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_신진 양계인을 찾아서 - 젊은 패기, 육계 전문가를 꿈꾸다 - 육계: 보개농장/김윤성 -

  • Published : 2010.01.01

Abstract

Keywords

▲ 농장전경

“사양기술과 시설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농장을 가꾸고 싶습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됨에 따라, 젊은 사람들의 농촌기피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요즘과 같은 시대에, 가업을 이어 국내 양계산업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젊은이가 있어 본지가 찾아 나섰다.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보체리 소재 보개농장 김윤성 씨(26)는 아버지 김명호 대표의 뒤를 이어 2대째 양계업에 종사하고 있어 신진 양계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 보개농장 김윤성 씨

육계업 ‘6년차’

올해 스물여섯. 지나치게(?) 젊은 나이의 김윤성 씨는 어릴 때부터 가업을 이을 준비를 착실하게 밟아왔다. 따지고 보면 아버지 김명호 대표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김명호 대표도 20대 초반부터 양계업에 뛰어들어 30년 동안 육계를 사육했다. 그런 아버지를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김윤성 씨도 자연스레 농장경영에 관심을 갖고 양계업에 대한 꿈을 키워왔다.

그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김윤성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농업대학(현 한국농수산대학)에 양계전공으로 입학했다. 그 전에도 농장 일을 틈틈이 도왔지만, 고등학생인 김윤성 씨에게 닭이 있을 때는 계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가 한농대에 입학하자 아버지 김명호 대표도 아들의 계사 출입을 허용하고 농장을 함께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후 김윤성 씨가 농장 경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농장의 모습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물론 학교에서 배운 이론과 실제 현장에서의 적용은 차이가 있었지만, 김윤성 씨는 학교에서 배운 것들과 실전경험을 차례차례 농장에 접목시켜 나갔다.

첨단 육계사

보개농장은 마니커에 출하하는 농장으로 7천평 부지에 계사면적은 총 2천평, 무창계사 4개 동에서 육계 14만수를 사육하고 있었으며, 깔끔하고 청결한 농장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농장은 쿨링패드와 환풍기 등으로 복합환기를 실시하고 있고, 화재위험이 높은 샌드위치 판넬 대신에 우레탄 판넬을 사용했다. 최첨단 분진포집시설을 설치해 닭털을 포집하여 계사 주변이 늘 청결함을 유지할 수 있게 했고, 자체 폐수처리시설까지 갖춰 놓았다.

김윤성 씨가 농장 경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자동화’부분이다.
김윤성 씨는 아버지와 함께 계사 내 온·습도 측정기, 음수량 측정기와 사료 이송센서 및 환풍기 자동제어장치 등 첨단 자동화 시설을 설치하고, 이 모든 설비를 컴퓨터와 연결하여 자동으로 관리되게 했다. 관리사에 있는 제어 컴퓨터를 통해 각 계사의 온도, 습도, 음수, 환기 등을 비롯한 농장의 모든 상황이 모니터링 되고, 그에 따라 자동으로 음수량과 환기, 온도 등이 조절되어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이를 통해 닭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 사료섭취량을 줄이고 노동력을 대폭 절감했으며, 생산비가 낮아지면서 자연스레 수익도 커졌다.

▲ 농장의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제어할 수 있는 관리사 컴퓨터에 모든 현황이 실시간으로 기록된다.

김윤성 씨는컴퓨터로 농장의 현황을 대부분 파악하고 자동으로 많은 부분의 작업이 이루어지지만, 컴퓨터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며, 기계로 체크할 수 없는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생명체를 키우는 일이기 때문에 기계가 아무리 잘 되어 있어도 100% 신뢰해서는 안되고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부분도 많다는 것이 김윤성 씨의 설명이다.

예전에는 유창계사에서 사육을 하다가, 지난 2001년 지금의 무창계사를 짓고 이사오면서,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무창계사에서의 사육이 처음에는 애로점이 많았지만, 점차 부족한 부분을 고쳐나가서 많은 부분이 개선됐다고 한다.

성적도 예전보다 좋아져서 지금은 평균 300이상의 사육지수가 나온다고 한다. 또한, 아버지와 함께 관리를 하다 보니 여가시간도 많아서남는 시간은 전문 양계인이 되기 위한 공부에 재투자를 하고 있다.

아! 질병이 뭐길래!

김윤성 씨가 본격적으로 농장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한 한농대 1학년 시절, 국내에 처음으로 고병원성 AI가 발생했다. 언론의 지나친 과잉보도로 인해 국민들의 AI에 대한 오해가 깊어지게 되고, 혐오스러운 살처분 장면이 연일 방송되면서 닭고기 소비는 급감하여 80%가 줄어들었다. 보개농장에는 질병이 직접적으로 전파되지 않았지만, 업계 전체가 모두 힘들었던 당시에 보개농장도 어려움을 피해갈 수 없었다.

김윤성 씨에게도 처음으로 들이닥친 큰 시련이었다. 당시 보개농장은 체리부로 위탁농가였는데, 체리부로는 당시 부도를 맞고 농가들에게 사육수수료를 제 때에 지급하지 못했다. 이후, 농가들의 노력으로 체리부로는 회생하게 됐지만, 그 과정에서 농가들의 고통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김윤성 씨는“AI에 대한 과잉보도나 질병이 많다, 항생제 잔류량이 많다는 식의 보도가 나올 때마다 양계농가들은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며, 언론이 올바른 보도로 국내 양계산업을 함께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AI 외에 다른 질병들도 항상 양계농가들을 괴롭히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보개농장의 경우 한 해에 한 번 정도는 질병을 맞는다고 한다. 올해에는 닭빈혈증을 맞았다. 하지만, 이 농장은 차단방역을 철저하게 하고 무창계사에서 사육하는데다가, 확실한 관리가 이뤄지기 때문에 질병이 와도 큰 피해 없이 슬쩍 왔다 가는 정도라고 한다.

▲ 계사 내부 

▲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닭들(21일령)

“양계업, 메리트를 충분히 봤다”

김윤성 씨는 양계업을 평생의 업으로 삼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아버지가 30년을 일궈온 농장을 김윤성 씨도 어릴 때부터 지켜보면서 메리트를 충분히 봤다는 것이다. 그는 농장경영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는 막막하기도 했고 좌절도 했지만, 이제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젊은 패기로 어떤 난관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양계업이 자기 자신만 잘 컨트롤 할 수 있으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고, 열심히 노력하면 생산성도 높일 수 있다며, 다른 일을 하는 것은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김윤성 씨의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 4학년생으로, 이제 막 취업했거나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고 한다. 청년실업 300만 시대, 그는“눈치 보면서 회사 다니는 것보다 훨씬 낫죠”라며 양계인의 긍지를 내비쳤다.

그는 향후 몇 년간 준비하여 농장을 하나 더 지을 포부도 밝혔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았지만, 10만수 정도 규모의 농장을 준비할 것이라고 한다.

한편, 김윤성 씨는 올해 초 한경대학교 식품생명공학과에 편입하여 양계전문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오전에는 계사를 관리하고 오후에는 학교에서 공부, 저녁에는 계사를 둘러보며 학교에 제출할 레포트를 작성하는 등 그야말로 불철주야 전문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뜨거운 열정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는“최고의 닭을 생산하겠다는 각오로 양계업에 모든 꿈과 희망을 걸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유유히 관리사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