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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 Implications to the Current Integrity Education for Officials using the Cases of Korean Traditional Cheongbaekri

한국 전통의 청백리를 통한 현대 공직 청렴교육 시사점

  • 이상호 (경상대학교 윤리교육과) ;
  • 박균열 (경상대학교 윤리교육과)
  • Received : 2019.11.05
  • Accepted : 2019.12.24
  • Published : 2019.12.28

Abstract

This study examined the cases of Cheongbaek-ri who were the model of integrity and clean official in Korean tradition, and tried to draw some implications for modern public integrity education. Integrity is a subject and a virtue in itself. Integrity can thus be seen in terms of value education. Cheongbaek-ri in Korean tradition qualifies as modeling in the value education. There were many examples of Cheongbaek-ri in our tradition. This study focused on Park Su-ryang, Lee Won-ik, and Jeong Yak-yong as representatives of each period during Josun Dynasty. Even at the high status, they had not abused their position for self-greed. With less greed, they had been happy even if they had been not rich. They initially tried to be a savior in their daily lives, with their own mind in vain. Their works would be a good example for public officials of modern Korea. In the future, if the educational institutions of the public use this model as a material, it would be very effective.

이 연구는 한국 전통의 청백리 사례를 검토해보고, 이를 토대로 현대 공직 청렴교육을 위한 시사점을 도출하는 데 주안을 두었다. 청렴은 하나의 주제이자 덕목이다. 따라서 청렴은 가치교육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리 전통 속의 청백리는 가치교육에서 말하는 인물 귀감(modeling)의 자격을 갖는다. 우리 전통 속에서는 많은 청백리 사례가 있는데, 이 연구는 청백리 제도가 정착된 조선시대의 전기 인물인 박수량, 중기인물인 이원익, 후기인물인 정약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들은 공직을 수행하면서도 높은 벼슬에 있을 때도 자신의 지위를 탐욕의 도구로 악용하지 않았으며, 가산이 풍족하지 않아도 욕심이 적었기에 행복했다. 이들은 최초에 품은 마음 자체가 백성을 어여삐 여기고 스스로 일상 속에서 군자가 되고자 노력했다. 이외에도 많은 청백리의 모범들이 있지만, 이들의 행적은 현대 공직자들에게 큰 귀감이 된다. 향후 이와 같은 청백리 사례의 특징을 잘 발굴하여, 현대 공직자 윤리교육에 적용한다면 더 높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Keywords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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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朝鮮王朝實錄(仁祖實錄), 1권, 仁祖 1년 3월 16일 丙午 5번째 기사: 元翼忠貞淸白 自先朝入相 負一國重望. 昏朝臨海之獄 首陳全恩之義. 廢論方張之初 又上箚 極陳盡孝之道 兇徒深嫉之 幾不得保 謫洪川五年 放歸田里. 至是 復拜首揆 朝野相慶. 上遣承旨趣召 入城之日 都民加額以迎..
  16. 朝鮮王朝實錄(宣祖實錄), 109권, 宣祖 32년 2월 6일 丙辰 1번째 기사: 元翼少時恬淡.
  17. 朝鮮王朝實錄(仁祖實錄), 10권, 仁祖 3년 9월 17일 壬戌 1번째 기사: 領議政李元翼 上箚辭肩輿入朝之命.
  18. 朝鮮王朝實錄(仁祖實錄), 29권, 仁祖 12년 2월 13일 庚午 2번째 기사: 下敎于政院曰: 李領府事 以先朝元老淸德無比 孤心悅誠服 信之如龜筮 重之如鍾鼎.
  19. 茶山詩文集, 제1권, 正月卄七日賜第: 正月卄七日賜第熙政堂上謁 退而有作: 屢應臨軒試 終紆釋褐榮 上天深造化 微物厚生成 鈍拙難充使 公廉願效誠 玉音多激勵 頗慰老親情.
  20. 朝鮮王朝實錄(正祖實錄), 41권, 正祖 18년 11월 16일 庚子 1번째 기사: 積城 麻田 漣川 朔寧御史丁若鏞 ... ... 積城 麻田 漣川 朔寧四邑御史丁若鏞書啓曰 漣川前縣監金養直擅分還穀 偸食災結 其罪狀 令攸司稟處. 朔寧前郡守康命吉火田濫稅 鄕任納賂 遞移雖久 不可無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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