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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오대~송대 탑 내 동경 봉안 사례와 양상 (The Cases and Patterns of Bronze Mirrors Enshrined in Pagodas during the Five Dynasties and the Song Dynasty)

  • 최주연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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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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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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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탑에서 발견된 동경은 단순 공양품으로 여겨져 동경 연구에서도 크게 관심 받지 못했다. 그리고 탑 내 봉안 동경 연구는 오월국 탑에서 발견된 선각불상문경에 집중되어 있어, 탑 내 봉안 동경에 대한 전반적 특징을 알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본고는 오대~송대 시기 많은 탑들에서 발견된 동경이 목적을 갖고 봉안되었을 것으로 생각했으며, 이를 파악하기 위해 봉안 위치와 방식에 중점을 두었다. 오대 오월국시기에 탑 내 동경을 봉안하는 사례가 증가했고, 동경은 단순한 공양품이 아닌 목적을 갖고 불교와 관련된 도상이나 명문이 새겨져 있는 봉안품이었다. 이는 동경의 사용 목적이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송대까지 영향을 끼친다. 송대는 오월국의 영향이 꾸준히 이어지면서도 송대 문화와 사회 분위기로 인해 동경 봉안 양상도 변화한다. 봉안된 동경의 종류는 소문경이 다수를 차지하며, 당대 동경도 꾸준히 사용되었다. 소문경은 오월국의 영향으로 선각불상문과 같은 도상과 명문을 새기기 용이했기에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또한 당대 동경은 송대 방고동기에 대한 관심과 황제의 영향으로 인해 귀하게 여겨져 탑을 조성할 때 당경을 공양품으로 봉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대~송대 탑 내 동경 봉안은 그 방식에서 변화가 있었다. 당대 지궁 바닥이나 철함 내 놓아두던 동경은 의도적으로 벽에 붙이거나 천장에 매달아 놓았다. 이 방식을 크게 두가지로 구분하여 벽이나 천장에 감입하는 방식(감입경: 嵌入鏡)과 천장에 매달아 놓는 방식(현경: 懸鏡)으로 분류했다. 천장에 매달아 놓는 방식으로는 대표적으로 하북 정지사탑(靜志寺塔)이 있으며, 천장에 감입한 예로는 하남(河南) 복승사탑(福勝寺塔)이 있다. 이렇게 동경을 천장에 매달고 감입하는 방식은 중국 묘실과의 관련성이 높다. 송대 묘실은 넓고 높은 구조를 갖고 있어, 벽사용 동경을 이용해 묘실을 지키고자했다. 그렇기에 높은 곳에 동경을 두어 묘실을 비추게 했으며, 이는 앞서 언급한 두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탑 역시 지궁이 넓고 높아짐에 따라 지궁의 중요한 부분을 지키고, 내부를 밝게 비추고자 했다. 따라서 오대~송대 탑 내 동경 봉안방식은 당시 묘실에 동경을 봉안하던 방식을 차용했던 것으로 생각되며, 이후 섬서(陝西) 묘각사탑(妙覺寺塔)과 같이 적극적으로 설계 때부터 감입을 고려하여 동경을 놓을 자리를 마련해 놓은 예도 등장하게 된다.

장승의 기원과 옹중석 (The Origin of Changseung and Ongjung Stone)

  • 정승모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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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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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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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우리가 '장승'이라고 부르는 조형물들은 그 기원이나 역사, 또는 기능이 서로 달라 엄밀한 구별이 필요하다. 이 글은 장승의 기원과 함께 역사적인 변화과정을 더듬어 이 구조물이 갖는 두 가지 다른 측면을 구분하고 이에 기초하여 소위 '석장승'의 다양한 기원과 기능을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고려시기에 사찰에서는 장생, 또는 관련 석물을 세웠는데, 이 중 '통도사국장생석표'는 석표(石標)라기보다는 석비(石碑)의 기능을 갖는다. 석비에 음각된 명문을 보면 이전의 판아(判兒)처럼 다시 세우라고 하였는데, 판아란 역귀(疫鬼)를 쫓는다는 종규(鍾郡)를 말한다. 명문 내용은 통도사의 영역을 장생으로 표시하였다는 것이다. 허목의 "월악기(月嶽記)"에 실려 있는 한준겸(韓浚謙)의 기사를 보면 도갑사 국장생의 규모가 매우 커서 이러한 추정을 가능케 하며 '국장생'이나 '황장생'이라고 새긴 입석은 장생이 아니라 표석, 즉 장생표(長生標)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이정(里程) 기능을 하는 후를 장생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이는 사찰 장생과는 달리 나무로 만들어 사찰 장생의 생(生) 자에 나무 목(木) 변을 붙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요즈음과는 달리 조선시기에는 비보 성격을 갖는 사찰 석상이나 읍성풍수물을 장승이라고 부른 경우는 찾을 수 없다. 예를 들면 제주도 '돌하르방'을 두고 장승이라고도 불렀다는 역사적 근거는 없다. "탐라기년(耽羅紀年)"에 의하면 제주목사 김몽규(金夢奎)가 성문 밖에 옹중석(翁仲石)을 세웠다고 했는데, 옹중석은 대개 고대 제왕(帝王)이나 대신(大臣)의 능묘 앞에 세운 석인상(石人像)을 지칭하는 말이다. 옹중석은 엽승[壓勝]을 위한 풍수물로도 나온다. "광주읍지(光州邑誌)"(1899년간)에는 수구(水口)를 만들고 석옹중 2기를 마주 세워 그 기를 진압하였다는 기사가 나온다. 전라북도 부안읍치의 동쪽과 서쪽에 각각 2기씩 세워진 석물에는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과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라는 명문이 있는데, 읍성풍수물인 이것 역시 석장생이나 장승, 또는 당산으로 불릴 이유는 없다. 도교적인 개념인 상원(上元)과 하원(下元)이 붙은 주장군이나 당장군은 이후 사찰 석상의 명문으로 자주 등장하고, 이후에는 이표 장승에도 붙는다. 사모를 쓴 북한산성 옹중석을 지금은 볼 수 없는 것처럼 많던 옹중석들은 어딘가에 묻혔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제주의 옹중석과 부안 읍성의 석상은 위치 이동이 적어 옹중석의 기능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설립된 석상들은 고려시기에 조성된 장생(長生)과 기능상 가장 관련이 깊은 듯하다. 즉, 과거의 장생처럼 18세기 초중반의 석상들은 읍성, 또는 사찰의 비보물이면서 동시에 경계를 표시하는 기능을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사찰 석상의 설립시기는 양전사업이 전국적으로 실시된 때이기도 하지만 속세에서는 산송(山訟)이 활발해지는 때라 사찰에서는 비보와 함께 영역 표시를 위해 석상들을 세웠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장승으로 통칭되는 목인과 석상들은 각자가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이유로 세워진 것들이다. 그 출발은 고려시기 사찰의 장생(長生)으로 비보물이면서 동시에 사찰의 영역을 표시하는 석물, 또는 석상이었다.

현존 최고(最古)의 매향비(埋香碑): 영암 정원명(貞元銘) 석비(石碑) (The oldest Maehyang-bi (埋香碑) of Memorial Inscriptions existing on record; Yeong-am's 'Jeongwon (貞元)' Stone Monument)

  • 성윤길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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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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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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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영암 정원명(貞元銘) 석비(石碑)는 전남지역 소재 금석문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발견 직후부터 매향비의 가능성이 언급되어 더욱 주목되었다. 하지만 정원(貞元) 2년(786)이라는 절대 연대가 있어 비교적 이른 시기의 금석문임에도 불구하고 이 석비를 주제로 한 단독 논고는 많지 않다. 필자는 이 석비에 대한 기존 연구 성과를 검토하면서 3D 스캔 자료, 1995년 탁본 자료, 국립광주박물관 소장 탁본을 기초로 하여 4행 42자의 명문을 다시 판독하였다. 검토 결과 이 석비는 매향비임이 확인되었다. 특히 조선 후기 문헌인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 매향(埋香) 입석(立石)이나 글자를 알아볼 수 없다고 기록되어 이 석비가 매향비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고려 말~조선 초의 현존 매향비에 자주 산견되는 '매(埋)' 혹은 '매향(埋香)'이라는 표현은 없으나, '탄장(呑藏)'과 '합향십속(合香十束)'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는 점에서 매향비임을 알 수 있었다. 즉 '매(埋)'의 의미를 '탄장(呑藏)'으로 대신 표현하였다고 생각된다. 이에 대한 방증 자료는 남북국시대 금석문인 888년 건립의 진감선사 대공탑비이다. 여기에는 '해안식향(海岸植香)'이라는 표현이 있어 '매(埋)'자를 쓰지 않아도 그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따라서 정원명 석비에 '매(埋)'자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하여 매향비가 될 수 없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정원명 석비가 매향비라는 방증 자료는 도갑사 어귀에 있는 국장생(國長生) 주변 금표석(禁標石)의 명문에도 있다. 금표석의 명문은 조선 후기 중흥의 군주였던 정조의 능, 즉 건릉(健陵)에 사용되는 향탄(香炭)을 월출산 도갑사 주변에서 마련하였을 가능성도 시사하고 있다. 금표석에 새겨진 '향탄(香炭)'은 당연히 향(香)과도 관련 있기 때문에 예전부터 도갑사가 있는 월출산 주변 지역이 향(香)과 관련되어 오래된 역사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석비에 보이는 명문, 조선후기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의 기록, 금표석의 명문 등, 이 모든 것이 정원명 석비가 매향비임을 알려주고 있다. 실물로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매향비가 고려 말 1371년과 조선 초 1410년 두 개의 연대를 보이고 있는 영암 입암리 매향비임을 고려할 때, 786년 건립의 정원명 석비는 조선 후기 문헌과 그 문헌을 증명하는 실물로서, 우리나라 최고(最古) 매향비라는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성남 고등 공공주택지구 출토 회격묘 과학적 보존처리 (Scientific Conservation Treatment of Artifacts Collected from the Lime-soil Mixture Barrier Tombs Excavated from the Site of a Public Residential Area in Godeung-dong, Seongnam)

  • 김웅신;전주연;김범준;한민수;이민혜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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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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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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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성남시 고등동에서 확인된 조선시대 회격묘 2기는 우씨 묘역에서 발굴되어 기록을 통해 묘주와 조성 시기를 유추 할 수 있는 유구이다. 말각방형으로 합장묘인 4호묘는 수습과정 중 외곽벽에서 글씨와 그림이 확인되었으며, 보존처리 및 적외선조사 결과 만사로 판단되었다. 말각장방형 단묘인 6호묘는 파묘되면서 일부 파괴되어 수습 후 야외전시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보존처리 결과 운아삽과 역청이 확인되고 잔존하는 형태가 조선시대 회격묘의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어 자문회의를 통하여 실내전시로 보존방향이 변경되었다. 역청은 분석 결과 송진으로 추정되며 이물질의 혼입으로 순도는 높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2기의 회격묘는 조선시대 무덤 양식의 변화 양상 등 학술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신구법천문도 채색 안료 비교 및 제작시기 추정 (Comparison of Pigments and Estimation of Production Period in Old and New Celestial Charts Folding Screens)

  • 오준석;황민영;야마토 아스카;아라이 케이;이새롬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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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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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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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신구법천문도 3점(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천문도(병)』, 『신구법천문도 8폭 병풍』, 일본 국회도서관 소장 『황도남북양총성도』)에 대한 채색 안료 분석 및 이를 통한 제작시기를 추정하였다. 『천문도(병)』에서는 조선에서 널리 사용되어오던 석청(남동광), 청화(쪽), 석록(공작석), 하엽(아타카마이트), 주, 석간주(산화철), 연지(코치닐), 등황, 석자황, 연분, 활석 등과 같은 전통적인 유·무기질 안료들이 사용되었다. 『신구법천문도 8폭 병풍』와 『황도남북양총성도』에서는 19세기 중엽 이후 유럽에서 유입된 합성 무기안료인 양록(에메랄드 그린)과 양청(울트라마린 블루)가 사용되었다. 『신구법천문도 8폭 병풍』에서는 녹색과 청색에 합성 무기안료만 사용되었지만, 『황도남북양총성도』에서는 전통적으로 사용되어온 하엽과 청화도 함께 사용되었다. 신구법천문도의 성도와 도설 연구와 연계하여 안료 분석결과로부터 추정한 제작시기는, 조선시대 전통안료만으로 채색된 『천문도(병)』 18세기 중엽 이후로 추정되며, 『황도남북양총성도』와 『신구법천문도 8폭 병풍』은 19세기 중엽 서양의 녹색과 청색 안료가 도입된 후 제작되었다. 그리고 전통안료와 서양의 합성안료가 함께 사용된 『황도남북양총성도』가 『신구법천문도 8폭 병풍』 보다 제작시기가 빠른 것으로 추정된다.

빛 단원에서 반사와 굴절을 나타내는 화살표에 대한 중학생들의 개념 조사 (The Analysis of Middle Students' Conceptions on the Arrows Representing Reflection and Refraction in the Light Unit of Science Textbooks)

  • 송영욱;김범기;백성혜;김용진;한재영;정정인
    • 과학교육연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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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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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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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이 연구의 목적은 7학년 과학 교과서의 빛 단원에 사용된 화살표의 유형을 분석하고, 화살표의 의미에 대한 중학생들의 개념을 알아보는 데 있다. 중학교 과학교과서 9종의 빛 단원에 사용된 화살표의 유형을 분류하고, 이를 바탕으로 검사도구를 개발하였다. 7학년 학생의 과학 성적에 따라 상, 중, 하 각 2명씩을 대상으로 하여 화살표의 개념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면담법으로 조사하였다. 중학교 과학교과서의 빛 단원에 사용된 화살표의 유형은 물체에서 나온 빛이 눈에 도달하는 과정에 따라 4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화살표의 점선과 실선에 대한 개념 이해는 과학성적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다. 빛이 평면 거울면에 반사하거나 공기와 물의 경계면에서 굴절하여 우리 눈에 들어오는 빛의 경로를 표현할 때, 물체에서 나온 화살표의 실선과 물체가 위치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화살표의 점선의 의미를 명확히 제시하여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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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산(泰山) 홍문궁(紅門宮) 패방(牌坊)의 공간 기능 분석 (Analysis of Space Functions of the Archway in the Red Gate Palace in the Mount Tai Scenic Area)

  • 장멍;강태호;탕샨샨;위동밍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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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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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0-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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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현관식 기념 건축물로 축조하는 패방은 정표와 장려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시대의 발전에 따라 더 많은 역사 문화적인 내용 및 사회 기능이 부여된다. 본 연구는 타이산 명승지 중부에 위치한 홍문궁의 4기 패방을 대상으로 문헌연구와 현장조사 및 시각적 분석 방법을 통해 기본 속성, 공간 척도와 공간 느낌, 기능 등 3가지 측면을 연구하였다. 연구 구간 안에 있는 패방의 재료는 모두 석조이며, 건조 위치에 따라 명승지 및 사찰의 패방 등의 2종과 기능에 따라 표지, 기념, 문형 등 3종이 있다. 형태와 크기를 보면 '공자등림처방(孔子登臨處坊)'이라는 패방의 수준이 가장 높아 유교 문화의 지위를 중요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패방의 입지 공간은 실체와 감성 등 2가지 측면으로 상호 작용을 통해 이해하면 전체 경관의 공간적 의미를 완전하게 파악할 수 있다. 공간 척도로 볼 때 패방은 다른 경관요소와 서로 조화를 이루고, 한정된 선형 공간 중 사물 간 또는 사물과 사람 간 상호 비교를 통해 패방의 시선 초점 기능을 강조하고, 관광객들이 패방 아래를 통과할 때의 느낌을 증진시킬 수 있다. 홍문궁 패방은 공간을 합치고 규정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배열방식이 시선을 더욱 뻗어 나갈 수 있게 한다. 패방 위에 있는 대련과 글씨는 등산 전의 기대감을 증가시키고, 공간의 안내 기능을 강화시킨다.

중건 경복궁 후원 오운각(五雲閣) 권역으로 조명한 조선시대 궁궐 별원(別苑)의 특성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the Byeolwon (別苑: A Separate Garden Made Away from Living Space) in Palace during the Joseon Dynasty period Illuminated by the Oungak Area at the Rear Garden of Reconstructed Gyeongbokgung Palace)

  • 정우진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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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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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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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는 고종 연간 경복궁 후원의 북쪽에 조성된 오운각 권역의 특성과 창덕궁 후원 옥류천에 구비되어 있던 기능적 요소가 경복궁 후원으로 치환되었던 양상을 고찰한 것이다. 오운각 권역은 샘과 천하제일복지 각자가 있던 기존의 공간을 활용하여 왕의사적인 공간으로 정비된 공간이었다. 고종은 오랫동안 창덕궁 옥류천이 담당했던 왕실의 휴식과 위락기능을 중건 경복궁에 그대로 옮기려 하였다. 그 결과, 옥류천과 유사한 기능을 하도록 조성된 오운각 권역이 후원의 별원으로 개발되었다. 양자 간에는 후원의 최북단에 조성된 입지 외에도, 건물의 구성 및 유배거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관상용 수경설계 등에서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오운각 권역은 옥련정, 오운각, 벽화실과 천하제일복지천의 수경시설로 구성되었다. 이중에서 벽화실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옥류천과 직간접적인 관련성을 갖되, 지형의 굴곡, 경사, 수계의 상황 등 주어진 입지조건에 따라 조성되어 색다른 정감을 갖는 공간으로 개발되었다. 먼저, 옥련정은 남산에 이르는 서울의 경관을 조망하기 위해 높은 언덕에 입지하였고, 천하제일복지천의 독특한 형식의 수로는 위이암의 유배거의 기능을 모방한 형태로 추정된다. 한편 오운각은 옥류천의 농산정과 같이 주거가 가능한 집으로 조영된 것이었다. 이러한 구성요소는 다분히 옥류천의 기능과 위상을 경복궁에 치환하기 위한 조성목적을 표출하고 있으며, 이러한 점은 조선시대 궁궐 후원의 기능 공간이었던 별원의 특성을 잘 대변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풍의 한의철학적 의미 (Treatise is a Study on 風 in Terms of Oriental Medicine as well as the Philosophy)

  • 홍무형;배현수;신민규;홍무창;김수중
    • 동의생리병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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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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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6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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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In the ancient time wind is considered as the life . soul and the human's breath which represents essence of universal creation and the absolute power and also the messenger of the god or god's state. Greek's 'pneuma' , India's 'Brahman' and the Old Testament's 'ruach' are used to signify the wind. Also Wind(風) in traditional culture, it is related to 玄妙之道 of 花郞, the flower of youth in Shilla dynasty and sexual intercourse in shaman's dream which can be thought as Freud's libido. In this aspect we can see the connection between the wind and the libido which can be meaning of sexual desire. Ancient Chinese wrote word ‘風’ as phoenix, the god's bird, the phoenix in inscriptions on bones and tortoise carapace(甲骨文) because one can feel the wind but can’t see it. The word Ki(氣) origins from 風 therefore 風 is 氣's fundamental notion. The wind can be understood by ki which travels around the world to create all nature. And the Wind is associated with 風化, 玄鳥, 八僧舞, which are related with reproduction. In the book of change (周易) the 震巽卦 ; 雷風 come under wind which means the function of ki and also menas the 精(essence of life) of 恒久(eternity) means the reprodution ; that performs succession of life. In the Oriental Medicine 氣 is a phenomenon that appears by movement of Ki by 相火(Ministerial fire). 相火 is core of the succession of life which means preservation of descendants; therefore 風 has very similar concept with sexual desire. 風 is the beginning ki of universe and in human body aspect 風 belong to the Liver Meridian. If 風 makes movement then the Pericardium Meridian of Hand Kwolum responds and the genital organs which belongs to Liver Meridian of Leg Kwolum reproductive function by contraction and expansion. Generally 風 understood as movement and origination and this is recognized as meaning of 氣. Therefore as studied above the present writer believe m. participates closely to reproductive function.

Ancient Seaports on the Western Coast of India: The Hub of the Maritime Silk Route Network

  • DAYALAN, DURAISWAMY
    • Acta Via S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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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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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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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The extensive maritime trade network between the Harappan and Mesopotamian civilizations as early as the $3^{rd}$ millennium BCE is a testimony to the long maritime trade history of India. From the dawn of the historical epoch, the maritime trade network of India expanded extensively. The findings of a large number of coins, pottery, amphorae and other materials from Italy and various other European countries, west Asia, China, Korea, Africa, the Arabian Peninsula, Sri Lanka, Southeast Asia and Far-East countries in India, particularly in the coastal regions, are a testimony to the dynamic maritime trade of India with other countries in the early period. Similarly, pottery, sculptures, inscriptions and other materials of Indian origin are also found in those countries. The depiction of different types of ships on the coins, paintings, sculptures, seals and sealing, exhibit the variety of vessels used for navigation and other purposes in the early period. The over 7500 km-long coastline of India is well known for its seaports located at river mouths or outlets to the sea. The Periplus Maris Erythraei, Ptolemy, and Indian literary sources mention many seaports on the western coast of India. Interestingly, archaeological investigations in many of these port towns have yielded material evidence exhibiting their dominant role in transoceanic trade and commerce with many countries in the early period. This paper discusses in detail all the major ancient seaports on the western coast of India and their maritime trade activities. At the outset, the paper briefly deals with the Harappan's maritime network, their seaports and the type of ships of that period. Following this, the maritime trade network of India during the historical period with various countries in the east and west, the traces of Indian influence and materials abroad and foreign materials found in India, the products exported from India, the trade winds and navigational devices and the depiction of ships on the coins, paintings, and sculptures of the period are discussed in detail. After briefly highlighting the coastline of India and its favourable nature for safe anchorage of ships and the strategic position of the seaports of western India, an extensive account of the major ancient seaports of western India like Barygaza, Ashtacampra, Gundigar, Kammoni, Khambhat, Bardaxema, Suparaka, Calliena, Semylla, Sanjan, Naura, Tyndis, Muziris, Nelcynda and other seaports, and their maritime trade activities are given based on archaeological excavations and explorations, literature, epigraphy, foreign accounts, and numismatic evid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