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the 16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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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에 나타난 조망행동 - 진경산수화 100엽을 대상으로 - (Prospect Behavior in the Analysis of Kyumjae Chung Sun's One Hundred Scenes from the Real Landscape Painting)

  • 강영조;배미경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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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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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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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onsider the relationship between point of view and prospect behavior occurring in the experience of a painted landscape. This study analyzes one hundred scenes from the 'real landscape painting' by Kyumjae, one of the most famous landscape painters in 18th century Korea. The results of the study are as follows: 1. It clarified that Kyumjae's real landscape painting's 100 scenes have many view points such as roads, bridges, pavilions, mansions, towers, terraces, hillsides, bases of mountains, broad flat roots, brooksides, and ferries that are apt to occur in the experience of a landscape. The spatial characteristics of view points are expanded fields of vision, evening and night scenes, edges of landforms and structures from which to improve ones vantage point. 2. It showed that 99 out of real landscape painting's 100 scenes depict a view point'to look'and 79 of 'to look through', 73 of 'look around'and 24 of 'to look over'. 3. It showed that real landscape painting's 100 scenes depict that the view point 'to look' is mainly upon a road from which people are looking over an elevated landscape such as the top of a mountain or rockwall. The view behaviors of looking down are depict 15 pavilions, 14 mansions, 2 broad rocks and 10 mountain tops on which people experience landscapes such as fields, rural communities and streams. The view behaviors to look depict 33 ships, 24 roads, 24 pavilions, 19 mansions and 12 terraces on which people experience landscapes such as distant views of mountains, rivers and landscapes. The view behaviors to look around to obtain orientation of landscape are depict 16 pavilions, 10 mountaintops. To glimpse on the way of journey depict 33 ships and 29 roads. To look over depict 11 mansions and 6 pavilions on which experience borrows the landscape. To look through landscapes such as rivers, mountains and rockwalls depict 15 roads, 14 pavilions and 11 mansions. To exchange looks depict 30 ships, 14 roads, 12 pavilions and 12 mansions. We expect that these results might give clues toward the experience of landscapes and the practice of landscape design methods which select viewpoints, and in the design of view points suitable to prospect behaviors.

산성취락연구(山城聚落硏究) : 남한산성(南漢山城) 광주읍치(廣州邑治)의 형성(形成)과 쇠퇴(衰退) (The Establishment and Transformation of the Mountain Fortress Town of Kwangju County in Kyonggi Province)

  • 홍금수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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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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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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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남한산성(南漢山城)은 병자호란을 상징하는 경관요소로서 치욕스러운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채 한강남쪽 평지 한 가운데 솟아있다. 남한산 아래의 고위평탄면상에는 산성의 수축을 계기로 고골(古邑)에서 이전해온 광주부(廣州府)의 치소(治所)가 자리하였는데, 조선시대에 성내동(城內洞)으로 불리다가 1910년에 읍내동(邑內洞), 1914년에는 다시 산성리(山城里)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생활환경이 열악한 일개 산촌에 불과했던 산성마을은 행정중심지로 계획되었으며 정책적으로 모임(募入)한 300여 호에서 출발하며 전성기에는 600호 가까운 규모로 성장하였다. 성내에는 종묘봉안처(宗廟奉安處)(좌전(左殿)), 사직봉안처(社稷奉安處)(우실(右室)), 행궁(行宮)을 겸한 광주부(廣州府)의 관아(官衙), 수어영(守禦營)과 광주부(廣州府) 소속의 공해, 시장(市場) 등 유교적인 도회도식(都會圖式)에 규정된 기본요소로 구성된 상징경관이 형성되었다. 성내동민(城內洞民)은 복호(復戶)의 혜택이 주어진 산성 안팎의 토지를 경작하고, 상품을 교역하는 한편, 모군(募軍)으로 자신의 노동을 상품화하면서 궁핍한 생활을 이어갔다. 사회경제적인 상황의 변화와 함께 1917년 산성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자리한 주막리(酒幕里)가 광주군 신 청사의 입지로 결정되면서 산성취락은 해체단계를 맞아 한적한 벽촌으로 남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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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C-W 흙막이 벽체를 이용한 건축물 지하증설벽체에서 PHC-W말뚝의 선단지지력 산정에 관한 연구 (A Study on Estimation of End Bearing Capacity of a PHC-W Pile in Building Underground Additional Wall Using the PHC-W Earth Retaining Wall)

  • 김채민;윤대희;이창욱;;김성수;최용규
    • 한국지반공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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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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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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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최근 도시 인구의 밀집으로 대형구조물의 건설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대형구조물의 기초도 발전하고 있다. 2000년대 말에 일본의 기술을 도입하여 PHC말뚝은 많은 구조물에 사용되고 있다. 최근 PHC말뚝의 장점을 이용하여 흙막이 벽체로의 사용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 연구에서는 PHC-W 흙막이 벽체를 이용한 건축물 지하증설벽체에서 PHC-W말뚝을 주열식으로 시공하여 연직 압축정재하시험을 실시하였으며, 하중전이 측정을 통하여 PHC-W말뚝의 선단지지력을 산정하였다. 풍화암에 근입된 PHC-W말뚝의 지지력은 기존 PHC말뚝의 지지력과는 차이를 보였으므로, 주열식으로 시공된 PHC-W말뚝의 선단지지력 산정식을 제안하였다. 풍화암에 근입된 PHC-W말뚝의 단위극한선단지지력 산정식으로 주열식 군PHC-W말뚝과 단일PHC-W말뚝에서 각각 $q_b=6.8N_b$$q_b=13.3N_b$로 제안할 수 있었다.

조선후기 혁화의 그래픽 콘텐츠 연구 (A Study on the Graphic Contents of Hyuk-Wha in the late Chosun Dynasty)

  • 이명구;남인복
    • 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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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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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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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조선 후기인 18세기 전후에는 각종 민화(Min-Wha)들이 민중들의 생활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면서 소재나 기법에서 독특하고 다양한 작품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민화 가운데에서 특이한 표현 양식 중 하나로 혁화(Hyuk-Wha)를 들 수 있다. 혁화는 그 기법으로 볼 때, 서예의 표현 양식의 하나로 분류되는 비백서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는데, 버드나무 껍질이나 갈대류의 줄기를 바르게 펴서 붓 대용품으로 써서 작업한 비백서의 다소 거친 질감과는 시각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혁화의 발전 과정은 민화 전체의 발전 과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도교적인 길상문자 문자도 및 유교적인 효제문자도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형식의 창의적이고 차별화 된 문자도 형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문자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와 한자의 뛰어난 조자력을 상징적으로 조형화 한 혁화는 오늘날 그래픽 분야의 워드 마크(Word Mark)나 브랜드 로고타입(Brand Logotype) 등에 응용되는 픽토그래피(pictography)와도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민중의 집안을 꾸미고 장식하는 용도로 성행했던 혁화는, 오늘날 다양한 장식용품의 등장과 현대화된 주택의 발달로 그 용도는 거의 소멸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동안 민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고 서예 및 문자도 와 더불어 발전해 온 혁화가 서구에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는 현시점에 비추어 볼 때, 그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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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es of Korean Furniture in the Late Choseon Dynasty (I)

  • Song, Ji-Ae;Park, Won-Kyu
    • 한국가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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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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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86-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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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후기 조선시대 (주로 19세기) 목가구 82점에 사용된 수종을 목재해부학적으로 식별한 결과, 총 22종의 수종이 나왔다. 침엽수는 소나무류, 잣나무류, 전나무속, 은행나무, 가문비나무속, 비자나무, 편백나무속, 외래산소나무로 8종이 분석되었으며, 활엽수는 느티나무, 피나무속, 오동나무속, 오리나무속, 참죽나무, 가래나무속, 감나무속, 배나무속, 자작나무속, 밤나무속, 사시나무속, 느릅나무속, 음나무 등 13종이, 그리고 외떡잎식물로 대나무 1종이 확인되었다. 수종의 점유율로 보면 소나무류(43%), 느티나무(9%), 오동나무속(7%), 피나무속(7%) 순이었다. 한 수종만 쓰인 가구가 37점(45%)으로 가장 많았으며 최대 6수종까지 한 가구를 제작하는데 사용되었다. 지역별 반닫이에 사용된 수종의 특징을 조사한 결과, 북부지방에서 제작된 반닫이는 피나무속과 소나무류가, 중남부지역에서 제작된 반닫이는 모두 공통적으로 소나무류와 느티나무가 사용되었다. 부재 용도에 따라 골재와 판재에는 소나무류, 느티나무, 참죽나무 등 대체로 단단하고 강도가 강한 목재가, 그리고 화장재로는 아름다운 무늬를 가지거나 독특한 재색을 가지거나, 가공하기 용이한 산공재 등 다양한 수종이 사용되었다. 서랍재의 재료는 가볍고, 변형이 적어야 하므로 비중이 낮고, 변형률이 적은 오동나무속 또는 피나무속이 사용되었다. 황해도 반닫이와 박천 반닫이에는 추운 지역에서 자라는 피나무속이 사용되어 산지가 북한임이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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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무릎관절의 단축법위 회전시 근력정가 (Strength Evaluation of Sin91e-Radius Total Knee Replacement (TKR))

  • Wan, Jin-Young;Sub, Kwak-Yi
    • 생명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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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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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84-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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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인공관절은 21세기 정형외과 발전의 주요변화들 중의 하나이다. 1997년이래 전 세계적으로 무릎인공관절(Total Knee Arthroplasty: TKA)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약 600,000명씩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고 미국에서만 인공관절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210,000명에 달하고 있으며 그 시장은 대략 $5 billion을 넘고 있다(7). 무릎인공관절은 일상생활에서 의자에 앉았다 일어날 때 계단을 올라 갈 때 등, 무릎의 근 모멘트가 적당한 활동을 해서 무릎관절 근육에 지레와 같은 작용을 하게 하고, 완전한 무릎으로 정상인의 무릎과 같은 기능을 오랫동안 유지하게 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릎인공관절 디자인 시 정상적인 무릎 회전축(normal knee's axes of rotation)들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인공관절 수술 후 무릎관절의 신전과 굴곡 운동을 하는 동안 하나의 회전축(single-axes)을 가진 하나의 회전 반경(single-radius)을 알아보는 것은 여러 축(multi-axes)으로 움직이게 된다는 다축 회전반경(multi-radius)을 분석하기에 앞서 중요한 연구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 서는 무릎이 신전운동과 굴곡 운동 시 신전과 굴곡 모멘트를 만들어내는 대퇴 사두근(quadriceps muscle)과 무릎 오금근 (hamstring)의 역할을 알아보았고, 또한 모멘트와 대퇴 사두근의 iEMG 형태를 파악하였다. 본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무릎인공관절 수술을 받고 1년과 3년이 지난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피검자(1년2명, 3년2명)를 대상으로 Isometric 테스트를 위한 KIN-COM III을 사용하여 60$^\circ$, 30$^\circ$의 무릎굴곡 측정을 하였고, Isokinetic concentric 테스트를 위해서 무릎굴곡각도의 $10^\circ$-80$^\circ$까지 움직임을 측정하였다 또한 15$^\circ$-75$^\circ$까지의 신전운동(sit-to-stand movement)과 굴곡운동(stand-to-sit movement)을 실시하여 시간의 차이, 내전과 외전의 차이 그리고 iEMG의 차이를 알아보았다. 본 연구의 데이터는 여러 번의 실험을 통하여 가장 일반적인 수치를 사용하였다. 이 때 16-channel BTS TELEMG를 사용하여 대퇴사두근과 무릎오금근의 근육활동모양을 알아보았다. 본 연구결과는 시술 후 3년이 지나면서 TKR (Total Knee Replacement)의 대퇴 사두근 토큐가 약해지는 것으로 나타났고, iEMG 실험에서는 N-TKR (Non-Total Knee Replacement)의 대퇴 사두근이 TKR의 대퇴 사두근 보다 근 수축력이 더 크게 발휘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단축회전반경의 굴곡과 신전의 $10^\circ$-80$^\circ$까지의 각 속도는 굴곡동작이 1.19s, 신전 동작이 1.68s로 나타났다. 굴곡과 신전동작에서 다리의 외전(abduction)의 각도변화는 굴곡 시 5.5$^\circ$, 신전 시 5.2$^\circ$로 나타났고, 내전(adduction)의 각도변화는 굴곡 시 7.2$^\circ$, 신전 시 6.1$^\circ$로 나타났다. 대퇴 사두근의 iEMG변화에서는 15$^\circ$-60$^\circ$까지 vastus medialis (VM), vastus lateralis (VL), rectus femoris (RF) 모두 굴곡동작에서 큰 값으로 나타났고, 61$^\circ$-75$^\circ$사이에서는 신전동작에서 iEMG가 큰 값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결과들은 인공관절 수술자들의 다축회전 반경을 분석하기에 앞서 중요한 선행연구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간찰(簡札)의 안부인사(安否人事)에 대한 유형(類型) 연구(硏究) (A study on the Greeting's Types of Ganchal in Joseon Dynasty)

  • 전병용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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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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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67-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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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필자(筆者)는 여러 해째 간찰(簡札)를 대상으로 일련(一連)의 국어학적(國語學的) 연구(硏究)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 연구(硏究)는 그 일환(一環)으로서 [안부인사(안부인사(安否人事))]의 유형화(類型化)를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하여 근대국어(近代國語) 시기(時期)(16세기(世紀)-19세기(世紀))의 한문간찰(漢文簡札)와 한글간찰(簡札)를 대상으로 [안부인사(安否人事)]를 형식적(形式的) 유형(유형(類型))와 의미적(意味的) 유형(類型)로 나누어 분석(分析)하였다. [안부인사(安否人事)]의 형식적(形式的) 유형(類型)는 정치여부(定置與否), 생략여부(省略與否), 기상여부(寄狀與否), 존비여부(尊卑與否)를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 정치여부(定置與否)를 제1기준으로, 생략여부(省略與否)를 제2기준으로 삼아 다섯 가지로 유형화하였다. [안부인사(安否人事)]의 전형성(典型性)이 가장 잘 드러난 정치형(定置型)이면서 완성형(完成型)을 제(第)1유형(類型)로 삼았다. 정치형(定置型)이면서 자기안부생략형(自己安否省略型)을 제(第)2유형(類型)으로, 정치형(定置型)이면서 상대안부생략형(相對安否省略型)을 제(第)3유형(類型)으로, 정치형(定置型)이면서 안부인사생략형(安否人事省略型)을 제(第)4유형(類型)로 삼았다. [안부인사(安否人事)]에서 破格이 가장 심한 도치형(倒置型)을 제(第)5유형(類型)로 삼았다. 第1유형(類型)은 [상대안부(相對安否)]가 [자기안부(自己安否)]에 선행(先行)하는 정치형(定置型)이면서 의미요소(意味要素)가 온전한 완성형(完成型)을 가리킨다. 이 유형은 [안부인사(安否人事)]의 모든 구성요소(構成要素)를 갖췄다는 점에서 가장 전형적(典型的)이며 규범적(規範的)이라 할 수 있다. 제(第)2유형(類型)은 [안부인사(安否人事)]가 [상대안부(相對安否)]로만 이루어진 것이다. 정형성(定型性)에서는 제(第)1유형(類型)보다 덜하지만 출현빈도(出現頻度)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유형이다. [상대안부(相對安否)]를 충실히 묻되, [자기안부(自己安否)]는 생략하는 것이 예의에 크게 어긋나지 않으면서 간찰을 쉽게 쓸 수 있기 때문에 활용된다. 제(第)3유형(類型)은 [상대안부(相對安否)+자기안부(自己安否)]의 구성을 보이는 정치형(定置型)이지만 [상대안부(相對安否)]가 생략된 유형을 가리킨다. 제(第)4유형(類型)은 [상대안부(相對安否)+자기안부(自己安否)]의 구성을 보이는 정치형(定置型)이지만 [안부인사(安否人事)] 전체가 생략된 유형이다. 이 유형은 [안부인사(安否人事)]자체를 완전히 생략한 경우와 '제번(除煩)'과 같은 상투적인 표현이 [안부인사(安否人事)]를 대신하는 경우로 나뉜다. 제(第)5유형(類型)은 정치형(定置型)과 달리 [자기안부(自己安否)+상대안부(相對安否)]의 구성을 보이는 도치형(倒置型)이다. 이 유형은 정형성(定型性)에서 파격(破格)이 가장 심한 유형으로 실예(實例)도 아주 드물다. [자기안부(自己安否)]를 앞세우고 나중에 체면치레로 [상대안부(相對安否)]를 묻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 외에 [안부인사(安否人事)] 유형을 [상대안부(相對安否)]와 [자기안부(自己安否)]가 직접 연결된 직접형(直接型)과 [事緣]으로 분리된 간접형(間接型)으로 대별(大別)하여 세분할 수도 있다. [안부인사(安否人事)]의 의미적(意味的) 유형(類型)은 기상여부(寄狀與否), 완급여부(緩急與否), 친밀여부(親密與否), 격조여부(隔阻與否)를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 기상(寄狀)의 경우 [안부인사(安否人事)]는 [상대안부(相對安否)(시후(時候)+문안(問安)+심경(心境))+자기안부(自己安否)(상황(狀況)+안부(安否)+심경(心境))]의 구성을 보인다. [상대안부(相對安否)]에서 [시후(時候)]는 [계절(季節)] 정보와 [기상(氣象)(날씨)] 정보로 세분(細分)할 수 있고, [심경(心境)] 또한 수신자(受信者)의 [가족안부([家族安否) 심경(心境)]과 [개인안부(個人安否) 심경(心境)]으로 나뉜다. [자기안부(自己安否)]에서 [상황(狀況)]은 수신자(受信者)의 종래 상황인 [근황(近況)]과 수신자(受信者)의 현재 상황인 [현황(現況)]으로 나뉘며 [문안(問安)] 또한 수신자(受信者)의 [가족문안(家族問安)]와 [개인문안(個人問安)]으로, [안부(安否)]는 [가족안부(家族安否)]와 [개인안부(個人安否)]로 세분(細分)할 수 있다. 이처럼 [문안(問安)]이나 [안부(安否)]가 [가족(家族)]과 [개인(個人)] 차원에서 짝을 이루어 쓰일때가 많은데 부모(父母)나 조부모(祖父母)를 모시고 사는 층층시하(層層侍下)의 대가족제도(大家族制度)에서 비롯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답상(答狀)의 경우 [안부인사(安否人事)]는 [상대안부(相對安否)(수신(受信)+안부(安否)+심경(心境))+자기안부(自己安否)(상황(狀況)+안부(安否)+심경(心境))]의 구성을 보며 [상대안부(相對安否)]에서만 의미구성이 기상(寄狀)과 차이가 있다. [상대안부(相對安否)]에서 [수신(受信)]은 직접 간찰을 받는 [서신(書信)]과 사람들 통해 소식을 전해 듣는 [전언(傳言)]으로 나뉘며 [안부(安否)]는 [가족안부(家族安否)]와 [개인안부(個人安否)]로, [심경(心境)] 역시 [가족안부(家族安否) 심경(心境)]과 [개인안부(個人安否) 심경(心境)]으로 나뉜다.

한국(韓國) 종교복식(宗敎服飾)에 관(關)한 연구(硏究) - 불교(佛敎)와 도교복식(道敎服飾)을 중심(中心)으로 - (A Study on the Religious Costume in Korea - Buddhist and Taoist Costume -)

  • 임영자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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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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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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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
  • The thought of three religious,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had been the mainaxis of Korean spirit of the past. This study is centered on Buddhist and Taoist costume. There have been a lot of studies on Korean costume from many viewpoints. However, there have been few approaches to the inner !"ide of it. That is to say, the research on spiritual back-ground or religious correlation has not done yet. And especially, we are wholly lacking the studies on Taoist costume. In this dissertation, I investigate how they had come to wear Buddhist costume and how it trans, on the basis of related documentary records and existing remains. I also inquiry Taoist costume which was worn at Taoist ceremony in our country, with the help of Korean books and documents and of the sources of Packwoonkwan in China. In the case of Topobyunjeung in Korean costume, in particular, we can catch the source of it only after studying the religious side of Taoist costume and Buddhist costume. As revealed in the theory of Topobyunjeung in Ojuyunmoonja-ngsango by Lee, Kyu Kyung, even old masters and great Confucianists could not know whether Topo, the ordinary clothes of the Sadaeboo, originated from Taoist costume or Buddhist costume. There have been many opinions about the origin, but even now it is true that no one has made it clear. Therefore in this dissertatio I demonstrate mainly how Topo and Hakchangeui appeared in Korean costume through Taoist costume. It is said that Taoists, Buddhists, and literary men wore Topo, Chickchul, and Chickshin in Song dynasty of China. Topo was a clerical robe of Taoists and was also an ordinary clothes. Chick-chul was a clerical robe of Buddhists, and Chick-shin was worn by Zen priests in Won dynaty. Over the Po, Buddhist wore a large robe, namely Kasa, and Taoist wore Packhakchang like Wooeui, when they attended at the religious ceremony. And they regarded such manner of dressing as ceremonial full-dress attire. The style of Topo in China was Saryunggyogeo. The is th say that they put the black Yeon along Sajoo, which are Young, Soogoo, Keum, and Keo, and that they wore Sajodae around their waists so as to let the band down in front of them. Our existing type of Topo is that of Chickryung-gyoin. The characteristics of the type are its Koreum hung on the dress, no Yeon along Sajoo, and Soopok at the back of the dress. And when they put on the dress, they wear Saejodae around their waists. These characteristics considered, we can find the source of Topo from the Po of Chickshin among Buddhist costume. Other types of Topo are those that were transformed elegantly according to our national manners and customs in our country. So-called Wooeui in Chiness Taoism is Hakchang. Originally it was made by weaving for of cranes or other feathered birds. Its remarkable feature is the wide sleeves. Later they called such a robe with wide sleeves Hakchang. Our hakchangeui has Yeon along Sajoo and a belt around waist. We can guess that the features of Topo and wide-sleeved Hakchang mingled and turned into Hakchangeui. Or it might also be that Topa worn by Taoist was regarded as Hakchang and Topa which has Yeon along Sajoo was regarded as Hakchangeui in our country. Such type of Hakchang worn by Taoists was well shown in the Buddhist and Taoist paintings among "The Pictures of Hills, Waters, and Folks" in the latter half of the 16th century. In China Hakchang with a belt around waist could not be seen. Comparing our style of Hakchangeui with the Chinese style, we can recognize the former was similar to that of Chinese Topa. From this, we gather that Topa was regarded as Hakchang, Wooeui worn by Taoists, Ascetics and True Men in Korea. Furthermore I also gather that our Hakchangeui, which has Tongjeong, Koreurn and a belt around waist, was a transformed style in our own country. From the above, we can realize that in costume the three religions,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cannot be treated separately although they are different each other in the essential thought. We have to recognize that Korean Costume was established under the closely connected correlation among the religions and that it was transfigured and accepted according to the cultural characteristics. This study is significant in that it is the first attempt to understand Korean costume through the religous approach, which has never been made in our Korean costume studies. We are demanded even more wide and profound investigation on the religious side of costume throughout the general field of costume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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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도보통지』 무예 인류무형유산 등재 과제 (A Task for Listing Martial arts of 『Muyedobotongji』 on the UNESCO Representative List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 곽낙현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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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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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1-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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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연구의 목적은 "무예도보통지" 무예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위한 과제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무예도보통지"는 1790년(정조 14)에 편찬되었다. "무예도보통지"의 24가지 무예는 기본적으로 찌르는 방식의 자법(刺法), 찍어 베는 방식의 감법(坎法), 치는 방식의 격법(擊法)의 세 가지 방식으로 구분하였다. 둘째, "무예도보통지"의 무예가 무예사적 가치로 높이 평가되는 이유는 18세기 한국 중국 일본의 동양 삼국 무예를 조선의 실정에 맞게 새로운 안목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종합한 것이다. "무예도보통지"가 세계기록유산으로 갖는 가치는 장교와 군졸을 가릴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쉽게 익힐 수 있도록 실용성을 강조하면서 만든 무예 서적이라는 점이다. 셋째, "무예도보통지" 무예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절차는 준비 및 제출, 심사, 결정의 세 단계로 진행되며, 소요되는 기간은 2년이다. 특히 심사보조기구는 무형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 산하 기구로서 24개 위원국 가운데 각 지역별로 1개국씩 전체 6개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넷째, "무예도보통지" 무예의 인류무형유산 등재 과제는 다음과 같다. (1) "무예도보통지" 소장본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 (2) "무예도보통지" 무예의 시 도무형문화재 또는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이 필요하다. (3) "무예도보통지" 무예 기법 및 동작에 대한 실기 표준화 작업이 필요하다. (4) "무예도보통지" 무예 복장 및 무기에 대한 고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5) "무예도보통지" 무예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야 한다. (6) 문화재청 세계유산팀, 외교부 등 관련 부처와 긴밀한 협조 체제를 이루어야 한다. (7) 유네스코 등재기준과 충족을 위한 국내외의 "무예도보통지" 무예 관련 자료 수집을 포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8) 인류무형유산 등재유형에 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유럽 천주교의 불가타 성경 사용 양상: 트렌토 공의회 이후부터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The Usage of the Vulgate Bible in the European Catholicism: from the Council of Trent until the Second Council of Vatican)

  • 조현범
    • 종교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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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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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7-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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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고는 트렌토 공의회 이후 유럽 천주교에서 불가타 성경이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하였다. 불가타 성경은 유럽 천주교에서 지고한 가치를 지녔으며, 천주교 내에서 진행되는 각종 신앙생활에서 중심축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점은 미사용 전례 텍스트와 피정용 묵상 해설서에 수록된 불가타 성경 구절들을 분석함으로써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트렌토 공의회 이후 불가타 성경의 존재 양상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의문점들이 산적해 있고, 또한 넘어야 할 과제들이 많다. 먼저 프랑스에서 나온 피정용 성경 해설서에는 성경이 모두 불어로 번역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불가타 성경의 유럽 자국어 번역이라는 문제는 대단히 복잡하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교황청의 입장이 담긴 교령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유럽 자국어로의 번역 및 비유럽 선교지 언어로의 번역에 대한 교령들을 찾는 일은 지속적으로 탐구해야 할 과제이다. 한편 전례 텍스트 가운데 미처 다루지 못한 부분도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ll}$로마 성무일도${\gg}$이다. 트리덴티노 전례서 가운데 가장 먼저 제정된 ${\ll}$로마 성무일도${\gg}$에는 저녁 기도 이후에 밤 시간을 구분하여 바치는 기도에서 성경 독서를 행하였다. 오늘날에 와서는 독서 기도라고 부른다. 주로 수도원에서 매일 반복하여 바치는 성무일도의 밤 기도에서 성경 구절의 편성을 살펴보는 것도 트렌토 공의회 이후 유럽 천주교에서 불가타 성경의 존재 양상을 따지는 데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16세기 이후 유럽 천주교에서 불가타 성경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점은 예수회가 천주교 내에서 성경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천주교의 신앙생활에서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예수회의 정신은 동아시아 선교지에서도 그대로 이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 선교지에서 예수회 선교사들은 불가타 성경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보급하는 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유럽 천주교에서 불가타 성경이 정경으로 선포되고 라틴어 성경의 자국어 번역이 논란거리가 되었던 상황, 트렌토 공의회에서 결정된 미사용 전례 텍스트에 불가타 성경 구절이 체계적으로 배치된 점, 마지막으로 피정이라는 종교적 수련에서 사용되는 묵상 텍스트가 불가타 성경을 중심으로 편성된 것 등은 유럽 천주교를 넘어 중국과 같은 선교지역의 천주교회에 그대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