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근정전 박석은 눈부심과 미끄럼 방지 및 배수 등을 고려한 판상의 바닥 포장석재다. 이 영역의 박석은 이방성을 갖는 중립질 흑운모화강암으로 조성되었으며, 미약한 미르메카이트 조직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고문헌을 토대로 박석의 채석지점을 탐색하여 양자의 동질성을 분석하였으며, 박석의 운송과정을 해석하였다. 이 결과, 박석과 석모도 낙가산 일대의 화강암은 암상, 구성광물, 조직 및 지구화학적 특징이 거의 동일하였다. 박석에 대한 석역은 치석 및 운송 용이성, 물자 및 인력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석모도의 화강암 박리돔이라는 물리적 풍화특성을 활용하여 판상의 석재를 조달한 것으로 해석된다.
경복궁(景福宮)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전소(全燒)된 뒤 폐허로 남아 있다가 고종2년인 1865년 재건이 시작된다. 이때 경복궁 재건에 대한 의궤(儀軌)는 만들어지지 않고 기초 자료인 "경복궁영건일기(景福宮營建日記)"에 1865년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 간의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내용들을 정리하면 경복궁 재건에 사용된 석재들은 강화(江華), 동대문 밖의 영풍정(映楓亭), 삼청동(三淸洞) 등지에서 채취하기도 했으며, 경복궁 터에 남아 있던 간의대(簡儀臺) 등의 옛 석물을 재사용(再使用)하기도 했다. 또 경희궁(慶熙宮)에 있던 여러 건물 및 석조물을 이전(移轉)하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로 경복궁에는 재건기 19세기 뿐만 아니라 17~18세기의 석조물이 공존하고 있다. "경복궁영건일기"에는 경회루(慶會樓) 연못에서 출토된 청동용(靑銅龍)이 별간역(別看役) 김재수(金在洙)가 1865년 궁궐의 화재를 막아달라는 의미를 담아 제작했다는 내용이 있다. 김재수 등 별간역들은 석물의 설계 및 감동(監董)을 했던 인물들로 광화문 해치상을 조각했다고 전해지던 이세옥(李世玉) 역시 화원(畵員) 출신의 별간역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들의 설계를 바탕으로 실제 조각을 담당한 석장(石匠)들도 찾을 수 있었는데 근정전(勤政殿)은 장성복(張聖福), 광화문(光化門)은 김진명(金振明)이 참여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들을 바탕으로 경복궁의 서수상(瑞獸像) 중 비늘이 있는 인수형(鱗獸形) 서수상의 양식 특징을 찾은 결과 돌출된 입과 큰 코, 형식적인 귀, 등 갈기 등을 꼽을 수 있었다. 이러한 양식 특징을 조선시대 능묘(陵墓) 석물들과 비교한 결과 이 작품들은 고종 재건시인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양식 계승은 별간역, 석장들이 능묘의 석조물을 제작하면서 얻은 결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5~7세기 신라시대 석축의 입면조형원리를 규명하고자 돌의 크기, 비례, 형상, 각도, 분포 등에 대하여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신라시대 석축의 돌의 크기 균등도는 -0.8~4.1로 낮게 나타났다. 이는 작은 돌부터 큰 돌까지 다양한 규격의 돌을 사용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신라시대 석축의 큰 돌의 분포는 높이에 관계없이 균등하게 나타났다. 이는 신라시대의 석축에서 우물, 산성 등 구조적 분류와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신라인들은 석축공사에서 실용성, 효율성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며, 의장적 요소를 고려했다고 생각된다. 둘째, 신라시대 석축의 돌의 비례편차는 0.861~1.515로 높게 나타났다. 이는 신라시대 석축은 긴 판석형의 돌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길고 짧은 돌을 혼재하여 사용한 것을 의미한다. 셋째, 신라시대 석축의 돌의 형상평균은 0.45로 낮게 나타났으며, 형상편차는 최대 0.15로 높게 나타났다. 이는 전체적으로 돌은 불규칙적인 형상을 하고 있으며, 각 돌은 형상의 차이가 높은 것을 의미한다. 넷째, 신라시대 석축의 돌의 각도편차는 4.3~16.2로 나타났으며, 각도의 평균은 2로 나타났다. 이는 신라시대 석축의 각 돌의 각도는 좌, 우로 기울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다섯째, 신라시대 석축은 돌의 크기, 세장비, 형상, 각도간의 상관성이 나타나지 않았으며, 조선시대 석축은 돌의 크기와 세장비에서 양의 상관관계, 돌의 크기와 형상에서 음의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이는 조선시대 석축은 돌이 비교적 정형화된 반면, 신라시대 석축은 재료의 본성을 지켜 입면이 재료와 하나가 됨으로써 절제의 미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익산 왕궁리유적의 후원은 구릉상에 복잡한 수로체계를 통하여 정원과 연결된 구조로 동아시아 조경사에서 상당히 독특한 면모를 한 백제 조원기술(造苑技術)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후원은 구릉상에 입지하여 최소한의 물로 조경 효과를 높이면서도 집중 호우시 침수 피해를 줄이고, 궁성 중심 공간에 필요한 용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역U자형 대형수로와 이에 연결된 수로, 곡수로 및 집수시설로 이루어진 복잡한 수로 체계를 갖추고 있다. 특히 역U자형 대형수로의 내부에서 물이 고이는 지점이나 그 가장자리에 크기나 형태가 다양한 괴석으로 장식한 조경시설도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후원의 중심부인 구릉의 상면에는 원형 초석 시설로 둘러싼 내부에 방형 초석을 사용한 정면 4칸, 측면 4칸의 건물지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구릉의 좌 우 사면에는 말각장방형의 석축시설로 일부분이 감싸져 있는 공간 내부에 건물도 확인되었다. 아직까지 말각장방형의 석축시설의 기능 및 역할에 대해서는 잔존 상태가 좋지 못하여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그 내부의 건물과 관련된 시설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익산 왕궁리유적의 후원은 백제의 전통적인 조원 수법인 방지(方池) 스타일의 정원에 물을 끌어 들이거나 내보기 위한 곡지(曲池) 스타일의 수로(水路)를 함께 지니고 있다. 아울러 익산 왕궁리유적의 '정원'과 '후원'은 상호 유기적인 연결체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익산 왕궁성의 내부에 있는 '궁원(宮苑)'으로 보고자 한다.
본고의 검토는 익산 왕궁리유적에서 조사된 후원 조사 결과로서, 후원을 조성하고 있는 시설들에 대해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백제 사비기에 조성된 궁성 유적인 익산 왕궁리유적의 정원시설과 후원에 대한 조사 결과를 통해 백제의 궁내원에 대한 연구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익산 왕궁리유적의 후원을 구성하는 시설은 1) 석축시설, 2) 도수시설 : 환수구(동 서 북측 및 출수구 암거시설 등 출수시설) 및 곡수로(1~6 및 집수시설), 3) 방형초석 건물지로 나눌 수 있다. 본고에서는 후원 시설들의 조성과 배치에 대한 조사 결과를 정리하여 백제 사비기 도성에서의 궁원의 원형 복원을 위한 기초를 마련하고자 한다. 먼저, 석축시설은 물의 집수 혹은 경계의 역할을 담당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말각장방형석축시설은 이음부를 통해 환수구까지 물이 이동하였던 것으로 생각되며 조경, 집수 및 도수의 역할을 복합적으로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위의 두 시설은 궁성이 조성될 때 후원의 대표적인 시설이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서사면의 석렬시설은 아래쪽에 위치하는 공방시설 등에 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환수구 역시 동측궁장(성벽)과 북측궁장(성벽), 서측 경사면 아래쪽을 경계짓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환수구는 물을 집수 혹은 치수하는 역할을 하였고, 동시에 관상을 위한 조경의 역할도 담당하였던 것이다. 백제~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동안 환수구는 물에 의한 내부 퇴적의 진행이 이루어지며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환수구 내부가 완전히 퇴적된 시기에, 환수구와 동일한 필요성으로 서측 경사면에 곡수로가 새롭게 조성되었다. 구릉정상부의 방형초석 건물지는 주변의 백제 기와무지 등의 존재를 통해 백제 사비기에 처음 조성되어 이후 개축을 거치며 방형의 초석이 설치된 건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Chumsungdae is an ancient astronomical observatory whose main role was doing 'chunmoon'. It was administrate by a royal advisory agency on state affairs. The observers observed the heaven on the observatory platform, recorded peculiar events, and watched and interpreted the signs displayed in the heaven. Chumsungdae is an stonemasonry which represents almanac principles with its peculiar shapes and the numbers of strata and stones. The numbers were thoroughly invented to match exactly the almanac constants. Chumsungdae is comprised largely of three main parts, namely the square base, the stratified cylindrical body, and the top #-shaped stonework, and the total number of stones is 404. The number of the strata (27) and the height of the cylindrical body (27 尺) stand for the days in a sidereal month (27.3 days), which implies that the motion of the Moon with respect to the stars was given more priority than to the Sun at that time of geocentricism. And the cylindrical body was thoroughly designed to consist of 365 stones, which is of course the number of days in a solar year. In addition, there are 12 strata each under and above the south entrance and this in sum makes the 24 divisions of the year. Also there is 182 stones below the 13th stratum and this represents the number of days in the winter ~ summer solstice period, and the rest 183 stones the vice versa. The #-shaped top stonework was aligned in such a way that one of the diagonals points the direction of sunrise on the winter solstice. The square base also layed with the same manner. The south entrance was built 16 degrees SE, and the upright direction of the right pillar stone coincides with the meridian circle. This was a kind of built-in standard meridian circle facilitating the observations. In a symbolic sense, Chumsungdae was thought as the tunnel reaching the heaven, where the observers wished to be enlightened with the signs and inspirations in need. With the craftsmanship and skill, the builder reinforced the stratified cylindrical body with two sets of #-shaped beam stones, piercing at a right angle at 19th ~ 20th and 25th ~ 26th strata. Likewise, by placing the double #-shaped stonework with 8 beam stones on the platform of the observatory, both the stability of the stonemasonry and a guard rail for the nightly observers were securely provided.
Lichens play an important role in breaking down rocks physically and chemically. Physical weathering occurs mechanically through hyphae and rhizines growing into the rocks. Lichen substances such as oxalic acid, acidic polysaccharides and depsides may assist altering rocks chemically. These actions partly contribute to soil formation but prove harmful for the substratum. Some people do not like to keep lichens on stained glassof churches or on gravestones mainly because of its unglamorous appearance. A biocide, 'Koretrel', is very effective in removing lichens and blue-green algae from the surface of concrete. After spraying 'Koretrel' in the open air, lichens (Caloplaca sp., Endocarpon petrolepideum, Physciella melanchra, Phaeophyscia hispidula, etc.) growing on buildings died within three months and peeled off fromthe substratum. One year after treatment, concrete surfaces were almost lichen free for three or four years. The biocide makesuse of a kind of lichen substance and harmless both for substances and environment. Our recent experiments show that it is also useful for water grasses growing on the surface of an aqueduct of a hydroelectric power station.
After the study of Fujishima Gaijiro(1930), although it is common to see that the Tang-ruler(唐尺) was used in the construction of the Silla Sacheonwangsa temple(679), the basis of the discrimination of the construction measure and the detection of the unit length is not actually sufficient since conventional research was done before the excavation. The study was based on archaeological results, which was secured through the excavation research(2006~2012) of the temple site in recent years, to determine the construction measure and try to detect the unit length. In the analysis of the measured value of the ruins, the numerical data were obtained through measurements on drawings of the ruins, the tendency of conversion measure's number appearing by dividing each unit length of the Goguryeo-ruler(高句麗尺) and Tang-ruler within a certain range was compared from the Wansu-je(完數制) viewpoint. The research results are summarized as follows : 1)As a result of the analysis of the distance between the site's center, the case that conversion Cheok's(尺) number is converged to the unit of Jang(丈) within the range of unit length expresses three times more in Tang-ruler, and it is confirmed that a simple multiple relationship based on the unit of Jang is established between conversion Cheok's number. 2)As a result of analysis of Bokan(梁間) of the each Corridor site and the measured value of the stonework ruins, it could be confirmed that appears overwhelmingly in the Tang-ruler when conversion Cheok's number becomes an integer within the range of unit length. The results of the analysis are judged to be a clear basis for viewing the Tang-ruler as the construction measure of the Sacheonwangsa temple. 3)The estimated unit lengths of the construction measure that were obtained from the analysis of the distance between the site'scenter, the foundation stone center distance of the building site and the measured value of the stonework ruins are slightly different. There is a limit to the verification of the construction error about this, however it is difficult to specify, it is mentioned 294.37mm which is obtained from the analysis of the distance between the site's center.
Gwanghwamun was dismantled and displaced to the east side of the palace, at that time, the Chosun Government General Building was constructed in the Gyeongbokgung palace. After the Korea war, it remained as a stonework as a result of the fire. In 1968, The Gwanghwamun came back in front of the palace. Then, why it was rebuilt in the 3rd Republic period? What was the reason for selecting concrete? Since the May 16 coup, the military regime had been utilized palace and surrounding urban space to show a visible practice of modernization. Attempting the combination of modern technology in the 1960s and traditional cultural property and reconstructing a city as a pretext called Cultural Heritage conservation was a typical mechanism of the 1960s. In this study, I start by assume that reconstructing Gwanghwamun(1968) was a part of project to change the surrounding urban space of Gwanghwamun than to preserve cultural assets. Two main contributions of the study are following. First, I collect availabe data on the reconstructing surrounding urban space of the Gwanghwamun and re-organize them in chronological order to make them as fragments of a map. Second, I analysis and identify the nature and phase of the Gwanghwamun reconstruction.
Bricks are the earliest man-made building materials. Small-size bar bricks were found in use in the Warring States Period(戰國時代) in China. During the Qin(秦) and the Han(漢) Dynasties, brick constructions were built on a larger scale, but most of them were tombs. In case of Korea, bricks were found in use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but also most of them were tombs. Starting from the Unified Silla Period(統一新羅時代), brick gradually became a universal practice to built Buddhist Pagodas with bar bricks. Brick pagodas emergence marked a stage where technological progress made it possible for man to built high-rise brick work, and their dvelopment further perfected masonry technique and enabled building technology to attain new heights. Though from the very start brick pagodas existed side by side with stone pagodas, at the enitial stage they were overshadowed by their wooden counterparts and stone counterparts, because masonry thechiques were then still rather primitive, while woodwork and stonework had already reached a fairly advaced stage. The pagodas in ancient Korea were closely related to the Chinese stupa, which consisted of three parts, namely, the base, the body and the spire. The fact was, soon after the stupas were introduced into Korea, the Korean stupas began to develop features of their own. Korean brick pagodas were made up of a single-storeyed square base, multi-storeyed square body with a small gate, and a steel post with several layers of lotus flower superimposed one on the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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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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