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과학교육을 하는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는 학생들이 자연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제 7차 교육과정에서도 화학 II 교과의 목표 중 첫 번째가 “탐구 활동을 통하여 화학의 기본 개념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데 이를 적용한다.”로 되어 있다.1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데 사용하는 과학 지식은 자연의 탐구를 통해 얻어진 것으로 관찰과 실험으로부터 얻은 사실, 사실을 일반화한 법칙, 사실과 법칙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들이다. 따라서 과학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기존하는 과학 지식을 잘 알고 있어야 하며, 이를 교수적인 변환을 통해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2 그러나 일반적으로 과학 지식은 단순화 시킨 상황에 적용할 수 있도록 정리되어 있는데 비해 자연 현상은 복잡한 상황에서 전개되므로 관련 과학 지식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자연현상의 조건에 적용하여 설명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자연 현상을 성공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관련되는 과학 지식들의 유기적인 관계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또한 각 과학 지식들이 적용될 수 있는 전제 조건이나 제한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질의 상태 변화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현상으로 과학 교과에서 초등학교부터 다루고 있다.1 초등학교 4학년에서 물의 상태 변화를 관찰하고, 중학교 1학년에서는 물질의 상태와 상태 변화를 분자 모형으로 설명하고 이를 분자 운동, 에너지와 관련짓도록 하고 있다. 중학교 3학년에서는 이슬, 구름, 비, 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대기 중에서 물의 증발과 응결을 통하여 이해하도록 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도 화학 I에서 물의 상태 변화와 그 특성을 다루고 있으며, 화학 II에서는 물질의 상 변화를 이해하고 특히 액체의 증기 압력 곡선을 정량적으로 해석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화학 II 교과서에서는 대부분 물과 이산화탄소의 상평형 그림을 도입하여 압력과 온도 변화에 따른 상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김현희 등3의 연구에 의하면 대부분의 과학 교사들이 물의 상평형 그림을 이용하여 대기 중에서 물의 상태 변화를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증기와 관련되는 물의 증발, 얼음의 승화 현상에 대한 교사들의 이해도가 낮으며, 학생들이 질문을 해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해 곤혹스러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을 학생들에게 설명해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상평형 그림은 특정 압력과 온도에서 그 물질의 안정한 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 물질의 녹는점과 끓는점, 특정 온도에서의 증기 압력 등 많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상평형 그림을 이용하여 자연에서 일어나는 증발과 끓음, 용액의 총괄성인 증기압내림, 끓는점 오름, 어는점 내림 등을 설명하려고 할 때 상평형 그림과 관련된 용어나 전제 조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면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3-6 예를 들면, 물의 상평형 그림을 보면 1기압, 25 ℃의 조건에서 물은 액체상으로 존재함을 나타낸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에 의해 대기압 하의 25 ℃에서 물이 증발할 수 있음을 알고 있고 따라서 액체 물과 함께 수증기도 존재함을 분명히 알고 있다. 또 물의 상평형 그림에서 얼음의 승화는 삼중점 이하의 압력에서만 가능한데 화학 II 교과서를 보면 겨울에 영하의 온도에서 대기압 하에 있는 얼음이 승화하여 사라지는 것을 상평형 그림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7 그렇다면 물의 상평형 그림이 잘못된 것인가? 우리는 잘못된 상평형 그림을 교과서에 제시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은 모두 상평형 그림에 대한 교과서의 불충분한 서술과 이로 인한 교사들의 이해 부족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동안 상평형 그림의 이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연구 결과들이 있으나3-6,8-10 아직도 중등 교육 현장에서는 이와 관련된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상평형 그림에 대한 과학 교사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현재 야기되고 있는 혼란에 대해 좀 더 명확한 해석과 설명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대기 중에서 물의 증발과 얼음의 승화 현상과 관련하여 선행 연구들에서 나타난 의문점들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논의를 통하여 올바른 이해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교사들의 의문점을 해소하고 추후 교과서 집필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본 론
대기 중 물의 증발과 얼음의 승화 현상을 상평형 그림으로 설명하는데 있어서 선행 연구들은 여러 가지 의문점들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3,4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의문점은 공기가 있을 때 상평형 그림의 적용과 상평형 그림에서 압력의 의미로 생각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이 두 가지 의문점을 중심으로 이러한 의문점이 나타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보고 올바른 이해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물만 존재하는 경우 상평형 그림의 해석, 공기가 함께 존재하는 경우 상평형 그림의 적용과 대기 중에서 물의 증발, 상평형 그림에서 압력의 의미, 대기중에서 얼음의 승화 등에 대해 차례로 논의하고자 한다.
의문 1: 물의 상평형 그림에서 1기압, 25 ℃에서 액체상만 존재하는 이유는?
Fig. 1.The phase diagram for water(not drawn to scale).
교과서에 나오는 전형적인 물의 상평형 그림은 Fig. 1과 같다.1) 이 그림에 의하면 압력이 1기압인 경우 온도가 0~100 ℃ 사이(0 ℃와 100 ℃는 제외)에서는 물이 액체상만으로 존재해야 함을 나타낸다. 그런데 대기 중의 자연 조건에서는 이 온도 구간에서 액체 물과 수증기가 공존하고 있다. 상평형 그림에서는 액체상과 기체상이 공존하는 것은 증기 압력 곡선(액체-기체 경계)에 해당하는 압력, 온도 조건에서만 가능함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이 상평형 그림에 대한 해석이 자연 현상과 일치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물의 상평형 그림은 1성분계의 것으로 물만 존재할 때의 상평형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이다. 즉, 물만 존재할 때의 현상과 공기가 함께 존재하는 대기 중에서의 현상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의문이 생기게 된다. 대부분의 고등학교 화학 II 교과서나 대학의 일반화학 교과서들이 이 사실을 명백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은 것이 이러한 의문을 가지게 된 배경으로 생각된다(그러나 한 일반화학 교과서에서는 물의 상평형 그림이 물만 존재하는 닫힌계에 대한 것이라는 전제를 언급하고 있다.1)
그러면 물만 존재하는 경우에는 과연 1기압, 0~100 ℃에서 액체 물만 존재하는가를 알아보자. 실험실은 대기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공기가 존재한다. 따라서 공기가 없이 물만 존재하게 하려면 닫힌계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물만 존재하는 경우의 상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간단한 상상 실험을 해보자.
Fig. 2.Water in a syringe for thought experiments.
상상 실험 1: 바늘이 없는 주사기를 사용하여 물을 빨아들인 후 주사기 끝을 막았다고 하자(Fig. 2(a)). 이 때의 온도를 25 ℃라 하고 대기압은 1기압이라고 하자. 그러면 주사기 속의 물은 1기압 25 ℃의 상태에 있다(주사기 피스톤의 무게 때문에 나타나는 압력은 무시한다고 하자. 압력에 대해서는 뒤의 의문 3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한다). 시간이 지나도 주사기속의 물은 여전히 액체상으로 존재할 것이다. 물의 상평형 그림에서 1기압 25 ℃에서 액체상이 안정한 것과 일치한다(Fig. 1의 점 A). 이 조건에서 증발에 의해 수증기가 생성되지 않는 이유는 25 ℃에서 증기 압력은 0.031기압인데, 주사기를 누르고 있는 대기의 압력이 1기압이므로 주사기의 피스톤이 뒤로 밀려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닫힌계의 경우 비평형 상태에서 평형 상태로 가는 과정을 알아보기 위하여 이번에는 압력을 변화시켜보자.
상상 실험 2: 주사기의 피스톤을 손으로 잡아 뒤로 1 cm정도 당겨내어 붙들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액체는 압력에 따라 부피가 거의 변하지 않으므로 주사기 속에는 피스톤이 뒤로 물러난 만큼 빈 공간이 생기게 될 것이다. 이 빈 공간은 처음에는 진공이므로 액체 물이 받는 압력은 0이 된다. 이 때 주사기의 피스톤은 고정되어 있으므로 움직일 수 없는 용기 벽면과 같은 역할을 한다. 따라서 주사기 외부의 압력은 1기압이지만 주사기 내부는 다른 압력으로 존재할 수 있다.
물의 상평형 그림을 보면 25 ℃에서 압력이 0.031기압(Fig. 1의 점 B)보다 낮을 때는 기체가 안정한 상이다. 그러므로 액체로 존재하는 현재 상태는 비평형 상태이고 평형 상태로 가기 위해 액체 물은 기체인 수증기로 변하기 시작하며 끓는 현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액체 물이 받고 있는 압력이 증기 압력인 0.031기압보다 낮기 때문에 액체 내부에서도 기포가 생성될 수 있으므로 끓게 된다. 액체 물의 일부가 수증기로 변하게 되면 수증기가 압력(수증기압)을 나타내게 되고 액체 물도 수증기가 나타내는 압력을 받게 된다. 이 때 실제로는 물의 기화에 의해 온도가 내려갈 수 있지만 주위로부터 열을 흡수하여 온도는 25℃를 유지한다고 하자. 액체 물의 기화가 계속되면 수증기압이 점차 증가하게 되어 주사기 속의 압력이 증가하게 될 것이다. 주사기 속의 압력이 점 B의 압력보다 낮은 조건에서는 기체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안정하므로 액체와 기체가 함께 존재하는 주사기 속의 상태는 여전히 비평형 상태이고 액체 물의 기화가 계속될 것이다. 주사기 속의 압력이 계속적으로 증가하여 점 B의 압력인 0.031 기압이 되면 더 이상 알짜 기화가 일어나지 않는 평형상태에 도달하게 된다(Fig. 2(b)). 상평형 그림에서 증기 압력 곡선 상에 있는 점 B의 상태에서는 액체상과 기체상이 모두 안정하기 때문에 평형 상태에서 액체와 기체가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주사기 속의 물이 아주 소량이고 주사기 내부의 부피가 아주 크다면 물이 모두 수증기로 변하더라도 수증기압이 0.031기압보다 낮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기체상만 존재하게 되고 Fig. 1의 점 B보다 아래쪽에 있는 한 점(그 때의 수증기압에 해당하는 압력)의 상태가 된다.
이번에는 상상 실험 2와 반대로 압력을 높인 경우를 생각해보자.
상상 실험 3: 상상 실험 2가 완료된 상태, 즉 Fig. 2(b) 상태에서 주사기의 피스톤을 놓으면 피스톤은 대기압에 의해 1기압의 압력으로 수증기를 밀게 되는데 수증기는 0.031기압을 나타내므로 피스톤이 수증기를 밀고 들어가며 수증기의 압력이 1기압이 될 때까지 압축할 것이다. 그러면 다시 25 ℃, 1기압인 상태가 되는데, 이 상태에서는 액체상이 안정하다(Fig. 1의 점 A). 그러므로 액체상과 기체상이 공존하는 현재 상태는 비평형 상태이고, 평형 상태로 가기 위해 수증기는 액화하게 된다. 이 때도 수증기의 액화에 의해 온도가 올라갈 수 있지만 주위로 열을 방출하여 온도는 25 ℃를 유지한다고 하자. 액화가 계속되면 기체상의 부피가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은 기체상이 모두 없어지고 처음과 같이 액체상만 존재하게 된다(Fig. 2(a)). 즉, 주사기 속은 다시 평형에 도달하였고 Fig. 1의 점 A에 해당하는 상태가 된다.
의문 2: 온도가 25 ℃인 대기압 하에서 물과 수증기가 함께 존재하는 이유는?
위의 설명에서 보면 물만 존재하는 경우에는 1기압, 25 ℃ 조건에서 물은 액체상으로만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기 중에서는 1기압(대기압), 25 ℃ 조건에서 액체 물과 수증기가 공존하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렇다면 공기가 함께 존재하는 경우에는 왜 물만 존재하는 경우와 달라지는 것인가? 이에 대해 정대홍9도 공기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물의 상평형 그림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결과와 다름을 언급하고 이 경우에 수증기가 공존할 수 있는 이유를 물과 수증기의 자유에너지를 사용하여 정성적으로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여기서는 좀 더 자세하게 그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자.
공기가 함께 존재하는 경우에는 물만 존재할 때를 나타내는 물의 상평형 그림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이 경우에는 공기의 성분까지 포함한 다성분계의 새로운 상평형 그림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물리화학 교과서를 보면 2성분계나 3성분계의 상평형 그림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는 그러한 상평형 그림을 교과서에서 본 적이 없다. 아마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아무도 상평형 그림을 그리려고 시도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면 공기가 존재하는 경우에 물의 상평형 그림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인가? 원칙적으로 공기가 함께 존재하는 경우에는 물의 상평형 그림을 이용하여 물의 상태 변화를 설명할 수 없지만 공기가 존재하는 경우에도 물의 상평형 그림을 활용할 수 있다.
공기가 함께 존재하는 경우에는 물만 있는 경우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기 위해 또 다른 상상 실험을 해보자.
상상 실험 4: 앞의 실험에서와 같이 주사기를 사용하는데, 이번에는 주사기로 공기를 먼저 빨아들인 다음 다시 물을 빨아들인 후 주사기 끝을 막았다고 해보자. 이때도 온도는 25 ℃이고 대기압은 1기압이라고 하자. 주사기 속에는 액체 물과 공기가 들어 있고, 이 때 공기의 압력은 1 기압이고 액체 물이 받는 압력도 1기압이다(여기서도 주사기의 피스톤 무게에 의한 압력은 무시한다). 시간이 지나서 평형에 도달했다면 공기 중에는 25 ℃에서의 증기 압력만큼 수증기가 존재한다(Fig. 2(c)). 즉, 수증기의 부분 압력은 0.031기압이고, 수증기를 포함한 공기의 전체 압력은 1기압이다. 앞의 실험에서와 같이 공기가 없는 경우에는 수증기의 압력이 0.031기압이고 피스톤이 미는 압력은 1기압이므로 기체상이 존재하지 않게 되지만 (Fig. 2(a)), 공기가 함께 존재하는 경우에는 주사기 내의 공기(수증기 포함)가 나타내는 압력이 1기압이고 피스톤이 미는 압력도 1기압이므로 피스톤이 그 상태로 머물게 된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평형 상태에서 액체 물과 수증기가 공존하게 된다.
여기서 물의 상평형 그림과 관련시켜 생각해보자. 온도는 25 ℃인데, 압력은 얼마인가? 액체 물이 받는 압력은 1기압이고, 기체상에서 공기와 함께 존재하는 수증기가 나타내는 부분 압력은 0.031기압이다. 따라서 액체 물의 압력과 기체상에 포함되어 있는 수증기의 부분 압력이 다르기 때문에 상평형 그림에서 어느 한 점으로 나타낼 수가 없다. 즉, 액체 물을 생각하면 Fig. 1의 점 A에 해당하고, 기체상에 존재하는 수증기를 생각하면 Fig. 1의 점 B에 해당한다. 따라서 공기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물만 존재할 때를 나타낸 물의 상평형 그림을 사용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기가 존재하는 경우에도 물의 상평형 그림은 여전히 쓸모가 있다. 공기가 함께 존재하는 경우에도 평형에서 수증기의 부분 압력은 상평형 그림의 증기 압력 곡선으로부터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살펴보자.
주의 깊은 독자라면 바로 위의 상상 실험 4에서 공기가 존재하는 경우에 평형에서 수증기의 부분 압력이 0.031기압이 된다는 것에 대한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25 ℃에서 증기 압력이 0.031기압이라는 것은 분명히 물만 존재하는 경우라고 언급해놓고 왜 공기가 함께 존재할 때 수증기의 부분 압력을 그 온도에서의 증기 압력과 동일한 값을 갖는다고 하는가?주의 깊은 독자라면 바로 위의 상상 실험 4에서 공기가 존재하는 경우에 평형에서 수증기의 부분 압력이 0.031기압이 된다는 것에 대한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25 ℃에서 증기 압력이 0.031기압이라는 것은 분명히 물만 존재하는 경우라고 언급해놓고 왜 공기가 함께 존재할 때 수증기의 부분 압력을 그 온도에서의 증기 압력과 동일한 값을 갖는다고 하는가?
공기가 존재하는 경우 수증기의 부분 압력은 물의 증기 압력과 얼마나 달라지는지 생각해보자. 물만 존재하는 경우에는 25 ℃에서 평형에 도달하면 증기 압력인 0.031기압만큼 수증기가 존재하고 액체가 받는 압력도 수증기가 나타내는 압력인 0.031기압이다. 이와 달리 공기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액체 물이 받는 압력이 1기압이 되는데, 평형에 도달했을 때 공기 중에 존재하는 수증기의 부분 압력은 얼마나 될까? 즉, 물이 받는 압력이 0.031기압에서 1기압으로 변하게 되면 이와 평형을 이루고 있는 수증기의 압력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보자. 증기 압력은 그 물질만 존재하는 경우에 액체와 평형을 이루고 있는 증기의 압력으로 정의되므로 공기가 함께 존재하는 경우에 액체 물과 평형을 이루는 수증기의 부분 압력을 증기 압력과 구별하기 위하여 여기서는 포화 수증기압이라고 하자.
물리화학 교과서를 보면 액체가 자신의 증기 압력 이외에 추가로 압력을 받게 되면 증기의 압력이 증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12 어떤 온도에서 그 물질만 존재할 때의 증기 압력이 p*이고, 액체에 추가로 △P만큼의 압력을 가했을 때의 포화 증기압을 p라고 하면 ln p/p*=Vm(l)△P/RT의 관계가 성립한다.2) 여기서 Vm(l)은 액체상의 몰당 부피이다. 물의 경우 25 ℃ 에서 △P를 1 bar라고 하면 p/p*=1.00073이 되어 포화 수증기압이 0.073% 증가하게 된다. 따라서 대기압 하에서 물의 포화 수증기압은 물만 존재할 때의 증기 압력에 비해 0.1% 이내로 증가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대기압 하에서 물의 포화 수증기압은 물만 존재할 때의 증기 압력과 거의 차이가 없으므로 물의 상평형 그림에 나타나는 증기 압력 곡선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이 위의 상상 실험 4에서 1기압의 공기가 존재하는 경우에도 물의 포화 수증기압은 여전히 0.031기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이다.
따라서 대기압 하에서도 물의 상평형 그림의 증기압력 곡선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고, 물만 존재하는 경우와 달리 1기압(액체가 받는 압력), 25 ℃에서는 액체 물과 수증기가 공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대기 중의 수증기 부분 압력이 그 온도에서의 포화수증기압보다 낮으면 증발(알짜 증발)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Fig. 2(c)의 경우에는 닫힌계이므로 수증기의 부분 압력이 0.031기압에 도달하게 되면 평형을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대기 중에 노출된 물의 경우는 대기 중의 수증기 부분 압력이 포화 수증기압보다 낮으면(상대 습도가 100% 미만이면) 계속해서 증발이 일어나게 된다.
의문 3: 물의 상평형 그림에서 압력의 의미는?
공기가 존재하는 경우에 액체나 고체가 받는 압력과 기체상에 존재하는 증기가 나타내는 부분 압력이 다르기 때문에 상평형 그림에서 압력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상평형 그림에서 압력은 각 상이 나타내는 압력을 의미한다. 압력은 단위 면적당 누르는 힘으로 정의되는데, 기체의 압력은 기체 입자들이 용기 벽면을 연속적으로 때리는 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기체가 나타내는 압력은 그 기체한 가지만 있는 경우는 기체의 전체 압력이 되고, 기체 혼합물인 경우에는 성분 기체가 나타내는 압력은 그 기체의 부분 압력이 될 것이다. 고체나 액체의 압력은 고체나 액체에 가해진 압력, 또는 고체나 액체가 받고 있는 압력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고체나 액체가 기체와 접하고 있으면 기체가 나타내는 전체 압력이 바로 고체나 액체의 압력이 된다. 그리고 다른 물체가 고체나 액체를 누르고 있다면 그 물체가 누르는 힘에 의해 나타나는 압력을 고체나 액체가 받고 있으므로 그 압력이 바로 고체나 액체의 압력이 된다.
예를 들면, Fig. 2(a)의 경우와 같이 액체 물이 주사기의 피스톤과 접촉하고 있는 경우에는 주사기의 피스톤이 액체 물을 누르는 힘에 의해 액체의 압력이 결정된다. 이 경우에는 주사기의 피스톤이 받고 있는 대기압과 피스톤 자체의 무게 때문에 나타나는 압력을 더한 만큼 액체 물이 압력을 받게 된다. 만약 주사기 피스톤의 질량이 10 g이고, 주사기의 내부 단면적이 2 cm2라면 피스톤의 무게 때문에 나타나는 압력은 P=F/A=mg/A=10×10-3kg×9.8ms-2/2×10-4m2= 490Pa=0.0048 atm이 된다. 따라서 대기압이 1기압이라면 액체 물이 받는 압력은 1.0048기압이 될 것이다. 이 경우에는 대기압에 비해 주사기 피스톤의 무게에 의해 나타나는 압력이 0.5%밖에 되지 않으므로 무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Fig. 2(b)의 경우에 대기압은 1기압인데 주사기 속의 압력은 0.031기압이 되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주사기 피스톤을 고정시키고 있기 때문에 피스톤은 움직일 수 없는 용기 벽면과 같으므로 주사기 내부의 압력이 외부의 대기압과 다를 수 있다. Fig. 2(a)와 Fig. 2(c)에서는 주사기의 피스톤이 고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주사기의 외부 압력과 내부 압력이 다르면 압력이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피스톤이 움직이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주사기의 실린더 부분은 움직이지 않는 용기 벽면이 된다. 즉, 움직일 수 없는 고정된 용기 벽면은 내부와 외부의 압력이 달라도 움직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압력 차이가 아주 클 때에는 용기 벽면이 휘는 변형이 일어나거나 파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상평형 그림으로 돌아가 보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상평형 그림은 그 물질만 존재하는 경우를 나타낸 것으로 이 경우에는 압력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액체(또는 고체)가 기체와 접촉하고 있는 경우에 액체(또는 고체)의 압력은 기체의 압력과 동일하기 때문에 상평형 그림에서 이 상태를 하나의 점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액체(또는 고체)가 대기와 접촉하고 있는 경우에는 액체(또는 고체)는 대기가 나타내는 압력을 받고 있는데 비해 그 물질의 증기는 기체상의 전체 압력이 아니라 자신의 부분 압력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그 물질의 액체상(또는 고체상)의 압력과 증기의 압력이 다르게 된다. 그러므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상평형 그림에서 어느 한 점으로 표시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상평형 그림에 그 상태를 명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 조건에서 액체 또는 고체와 평형을 이루는 포화 증기압은 상평형 그림으로부터 알 수 있다. 즉, 고체-기체 경계(승화 곡선) 또는 액체-기체 경계(증기 압력 곡선)에서 그 온도에 해당하는 압력이 포화 증기압이 된다(의문 2참조). 만약 고체나 액체가 존재하지 않고 공기와 함께 증기만 존재하는 경우에는 그 증기의 부분 압력에 해당하는 압력과 온도에서 하나의 점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의문 4: -10 ℃의 대기압 하에서 얼음의 승화가 가능한가?
흔히 추운 겨울날 언 빨래가 마른다든지, 쌓여 있는 눈이 줄어드는 것을 승화의 예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물의 상평형 그림을 보면 물은 삼중점 이하의 온도와 압력에서 승화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물의 삼중점은 0.006기압, 0.01 ℃이므로 대기압(1기압)하에서는 승화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1기압에서는 상평형 그림을 보면 온도 변화에 따라 고체가 액체를 거쳐서 기체로 상 변화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한 것은 상평형 그림은 그 물질만 존재할 때에 해당하는 것이고(의문 1, 2참조), 또 기체상에 있는 증기의 압력은 그 물질의 증기가 나타내는 부분 압력이지 대기압이 아니라는 것이다(의문 3참조). 위의 의문 2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공기가 함께 존재하는 경우에는 얼음이 받는 압력(대기압)과 수증기가 나타내는 압력(수증기의 부분 압력)이 다르게 된다. 만약 공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10 ℃에서 얼음의 증기 압력은 0.0026기압이므로 -10 ℃, 0.0026기압에서는 얼음과 수증기가 공존할 것이다.
대기압 하에서는 위의 의문 2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고체 얼음이 추가로 압력을 받는 경우에 해당하며 액체 물의 경우와 유사하게 포화 증기압이 증가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에는 Vm(l) 대신에 Vm(s)를 사용하면 되는데, 물과 얼음의 몰당 부피는 별 차이가 없으므로 얼음의 경우에도 1기압의 추가 압력에 의해 증가되는 수증기의 압력은 0.1% 이내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공기가 존재하는 경우에도 얼음의 포화 수증기압은 공기가 없는 경우의 증기 압력(상평형 그림의 승화 곡선에서 그 온도에 해당하는 압력)을 그대로 사용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므로 -10 ℃에서 대기 중의 수증기 부분 압력이 증기 압력(포화 수증기압)인 0.0026기압보다 낮으면 비평형 상태이므로 얼음이 수증기로 변하는 승화 현상이 계속 일어나게 될 것이다. 만약 열린계가 아니고 공기가 함께 존재하는 닫힌계의 경우라면 얼음이 승화하여 수증기의 부분 압력이 0.0026기압에 도달하게 되면 더 이상 알짜 승화가 일어나지 않는 평형 상태가 될 것이다.
그러면 대기압(1기압) 하에서 얼음의 승화가 일어날 수 있는 최대 온도는 얼마일까? 1기압에서는 0 ℃에서 얼음이 물로 변하게 되므로 0 ℃가 얼음의 승화가 일어날 수 있는 최대 온도가 된다. 즉, 1기압의 대기 조건에서 0 ℃보다 낮은 온도에서는 얼음과 수증기가 공존하고, 0 ℃보다 높은 온도에서는 물과 수증기가 공존하게 된다. 0 ℃에서는 얼음, 물, 수증기가 공존하게 되므로 공기가 없는 경우의 삼중점과 유사한 상태이다.
정대홍8도 대기압 하에서 얼음의 승화가 가능함을 설명하였으며, 공기가 존재하는 경우 얼음의 포화 수증기압은 공기가 없을 때에 비해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고려하면 물의 상평형 그림으로 대기압 하에서 얼음의 승화를 설명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공기에 의해 얼음의 압력이 증가하는 경우 얼음의 포화 수증기압이 감소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는데, 압력 변화에 따른 화학 포텐셜의 변화를 잘못 적용했기 때문이다.3)
결 론
대기 중에서 일어나는 물의 증발이나 얼음의 승화와 같은 상태 변화를 상평형 그림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몇 가지 의문점들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러한 의문점들이 나타나게 된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물의 상평형 그림과 같이 1성분계의 상평형 그림은 그물질만 존재하는 경우를 나타낸 것임을 간과했기 때문임을 언급하였다. 따라서 물만 존재하는 경우에는 물의 상평형 그림을 설명하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이와 달리 공기가 함께 존재하는 경우에는 항상 수증기가 존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대기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에는 물의 상평형 그림을 원래의 의미대로 사용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물 또는 얼음이 대기와 접촉하고 있는 경우에는 공기 중에 수증기가 함께 존재하게 되는데, 이 상태를 상평형 그림 상의 어느 한 점으로 나타낼 수 없다. 왜냐하면 고체상이나 액체상의 압력은 대기압과 동일하지만 기체상에 포함된 증기의 압력은 그 증기의 부분 압력이므로 압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기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에도 상평형 그림은 여전히 유용하다. 다만 이 경우에는 공기가 존재하기 때문에 언제나 그 물질의 증기가 기체상에 공기와 함께 존재한다. 따라서 고체상, 또는 액체상만 존재하거나 이 두 상만 공존하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공기 존재 때문에 생기는 1기압 정도의 압력 변화에 따라 고체상이나 액체상이 나타내는 포화 증기압은 거의 변하지 않으므로 공기가 존재하는 경우에도 포화 증기압은 상평형 그림의 승화 곡선과 증기압력 곡선이 나타내는 증기 압력을 그대로 사용해도 무방하다. 따라서 대기 중의 수증기압이 승화 곡선이나 증기 압력 곡선이 나타내는 증기 압력(포화 수증기압)보다 낮으면 알짜로 승화(고체→증기)나 증발(액체→증기)이 일어날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알짜로 승화(증기→고체)나 응축(증기→액체)이 일어날 수 있다.
또한 대기 중에서 그 물질의 녹는 온도나 끓는 온도도 상평형 그림이 나타내는 정보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특정 압력에서 물질의 녹는 온도는 상평형 그림의 융해 곡선으로부터 알 수 있다. 고체나 액체의 압력은 대기압과 동일하므로 대기압에 해당하는 압력에서 융해 곡선의 온도를 읽으면 그 압력에서의 녹는 온도를 알 수 있다. 물질의 끓는 온도는 그 물질의 증기 압력이 액체의 압력과 같을 때이다. 대기중에 노출된 액체의 압력은 대기압과 같으므로 대기압에 해당하는 증기 압력(포화 수증기압)을 가지는 온도에서 끓게 된다. 그러므로 증기 압력 곡선에서 대기압에 해당하는 온도가 바로 끓는 온도가 된다. 이 경우에는 그 증기의 부분 압력이 대기압과 같으므로 그 증기의 부분 압력이 바로 전체 압력이 된다. 즉, 액체 계면 상에는 그 물질의 증기만 존재하게 되어 공기가 없는 경우와 동일하다. 열린계에서는 압력이 대기압으로 일정하게 유지되므로 액체 계면에서 기화해 나오는 그 물질의 증기가 공기를 바깥으로 밀어내기 때문에 계면 근처에는 그 물질의 증기만 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그 물질의 증기가 나타내는 압력과 액체의 압력이 동일하게 되어 상평형 그림에서 하나의 점으로 상태를 나타낼 수 있게 된다. 만약 열린계가 아니고 공기를 포함한 닫힌계라면 그 물질의 기화에 의해 공기가 밀려날 수가 없으므로 압력이 증가하기 때문에 압력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열린계와는 다른 상황이 된다. 즉, 그 물질의 증기가 나타내는 부분 압력은 항상 액체의 압력보다 낮게 되어 끓는 현상이 관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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