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청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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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의 청백리를 통한 현대 공직 청렴교육 시사점 (Some Implications to the Current Integrity Education for Officials using the Cases of Korean Traditional Cheongbaekri)

  • 이상호;박균열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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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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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23-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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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이 연구는 한국 전통의 청백리 사례를 검토해보고, 이를 토대로 현대 공직 청렴교육을 위한 시사점을 도출하는 데 주안을 두었다. 청렴은 하나의 주제이자 덕목이다. 따라서 청렴은 가치교육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리 전통 속의 청백리는 가치교육에서 말하는 인물 귀감(modeling)의 자격을 갖는다. 우리 전통 속에서는 많은 청백리 사례가 있는데, 이 연구는 청백리 제도가 정착된 조선시대의 전기 인물인 박수량, 중기인물인 이원익, 후기인물인 정약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들은 공직을 수행하면서도 높은 벼슬에 있을 때도 자신의 지위를 탐욕의 도구로 악용하지 않았으며, 가산이 풍족하지 않아도 욕심이 적었기에 행복했다. 이들은 최초에 품은 마음 자체가 백성을 어여삐 여기고 스스로 일상 속에서 군자가 되고자 노력했다. 이외에도 많은 청백리의 모범들이 있지만, 이들의 행적은 현대 공직자들에게 큰 귀감이 된다. 향후 이와 같은 청백리 사례의 특징을 잘 발굴하여, 현대 공직자 윤리교육에 적용한다면 더 높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광주이씨 이당 대감 음택터는 조선시대 8대 명당 중 하나일까 ? (Is it one of $8^{th}$ Propitious Sites for the Grave of Lee, Dang originated from Gwangju Lee's Family in Chosun Dynasty)

  • 김성원
    • 한국수자원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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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수자원학회 2011년도 학술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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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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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에서는 광주이씨 시조이신 이당 대감 (?-1369) 음택터의 공학적인 분석을 통하여 정성적 및 정량적인 평가를 시도하였다. 이당 대감은 고려말에 국자감 생원시에 합격되고 조선시대에 들어서 자헌대부 (資憲大夫) 이조판서 (吏曹判書)겸 지의금부사 (知義禁府事)에 증직되었으며, 이당 대감 음택터의 경우 조선시대 8대 명당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정승 5명, 대제학 2명, 청백리 5명, 공신 11명을 배출한 명문집안이다. 따라서 이당 대감 음택터의 혈장을 비롯하여 각 사격을 검토하여 광주이씨 문중의 발복을 음택터의 영향으로 평가내릴 수 있는 공학적인 분석의 정성적 및 정량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과연 조선시대 8대 명당 중 하나에 해당되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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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黃喜), 그 역사적 평가와 위상에 대한 일고찰(一考察) - 실록(實錄)의 사신평(史臣評)과 관련하여 - (A Study on Evaluation and Status of Hwang Hee in History - Focused on the evaluation from authors of chronicles)

  • 최영성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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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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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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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황희(黃喜: 1363~1452)는 조선 초기의 명재상으로 세종 시대의 찬란한 문화를 여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그는 종묘(宗廟)에 배향된 공신(功臣)이며 조선시대의 대표적 청백리(淸白吏)이다. 학문상의 공로를 인정하는 팔도유생들에 의해 문묘(文廟)에 배향을 청하는 상소가 두 차례나 있었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위상은 실로 남다른 바가 있다. 그러나 "세종실록" 등 조선왕조에서 펴낸 실록(實錄)에 따르면 황희에 대한 당대(當代)의 평가가 일률적이지는 않았다. 황희의 부정과 비리 등을 비판하는 내용이 실록에 다수 실려 있다. 모두 사실로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단순히 의혹을 제기하는 수준의 내용이 있고, 고의적인 악평(惡評)에 가까운 내용도 있다. 다만, 사관(史官)이 양심에 따라 객관적으로 서술하려 한 것이기 때문에 일단 존중할 필요는 있다. 황희는 특유의 관대함[관(寬)]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고 관료 사회에서 인심을 얻었다. 그러나 관대함이 지나쳐 집안을 다스리는[제가(齊家)] 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사관의 평이다. 필자는 이 평이야말로 당시 일각에서 황희에 대해 제기한 비판의 근본 원인을 잘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잘못에는 저마다의 유형이 있다. 잘못을 보면 그 사람의 인간됨을 알 수 있다"고 한 공자의 말에도 잘 들어맞는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