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Summary/Keyword: enlightenment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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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댕의 아동 교육 장르화 - 18세기 프랑스 부르주아의 계몽주의적 아동관 (Chardin's Genre Paintings of Child Education: The Enlightenment Views on Children of the French Bourgeois Class in the 18th Century)

  • 고유경
    • 미술이론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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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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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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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This paper examines four genre paintings on the subject of child education by Jean-Baptiste-Sim${\'{e}}$on Chardin(1699-1779). The Governess, The Diligent Mother, Saying Grace, and The Morning Toilette garnered critical attention after they were exhibited in the Salon from 1739 to 1741. After the exhibition, the paintings were made into prints and frequently sold to members of the bourgeois class in Paris. The iconographical details of Chardin's genre paintings have, thus far, been compared to Dutch genre pictures of the seventeenth century. Further, most studies conducted on Chardin's paintings focus on formal analysis rather than the historical and social contexts. Through attempting social-contextual readings of Chardin's educational series, this paper argues that the significance of Chardin's painting series of child education lies in his representation of the ideal French bourgeois family and the standard of early childhood education in the eighteenth-century French Enlightenment period. In each of the four child education paintings, Chardin depicted a mother with children in a domestic space. Even though this theme derives from traditional Dutch genre paintings in the seventeenth century, the visual motifs, the pictorial atmosphere and the painting techniques of Chardin all project the social culture of eighteenth century France. Each painting in the child education series exemplifies respectively the attire of a French gentlemen, the social view on womanhood and the education of girls, newly established table manners, and the dressing up culture in a 'toilette' in eighteenth century France. Distinct from other educational scenes in previous genre paintings, Chardin accentuated the naive and innocent characteristics of a child and exemplified the mother's warmth toward that child in her tender facial expressions and gesturing. These kinds of expressions illustrate the newly structured standard of education in the French Enlightenment period. Whereas medieval people viewed children as immature and useless, people in the eighteenth century began to recognize children for their more positive features. They compared children to a blank piece of paper (tabula rasa), which signified children's innocence, and suggested that children possess neither good nor bad virtues. This positive perspective on children slowly transformed the pedagogical methods. Teaching manuals instructed governesses and mothers to respect each child's personality rather than be strict and harsh to them. Children were also allotted more playtimes, which explains the display of various toys in the backgrounds of Chardin's series of four paintings. Concurrently, the interior, where this exemplary education was executed, alludes to the virtue of the bourgeois's moderate and thrifty daily life in eighteenth century France. While other contemporary painters preferred to depict the extravagant living space of a French bourgeoisie, Chardin portrayed a rather modest and cozy home interior. In contrast to the highly decorated living space of aristocrats, he presented the realistic, humble domestic space of a bourgeois, filled with modern household objects. In addition, the mother is exceptionally clad in working clothes instead of fashionable dresses of the moment. Fit to take care of household affairs and children, the mother represents the ideal virtues of a bourgeois family. It can be concluded that the four genre paintings of child education by Chardin articulate the new standards of juvenile education in eighteenth century France as well as the highly recognized social virtues between French bourgeois families. Thus, Chardin's series of child education would have functioned as a demonstration of the ideal living standards of the bourgeois class and their emphasis on early childhood education in the French Enlightenment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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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여성사적 측면에서 본 단발의 사회적 인식변화 -개화기에서 1930년대까지- (A Study on Changes of Social Recognition about Short-Hair from Perspectives on the Modern Women′s History -From the Enlightenment Period to the 1930s-)

  • 전혜숙;임윤정
    • 한국의상디자인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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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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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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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Hair style is an expression of beauty for individuals and at the same time a clear social representation. It may be regarded as a means of knowing social recognition about social values and groups of the moment. The hair style clearly discriminated so-called the new woman, emerged during Chosun's modernization, and the old woman. Thus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changes in social recognition about the behavioral style of the new woman by relating them with women' s movements and with changes in female education policies. Results of the study can be described as follows. First, the new women in the 1920s were evaluated positive as those who were leading struggles against Japan and enlightenment campaigns. But between the 1920s and the 1930s, those women were thought to be negative in that they were appearance-oriented, extravagant and sticking themselves to reality. Second, how a variety of social figures recognized short-hair was determined here through reviewing the mass media of the 1920s. At that time, some men were positive about short-hair like feminists while others denied the convenience of the hair style in life and were negative about the new women's individualism and pursuance of luxurious appearance. Third, there were both positive and negative social recognitions about short-hair in the 1930s. which were supported by the mass media of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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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과학 교육자의 배경과 역할 (The Backgrounds and Roles of the Science Educators during the Enlightenment Period of Korea)

  • 박종석;정병훈
    • 한국과학교육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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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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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43-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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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개화기 과학교과서의 편저자들을 당시 과학교육의 도입과 활동에 있어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들로서 그들의 배경과 역할을 연구하여 한국 과학교육의 정착 과정을 논의하였다. 당시 출판된 과학교과서의 편저자들 중 한국인은 38명에 이르고, 대한제국 관원 이력서나 학회지를 통해서 그들 중 12명의 배경을 알아냈으며, 교과용도서일람과 학회지로부터 그들의 활동 내용을 밝혀냈다. 7명은 일본에서 유학하였고, 5명은 국내에서 전문 교육을 받았다. 4명이 과학교육과 관련된 자연분야를 일본에서 전공하였다. 이들은 활동 초기 학회지 등에 과학이나 전문 학문 분야에 관련된 기사를 게재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과학 교과서나 일반 교과서를 편술 또는 저술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역할은 1910년대부터 점차 활동의 비중이 커진 일본인 교사들로 대체되며, 그들 자신도 전문적 학술 훈련을 받은 집단이 아니라 기술과 관련된 전문학교 수준의 응용과학을 배웠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과학교육을 실시하는 데는 학문적으로나 교육적으로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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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조선 체류 서양인 기록물의 디지털 아카이브 시스템 구축 (Construction of the Digital Archive System from the Records of Westerners Who Stayed in Korea during the Enlightenment Period of Chosun)

  • 정희선;김희순;송현숙;이명희
    • 한국비블리아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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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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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9-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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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는 개화기 조선 체류 서양인 기록물의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여 지역문화콘텐츠로 활용하기 위하여 수행되었다. 서양인 기록물 22권을 대상으로 선정하여 10개의 대주제, 40개의 중주제, 239개의 소주제로 된 분류체계를 구성하고 38개 메타데이터 항목을 추출하였다. 텍스트 내용의 분석과 입력자료 유형을 분류하여 엑셀로 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다양한 접근점에 의한 검색과 정보 제공을 위하여 웹기반의 디지털 아카이브 시스템을 개발하였다. 추후연구를 위하여 서양인 기록물 자료의 지속적인 발굴을 통한 아카이브 내용의 양적 확대방안, 개별 아카이브 시스템을 연계한 디지털 한국학 아카이브의 통합정보시스템 구축, 문화유산분야 분류체계 표준화와 패싯구조를 고려한 다차원적인 분류체계 개발, 메타데이터 포맷의 표준화를 통한 콘텐츠의 일관성 유지, 의미검색 기능과 데이터마이닝 기능을 활용한 온톨로지 구축을 제안하였다.

개화기 방한 서양인 기록물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에 관한 연구 (Developing Digital Archives from the Records of Westerners who visited Korea during the Enlightenment Period of Chosun)

  • 정희선;김희순;송현숙;이명희
    • 한국문헌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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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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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5-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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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 연구는 개화기 방한 서양인 기록물의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여 지역문화콘텐츠로 활용하기 위하여 수행되었다. 수집대상 자료는 서양인 기록물 11권이고, 주제분류체계로부터 10개의 대주제와 120개의 소주제를 추출하였다. 37개 메타데이터 항목에 맞추어 텍스트 내용의 분석과 입력자료 유형을 분류하고 엑셀로 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디지털 아카이브 시스템 모델과 5개의 메뉴로 구성된 홈페이지 구축(안)을 제시하였다. 추후연구를 위해 아카이빙 구축을 위한 데이터의 지속적인 발굴과 아카이브 확대 방안, 아카이브 시스템간의 활발한 연계, 시스템 표준화, 시스템 호환성과 사용자 편의성을 고려한 시스템 설계를 제언하였다.

근대계몽기 세계지리 교과서 "소학만국지지(小學萬國地誌)"의 내용체계와 서술방식 (The Contents Organization and Description Style of World Geography Textbook "小學萬國地誌" in the Period of Modern Enlightenment)

  • 강창숙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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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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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47-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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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근대계몽기(1894~1910)에 "만국지지"라 불리는 세계지리서들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지리적 지식으로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국가관 전환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 중에서도 1895년 근대식 학제에 의거하여 학부에서 공식 편찬한 "소학만국지지"는 1권으로 편집된 근대계몽기 초기의 세계지리 교과서이다. 이에 "소학만국지지"가 갖은 의미와 영향을 구체적인 내용체계와 서술방식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소학만국지지"의 내용체계는 세계를 대륙, 국가, 지역의 규모로 구분하고, 6편의 지지를 자연지리에서 인문지리의 순서로 서술하면서, 지역을 비교하거나, 지리적 현상의 인과관계를 서술하는 근대적 지지로 구성되었다. 국한문 혼용체로 서술된 이 책의 문체와 문자 그리고 편집 체계상의 변화는, 세계 각 지역의 지명에 대한 한글 표기, 서양 근대 지식의 적극적인 수용, 근대적 지리적 지식의 대중화에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소학만국지지"는 당시의 세계를 사회진화론과 계몽주의,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복합적 이데올로기로 견지하면서, 사람들의 인식을 중국 중심에서 근대적 세계관으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지식을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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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의 원각사13층석탑 건립과 그 의미체계 (King Sejo's Establishment of the Thirteen-story Stone Pagoda of Wongaksa Temple and Its Semantics)

  • 남동신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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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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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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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1467년에 완성된 원각사13층석탑은 한국 역사상 최후의 호불군주에 의한 최후의 도성불탑이다. 필자는 세조가 즉위 10년을 맞이하여 도성(都城) 중심부에 13층석탑을 세우고 탑에 석가사리(釋迦舍利)와 함께 '신역원각경(新譯圓覺經)'을 봉안한 뜻을 세조의 관점에 입각하여 살펴보았다. 머리말에 이어 제II장에서는 13층탑의 경전적 배경을 다각도로 고찰하였다. 특히 필자는 13층탑 건립의 직접적인 소의경전으로서 『대반열반경후분(大般涅槃經後分)』을 최초로 발굴하고, 이 경전이 7세기 후반 중부 자바에서 번역되고 동아시아에 유통된 사실을 추적하였다. 아울러 13층탑의 기원으로서 이른바 카니시카양식의 탑을 주목하고 동아시아와 한국에서의 13층탑 조성 사례를 개관하였다. 그리고 불교문헌을 탐색하여 '13층'이 깨달음[Buddha]으로 나아가는 수행 단계를 상징함을 입증하였다. 확실히 '13'은 불교도에게는 매우 특별하면서도 신성한 숫자라 할 수 있다. 이어서 제III장에서는 세조의 원각사13층탑 건립의 불교적 정치적 함의를 탐색하였다. 불교적 함의와 관련해서는, 세조가 중국에서 직접 구입하여 조선에 최초로 유통시킨 『번역명의집(翻譯名義集)』과, 그가 최초의 한글 번역에 직접 개입한 『원각경(圓覺經)』에 주목하였다. 『번역명의집』은 14세기에 출현한 일종의 불교용어집인데, 세조는 원각사탑을 창건할 무렵 이 문헌을 통하여 13층탑의 소의경전인 『대반열반경후분』을 알았을 것으로 추론하였다. 한편 세조는 대장경 전체를 상징하는 단일경전으로 '신역 원각경'을 원각사탑에 봉안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그가 최초의 한글 번역에 깊이 관여한 『원각경언해』였다. 아울러 『원각경언해』의 저본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종밀(宗密)의 『원각경략소(圓覺經略疏)』임을 밝혔다. 원각사탑 건립의 정치적 함의와 관련해서는, 조선 초 왕실의 능사(陵寺)(또는 진전사원(眞殿寺院))에 세워진 석탑-경천사13층석탑(敬天寺13層石塔), 개경사석탑(開慶寺石塔), 연경사석탑(衍慶寺石塔), 신륵사다층석탑(神勒寺多層石塔)-들을 비교 검토하였다. 그 결과 세조가 자신의 왕위계승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정치적 상징으로서 원각사13층석탑을 건립하였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본고에서 필자는 13층탑으로서의 원각사탑의 의미체계를 온전히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여말선초 정점에 달한 불탑 문화를 이해할 뿐 아니라, 카니시카대탑에서 기원하고 『대반열반경후분』에 근거하는 동아시아의 13층탑을 연구하는 데 한국적 연구모델로서 기여하리라 기대된다.

일제강점기 길장지구 한인 관련 건축활동과 시설에 관한 연구 -만선일보의 기사를 중심으로- (A Study of Architectural Activities in China Jichang(吉長)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 Focused on the articles of Manseon-ilbo(滿鮮日報) in 1940 -)

  • 한동수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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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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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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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This paper deals with architectural activities related to Korean society in Jichang district in North East China, focused on the articles of Manseon-ilbo published ther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Construction-related contents in the area closely connected with topical interest, publicity, and enlightenment as a local media source provide positive grounds about pending issues in colonial situations. This paper handles with articles issued in the 1940's newspapers just before the Pacific War. At that time Japanese enter in the Chinese continent, and construct a stable basis in the intimate association with Germany and Italy, countering against the United State. Among articles regarding architecture, most of contents are based on healthcare and public facilities, and urban planning. Overwhelmingly the most popular articles are about new constructions of educational facilities and residential matters. The shortage of goods and the excessive concentration of population resulted in urban and house problems, which were particularly much more serious in Korea society. Such social atmosphere made all activities regarding building constructions, in particular educational facilities, in civil level rather than the helps of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Thus, through education and house matters we can read a slice of Korean society to survive in the colonial environment of Jichang district.

서양인의 조선여행 기록문을 통한 근대 식생활사(食生活史) 연구 (Study on Modern Food Culture History through Records from Foreigners' Chosun Dynasty Travel in the Enlightenment Period)

  • 김미혜
    •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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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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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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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The study presented attempts to analyze and categorize Chosun's food ingredients and culture through a Western perspective based on 32 representative Western documents pertaining to old Korea. Before modernization, Westerners visited Chosun during their visits to old China or Japan. Westerners were most active in Chosun from the open port period to the annexation of Korea to Japan occupation. They were teachers, missionaries, diplomats, and doctors visiting Chosun with personal goals. In 31 book traveler's journal, it records Chosen's mainly produced ingredients, such as grains, spices, fruits, cabbage, chicken, and chestnuts; foods from Chosen include kimchi, soup, and tofu. Foreigners especially liked foods made of eggs and chicken, but they did not enjoy Chosun's lack of sugar and dairy. Thirty-one book foreigners' records describe Chosun's Ondol, kitchen, crock, fermented foods, low dining tables, and chopsticks. Chosun people liked dog meat, unrestrained drinking culture, sungnyung, and tea culture. Foreign documentation on Chosun's food culture allows modern scholars to learn about Chosun people's lifestyles, as if their lives were a vivid picture.

개화기(開化期) 서울에서 양식적 건축 요소를 차용한 절충적 한옥(韓屋)의 입면에 관한 연구 (A Study of Hybrid Characteristics in Architectural Elevations Seoul, between 1876 and 1905)

  • 김정인
    • 한국주거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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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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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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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There have not been many debates on the subject of Korean architecture during the transformative period of Gae Wha Gi (開化期: Enlightenment Period of Korea), when Western-style buildings first appeared in Seoul. This study begins by finding and recording those buildings in Seoul that show the gradual adoption and appropriation of Western architectural elements at the turn of the 20th century. By exploring the confluence of two different architectural styles, this paper attempts to look carefully at the hybrid conditions that resulted from encounters between the Koreans and the Westerners in the late 19th and early 20th century. Beginning with discovering the first products of the Western architectural influence in Seoul, this study explores the uneasy co-existence between the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al style, and the Western architectural style. This co-existence ultimately bred new building techniques, and interior layouts; the appearance of these hybrid buildings illustrate the gradual transition from the traditional way, in which users modified, combined and appropriated various elements from both styles. Analyzing historical documents and photos, this study tries to capture a detailed image of the period when the influence of the Western architecture had an unavoidable impact and brought change to the traditional architecture of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