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에서는 양양산불에 의한 낙산사의 소실이후 전통사찰 문화재의 방재대책에 대한 연구를 실시하였다. 전통사찰의 현황과 관련 법규를 검토하였고, 양양산불의 발생에 따른 화재특성과 낙산사의 피해현황에 대해 정리하였다. 또한 낙산사 소실로 본 전통사찰의 화재피해사례와 관련 소방법규를 검토하여 문제점을 제시하였고, 낙산사의 소실에 따른 방재대책에 대해 설문조사결과를 제시하여 향후 전통사찰문화재에 대한 화재예방안전대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전통 사찰은 대부분 목조로 되어 있고 국가 중요 전통사찰의 건축 구조는 대부분이 목재로서 연소성이 높기 때문에 일단 착화되면 빠른 속도로 화재가 전파되고 산중에 있는 지리적인 특성으로 인해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하는데 어려운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전통사찰 문화재의 화재안전관리 개선방안으로 법 제도적인 측면, 건축방화적인측면, 재난 방재 기본 시스템구축 및 유관기관 합동점검, 훈련 등 예방활동 강화를 제시하였다.
금산사 대장전은 대장경을 봉안하는 건물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지만 경전은 없으며, 석가모니삼존을 봉안하는 불전이다. 금산사에서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이 건물은 목탑에 불상과 경전을 봉안하던 습관 때문에 점차 불전으로 변한 건물로 알려져 있다. 탑은 사리신앙을 대표하는 구조물임에도 대장전으로 변하였지만 대장경조차 봉안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변화는 금산사 대장전이 상당히 복합적인 성격의 건물이라는 점을 상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건물의 변화과정과 신앙적 복합성을 통해 조선후기 교학적 열풍 속에서 사리신앙, 경전신앙의 상관을 접근해 보고자 한다.
이 글은 부여에서 해마다 열리는 백제문화재에서 설행된 부여 백제수륙재의 전통과 역사를 살핀 글이다. 부여는 과거부터 수륙재의 여러 의례집이 간행된 곳이고, 부여 무량사를 중심으로 하여 범패 교육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전통을 바탕으로 하여 60년 전부터 백제의 고혼을 위로하고 삼천궁녀들을 위무하기 위해 백제문화재가 거행되면서 수륙재가 함께 시작되었다. 특히 다른 지역의 수륙재와 달리 강상에서 행해지는 수륙재라는 특징이 있다. 의례집이 여러 차례 간행되었고, 독자적인 범패 교육까지 이루어진 부여 지역은 수륙재가 오랫 동안 전승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한 역사적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백제문화제가 거행되면서 위무의식으로 수륙재가 봉행된 것이다. 아울러 부여 백제수륙재는 독특한 특징도 가지고 있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발의로 시작된 부여 백제수륙재는 현존하는 유일의 수상수륙재로 위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재차 구성을 넘어서서 재차를 연행하는 장소의 변화에 따라 상당한 의미가 있음을 보여준다. 60년의 뚜렷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전통성과 지역성,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부여 백제수륙재이다.
The aim of this research is to find-out the characteristics of Buddhist temples with relevant to Korean National cultural properties in Kum Kang(Kum-river) area. This analysis is accomplished by setting up the speciflc viewpoints where the charateristics can be perceived, and by measuring the form and angle from these points to the buddist culture ; 124 items were selected and analyzed by the comparative method. The most Important research finding is that both Traditonal Korean Temple and Kum Kang(Kum-river) Area site conceptualized and used a certain geometrical Feng-shui(geomancy) order in the disposition of mountain and river side according to the principles of human cognition. The conclusions are as follows ; Buddhist culture and the Characteristics of Buddhist temples in Kum Kang(Kum-river) Area having accumulated from the past and are the cultural complex and mixture of 7 elements. They also reflect cultural situations of each time period. The temples are a result of Korean traditional thought and spirit, as well as, regarding tradition as an important factor.
월정사 탑돌이는 광복 이후 재현된 첫 번째 불교민속놀이로 불교문화로서의 대표성과 역사성을 지닌 주요 무형문화재이다. 월정사 탑돌이는 한국 고유의 전통성과 강원도의 정체성이 내재된 불교민속유산이라는 점에서 지정 가치가 크다. 전국 사찰에서 탑돌이가 시연되고 있지만 무형문화재 지정을 기반으로 체계적인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는 월정사 탑돌이가 유일하다. 월정사 탑돌이의 문화재 내재적 가치에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탑돌이는 부처님, 탑에 대한 예경방식의 총체적 표현물이다. 월정사 탑돌이의 원형은 추정하기 어려우나, 월정사의 역사성으로 보아 고구려 계통의 놀이와 신라 복회(福會)에 닿아 있다. 고구려벽화의 달, 오대산 화엄사상경 배경과 팔각구층탑의 본질의 측면에서 우요삼잡의 예법에 부합한다. 탑돌이 때 처음에는 범종, 고(鼓), 운판, 목어의 사법악기(四法樂器)만 쓰이다가 후에 삼현육각(三弦六角)이 합쳐지고, "보렴"과 "백팔정진가"을 부른 것을 보면 처음에는 순수한 불교의식이던 것이 차츰 민속화해서 민중 속에 전파된 것을 알 수 있다. 월정사 탑돌이의 전형은 회향의례의 환희심을 체험하는 우요삼잡의 풀이와 관련된다. 절에서 대재(大齎)가 있으면 신도들은 공양을 올린다. 이때에 염불, 범음(梵音), 범패(梵唄)가 따르며, 재가 끝나면 신도는 승려와 함께 불탑을 돌면서 부처님의 공덕을 빌고, 또 저마다의 기원을 빈다. 일신의 왕생극락은 물론 국태민안을 빌어 태평성대를 누리고자 하였다. 큰 재일수록 많은 신도들이 모이며 따라서 탑돌이도 성황을 이루었다. 법음(法音)에 맞춰 제각기 소원을 외면서 탑을 도는 모습은 엄숙하였다. 월정사 탑돌이의 변형과 융합에 대한 발상은 전형 곧 문화재 지정의 취지 유지와 정체성 차원을 살리되 전승의 공연화를 위한 계승적 전략이 필요하다. 한국탑돌이는 4월 초팔일과 중추절인 한가위 날에는 탑돌이가 있었다. 탑돌이의 공연성은 스님이 염주를 들고 탑을 돌면서 부처의 큰 뜻과 공덕을 노래하면 사찰 신도들이 그 뒤를 따라 등을 밝혀 들고 탑을 돌면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회향형(回向型) 불교민속놀이에 있다. 공연성 활성화는 신행 보유자 전승교육, 전문가 자문의 다차원 접근, 원형 재현의 담론 등을 단계적으로 보강하여야 한다.
경상북도 김천 대휴사(大休寺)의 일본 불교 존상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는 1910년경에 일본 신의진언종지산파(新義眞言宗智山派)가 대구에 설치한 별원(別院), 즉 대구 편조원(遍照院) 본당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이들 존상 중 목조홍법대사좌상(木造弘法大師坐像)은 일본 진언종을 개창한 고보다이시 쿠카이(弘法大師 空海, 774-835)의 모습이며, 목조대일여래좌상(木造大日如來坐像)과 목조부동명왕좌상(木造不動明王坐像)은 진언종의 불교 사상과 신앙을 대표하는 존상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대일여래상, 홍법대사상, 부동명왕상은 대부분 마애상이나 석조상으로, 대휴사의 존상들은 당시 일본 사찰에 봉안된 나무로 만든 일본 불교 존상이라는 점에서 매우 주목된다. 이들 불교 존상은 조형적으로는 근대적인 미감을 갖추고 있지만, 그 도상적인 연원은 헤이안(平安)시대(794-1185)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즉 대일여래상은 신의진언종을 개창한 고교다이시 가쿠반(興敎大師 覺鑁, 1095-1143)이 만든 대일여래상의 신앙적인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홍법대사상은 고보다이시 쿠카이의 제자였던 신뇨신노(眞如親王)가 그린 신뇨신노 스타일[樣]을 따르고 있고, 부동명왕상은 겐죠(玄祖) 스타일의 십구관(十九觀) 부동명왕상을 답습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대구 편조원에 봉안되었던 당시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지만, 이들 존상은 신의진언종의 삼륜신상(三輪身像)으로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대일여래상, 홍법대사상, 부동명왕상이 각각 자성륜신(自性輪身), 정법륜신(正法輪身), 교령륜신(敎令輪身)의 성격을 지녔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1950년대 전반의 실달사(悉達寺)(대구 편조원의 후신)의 상황이긴 하지만, 그 전신인 일제강점기의 대구 편조원에서 고보다이시 신앙의 전통이 계승되고 있었음을 추측하게 하는 본당 내부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즉 실달사 본당에 놓여 있던 유골들은 11세기 이후 고보다이시 신앙과 함께 유행했던 고야산(高野山)의 납골(納骨) 신앙의 전통을 보여 준다.
This article introduces Abe Mituie's activities related to Korean and Japanese Buddhism and two newly discovered materials. He worked as a brain of Japanese cultural rule over Joseon Korea while holding various positions such as the president of KyeongSung Il Bo, the vice president of Kokmin Newspaper and the director of Central Joseon Association. Abe was responsible for Enkak Temple, the head temple of Japanese Rinzai section, and was one of the layman followers of Syak Soen who worked for the spread of modern Japanese Buddhism to Europe and America. He was a respectful Buddhist layman so as to teach Zen Buddhism for young Buddhist monks in Japan. After he started to assume charge in the Kyeong Sung Il Bo, he was also very active in movements in relation to Joseon Buddhism to the extent that he was found to be deeply involved in Joseon Buddhism sections. On the other hand, he concluded Joseon culture to be 'devastated.' He asserted that it was necessary to develop spiritual culture and revive Buddhism in order to resolve the devastation in the Joseon. In addition, he thought that Joseon Buddhism was ruined due to the misgovernment of the Joseon Dynasty, but had its own as great tradition as Japanese Buddhism. Therefore, in his opinion, there was a need to do research on Joseon Buddhism and find some way out of the contemporary difficulties. In order to save the situation, he made efforts to protect and revive Joseon Buddhism while paying continuous visits to Joseon Buddhist temples, supporting the publication of Buddhist canons and proposing to have a regular meeting of 'The Invitation of 30 Head Temples.' From his visit to Youngju Temple and his consistent relationship with Kang Daeryeon, it can be assumed that he was involved in reorganizing power structure in Joseon Buddhism and establishing various institutions. He emphasized the strict adherence of individuals and communities to rules in his lecture for students at Jung Ang Hak Rim. It was a way to revive Joseon Buddhism by creating a new social image of Joseon Buddhism. He continued to work for the restoration of Joseon Buddhism even after he retired from Kyeong Sung Il Bo and returned to Japan. He introduced the originality of Joseon Buddhism history to Japan and sent Japanese monks to Korea in order to do research and contribute to exchange between Korean and Japanese Buddhism. All things taken together, it is evident that Abe Mitzihe regarded Joseon as backward or stagnant from a perspective of evolutionist or orientalist, and was a Japanese elite to believe that it was just for Japan to control Korea. However, he was different from other Japanese elites in that he did not considered Joseon Buddhism merely as the object of propagation. He thought that Joseon Buddhism possessed its own great tradition and culture, but was ruined because of the misadministration of the Joseon Royal House. Therefore, in his opinion, Joseon Buddhism should be recovered by means of some supports, and its revival would lead to the restoration of Joseon culture as a whole, which would be realized by Japanese rule over Korea and Japanese elites' generous assistance.
본 연구의 목적은 논산 개태사지의 현황과 국가문화재적 가치를 분석하고,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을 위한 명칭, 허용기준 등을 설정하여 이를 바탕으로 종합정비방안과 사업추진 및 관리운영계획을 제안하는 것이다. 논산 개태사지는 전례 없는 진전을 갖추고 있으며, 유구 자체의 잔존상황도 비교적 양호한 편으로 추후 시 발굴조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여 논산 개태사지의 문화재로서의 품격을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개태사지는 보물급의 문화유산을 반출하고,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우수하기 때문에 도지정문화재가 아닌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고문헌, 고지도, 관련 학술논문 및 서적 등 문헌고찰을 통하여 논산 개태사지의 연혁, 역사적 사실 확인을 하였으며, 논산 개태사지 내에서 발굴된 유구 및 유적, 건물지 등 현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1986년 1차 발굴조사 이후 6차까지 진행된 시 발굴조사결과를 참고하였다. 또한, 역사적, 유물적 유적 등으로 구분하여 논산 개태사지의 가치를 분석하여 논산 개태사지의 범위와 국가지정문화재(사적) 문화재구역(안)을 설정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논산 개태사지 종합정비방안과 사업추진 및 관리운영 계획을 제안하였다. 추후 지속적인 시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토지매입을 위한 주민의견 등을 반영하여 종합정비방안과 사업추진 및 관리운영 방안을 보완해야 하며, 본 연구에서 제안하는 사업은 특성상 사업비가 많이 소요되므로 향후 단계별 연차별 사업추진 계획이 세부적으로 수립되어야 할 것이라 판단된다.
장명등은 능묘의 능침 앞 중앙에 놓여 사자(死者)를 지키고 밝혀주는 상징적인 기능과 함께 뛰어난 조형성으로 능역을 장식하는 역할도 담당했던 중요한 석물로서, 석등의 한 범주에 속한다. 정릉 장명등은 조선왕릉 장명등 중 최초로 조성된 장명등이며, 조선 전 중기 왕릉 장명등 가운데 유일한 사각 장명등(四角長明燈) 형태를 이루고 있다. 대석, 화사석, 옥개석 형식이 기본적으로 사각을 이루고 있어 팔각 장명등(八角長明燈)형식과는 완연하게 구분된다. 하대석, 간주석, 상대석을 1매의 통석으로 마련하고, 화사석은 1매의 통석으로 전후로 화창을 표현하였다. 정릉 장명등은 고려 현 정릉 장명등의 전통을 그대로 따랐으나, 이보다 뛰어난 조형성을 보이고 있어 조선 개국 이후 최초로 조성되었던 왕릉 장명등으로서의 격조를 무리없이 보여준다. 본고에서는 정릉 사각 장명등 양식의 원류를 파악하는 데 연구 목적을 두고 고려 왕릉 장명등과 더불어 사각 장명등의 연원이 되는 사찰 사각 석등과의 비교 고찰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고려 말 회암사지 지공선사 석등 및 나옹화상 석등, 조선 초 회암사지 무학선사 석등 및 청룡사 보각국사 정혜원융탑석등과 다음의 공통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대석, 화사석, 옥개석 등이 기본적으로 사각을 이루고 있는 점, 둘째, 간주석이 낮아지면서 대석부분이 안정적인 형태를 이루는 점, 셋째, 화사석의 경우 대석 위에 양측으로 석재를 세워 자연스럽게 전후로 화창을 구성하는 방법, 넷째, 옥개석이 사모지붕 형태를 하고 있는 점 등이다. 한편 정릉 장명등에는 불교적 요소가 다분히 내제되어 있는데, 간주석의 삼주문(三珠文)표현이 그것이다. 삼주문은 밀교와 관련된 상징물의 하나로서,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 불화 및 조선 초기 보살상의 보관에 표현된 예가 확인된다. 정릉 장명등은 이후 묘 사각 장명등 조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데, 15세기 후반 이후부터는 점차로 정릉 장명등의 영향에서 벗어나 팔각 장명등 형식이 보다 많이 가미된 경향으로 변모해 나간다. 정릉 사각 장명등은 고려왕릉에서 조선왕릉으로의 능제 계승, 사찰 사각 석등 양식의 수용, 그 시대 불교사상의 반영 등 당대의 시대상과 문화의 흐름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담겨진 산 증거물로서 의의가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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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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