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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원 건축의 영향과 고려의 수용 (The Architectural Influence from the Yuan Dynasty and the Acceptance of Goryeo Dynasty in the 14th Century)

  • 홍병화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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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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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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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The architectural influence from the Yuan had impact on the Goryeo Dynasty in earnest during Yuan intervention period in the 14th century. The representative examples which were influenced by the Yuan architecture are the Eungjinjeon in Seongbulsa(成佛寺) temple, the ten-story stone pagoda of Gyeoncheonsa(敬天寺) temple site, the Bogwangjeon in Simwonsa(心源寺) temple, the Hoeamsa(檜巖寺) temple and so on. Notwithstanding the changes of relationship between two countries, it can be comprehended that there was a selective acceptance of the Yuan architectural peculiarities in Goryeo Dynasty. It means that the adoption of foreign culture in Korea has not been inevitable from the unilateral demand, but been autonomous by perceiving as the advanced culture. This tendency was maintained even though the government had been changed.

조선(朝鮮) 산학(算學)과 사원옥감(四元玉鑑) (Mathematics in Chosun Dynasty and Si yuan yu jian)

  • 홍성사;홍영희
    • 한국수학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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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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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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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송(宋), 원대(元代)의 가장 중요한 산학자(算學者) 소구배(泰九韶), 이치(李治), 주세걸(朱世傑)이 19세기 조선(朝鮮)에서 연구되어 19세기 중엽 조선(朝鮮) 산학(算學), 특히 대수학 분야가 크게 발전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사원옥감(四元玉鑑)이 조선(朝鮮) 산학(算學)에 미친 영향을 조사한다. 나사림(羅士琳)의 사원옥감세초(四元玉鑑細艸)를 연구한 남병길(南秉吉)의 옥감세초상해(玉監細艸詳解), 이상혁(李尙爀)의 저서로 추정되는 사원옥감(四元玉鑑)과 이에 기초하여 저술된 남병길(南秉吉)의 산학정의(算學正義), 이상혁(李尙爀)의 익산(翼算)을 조사하여 사원옥감(四元玉鑑)과 조선(朝鮮) 산학(算學) 발전의 관계를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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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굉(袁宏)과 갈홍(葛洪)의 유도(儒道)관계론 연구 (A study on the perspective of relationship between Confucianism and Taoism of Yuan-hong & Ge-hong)

  • 李溱鎔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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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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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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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중국철학을 대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학파는 유가(儒家)와 도가(道家)이다. 두 학파는 각기 다른 방식을 통해 현실의 갖가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고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상이한 이론체계를 세운다. 다만 중국철학의 발전을 살펴보면 이러한 상이한 이론을 하나의 체계 속에 엮으려는 다양한 시도가 전개되었다. 대표적으로 위진(魏晋)시기 현학(玄學)에서는 자연(自然)과 각수(名敎)의 관계를 토론하며 유도(儒道) 두 학파의 관계 설정에 골몰한다. 동진(東晋)시기의 지식인들은 바로 전대(前代)의 이러한 정신을 이어서, 직접적 방식으로 유도(儒道) 두 학파의 관계 설정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펼친다. 본 논문은 동진(東晋)시기 유도(儒道)관계론의 대표적 학자로 원굉(袁宏)과 갈홍(葛洪)의 이론을 살펴본다. 원굉(袁宏)은 명교(名敎)의 효용성과 가치를 충분히 긍정하면서, 다만 명교(名敎)의 근본과 근거 찾기에 골몰하여 전대(前代) 자연(自然)과 명교(名敎)의 관계 문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동시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도본유용(道本儒用)'의 관점을 제시한다. 갈홍(葛洪)은 신선도교(神仙道敎)의 입장에서 유도(儒道) 두 학파의 관계 및 두 학파 이론의 직접적 비교를 통해 '도본유말(道本儒末)'의 이론을 정립한다. 이들의 이론은 근본과 작용, 근본과 말단의 관계 설정으로 유가와 도가 두 학파의 관계를 설정하는 동시에, 자연(自然)과 명교(名敎)의 관계 문제를 보다 심층적 방식으로 이론적 접근을 꾀함으로써, 향후 중국철학에서 유가와 도가의 상호 보완이라는 문제의식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조선(朝鮮) 문인(文人)과 교류(交流)한 청조(淸朝) 학자(學者)들의 문자학(文字學) 연구(硏究)에 관한 소고(小考) (Study on the Chinese graphonomy's exchanges of Qing Dynasty and Joseon Dynasty)

  • 서한용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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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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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29-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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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Zu Wen-Zao(朱文藻), Li Tiao-Yuan(李調元), Hong Liang-Ji(洪亮吉), Peng Yuan-Rui(彭元瑞), Qian Dong-Huan(錢東垣), Sun Xing-Yan(孫星衍), Ruan Yuan(阮元), Chen Zhan(陳?), Wu Shi-Fen(嗚式芬), Feng Gui-Fen(馮桂芬), He Shao-Ji(何紹基), Fan Zu-Yin(潘祖蔭) made the contributions to the theoretical construction to the science of Chinese characters in their books "Shuwenxizhuankao(說文繫傳考異)", "Liushufenhao(六書分毫)", "Liushuzhuanzhulu(六書轉注錄)", "Xiqinggujian(西淸古鑒)", "Xiaoeryajiaozheng(小爾雅校證)", "Jiujingzhengsuzikao(九經正俗字考)", "Jiguzhaizhongdingyiqikuanshi(積古齋鐘鼎?器款識)", "Shuwenshengxi(說文聲繫)", "Shuwenjiuzizhengyi(說文解字正義)", "Jungulu(?古錄)", "Shuwenjiuzizhukaozheng (說文解字段注考正)", "Shuowenduanzhubozheng(說文段注駁正)", "Haidongjinshilu(海東金石錄)". They analyzed the rules behind character construction, and tried to find out the nature of Chinese characters, the relationship between Chinese characters, the evolutionary laws of Chinese characters, the characteristic of ancient Chinese characters etc.

천원술(天元術)과 기수법(記數法) (TianYuanShu and Numeral Systems in Eastern Asia)

  • 홍성사;홍영희;이승온
    • 한국수학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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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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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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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중국의 명수법은 기록은 구어체를 사용하고, 계산은 산대를 사용하는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또 산서는 실생활의 문제만 다루는 과정에서 수학적 구조를 나타내는 방법을 택하여 계산 과정을 제외하면 이들에서 취급한 수는 모두 명수(名數)들이어서 순수한 수론의 발전을 이룰 수 없었다. 송대에 0의 도입과 함께, 천원술의 표현에서 나타나는 계수를 산대로 표시하는 방법을 통하여, 산대가 계산 도구와 함께 추상수의 기수법(記數法)이 되는 과정을 밝힌다. 수량의 단위를 사용한 소수의 표현도 이 과정에서 산대 표현으로 대치되었다. 그러나 명대에 산대 계산이 주산으로 대치되고 천원술이 잊히게 되어 추상수의 개념도 함께 잊히게 되었다. 청대의 산학자 심사계(沈士桂)가 저서 간첩이명산법(簡捷易明算法)에서 분수의 소수표시와 계산을 하는 과정에서 순환소수를 인지하고 이들의 계산법을 확립한 것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