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Inside - 양계와 평생을 걸어온 향원(鄕愿) 박근식 박사

  • Published : 2013.11.01

Abstract

Keywords

농촌진흥청 수의과학연구소의 전신인 가축위생연구소에서 오랜 기간 몸담으며 퇴임 이후에도 꾸준한 업계활동을 통해 국내 수의축산 발전을 이끌어 온 박근식 박사. 팔순이 된 올해 그의 삶이 담긴 회고록을 출간하면서 그간 경험담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하였다.

지금까지 평생 몸담아온 수의축산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수의학을 선택하게 된 동기는 어렸을 적 푸른 초장에 얼룩소가 풀을 뜯어 먹는 그림을 보면서 목장을 운영해보고 싶은 순수한 동심에서 시작됐다. 대구공립 농림중학교 수의축산과에 입학하여 서울대학교 수의과 대학까지 10년간 수의축산학을 배웠고 제 1회 수의사 국가고시를 통해 수의사 면허를 취득하면서 대학 졸업 후 1958년 지금의 농촌진흥청인 농사원에 입사해 시험국 기획과에서 농사시험연구를 촉탁 받아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농촌진흥청 가축위생연구소 계역과장과 검정화학과장을 거쳐 농촌진흥청 수의과학연구소의 전신인 가축위생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면서 한 평생 수의축산업에 몸 담았다. 37년간 몸 담아온 국가 연구직에서 정년퇴임한 뒤에도 직무과정에서 소외되었던 협회나 학회 등의 활성화를 위해 동분서주 했다. 퇴임 3개월 전에 뜻하지 않은 (사)한국축산환경시설기계협회장으로 추대 받아 활동했고, 이후 (사)대한수의사회 부회장으로 취임, (주)마니커 고문으로 초빙받는 등 업계에서 다양하게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 박근식 박사는 팔순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수의축산분야 발전에 보탬이 되고자 지금까지도 북방농업연구소 축산수의 전문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업계에 종사하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지내고 있다.

양계와 인연

박근식 박사는 양계와 인연도 깊다. 1969년 본회 주최로 열리는 전국순회 하계 양계강습회를 통해 오봉국 교수(서울대)와 최창해 교수(서울시립대), 오세정 교수(건국대)와 인연이 된 박근식 박사(당시 가축위생연구소)는 닭 질병 대책과 사양관리로 매회 새로운 내용으로 강의하여 양계가들로부터 큰 환영과 호응을 받았다. 1973년도에 오봉국 교수와 오세정 교수 그리고 박근식 박사가 중심이 되어 세계가금학회 한국지부를 설립했고 한국 가금산업 분야의 학술연구와 산업계 발전을 국제사회에 홍보하여 한국 가금산업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1983년 한국가금학회 창립멤버로 오봉국 박사와 박근식 박사가 주축이 되어 운영에 깊이 관여하기도 했다. 이외에 본회와 관련해 종계수급조절위원, 경제능력검정위원, 방역대책위원로 활동하면서 양계산업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다. 특히 후학양성에도 관심이 많아 서울대학교, 건국대학교, 충남대학교, 전북대학교 등 외래교수와 겸임교수로써 닭의 위생과 질병예방 연구분야 등 10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틈틈이 양계 생산현장에 필요한 기술정보를 전문지에 투고한 것이 1970년대까지 156편 그리고 월간양계, 현대양계, 월간양돈 등 잡지에는 1994년까지 379회 게재하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기술정보나 문제해결을 위한 지식과 기술을 생산현지에 공급하는데 일조했다.

양계산업에서 일한 보람이 있다면?

평생 동안 수의축산 업계에 몸을 담아 오면서 한 일을 꼽으라면 계란 한 개의 경제학을 세운 것이다. 요즘 시장이나 마트에서 축산물 가운데 부담없이 살 수 있는 식품은 계란이다. 옛날 20대였을 때에는 농가에서 계란 한 개를 팔면 그 돈으로 시내를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내버스는 1,000원 이상인 반면 계란 한 개 가격은 100~200원 남짓밖에 안되니 저렴한 계란 값에 온 국민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영양식이다. 일생을 닭 생명공학에 몸 바쳐 오면서 어느덧 세월을 지나고 보니 모르는 사이 박근식 박사는 계란 경제학자가 되어 있었다. 그 동안 양계산업을 위해 몸 바쳐 일한 결과가 양계산업 생산성을 높였고 계란과 닭고기를 어떤 단백질원보다도 값싸게, 그리고 안전하게 소비자에게 공급할 수 있게 한 세대원으로서 함께 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젊은 시절‘양계산업은 내 생명이다’고 생각하면서 국내 양계산업 발전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참여해왔다. 오늘날의 양계가 발전되기까지는 당시 양계 생산농가의 열정이 밑바탕이 되어 학계 교수, 관련기관 그리고 관련업체 모두가 힘써온 노력에 대한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시간을 되짚어 보면 양계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과 울고 웃을 수 있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원로가 아니다. 권위와 연륜과 덕망이 높아야하고 어떤 일에 오랫동안 종사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나름의 노하우와 일에 있어 공로 또한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후배들이 하는 일에 도움이 되어야 하며 조력자 또는 후견인이 되어주는 것이 원로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에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연구기능과 검역기능의 두 기관이 물리적으로 통합 되었으니 각 기관마다 전통과 업무 문화가 다르지만 통합된 두 기관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 검역본부가 한국 수의축산 발전의 모태가 되기 위해선 원로들이 해야 할 일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