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The Stone Pagoda of Mireuksa Temple 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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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 기단부 적심구성방법에 대한 특성 고찰 - $7{\sim}8$세기 석탑 중 해체 수리한 석탑을 중심으로 - (A study on characteristics of composition method of inner foundation in stone stupa)

  • 정해두;장석하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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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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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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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Through analysing on construction cases of stupa built in A.D. 7,8th, I have researched about these : constructive methods of inner soil of stupa, spatial compositions, characteristics of structures, arrangements of inner soil and etc. And cases analysed are six ; Mireuksajiseoktap(stone pagoda of Mireuksa Temple site), Gameunsajisamcheumgseoktap(three storied stone pagoda of Gameunsa Temple site), Goseonsajisamcheungseoktap(three storied stone pagoda of Goseonsa Temple site), Wolseong nawolliocheungseoktap(five storied stone pagoda in Nawonri, Wolseong), Guksagokseoktap(three storied stone pagoda in Guksa valley), Giamgokseoktap(three storied stone pagoda in Giam valley). Additionally we researched about inner soil of Sacheonwangsaji tapji(basement of stone stupa site in Sacheonwang Temple site) to speculate on composition of Synthetically, the foundation could be divided as core space and outer space. ; the former as structural function and the latter as ornamental function. And the core area could be divided again as center column space and buffer space. The relationship between core spaces and its formation are as belows; First, according to the area of foundation and scale of stone pagoda, formations of core are differed. As the scale of stone pagoda goes bigger, and the area of foundation goes larger, the structure of stone pagoda comprised by center column type and layered-core which endure upper load independently. On the contrary, as the scale of stone pagoda goes smaller, and the area of foundation goes lesser, the structure of stone pagoda tend to use only center column to endure upper part. Second, spatial composition of core area is comprised as two spaces, one which endure upper load and buffer space which absorb side pressure and upper pressure. The buffer space tend to be used in case of those structures which could not endure side pressure or have lots of joint. In some cases, it was located below the cover stone of foundation and gained upper load. And in case that have not gained pressure from side stone, the buffer space are comprised by smalle stone or roof tile to get structural suppl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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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luation of the Structural Stability of Rammed Earth Construction :The Case Restoration Project of the Stone Pagoda at Mireuksa Temple Site in Iksan

  • Min, Hwang-Sik;Choen, Deuk-Youm
    • Architectural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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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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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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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The restoration of foundations supporting the immense load of the stone pagoda at Mireuksa Temple Site prioritizes securing its structural stability. But so far, rammed earth construction is still not easy to determine the structural stability. This paper aims to emphasize that a scientific experimental study was conducted on a rammed earth construction, to identify its methodology and obtain objective data about structural stability of the foundation work. An experimental study fabricated specimens from the soil that had been removed during the excavation survey, determined the allowable bearing capacity through plate load tests, and compared the results with the predicted stress after reassembly of the stone pagoda to estimate the structural stability. Then, the repair method was selected based on the experimental study result. The evaluation method of the restoration of foundations consisted of an examination of the allowable bearing capacity and settlement. The allowable bearing of the reinforced foundation was more than twice the contact pressure under the stacked stones of the pagoda. The possibility of settlement of the rammed earth foundation soil layer during the pagoda assembly is expected to be very low because the settlement amount of the reformed soil layer is less than half of the settlement of the stabilized existing soil layer.

티타늄 금속봉으로 보강된 화강암의 휨거동 (Flexural Behavior of Granite Reinforced with Titanium Metal Rods)

  • 하태욱;홍성걸;임우영
    • 대한건축학회논문집:구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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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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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7-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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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In this study, flexural tests of granite reinforced with titanium metal rods were carried out to repair and restore the damaged stone-made cultural heritage, the Stone Pagoda of the Mireuksa Temple Site. A total of twelve specimens were tested. The primary test parameters are the reinforcement ratio and the location of the reinforcement. For restoration, epoxy resin was used for joining the separated stones, and titanium metal rods were used for structural reinforcement. Test results showed that the flexural failure took place in specimens with a reinforcement ratio of 0.8% or less, and shear failure occurred when the reinforcement ratio was 1.68% or more. The peak load of the reinforced stone was found to be highly related to the reinforcement ratio. The peak load increased with increasing the reinforcement ratio. Also, the flexural behaviors of the reinforced stones were affected by the location of the reinforcement. Based on the test results, this study recommends the reinforcement ratio of the reinforced granite to induce ductile behavior.

신라석탑(新羅石塔)의 시원(始源) 고찰(考察) (An Examination on the Origin of Stone Pagodas of the Silla Kingdom)

  • 남시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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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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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4-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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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우리나라는 석탑의 나라라고 하지만 석탑이 발생하기 전에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모두 목탑을 먼저 조영하였다. 석탑은 이후 삼국시대 후반인 7세기 초반에 이르러 석재로써 목탑을 모방한 미륵사석탑이 건립되었다. 우리나라 석탑은 목탑을 모방하여 발전되었다는 데는 아무런 제론이 없다. 또 석탑의 시원을 미륵사석탑이라는 데도 어느 누구도 이론이 없다. 600년대 백제와 신라 양국의 사찰창건과 조탑은 동일한 기술자들에 의해서 조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제에서는 석탑의 시원은 목탑에 두면서 신라에서는 석탑의 시원은 목탑에 두지 않고 전탑에 둔다는 것도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으로 지적하고자 한다. 따라서 필자의 견해는 신라석탑의 시원은 두 계보로 보고자 한다. 그 하나는 목탑에서 미륵사석탑과 정림사석탑을 거쳐서 감은사탑과 고선사탑으로 이어지는 계보이고, 다른 하나는 전탑에서 분황사모전석탑 - 의성탑리오층석탑 - 선산죽장동오층석탑 - 선산낙산동삼층석탑으로 이어지는 계보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렇게 석탑의 시원을 목탑에 두면서도 석탑옥개석 층급받침은 전탑 또는 고구려고분 천정에서 그 시원을 두기도 하여, 목조 공포의 약화된 표현이라는 의견과 논란이 가끔 있는데, 전탑의 층급은 같은 길이로 내밀고 있지만, 석탑 옥개받침은 처마부분을 더 많이 내미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목조건물 공포에서 변형되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미륵사지서탑 축조의 구조 원리에 관한 기초 연구 6~7세기 전반 목탑과의 비교분석을 중심으로 (Basic Study on the Building Principles of Structure in Mireuksaji Stone Pagoda)

  • 조은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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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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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6-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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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미륵사는 백제 무왕(재위 600~641)이 창건한 사찰로 이와 관련한 창건 기록이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紀異) 제이(第二) 무왕조(武王條)에 언급되어 있다. 서원의 미륵사지서탑은 해체 전 6층까지의 일부가 남아있었으며 미륵사지 내의 유일한 현존 건축물로서 최근 사리장엄 발견으로 639년이라는 건립연대가 밝혀졌다. 또한 백제 사찰의 발굴조사 자료가 축적되고 동아시아의 학술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미륵사지서탑의 조영을 당시 불탑 건축의 발전 과정과 연관시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미륵사지서탑의 축조에 적용된 구조원리와 1층 평면의 형성을 중심으로 6~7세기 불탑 건축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대형의 불탑건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관한 기초적 연구를 시도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륵사지서탑은 내부와 외부가 독립적인 개념으로 축조되었는데 이는 당시의 고층 불탑건축에서 나타나는 구조원리의 표현으로 보여진다. 영녕사 목탑지에서 확인된 탑실심체와 같이 내부의 구조체를 형성하는 개념과 유사하게 내부 적심을 형성하고 외부 부재를 부가하는 방식으로 축조된 것이라 판단된다. 둘째, 미륵사지서탑에서는 상부의 적심부와 동시에 심주석이 동시에 존재하는 혼합 구조를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의 영녕사 목탑과 같은 실심체의 구조보다 발전된 것으로 조팽성 불사의 심초석과 항토 실심체의 구조와 유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혼합 구조는 황룡사 목탑이나 일본의 목탑과 같이 내외진을 전부 목구조로 형성하고 심주가 독립적으로 지지되는 구조 방식보다 선행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미륵사지서탑의 경우 1층에 십자형의 공간이 형성된 것은 심주석에 위치한 사리 봉안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심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4방향의 구심적 공간이며 사리의 본질적 의미에 기인하여 백제 6~7세기의 횡혈식 석실분과 유사한 방식으로 축조되었다. 횡혈식 석실분의 축조기법은 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상징적 공간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방법인 동시에 석재를 사용하여 축조된 서탑에 있어서 재료적 동일성으로 인하여 수용이 더욱 용이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지 석탑 출토 사리장엄 금제유물의 재료학적 특성 (Material Characteristics of Gold Artifacts of Sarira Reliquary inside Stone Pagoda of Mireuksa Temple Site)

  • 권혁남;유동완;이장존;한민수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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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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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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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 중 금제유물은 사리내호, 봉영기 등 총 494점이다. 금제유물은 대부분 가공을 통해 제작하였으나 이 중 금정 22점과 금괴 4점은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은 금괴로 가공품을 만들기 전 단계의 것으로 판단된다. 일반적으로 금은 자연 상태에서 산화물이 아닌 금속의 형태로 존재하므로 용융, 가공 과정만을 통해서 형태를 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금의 경우 은, 동 등 불순물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연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정제가 필요하다.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에서 출토된 금제유물을 분석하여 그 특성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분석결과 순금제품과 은이 함유된 금제품, 자연금으로 추정되는 금괴류로 분류할 수 있었다. 순금으로 제작된 유물은 사리내호, 금제고리, 금제소형구슬이며, 1wt.% 내외의 동을 함유하고 있다. 이들 유물들은 두드려 형태를 만들기 위해 순금으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은이 함유된 유물은 봉영기, 족집게, 금제고리, 금정, 금괴 등이며, 강도가 필요한 형태를 제작하기 위해 은이 함유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금정, 금괴는 은, 동의 분포, 형태로 추정하였을 때 자연금으로 보이나 한국의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단정할 수는 없으며, 향후 다양한 지역의 괴 형태 금제유물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금세공기술면에서는 미륵사지 석탑출토 사리장엄은 매우 정교한 기술을 보이고 있다. 또한 무게분포를 살펴보았을 때 한 냥의 명문이 있는 것의 무게가 14g 내외로 이를 기준으로 반 냥, 두 냥 등으로 무게가 분포하고 있다.

백제(百濟) '정림사(定林寺)'의 창건연대(創建年代) (The Establishment Year of 'Jeongnimsa' Temple in Buyeo)

  • 김낙중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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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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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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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이 글에서는 부여 정림사지로 추정되는 백제 '정림사'의 창건 연대를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살펴보았다. 즉, 본격적인 대지 조성은 왕궁터로 추정되는 관북리 일대와 연동되어 있는데, 그 시기는 6세기 늦은 단계로 추정된다. 그리고 사찰 건립을 위한 대지 조성 이전에 사용된 소형 노 등과 그와 관련하여, 구지표에서 출토된 토기 등을 참고할 때 사비 천도 후 일정 기간 공방이 운영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공방은 정림사지 북쪽에 인접한 관북리유적에서 본격적인 대지조성과 함께 이루어진 기와기단건물의 조영 이전에 운영된 것이 확인되었다. 대지 조성토에 혼입된 토기, 기와, 중국자기를 통해서도 정림사의 조영 연대가 사비 천도 직후까지 올라가기는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 점은 석탑 이전에 목탑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으며 그 구조는 지하기초부가 없는 높은 지상기단일 가능성과 연계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정림사지 가람배치는 동 서 건물과 강당 좌우의 건물이 하나로 통합되어 강당지 북편 기단보다 북쪽으로 좀 더 돌출되어 대규모 승방으로 통합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익산 미륵사지와 유사하여 정림사지가 능산리사지나 왕흥사지보다 늦게 축조되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강당과 동 서 건물의 배치 관계 등으로 살펴본 이러한 견해는 그동안 정림사지의 창건 연대를 사비 천도 전후로 보아 온 것과 배치된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볼때, 정림사는 사비 천도 전후가 아니라 도시조성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6세기 후엽 이후에 창건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백제의 익산 경영 방식의 전환과 사비(泗沘) 재정비 (The Change of Management Methods on Iksan and the rearrangement of Sabi by Baekje)

  • 김낙중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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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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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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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이 글에서는 익산 왕궁이 사찰로 바뀐 것에 주목하고 그것이 익산 경영 방식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겼다. 익산 왕궁의 위상이 약화되기 시작한 것은 미륵사 서원 건립 즈음으로 추정되며, 더 나아가 왕궁의 일부가 훼손되고 사찰로 바뀐 것은 의자왕 즉위 후 얼마 안 된 시점으로 여겨진다. 이로써 익산으로의 천도는 달성되지 않은 채 사찰 중심의 도시로 바뀌었다. 사비에서는 무왕대에 대홍수를 겪으며 도시 체계를 다시 수립할 필요성이 증대되고, 익산 경영 방식의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이와 연동하여 왕궁의 범위가 확대되고 이궁도 조영되었으며 도성 내부 전역으로 시가지가 확대되었다. 이때 유행한 기와가 7엽 꽃술형 수막새다. 무왕은 익산에 단순한 별도를 세운 것이 아니라 사찰이 의미하는 신성을 부여하여 사비와 차별을 두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 말년의 무왕이나 무왕 사망 직후의 의자왕은 기반이 되는 정치 세력의 재편에 따라 익산에서 천도와 관련된 도성 개발을 멈추고 사찰 중심으로 운영하는 대신 사비의 재정비에 중점을 둔 것으로 여겨진다.

납동위원소비를 이용한 고대 납유리 유물의 산지추정 (Provenance Study on Ancient Lead Glass Relics Using a Lead Isotope Ratio)

  • 한민수;김소진
    • 한국광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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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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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7-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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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사리공 내에서 출토된 납유리 9점의 납동위원소비를 분석하여 납 원료의 산지를 추정하고, 이를 왕궁리 출토 납유리의 연구결과와 비교하여 상관관계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납유리는 주화학성분 분석결과, PbO가 약 70 wt.%, $SiO_2$가 약 30 wt.% 함유된 전형적인 $PbO-SiO_2$계의 유리였다. 납동위원소비를 이용한 납유리의 원료산지 추정결과, 기존 동북아시아 납동위원소비 분포도로는 대부분이 한국북부의 방연석 광산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반도 납동위원소비 분포도로는 한국남부의 방연석 광산이 납유리의 주요 원료 산지로 추정할 수 있어 두 분포도의 결과가 상이하게 나타났다. 또한 동일지역, 동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왕궁리 출토 납유리의 기존 연구데이터와 비교한 결과, 납 원료의 산지가 서로 유사한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