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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ange of Management Methods on Iksan and the rearrangement of Sabi by Baekje

백제의 익산 경영 방식의 전환과 사비(泗沘) 재정비

  • KIM, Nakjung (Dept. of Archaeological anthropology, Jeonbuk National University)
  • 김낙중 (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 Received : 2021.03.30
  • Accepted : 2021.05.03
  • Published : 2021.06.30

Abstract

In this article, I examine the transformation of the Iksan Royal Palace into a temple. And it was considered to mean a change in the way Iksan was managed by Baekje. The Iksan Royal Palace was converted into a temple between the establishment of Mireuksa Temple and Stone Pagoda. As a result, the transfer of the capital to Iksan was not achieved, and Iksan was transformed into a temple-centered city. In connection with this, the need to re-establishment the urban system in Sabi was increased, as it suffered a great flood in the Muwang era. As a result, the scope of the royal palace was expanded, the secondary palace was built, and the urban district was expanded throughout the capital city. It is presumed that King Mu gave a divine nature to Iksan and discriminated against Sabi. Accordingly, it is believed that the King Mu or King Uija stopped developing the city in Iksan and focused on the rearrangement of Sabi.

이 글에서는 익산 왕궁이 사찰로 바뀐 것에 주목하고 그것이 익산 경영 방식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겼다. 익산 왕궁의 위상이 약화되기 시작한 것은 미륵사 서원 건립 즈음으로 추정되며, 더 나아가 왕궁의 일부가 훼손되고 사찰로 바뀐 것은 의자왕 즉위 후 얼마 안 된 시점으로 여겨진다. 이로써 익산으로의 천도는 달성되지 않은 채 사찰 중심의 도시로 바뀌었다. 사비에서는 무왕대에 대홍수를 겪으며 도시 체계를 다시 수립할 필요성이 증대되고, 익산 경영 방식의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이와 연동하여 왕궁의 범위가 확대되고 이궁도 조영되었으며 도성 내부 전역으로 시가지가 확대되었다. 이때 유행한 기와가 7엽 꽃술형 수막새다. 무왕은 익산에 단순한 별도를 세운 것이 아니라 사찰이 의미하는 신성을 부여하여 사비와 차별을 두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 말년의 무왕이나 무왕 사망 직후의 의자왕은 기반이 되는 정치 세력의 재편에 따라 익산에서 천도와 관련된 도성 개발을 멈추고 사찰 중심으로 운영하는 대신 사비의 재정비에 중점을 둔 것으로 여겨진다.

Keywords

Acknowledgement

이 논문은 2019년도 전북대학교 연구교수 연구비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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