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wooden rel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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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자료로 본 5~6세기 신라의 강릉지역 지배방식 (The Ruling System of Silla to Gangneung Area Judged from Archaeological Resources in 5th to 6th Century)

  • 심현용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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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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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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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고는 강릉지역에서 발굴조사된 고고자료를 검토하여 문헌기록과 비교하면서 신라가 강릉지역으로 진출하여 재지 세력을 지배해 나가는 과정에 대해 가설을 세워 본 것이다. 강릉지역의 고고학적 양상은 신라가 처음 이 지역을 복속하고 재지세력들에 침투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데, 필자는 이 지역의 5~6세기 고고학적 특이양상에 대해 적극적인 해석을 시도하였다. 강릉지역은 신라 진출 이전 예국이라는 읍락국가가 존재하고 있었다. 신라는 4세기 4/4분기에 처음으로 강릉지역으로 진출하였으며, 기존의 예국을 복속한 후 지역 실정에 맞게 재지세력을 통치해 나갔다. 이에 대해 고고자료와 문헌기록을 비교검토해 본 결과, 신라가 강릉지역을 복속한 후 취한 지배정책은 간접지배와 직접지배의 2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간접지배는 다시 초입기(I 단계)와 정착기(II 단계)로 구분하였는데, I 단계는 신라가 처음 강릉지역으로 진출한 시기로 신라는 재지세력의 자치를 그대로 허용하며 간접지배를 실시하였으며, 그 시기는 4세기 4/4분기부터 5세기 2/4분기로 보았다. 그리고 II단계는 신라가 강릉지역의 재지세력들에게 위세품을 하사하여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면서 동시에 신라 중앙에 의해 강릉지역 중심세력인 초당동과 병산동 세력에게 위세품을 분여하여 서로 견제를 하게 만들어 재지세력간 힘의 균형을 통제하였다. 그 시기는 5세기 3/4분기에서 5세기 4/4분기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신라는 강릉지역을 북진의 전초 기지로 인식하고 나서는 직접지배체제로 전환하기 시작한다. 즉, 신라 중앙에서 파견한 지방관을 상주시켜 지방제도를 확립하고 재지세력에 대한 재편과정을 거쳐 중심세력을 초당동 병산동 세력에서 신라와 친연성이 가장 강한 영진리 방내리 세력으로 교체하고 강릉지역을 완전 장악하기에 이른다. 그 시기를 6세기 1/4분기부터로 보았다.

광주 신창동 출토 칠기칼집 보존처리 (Conservation for Pocket of Wooden Dagger Excavated from Sinchang-dong, Gwangju)

  • 김수철;이용희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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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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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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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광주신창동 저습지유적에서 출토된 수침고목재 유물은 재질이 매우 취약하여, 공기 중에 노출되면 건조가 진행되어 곧바로 수축·변형이 일어나게 되므로 전시 및 보존을 위해서는 특별한 보존처리가 필요하다. 특히 칠기칼집과 같이 목재표면에 치밀하게 옻칠이 되어있어 칠기는 처리약제가 잘 침투되지 않고 처리 중 칠막이 부풀거나 탈락될 우려가 높아 보존처리가 매우 까다롭다. 칠기칼집은 낮은 농도의 PEG#4000 40% 수용액(水溶液)에 함침처리 후 동결건조하는 방법을 적용하여 보존처리 하였다.

석조유구(石造遺構)에 표현(表現)된 고대건축(古代建築) 연구 - 부도(浮屠)의 건축요소(建築要素) 분석(分析)을 중심으로 - (Ancient Korean Architecture Presented in Stone Remains - Focused on the Analysis of the Architectural Elements of the Stone Stupa -)

  • 박재평;이재헌
    • 한국농촌건축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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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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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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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This research is the second attempt to illustrate the phases of ancient Korean architecture through a comparative study of historical materials such as historical ruins, relics, stone remains and art products. Among these the stone stupa (budo), contains many architectural aspects of old times, which give clues to trace the characteristics of the antient Korean structures. The study brings about following results: 1. The pillar employs an entasis technique, and the bracket system (gongpo) consists of cross beams (changbang) and small supporting blocks (soro) thereupon. A type of the bracket arm (chomcha) is also found on top of the pillar. 2. Windows and doors are assumed from the carved features on the stone stupa to be pair-doors which could be folded twice sideways and upwards. 3. There are two types of eaves; the single eaves and the double eaves consisting of a rafter and a flying rafter. 4. The roof has furrows formed by the concave tiles and the convex ones and also the tiles at the edge of eaves. And there are evidences that a variety of small images of animal and human figures were decorated along on top of the ea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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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 대웅보전 삼세불상을 통해 본 17세기 조선시대 불상의 제작기법 연구 (On the Research of 17th Century Joseon Dynasty's Bulsang, a Buddist Statue, Manufacturing Technique by Examining the Daeungbojeon Hall Samse-bulsang, The Buddha of the Three Words, at the Haenam Daeheungsa Temple)

  • 이수예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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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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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4-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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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불과 아미타불을 배치한 형식의 석가삼세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그동안 이 삼세불상은 목조불로 알려져 왔으나 X-선 촬영 결과, 본존불을 제외한 좌우불에서 나무 위에 입힌 소조층이 함께 관찰되었다. 따라서 대흥사의 삼세불상은 조선시대 목조불상 및 소조기법이 적용된 불상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접목조불상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본존 석가모니불상은 크게 5개의 목재를 접목하여 형상을 완성하고 있으며, 약사와 아미타불은 10개 이상의 목재를 접목하여 외형에 가깝도록 조각한 뒤 그 위로 점토를 발라 소조기법으로 형상을 완성하고 있다. 즉 내부의 목재가 심(芯)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는데, 목재의 접목방식이 조선시대의 목조불상보다는 소조불상의 기법에 가깝다. 그러나 목심 위에 새끼줄을 감고 그 위에 점토를 두껍게 바른 것이 아니라 나무 위에 직접 점토를 얇게 발랐으며, 얼굴 부분이 완전히 목조로만 이루어진 것이 특징적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애초 작가의 조성의도가 목불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나 복장기록에 '소성(塑成)'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불상 조성이 완료된 시점에 이들 불상을 소조상으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즉 대흥사 좌우불은 조선시대식 소조기법의 한 예로 보아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대흥사 삼세불상의 X-선 촬영을 통해 얻은 화상정보를 바탕으로 이들 불상의 내부구조와 접목방식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조선시대 불상 제작기법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공신부인(恭愼夫人) 한씨(韓氏)에게 전달된 물품 및 출토복식 분석을 통한 15세기 조선 사대부 가 여성복식 고찰과 착장고증 (The Consideration and Historical Research of Joseon Ladies' Attire in the 15th Century by Analyzing Excavated Costumes and Presents for Lady Han, Gongsin-buin)

  • 최정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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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6권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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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1-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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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Lady Han, Gongshin-buin(恭愼夫人韓氏: 1410~1483) was Gongnyeo of Ming emperor and sister of Han Hwak(韓確:1400~1456). The aim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characteristic of costume presents for Lady Han, and to investigate a part of Joseon women's attire in the 15th century. Most of the presents for Lady Han were native products of Joseon to help alleviate her homsickness, but surviving relics are very rare. The costume-related presents included daily accessories and fabrics such as natural ornaments, embroidered pouch, needle case, wig, wooden comb, portable knife with multi-blades, various colored plain silk [綿紬] and ramie. Also, preceding research analysis of costume relic were combined with study of presents for Lady Han's. The most salient costume of Joseon women in the 15th century was the symmetric collared jacket. In addition, ornamented jeogori, pouch with pine nut stitch, chima, jangot, jangsam, black veil[羅兀] made with ra or jeung, glass beads, paintings of Ming and Joseon can be references. Illustrations show 6 representative type of Joseon women's full attires in the 15th century are as follows. First, is a combination of 'symmetric collared jacket with peacock rank badge, jeoksam, chima, underwear' and 'hoa-a, janga-a, embroidered pouch, needle case, knife with multi-blades: presents for Lady Han'. Second, formal wear focusing on symmetric collared Jacket of cloud pattern. Third, formal wear focusing on multicolor ornamented jeogori. Fourth, town wear with jangot and neoul. Fifth, formal wear with jangsam. Sixth, daily wear focusing on banbi with symmetric squre collar. Accessories and underwear shown in another illustration were same as the first illustration. Results of this study can be used as content for making historically accutate costumes as well as costume education.

익산 미륵사지 석탑 사리구의 현황과 매장환경 분석 (A Study on the State and Preserving Conditions of Sarira Reliquary in Mireuksaji Stone Pagoda in Iksan, Korea)

  • 이동식;최윤숙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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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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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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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백제 무왕대인 639년에 축조되었고 탑 안에 봉안된 사리유물은 1,370년 동안 석탑 심주석 사리공의 매장환경 속에 존재하였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사리유물은 150여 건에 이른다. 그러나 사리유물의 수습 및 유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바 있지만 사리유물이 어떠한 환경에 노출되었는지에 대한 데이터 분석은 이루어진 바가 없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사리유물의 노출환경에 대한 훼손도를 평가함과 동시에 매장환경에 대한 분석을 진행하고 데이터를 제시하였다. 사리구의 매장환경을 분석한 결과 목탑의 경우는 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지만 석탑은 포화습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사리구 내부의 환경은 1~2일 정도 완충된 외부의 온도에 비교적 민감한 영향을 받지만, 습도와는 무관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사리구 내부의 포화습도에 도달되는 기간은 사리를 봉안하는 날의 외부습도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 탑은 30일이 소요되는 시점에 100% 포화습도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건축물에 사용된 목재 수종의 변천 (Changes in the Species of Woods Used for Korean Ancient and Historic Architectures)

  • 박원규;이광희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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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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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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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We investigated the changes in the species of the woods used for Korean ancient and historic architectures, which include prehistoric excavated relics and existing wooden buildings in South Korea. The species data were collected from various sources such as excavation and repair reports, journal papers, and a few unpublished documents. We divided the building Periods as Paleolithic, Neolitic, Bronze Ages, Iron Age/Three Kingdoms, Koryo, Joseon (early, middle, late) and modem periods. In prehistoric periods, hardwoods were major species. Oak (Quercus spp.) woods dominated (94 percent in average); the others (5%) were Juglans mandshurica, Platycarya strobilacea, Castanea crenata, and few softwoods(1%). During Iron Age and Three Kingdom periods, oaks remained as a major species (57%) and others Platycarya strobilacea(21%), Castanea crenata(13%), and Pinus spp. (6%). The oak woods decreased in Koryo period and they occupied only 1.1%. Instead of oaks, pine (Pinus spp., 71%) and Zelkova serrata (22%) dominated in Koryo. In early and middle Joseon periods, pine woods (73%) remain as a major species and the others were oaks (14%) and Zelkova serrata (9%). As late Joseon came, the pine woods occupied more than 88%. In the late 19th and early 20th centuries, a few boreal species such as larch (Larix spp.) and spruce (Picea spp.), which grow in cold area, were found. We believe they were transported from northern Korea. The existing buildings in Korea are mainly from Joseon period and a few from late Koryo periods. During these periods, pine woods were used for most buildings. For such reason, pine woods were known as 'representative materials for historic buildings'. but earlier times, broad-leaved trees, i.e., oak and Zelkova woods were major materials. The changes in building materials resulted from both climate and human impacts. The dry climate and disturbed forests induce more pines in the mountains. We also compared the wood qualities of the species and found that Zelkova woods were superior ones and deserved more planting for future demands in the repair for historic build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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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대웅전 목조비로자나삼신 불좌상에 대한 고찰 (A Study on the Wooden Seated Vairocana Tri-kaya Buddha Images in the Daeungjeon Hall of Hwaeomsa Temple)

  • 최성은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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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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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0-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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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정유재란을 겪으며 전소(全燒)된 화엄사는 벽암각성(碧巖覺性)(1575~1660)의 주도 아래 재건이 이루어졌다. 대웅전에는 목조비로자나삼신불상이 봉안되었는데, 1634년에 완성하여 1635년에 점안·봉안되었다. 2015년에 석가불상 복장 <시주질>과 노사나불상 대좌 내부 판재(板材)에 적힌 <묵서명>이 조사되고, 2020년에 노사나불상의 복장 <시주질>이 조사되어 비로자나삼신불상의 조성에 참여한 청헌, 응원, 인균을 포함한 열여덟 명의 조각승들이 밝혀졌고 선조(宣祖)의 아들 의창군 이광(李珖)을 비롯한 왕실과 종친, 천명이 넘는 승속(僧俗)의 시주자들이 동참한 대규모 불사였음이 알려졌다. 비로자나삼신불상의 본존은 높이 2.76m의 장육불상으로 당시 불교조각에서 널리 유행하던 장신형의 비례감이 아닌 두부가 크고 어깨가 좁은 고식(古式)의 단구형(短軀形) 비례감을 보인다. 주먹 쥔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싼 비로자나불의 지권인(智拳印)과 보관을 쓴 보살형의 노사나불상은 북송대에 고려로 전해진 전통적인 도상(圖像)이며, 석가불상이 결한 독특한 항마촉지인의 형식은 명(明)에서 전래된 경(經) 변상도에 나타난 도상이 불교조각에 반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화엄사 비로자나삼신불상에서 나타나는 신구(新舊) 양식과 도상의 혼재는 화엄사 불사(佛事)를 맡았던 조각승들이 고려시대 불교조각의 귀족적 전통을 계승한 조선초기 불교미술에서 화엄사 삼신불상의 범본을 구하려했던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전란으로 소실된 고려시대 비로자나삼신불상의 원(原) 모습에 가깝게 복원되기를 바라는 화엄사 산중대덕(山中大德)들의 기대가 불상조성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화엄사 삼신불상의 노사나불상은 고려시대 비로자나삼신불상과 도상적으로 연결될 수 있으며 고려시대의 화엄사에 이와 유사한 도상과 양식의 비로자나삼신불상이 봉안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만우 휘헌의 『화엄사지』(1924)에 따르면, 화엄사는 고려 왕실의 축성의례를 거행해온 사찰로 여겨지는데, 이 전통이 조선후기까지 이어져 화엄사 재건 불사에서 새로 조성된 대웅전 비로자나삼신불상 역시 조선왕실의 축성의례를 위한 예배대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화엄사 재건에 왕실과 종친이 시주자로 참여한 점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경주 지역 지석묘 문화의 특징과 종말기의 양상 (The Characteristics of Dolmen Culture and Related Patterns during the End Phase in the Gyeongju Region)

  • 이수홍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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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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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6-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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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경주 지역 청동기시대 무덤 문화를 검토하고 지석묘의 종말기 양상을 살펴보았다. 청동기시대 무덤 유적 18곳, 초기 철기시대 이른 시기 즉 종말기의 무덤 유적 9곳을 분석하였다. 경주는 검단리 문화 분포권에 포함된다. 현재까지 경주 지역에서 청동기시대 무덤은 약 120기 조사되었다. 주거지의 수에 비해 무덤의 수가 부족한 편인데, 검단리 문화권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무덤의 수는 부족해도 매장주제부의 구조는 다양하다. 경주 지역 청동기시대 무덤의 특징은 토광묘와 묘역식지석묘·적석제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축조된다는 점이다. 토광묘는 동산리유적 부장품인 방추차를 통해서 볼 때 북한 동북 지역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묘역식지석묘와 적석제단은 송국리 문화권에 주로 분포하는데, 특이하게도 검단리 문화권인 경주 지역에서 많이 확인된다. 초기철기시대가 되어도 청동기시대의 영향이 이어진 묘역식지석묘와 적석제단이 계속 축조된다. 새롭게 이주한 점토대토기 문화인들은 목관묘를 축조하였다. 초기철기시대가 되면 새로운 고소의례가 등장하는데 국읍(國邑)에서 주재하는 천신제사(天神祭祀)의 장소일 가능성이 있다. 화천리 산251-1유적과 죽동리유적은 고소의례의 양상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이러한 고소의례에도 묘역식 지석묘와 동일한 형태의 적석제단이 축조되고 지석묘의 상석과 유사한 바윗돌이 이용되었다. 초기철기시대에도 청동기 시대 전통을 유지한 묘역식지석묘와 적석제단이 계속 축조, 이용되는 것은 새로운 시대가 되었어도 지석묘가 가진 권위가 계속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청동기시대로 알려진 묘역식지석묘나 적석제단 일부에서는 초기철기시대까지 의례 행위가 지속되었을 것이다. 기원전 2세기 후반이 되면 목관묘가 군집하기 시작한다. 철기 문화가 확산하고, 중국 중원의 유물이 유입되는 등 경주 지역을 비롯한 남부 지역이 동아시아 네트워크에 포함되는 시점이다. 이때 지석묘 문화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고양 상운사 석불좌상과 조선 전기 조각 양식의 전통과 모색 (The Stone Buddha Statue of Sangunsa Temple at Bukhansan in Goyang, Gyeonggi Province)

  • 심영신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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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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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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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고는 경기도 고양시 북한산 상운사 석불좌상에 대한 연구로, 이 작품은 15세기 후반에 조성된 완성도 있는 석불상의 예로 주목된다. 불상 하부에는 1497년에 조성되었음을 알려주는 묵서명도 함께 전하고 있어 자료적인 가치를 높여 주고 있다. 유존하는 조선 전기 석불상이 귀한 상황에서 상운사 석불좌상은 우수한 조각 작품으로서의 역사성 및 미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최근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본 석불좌상의 형식과 양식을 분석하여 15세기 조선 전기 불상으로서의 미술사적 가치를 구명하였다. 상운사 석불좌상은 육계와 정상계주의 형식, 대의 착의법과 옷 주름의 표현 방식, W자 모양으로 약간 늘어진 가슴, 앙복련의 단순한 연화대좌 등에서 고려의 양식을 이은 전형적인 15세기 불상의 조각적 특징을 보여준다. 여기에 허리가 길어진 장신의 표현은 당시 명으로부터 영향받은 새로운 양식이며 내의를 묶은 띠 매듭이 생략된 것은 향후의 조각 양식을 예고하는 새로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머리의 가르마라든가 내의 위로 늘어진 나뭇잎 모양의 짧은 자락은 상운사 석불좌상만의 독특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고대부터 사찰이 운영되어온 명산 북한산에는 1711년 도성 방비를 위해 산성이 축성되고 산성의 수비와 관리를 위해 승영사찰이 건립되었다. 30년간 팔도도총섭을 지낸 성능은 1745년 지은 『북한지』에서 이 사찰들의 현황을 전하면서 상운사는 승장 회수가 133칸 규모로 창건하였다고 적었다. 1813년의 <상운사극락전중창기> 및 이를 전하는 『봉은본말사지』(1943)에 의하면 상운사의 원래 이름은 노적사로, 1722년 승장 회수가 창건하였으며 1745년 상운사로 개칭하였다. 그런데 상운사 천불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의 발원문과 개금기에 의하면 1713년 상운사의 이름은 노적사였고, 1730년 개금 시의 사명은 상운사, 화주는 회수로 기록되었다. 이에 18세기 초반으로 알려져 있는 상운사의 초창 시기는 상운사 석불좌상의 조성 연대와 부합하지 않아 본고에서는 상운사의 연혁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재검토하고 불상의 조성지를 살펴보았다. 상운사에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석탑 1기가 유존하므로 상운사의 역사를 고려시대까지 올려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또한 상운사 석불좌상은 사찰 인근에서 채취한 석재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상운사가 조선 초에도 운영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북한지』 등에서 언급한 회수가 관여한 133칸 규모의 상운사는 초창이 아니라 중창의 결과로 볼 수 있고, 중창 이전의 이름은 노적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