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moral virt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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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드라마, 그 근대적인 모럴의 형식 (Melodrama as a Form of the Moral)

  • 우수진
    • 한국연극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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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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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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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Melodrama emerged as a form of the moral in the early modern age. As an approach 'the moral' not only means that rewarding virtue and punishing vice, but also refer to a principle of spiritual life and a way of life. -Melodrama theatricalizes a new vision of human life and society through a new type of the virtuous protagonist and sentiment/-ality. -This allows melodrama to be a dominant cultural form in this modern age, beyond the borders of the theater, mass-media, and literature. Virtue and sentiment/-ality are the core elements of melodrama, which differentiate it from tragedy and comedy especially in the structure and effect of the drama. Actually virtue and sentiment/-ality have been a main target of criticism. Virtue has been regarded as a trite quality of the stereotypical protagonist, and sentiment/-ality as a banal emotion which paralyzes an audience's recognition of reality. -However, this thesis regards both virtue and sentiment/-ality as vehicles for showing and sharing the morals of the modern age. First, the virtues of the protagonist included the general and universal ones of the bourgeois -at that times, the bourgeois represented themselves as a human being- such as the responsibility and obedience of a father, a mother, a wife, a husband, a daughter and a son. They also included the professional ethics such as courage, honesty, and justice and so on. The fall or salvation of the protagonist is largely determined by his/her private individual virtue. Second, sentiment/ality is a theatrical device that makes the audience internalize the protagonist's virtue. The protagonist expresses his/her universal virtue sentimentally, and the audience also expresses their virtue by sympathizing with the protagonist's virtue sentimentally. However, the melodramatic protagonist as an individual, is not connected with society, but remains isolated. As a result, s/he has no influence on the society, where s/he can only ends her/his play alone with a happy-ending. S/he is happy alone, or at best happy with his/her own family. On the contrary to this, tragic protagonist usually fixes social disorder through his/her fall. In that sense, we can say that melodrama presents only the half of the human life.

A Moralist of Beauty in America: Emerson on the Cultivation of Public Virtue in Liberal Democracy

  • Park, Jin-gon
    • 미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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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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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9-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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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In the United States, you almost never say that virtue is beautiful," Alexis de Tocqueville reports in Democracy in America. Yet Ralph Waldo Emerson, arguably the most prominent American moralist in the nineteenth century, stands as an exception to Tocqueville's generalization. This article explores Emerson's perspective on beauty in the moral education of democratic citizens. His interest in this aesthetic category partly stemmed from his deep concern about both the moral inaction and interest politics in commercial culture. As a response to the crisis, Emerson conceived ethical beauty as a key promoter of public-minded democratic citizenship as exemplified by the American abolitionists, and his own practice as a poetic moralist further illustrates this belief. Emerson's aesthetic approach to the cultivation of public virtue in liberal democracy offers a meaningful comparison to contemporary neo-Tocquevillian emphasis on the language of interest or duty.

판단력과 덕 그리고 활동여지 (Latitude within Judgement and Virtue)

  • 김덕수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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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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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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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칸트의 덕 이론은 인간 행위의 한계를 규정하는 도덕법칙과 함께 개별적 상황에서 행위자가 도덕적으로 행위 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행위자가 어떤 행위의 준칙을 정식화하는 단계에서 일종의 활동의 여지가 마련되는데, 그 안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로네시스와 같은 도덕적 판단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가 "덕론"에서 '자기 자신의 완전함', '다른 사람에 대한 행복'이라는 두 종류의 덕 의무를 제시하고, 각각의 사항에 대해 결의론적인 물음들을 제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도덕 법칙의 적용에 의한 인간의 도덕적 삶을 위한 연습과 훈련이었다. 더욱이 칸트는 윤리학은 행위를 위한 법칙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준칙을 위해서만 법칙을 제공한다고 보았으며, 나아가 결의론적 물음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적절한 방식 속에서 실천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는 결의론은 단편적인 방식에서만 윤리학과 관계될 뿐이고 또한 그 체계에 대한 주석으로서만 윤리학에 부가된다고 지적한다. 칸트에게 덕과 판단력은 "도덕형이상학정초"에서 확립한 최고의 도덕법칙을 경험적이고 현실적인 세계에 적용하기 위해, 달리 말하면 본성적 경향성에 따라 행위할 가능성 높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성의 명령에 따라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다. 이에 그는 광의의 의무를 협의의 의무로 가져가기 위해서 인간에게 의지의 강한 힘인 덕의 연마와 판단력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더욱이 법의무(협의의 의무)와 덕의무(광의의 의무)의 구분은 결국 그 의무들의 적용에 있어서 활동의 여지가 있는지임을 감안한다면, 행위자의 준칙의 채택과 관련하여 활동여지 속에서의 판단력의 훈련과 덕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상세히 말하자면, 의무가 더 광범위해짐에 따라, 그래서 행위에 대한 인간의 책무는 더 불완전해지지만, 그러나 의지에 관한 그의 태도에서 그가 이런 의무를 준수할 준칙을 협의의 의무(법)으로 더 가까이 가져가면 갈수록 그의 덕스러운 행위는 그 만큼 더욱 더 완전해진다. 이는 결국 비판기 시기에 칸트가 확립했던 최고의 도덕법칙, 즉 정언명령을 현실세계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려는 노력이었다.

공동체적 자유주의와 도덕·윤리교육의 쟁점(I) : 교재관의 문제 (Communitarian Liberalism and Controversial Issues in Moral Education)

  • 문성학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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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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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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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국가는 그 구성원들의 삶의 방식에 개입해야 한다는 공동체주의적 완전주의도 틀렸고, 국가는 삶의 방식에 대해 중립적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반완전주의도 틀렸으며, 공동체적 자유주의가 옳다. 공동체적 자유주의의 입장에 서면, 세상의 모든 국가공동체는 그 나름의 도덕교재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교육을 통해 각각의 공동체가 추구하는 공동선의 실현에 적합한 인간을 육성해야 한다. 당연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도덕교재는 '바람직한 한국인'을 양성하는데 적합한 방식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따라서 통일교육과 시민적 덕성을 주제로 한 교육이 도덕교재 안에 포함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과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가치들을 주입식으로 내면화한다면, 도덕과는 반성적 내면화 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으며, 따라서 교육주제의 중첩성이 양 교과의 정체성을 뒤섞는 것은 아니다. 혹자는 도덕교육에서 '반성적 내면화'를 강조하는 것은 도덕교육이 윤리학 교육이 될 것이라고 걱정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양한 윤리사상과 가치들 간의 대립을 반성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윤리학의 할 일이지만, 도덕과는 학생들에게 한국인의 삶의 방식과 가치들을 반성적으로 '내면화'시킨다는 점에서 윤리학 교육과는 다르다. 한국 사회의 공유된 가치들 즉 한국사회의 잠정적인 도덕적 진리들을 반성적으로 내면화한 '바람직한 한국인'은 자국중심주의와 세계시민주의라는 두 세계의 시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덕론에 기초한 가정과교육에서의 실천 개념 고찰을 위한 시론 (I) -실천적 지혜(phronesis)와 다른 덕과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Clarifying the concept of praxis in Family and Consumer Science Education -In focusing of the concept of phronesis in Aristotle's Nicomachean Ethics-)

  • 유태명
    • 한국가정과교육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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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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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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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이 연구는 가정과교육에서 지향하는 실천 개념은 어때야 하는지를 아리스토텔레스의 덕론에서 덕의 분류에서 실천적 지혜(phronesis)의 위치를 파악하고 다른 덕과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실천적 지혜는 praxis로 이끄는 덕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실천교과라고 명시되어 있는 가정과교육의 실천적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 핵심적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영혼을 이성적 부분과 비이성적 부분으로 나누고 이성적 부분을 다시 인식적 부분과 사량적 부분으로 나누었다. 영혼의 비이성적 부분을 식물적 부분과 욕구적 부분으로 나누었다. 인식적 부분에 해당하는 덕을 지적 덕, 욕구적 부분에 해당하는 덕을 도덕적 덕이라 하였다. 실천적 지혜는 인간 정신의 이성적 부분 중 사량적 부분에 해당하는 지적 덕 중에 하나이다. 이와 같은 분류에 기초할 때 실천적 지혜는 좁은 의미에서 praxis와 관계하는 덕으로 sophia와 구별되며, techne와도 구별된다. 넓은 의미에서 실천적 지혜는 techne를 포함하는 사량적 부분의 덕이다. 실천적 지혜는 도덕적 덕과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올바른 욕구와 logos를 따라 선택한 행동에 이르게 한다. 이 연구의 논의를 기초로 가정과교육은 실천 개념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여야 하는가의 과제와 실과와 기술과의 관련성은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옳은지의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이 연구에서는 가정과교육에서 지향하는 praxis의 의미를 잠정적으로 '도덕적으로 실천하는 행동, 선을 구체화 또는 실현하는 행동, 혹은 최선의 선을 추구하는 좋은 삶'으로 보았다. 실천교과로서의 가정과교육에서 실천적 지혜를 가진 사람의 의미는 '개인 및 가정생활에서 일어나는 실천적 문제의 구체적 상황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를 위해 최고의 선을 구체화하는 행동(praxis)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실천적 지혜와 다른 덕과의 관계를 살펴본 결과 실천적 지혜를 통해 이론과 실천을 통합할 수 있으며, 도덕적 덕과 불가분리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아는 것이 행동하는 것으로, 행동하는 것이 잘 행동하는 것으로 가게 해주는 덕이 실천적 지혜이므로, 실천교과로서의 가정과교육을 통하여 실천적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 교육할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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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치슨, 흄,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 나타난 공감의 역할과 도덕의 규범성 (The Role of Sympathy and Moral Nomativity in Moral Sentimentalism of Hutcheson, Hume, and Adam Smith)

  • 양선이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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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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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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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18세기 영국 도덕철학자 허치슨, 흄 그리고 아담 스미스는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합리주의적 윤리학에 반대하여 도덕은 행위자의 행위나 성격에 대해 승인 또는 불승인을 느낄 수 있는 도덕감에서 생긴다고 보았다. 이들은 '도덕감(moral sense)'이라는 개념은 공유하지만 이러한 도덕감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한다. 즉 도덕감이 발생하는 기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허치슨은 도덕감이 모든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내재하는 고유한 정신적 능력으로서 신의 섭리에 의해 보증되는 것이라 보았다. 흄과 아담 스미스는 허치슨의 선천적인 내재적 도덕감의 존재를 부정하고 공감의 원리에 호소함으로써 도덕의 자연화를 시도했다. 많은 사람들은 흄과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이 유사하다고 생각하지만 '공감'에 관한 이 둘의 설명 방식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 논문에서 우리는 그러한 차이점을 살펴 보게 될 것이다. 흄과 아담 스미스는 허치슨이 도덕감의 근원을 신에게 둔 것에 반대하여 도덕감의 발생 기제를 공감의 원리를 통해 설명함으로써 도덕의 자연화를 시도했지만 흄은 도덕의 궁극적 기준을 사회적 효용성 또는 관습적 규약에 둠으로써 외적인 기준을 택한 반면, 아담 스미스는 궁극적인 도덕적 기준으로 '공평무사한 관망자'의 판단 즉 '양심'이라는 내적 기준을 택했다. 스미스의 공평무사한 관망자는 개별성과 보편성 간의 간격을 메꾸고 실천적 이성을 작동케하는 수단이라 볼 수 있다. 이 논문에서 나는 공감에 관한 흄과 아담 스미스의 입장의 차이점을 밝히고 이러한 각각의 입장이 도덕의 규범성으로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이고자 한다.

매킨타이어의 현대 도덕 다원주의 비판 (MacIntyre's Critique of Modern Moral Pluralism)

  • 김영기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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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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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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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이 논문은 현대 도덕 다원주의에 대한 매킨타이어의 비판을 살펴보고 그의 비판이 갖는 한계를 드러내고자 하는 글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 문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중요한 도덕적 문제들에 대한 의견의 차이가 좀처럼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낙태나 안락사와 같은 문제, 분배적 정의나 재산권 같은 문제, 전쟁과 평화와 같은 문제를 두고 일어나는 논쟁들은 곧장 주장과 반대 주장의 대립으로 귀착되고 만다. 왜냐하면 서로 대립되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서로 공통된 기준에 의해 평가할 수 없는 서로 다른 도덕적 전제들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흔히 도덕적 다원주의라고 부르며, 이러한 상황은 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이성을 발휘한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매킨타이어는 "덕의 상실"(After Virtue)에서 현대의 이러한 도덕적 다원주의 상황을 격렬히 비판하며, 그 원인은 이른바 '계몽주의적 기획'의 실패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매킨타이어에 따르면, 지난 삼백년간 철학을 지배했던 계몽주의의 기획은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영향받지 않으면서 인간의 본성과 목적에 대한 특정한 이해에 좌우되지 않는 합리성의 개념을 마련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현실적으로 달성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시도에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에 결코 달성될 수가 없다. 그 결과 현대의 도덕과 정치 사상은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되었으며, 이 혼란은 우리가 일종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때에만, 그 본질적 요소인 목적론에 토대하여 실천 이성에 대한 설명을 구성할 때에만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덕의 상실"에서의 그 주장이 갖는 가장 어려운 난점 하나는 우리가 상황 속에 있는 존재, 이야기 속의 존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기본적으로 나의 인생의 주인이자 나의 이야기의 저자라는 점에 주목할 때, 과연 현대라는 사회적 상황 속에서 그가 옹호하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생각을 다시 적용하는 것이 가능할까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아울러 자유로운 제도를 지속시키려고 한다면 도덕적 다원주의는 재앙이라기보다는 인간이성이 행사된 자연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 같다는 점이다.

덕 인식론이란 무엇인가? (What Is Virtue Epistemology?)

  • 한상기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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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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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3-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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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현대 인식론에서는 최근 약 30여 년 전부터 덕 인식론에 대한 관심이 부쩍 일어났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소수 몇몇 연구자를 제외하면 "덕 인식론"이라는 이름 자체가 생소한 경우가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일차적으로 덕 인식론이 태동한 지가 얼마 안 되었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그 동안 우리 학계에는 덕 인식론이 본격적으로 소개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게다가 "덕 인식론"이라는 이름 자체가 주는 생경함 또한 한몫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덕"이라는 개념은 주로 윤리나 도덕과 관련된 맥락에서 사용되는 개념이어서 많은 사람이 "덕 윤리학"은 들어보았을지 몰라도 "덕"과 "인식론"을 조합한 "덕 인식론"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낯설고 생소하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논문은 일차적으로 우리 사회에 덕 인식론을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덕 인식론이란 무엇인가? 덕 인식론은 전통적인 분석적 인식론과 어떻게 다른가? 덕 인식론에서 덕의 본성은 무엇인가? 덕 인식론의 이점은 무엇이고, 과제는 무엇이며, 전망은 어떠한가? 이런 물음들을 중심으로 필자는 덕 인식론의 등장 배경, 덕 인식론과 전통적 인식론의 차이 및 둘 사이의 관계, 덕의 본성, 현재 펼쳐지고 있는 덕 인식론의 주요 이론들을 간단히 개관함으로써 덕 인식론을 이해해보고자 한다.

공자(孔子)의 실천적 덕론(德論) - 인(仁)과 예(禮)를 중심으로 - (Kongzi's Practical Teachings on De 德 (Moral Virtues): Ren 仁 (Benevolence) and Li 禮 (Ritual Propriety) as the Main Topics)

  • 지준호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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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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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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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공자(孔子)로 대표되는 선진유가의 주된 관심은 어떻게 하면 인간이 도덕적 완성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있었다. 유가의 모든 이론들은 도덕적 완성을 이룬 성인(聖人)이나 군자(君子)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문제는 유가의 근본 문제에 해당된다. 유학에서의 덕(德)은 행위의 도덕적 원칙이나 사물의 특성을 가리키는 범주로서, 도덕 근원으로부터 부여받은 존재 내면의 도덕적 성품 혹은 도덕적 능력을 의미한다. 공자는 내재적 정신인 인(仁)과 표현 형식인 예(禮)를 통하여 덕의 내용과 실천방법을 구체화 하였으며 도덕적 실천성을 강조하였다. 나 자신은 물론 타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 사물과 세계와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맺음을 위한 근본적인 원리는 효제(孝弟)와 애인(愛人) 등 다양한 실천을 통해서 전개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실천은 타자배려의 원리로서 관통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현실사회의 다양한 조건에 따른 역동적인 실천규범은 다각도로 모색되고 있다. 삶의 철학이며 실천윤리였던 공자의 사상을 덕론과 관련하여 탐구하는 것은 현 시대의 교육적 문제와 관련하여 성찰적 의미가 있다.

『논어』에서 몸과 마음 : 주자와 다산의 주석을 중심으로 (The Relation of Mind and Body in Confucian Analects centered on the commentary of Chu-Hsi and Dasan)

  • 임헌규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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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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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9-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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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논어"란 학문에 뜻을 세우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 이순(耳順)의 단계를 거쳐 마침내 존재와 당위가 일치하는 경지에 도달했던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다. 공자는 학문을 좋아하며, 인을(仁) 실천하는 군자(君子)를 양성하려고 하였던 바, 지금까지 선행 연구들은 "논어"에 나타난 여러 덕목들과 이상적 인간상에 대해 주로 연구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한 덕목들과 인간상은 구체적 개별적 심신(心身)를 지닌 자아에 의해 구현 정립된다. 그러나 현재까지 연구를 보면, "논어"의 심신(心身)와 연관된 용어들에 대한 체계적인 종합적 고찰은 많지 않았다. 바로 이 점에서 이 논문은 "논어"에서 심신과 직접 연관된 용어인 심(心) 성(性) 정(情) 지(志) 의(意), 그리고 신(身) 기(己) 궁(躬) 기(氣) 등이 출현한 구절을 살피면서 그 의미를 고찰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주로 고주(古注)와 주자(朱子)의 주석을 먼저 살피면서, 그에 대한 보완적 비판적 주석을 제시한 다산의 주석을 살펴보았다. "논어"에 나타난 심신(心身)관련 용어들은 아직 체계적으로 정의 분류되어 제시되지 않고 단지 맹아적 소재를 제공해 주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공자의 후학들은 "논어"의 언명을 기본 바탕으로 다양한 입론과 해석을 시도하였다. 그렇지만 그 용어들은 심신수양을 통한 도덕의 실현에 기여하는 인간을 양성하기 위하여 시설된 언명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대표적인 "논어" 주석가인 주자(朱子)는 심신(心身) 및 보편 덕(인(仁)) 실현과 연관된 용어를 주석함에 있어 상호 모순 대립하는 천리(天理) 인욕(人欲)의 개념으로 주로 설명하였다. 이에 대해 다산(茶山)은 우리의 몸 혹은 형기(形氣)에서 유래하는 욕망은 결코 절멸(絶滅)될 수 없다는 점에서 주로 "존천리거인욕(存天理去人欲)"의 방법이 아니라, 도심(道心)의 주재(主宰)와 인심(人心)의 청명(聽命)이라는 관계로 주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