 존재는 눈앞에 보이도록 드러내면서 감독 자신이 화면 앞에 당당하게 카메라에 드러나 때로는 촬영감독으로 때로는 피사체로 때로는 관찰자로 공존하면서 다양한 양식적 틀 속에서 결합하여 있다. 이러한 사적 다큐멘터리는 지난 수십 년 사이에 눈에 띄게 다양하게 발표되기 시작했고 크고 작은 영화제에서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배경에는 디지털 캠코더의 등장으로 개인이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 쉽게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된 상황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더욱 강하게 나타날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러한 개인 영화는 실험영화의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진 ‘일기영화’ 등의 계보가 하나의 원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9].

이와 같은 경향에는 수많은 젊은 영화작가의 등장도 하나의 배경으로 빼놓아 서는 안될 것이다. 카메라를 든 사람은 누구든 먼저 자신에게 카메라를 향하게 할 것이다. 최근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이른바 ‘자기찾기’ 영화가 예전보다 두드러지면서 가정이나 개인의 틀을 뛰어넘어 영화제나 공중파, SNS 등 대중적인 채널을 통해 선보이는 일도 많아졌다. 스크린 세계가 영화작가의 표현으로서 실현되는 이상 거기에 약간의 자기가 투영되는 것은 필연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을 좀 더 과장하거나 확대하는 ‘자기찾기’ 영화는 영화 표현의 한 본질을 이루는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10].

2. 일본 사적 다큐멘터리의 주관적 접근

사적 다큐멘터리의 증가는 과학이 발달하고 글로벌 화된 세계가 낳은 21세기의 산물로서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경향이라고 간결하게 규정하기란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는 인간과 자연의 역사 속에서 함께 자라나 함께 호흡해 왔기 때문에 언제든 친밀한 상호관계 속에 놓여 있을 수 있는 반면, 자칫 언제라도 위험한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는 위대하며, 자신의 삶은 옳고, 자신의 시각은 정확하며, 자신의 지식은 풍부하며, 자신의 해석은 훌륭하다고 믿는다. 이렇게 스스로를 신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허위사실의 생산 혹은 진실의 왜곡은 그것이 한 번 세상 밖으로 드러나면 다시 되돌릴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 자체를 자기목적화 해버리면 난항에 갇혀 버릴 뿐이다[6].

다큐멘터리 <안녕 김치>는 자신의 루트를 찾는 로드 다큐멘터리의 성격도 지니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구제’, ‘자기 합리화’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한, 일본의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영화 평론가인 사토 마코토는 “마츠에 감독 자신이 재일교포 가족으로 자라지 않았다면, 전혀 보잘것없는 ‘자기 찾기’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즉, 이 다큐멘터리는 뉴웨이브 다큐멘터리를 가장하면서도 주제주의에 입각한 구시대의 영화를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7].”라며 깊이 있는 비평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츠치야 유타카 감독의 <새로운 신>은 지나친 폐쇄성으로 인해 공공성 상실에 의한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의 위험요소도 강하게 포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촬영 대상자와의 충분한 합의 없이 세상으로 노출되는 개인의 문제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리 타츠야의 [A]라는 작품은 반사회적 범죄집단에 가까운 신흥종교단체인 옴진리교의 현장에서 그들의 일상을 담은 작품인데, 문제는 반사회적 집단의 현장에서 그들과 함께 하는 상황에서 공범관계 혹은 범행방조에까지 이르게 되는 위험성에 대해서는 피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칫 사적 다큐멘터리의 자기 책임성에 대한 부분은 아직 구체적이고 심도 있게 논의되지 않고 있다. 아름다운 수식어가 있을수록 그 위험성에 대한 논의는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악순환적 환경이 계속되어 사적 다큐멘터리에서 정당한 사회적 여과 장치나 비판적 수용 없이 일방적 양산만 진행된다면 사회로부터 격리된 듯한 감정과 체념적자위성이 짙은 작품이 무분별하게 쏟아질 우려도 피할 수는 없다. 사적이라는 말을 적당히 받아들이면 사적이니까 상관없다는 안일하고 무책임한 결과물을 탄생시킬 위험성은 충분히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사회에 대해 본능적이고 적극적인 예술이다. 그것은 대중이나 특정인이 생산의 대상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소비의 주체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다큐멘터리라면 누군가가 볼 수 있다는 운명에 놓이게 되는 그 순간부터 그 작품에는 사회적 책임과 의무가 발생한다.

사적 다큐멘터리의 등장에 앞서 나타나 큰 반향을 일으킨 예술문화 조류가 포스트모더니즘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1960년대에 일어난 예술문화 운동으로서 예술에서는 탈 장르와 탈 양식 등 개성, 자율성, 다양성, 대중성을 중시하면서 절대이념을 부정했기 때문에 탈이념이라는 또 다른 이론까지 탄생시켰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철저한 양식에 의한 모범적이고 지성적인 작품을 지향했던 모더니즘과는 달리 이전과 전혀 다른 점은 그 일상생활의 전면적인 ‘문화화’ 또는 ‘예술화’이다. 이런 시각에 따르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비판적인 거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즉, 비판적 공간도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사적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일련의 디지털 시대 예술문화의 움직임을 가장 먼저 파악한 운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출신의 사상가이자 포스트모더니즘 비평가로 유명한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문학에 대한 비판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예술문화 전체를 다음과 같이 통쾌하게 지적한다. “현대문학의 현저한 단편화와 극사적화(極私的化)는 아마도 사회생활 전체의 심층에서의 또 다른 일반적인 경향의 전조인 것은 아닐까. 현대 예술과 모더니즘이 이러한 선을 따라 사회 발전과 현실적으로 연관된 것이 아닐까. 위대한 현대적 스타일이 등장한 후 수십 년 사이에 사회는 이런 방향으로 단편화되기 시작했고 각 집단이 그들 자신에게 고유의 기묘한 사적 언어를 말하게 되고, 각 전문가가 사적인 코드와 사적 언어를 발전시켜 마침내 개인이 타인에서 분리된 모종의 언어적 고도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 경우에도 사적 언어나 개인적인 언어 스타일의 냉소를 대신하는 어떠한 언어 규범의 가능성은 소멸되고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양식적 다양성과 이질성뿐이다[11].”

최근 한국에서도 SNS를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에서의 영상 콘텐츠를 둘러싸고 적지 않은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불거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개인제작에 의한 영상의 무분별한 공개와 공유에 의한 폐해이다. 디지털 시대가 실현하게 한 고성능 소형 비디오 카메라는 핸디캠뿐만 아니라 미러리스 카메라와 휴대전화, 혹은 휴대용 태블릿 등과 같은 모바일 기기에도 탑재되어 있다. 정보통신 분야가 발달하면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기존 미디어보다 빠르고 의미 있는 정보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확산된 것이다. 이를 통해 제작된 혹은 생산된 UCC(User Created Contents) 콘텐츠가 디지털 영상 콘텐츠 플랫폼이나 개인 블로그를 매개로 무분별하게 넘쳐나고 있고 이를 일반 이용자들은 아무런 여과 없이 공유하고 복제하고 재배포 하고 있다. 더욱이 이런 개인 사용자가 제작한 영상 콘텐츠는 저작권 침해와 부적절한 영상 범람,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 정보 조작, 유언비어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산재해 있는 실정이다.

복제 예술의 시대라고도 불리는 디지털 시대에는 이처럼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라고 하는 것의 존재 자체가 현저하게 그 의지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처럼 복제에 의한 정보양산과 독창성의 혼돈으로 인한 창조성 없는 소재주의에 치우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기록영화에 있어 사실과 허구의 문제에 깊게 관여하는 문제인데, 사실을 제시하려고 하면 할수록 소재주의에 치우치게 되고 작품에 형식적인 실험을 하려고 하면 작위적으로 되어 사실성이 희박해진다. 다만, 그것이 사적 다큐멘터리 고유의 특성이라고 주장해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소재지상주의 이상의 무엇인가를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에서부터 더욱 통렬한 연구와 비판이 필요해 보인다[12].

3. 일본 사적 다큐멘터리의 주제적 확대

요즘 확연히 드러나는 경향은 조용하면서도 분명하게 일반 극영화보다 ‘개인 다큐멘터리’라는 화두가 더 뜨겁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기류에는 많은 TV 방송프로그램들도 과감하게 선을 넘으며 ‘개인 예능 다큐’, ‘개인 관찰다큐’, ‘가족 관찰다큐’ 등 다양한 소시민 콘셉트로 접근하는 ‘개인 다큐’의 전성기인 듯하다. 물론 이러한 경향은 일본뿐만이 아닌 초고속 인터넷 환경과 디지털 환경이 보편화하면서 전 세계적인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2011년 3월 11일의 동일본 대지진을 기점으로 시민영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시민 저널리스트들의 사회고발이나 정치 이슈 등에까지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을 기반으로 ‘자기 자신을 피사체로 한 다큐멘터리 제작 프로젝트’를 전개하면서 펀딩을 통해서 제작비를 마련하기도 하고 완성된 작품의 개봉에도 인터넷을 통한 모금 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통해 2016년 전국 개봉까지 이루어낸 사적 다큐멘터리가 카나 토모코 감독이 2014년에 제작한 <안다(Hug)>이다. 동일본 대지진 직후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자신이 출산에 이르는 과정과 체험을 카메라에 담은 사적 다큐멘터리다.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 발생 직후에 원자력발전소에서 불과 4Km 떨어진 지점에서 피해지역을 취재하고 있던 감독은 그 순간에 자신이 임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불임 치료 끝에 어렵게 얻은 생명을 끝까지 지킬 결심을 한 그녀 앞에 놓인 현실은 첫 고령 출산과 방사능의 영향에 대한 불안과의 싸움이었다. 3·11 이후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한 의미를 기록하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계속 카메라를 향하게 하는 감독의 모습을 통해 강하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사랑을 그려낸다[13]. 본 작품은 개인의 임신과 출산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담아내면서 원전문제와 환경문제에까지 주제를 확대시켜 나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생산 주체나 대상을 떠나 다큐멘터리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더 많은 사람이 쉽게 다큐멘터리 장르의 작품과 친숙해지는 계기를 만들고 가까운 존재로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나 소재로도 충분히 수준 높은 다큐멘터리의 테마가 될 수 있고, 작품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접할 수 없었던 다양하고 참신하고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의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현실은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많은 다큐멘터리 작품들은 고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여전히 다큐멘터리 시장은 한정돼 있고 전용 상영관마저 재정적으로나 관객동원에 있어 열악한 환경 속에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몇몇 다큐멘터리가 멀티플렉스 관이 아닌 소극장이긴 하지만 일반 극장에서 개봉돼 적지 않은 관객을 동원한 실적은 어느 정도 원동력이 되고 있다. 배우 겸 영화감독 안라쿠 료가 제작한 <약자여 춤춰라(2016)>는 8분짜리의 짧은 지극히 개인의 일상과 일탈을 그린 영화로 2016년 나가오카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아 주목받기도 하였다. 이 영화가 일본의 각종 영화제를 통해 공개되자 단순한 개인 유튜브 콘텐츠를 영화로 둔갑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혹평과 자유로운 개인의 일상을 순수하고 있는 그대로 보여 준 훌륭한 작품이라는 의견이 강하게 충돌하는 현상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이는 영화계 전체에 대한 자극일 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더욱 다양한 층까지 그 물결이 전달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움직임은 다큐멘터리 전체와 다큐멘터리의 한 하부조류로 존재하는 사적 다큐멘터리에도 어떤 의미에서 내부적 충돌과 변혁을 촉구하고 있음은 확실하다. 사적 다큐멘터리로부터 뿜어지는 인간 냄새나는 예술이 딱딱하게 유지되어온 기득권층의 산물인 개념적 경계선을 조심스럽게 허물고, 진지하며, 한층 자유로운 관점에서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 모두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많은 사람에게 무엇인가 제시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가볍지 않은 존재적 가치가 있을 것이다. 젊은 다큐멘터리 작가들의 사적 다큐멘터리는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깔끔하게 다듬어진 웰메이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한 개인의 자유롭고 주관적인 눈에 비치는 사회 속 개인 자체의 위상을 관객에게 제시하여 신선하고 건전한 사회적 이미지를 창출해 내고 있다.

2019년 카나자와영화제에서 신인 감독으로 그랑프리를 수상한 <혈통(2019)>은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태어나 10살 때 일본으로 이주한 감독 츠노다 류이치 본인이 20세가 된 지금, 자신의 혈통과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다큐멘터리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단순한 개인의 ‘가족찾기’로 시작하여 또 하나의 민족인 조선족의 이면과 애달픈 모습을 ‘아버지와 나’라는 개인적인 이야기로 풀어낸 세계 최초의 다큐멘터리다[14]. 주제적으로 ‘개인’에서 거대한 민족문제에 이르는 주제적 확대를 심도 있게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사적 다큐멘터리의 신선한 자극은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극영화에 대해서도 상호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술하였듯이 영화는 초기부터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이미 경계선을 허물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다큐멘터리는 극영화의 방법론과 기법을, 극영화는 다큐멘터리의 방법론과 기법을 활용해 온 것은 사실이다.

진실과 허구 사이의 너무 간략화된 이분법은 다큐멘터리의 진실을 생각할 때 항상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핵심이다. 선택지는 진실과 허구 두 개의 전혀 다른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인 진실에의 접근을 위해서 픽션이라고 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허구가 아니라, 그리고 그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진실을 획득하기 위해 픽션의 구조에서 가능한 모든 표현 방법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며 또 이용해야 한다[15]. 다큐멘터리가 앞으로 더욱 다양하고 활발한 창작 에너지를 갖기 위해서는 먼저 영화가 인간 창작물이라는 총괄적인 반성과 인간예술로서의 영화가 갖는 원초적인 의미로의 회귀가 필요하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사적 다큐멘터리가 다양하게 성장해야 보다 긍정적인 기류를 형성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Ⅳ. 결론

영화가 본격적으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들어선 지 대략 40여 년이 지났다. 물론 영화가 기획, 제작 및 배급 등 전체적인 작업과정 자체가 완전히 디지털화된 것은 아직 역사가 짧다고 해도 지나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극장 공간의 해체와 1인 생산과 1인 소비 시대가 동시에 밀려 왔다. 이러한 커다란 패러다임의 변화는 영상 콘텐츠 자체의 존재가치마저도 혼돈에 빠뜨리고 말았다. 온라인 네트워크 기반의 소비태세는 영역과 틀을 모호하게 했고 경계와 벽을 허물게 했다. 따라서 우리는 영상 콘텐츠 제작의 표현양식(style)이나 제작의 주체와 대상, 표현기법적인 면에서도 새로운 시점에서 더 연구되어야 하고 방법 또한 보다 진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단순한 과학적 실험 장치에서 출발해 오락의 대상에서 기록을 위한 수단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의 예술로서 인간의 정신에 다가가기 시작한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것을 영화에서 느끼려는 기대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영화가 처한 지금의 상황은 사적 다큐멘터리라는 오래된 신조류라는 아이러니한 물결 앞에서 영화에서 개인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다시 한번 제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개개인의 노력과 개개인의 완벽한 조화를 통해 영화가 탄생한다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다. 사적 다큐멘터리의 과제는 바로 개인의 존재적 가치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성찰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이러한 사적 다큐멘터리를 본 연구에서 종합적으로 고찰해 보면, 사적 다큐멘터리의 내적인 측면 속에서 개인의 존재를 통해 사회를 이해하고, 반대로 다시 한번 자신과 주변을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면 그 순환은 매우 유의미한 긍정적 영향력을 가져오리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영상 콘텐츠 문화의 패러다임이 커다랗게 궤도를 비틀고 있는 지금, 어쩌면 사적 다큐멘터리에 대한 제연구는 그 어느 때 보다 시기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또, 방법론으로서의 경계면에서도 자유롭게 교차한다기보다는 혼재된 상태 그대로 인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은 앞에서 기술하였듯이 사적 다큐멘터리는 아직 안정된 장르적 합의가 부족한 상태이고 범위와 그 대상에 관한 규정 자체가 매우 유동적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폭넓은 연구의 필요성과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References

  1. 김건, 디지털 시대의 영화산업 영화, 필름에서 디지털 HD로, 삼성경제연구소, 2006.
  2. 宮川 淳, "人間の芸術としての映画学_映画を'見ること'とは何か," 映画芸術, 257号, p.33, 1969.
  3. 松村明編, 大辞林, 三省堂, 2006.
  4. 今村太平, 記録映画論, ゆまに書房, 1991.
  5. 차민철, 다큐멘터리,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6. 森達也, ドキュメンタリーは嘘をつく, 草思社,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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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https://intro.ne.jp/contents/2006/07/04_1610.html, 2020.08.28.
  9. 村山匡一郎, 映画は世界を記録する-ドキュメンタリー再考, 森話社, 2006.
  10. https://moak.jp/event/performing_arts/post_170.html, 2020.08.30.
  11. フレドリック・ジェイムスン, 合庭惇, 河野真太郎, 秦邦生訳, カルチュラル.ターン, 作品社, 2006.
  12. https://www.yidff.jp/docbox/26/box26-2.html, 2020.08.30.
  13. https://eiga.com/movie/83741/, 2020.09.11.
  14. https://indelible2020.com/story/, 2020.08.31.
  15. Linda Williams, "Mirrors without Memories : Truth, History, and the New Documentary," New Challenges for Documentary, Manchester University Press, p.72,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