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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중완구의 제작 기술 (Manufacturing Techniques of Bronze Medium Mortars(Jungwangu, 中碗口) in Joseon Dynasty)

  • 허일권;김해솔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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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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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1-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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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완구(碗口)란 유통식 화기로 발사체 장전 부분이 사발(碗) 형태인 화포이다. 발사체로는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나 단석(團石) 등을 사용하였다. 『화포식언해(火砲式諺解)』(이서(李曙), 1635)에 의하면, 대·중·소·소소완구 등 총 4종으로 구분되며, 실물은 대완구 1점(보물 제857호), 중완구 2점(보물 제858호, 제859호) 등 총 3점이 전한다. 본 연구에서는 임진왜란기에 제작된 국립진주박물관 소장 중완구(보물 제858호)와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소장 중완구(보물 제859호)의 과학적 조사를 토대로 제작 기술을 확인하였다. 첫 번째로 국내 현전하는 중완구가 단 두점인 만큼 정밀 3D 스캐닝 정보를 바탕으로 세부 제원을 서로 비교하고, 동 시기의 문헌 기록 수치와 함께 검토하였다. 전체 크기차는 근소하나 중량에서 5,507g의 차이를 보이고, 세부적으로 심지구멍 위치와 손잡이 길이가 상이하다. 한편 현전 중완구는 『화포식언해』의 중완구 제원과 가장 유사하다. 두 번째로는 중완구의 성분을 분석하고 기존 청동제 화약 무기와 함께 검토하였다. 표면 성분 분석결과, 중완구는 Cu-Sn-Pb의 삼원계 합금이며, 평균 함량(wt%)은 Cu 85.24 : Sn 10.16 : Pb 2.98이다. 중완구의 재료 성분은 기존에 조사된 조선 청동 화약 무기의 평균 성분과 매우 유사하며, 중세 유럽의 청동제 화포 재료(Gun-metal)와도 유사한 경향임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중완구 표면의 주조 결함(casting defect)과 CT 상을 토대로 주조 기법을 추정하였다. 측면의 주조분할선으로 보아 주형을 반으로 나눈 분할 제작(piece mold)이며, 용탕의 주입은 약실끝 부분으로 포구가 바닥에 오는 수직 주형 설계로 추정한다. 특히 포신 기벽에서 주형과 코어를 고정하는 보조 장치인 채플릿(chaplets)이 확인되므로 이는 기벽을 일정하게 형성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한편 보물 제858호와 제859호 중완구 두 점은 외형이 매우 유사하지만, 채플릿의 수량과 배치가 상이하여 주형 설계 일부가 달랐을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 농민저항과 국가-사회 관계의 새로운 조정 (Chinese Agrarian Resistance and A New Mediation of State-Society Relationship)

  • 이기현
    • 국제지역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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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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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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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대중저항은 민주화 과정의 필수적인 요소였다. 이 때문에 중국의 민주화 논의에 있어서도 대중저항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어 왔다. 최근 중국에 새로운 저항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고, 특히 농민저항이 확대되고 있다. 본 연구는 중국 농민저항의 경향과 특징을 파악하고, 중국 국가-사회관계의 변화에 대한 탐색을 통해 밑으로부터의 민주화가 가능한지를 예측해 보고자 했다. 중국 농민저항의 급증은 중국 경제성장의 역설이다. 발전과정에서 농촌사회는 희생을 강요당해 왔기 때문에, 농민들의 불만표출이 확대되었다. 중국정부는 농민저항을 전통적인 억제와 진압의 방식으로 무마시키는 데 한계에 봉착했고, 점차 농민의 불만을 어느 정도 수용하고 무마시키는 자비로운 국가의 이미지 그리고 영리한 안정구매 전략을 구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현대화 과정에서 도시와 농촌간의 격차는 더욱 확대되었고 농민들의 상대적 소외는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중국 농민저항의 불씨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중국 전역에서 횡행하고 있다. 중국 농민저항의 특징 역시 변화했다. 과거에는 산발적이고 간접적인 저항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저항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정부의 사회 통제력이 강하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고, 농촌 시민사회의 형성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정부의 안정구매 전략은 농민들의 불만이 체제 위협으로까지 확대되지 않게 하고 있다. 당분간은 긴장과 충돌이 중국정부로 하여금 국가-사회간의 상호작용을 제도화시켜 농촌 시민사회의 권력 성장을 억제시키고, 거리투쟁을 제도 내 투쟁으로 유도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국가와 농촌사회간의 갈등과 충돌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으며, 농민 저항의 방식이 변화하는 것을 볼 때 중국 국가-사회관계에도 새로운 조정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순사상의 요순관 (Kings Yao and Shun as Understood in Daesoon Thought)

  • 이은희;이경원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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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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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3-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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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지금 세계는 표본으로 삼을 수 있는 21세기 인간상, 사회상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대순진리회는 역사적 요순을 통해 그 전형(典型)을 보여주고 있다. 대순진리회에서는 이러한 요순을 다시 불러내어 현대에 맞게 되살려내고자 한다. 본 논문은 대순사상이 요순을 어떤 측면에서 이해하는지를 분석하여 요순이 오늘날의 현대인에게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연구이다. 대순사상에서는 개벽(開闢)시대를 당하여 '원시반본(原始返本)'이 되므로 '요순의 도가 다시 나타난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고대(古代)로의 회귀(回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비바람을 이기며 성장하여 가을에 새로운 열매를 맺는데, 그 열매에는 본래의 씨앗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때의 씨앗은 본래의 씨앗이지만 씨앗 그 자체만이 아니라 모진 시련 후에 거둔 풍성한 경험이 응축된 완전체를 말한다. 대순사상에 나타난 요순은 다음의 네 가지 관점에서 분석된다. 첫째는 성(聖)과 웅(雄)을 겸비한 이상적 인간상, 둘째는 이상세계의 고대적 전형, 셋째는 대순진리회 '심법(心法) 수도(修道)'의 고전적 근거, 넷째는 '해원상생(解冤相生)' 진리의 역사적 배경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된다. 그러나 대순사상에 나타난 요순의 의미는 전통사상에 머물지 않고 일정한 차이점도 지니고 있다. 대순사상에서 성·웅이 겸비된 상태는 위무(威武)와 형벌을 쓰지 않고 조화로써 법리에 맞게 다스리는 모습이며, 그 이상세계는 천지도수가 조정되어 천재지변이 없고 모든 사람이 선하고 지혜로우며 영화를 영원히 누리는 세상이다. 심법을 말하되 그 심법은 상제에 의해 직접 제시된 '상생의 도'를 성·경·신(誠敬信)으로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요순과 관련된 원한은 대순사상의 핵심진리인 해원상생을 통해 근본적인 원한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요순관에 대한 연구를 통해 대순사상의 이해를 심화하고, 고전적 인물에 대한 상징과 재해석을 통하여 대순사상의 가치를 새롭게 규명하고자 한다.

무인기 기반 RGB 영상 활용 U-Net을 이용한 수수 재배지 분할 (Sorghum Field Segmentation with U-Net from UAV RGB)

  • 박기수;유찬석;강예성;김은리;정종찬;박진기
    • 대한원격탐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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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5_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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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2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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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논·밭 전환 시 수수(sorghum bicolor L. Moench)는 뛰어난 내습성으로 콩과 함께 안정적인 생산이 가능하여 국내 식량작물의 자급률 향상과 쌀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작물이다. 그러나 수량 추정을 위한 재배면적과 같은 기본적인 통계조사는 많은 인력을 투입하여도 오래 걸리는 전통적인 조사 방식으로 인해 잘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무인기 기반 RGB 영상에 U-Net을 적용하여 수수 재배지 비파괴적 분할가능성을 확인하였다. 2022년에 7월 28일, 8월 13일, 8월 25일에 각각 영상이 취득되었다. 각 영상취득 날짜에서 512 × 512 영상크기로 훈련데이터셋 6,000장과 검증데이터셋 1,000장으로 나누어 학습을 진행하였으며 수수 농경지(sorghum), 벼와 콩 농경지(others)와 비 농경지(background)로 구성된 세 개 클래스와 수수 농경지와 배경(others+background)으로 구성된 두 개 클래스 기반으로 분류모델을 개발하였다. 모든 취득 날짜에서 세 개 클래스 기반 모델에서는 수수 재배지 분류 정확도가 0.91 이상으로 나타났지만 8월 데이터셋의 others 클래스에서 학습 혼동이 일어났다. 대조적으로 두 개 클래스 기반 모델에서는 8월 데이터셋의 안정적인 학습과 함께 모든 클래스에서 0.95 이상의 정확도를 나타내었다. 결과적으로 8월에 두개클래스 기반 모델을 현장에 재현하는 것이 수수 재배지 분류를 통한 재배면적 산출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된다.

신라 시조 혁거세왕 신화에 대한 분석심리학적 연구 (A Study of Myth of King Heokgeose, the Founder of Shilla Dynasty from a Perspective of Analytical Psychology)

  • 한상익
    • 심성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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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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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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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C. G. Jung은 일찍이 신화(神話)나 민담(民譚, Märchen)에서 인간 무의식의 보편적, 원초적 조건이 발견된다고 하였다. 우리의 일상에서 이러한 인간심성의 보편성을 흔히 체험할 수 있는 것은 꿈이다. 그러므로 꿈에 나오는 인간 심성에 있는 보편적인 원형상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신화소(神話素)들이 등장하는 신화나 민담들에 대한 분석심리학적 해석을 시도해 보는 것은 실제 임상에서 마주치게 되는 이런 '큰 꿈'들을 충실히 이해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저자는 신화에 대한 분석심리학적 해석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 대상에 대한 탐색을 하면서 신화소에 나타나는 '원형'의 보편성을 우리 민족 전래의 신화 속에서 찾아보기 위해 삼국유사를 살펴보던 중 기이편(紀異篇)에 나오는 신라(新羅)의 건국신화인 혁거세왕(赫居世王) 신화에 주목을 하게 되었다. 신라는 일찍 건국이 되긴 하였지만 한반도 남부 끝자락에 위치한 제일 작은 나라로서 고구려, 백제에 비해 정치, 군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장 늦게 발전한 나라였음에도 결국 삼국을 통일하고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긴 거의 1000년(BC57~AD935)의 역사를 이어온 나라라는 점에서 건국과 관련된 남다른 바탕이 있었는지 그들의 건국신화에 있는 원형상(原型像)들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한반도의 남쪽 작은 나라였던 신라의 건국시조의 탄생신화가 탄생전의 상태에서부터 탄생, 배필의 탄생, 성장, 결혼, 즉위, 다스림, 죽음, 죽음 이후, 계승까지 거의 완전한 줄거리를 갖고 있다는 것은 매우 주목되는 점이다. 이 신화에 나오는 1, 3, 5, 6, 7, 13, 61 등 다양한 숫자 상징, 동, 서, 남, 북과 중심을 포함한 모든 방위, 호랑이, 백마, 닭, 용, 봉(鳳) 뱀 등 많은 동물상징, 중심적인 상징인 알을 비롯한 바위, 박(瓢), 전광(電光), 샘물, 내(川), 나무, 숲, 산, 쇠 등 자연의 상징과 선도성모 같은 신상(神像) 등 점차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등장하는 온갖 상징들은 이 짧은 신화 속에 온 인류가 경험해온 의식의 탄생, 부성과 모성의 합일을 통한 성장과 발전, 소멸, 재생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그런 과정이 다음 세대로 영원히 계승되는 웅대한 이야기가 재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신화의 한 단어, 한 문장 또는 별로 의미를 찾을 수 없어 보이던 내용들이 점차 그 뜻을 드러내고 있었고, 무의식과 의식의 상호 작용이 그 모습을 달리 하며 계속 반복되며, 중층적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입지와 장소 특성으로 본 암각바둑판의 의미와 문화재적 가치 (A Study on the Meaning and Cultural Properties Value of Rock-Go-Board from the Viewpoint of Site and Location Characteristics)

  • 박주성;노재현;심우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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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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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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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종합적인 현황 조사 분석을 통해 국내 돌바둑판의 위치 및 형태 그리고 입지 유형을 파악하는 한편 주변 경물과 각자 그리고 인근의 전래지명과의 관련성 분석과 해석을 통해 암각바둑판의 본질적 특성 및 장소적 의미 그리고 문화재로서의 가치 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바둑판에 나타난 '네모난 바둑판과 둥근 바둑돌'의 천원지방적(天圓地方的) 형상, 흑백 바둑돌로 표상되는 음양조화 그리고 하늘 회전을 표현한 361로 등은 '우주적 질서가 투사(投射)된 상징체'이다. 또한 영원성을 바탕으로 바둑 삼매경에 빠진 '귤중지락(橘中之樂)'과 '상산사호(商山四皓)' 그리고 '난가(爛柯)' 모티프는 속세를 벗어난 망우청락(忘憂淸樂)의 '위기선미(圍棋仙味)'를 통해 '인생과 자연'의 관계를 시공간적으로 일치하고자 했던 천인합일의 표상이자 우미와 소요를 추구한 고아한 풍류였다. 본 연구를 통해 확인된 돌바둑판은 총본 연구는 종합적인 현황 조사 분석을 통해 국내 돌바둑판의 위치 및 형태 그리고 입지 유형을 파악하는 한편 주변 경물과 각자 그리고 인근의 전래지명과의 관련성 분석과 해석을 통해 암각바둑판의 본질적 특성 및 장소적 의미 그리고 문화재로서의 가치 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바둑판에 나타난 '네모난 바둑판과 둥근 바둑돌'의 천원지방적(天圓地方的) 형상, 흑백 바둑돌로 표상되는 음양조화 그리고 하늘 회전을 표현한 361로 등은 '우주적 질서가 투사(投射)된 상징체'이다. 또한 영원성을 바탕으로 바둑 삼매경에 빠진 '귤중지락(橘中之樂)'과 '상산사호(商山四皓)' 그리고 '난가(爛柯)' 모티프는 속세를 벗어난 망우청락(忘憂淸樂)의 '위기선미(圍棋仙味)'를 통해 '인생과 자연'의 관계를 시공간적으로 일치하고자 했던 천인합일의 표상이자 우미와 소요를 추구한 고아한 풍류였다. 본 연구를 통해 확인된 돌바둑판은 총 18개로 이중 강진 월남사지 돌바둑판, 양산 소한정 돌바둑판, 반룡대 돌바둑판 등 3개소(16.1%)는 이동이 가능한 석국으로 분류된 반면 방학동 돌바둑판을 비롯한 15개소(83.9%)는 자연 암반에 새긴, 원래 장소를 이탈하지 않은 암각바둑판으로 밝혀졌다. 돌바둑판의 입지조건을 유형화한 결과, 계류형 15개소(83.9%), 암봉형 3개소(16.1%)로 나타났으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은 소백산 신선봉 암각바둑판(1,389m)이었다. 총 15개 돌바둑판은 모두 500m 이하의 저산지에 입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바둑판이 새겨진 입지는 속세와 멀지 않은 생활권의 일부였으며 모두 경관성이 탁월한 계곡 및 산봉에 입지하였다. 돌바둑판은 옛 선비들의 풍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찰되는바 특히 암각바둑판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조화를 추구하며 명산대천(名山大川)을 찾아 함께 노니는 풍류도의 정신을 전승한 것으로 파악된다. 즉 궁극적으로 바둑의 전통적인 상징성인 '은일의 매개체이자 자연귀의의 도에 다다를 수 있는 선비문화의 정수'인 동시에 유선적 취향의 도구로서 자리매김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징적으로 암각바둑판이 새겨진 단양 소백산 신선봉을 비롯하여 괴산 선국암, 무주 사선암, 장수 신선바위 등은 신선과 관련된 지명의 일체감이 매우 높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신선' 바위와 암각바둑판이야말로 선계에 대한 숭배와 동경의 소통방식이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된 경관대상이자 조망처로 판단된다. 한편 암각바둑판이 입지하는 장소의 입지유형 등 물리적 환경과 팔경 및 동천구곡의 설정 여부, 유학자 등의 관련 여부를 중심으로 한 '인간활동' 그리고 '상산사호' 모티프 및 '난가고사' 상징의미 등 3가지를 '장소정체성 판단을 위한 해석 틀'을 기준으로 하여 고찰한 결과, 암각바둑판 주변에 각자 되어있는 동천, 동문 등의 모티프는 주자학적 '구곡팔경'의 개념 보다는 선취적 '선유동천' 개념의 공간성 모색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계류형 암각바둑판이 조성된 공간은 유가의 은둔지향적 공간이나 선도적 은일지향적 공간으로 시대추이에 따라 습합되어 온 것으로 판단되며 산봉형의 암각바둑판은 별도로 신선 강림의 숭엄지향성이 장소정체성 지배의 중요 요인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암각바둑판이 조성된 곳을 포함하여 그 주변은 동천구곡이나 팔경의 일부로 널리 알려진 승경의 요처임이 확인되었다. 또한 선비 및 사대부 계층이 주체인 주변 각자들 중에도 신선 관련 표현어가 다수 발견됨에 따라 바둑판 조영의식의 이면에는 신선경 동경을 바탕으로 한 선도적 취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를 총합할 때 암각바둑판은 조선조 선비들의 은일과 운둔을 통한 자연경영의 문화 현상이 집약적으로 함축된 유산이자 전래 승경의 요처로, 명승과 같은 자연문화재로서의 가치가 탁월한 대상임이 확인되었다. 현재 남한내 17개의 돌바둑판 중에서 소백산 신선봉 암각바둑판을 비롯하여 방학동 암각바둑판, 충주 사로암 암각바둑판, 무주 사선암 암각바둑판, 양산 어곡동 반룡대 석국 등은 세월의 풍파와 사람들의 접촉으로 마모되면서 바위가 깨어지거나 바둑판 줄이 희미해지고 있다. 또한 언양 반구대 집청정 암각바둑판은 토사 매몰로 그 형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암각바둑판은 자연과 바람의 흐름을 그대로 투영한 예술적, 문화재적 가치가 탁월한 조형물이자 선인들의 자연 사랑의 마음과 선계동경의 문화가 만나 이루어진 문화유적으로, 이에 대한 국내 분포 현황에 대한 체계적인 정밀조사와 보존관리가 시급하다고 사료된다. 18개로 이중 강진 월남사지 돌바둑판, 양산 소한정 돌바둑판, 반룡대 돌바둑판 등 3개소(16.1%)는 이동이 가능한 석국으로 분류된 반면 방학동 돌바둑판을 비롯한 15개소(83.9%)는 자연 암반에 새긴, 원래 장소를 이탈하지 않은 암각바둑판으로 밝혀졌다. 돌바둑판의 입지조건을 유형화한 결과, 계류형 15개소(83.9%), 암봉형 3개소(16.1%)로 나타났으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은 소백산 신선봉 암각바둑판(1,389m)이었다. 총 15개 돌바둑판은 모두 500m 이하의 저산지에 입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바둑판이 새겨진 입지는 속세와 멀지 않은 생활권의 일부였으며 모두 경관성이 탁월한 계곡 및 산봉에 입지하였다. 돌바둑판은 옛 선비들의 풍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찰되는바 특히 암각바둑판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조화를 추구하며 명산대천(名山大川)을 찾아 함께 노니는 풍류도의 정신을 전승한 것으로 파악된다. 즉 궁극적으로 바둑의 전통적인 상징성인 '은일의 매개체이자 자연귀의의 도에 다다를 수 있는 선비문화의 정수'인 동시에 유선적 취향의 도구로서 자리매김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징적으로 암각바둑판이 새겨진 단양 소백산 신선봉을 비롯하여 괴산 선국암, 무주 사선암, 장수 신선바위 등은 신선과 관련된 지명의 일체감이 매우 높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신선' 바위와 암각바둑판이야말로 선계에 대한 숭배와 동경의 소통방식이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된 경관대상이자 조망처로 판단된다. 한편 암각바둑판이 입지하는 장소의 입지유형 등 물리적 환경과 팔경 및 동천구곡의 설정 여부, 유학자 등의 관련 여부를 중심으로 한 '인간활동' 그리고 '상산사호' 모티프 및 '난가고사' 상징의미 등 3가지를 '장소정체성 판단을 위한 해석 틀'을 기준으로 하여 고찰한 결과, 암각바둑판 주변에 각자 되어있는 동천, 동문 등의 모티프는 주자학적 '구곡팔경'의 개념 보다는 선취적 '선유동천' 개념의 공간성 모색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계류형 암각바둑판이 조성된 공간은 유가의 은둔지향적 공간이나 선도적 은일지향적 공간으로 시대추이에 따라 습합되어 온 것으로 판단되며 산봉형의 암각바둑판은 별도로 신선 강림의 숭엄지향성이 장소정체성 지배의 중요 요인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암각바둑판이 조성된 곳을 포함하여 그 주변은 동천구곡이나 팔경의 일부로 널리 알려진 승경의 요처임이 확인되었다. 또한 선비 및 사대부 계층이 주체인 주변 각자들 중에도 신선 관련 표현어가 다수 발견됨에 따라 바둑판 조영의식의 이면에는 신선경 동경을 바탕으로 한 선도적 취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를 총합할 때 암각바둑판은 조선조 선비들의 은일과 운둔을 통한 자연경영의 문화 현상이 집약적으로 함축된 유산이자 전래 승경의 요처로, 명승과 같은 자연문화재로서의 가치가 탁월한 대상임이 확인되었다. 현재 남한내 17개의 돌바둑판 중에서 소백산 신선봉 암각바둑판을 비롯하여 방학동 암각바둑판, 충주 사로암 암각바둑판, 무주 사선암 암각바둑판, 양산 어곡동 반룡대 석국 등은 세월의 풍파와 사람들의 접촉으로 마모되면서 바위가 깨어지거나 바둑판 줄이 희미해지고 있다. 또한 언양 반구대 집청정 암각바둑판은 토사 매몰로 그 형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암각바둑판은 자연과 바람의 흐름을 그대로 투영한 예술적, 문화재적 가치가 탁월한 조형물이자 선인들의 자연 사랑의 마음과 선계동경의 문화가 만나 이루어진 문화유적으로, 이에 대한 국내 분포 현황에 대한 체계적인 정밀조사와 보존관리가 시급하다고 사료된다.

편액과 시문으로 본 요월정원림(邀月亭園林)의 입지 및 조영 해석 (The Location and Landscape Composition of Yowol-pavilion Garden Interpreted from Tablet & Poetry)

  • 이현우;김상욱;임근홍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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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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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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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연구는 편액과 시문이 과거 누정원림의 고유한 입지 및 조영 특성 추론의 중요한 준거(準據)가 된다는 전제 하에, 요월정원림(邀月亭園林)을 대상으로 과거 시점의 입지 및 조영 해석을 고구(考究)하기 위해 시도되었다. 요월정원림이 갖는 의미와 문화재적 위상과 가치의 진정성 제고 및 보존의 당위성을 논의할 목적으로 시도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요월정원림은 정원주 김경우(金景遇)를 비롯한 당대 거유들이 교유한 시율풍류의 현장이었다. "조선환여승람 호남읍지(湖南邑誌) 장성읍지(長城邑誌)" 등 고문헌을 통해 사화(士禍)를 피해 머문 은신처로서의 성격과 함께 지역정체성을 형성한 교두보로서의 장소성이 확인되었다. 또한 "요월정원운(邀月亭原韻)"을 통해 누정원림 작정(作庭) 의도 및 조영 동기를 확인한 바, 요월정원림은 세속과 탈속 그리고 현실과 이상이 뒤섞여 길항(拮抗)한 공간으로 해석된다. 둘째, 당호 요월(邀月)은 누정에서 조망했을 때의 승경적 요인 및 자연현상과 관련된 명칭으로, 마주한 '월봉산에 뜨는 달을 맞이함'을 함의하는 어휘로, 이는 자연의 섭리이자 풍류로서 탈속의 이미지와 맞닿아 있다. 즉 요월정은 세속의 희비를 벗어나 자연의 섭리를 따르려한 조영 의도를 반영한 당호로 해석된다. 셋째, 요월정원림의 입지는 "영광속수여지승람(靈光續修輿地勝覽)"을 통해 조영자가 퇴관 후 휴식을 위해 마련한 처소였으며, 월봉산을 마주하여 황룡강(黃龍江)이 굽이쳐 흐르던 승경지였음을 고문헌과 다수의 시문을 통해 확인하였다. 특히, 수호인 인터뷰에 따르면 요월정원림에서 야경의 시지각 빈도(頻度)는 수호인 거처인 고직사에서 요월정을 향해 황룡강 방향인 동쪽을 숙시각(熟視角)으로 조망했을 때가 가장 높다고 한다. 또한 시지각 강도(强度)가 가장 높고 아름다운 풍경은 요월정 좌측 배후면에서 달이 부상하여 요월정 전면(前面)의 배롱나무동산을 가로질러 요월정과 마주한 월봉산 사이에 남중한 때로 증언한 바 있다. 현재 요월정원림의 좌향은 $SE\;141.2^{\circ}$로서 거의 남동향 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요월정 좌향 설정은 지형조건뿐 아니라 달의 궤적을 유상(遊賞)하기에 최적화된 방향과 시계(視界)를 확보하기 위한 기도(企圖)가 담겼다고 판단된다. 나아가 전면의 황룡강 수면 위로 남중한 달빛이 투영됨으로써, 하늘의 달과 황룡강 강물에 투영된 달이 동시에 감지되게끔 고려된 것으로 추론된다. 넷째, 현재 요월정원림은 요월정과 광산김씨문숙공파종회각(光山金氏文肅公派宗會閣) 및 고직사(庫直舍)로 구성된 '내원 권역'과 진입부를 아우른 배롱나무동산 및 소나무 배후림이 포함된 '외원 권역'으로 구분된다. 나아가 '용소 및 수생식물원 권역' 및 최근 조성된 '황룡정과 공원 권역'으로 외연(外緣)이 확산되면서 교란되고 변용되었다. 다섯째, 조영 당시 요월정원림은 누정에서 조망한 풍경을 안아 들여 누정을 중심으로 지근거리의 일정한 자연을 점유한 방식인 '경계 없는 산수원림'이었으나, 현재 복합경관은 과거 원형경관과는 괴리된 '이질화 분절화 파편화된' 경관으로 파악된다. 마지막으로, 요월정원림이 문화재지정보호구역임을 감안할 때, 편액과 기문에 묘사된 완전한 원형경관으로의 복원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원림권역에서의 경관적 악영향과 시각적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수립이 요망된다.

소비자의 부정적 브랜드 루머의 수용과 확산 (Consumer's Negative Brand Rumor Acceptance and Rumor Diffusion)

  • 이원준;이한석
    • Asia Marketing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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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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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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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루머는 신뢰할 만한 타당한 근거나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하게 이야기되는 일상적인 대화나 의견으로서 오랜기간 소비자 개개인의 사적 영역의 문제였다. 그러나 대중의 사랑과 주목을 받는 기업이나 브랜드는 선천적으로 소비자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질 수 없으며, 항상 루머의 주요한 소재가 되어 왔다. 그 결과 현대의 소비자 커뮤니케이션 환경에서 루머는 기업 경영활동에 중요한 위기 요인이 되고 있다. 기업과 브랜드들이 당면하는 소비자 루머들은 크게 기업과 관련된 음모성 루머와 상품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오염성 루머로 나누어지며 국내외에서 많은 위기 사례들이 발견되고 있다. 심지어 P&G, SK, 현대, 삼성처럼 잘 정비된 홍보 조직을 갖춘 굴지의 대기업들조차 이런 루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기존의 대응방식 역시 적절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부정적 루머가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는 해당 기업의 매출 및 점유율 하락은 물론 주식 가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오랜기간 구축해온 소비자와의 관계마저 황폐화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확산과 더불어 브랜드와 관련된 루머의 중요성은 더욱 증대하고 있으나 루머 연구는 지금까지 기업이나 마케팅 연구자의 정당한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이에 본 연구는 루머의 다각적인 측면을 고려하는 상황주의자적 연구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지각된 유용성, 원천 신뢰성, 메시지 신뢰성, 걱정, 생동감과 같은 루머와 관련된 속성들이 루머 수용강도와 루머 구전의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다. 이를 위하여 가상 브랜드와 루머가 제시되었으며, 실증조사를 통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이 이루어졌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원천 신뢰성, 메시지 신뢰성, 걱정, 생동감 같은 루머 특성 변수들은 루머 수용 강도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고, 루머 수용강도는 루머 구전의도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지각된 중요성은 루머 수용강도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상품 관여도의 조절효과 역시 유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본 연구는 주요한 실무적, 학문적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첫째, 루머를 자연발생적인 사회 현상이 아니라 소비자의 주요 활동의 일부이며, 마케터의 관심과 대응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필요한 브랜드 관련 현상임을 주장하였다. 둘째, 브랜드 루머의 심리적, 사회적인 다차원적 구성 요인과 확산되는 경로를 제시함으로서 루머에 대한 능동적인 관리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셋째, 온라인상의 루머 활동이 기업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제시함으로서 기업들의 적극적인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활동과 평판 관리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넷째, 소비자의 걱정과 같은 부정적 정서가 루머의 온상이 되고 있음을 규명함으로서 소비자의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하여 정확하고 진실된 정보를 제공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다섯째, 루머의 유용성이 확산에 미치는 영향 가설이 기각되었으며, 상품 관여도의 조절 효과 역시 기각되었다. 이는 루머를 접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볼 때, 루머 자체가 무의미하더라도 단순한 재미나 호기심만으로도 얼마든지 확산될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사실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루머를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경우들이 있으나, 기업의 예상과 다르게 루머가 얼마든지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기업의 보다 세심한 대응 전략의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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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신사 기본계획에 따른 신당건축 고찰 (A Study on the Basic Planning of the Nam-Hae Sin-Sa Architecture)

  • 김상태;장헌덕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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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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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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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2000년에 발굴된 영암 남해신사는 나라의 안녕과 구복을 위한 국가제사시설로 2001년 신당과 삼문을 복원하였다. 해신사는 바다의 용왕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남해신사와 동해묘, 그리고 서해신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해묘도 복원된 상태이다. 그러나 현재 복원된 남해신사의 신당과 삼문은 2000년 발굴도와 내용에 따른 완전한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고, 관련 문헌과 고지도 분석, 그리고 발굴내용의 심층분석과 아울러 관련 인물들의 인터뷰 내용과 사례분석을 통하여 새로운 기본계획을 연구하게 되었다. 본 연구를 통해서 남해신사 추정 기본계획에 따른 신당건축 고찰에 대한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1. 남해신사는 국가에서 직접 운영한 국가 제사시설로 나라의 안녕과 기우를 지내는 악(嶽) 해(海) 독(瀆)을 대표하는 신당 건축이다. 특히 남해신사는 중국과 일본의 국제무역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그 중요성이 강조되었으며, 지리산 제단과 함께 호남지방의 중심적인 신당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2. 해신사에 대한 명칭은 남해신사, 동해묘, 서해단으로 정의되어 불리었다. 그러나 남해신사의 경우 조선 초기와 후기의 명칭이 문헌과 고지도 연구를 통하여 남해신사에서 남해당으로 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서해단의 경우 조선 초기에는 건축물이 없는 단으로 조성되었다가, 후기에 건축물이 조성된 사당형식으로 변하였음을 고지도 연구를 통하여 추정할 수 있었다. 3. 해신사에 대한 고지도 분석은 동해묘의 경우 맞배지붕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나, 서해단과 남해신사의 경우 팔작지붕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4. 2000년 발굴내용에 의한 용척 분석결과 나타난 다양한 용척의 사용은 고려시대 남해신사의 규모가 대사(大祀)의 규모로 개창되었지만 조선시대에 중사(中祀)의 규모로 중창되었다는 기록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즉 조선시대 중사로 중건하면서 용척의 척도로 조선시대 영조척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5. 상기의 연구결과에 따른 기본계획은 신당의 경우 팔작지붕의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3 : 2비율로 계획하였으며, 용두와 용미가 장식된 안초공, 내부의 운공과 파련대공 장식, 그리고 용두의 충량은 해신인 용왕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시설임을 표현하였다. 중문간채와 대문간채의 경우 향교건축과 같은 규모와 구성으로 계획하였는데, 발굴내용을 기초로 하였으며, 대문간채 솟을 문의 경우 3칸을 솟을 대문으로 올렸다. 이는 대문간채의 측칸이 맞배지붕의 형태이므로 그 비례와 형태의 조화를 고려하였다. 6. 남해신사의 기본계획은 계룡산 중악단의 사례와 같이 신당과 중문간채, 대문간채에 이르는 2가지의 공간, 즉 신당공간과 준비 공간으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었으며, 남해신사 서쪽에 위치한 우물은 신당건축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난중일기≫에서 본 이순신의 꿈과 인격의 몇 가지 측면: 분석심리학적 입장에서 (Dreams of Admiral Yi Sun-sin (1545-1598) in Nanjung Ilgi (Diary in War Time) and Some Aspects of His Personality: From Jungian Viewpoint)

  • 이부영
    • 심성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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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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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9-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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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이순신 ≪난중일기≫를 중심으로 이순신의 인격의 몇 가지 의식적 측면을 살펴보고 이순신의 꿈을 분석심리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무의식의 목적의미를 추론하고자 하였다. 그의 인간성은 알려진 바와 같이 충, 효를 철저하게 실천했고 나라를 위해 헌신한 영웅의 상과 일치한다. ≪난중일기≫에는 그의 강직함과 함께 매우 인간적인 감성, 오해와 정치적 박해를 겪어야하는 말할 수 없는 고통, 절망과 고독, 육친을 잃은 통곡이 숨김없이 묘사되고 있다. 일기쓰기와 이순신의 '아니마'의 또 다른 표현인 달밤의 시, 피리와 거문고 소리, 그리고 또한 불가해한 꿈을 보고 점을 쳐서 미래를 알아봄으로써 그는 그의 고독을 스스로 치유했다. 미래의 영웅을 키우고 이끌어준 어머니의 위대한 역할과 융이 말하는 모성콤플렉스와의 관계를 살펴보았고, 이순신이 평생 괴로워한 '흉인', 원균이 이순신의 '그림자'로서 이순신이 의식화해야 했던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었다고 추정했다. 이순신의 죽음을 둘러싼 추측은 근거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난중일기≫에 기술된 이순신의 꿈 중 꿈의 내용이 조금이라도 기술된 꿈 32개와 이순신의 조카 이분(李芬)이 남긴 ≪이충무공행록≫에 수록된 꿈 3개, 총 35개를 살피고 특히 원형적 꿈을 분석심리학적 입장에서 해석하였다. 그 결과 첫째로 받은 인상은 꿈이 이순신에게 '신격에 의해 선택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되풀이 알려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순신은 이를 바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한 태도 때문에 오히려 자아의 팽창에 빠지지 않았다. 동시성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꿈과 이에 대한 이순신의 태도를 소개했다. 건강을 해치거나 편견에 빠질 위험을 경고하는 꿈도 있었고 '아니마'상, '자기'의 상징, 창조적 변환의 상징도 꿈에 나타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임을 시사하는 꿈이 있었다. 그는 이를 몰랐거나 알았더라도 그런 생각에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현세적 왕보다 더 위대한 호국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항상 천명(天命)을 살폈다. 그리고 천명은 그를 영웅의 길로 인도하면서 영웅신화에 불가결한 고행의 시련을 주었다. 박해자와 위로하는 자가 함께 그의 길을 인도했다. 그의 어머니, 원균, 선조, 그리고 영의정, 유성용까지 모두 이순신 영웅신화를 구체화하는데 기여했다. 이순신은 죽고 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