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inner beau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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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figurative art expression reflected on the relationship with the animal companion and the inner self - Focusing on works by Lee Heeyeong -

  • Lee, Hee-Young;Cho, Myung-Shik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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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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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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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대상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수 있는데, 첫 째가 바로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그 중에서도 아리따운 여성과 귀여운 아기들이다. 그 다음 순위가 바로 인간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한 개과 동물이다. 이는 광고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3B법칙(미인 Beauty, 아기 Baby, 동물 Beast - 긍정적인 이미지 덕분에 광고나 선거에서 많이 사용)인데, 이러한 관계는 미술사에서도 오랜 기간 표현되고 있다. 인간과 함께 1만년 이상의 역사를 살아 온 개는 사냥의 임무이자, 목동의 양 떼를 지키거나 농부의 집과 재산을 지키는 임무를 지녔던 인간의 조력자에서, 동반자로서 반려동물이라는 주요한 역할과 함께 현대 도시 문화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처럼 개는 유목과 목축, 시골과 도시 생활 등 여러 가지 상황에 끊임없이 적응해왔는데, 이 논문은 인간과 반려동물이 맺고 있는 밀접한 관계를 수많은 예술가들의 손을 거쳐 나타난 개와 강아지의 다양한 도상들을 통하여 탐구하고자 한다. 여기서 반려동물이라는 뜻은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companion animal)이라는 뜻인데, 서로가 도움을 주는 일방통행이 아닌 왕복의 관계를 나타낸다. 따라서 필자는 각 시대별로 생존을 위한 가장 훌륭한 사냥꾼의 모습부터, 왕실의 품격으로 우대 받았던 모습, 그리고 기쁨을 선사하며 현대인들에게 일상의 행복감을 전하는 마스코트와 같은 모습을 개, 강아지의 시각적 신호인 '표정'이라는 논의로 담론화 해보고자 한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종종 스크린과 대중매체의 영향을 받아왔는데, 비글, 달마티안이 유행한 시기에는 <피너츠>의 주인공 스누피와 영화 <101 달마티안>이 영화관과 텔레비전에서 성공을 거둔 때와 일치한다. 이런 주인공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절로 행복감에 젖어들게 하는데, 이처럼 현대 형상 예술에서도 작가와 독자 간의 소통으로 이루어진 개, 강아지의 도상을 통하여 인간과 개가 나눈 끈끈하고 오랜 우정을 다시 확인해 보고, 각박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심리적 안정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희망해본다. 따라서 인간과 개의 교감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본 연구 논문이 새로운 텍스트로 거듭나고 향후 개와 인간과의 여정에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확대되기를 기대해본다.

외암리 민속마을에 나타난 한국정원의 전환기적 양상 (A Study on the Transitional Aspects in Korean Gardens that Reflected of the Korean Folk Village 'Oeam-Ri')

  • 이원호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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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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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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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연구는 1920년대 외암리 민속마을을 사례로 정원의 전환기적 양상에 대해 정원요소를 중심으로 다루었다. 이 시기에는 사회 경제 문화적 변화에 따른 종래의 전통적 정원양식과 다른 양식의 정원구성요소가 나타날 것이라는 가설하에 정원구성요소로 수경, 식물, 구조물, 포장 등의 변화를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전환기적 시기인 1920년대는 외부적으로는 외세의 영향과 안으로 실학사상, 개화사상과 더불어 신분제도상의 붕괴조짐이 정원설계요소 변화의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외세의 영향으로 외래양식의 도입과 외래수종의 사용이 증가하였으며, 내부적 신분제도상의 변화는 정원양식의 탈규범화를 촉진하여 상위지향적 형태 및 재료의 사용과 공간기능의 변용을 초래하였다. 전환기적 정원의 특성이 나타나는 정원 조영자는 신분제도상의 붕괴에 불구하고 경제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변화에 지배계급으로 위치를 공고히 한 상류계층에 국한되어 있으며, 식민치하의 사회 혼란상으로부터의 도피적 행태나 선진문물을 선구적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를 통하여 정원의 변화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의 결과로, 자연에 심산 유곡에 위치한 정원의 입지와 지형처리기술을 발달시켰으며, 외래의 양식을 차용하고 사랑마당 정원을 변모시키는 정원조성행태를 보이게 된다. 정원의 배치 및 공간구성에서 전환기적 양상이 두드러진 유형은 건물과 마당(내원)으로 공간구획의 유형이 가장 높은 빈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전환기적 정원설계요소의 출현이 빈번한 유형으로 수경관의 형태와 정원공간의 변화는 사랑 마당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외래적인 요소의 영향이 지대한 수경관과 수목, 점경물 등의 도입이 주요한 공간변화를 일으킨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전환기적 정원요소로 수경관에서는 계류를 중심으로 한 부정형지의 회유식 연못이 주를 이루며, 식물은 전통수종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외래수종과 토피아리형 수목인 상록침엽수, 관목류의 출현이 두드러지며 건조물은 외래형식이 가미되고 점경물은 형태와 배치기법 등에 변화가 나타나며 원로가 자주 사용되기도 한다. 전환기적 정원조성기법의 특징은 적극적인 지형처리기법과 정원소유를 위한 영역성의 증대, 정원재료 및 형태의 변화와 양식의 혼재, 정원의 장식미 추구, 정원 내 의식공간의 퇴조, 동선처리 기법의 변화, 차경에서 선경으로의 취경기법의 변화, 사랑마당 공간 변화, 정적인 정원감상기법에서 동적으로의 변화 및 은유에서 직유로 정원표현기법이 달라지고 있다. 또한 정원을 중심으로 한 내부지향적 시각구조로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본 연구는 한국전통정원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일환으로 전통과 현대의 교량 역할을 하는 근대시기에 대해 접근해 본 것으로 시기적 양상은 전통정원에서 근대정원으로 전이되는 전환기적 양상을 중심으로 고찰한 것이다. 향후, 한국조경사의 한 부분으로 근대조경의 시기가 인식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례의 다각적인 접근을 통한 연구가 지속되어야 할 것이며, 이는 추후 과제로 삼는다.

안경원 선택속성과 정보원천에 관한 연구 (A Study on Selection Attributes and Information Sources of Optical Shop)

  • 차정원
    • 한국안광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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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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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3-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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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목적: 소비자들이 안경원을 어떻게 선택하는지에 관한 안경원 선택속성에 관한 중요도 순서와 안경원을 어떤 경로로 선택하게 되는지를 알 수 있는 정보원천에 관한 중요도의 순서를 매겨 안경원 경영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고자 한다. 방법: 2015년 3월 10일부터 3월 31일 사이에 서울과 경기북부지역의 안경원을 방문한 고객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하였다. 분석방법은 기술통계를 사용하였으며 SPSS v.10.0 통계 패키지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분석하였다. 결과: 안경원 선택속성 중요도 상위 5개는 "직원의 친절과 예의", "안경원의 청결", "고객 불만에 직원의 신속한 해결", "직원의 시력검사 및 조제가공실력", "고객 불만과 요구 처리"로 나타났다. 안경원 선택속성 중요도 하위 5개는 "사은품제공", "안경원의 규모나 크기", "개점시간 및 폐점시간", "편리한 주차시설", "호감 있는 직원 용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안경원 정보원천 중요도 상위 2가지는 "과거의 이용경험", "가족, 친구, 친척 등의 추천으로"인 것으로 나타났다. 안경원 정보원천 중요도 하위 2가지는 "광고 등을 보고"와 "안경원의 특별한 외장을 보고"로 나타났다. 결론: 안경원 경영에서 중요한 점은 광고, 외관, 사은품과 같은 외적인 면보다는 안경사의 실력, 진심어린 고객응대, 과거의 이용경험 등의 내적역량인 것으로 나타났다.

복식미를 보는 시(視)형식 개발 (The Development of Perspectives for Viewing the Aesthetics of Costume)

  • 신주영;김민자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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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8권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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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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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prescribe formative perspectives as a framework where the aesthetic taste and demands of a certain period are embodied and to develop new analytical tools to examine the beauty of dress in terms of form. First, the theoretical tools selected for this study are Heinrich Wolfflin's formative perspective theory derived from art and Marilyn R. DeLong's framework for visual analysis of dress. Second, several issues that limited the development of a new framework for analyzing the form of dress were identified and addressed. Third, the selected aspects of dress form to be analyzed are specified. They are: silhouette, inner form, structure form, materials and patterns based up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body, dress and space in order to develop new formative perspectives. Based upon these theories a new framework for analyzing dress aesthetics in terms of form is developed. This reconstructed framework consists of three sets of antagonistic representational styles: closed form/open form, linear form/painterly form and multiplicity/unity. Closed form/open form represented in dress can be classified by the clear or obscure silhouette shown not only 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dress and space around the dress, but also from changeability or invariability of dress in relation to the body. The material, pattern and various design elements are used as the central criteria to determine the linear/painterly characteristics in dress representations. Finally, the multiplicity/unity can be found 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whole and the parts. Multiplicity is represented in dress when the parts have a visual priority over the whole, whereas unity is represented when a dress as a whole has visual priority over the parts. A dress represented with closed form, linear characteristic and multiplicity is perceived as a clear form. In contrast, a dress with open form, painterly characteristic and unity is understood to be an obscure form. It can be said that this study is the first attempt to establish the formative perspectives for analyzing the form of dress in various periods, cultures and races for the future studies.

로스팅 조건이 삼백초, 인진쑥, 산조인, 당귀, 작약 및 천궁을 첨가한 한방차의 벤조피렌 변화에 미치는 영향 (Influences of Roasting Conditions to Herbal Tea Containing Saururus chinensis, Artemisia capillarisin, Zizyphus vulgaris, Angelica gigas, Paeoniae radix and Cnidium officinale on Its Benzo[${\alpha}$]pyrene Changes)

  • 장재선;최정윤;오성천
    • 한국응용과학기술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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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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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0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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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한방차의 roasting 온도를 $80{\sim}140^{\circ}C$ 범위로 하여 성분 변화를 분석한 결과, 온도의 상승에 따라 수분함량이 감소하고 일부 탄화가 발생하며 조 회분 함량이 소폭 상승하였고, 조 지방 및 조단백질 함량은 소폭 감소하였다. 한방차의 고형분 용출율은 0.15~0.32%(w/w)를 나타내었는데, roasting 온도가 상승할수록 감소하는 경향을 나타내었다. 처리온도가 $80{\sim}110^{\circ}C$구간에서는 큰 변화를 나타내지 않은 반면 $110{\sim}140^{\circ}C$구간에서는 고형분 용출율이 급격히 감소하였다. 온도가 상승할수록 용출율이 감소하는 것은 내부 조직이 치밀하여 상대적으로 용출이 어렵기 때문이다. 벤조피렌 함량은 0.29~0.51ppb으로 온도가 높을수록 $B({\alpha})P$함량이 증가하였다. 처리온도와 원재료에 따라 $B({\alpha})P$ 함량에 차이가 발생하며, 내부온도는 약 $200^{\circ}C$정도지만 roaster 표면의 실제 온도는 약 $2000^{\circ}C$에 이르는데 표면과 접촉한 부분에서 $B({\alpha})P$가 생성된다. $B({\alpha})P$는 주로 음식을 조리, 가공할 때 식품의 주성분인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이 열분해 되어 생성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클림트 작품에 나타난 패턴 연구 (A study on the patterns in the Kimt's paintinga)

  • 차임선
    • 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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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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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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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
  • 20세기 초반기에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여왔던 구수타브 클림트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정신을 발휘하여 새로운 조형성을 추구하며 총체적인 개념으로 작품활동을 전개하였다. 클림트는 그의 작품을 통해 심미적인 요소를 추구하고자 하였으며 인간을 대우주안의 소우주로서 표출하였고, 우주만물의 생성과 죽음의 과정을 여성을 매개체로 표현하였다. 클림트의 패턴은 원, 삼각형, 그리고 나선형으로 나타난다. 원은 우주, 여성을 상징하고, 삼각형은 인간을 상징하며, 사각형은 지구와 남성을 상징한다. 나선형은 돌고 도는, 끌고 당기는 우주의 힘을 상징한다. 클림트는 음과 양, 곡선과 직선, 난색과 한색의 대비를 통하여 그의 상징성을 더욱 강화시켰다. 패턴과 색상의 사용법을 통하여 그의 우주관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던 클림트의 작품은 이차원적인 성격을 매우 강하게 나타낸다. 상징성을 표출하기 위하여 장식적인 패턴의 정교함을 보여주었던 클림트의 작품은 패턴디자인에 자주 응용되어 오고 있다. 그의 작품은 홈 퍼니싱 용도와 어패럴 용도의 텍 스타일 디자인으로 응용되어 왔으며, 스테인드 글래스와 타일로 제작되어 실내를 장식하며 포스터나 악세사리 용품에 응용되어 대중들의 삶에 깊이 침투되어 왔다. 이러한 디자인들은 클림트의 패턴들의 특성을 살리면서 각 디자인용도에 부합되게 레이아웃과 기법을 달리하는 방법에서부터 클림트의 작품을 전반적으로 소화시켜 그 느낌을 간결히 추상화하여 표출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클림트의 작품이 다양하게 해석되어 응용되어 오고 있다. 본 논문은 클림트 작품에 나타난 패턴들을 연구함으로 패턴디자인의 새로운 창의적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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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Vest의 기원과 변천과정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Origin and the Developing Process of Vest for Men)

  • 김서영;이순홍
    • 복식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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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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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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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
  • Vest is a general term for a sleeveless upper garment and it derives from a kolobus of a sleeveless tunic style that was started to be worn as a substitution of a chiton by the peasantry in Greek period. The kolobus started to be called a colobium or a tunica from Roman period and the former was named for a vest style tunica which was worn by the people of the lower classes in early Roman period. Similarly, a German colobium of North Europe which was worn during the same period was the same kind of clothe as the Roman colobium. The colobium came to be worn over a dalmatica as an outer garment by early Christians when it was the Middle Ages, who succeeded the tradition of colobium as they went through ancient Rome, Creek and Byzantine days. North Germans also succeeded the colobium tradition of ancient Germans as it was and so continued to wear it in tight style. The simple vest style of colobium was getting vanished from the mid of the Middle Agnes and a new style of vest named jupon was started to be worn by soldiers. The jupon was to protect soldiers' bodies from either were cold weather or enemies wearing under armors as it was made with double cotton pad by quilt. From 14th century, the jupon began to be worn by not only soldiers but also the humble of lower classes. All the jupon which were made in quilting and padding of that time began to be named a pourpoint by the humble. When Renaissance in 16th century came, the pourpoint began to be developed to an exaggerating body-line style. The neckline of pourpoint was getting highly influenced by Spain and a peacecod-belly of it emphasized the exaggerated masculine beauty of Renaissance by padding in round. The sleeves were puffed out and the whole purpoint was made to expose an inner chemise by slashing vertically or obliquely. But in 17th century, the pourpoint has been changed into more simple style without padding, puffing out and slashing influenced by the citizens' clothes of Netherlands. The pourpoint came to be more comfortable bulky style with short sleeves or sleeveless and straight side lines. The pourpoint in mid 17th century turned to be a bolero jacket style by gradually being tightened. It had been then changed into a vest style with sleeves and worn under an overcoat with the name of vest in the end of 17th century. The early vest was 2∼3 inches les in length than the overcoat and had long sleeves and many ornamental buttons on front. It was also made as a home wear to be worn it alone at home. In 18th century, the length of the vest became shorter compared with that of 17th century and the most important decorative item in clothes. It again came to have complete sleeveless vest style and had very short length reaching waist in the end of 18th century. When it was in 19th century, the vest had developed into more various style and colors and style had been applied to be worn by individuals with their tastes. Around the end of 19th century, the increasing tendency to be casual by industrialization influenced on clothes in all aspects of life and so the male vest has been gradually changed into more casual style. Nowadays, it has been developing into various uses in modern male clothes to show their charac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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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 소세키(夢窓疎石)가 작정한 정원에 나타난 사상 (Ideological Background the Garden of Mus$\bar{o}$ Soseki)

  • 최미영;홍광표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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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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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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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 연구는 무소 소세키의 작품을 통해서 그의 사상적 배경을 알아보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진행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현존하고 있는 무소 소세키의 작품을 고찰하고 그 작품 이루고 있는 그의 생각이나 의도를 조경학적으로, 종교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라고 생각하는 죠고지, 에이호지, 즈이센지, 텐류지 사찰을 대상으로 무소 소세키가 작정한 정원속의 사상적 배경을 찾아보았다. 이 연구대상지들의 선정기준은 깨달음의 수행을 시작한 곳에서 그 생각이 작품으로 승화되기까지 대활약을 한 장소로서 큰 의의를 가진다. 우리가 무소 작품에 집중하고 생각해야 할 것은 그의 작품을 보면서 감동하고 느낀다는 것이다. 연구결과 무소 소세키는 불교의 선사상을 기본으로, 본인이 터득한 다양한 사상과 철학을 정원에 공간구성으로 상징화하고 일본의 정원 속에 선사상의 뿌리를 확고히 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비적인 정원미를 이루었다. 그의 중심적인 사상이 농축되어 있는 저술서 "몽중문답(夢中問答)"을 통해 그의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본 연구는 무소의 작품을 통해 작품 속에 심어진 사상적 배경을 알 수 있다. 본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무소의 작품은 기본사상은 세 가지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첫 번째 사상은 선사상으로 정원에는 좌선석과 동굴, 참도 등 구성요소로 나타나고 있으며, 두 번째 사상은 상구보제(上求普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자비심, 용문폭 석조에 석교(石橋)을 통해 나타남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도교사상이 나타나는데, 도교사상은 무소의 공간적 배경이 되고 있다.

무수동 유회당 원림(하거원(何去園))의 산수체계와 공간구성 (A Study on the Natural Landscape System and Space Organization of Musudong Village's Yuhoidang Garden(Hageohwon))

  • 신상섭;김현욱;강현민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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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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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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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대전 무수동에 가꾸어진 유회당 원림(하거원)의 산수체계 및 문화경관 구성요소를 '유회당집'(18C)에 근거하여 분석한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유회당(권이진)은 보문산 남쪽 지맥 무수동에 자신의 이상세계를 반영한 하거원 원림을 경영했다. 즉, 1707년 마을 뒷동산에 선묘를 자리잡은 이후 시묘소(삼근정사) 조성, 1713년 납오지, 1714년 반환원, 그리고 1727년에 외부공간을 확충하여 하거원 원림을 완성했다. 마을의 산수체계는 대둔산-오대산-보문산이 차례로 이어져 주맥을 이루는데, 주산인 보문산의 지맥(응봉)에서 동쪽으로 뻗은 구릉이 청룡이며, 보문산의 서쪽 지맥(천근과 사정)이 백호이고, 남산은 안산이 된다. 한편, 주륜산에서 발원한 서남쪽 내(川)가 외명당수가 되고, 응봉에서 발원한 계류(내명당)가 마을 동쪽을 관류하여 남서쪽으로 출수되는 배산임수 체계를 보여준다. 마을 동쪽으로 펼쳐지는 계류와 자연 암반 등 자연경관을 활용하여 조성된 초기의 정원(반환원)은 납오지, 활수담, 고수대, 수미폭포, 도경(복숭아나무 오솔길), 오덕대(감나무), 매룡(매화나무), 샘, 배경대 등으로 구성되었다. 반환원을 확장하여 조성된 하거원은 계류와 4개의 연못, 5개의 대(臺)와 3개의 대숲(竹林), 그리고 석가산 축경원 등 수목석 경색(景色)이 어우러진 원림을 구축했다. 의미경관 요소로 (1) 부모님 추모를 위한 유회당, (2) 가문 화합을 염원한 납오지, (3) 절개를 귀하게여긴 고수대, (4) 덕과 지혜의 의미를 일깨운 오덕대, (5) 고매한 인간됨을 염원한 수미폭포, (6) 상서로움을 취한 요천대, (7) 은일자의 삶을 대입시킨 수만헌과 기궁재, (8) 가문과 학문 발전을 염원한 활수담, (9) 선조의 은혜를 일깨운 몽정, (10) 은둔자의 모습을 표현한 석가산, (11) 묘역지킴의 기쁨과 은퇴후의 삶을 위한 하거원 등을 들수 있다. 하거원의 공간구성체계는 (1) 유회당 내원(內園: 납오지와 죽천당, 오덕대, 도경과 후정 등), (2) 수만헌별업(유회당 후원(後園): 석연지와 요천대, 수만헌과 배경대, 암석원 등), (3) 석가산(12봉) 축경원(縮景園, 수만헌 동원(東園): 활수담과 수미폭포, 12봉 가산 등), (4) 마을 뒷동산에 자리잡은 선조들의 묘원(墓園), 그리고 여경암 암자와 산신각(공동체 토속신앙 제례처), 거업재(서당) 등은 유불선(儒彿仙)이 융화된 선경처로서 원근의 계절미를 시원스럽게 부감(俯瞰)할 수 있는 차경원(借景園)으로 구성된다.

1788년 김응환의 봉명사경과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Kim Eung-hwan's Official Excursion for Drawing Scenic Spots in 1788 and his Album of Complete Views of Seas and Mountains)

  • 오다연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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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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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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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은 금강산과 해금강, 관동팔경을 그린 60점의 실경산수화와 51편의 기문(記文)으로 이루어진 화첩으로 규모와 화풍에 있어 보기 드문 작품이다. 그림의 특징은 화면을 가득 채운 구성과 남종화풍을 따르면서도 거칠고 파격적인 화법, 산석(山石)의 기하학적이고 입체적인 표현 등이다. 1973년의 특별전, '한국미술이천년(韓國美術二千年)'을 처음으로 화첩의 일부만 공개되었던 작품은 2019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에서 그 전모가 공개되었다. 《해악전도첩》이 김응환(金應煥)(1742~1789)의 작품으로 알려진 것은 화첩의 마지막 장에 쓰여진 관지(款識)와 현재 행방이 묘연한 <칠보대>에 찍힌 '복헌'이라는 도장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응환을 지시하는 관지와 도장은 모두 후대에 더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본 연구는 화첩을 둘러싼 여러 요소를 고찰하여 제작자를 재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해악전도첩》 제작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18세기 금강산 기행사경도의 전통과 봉명사경을 살펴보았다. 정선(鄭敾)(1676~1759)의 《신묘년풍악도첩(辛卯年楓嶽圖)帖》(1711)을 비롯하여 심사정(沈師正)(1707~1769), 김윤겸(金允謙)(1711~1775), 최북(崔北)(1712~1786 이후), 강세황(姜世晃)(1713~1791) 등은 조선 후기 최고의 여행지였던 금강산을 유람하고 기행사경도를 제작하였다. 화가들은 이전의 전통을 계승하여 내금강의 명승명소를 주로 그렸고, 자신들이 경험한 장소를 새롭게 시각화하였다. 이러한 기행사경도는 여행을 기념하며 동행자나 후원자를 위해 여러 장면을 담을 수 있는 화첩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개별적인 금강산 기행사 경도의 제작이 증가하는 가운데 1788년에 정조(正祖)(재위 1776~1800)가 도화서 화원인 김응환과 김홍도(金弘道)(1745~1806 이후)에게 영동9군과 금강산의 명승(名勝)을 그려오도록 명한 일은 공적 업무였다. 정조는 이들의 관계 및 지방관으로서의 경력, 서로 다른 화풍 등을 고려해 봉명사경의 화원으로 선발하였다. 김응환과 김홍도는 영조(英祖)(재위 1724~1776)조부터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하며 선후배이자 동료로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나아가 이들은 영남 지역의 찰방(察訪)으로서 지방관의 업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었다. 두 화원의 화풍은 서로 달라 김홍도는 부드럽고도 섬세하게 필선을 운용한 반면, 김응환은 굳세면서도 울창한 풍치를 잘 표현했다. 두 명의 화원은 각자의 개성으로 봉명사경 기간 동안 100여 폭의 초본을 그렸고, 이를 선별하여 60~70여 폭의 화첩 혹은 두루마리를 완성하였다. 이들의 그림은 18세기 전중반에 내금강과 관동팔경 위주로 제작된 금강산 기행사경도의 전통을 더욱 풍부하게 했고 영동과 외금강의 명승명소를 새롭게 발견하며 소재를 확장시켰다. 현재 《해악전도첩》은 원(元), 형(亨), 이(利), 정(貞) 4책으로 이루어졌는데, 원(元), 형(亨)책은 내금강의 그림 29점이며 이(利)책은 외금강의 장면 17점, 정(貞)책은 해금강과 관동팔경 14점으로 구성되었다. 비단 위에 그려진 각 그림은 기하학적으로 산석을 표현했으며, 연백으로 금강산의 암봉을 흰색 혹은 회청색으로 표현했다. 《해악전도첩》의 구도와 화법은 정선, 강세황, 심사정, 정충엽(鄭忠燁)(1725~1800 이후), 김응환, 김홍도의 화법과 비교할 수 있어 18세기 후반의 시대 양식을 갖는다. 특히 화첩의 일부 그림은 김홍도의 《해동명산도첩(海東名山圖帖)》(1788)과 구성 및 회화적 모티프가 매우 유사하여 두 화첩간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반면에 <영랑호>, <해산정>, <월송정> 등은 김홍도의 그림과는 구별된다. 이를 통해 화가가 김홍도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적인 화첩을 제작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해악전도첩》에는 다른 화첩에는 등장하지 않는 <자운담>, <백운대>, <안문점망비로봉>, <백정봉>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각 장면마다 경물의 특징을 구체적이고 참신하게 묘사하였다. 특히, 화가는 산석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하고 선과 면을 도드라지게 하여 입체감을 강조하였다. 그는 남종화풍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화법을 확립했고 이를 자유자재로 운용하면서 화면에 동적인 리듬감을 부여했다. 이처럼 60점의 그림은 거칠고 파격적으로 보이지만 나름의 질서 안에서 일관성을 견지하고 있다. 본고는 화법과 봉명사경의 정황을 종합해 《해악전도첩》의 제작자를 김응환으로 추론하였다. 나아가 김하종(金夏鍾)(1793~1878 이후)의 《풍악권(楓嶽卷)》(1865년 이후)과의 친연성은 《해악전도첩》의 화가를 김응환으로 추정한 또 하나의 이유였다. 《해악전도첩》은 김홍도의 《해산첩》과는 달리 후대에 미친 영향력이 미비한데 김하종의 《풍악권》만이 《해악전도첩》의 소재와 화법을 따르고 있다. 김하종은 《풍악권》에서 50년 전, 춘천부사 이광문(李光文)(1778~1838)을 위해 제작한 《해산도첩》(1816)과는 전혀 다른 화법을 구사했다. 그는 김응환의 《해악전도첩》과 유사한 구성과 회화적 요소, 화보식 인물표현을 따르면서 사의적인 분위기를 강조하였다. 개성김씨의 일원이자 김응환의 종손인 김하종은 가문에 전해지는 《해악전도첩》류의 그림을 감상했고 이를 새롭게 번안했다고 추측된다. 화첩에 포함된 51편의 기문은 그림 다음 장에서 그려진 장소를 설명하고 있어 각 그림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도움을 준다. 기문은 그림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앞의 장소로부터의 이동 정보, 이름의 유래, 지형적 특징, 관련 정보 등이 서술되었다. 이와 같은 백과사전식 혹은 지리지와 같은 기문은 19세기 전반에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금강산 화첩류에 더해졌다. 《해악전도첩》의 백화암 기문에는 1845년의 암자에 대한 중건 내용이 기록되어, 기문의 연대를 추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김하종에게 《풍악권》을 주문한 이유원(李裕元)(1814~1888)도 각 그림에 글을 붙였는데 이 글들은 김응환의 화첩에 포함된 기문 51편과 내용 및 서술방식이 흡사하다. 이유원의 기문은 《해악전도첩》의 기문이나 그 초고(원본)와 관련성이 높지만 두 화첩의 기문 필사의 선후관계를 판정하는 데에는 좀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해악전도첩》은 김홍도의 봉명사경 초본 및 김홍도의 영향으로 제작된 19세기의 금강산 화첩과는 구별된다. 이 화첩은 화원 김응환의 회화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지평을 넓히고 18세기 후반 실경산수화의 또 다른 층위를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