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ancient docu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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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차원 스캐너를 이용한 구조물의 역설계 기법 (A Technology on Reverse Engineering of Structure Using 3D Scanner)

  • 양인태;신문승;아차르야 트리데브
    • 산업기술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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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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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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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Recent extreme weather events and natural disasters are causing rapid aging of the ancient structures with cultural value. It has threatened the safety and management. The construction design documents are not kept for such long time. Even if they are, they seem to be mismatched with the design structures due to corrosive effects. For these reasons, Korea has been facing difficulties in maintenance, reengineering and safety evaluation. In this study, three dimensional point cloud surface of bobsleigh is obtained using 3D LiDAR scanner. The obtained structure is compared with the original design and found to be highly accurate. The study shows the application of reverse engineering technique and its potential use for other civil stru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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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문서에 대한 표절 감정과 미술품, 고문헌등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표절 감정 방법의 제안 (Plagiarism Inspection of S/W Programs, Documents and Plagiarism Inspection Proposal of Intellectual Properties such as Fine Arts and Ancient Literatures)

  • 조동욱;최병갑
    • 한국정보처리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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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정보처리학회 2003년도 추계학술발표논문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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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53-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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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본 논문에서는 프로그램 소스 코드로부터 표절을 감정하는 기술적 방법론에 대한 고찰과 자연어 형태로 쓰여진 팔에 대한 표절 형태 및 이를 감정하기 위한 기술적 방법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미술품이나 고문헌등에 대한 저작자의 진위 여부 및 표절 감정은 저자뿐만 아니라 소장자의 재산가치 평가 및 문화재 관리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기술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방법론을 제안하고자 한다. 최종적으로 실험에 의해 븐 논문의 유용성을 입증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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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입효방(濟衆立效方)』에 관한 의사학적 고찰 - 교효산(交效散)을 중심으로 - (Historical study of 濟衆入效方 -focusing on 交效散)

  • 이덕호;김홍균;안상우
    • 한국의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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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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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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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濟衆立效方" is the oldest Koryo dynasty medical document known to date. Despite its historical importance, due to the absence of its original copy, its true characters could not be understood. Through comparison of the many documents that cited 濟衆立效方, it could be found that 濟衆立效方 can be classified into two parts based on its contents and form. In Chinese medical texts, neither the name 交效散 nor any similar prescription is mentioned. 濟衆立效方 was the first in suggesting the usage of pine needles and salt for fomentation and not for internal use. Thus 交效散 can be thought of as the oldest indigenous prescription preserved in Korean history. 濟衆立效方 conveys records of the combination of the ancient origin pine needle fomentation and the creative addition of sa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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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의 몸과 건강(健康)에 대한 연구(硏究) (A Study of heathy condition in Hunagdineijing)

  • 오재근;김용진
    • 한국의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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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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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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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The term '健康(heathy condition)' does not appear in East Asian medical classics. Its root comes from the ancient word 'hal' which can be translated as 'hale', 'whole', 'sound in wind and limb', and it means 'the physical state is flawless, whole, satisfactory, and strong'. The Japanese translated it into the Chinese letters 건강 in the 19th century and this was spread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era. This study is an attempt to explore what "huangdineijing" (the most representative medical documents of East Asian medicine) mentions about healthy condition, which is as a term to express the body's ideal state and what other concepts exist that correspond to 健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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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촌락 역사문화공간 보존을 위한 보호구역 설정 방안 연구 - 중국 굉촌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Establishment of Preservation Area for the Preservation of Historical and Cultural Space in the Ancient Village - Focused on the Hongcun, China -)

  • 신현실;대개영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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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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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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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논문은 굉촌 고촌락의 특성과 변화과정을 통해 변화된 굉촌 역사문화공간의 보존을 위한 보호구역의 재설정 방안을 분석하였다. 이를 위해 굉촌과 관련한 고문헌, 고화, 각종 보호 관련 정책자료를 분석하고 인터뷰와 현지조사를 실시하여 굉촌 내 보존지역과 활용지역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보존지역의 재설정 문제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굉촌은 유교, 불교, 도교사상의 영향을 받아 조성된 촌락으로 공간구성은 유교의 위계에 따라 조성되었다. 이로 인해 중앙정부의 보존이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선조들의 유산이 계승 보존될 수 있었다. 둘째, 굉촌 고촌락은 고대부터 이어져온 문물의 개념으로 인식되어온 협의적 보존의 개념이 적용되어 왔으나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등으로 인하여 촌락 공간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후 굉촌 보호계획을 계기로 신축 및 증축 등의 규제를 통하여 고건축물, 수체계, 수림 등이 보존되었으나 지속된 개발 압력과 개혁개방으로 인한 원주민의 생활 변화로 보존지역 내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셋째, 고촌락 원주민들은 유산에 대한 가치 인식은 높았으나 생활의 개선과 수익 창출을 위한 방안 및 이를 위한 촌락의 적극적인 활용을 요구하였다. 넷째, 노거수로 이루어진 수림은 복원이 진행되고 있으나 고택 내 정원들은 활용을 위하여 원림공간이 축소되거나 변형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도로는 본래 고 촌락 진입구인 서측 지역에서 확장된 남측지역에 다리와 주차장이 신설되어 기존 진출입구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관광객의 진출입이 편리하도록 도로체계를 변형한 것으로 고촌락 공간변화의 주요 원인으로 나타났다. 다섯째, 기존의 보존지역을 월소를 중축으로 하는 보존 루트로 재설정하여 보존을 진행하는 한편 주변 지역을 직접·간접체험공간으로 설정하여 각 공간의 위계에 따른 보존과 활용을 교차하여 보존 가운데 활용이 진행되어야 한다.

고문헌 유래 삼해주의 제조방법에 따른 품질특성 (Characteristics of Samhaeju Made by Various Processing Methods Originating from Ancient Documents)

  • 박지혜;여수환;정석태;원명하;최지호
    • 동아시아식생활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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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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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3-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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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고문헌에 수록된 삼해주의 제조법을 재현하여 그 특성을 분석하였다. 삼해주의 발효 기간 동안의 실내온도는 $9.1{\sim}25.0^{\circ}C$였으며, 각 제조방법별 삼해주의 품온은 $11.7{\sim}23^{\circ}C$ 였다. pH는 첫 담금 후 6.6~6.9이었으나, 발효가 진행되면서 급격히 감소하다가 발효 18일째부터 서서히 상승하였다. 적정 산도는 발효가 진행됨에 따라 서서히 증가하는 양상을 나타내었으며, 아미노산도 또한 전반적으로 증가되는 경향을 보였다. 발효 과정 중 삼해주 술덧의 가용성 고형분 함량은 제조방법에 따라 그 패턴이 다양하였으며, 발효초기의 온도가 가용성 고형분함량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환원당 함량은 1(산가요록), 3(음식디미방), 7(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8(산가요록 $15^{\circ}C$ 발효)제법의 경우 1차 담금 직후 높았던 환원당이 발효가 진행되면서 급감하다가 2차 담금 후에는 증가하였으나 그 변화는 미미하였다. 알코올 함량은 발효가 진행될수록 증가하는 양상을 나타내었는데, 대부분의 처리구에서 2차 담금 전에 알콜함량의 1/2이 생성되었으며, 2차 담금 후 발효 종료 시까지 3개월(약 100일 내외)에 걸쳐 서서히 증가하였다. 관능평가에서는 맛과 전반적인 기호도의 경우 환원당 함량이 다른 처리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던 2, 4, 5, 6제법이 우수한 점수를 받았다. 7종의 제조방법 중 비교적 간단하고, 관능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2제법이 전통주의 산업화 및 대중화에 가장 적합할 것으로 사료된다.

연천 홍석주의 예술론(藝術論)에 대한 일고찰 - 정약용(丁若鏞)과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 (A study about art theory of Yeoncheon Hong Seok-joo - Focused on difference with Jeong Yak-yong丁若鏞)

  • 윤종일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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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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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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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연천 홍석주(淵泉 洪奭周: 1774-1842)는 정조의 문체반정 정책에 충실한 수행자의 역할을 한 사람이었다. 그는 1794년 이래 초계문신으로 정조를 가까이 대하면서 그 영향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정조 사후(1800) 이래 비교적 순탄한 사환기(仕宦期, 1795-1836)를 가지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학문관을 정립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홍석주는 성리학적 문학론의 핵심개념인 '도본문말(道本文末)' 사상에 바탕을 둔 '문이재도(文以載道)'의 이론을 벗어나지 않는 범주에서, 문(文)과 시(詩)의 기능을 명교(明敎)와 감인(感人)으로 구분한다. 문의 방면으로는 교훈적 대사회적인 기능을, 시의 방면에서는 성정과 천기를 중시하는 감성적 이해에 주목하였다. 홍석주는 세교설(世敎說)에 입각하여 도덕적 감발과 그를 통한 사회적 교화를 예술 창작의 핵심에 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예술작품의 중요 요소로 언급되고 있는 '흥관군원(興觀群怨)'이나 '여항구요(閭巷謳謠)'와 같은 표현은 예술행위에 있어서의 객관적 대상의 실재를 중시하고 그 실상과 부합되는 묘사를 요구하는 태도에 연결되는데 이러한 표현방식은 마치 회화에 있어서 그가 풍속화적(風俗畵的)인 특성을 지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미망으로도 추정된다. 반면 정약용은 성리학적 문이재도론의 입장에서 주희의 '시경론'을 비판하는 데로 나아간 것이 특징이다. 그는 "시경"의 시편과 일반시의 정치사회적 기능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주희의 시에 관한 담론을 자신의 견해에 의하여 재해석한다. 작자(作者)가 정치적, 사회적 비판을 행한 것이 국풍의 시라는 것이다. 정약용의 국풍론은 사회정치적 맥락 속에서 사대부 계층의 실천적 역할을 강조하는 정약용의 사상을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청국장의 역사 (The History of Chongkukjang)

  • 정경란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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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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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47-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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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혹자는 청국장(淸麴醬)은 전시(戰時)에 단기숙성으로 단시일 내에 제조하여 먹을 수 있게 만든 장이라하여 전국장(戰國醬), 또는 청나라에서 배워온 것이라 하여 청국장(淸國醬)이라고도 하며 전시장(煎?醬)이라고도 하였다 하고, 청국장이 우리나라 문헌에 처음 보인 것은 1760년(영조 36) 유중임(柳重臨)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서부터라고들 한다. 또한 어떤 이들은 청국장과 메주를 뜻하는 '시(?)'가 삼국사기에 나오므로, 청국장은 삼국시대부터라고도 한다. 이처럼 청국장의 역사는 청나라(1600년대)부터인지 고구려, 신라시대부터인지 분명하게 전해지지 않아, 혼란스럽고 그 틈을 타서 과학적이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돌고 있다. 이 글에서는 고문헌 기록을 통해 청국장의 역사를 과학적으로 재조명하였다. 문헌기록을 통해 본 결과 고구려, 신라시대에 이미 청국장(?)이 있었다. 청국장은 젼국, 쳔국, ?국으로 불리었으며, 한자로 '시(?)'로 썼고, 어느 시기부터 청국장도 된장, 간장, 고추장과 같이 장(醬)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전시장(煎?醬), 전국장(戰國醬), 청국장(靑局醬), 청국장(靑麴醬) 등으로 쓰다가 지금은 청국장(淸麴醬)으로 통일되었다. 시(?)의 의미도 1500년대까지 청국장을 의미했고, 1600년대 이후에는 청국장이 한자로 장(醬)이 붙은 전시장(煎?醬), 전국장(戰國醬), 청국장(靑局醬), 청국장(靑麴醬) 등으로 굳어지니까 시(?)의 의미도 메주, 된장을 국한지어 의미하게 되어 가는 경향이 있었다. 청국장은 전쟁과 관련이 있거나 청나라와 관련이 있는 음식이 전혀 아니며, 청국장은 문헌 기록상으로 보아 2200여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으나, 기록 이전에 사물이 먼저 있었을 것이므로, 이보다 훨씬 이전인 수 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할 것이다.

오동나무상자의 항균활성 분석 및 활성 증진을 위한 천연 살생물제 적용연구 (Analysis on Antifungal Activity of Paulownia-Wood Storage Box and Application of Natural Biocide for the Activity Enhancement)

  • 정용재;강소영;최윤아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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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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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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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고문서 보관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오동나무상자의 항균활성을 측정하기 위해 오동나무로부터 방출된 휘발성 물질에 대한 항균활성과 휘발성 유기물질의 주성분을 정성분석 하였다. 항균활성은 상자 내부에 TSA 배지를 장착한 미생물 포집기를 설치하고 포집 후 배지에 성장한 미생물의 집락수를 관찰하였다. 그 결과 실외에서 포집한 배지의 집락수 85개 대비 14.82%가 감소한 72개 집락수가 관찰되었다. 포집된 공기질을 열탈착시스템 및 가스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법을 통해 분석한 결과, 오동나무 상자 내 VOCs에서 limonene이 특징적으로 검출되었다. Eugenol과 anethole을 주성분으로 하는 천연 살생물제 I과 II를 상자 내에 첨가하여 훈증에 의한 항균활성을 측정한 결과, 약제 모두 실외와 오동나무 상자 내부에서 포집된 미생물 개체수 대비 각각 92.6%, 99.9% 이상 감소율을 보였다. 위의 결과로부터 사용된 오동나무 상자로부터 방출된 휘발성 유기화합물에 의한 항균활성 및 그 유효성분은 분석되지 않았으며, 생물피해로부터 고서적을 장기보관하기 위한 유물 보관함의 효율을 증진시키기 위해 천연 살생물제의 적용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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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이전 문헌에 기록된 전 조리법의 문헌적 고찰 (A Bibliographical Study of Korean Fan Fried Side dishes(Jeon) in Korean Literatures before the 1900s)

  • 최영진
    • 한국식품조리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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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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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29-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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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Jeon refers to a type of Korean cuisine used as a side dish, made with various ingredients such as meat, vegetables, or fish, mixed with flour batter and coated with egg batter and then pan-fried on both sides with oil so that heat spreads through them well. The aim of this study was to provide a cornerstone of further research on Korean dietary life, by reviewing types, recipes and names of Jeon recorded in ancient cookbooks (Korean literatures) and by analyzing changes in recipes to make Jeon, which our ancestors used wisely as one type of side dish. Considering developments and changes recorded in old documents, the Jeon recipe appeared relatively later than the recipes for grilling, steaming et al, which had been developed much earlier, and it had not been recorded until the 1600s. Changes of Jeon recipes by time period are as follows. In the 1600s, there were three recipes: frying only with grain batter after preparation of ingredients, frying right after preparation of ingredients, and putting ingredients on already fried watery batter. These three recipes were still used in the 1700s, in addition to a new recipe, in which ingredients were oil-fried to be skewered. Today's recipe in which prepared ingredients are fried after getting coated with flour and egg only appeared in 1800s. This has been the main recipe for Jeon ever since. In that time period, there was more variety of recipes and ingredients than before. For instance, Jeon was used for soup or steamed dishes instead of being served as a dish itself. Buchimgae with mixed ingredients was also considered Jeon. In the 1900s, there appeared more names for Jeon as more sorts of ingredients got used, even though there were no new recipes for Jeon. The above-mentioned historical records show that traditional recipes for Jeon have been applied to various dishes, using diverse ingredients, and it might be a smart solution to today's problematic dietary habits involving excessive intake of nutrients, in that it provides a healthy way to add fat. In the same sense, the recipe for Jeon can play an active role in internationalization of Korean foods, in which healthiness is a main feature. According to ancient documents, the recipes for Jeon were used even for meals that were not side dishes, such as Jun-Gwa (Jung-Gwa), Jun-Yak and fried rice-cake. Also, there were dishes using the same recipes even without carrying the name of Jeon, like Buchim or Jijim. This might be worthy of further examination in culinary sci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