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인간은 누구나 전체가 되고자 하며 그것은 무의식의 의식화를 통해서 실현해나갈 수 있다. 무의식의 중요성에 관하여 과학적인 입장에서 접근한 대표적인 심층심리학자는 프로이트와 융이다[1].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적 작업은 개인무의식에 감춰져 있던 욕망이 폭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내담자로 하여금 강력한 정동으로 이루어져 있는 콤플렉스를 자유연상에 의해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들여 궁극적으로 억압되어있는 성애적인 욕구들을 인식시키는 것이다[1]. 결국 그가 추구하는 치료란 방어기제 중 하나인 ‘억압’을 강조하면서 개개인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매김하고 있는 본능적인 충동들을 진정성 있게 마주하는 것이었다. 이와는 달리 융은 개인무의식은 억압된 성애적인 내용 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의식의 삶에서 살려내야 할 개인적인 것으로 보았다. 개인무의식을 의식의 영역에 통합하는 것은 자신이 억압했던 성애적 욕망과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집단적 정신을 구별하고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도록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다[2]. 더 나아가 융은 인간의 정신에는 집단무의식의 층이 형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집단 무의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인류의 보편적이며 근원적인 핵인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형은 인간의 정신을 사로잡는 원초적 세력으로서 누미노즘을 내포한 강력한 정감으로 구성되어 있다[3]. 원형 그 자체는 근원적이면서도 우리가 볼 수 없는 의식의 뿌리로서 항상 의식에 상(像, Image)으로 다가와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간과하며 지나치게 된다.
융은 무의식을 이해하기 위해 꿈과 환상을 탐구하던 중, 종교와 신화 그리고 민담의 중요성과 그 관련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는 문화적으로 배경이 다른 환자들의 꿈을 관찰하다가 인종, 문화적 배경과는 상관없이 거기에 신화적 요소가 존재함을 알아차리게 되었다[4]. 이러한 신화적 요소는 원시 심성, 망상, 분열증 환자에게서 모습을 드러냈고 또한 신화, 민담, 문예작품을 포함하여 여러 종교 현상에서도 나타났다[4]. 즉, 시대를 거슬러 다양한 영역에서 원형의 투사가 이뤄져 왔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융 심리학에서 원형의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민담, 신화, 원시인의 세계, 각종 종교 현상들을 비교하여 확충하는 것은 심리학적 작업으로서 무의식의 의식화를 이룰 수 있는 실제적인 것이다.
원형은 보통사람의 꿈에서 발견되는데 콤플렉스와 같이 다양한 형태의 상징적 이미지로 나타난다[5]. 상징은 기호와는 달리 의미를 잉태하는 미지의 무엇으로 꿈을 꾼 사람이 분석가와의 변증법적인 대화 과정을 통해 꿈에 나타난 상징에 대해서 어떤 연상을 하는지가 중요하며 다음으로 민담, 신화, 종교, 민속에 나타나는 동일한 상징들을 수집하고 비교하여 공통의 뜻을 발견해 내는 확충작업이 필요하다. 융은 개성화 과정을 자기실현의 과정으로 보았는데 이러한 자기실현은 꿈에 등장하는 다양한 원형상들에 대한 개인의 연상과 확충작업을 통해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개성화는 큰 틀에서 두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 첫 째로는 꿈을 꾼 사람의 정신 속에 있는 심리적인 요소들, 즉 개인적 무의식에 해당하는 다양한 콤플렉스들과 집단적 무의식의 층을 이루고 있는 원형상들을 깨달아 의식에 동화시켜 의식의 영역을 확장 시키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그 인식한 내용을 삶에서 의식적으로 살려내는 것이다[6]. 개성화는 고통을 수반한 자기실현의 과정으로서 그 시작은 꿈에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원형상들을 체험함으로써 시작된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인들은 꿈의 의미를 간과하고 있다. 특히, 무의식의 원형상이 꿈에 배치될 때 이는 자기실현이라는 측면에서 그 원형의 상징적 의미가 의식화될 수 있도록 반드시 연구되어야 한다.
무의식은 바다와 같아서 다양한 원형상들을 꿈에 배열한다. 꽃, 뱀, 원, 만다라, 나무, 돌 등의 원형적 상징이 갖는 의미연구는 기존의 심리학 분야에서 문헌연구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기도 인간의 생활에 가장 밀접한 동물이자 보통사람의 꿈에 자주 나타나는 개의 원형에 관한 상징적 의미연구는 인격의 성장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연구되어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저자는 인격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개의 원형이 담고 있는 상징적 의미연구가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저자는 교육분석을 받기 시작한 후 몇 주 뒤에 두 마리의 개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 하얀색 개는 생후 6개월 된 그레이트 피레니즈 종의 개였고 다른 한 마리는 독일산 세퍼트 종으로 생후 3개월 정도 된 강아지였다. 그 꿈은 강렬한 정감과 함께 저자에게 의문점을 던졌다. 꿈 분석을 시작한 이 시점에서 이 꿈은 저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일까? 더 나아가 이 꿈이 저자의 개성화 과정에 어떤 도움을 주는 것일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리하여 이 논문의 목적은 저자의 꿈에 나타난 개의 상징을 중심으로 각 문화에서 바라보는 개의 상징성과 융 심리학의 관점에서 원형으로서 조명하는 개의 상징성을 비교하여 저자의 꿈 분석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연구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Ⅱ. 개의 생물학적 배경
동물의 상징적 의미는 그 종의 역사와 생물학적인 속성에 근거하여 산출된다. 그러므로 역사와 생물학적인 입장에서 개의 특성을 조명해보는 것은 개에 관한 상징성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 중에 하나이다. 개는 인간의 동반자로서 오랜 기간 인간의 역사와 함께 존재해왔다.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동물로써 개는 구비문학이나 신화, 속담, 민화 등에서도 상징적인 존재로서 자주 등장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7]. 어느 시기부터 개가 사람의 곁에서 길들여지고 반려견이 되었는지에 관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으나 다만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은 수렵생활이 끝나고 인간의 생활에 농경 중심의 문화가 자리를 잡게 되면서 가장 먼저 가축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겠다[8].
개는 육식성 포유동물로 10000년 전부터 인간과 함께 존재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8]. 개의 유력한 조상으로서 늑대와 자칼을 들 수 있는데 자칼은 개와 비교하여 사회적인 속성이 떨어지기에 조상이 아닐 것으로 보이지만, 늑대의 경우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동물이고 전 세계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점에서 무리를 지어 사는 개의 조상으로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9].
다음으로 개의 속성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개는 사람에게 순응적이다. 다른 동물에 비하여 개는 가정적이고 사람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 훈련을 시킨다든지 혹은 교육할 때 쉽게 길들일 수가 있다. 융 분석가 바바라 한나는 개는 본능을 상징하는데 이러한 개의 특성으로 인해 피분석자가 어느 범위까지는 쉽게 의식의 영역으로 통합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10]. 그러나 같은 반려동물로서 고양이의 경우, 개의 특성과는 달리 독립적이고 고집이 세고 냉정하여 사람이 길들이는 부분에 있어서 개보다 어렵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주인에 대한 충직성이 오랜 기간 인간의 삶 속에서 동반자로서 자리매김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여진다. 두 번째로, 개는 예민한 감각 능력과 후각 기능을 지니고 있다. 특히 감각 기능은 영적 세계와 관련이 있는데 일본 사람들은 개가 귀신을 볼 수 있다고 믿었으며, 마야인들은 주인이 죽게 되면 저승의 길잡이로서 살아생전 길러왔던 개를 함께 묻었다[11]. 후각 기능으로 개는 사람보다 1000배나 많은 후각세포를 가지고 있어서 마약탐지 및 실종자를 찾는 데에 있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12]. 세 번째로 개는 높은 지력(智力)을 가지고 있다. 지력이란 사람의 명령에 대해서 개가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것이다[12]. 이러한 개의 지력은 사물을 빠르고 정확하게 분별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의 생활에 편리함을 제공해 준다.
역사와 생물학적인 입장에서 개의 속성에 관하여 조명해보았다. 오랜 기간 인간의 삶과 더불어 존재해왔던 개는 부정적인 특성보다는 대부분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긍정적인 이미지로서 인간의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물론, 고양이와 같이 독립적이지 못하여 사람에게 의존성이 강한 면도 있으나 주인에게 끝까지 충성하는 책임감과 예민한 감각 능력으로 인하여 영적인 세계의 안내자로서 죽음을 통한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인간의 내면과 외부세계에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Ⅲ. 민담, 신화, 종교, 민속에 나온 개의 상징
고대로부터 개는 사후세계 즉, 저승과 관련된 동물로서 동, 서양의 민담과 신화에 자주 나타난다는 점을 확인해볼 수 있다. 저승으로의 여정은 곧 죽음과 관련되며 ‘죽음과 재생’에 관한 부분은 민담과 신화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죽음은 생명의 보이지 않는 속성을 가리키는데 현세에서의 죽음에 뒤이어 영적인 재생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니시에이션 즉, 입문식에서는 새로운 존재의 탄생, 재생에 앞서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경험하게 된다. 죽음은 과거의 낡은 양식에서 새로운 양식으로의 변화이며 영과 혼의 재결합이자 땅과 육체의 결합을 의미한다[13]. 이렇듯 저승은 고통과 불안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거기로부터 인격의 성장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민담과 신화에서 개는 저승의 문지기로 나온다. 이집트 신화에서는 아누비스란 존재가 등장한다. 이집트 사람들은 개과 동물의 머리를 한 아누비스를 저승의 문지기이자 죽음의 땅의 신(神)이라고 여겼다[14]. 그리스인들은 그를 죽은 자를 피안의 세계로 옮겨다 주는 “영혼의 인도자”로서 헤르마누비스라고도 불렀다[15]. 놀라운 점은 훗날, 기독교 신앙을 가진 그리스인들이 그들이 존경하는 성인이었던 크리스토포로스를 개의 머리를 지닌 모습으로 묘사했다는 점이다[15]. 또한, 괴테의 소설에 등장하는 파우스트는 책에 찌들어 영혼이 메말라버린 철학자로 나오는데 처음에 메피스토펠레스는 그에게 검은 푸들의 모습으로 등장한다[16]. 이러한 메피스토펠레스의 모습은 파우스트가 잃어버린 집을 잃은 영혼이었던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는 나중에 영혼을 구원할 목적을 지닌 인격체로 나타나게 된다[16].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개는 인간을 지옥 같은 어둠의 세계로 하강시키는데 인간이 거기에서 고통을 견디어 내면 구원을 얻어 자신의 길을 발견하게 되지만 인내하지 못하면 자신의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차사 본풀이에 염라대왕이 자신과의 만남 이후 현실 세계로 돌아가는 길을 알려 달라는 강님에게 하얀색 강아지와 세덩이의 돌래떡을 내주면서 강아지에게 소량의 떡을 주고 달래가면서 그 뒤를 따라가면 그 길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17]. 무속 신화에서도 흰 강아지가 저승에서 이승으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고 한다[17].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안내자라는 측면에서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의 신화에서는 저승에서 이승으로 안내하는 하얀색 개가 대부분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개는 인간에게 충성하고 헌신하는 상징적 존재로서 알려져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개를 신(神)의 충실한 친구로 본다. 밤과 달을 주관하는 여신 헤카테는 지옥에 있는 개들을 데리고 망자(亡者)들을 찾기 위해 땅에 있는 묘지들을 배회했다[18]. 그리고 갓난아기 때 의신 아스클레피오스는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그때 자신을 지켜준 것은 개였다[18]. 우주 창조와 관련되어있는 일식과 월식 유래담에서 개는 충성의 역할을 나타내고 있다.
해도 달도 없어 어둡기만 한 까막나라를 밝게 하려고, 왕은 나라에서 가장 억센 불개를 보내어 인간 세상의 해와 달을 가져오게 했다. 명령을 받은 불개는 하늘로 달려가 해를 물었지만, 너무 뜨거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왕은 그냥 돌아온 개를 책망하면서, 달은 그렇게 뜨겁지 않을 것이니, 이번에는 달을 물어 오라고 했다. 막상 달을 보니, 이번에는 너무 차가워 실패하고 말았다. 까막나라 왕은 단념할 수 없어서 기회만 있으면 불개를 시켜 해와 달을 물어 오게 했는데, 지금도 불개는 해와 달을 물어 오기 위한 행동을 끊임없이 되풀이 한다는 것이다(한국문화상징사전편찬위원회, 1992, 23쪽).
한국의 민담 <개의 보은>을 보게 되면 술을 잘 마시는 영감이 있었는데 어느 날 술에 취해 집으로 오던 중 비틀거리다가 잔디 위에 쓰러져 잠이 들어버리게 된다[19]. 마침 그 순간 산불이 나게 되는데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주인을 위해 개는 가까운 개울가로 가서 자신의 꼬리에 물을 적시고 주인이 누워있는 자리에 뿌린다[20]. 다시 개울가로 가서 동일한 행동을 몇 백 번 되풀이 하여 겨우 주인을 구하고 자신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20]. 그림형제 민담전집 <늙은 개>에서도 개는 주인의 아기를 잡아가려는 늑대에 대항하여 노견 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충성을 다하여 주인의 아기를 지켜낸다[21]. 더 나아가 기독교에서는 개를 충성, 빈틈없는 경계, 부부간의 정절로 보며 양의 무리를 보호하고 지켜내는 존재로서 사제나 목사의 상징으로 비유되곤 한다[22].
개는 용기와 보호의 상징으로서 수호자로 여겨진다. 동양에서는 언어 문자에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기에 그림을 그릴 때 문자가 담고 있는 의미에 따라 자주 바꾸어 그리기도 했다[23]. 개를 소재로 한 도상을 보게 되면, 이런 요소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동양인들은 개의 일은 집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24]. 그리하여, 개가 그려진 그림을 보게 되면, 대부분 나무 아래에서 개가 활동하거나 앉아있다. 이것은 도둑이 들지 않게 잘 지켜낸다는 뜻으로, 즉 개의 그림을 그려 붙임으로서 자신의 재산을 잘 지켜낼 수 있다는 일종의 주술적인 믿음이었다[24]. 무속신앙에서도 개는 집을 지키거나 사냥하는 데에만 쓰이는 것이 아닌, 잡귀신과 병을 지니고 다니는 도깨비 등으로부터 재앙을 막아내고 집안의 행복을 지켜내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25]. 특히 하얀색 개는, 전염되는 질병, 요귀를 쳐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벽사(辟邪) 능력을 포함하여 가정에 행복이 넘치게 하고, 예방 차원에서 재난이나 나쁜 일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고 믿어왔다[25].
반면에, 개에 관한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 사용되던 그리스어 ‘퀴니크(cynic)’ 즉 ‘개와 같은’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이 말은 경멸과 모욕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는 말로서, 아첨꾼과 불손을 뜻하기도 한다[26]. 또한, 고대 근동의 바빌로니아 상징체계에서는 개에 대하여 사악하고 악마적 존재로 불리는 전갈과 뱀 등의 파충류들과 결부시키기도 한다[26]. 더 나아가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 개는 부정을 나타내며 오직 지키는 개로서만 허용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속담에서 미천한 출신의 사람들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개와 관련된 말을 사용한다. ‘개만도 못한 놈’, ‘개망나니’, ‘개뼉다귀’, ‘개잡놈’, ‘개판이다’ 등이 그 예들 가운데 대표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말들이다.
Ⅳ. 융 심리학에서 본 개의 상징
융은 신화나 종교 그리고 꿈에 나오는 개의 상징을 무의식의 원형상이 투사된 것으로 보았다. 원형상은 인간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고양시켜 실질적으로 인간의 인생을 인도하는 심리적인 에너지이다[27]. 융의 충실한 제자 폰 프란츠는 개는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원형적 이미지로서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된다고 보았다. 개는 본능 욕구를 나타내는데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 숨어있는 경향성, 즉 보완적인 본능 측면을 나타낸다[28]. 개를 본능적인 측면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자신의 코로 방향성을 잡으며 근시라서 아주 멀리는 볼 수 없지만 청각이 매우 발달하여 잘 들을 수 있고 후각 기능이 발달하여 사람보다 20배 이상으로 냄새를 잘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29]. 그래서 개는 기계화된 우리의 마음으로 인해 발달이 지체된 본능적인 섬광, 직관을 나타낸다. 융은 개성화 과정에서 본능적인 성질을 통합하게 되면 인간이 보다 현실적인 사람이 되며 자신의 삶에서 자기실현이 가능케 된다고 보았다. 폰 프란츠는 민담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악과의 대결을 수행할 때 악을 이겨낼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과 다양한 형식들이 불규칙적으로 나타나지만 그 중에 한 가지 공통된 점은 주인공이 동물에게 도움을 제공할 때 보상으로서 동물의 도움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30]. 이것은 인간이 얼마만큼 자신의 본능적인 측면을 잘 보살피는 가가 그가 정신적 위기에 처해있을 때 잘 헤쳐 나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융 심리학에서는 개를 영혼의 인도자, 즉 psycho pomp로 간주한다. 개는 상징적인 입장에서 볼 때, 유령이 거주하는 곳, 죽음의 땅, 피안의 영역, 꿈이 추구하는 영역, 흔히 무의식의 세계라고 명명하는 곳과 깊은 관련성이 있다. 이러한 관계성은 그들의 본능적인 본성으로부터 나오는데 예를 들어 세계의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개가 죽은 사람을 저승의 영역으로 인도한다고 믿고 있다. 이전 사람들은 그들이 죽게 되면 조상들의 땅, 사후세계를 올바로 찾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즉 개가 그곳으로 죽은 사람들을 옮겨다 주는 인도자로 사용되었던 것이다[31]. 몽고 문명에서는 아이를 임신한 상태로 여자가 죽게 되면 두 마리의 개를 무덤에 두어 각자의 영혼으로 하여금 저승으로 인도될 수 있도록 하였다[31]. 고대 페르시아 사회에서는 사람이 죽어갈 때 그 사람이 개를 데려와 빵과 고기를 먹였다[31]. 그 이유는 개가 자신을 저승으로 잘 인도해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또한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무덤에서 개를 희생시켰다[31]. 그래서 개는 지하세계와 묘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더 나아가 고대 이집트 사회에서 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자칼 머리 상을 한 아누비스는 죽은 사람을 사후세계로 인도하는 가장 유명한 존재였는데 이집트 사람들은 죽은 자로 하여금 영생불멸한 존재로 환생시키는 아누비스를 부활의 대행자로 불렀다[31]. 그는 사람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인도자였던 것이다. 융 심리학에서는 죽음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를 동일하게 본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종교와 신화에서 죽음의 땅으로 불리고 있는 곳은 무의식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꿈과 관련시켜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안내자로서의 개는 무의식의 안에 있는 신(神)이라고 볼 수 있다.
융은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날 꾸었던 꿈을 예로 들면서 죽음과 개의 관련성에 대해서 언급한다.
나는 한 울창한 어두운 숲속에 있었다. 환상적인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거창한 원시림 같은 나무 사이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웅장한 태고의 세계와 같은 정경이었다. 나는 갑자기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를 들었다. 너무나 놀라서 무릎의 힘이 빠졌다. 그러자 숲속에서 우지끈 소리가 나더니 한 엄청나게 큰 늑대가 무시무시한 아가리를 열고 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혈관의 모든 피가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늑대는 내 옆을 지나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 이제 저 “거친 사냥꾼(보탄신)”이 한 인간을 잡아먹도록 명령했다는 것을 – 너무도 무서워 잠에서 깨어났는데 다음 날 아침 나는 어머니의 부음을 접했다(아니엘라 야훼, 2012, 392쪽).
융은 이 꿈이 마귀가 어머니를 낚아채 가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뒤늦게 그 늑대가 알레만족의 조상신, 보탄(Wotan)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32]. 즉, 보탄신(神)이 자신의 어머니를 그들의 열조에 합류시킨 것이었다. 폰 프란츠는 설화나 꿈에 죽음과 관련된 내용이 등장할 때 섬뜩한 인간의 모습을 취한 “타자”로서 나타나기보다, 개나 늑대의 모습이 훨씬 자주 나타난다고 하였다[33]. 게르만의 헬, 저승의 입구를 지키는 그리스의 케르베로스 등이 늑대의 모습을 한 괴물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스위스와 독일의 민속신앙에는 현재까지도 많은 설화가 보존되어오고 있는데 이 설화들에 등장하는 검은색 개는 어떤 인간에게는 죽음을 예고한다[33].
또한, 개는 자기(Self)의 표상으로 간주된다. 자기(Self)란 의식과 무의식 전체를 통틀은 인간의 전체정신을 나타낸다. 자기는 전체인격의 통일성을 지향하는데, 즉 하나 된 인격을 추구한다[34]. 전체인격이란 인간이 자신의 무의식을 의식화해나갈 때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무의식은 바다와 같이 끝없이 넓고 깊어서 남김없이 모두 의식의 영역으로 들여올 수는 없다.
자기는 다양한 원형상으로 등장한다. 노현자, 그리스도, 붓다, 나무, 돌, 꽃, 뱀, 개 등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 자기의 표상이라고 볼 수 있겠다. 프레이저 보아는 내담자의 꿈을 통해 개가 자기의 표상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내담자는 분석시간에 전날 꾼 꿈을 가지고 왔는데 붉은색의 털과 황금색의 눈을 지닌 강아지가 자신을 보고 웃고 있는 꿈이었다[35]. 꿈에서 그녀는 그 개가 그리스도란 것을 직감했으며 그 사실을 어떻게 그리고 어디로부터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느껴졌다고 한다. 금은 불멸성을 상징하며 고대로부터 부식되지 않는 최고의 금속으로 여겨졌다[35]. 상징적으로 황금빛 개는 꿈을 꾼 자아에게 드러낸 자기(Self)의 표상이었던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꿈에 개가 나왔다고 하면 무심코 그것의 의미를 간과해 버리는 습성이 있다. 아마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개꿈은 의미 없다’라는 생각이 자리 잡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개의 상징은 하나 이상의 뜻을 담고 있는 강력하고도 정동적인 심상으로서 주의 깊은 관조의 자세(Homo Religio)로 그 의미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피분석자의 의식적인 상황을 분석가와 함께 살펴보아야 할 것이며 다음으로 확충작업을 통해 다양한 문화 속에 나타난 여러 가지 뜻 중에서 공통적인 의미를 발견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심리적인 작업을 통해 개개인의 삶의 영역은 풍성해질 것이며 온전한 인격 성장을 이루는 데에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Ⅴ. 꿈에 나온 개의 상징적 의미
융은 꿈을 하나의 스승처럼 여겼다. 그는 일평생 많은 사람들의 꿈을 분석하였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꿈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였다. 융은 꿈은 감추지 않고 무언가를 가르쳐 준다고 하였다[36]. 그것은 프로이트가 주장하는 과거의 상처나 억압되어있는 성적 욕구가 아닌 우리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고자 하는 목적의 미를 지닌 무의식의 메시지인 것이다[37]. 그러므로 꿈이 지닌 깊은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목적론적인 입장에서 꿈의 내용을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저자는 2013년 5월 26일에 두 마리의 개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
두 마리의 개가 보인다. 하얀색 개와 검은색 개로 보이는데, 하얀색 개는 생후 6개월 정도 되어 보이는 그레이트 피레니즈 종의 개이고 다른 한 마리는 생후 3개월 정도로 보이는 독일산 세퍼트이다. 누군가가 나타나서 나에게 개를 주는데 하얀색 개를 준다. 근데 이 개는 전에 내가 알고 있던 개가 아니었다. 나는 이 개를 만진다.
융 심리학에서는 꿈을 해석할 때 피분석자의 의식 상황을 함께 고려하여 꿈의 의미를 살펴본다[38]. 이 시절 저자의 현실적인 상황은 꿈 분석을 시작한 단계였고 상담심리대학원 3학기를 거의 마무리할 시기였다. 상담심리 전문가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인간과 신에 대해서 좀 더 깊이 배우고 체험한 다음, 진로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던 시기였다. 또한, 훗날 심리상담사 혹은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된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자신의 내면세계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강하게 자리 잡혀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왜 무의식은 이 꿈을 저자에게 보낸 것일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이 꿈에서 저자가 관심 있게 보았던 부분은 왜 두 마리의 개가 꿈에 등장했는가? 이다. 그것도 하얀색 개와 검은색 개로 말이다. 이러한 의문점에 기초하여 우선, 하얀색과 검은색의 상징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 다음으로 둘(2)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한 후, 저자의 의식 상황 속에서 꿈에 나오는 개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인지 논하고자 한다.
1. 하얀색의 상징
우리나라 신화에서 하얀색은 상서로운 징조를 표상하는 색으로서 출산과 서기(瑞氣)를 상징한다[39]. 고구려의 주몽 신화에 “햇빛이 유화부인을 따라오면서 비추자, 그로부터 태기가 있어 알 하나를 낳았는데, 여기서 나온 아이가 주몽이다[39].” 여기서 햇빛은 하얀색을 표상한다. 또, 하나님의 아들인 해모수는 오룡거를 타고 처음으로 하늘에서 내려올 때 그 지휘 아래 있던 장군들은 하얀색 고니와 함께 내려왔다는 설화도 있다[39]. 우리나라에서는 신화 외에도 흰색과 관련된 말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백의민족(白依民族)이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하얀색 옷을 즐겨 입었기 때문에 유래된 말이지만 이미 부여 때부터 하얀색을 숭배하던 선조들의 원시적 신앙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하얀색은 입문(入門) 의식과 관련성이 있다. 여기서 하얀색은 죽음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아닌 수많은 고통을 겪고 그것을 이겨냄으로써 다시 태어나는, 즉 부활하는 의미에서의 색깔을 나타낸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하얀색을 생명과 부활의 색으로서 간주했고 검은색은 죽음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태양신 라(Ra)와 관련이 있는 신들, 부활을 관장하는 신들은 흰색의 옷을 입었으며 재생을 염원하면서 만든 미라에도 하얀색 붕대가 둘러 있었다[40]. 일본의 신도에서는 하얀색은 죄를 씻어내는 색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흰색의 나무로 지은 신전이나, 무도(武道)에서 도복이 하얀색인 이유는 사람들이 명상을 할 때 심리적으로 정화가 되기 때문이다[40]. 크리스트교에서는 세례를 받은 후 빛나는 흰색 옷을 입었는데 이것은 과거의 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며 나아가 영혼이 정화되었음을 의미한다. 동양의 유교와 도교에서는 기를 우주 만물의 근원으로 본다[41]. 음과 양으로부터 시작된 기의 응집은 생명을 낳고 죽음을 통해 응집되어 있던 기가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패턴으로서 여기에서 순환하는 기의 양태는 삶과 죽음을 따로 떼어놓는 것이 아니며, 죽음을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닌 새롭게 출발하는 시작점으로 보는 것이다[42]. 동양의 장례식 문화에서도 사람들이 흰색의 상복을 입는데 이것은 죽음을 생의 끝이 아닌 하나의 시작점으로 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얀색은 깨끗함, 즉 청렴과 순수성을 상징한다. 단군이 나라를 건국할 때 국호를 ‘조선’이라고 한 이유는 (밝)사상에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인데, (밝)사상은 태양을 숭배하는 사상으로서 흰색, 깨끗함, 밝음을 의미한다[43]. 또한, 우리나라의 예술문화 영역을 살펴보게 되면 백자나 그림에서 여백의 미를 발견할 수 있다. 여백은 순수함과 깨끗함을 상징한다[44]. 더 나아가 한국의 전통적인 춤사위에서 사람들이 하얀색 옷을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하얀색 옷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믿기 때문이다[44]. 하얀색은, 곧 깨끗함과 순수함을 상징하며 물질 이상의 어떤 것으로 여겨진다. 독일에서는 하얀 조끼를 입은 사람이란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이력이 깨끗한 사람을 나타내는 말이다[45]. 불교에서는 청정한 마음을 백심(白心)이라 부르고, 선한 카르마를 쌓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백업(白業)이라 부른다. 붓다가 마야 부인에게 임신될 때 하얀색 코끼리를 타고 하강하였는데 여기서 하얀색은 붓다가 이승의 영역에 청정 세상을 건설하고자 한 의지의 표상을 나타낸다[46].
2. 검은색의 상징
검은색은 밤, 공포, 불행, 죽음을 상징하는 색으로서 빛과 대조된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셔서, 빛을 낮이라고 하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하셨다[47].” 빛은 사람에게 편안함과 위안 그리고 아름다움을 선사하지만 어둠은 그 반대이다. 또한, 지옥을 묘사할 때 검은색으로, 천국은 하얀색으로 표현된다. 음양학에서는 세상일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보는데 삶과 죽음, 낮과 밤, 선함과 악함, 높고 낮음, 하늘과 땅 등으로 나누어진다[48]. 음은 밤과 악에 포함되는 영역으로서 검정으로, 양은 흰색으로 비유된다. 그러므로 흑백 논리라는 것도 흑을 악으로 보고 백을 선으로 구분하는 데에서 나온 원리이다.
융은 개성화 과정을 연금술의 과정과 동일하게 보았다. 연금술은 하나의 화학적인 변화과정인데 융은 이것을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정신적인 과정의 투사로 본 것이다. 연금술 작업에는 세 단계가 있다. 니그레도(nigredo), 알베도(albedo) 그리고 루베도(rubedo)이다. 이것은 암흑화, 순백화 그리고 적화 단계로 묘사된다[49]. 이 중에서도 융은 죽음의 단계, 즉 니그레도의 단계를 강조했다. 니그레도는 죽음과 부패를 나타낸다[49]. 문자 그대로 ‘살해’를 의미하며 따라서 죽음을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연금술에서 죽음은 부정적인 작업에 속한다. 그 이유는 암흑, 패배, 고뇌, 부패의 이미지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의 이미지는 종종 매우 긍정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성장, 부활, 재탄생을 유도한다[50].” 검음은 원질료(제1의 물질) 혹은 혼돈의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원소들이 분해 혹은 용해됨으로써 생겨나게 된다[51]. 그 이후에 남성적인 요소와 여성적인 요소의 합일, 즉 대극의 합일이 이루어지게 된다[51]. 이는 융합이나 결혼이라는 비유로 나타난다. 그 뒤에 합일된 산물이 점차 죽게 되며 이것을 니그레도 단계에서 씻겨내는데 물질은 흰색으로 변화된다. 즉, 백화(白化), 흰색의 돌(lapis albus) 등에 도달하게 된다[51]. 또한, 검음은 심리학적인 입장에서 볼 때 그림자와 연관이 있다. 그림자라는 용어는 융 심리학의 개념으로서 인간의 어두운 측면을 말한다. 인격의 일부이지만 이상적인 자아로 살기 위해 무의식적 혹은 의식적으로 억압해 온 영역을 말한다[52]. 원형적인 차원에서 볼 때 악의 인식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 이유는 흰 것은 검음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대극의 법칙에서 볼 때, 한 측면에만 힘을 쏟는 것은 반대쪽 측면의 요소들이 무리 짓게 만든다[53]. 그러므로 융은 어둠 속에서 빛이 탄생하듯, 성숙한 인격은 무의식의 의식화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검은색은 우울, 절망, 부정, 망각 등을 상징하기도 한다. “석탄, 납, 타르 그리고 역청과 같은 물질은 모두 검정이다. 그것은 대지에 속박된 신인 목성의 색으로 한계와 우울의 색이다. 불행하거나 우울한 날을 가리켜 검정의 날(black day)이라고 말한다[54].” 고대 그리스에서는 검은 담즙을 우울과 낙담 등과도 관련시켰다[55]. 또한, 일상 용어에서도 검은색과 관련된 부정적인 뜻이 많이 쓰인다. 전망이 어두울 때, 날이 불길할 때 혹은 주의할 인물들을 가려낼 때 만드는 블랙리스트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3. 둘(2)의 상징
둘이라는 숫자는 이원성, 대립, 조화, 의심, 분열 그리고 악을 상징한다[56]. 특히, 신화에서 선한 신과 악한 신의 대립이라는 관념에서 볼 때 ‘둘’의 관념은 명확해진다. 예를 들어, 창세 신화에서 세상을 만드는 신과 이를 몰락시키는 신, 선한 신과 악한 신 등은 한결같이 둘의 대립으로 나타난다[56]. 하지만 둘은 하나에서 비롯되며, 하나는 서로 반대되는 두 매개체의 화합으로부터 생겨난다. 이는 남신, 여신이 각각 객체적 존재였다가 서로 합쳐지면서 새로운 하나 혹은 둘로 탄생됨을 의미한다. 연금술에서도 숫자 2는 서로 다른 물질의 대립을 나타낸다. 태양과 달, 왕과 왕비 등이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겠다[57]. 하지만 연금술에서는 처음에는 두 물질이 대립하지만 결국 융합되는 대극의 합일로서의 하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다르다고 볼 수 있겠다. 중국문화에서 둘은 음(陰)의 수로서, 조화와 대립을 의미한다. 음과 양은 대립 관계로서 긴장 속에 있으나,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 서로 의존하는 관계를 유지한다[58]. 따라서, 본래의 둘은 하나임과 동시에 다른 하나를 받아들여 균형 있는 조화를 유지하는 특성을 지닌다. 서양 문화에서 둘은 이원성, 대립, 분열을 상징한다. 완전성과 통일성을 상징하는 수인 ‘하나’로부터 벗어난 첫 번째 수로서 둘은 이원성(二元性)을 상징하는데, 즉 둘은 대립하는 한 쌍을 만듦과 동시에 그로부터 분열을 발생시킨다[59].
또한, 둘은 의심을 상징하기도 한다. 라틴어 dubious는 의심과 관련된 둘(dual)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60]. 수비학의 입장에서 볼 때, 대극적인 한 쌍은 분열되기 쉬우며, 그것이 안정과 조화를 이루려면 셋이라는 숫자의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본다[61]. 왜냐하면 둘은 명확한 목적의식과 정신적인 강도가 약해 불분명해지기 쉽고 전복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둘(2)은 죄와 악을 상징한다. 서양 문화에서 오랫동안 둘은 악(惡)의 표상으로 간주되어 왔다. 하나는 원초적인 신(神)을 뜻하지만 이에 대립하는 둘은 신의 대항마로서 사탄을 상징한다[61].
심리학적으로 둘은 의식의 발달과 관련이 있다. 불분명함을 뜻하는 둘의 측면인 무의식적인 세계를 의식의 영역으로 가져오기 위해 먼저 그것을 구분해야 하며 잘라서 떼어놓는 것이 필요하다. 융은 무의식에 있는 요소들을 의식의 영역에 포함시킬 때 거기엔 대극의 긴장이 따른다고 하였다[62]. 그러나 그러한 과정을 견뎌낼 때 비로소 방향성을 나타내는 숫자 삼(3)이 무의식의 원형에 배열된다[63]. 대립의 통합으로서 취해진 숫자 삼은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어린아이로 나타나는데 이는 대립과 긴장의 연속적인 갈등 속에서 결실을 맺은 창조적인 결과를 의미하며 결국 의식의 탄생으로 연결 된다[63]. 즉, 의식성은 대립의 갈등 속에서 탄생한 제3의 것을 의미한다.
4. 개에 관한 종합적인 상징
저자의 꿈에 나온 개의 상징적인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개와 관련하여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해보았다. 그 결과, 저자에게 던져진 꿈의 상징적인 의미를 세 가지로 추려볼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로, ‘죽음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는 의미’로서의 개의 상징성이다. 개성화 과정은 상징적인 죽음을 통해서 시작된다. 여기서 죽음이란 낡은 자아의 죽음을 의미하는데 융은 자기(Self)가 보내는 소리를 듣고 그것을 의식적으로 살아내기 위해 과거의 낡은 자아의 태도는 죽어야 한다고 보았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개는 저승의 세계로 안내하는 영혼의 인도자(psycho pomp)이다. 심리학적으로 저승은 무의식의 세계를 뜻한다. 흔히 무의식은 ‘바다’로 비유되곤 하는데 바다는 인간에게 있어서 끝이 없는 세계,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고 있는 신비의 영역이다[64]. 이러한 무의식 세계의 보물들을 인간의 의식 세계로 들여오기 위해 과거에 지니고 있었던 세계관, 고정관념, 아집 등으로 구성된 자아는 죽고 자기(Self)를 통해 새롭게 거듭한 자아가 탄생해야 한다. 무의식이 저자에게 이러한 꿈의 메시지를 보낸 것은 아마도 이제부터 시작되는 개성화 과정에 입문하기 위해 겸손한 마음으로 허리를 숙여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두 번째로, ‘본능적인 측면과의 연결’로서의 개의 상징이다. 본능적인 측면은 사고하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이성의 측면과는 달리 전체를 바라보는 직관, 감정 그리고 몸과 관련이 있다[65]. 융은 무의식은 보상기능으로서 작용한다고 하였는데 그동안 저자의 생활에서 이성의 영역만 발달시키기 위해 치중하였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과제는 열등 영역에 머물러 있던 감정, 직관, 신체 등의 측면과의 원활한 관계맺음이 균형 있게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이러한 과정이 곧 통합적인 인격으로 연결되기에 무의식이 꿈에 개의 원형적 상징을 배열한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살펴본다.
세 번째로, ‘제3의 것’, 즉 대극의 합일을 통한 방향성으로서의 개의 상징성이다. 저자의 꿈에 왜 한 마리가 아닌 그것도 대극을 상징하는 하얀색과 검은색 개가 동시에 나타났는가 이다. 둘(2)은 불분명함, 악, 의심, 분열 등과 관련이 있다. 무의식의 세계는 대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자기실현 과정에 있어서 저자의 자아가 흔들릴 위험이 있음을 무의식이 경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흔들리지 않고 정확하게 분별하여 올바른 방향성을 잡는 것이 개성화 과정 속에서 필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또한, 둘은 음의 수로서 ‘수용’의 의미와도 관련이 있다. 동양문화에서 음은 땅, 물, 부드러움, 여성성 등으로 비유되곤 하는데 제3의 것은 서로 다른 극의 수용을 통해 탄생될 수 있다. 이것은 그림자 측면의 의식화와도 관련이 있다. 그림자는 자아의 열등한 측면으로서 투사를 통해 그것의 정체를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이 보기 싫어하는 무의식적인 측면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억압하거나 간과하는 습성이 있다. 하지만 투사를 거둬들임으로써 인간은 성숙한 인격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하기에 무의식은 저자에게 그동안 의식 생활에서 살려내지 못한 그림자 측면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부영은 “꿈의 해석은 하나의 체험이다. 꿈은 지적으로 해석되는 것도 아니고 지성과 감정을 포함한 정신의 모든 가능성을 동원해서 이해되고 깨우쳐질 대상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해석’이니 ‘분석’이니 하는 말은 사실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66].”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분석하고 해석하기보다는 그것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질문하고 답을 구하고 깨닫는 매개체로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식의 태도를 지니고 꿈의 내용들을 의식화해 나갈 때 성숙한 인격으로 거듭날 것이다.
Ⅵ. 결론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꿈의 내용은 상징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한 개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그것의 풍부한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 주의 깊은 관조의 자세(homo religio)1가 요청된다[67].
이 논문에서 저자는 신중한 태도로 꿈에 나온 개의 상징적 의미를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개의 원형이 담고 있는 상징적 의미를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은 인격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전체가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의 원형적 상징에 대한 의미연구는 다른 원형들에 비해 선행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저자는 각각의 문화에서 바라보는 개의 상징성과 융 심리학의 관점에서 원형으로서 조명하는 개의 상징성을 비교하여 저자의 꿈에 담겨있는 개의 풍부한 상징적 의미를 밝히고자 하였다. 마지막으로, 개에 관한 종합적인 상징을 통하여 앞으로 시작되는 저자의 개성화 과정에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되는지 세 가지 방법을 나열하였다.
이 논문은 꿈, 미술치료, 모래놀이치료, 문학, 영화, 시 등에 나타난 개의 상징적 이미지를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개의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살펴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다만, 융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개의 상징적 의미를 살펴보기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분석가와의 변증법적인 대화 과정을 통한 피분석자의 연상 작업이 요청되기에 꿈 분석을 받지 않고는 개개인의 무의식에 나타난 원형의 상징적 의미를 이해하는 부분에 있어서 한계가 있다고 보여진다. 저자는 이러한 한계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에 추후 연구과제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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