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Yi Seong-gye

검색결과 8건 처리시간 0.02초

가린-미하일로프스키의 『조선설화』에 나타난 '수달 전설'의 결합 양상과 청에 대한 인식 (The Aspects of Type-Combination of 'Otter Legend' in 『the Joseon tale』 and recognition of the Qing Dynasty and the Joseon Dynasty)

  • 하은하
    • 고전문학과교육
    • /
    • 제37호
    • /
    • pp.253-281
    • /
    • 2018
  • 이 논문은 19세기 말 가린-미하일로프스키에 의해 채록된 "조선설화" 속 수달 전설의 특징과 그 의미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조선설화"에 수록된 64편의 설화들은 1898년 두만강과 압록강 유역에서 채록된 것으로 이른 시기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전승되던 설화의 일면을 보여주지만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우리에게 소개되었다. 이후 선행 연구를 통해 "조선설화"의 대체적인 성격과 연행 과정에 대한 정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개별 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아직 미흡하다. 이에 본고에서 조선과 만주의 기원을 다루는 설화 <수달에 관한 전설>을 중심으로 그 이야기의 형식적 특징을 살폈고, 나아가 이야기 속에 형상화된 누루하치 가문과 이성계 가문의 대결 양상에 개입하고 있는 서술시각의 의미에 대해 논의해 보았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수달에 관한 전설>의 형식적인 특징은 '야래자 유형'과 <물 속 미륵 귀에 건 아버지 유골>, 눈 빛 강한 이인, 정충신 일화처럼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설화 유형이나 화소를 재구성하여 새로운 혼합형 설화로 만들어냈음을 밝혔다. 각각의 서사 논리를 지닌 기존의 설화들을 재배치하면서 <수달에 관한 전설>에는 여러 변형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다양한 종류의 변형을 가로지르는 일관된 논리는 누루하치 가문과 이성계 가문 간의 비교와 대결을 뚜렷하게 만들기 위해 개별 설화를 활용하려 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청나라의 기원이 되는 누루하치 가문의 신성성은 확대되고 구성원들의 인품도 높여졌다. 반면 조선의 기원이 되는 이성계 가문은 누루하치 가문에 비교해서 비범성이 떨어지고 능력도 떨어졌다. 그런데 이것은 청나라에 대한 선망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청나라와 조선의 혈통은 관련이 있다는 생각에 기반하고 있었다. 19세기 말 한반도 북부에서 채록된 설화에 담긴 인식은 청나라에 대한 재조명인 바, 청은 조선의 또 다른 혈통이기 때문에 청나라가 천하를 통일했던 경험을 조선 또한 공유해야 한다는 것임을 확인했다. 그것은 후일 금나라의 역사를 민족사의 관점에서 포섭하고 만주와 조선을 단군대황조의 후예이며 한 겨레로 보는 대동(大東)사관과 닮아 있는 것이기도 했다.

비증(痺證)에 대(對)한 최근(最近)의 제가학설(諸家學說) 연구(硏究) - 《비증전집(痺證專輯)》 에 대(對)한 연구(硏究) III - (The recent essay of Bijeung - Study of III-)

  • 양태훈;오민석
    • 혜화의학회지
    • /
    • 제9권1호
    • /
    • pp.513-545
    • /
    • 2000
  • I. Introduction Bi(痺) means blocking. It can reach at the joints or muscles or whole body and make pains. Numbness and movement disorders. BiJeung can be devided into SilBi and HeoBi. In SilBi there are PungHanSeupBi, YeolBi and WanBi. In HeoBi, there are GiHyeolHeoBi, EumHeoBi and YangHeoBi. The common principle for the treatment of BiJeung is devision of the chronic stage and the acute stage. In the acute stage, BiJeung is usually cured easily but in the chronic stage, it is difficult. In the terminal stage, BiJeung can reach at the internal organs. BiJeung is one kind of symptoms making muscles, bones and jonts feel pain, numbness or edema. For example it can be gout or SLE etc. Many famous doctors studied medical science by their fathers or teachers. So the history of medical science is long. So I studied ${\ll}Bijeungjujip{\gg}$. II. Final Decision 1. BanSuMun(斑秀文) thought that BiJeung can be cured by blocking of blood stream. So he insisted that the important thing to cure BiJeung is to improve the blood stream. He usually used DangGuiSaYeokTang(當歸四逆湯), DangGuiJakYakSanHapORyeongSan, DoHong-SaMulTang(桃紅四物湯), SaMyoSanHapHeuiDongTang and HwangGiGyeJiOMulTang. 2. JangGeonBu(張健夫) focused on soothing muscles and improving blood seam. So he used many herbs like WiRyeongSeon(威靈仙), GangHwal(羌活), DokHwal(獨活), WooSeul(牛膝), etc. Especially he pasted wastes of the boiled herbs. 3. OSeongNong(吳聖農) introduced four rules to treat arthritis. So he usually used SeoGak-SanGaGam(犀角散加減), BoYanHwanOTang(補陽還五湯), ODuTang(烏頭湯), HwangGiGyeJiOMulTang. 4. GongJiSin thought disk hernia as one kind of BiJeung. And he said that Pung can hurt upper limbs and Seup can hurt lower limbs. He used to use GyeJiJakYakJiMoTang(桂枝芍藥知母湯). 5. LoJiJeong(路志正) introduced four principles to treat BiJeung. He used BangPungTang(防風湯), DaeJinGuTang) for PungBi(風痺), OPaeTang(烏貝湯) for HanBi(寒痺), YukGunJaTang(六君子湯) for SeupBi(濕痺) and SaMyoTang(四妙湯), SeonBiTang(宣痺湯), BaekHoGaGyeTang(白虎加桂湯) for YeolBi(熱痺). 6. GangChunHwa(姜春華) discussed herbs. He said SaengJiHwang(生地黃) is effective for PungSeupBi and WiRyungSun(威靈仙) is effective for the joints pain. He usually used SipJeonDaeBoTang(十全大補湯), DangGuiDaeBoTang(當歸大補湯), YoukGunJaTang(六君子湯) and YukMiJiHwanTang(六味地黃湯). 7. DongGeonHwa(董建華) said that the most important thing to treat BiJeung is how to use herbs. He usually used CheonO(川烏), MaHwang(麻黃) for HanBi, SeoGak(犀角) for YeolBi, BiHae) or JamSa(蠶沙) for SeupBi, SukJiHwang(熟地黃) or Vertebrae of Pigs for improving the function of kidney and liver, deer horn or DuChung(杜沖) for improving strength of body and HwangGi(黃?) or OGaPi(五加皮) for improving the function of heart. 8. YiSuSan(李壽山) devided BiJeung into two types(PungHanSeupBi, PungYeolSeupBi). And he used GyeJiJakYakJiMoTang(桂枝芍藥知母湯) for the treatment of gout. And he liked to use HwanGiGyeJiOMulTangHapSinGiHwan 枝五物湯合腎氣丸) for the treat ment of WanBi(頑痺). 9. AnDukHyeong(顔德馨) made YongMaJeongTongDan(龍馬定痛丹)-(MaJeonJa(馬錢子) 30g, JiJaChung 3g, JiRyong(地龍) 3g, JeonGal(全蝎) 3g, JuSa(朱砂) 0.3g) 10. JangBaekYou(張伯臾) devided BiJeung into YeolBi and HanBi. And he focused on improving blood stream. 11. JinMuO(陳茂梧) introduced anti-wind and dampness prescription(HoJangGeun(虎杖根) 15g, CheonChoGeun 15g, SangGiSaeng(桑寄生) 15g, JamSa(蠶絲) 15g, JeMaJeonJa(制馬錢子) 3g). 12. YiChongBo(李總甫) explained basic prescriptions to treat BiJeung. He used SinJeongChuBiEum(新定推痺陰) for HaengBi(行痺), SinJeongHwaBiSan(新定化痺散) for TongBi(痛痺), SinJeongGaeBiTang(新定開痺湯) for ChakBi(着痺), SinJeongCheongBiEum(新定淸痺飮) for SeupYeolBi(濕熱痺), SinRyeokTang(腎瀝湯) for PoBi(胞痺), ORyeongSan for BuBi(腑痺), OBiTang(五痺湯) for JangBi(臟痺), SinChakTang(腎着湯) for SingChakByeong(腎着病). 13. HwangJeonGeuk(黃傳克) used SaMu1SaDeungHapJe(四物四藤合制) for the treatment of a acute arthritis, PalJinHpPalDeungTang(八珍合八藤湯) or BuGyeJiHwangTangHapTaDeungTang(附桂地黃湯合四藤湯) for the chronic stage and ByeolGapJeungAekTongRakEum(鱉甲增液通絡飮) for EumHeo(陰虛) 14. GaYeo(柯與參) used HwalRakJiTongTang(活絡止痛湯) for shoulder ache, SoJongJinTongHwalRakTank(消腫鎭痛活絡湯) for YeolBi(熱痺), LiGwanJeolTang(利關節湯) for ChakBi(着痺), SinBiTang(腎痺湯) for SinBi(腎痺) and SamGyoBoSinHwan(三膠補腎丸) for back ache. 15. JangGilJin(蔣길塵) liked to use hot-character herbs and insects. And he used SeoGeunLipAnTang(舒筋立安湯) as basic prescription. 16. RyuJangGeol(留章杰) used GuMiGangHwalTang(九味羌活湯) and BangPungTang(防風湯) at the acute stage, ODuTang(烏頭湯) or GyeJiJakYakJiMoTang(桂枝芍藥知母湯) for HanBi of internal organs, YangHwaHaeEungTang(陽和解凝湯) for HanBi, DokHwalGiSaengTang(獨活寄生湯), EuiYiInTang(薏苡仁湯) for SeupBi, YukGunJaTang(六君子湯) for GiHeoBi(氣虛痺) and SeongYouTang(聖兪湯) for HyeolHeoBi(血虛痺). 17. YangYuHak(楊有鶴) liked to use SoGyeongHwalHyelTang(疏經活血湯) and he would rather use DoIn(桃仁), HongHwa(紅花), DangGui(當歸), CheonGung(川芎) than insects. 18. SaHongDo(史鴻濤) made RyuPungSeupTang(類風濕湯)-((HwangGi 200g, JinGu 20g, BangGi(防己) 15g, HongHwa(紅花) 15g, DoIn(桃仁) 15g, CheongPungDeung(靑風藤) 20g, JiRyong(地龍) 15g, GyeJi(桂枝) 15g, WoSeul(牛膝) 15g, CheonSanGap(穿山甲) 15g, BaekJi(白芷) 15g, BaekSeonPi(白鮮皮) 15g, GamCho(甘草) 15g).

  • PDF

조선 전기 중국 서적의 사입(賜入)과 구입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수록 내용을 중심으로 (The Offers and Purchases of Chinese Books during the Early Chosun Dynasty: Focusing on the Contents of The Annals of The Chosun Dynasty)

  • 서원남;이소연
    • 비교문화연구
    • /
    • 제19권
    • /
    • pp.79-99
    • /
    • 2010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ompare the books exchange between china and Joseon dynasty. Books, ancient and modern are an essential part to publish, propagate, administer the books which is a matter of grave concern among nations. Also they are the most important information and the symbol of the government power. As a result the rulers had brought many necessary books from China and it is a national policy to govern in Joson dynasty. This study will discuss the introduction of chinese books from the Annals of the Joson Dynasty, especially from the first king of the Joson Dynasty, Yi Seong-gye to the ninth king. At that times, Joson Dynasty had attempted to reign various policies. So many books related with the absolute authority of China. In accordance with the book classification method in ancient china, they are have been categorized. Furthermore, it should have been a important clue to check the influence by being brought many books from China.

이조시대(李朝時代)의 임지제도(林地制度)에 관(關)한 연구(硏究) (A Study on the Forest Land System in the YI Dynasty)

  • 이만우
    • 한국산림과학회지
    • /
    • 제22권1호
    • /
    • pp.19-48
    • /
    • 1974
  • 토지국유원칙(土地國有原則)을 표방(標榜)하고 "공사(公私) 공리(共利)"를 기본원칙(基本原則)으로 하고 있었던 고려조(高麗朝)의 시전과제도(柴田科制度)도 집권력(執權力)의 약화(弱化)로 인(因)하여 조만간(早晩間), 붕괴(崩壞)되고 말았던 것이나 임지제도(林地制度)에 있어서는 분묘설정(墳墓設定)의 자유(自由)와 개간장려(開墾奬勵)를 이용(利用)한 삼림(森林)의 광점(廣占) 및 전시과제도(田柴科制度)로 인(因)한 시지(柴地)의 수조권위양(收租權委讓)으로 유래(由來)된 사적수조권(私的洙組權)이 결부(結付)된 삼림(森林)의 사점현상등(私占現象等)이 점차(漸次) 발전(發展)하여 고려중기(高麗中期)의 국정해지기이후(國政解地期以後)에는 대부분(大部分)의 삼림(森林)이 권력층(權力層)의 사점지(私占地)로 화(化)하여 왔었다. 고려조(高麗朝)의 모든 제도(制度)를 그대로 계승(繼承)한 이조(李朝)는 건국후(建國後) 국가소용(國家所用)의 삼림확보(森林確保)를 위(爲)한 삼림수용(森林收用)의 제도확립(制度確立)이 긴요(緊要)하였음으로 전국(全國)의 삼림(森林)을 국가권력(國家權力)에 의(依)하여 공수(公收)하고 국가(國家)와 궁실소용이외(宮室所用以外)의 모든 삼림(森林)은 사점(私占)을 금(禁)한다는 "시장사점금지(柴場私占禁止)"의 제도(制度)를 법제화(法制化)하였고 도성주변(都城周邊)의 사산(四山)을 금산(禁山)으로 함과 아울러 우량(優良)한 임상(林相)의 천연림(天然林)을 택(擇)하여 전조선용재(戰漕船用材)와 궁실용재(宮室用材)의 확보(確保)를 위(爲)한 외방금산(外方禁山)으로 정(定)하고 그 금양(禁養)을 위(爲)하여 산직(山直)을 배치(配置)하였다. 그리고 연병(練兵)과 국왕(國王)의 수렵(狩獵)을 위(爲)한 강무장(講武場)과 관용시장(官用柴場), 능원부속림(陵園附屬林)의 금벌(禁伐), 금화(禁火)를 제정(制定) 등(等) 필요(必要)에 따라 수시(隨時)로 삼림(森林)을 수용(收用)하였으나 고려조이래(高麗朝以來)로 권력층(權力層)에 의(依)하여 사점(私占)되어온 삼림(森林)을 왕권(王權)으로 모두 공수(公收)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이조초기(李朝初期)에 있어서의 집권층(執權層)은 그 대부분(大部分)이 고려조(高麗朝)에서의 권력층(權力層)이었던것 임으로 그들은 이미 전조시대(前朝時代)로부터 많은 사점림(私占林)을 보유(保有)하고 있었던 것이고 따라서 그들이 권력(權力)을 장악(掌握)하고 있는 한(限) 사점림(私占林)을 공수(公收)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그들은 오히려 권력(權力)을 이용(利用)하여 사점림(私占林)을 확대(擴大)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왕자(王子)들도 묘지(墓地)를 빙자(憑藉)하여 주(主)로 도성주변(都城周邊)의 삼림(森林)을 광점(廣占)하고 있던 터에 성종(成宗)의 대(代) 이후(以後)로는 왕자신(王自身)이 금령(禁令)을 어기면서 왕자(王子)에게 삼림(森林)을 사급(賜給)하였음으로 16세기말(世紀末)에는 원도지방(遠道地方)에 까지 왕자(王子)들의 삼림사점(森林私占)이 확대(擴大)되었고 이에 편승(便乘)한 권신(權臣)들의 삼림사점(森林私占)도 전국(全國)으로 파급(波及)하였다. 임진왜란후(壬辰倭亂後)에 시작(始作)된 왕자(王子)에 대(對)한 시장절급(柴場折給)은 삼림(森林)의 상속(相續)과 매매(賣買)를 합법화(合法化)시켰고 이로 인(因)하여 봉건제하(封建制下)에서의 사유림(私有林)을 발생(發生)시키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권신(權臣)들도 합법적(合法的)으로 삼림(森林)을 사점(私占)하게 되었고 따라서 이조시대(李朝時代) 임지제도(林地制度)의 기본(基本)이었던 시장사점금지(柴場私占禁止)의 제도(制度)는 건국초(建國初)로부터 실행(實行)된 일이 없었으며 오로지 국가(國家)의 삼림수용(森林收用)을 합법화(合法化)시키는 의제(擬制)에 불과(不過)하였던 것이다. 금산(禁山)은 그 이용(利用)과 관리제도(管理制度)의 불비(不備)로 인(因)하여 산하주민(山下住民)들의 염오(厭惡)의 대상(對象)이 되었음으로 주민(住民)들의 고의적(故意的)인 금산(禁山)의 파괴(破壞)는 처음부터 심(甚)하였고 이로 인(因)하여 국가(國家)에서는 용재림확보(用材林確保)를 위(爲)한 금산(禁山)의 증설(增設)을 거듭하였으나 관리제도(管理制度)의 개선(改善)이 수반(隨伴)되지 않았음으로 금산(禁山)의 황폐(荒廢)는 더욱 증대(增大)되었다. 영조(英祖)는 정국(政局)을 안정(安定)시키기 위(爲)하여 경국대전이후(經國大典以後) 남발(濫發)된 교령(敎令)과 법령(法令)을 정비(整備)하여 속대전(續大典)을 편찬(編纂)하고 삼림법령(森林法令)을 정비(整備)하여 도성주변(都城周邊)의 금산(禁山)과 각도(各道) 금산(禁山)의 명칭대신(名稱代身) 서기(西紀) 1699년(年) 이후(以後) 개칭(改稱)하여온 봉산(封山)의 금양(禁養)을 강화(强化)시키는 한편 사양산(私養山)의 권한(權限)을 인정(認定)하는 등(等) 적극적(積極的)인 육림정책(育林政策)을 퍼려하였으나 계속적(繼續的)인 권력층(權力層)의 삼림사점광대(森林私占廣大)는 농민(農民)들로부터 삼림(森林)을 탈취(奪取)하였고 농민(農民)들 이 삼림(森林)을 상실(喪失)함으로써 국가(國家)의 육림장려등(育林奬勵策)은 효과(効果)를 나타내지 못하였던 것이다. 임진왜란후(壬辰倭亂後)의 국정해이(國定解弛)로 인(因)한 묘지광점(墓地廣占), 왕자(王子)에 대(對)한 삼림(森林)의 절급(折給) 권세층(權勢層)에 대(對)한 산림사점(森林私占)은 인허(認許)하는 입안문서(立案文書)의 발행등(發行等)으로 법전상(法典上)의 삼임사점금지조항(森林私占禁止條項)은 사문화(死文化)되었고 이조말기(李朝末期)에 있어서는 사양산(私養山)의 강탈(强奪)도 빈발(頻發)하고 있음을 볼수 있다. 이와 같이 이조시대(李朝時代)의 시장사점금지조항(柴場私占禁止條項)은 오로지 농민(農民)에게만 적용(適用)되는 규정(規定)에 불과(不過)하였고 이로 인(因)하여 농민(農民)들의 육림의욕(育林意慾)은 상실(喪失)되었으며 약탈적(掠奪的)인 삼림(森林)의 채취이용(採取利用)은은 금산(禁山), 봉산(封山) 및 사양산(私養山)을 막론(莫論)하고 황폐(荒廢)시키는 결과(結果)를 자아냈으며 권력층(權力層)의 삼림점탈(森林占奪)에 대항(對抗)한 송계(松契)의 활동(活動)으로 일부(一部) 공산(公山)이 농민(農民)의 입회지(入會地)로서 보존(保存)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不拘)하고 일제(日帝)는 이조말기(李朝末期)의 삼림(森林) 거의 무주공산(無主公山)이 었던것처럼, 이미 사문화(死文化)된 삼림사점금지조항(森林私占禁止條項)을 활용(活用)함으로써, 국가림(國有林)으로 수탈(收奪)한후(後) 식민정책(植民政策)에 이용(利用)하였던 것이나, 실제(實際)에 있어서 이조시대(李朝時代)의 삼림(森林)은 금산(禁山), 봉산(封山), 능원부속림등(陸園附屬林等)의 관금지(官禁地)와 오지름(奧地林)을 제외(除外)하고는 대부분(大部分)의 임지(林地)가 권세층(權勢層)의 사유(私有) 내지(乃至)는 사점하(私占下)에 있었던 것이다.

  • PDF

정릉(貞陵) 이장과 광통교(廣通橋) 개수를 통해 본 조선 초기 지배 이데올로기의 대립 (Collision of New and Old Control Ideologies, Witnessed through the Moving of Jeong-regun (Tomb of Queen Sindeok) and Repair of Gwangtong-gyo)

  • 남호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53권4호
    • /
    • pp.234-249
    • /
    • 2020
  • 정릉(신덕왕후릉)의 축조와 이장에 얽힌 논란은 조선 초기, 신구(新舊) 지배 이데올로기 사이의 충돌이 잘 드러난 사례이다. 태조의 경처였던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은 도성 안에 조성되지만 태조 사후, 태종에 의해 도성 밖으로 이장되고 그곳에 남아 있던 석물들은 청계천의 광통교를 보수하는데 쓰인다. 야사에서는 태종이 강씨를 저주하기 위해 도성 밖으로 능을 옮기고 남은 석물들로 광통교를 만들어 사람들이 밟고 다니게 했다고 전한다. 태조 말년, 강씨와 태종은 대립하던 관계였으나 태조가 왕으로 옹립되기 전까지는 오히려 정치적 동반자에 가까웠다. 정릉이나 광통교와 관련된 실록의 기록은 더 담백하다. 정릉의 천장은 능묘가 도성 안에 있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는 의정부의 상언을 따른 것이다. 광통교 개수를 위해 정릉을 격하하고 이장시켰다는 주장에는 사실 관계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논자는 광통교 개수에 정릉의 석물이 재사용된 것에 대해 당시 도성 안팎에서 건축자재소요량이 급증하여 효율적인 조달 필요성이 대두되었을 가능성을 상정하였다. 정릉이 도성 안에 조성되었다가 다시 도성 바깥으로 이장된 원인은 태조와 태종이 가졌던 사상적 배경의 이질성에서 찾았다. 태조는 유교국가의 통치자였으나 죽은 왕비를 위해 도성 내에 원찰과 무덤을 조성한다. 여기에는 불교의 힘을 빌려 죽은 신덕왕후의 권위를 위의하고 지지세력을 규합하고자 한 노림수가 있었다. 원의 다루가치 집안에서 태어나 지방군벌로 성장한 이성계는 높은 유학적 소양을 가지지는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오히려 호불적 성향을 띄는 구체제의 인물이었다. 반면 태종 이방원은 고려 말 과거시험에 급제했던 엘리트 유생이었으며 주자학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유교국가에서 도성이 가지는 상징성에 대한 이해가 더 깊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삼국시대 이후, 율령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 시스템이 정립된 이래로 도성 바깥에 무덤을 만드는 경외매장의 원칙은 거의 예외 없이 지켜져 왔다. 정릉은 태조 개인의 강한 의지로 도성 내부에 조성되지만 왕 이전에 유학자였던 태종에게 이러한 모습은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태종은 즉위 후, 주도적으로 도성 재정비를 추진하는데 이는 '예치'를 강조하는 유교 이데올로기를 한양도성의 경관에 명확하게 구현하고자 한 의지의 발현으로 보여진다. 정릉의 이장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 아래 진행되었던 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Prime에 기반한 손가락 촉각 자극기의 개발 (Development of a Finger Tactile Stimulator Based on E-Prime Software)

  • 김형식;민윤기;김보성;민병찬;양재웅;이수정;최미현;이정한;탁계래;이봉수;전재훈;정순철
    • 감성과학
    • /
    • 제13권4호
    • /
    • pp.703-710
    • /
    • 2010
  • 본 연구에서는 선행 연구에서 개발된 촉각 자극 시스템의 시스템적인 문제, 자극 제어에 관한 문제, 기타 부가적인 문제들을 보완할 수 있는 촉각 자극기를 개발하였다. 개발된 장치는 제어부(control unit), 구동부(drive unit), 진동부(vibrator)의 세부분으로 구성된다. 제어부는 E-Prime 소프트웨어로부터 명령을 전송받고 진동 자극 신호를 발생한다. 구동부는 촉각 자극기가 효과적으로 진동 자극을 발생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전류를 공급한다. 진동부는 작은 동전(coin) 형 진동기(vibrator)와 벨크로(velcro)로 구성되며 피험자의 손에 쉽게 고정 할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 개발된 장치는 소형, 경량, 저전력 구동, 간단한 구조, 최대 35개의 자극 채널, 시각 및 청각과의 다양한 자극 조합을 지연시간 없이 제시할 수 있도록 설계 되어 시스템적인 문제들을 보완하였다. 자극의 크기와 시간을 10단계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하고, 넓은 동작주파수 범위를 확보하여 자극 제어에 관한 문제들을 보완하였다. 저전압 구동으로 인체에 대한 안정성을 확보하고, 손가락 이외에 신체의 어느 부분이든 자극 제시가 가능하도록 제작하였다. 특히 본 시스템은 인지과학 연구에서 범용으로 사용되는 소프트웨어인 E-Prime을 기반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활용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 PDF

보청천내(報靑川內) 교각설치(橋脚設置)에 따른 국부(局部) 세굴심도(洗掘深度)의 산정(算定) (Scour Prediction at Piers in the Bo Cheong Stream)

  • 안상진;최계운;김종섭;안창진
    • 대한토목학회논문집
    • /
    • 제13권3호
    • /
    • pp.93-105
    • /
    • 1993
  • 본(本) 연구(硏究)에서 24개의 국부세굴공식(局部洗掘公式)을 이용(利用)하여 금강수계내(錦江水系內) 보청천(報靑川)에서의 교각설치(橋脚設置)에 따른 국부(局部) 세굴심도(洗掘深度)를 산정(算定)하여 서로 비교(比較) 하였는 바, 이때 24개의 국부세굴공식(局部洗掘公式)들은 무차원화(無次元化)된 공식(公式) 형태(形態)에 따라 6개의 그룹으로 구분(區分)되었다. 국부(局部) 세굴공식(洗掘公式) 적용자료(適用資料)로는 금강수계내(錦江水系內) IHP 대표측정지점(代表測定地點)인 산성, 이평, 산계 지점(地點)에 설치(設置)된 교량자료(橋梁資料)들과 실측(實測)된 하상자료(河床資料)들을 이용하였다. 하상자료(河床資料)들은 교량설치지점(橋梁設置地點)의 유향방향(流向方向)으로 좌안, 중앙부, 우안의 대표지점(代表地點)으로부터 시료(試料)를 채취(採取)하여 체가름 분석(分析)을 실시(實施)한 결과(結果)를 사용(使用)하였으며, 수리학적(水理學的) 자료(資料)로는 1982년(年)부터 1991년(年)까지 IHP 자료(資料)로 관측(觀測)된 최대(最大) 홍수위(洪水位) 및 최대(最大) 홍수위(洪水位)일때의 유속(流速)을 이용(利用)하였으며 교각자료(橋脚資料)들은 현장(現場)에서 실측(實測)된 자료(資料)를 이용(利用)하였다. 또한, 추후 보청천내(報靑川內) 교각(橋脚) 설치(設置)에 따른 국부(局部) 세굴(洗掘)을 검토(檢討)하기 위한 적절(適切)한 세굴공식(洗掘公式)을 제안(提案)하기 위하여 보청천(報靑川)과 흐름조건(條件)이 유사(類似)한 하천(河川)에서 실측(實測)된 129개의 국부세굴자료(局部洗掘資料)와 비교(比較)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Arunachalam 공식(公式), Shen-Karaki III 공식(公式), Jain-Fischer 공식(公式)이 보청천내(報靑川內) 세굴심도(洗掘深度) 산정(算定)을 위하여 비교적(比較的) 적절(適切)한 공식(公式)으로 판단(判斷)되었다. 또한 Inglis-Lacey 공식(公式)과 Shen-Karaki II 공식(公式)은 Fr의 수(數)가 0.3 이상인 비교적(比較的) 빠른 흐름에서 적용(適用)이 가능(可能)하며, Froehlich 공식(公式), Laursen I 공식(公式), Laursen II 공식(公式), Neill 공식(公式), Melville 공식등(公式等)은 Fr의 수(數)가 0.3 이하의 비교적(比較的) 느린 흐름에서 적용(適用)이 가능(可能)하고, Blench 공식(公式)이나 Inglis-Poona 공식(公式)은 Froude 수(數)에 따라 변화(變化)가 상당히 커서 적용(適用)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判斷)되었다. 또한 Sarma-Krishnamurthy 공식(公式), Ahmad 공식(公式), Coleman 공식(公式), Varzeliotis 공식(公式), Larras 공식(公式), Bata 공식(公式), Chitale 공식(公式), Venkatadri 공식(公式), Basik-Basamily-Ergun 공식(公式), U.S.G.S. 공식(公式), Shen I 공식(公式)들은 실측(實測)된 국부(局部) 세굴심도(洗掘深度)에 비하여 지나치게 적게 세굴심도(洗掘深度)를 산출(算出)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PDF

<구운몽>과 『주역』 복괘의 관련 양상 (The Relationship Between Guunmong and Bok-gwae)

  • 신재홍
    • 고전문학과교육
    • /
    • 제38호
    • /
    • pp.139-173
    • /
    • 2018
  • 근래 <구운몽>의 사상적 배경론에서 동아시아의 전통적 사유 방식인 역학적 세계관이 주목을 끄는데, 본고는 이를 좀 더 구체화하고자 하였다. 유학자로서 작가의 역학적 소양보다도 작품 창작의 배경이 더욱 직접적으로 "주역"과 관련된다고 보았다. 창작 시기인 1687년 겨울에 동지가 포함된 점에 주목하여 그 절기에 해당하는 복괘(復卦, ䷗)의 의미가 <구운몽>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분석하였다. 먼저, 복괘 괘사의 '복은 형통하니'는 <구운몽>에서 양소유의 인생 역정에 잘 맞는 말이다. '출입에 병이 없어서 벗이 와야 허물이 없으리라'는 것도 양소유가 출세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양상에 부합한다. 복괘의 괘사 전체가 <구운몽>의 내용에 적용하기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복괘의 여섯 효 중에서 초구에서 육오까지는 <구운몽>의 인물들과 관련된다. 복괘의 효 중 유일한 양인 초구의 '불원지복'(不遠之復)은 양소유의 인물 형상에 알맞은 말이다. 육이의 '휴복지길'(休復之吉)은 정경패와 가춘 운에게, 육삼의 '빈복지려'는 계섬월과 적경홍에게, 육사의 '중행독복'(中行獨復)은 심요연과 백능파에게, 육오의 '돈복무회'(敦復无悔)는 이 소화와 진채봉에게 해당하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복괘 맨 위 효인 상육의 '미복지흉'(迷復之凶)은 성진에게 적용될 만하지만 작품의 구조 및 주제와 더욱 관련성이 깊다. '미복지흉'은 '반도'(反道)로 말미암은 것인데 이는 '합도'(合道)와의 대비로써 설명된다. 이러한 대비는 작품에서 유교 대 불교, 현실 대 꿈, 성진 팔선녀 대 양소유 팔 부인의 대비와 연관 지을 수 있고, 현실-꿈-현실의 서사 구조도 이에 기초한다고 할 수 있다. 상육의 효사는 <구운몽>의 이원적 세계 구성에 단초를 마련하였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고찰을 종합할 때 <구운몽>은 '복괘의 우화'라고 할 만하다. 창작 당시의 작가가 그러했듯이, 절망의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희망과 구원의 의미를 던지는 소설, 즉 희망의 서사인 것이다. 본고는 <구운몽>의 역학적 세계관에 대한 포괄적 연구에서 나아가 복괘라는 특정한 괘의 의미를 찾은 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