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Stone ter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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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韓國) 불교사원(佛敎寺院)의 계단(戒壇)과 계단도경(戒壇圖經)의 비교(比較) 연구(硏究) (A Comparison Study on Kyedan of Korea Buddhist Temple and Kyedandokyung)

  • 박언곤;이재인;최효식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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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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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9-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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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Kyedan(戒壇) is an altar to perform a rite of Buddhist Initiation which gives Precept to a Buddhist monk. Sometimes it is called the Place of Precept and Mandala by Sanskrit. In this study, the Sutra of the Tang(唐) Dosun(道宣) regarding First Kyedan of Jetavana-anathapindasyarama(祇園精舍), which was the first temple such as, Kyedandokyung(戒壇圖經), Kiwonsadokyung(祇洹寺圖經), Sabunyul(四分律) were analyzed to find out original form and layout. Ultimately, the study was intended to examine the spatial formation-principle by comparing with Kyedan Temple. The results of this study could be summarized as below. First. Except for Kyedan in Bakryensa, the height of lower stone plate of Buddhist Bell-Shaped Stupa of Korean Kyedan is higher than three storied Kyedan that described in Kyedandokyung. Second. Buddhist Bell-Shaped Stupa above Kyedan was presumed that embodied image of Bell Pedestal and symbolism of overturned-bowl were combined together, when Kyedandokyung and Kiwonsadokyung were referred. It could be examined by the existence of stone lantern. Third. In Korea, the rite of Buddhist initiation that gives Precept in Kyedan has been considered impossible. However, when the rite was conducted, there was a possibility to establish wood stair. It is because that the Buddhist Stupa of Silleuuksa(神勒寺) and Woljeongsa(月精寺), which reflected the image of Kyedan had stone stair. Fourth, The method to build Kyedan of Dosun divided into Large Region and Small Region was applied to the method to construct Stone terrace behind Jeongmyeolbogung(寂滅寶宮) like Tongdosa(通度寺) and complete Kyedan on the stone terrace. In other words, Jeongmyeolbogung became Kyedanwon(戒壇院) and Kyedan, itself became Small Region. The area of Stone terrace became Large Region and naturally, they constituted an Institution. Fifth, Korean Kyedan which is consist of Jeongmyeonlbogung and Kyedan is a Korean original composition principles of Kyedangaram(戒壇伽藍) that can satiate all the functions of Kyedan as a religious subject and the place of the rite of Buddhist initiation, as it had complex of Outdoor Kyedan, which was suggested by the sutra of Dosun and Institution of Kye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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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 단구 자갈층과 충진 물질의 입도 및 형상 특성에 대한 연구 (A study on the granulometric and clastshape characteristic of gravel terrace deposit at Jeongdongjin area)

  • 김종연;양동윤;신원정
    • 한국지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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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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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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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Samples from newly exposed outcrop of sedimentary layers forming Jeongdongjin coastal terrace in Gangreung area are collected and analyzed to find the sedimentary environment. The site are located at the gentle hillslope of the terrace surface area. The height of the outcrop is about 8m and the altitude of it's highest part is 68~73m MSL. The lowest part of this out crop is the partly consolidated sand layer with gravel veneer within it. It is found that this part is not in-situ weathered sand stone through the OSL method. This sand layer is overlain by the gravel layer with sand matrix. The shapes of the gravels from this part are mainly 'platy', 'elongated', and 'bladed' by the index of Sneed and Folk(1958). In addition, mean roundness is not so high. It is sceptical to regard this part as marine sediments which are continuously exposed to erosional processes. The boundary between the lowest sand layer and gravel layer showing the abrupt change in forming material without any mixture or transitional zone, so gravels are seemed to deposited after some degree of consolidation of the lowest sand layer. In addition, the hight of the boundary between layers are changed by the place, so the surface of the partly consolidated sand layer is not flat and has irregularity on topography when it buried by gravels. Main part of this out crop is the poorly sorted coarse gravel(22.4mm) with sand matrix($1.36{\phi}$) layer with at least 2m thick covering the relatively fine gravels discussed above. Over 20% of particles have 'very platy', 'very elongated' and 'very bladed' shape and only less than 5% of particles have 'compact' shape, So this particles are also very hard to be regard as marine gravels which are abraded by marine processes. It can be concluded that this gravel layer formed by fluvial processes rather than coastal processes base on the form of the clast and sedimentary structure. The gravel layer is covered by fine($3{\sim}4{\phi}$) material layers of psudo-gleization which showing inter-bedding of red and white layers. Chemical composition of matrix and other fine materials should be analyzed in further studies. It is attempted to fine the burial ages of the sediment using OSL method, but failed by the saturation. So it can be assumed that these sediments have be buried over 120ka.

창옥병(蒼玉屛)의 위치 비정(比定) 및 사암(思菴) 박순(朴淳)의 정원유적 연구 (Assumptions on the Location of Changokbyeong and Saahm Park Soon's Garden Remains)

  • 노재현;박주성;최종희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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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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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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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창옥병의 지명 오류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고지도, 옛시문, 옛그림 등의 문헌자료조사와 암각 및 조망특성에 대한 현장조사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창옥병의 위치를 비정하고, 이곳의 향유주체인 사암 박순과 그가 경영한 배견와 및 별업 이양정의 공간 구조와 정원적 면모를 고찰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창옥병은 옥병서원과 일체감을 갖는 공간역으로 옛그림과 고지도 그리고 암각문의 존재로 볼 때 옥병서원 바로 앞의 석벽임을 추정할 수 있다. 이 지역과 현재 창옥병으로 알려진 오가리석벽과는 직선거리로 불과 약 460m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광의의 창옥병 경관영향권으로 볼 수 있다. 시문에 등장하는 "창옥병급산금(蒼玉屛及散襟)"이란 표현에서도 산금대라 암각된 병풍바위가 바로 협의의 창옥병임이 유추된다. 또한 오가리석벽에서는 단 1점의 암각도 확인되지 않는 반면 옥병서원 전면부 암벽 도처에는 사암 박순이 명명하고 주문하여 새긴 11개소의 암각 중 8개의 경물명과 제영시가 필첩(筆帖)처럼 밀집되어 있음은 옥병서원 앞의 강벽(江壁)이 의심할 여지없는 창옥병인 것으로 비정된다. '수월정신송균절조(水月精神松筠節調)'암각은 창옥병의 향유주체였던 사암의 고매한 인격과 덕행을 함축하는 창옥병의 상징언어이자 이곳의 장소 요체(要諦)로, 기존 알려진 것과는 달리 우암 송시열의 필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한편 사암의 정원유적 창옥병은 왼쪽으로부터 산금대-수경대-청학대-백학대의 4개 대로 구성되어 있다. 산금대 후면에는 본제인 배견와를, 백학대 좌측의 기암석벽 위에는 별업 이양정을 조성하여 멀리 오가리석벽의 장관(壯觀)을 관망하는 조망구도를 갖도록 계획되었다. 사대(四臺)) 좌측 가장 높은 곳에 입지한 이양정은 사암의 별업이자 독서처이자 장구지소(杖屨之所)이며 그 앞 너럭바위에 존재하는 와준(窪樽)은 사암의 술풍류를 반영한 정원시설로 비정된다.

송국리유적 재고 (Reevaluation of the Songguk-ri site)

  • 손준호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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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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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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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송국리유적은 1974년 비파형동검이 부장된 석관묘가 발굴됨으로써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1975년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통하여 한반도 청동기시대에 획기를 이루는 중요한 유적임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개된 송국리유적 보고문에는 전체 평면도조차 제시되지 못하고 있어 유적의 전모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송국리유적의 보고서와 관련 보고문을 재검토하여 발굴된 전체 유구의 배치도를 작성함으로써 연구의 기초자료를확보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과 개별 유구및 출토유물에 대한 분석결과를 최근의 발굴.연구성과와 비교 검토함으로써 송국리유적의 시기와 성격에대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였다. 송국리유적에서는 주거지, 부속유구, 저장공, 요지, 목책렬, 녹채, 굴립주건물지 등의 생활 유구와 석관묘, 옹관묘, 토광묘 등의 분묘 유구, 그리고 대지조성면과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의 증거들이 확인되었다. 이들은 유구의 분포 양상이나 유물상의 유사성 등을 통하여 볼 때 동일시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되는데, 구체적인 시기는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치에 의하여 대략 B.C. 850-550년의 범위로 산정되었다. 한편,송국리유적에서는 논농사의 집약화를 통하여 생산량을 증대시켰으며,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력자또는 유력 집단이 등장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고 더 많은 잉여생산물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하여 방어 취락을 형성하였으며, 이를차지하기 위한 빈번한 전쟁이 있었던 것으로추정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였으리라 생각되는데, 이는 인구 증가에 의한 주거 공간의 확대를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송국리유적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주변의 여러 취락과 관련을 맺으면서 그 정점에 위치하는 중심취락으로 성장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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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토석사업장의 토석채취 및 복구특성 분석 (Analysis of Quarrying and Restoration Characteristics on Quarry in Korea)

  • 박재현;김기대;강민정
    • 한국산림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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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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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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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국내 토석사업장 55개소의 채취 및 복구유형과 특성을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토석사업장 인근 산림 현황으로는 혼효림, 평균 표고 300 m 이하, 평균경사도 $11{\sim}20^{\circ}$, 산복부가 가장 많이 나타났으며, 화강암을 기반으로한 지역과 산사태위험 1등급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토석사업장의 허가기간으로는 6~10년, 허가면적 10 ha 이하, 채취량 100만 이하의 사업장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쇄골재용 석재를 채취하는 사업장, 계단식 채석을 시행하는 사업장, 잔벽 경사로는 $61^{\circ}$ 이상인 사업장이 가장 많이 나타났다. 복구시 자력으로 복구한 사업장과 복구유형 중 비탈면 녹화형으로 복구한 사업장이 가장 많이 나타났으며, 복구지의 평탄지와 잔벽, 소단 면적이 각각 54.9:39.6:5.5의 비율로 나타났다. 토석사업장 복구면적과 각 인자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채취량(유의성 1%), 허가면적, 잔벽 폭, 잔벽 높이(유의성 5%)가 정의 상관관계를 나타내었다.

한국(韓國)의 산사태방재대책(山沙汰防災對策)에 관한 연구(研究) (Landslide Disaster Countermeasures in Korea)

  • 우보명
    • 한국산림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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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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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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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4
  • 한국(韓國)에서는 집중호우(集中豪雨)나 태풍(颱風)의 영향 등으로 홍수(洪水)와 산사태재해(山沙汰災害)가 많이 발생(發生)되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각종(各種) 재해통계(災害統計)를 분석(分析)해 보면 기상재해(氣象災害)로 인한 연평균(年平均) 사망자수(死亡者數)는 약 250명 이상에 달하는데 그 중에서 약 90여명은 산사태재해(山沙汰災害)에 의한 것이므로 국가적(國家的) 재해대책(災害對策) 차원(次元)에서도 산사태재해문제(山沙汰災害問題)를 좀 더 신중히 처리해야 될 것이다. 특(特)히 현재(現在)의 산사태재해대책(山沙汰災害對策)은 좀 더 구체성 있고 실효성(實效性) 높은 방재대책(防災對策)이 되도록 재검토(再檢討)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最近)의 통계자료(統計資料)를 종합적(綜合的)으로 분석(分析)해 보면 최근 10년간(年間) 연평균(年平均) 산사태재해발생면적(山沙汰災害發生面積)은 약 275ha에 달한다. 1984년도(年度)의 산림청(山林廳)의 특수사방사업(特殊砂防事業) 단비(單費)(약 750 만(萬)원)에 준하여 복구비(復舊費)를 계산(計算)하면 연평균(年平均) 약 20 억원 이상이 소요(所要)된다. 이와 같은 큰 재해(災害)에 대한 근본적(根本的)인 대책(對策)의 기조(基調)는 복구대책(復舊對策)보다도 예방대책(豫防對策)에 두어야 할 것인데, 한국(韓國)에서는 이와 반대로 예방대책(豫防對策)이 대단히 미흡한 현상에 놓여있다. 특(特)히 산사태재해우심지구(山沙汰災害尤甚地區)도 현재의 10개지구(個地區)(35개(個) 시(市) 군(郡))에서 17개지구(個地區)(68개(個) 시(市) 군(郡))로 증설(增設) 지정(指定)하고, 또 산사태발생시(山沙汰發生時)에 이러한 재해지(災害地) 복구공사(復舊工事)를 직접 전담하고 있는 사방사업소(砂防事業所)를 현재의 15개소(個所)로 25개소(個所)로 다시 증설(增設)해야 될 것이다. 산사태발생지(山沙汰發生地)에 대(對)한 주요(主要) 사방공법(砂防工法)은, 한국(韓國)의 전형적이 사방공법(砂防工法)으로서 산복(山腹)비탈면 돌쌓기공법(工法)이 매우 효과적(效果的)인 공법(工法)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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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태발생지(山沙汰發生地)와 피해위험지(被害危險地)의 환경학적(環境學的) 해석(解析)과 예방대책(豫防對策) -평창지구(平昌地區)를 중심(中心)으로- (Environmental Interpretation on soil mass movement spot and disaster dangerous site for precautionary measures -in Peong Chang Area-)

  • 마상규
    • 한국산림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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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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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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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9
  • 1979년(年) 8월(月) 4일(日)과 5일(日)에 걸쳐 강원도 평창지구에 많은 사태(沙汰)가 발생된 바 있었다. 이 지역(地域)을 답사할 기회를 통해 산사태에 대한 조사연구(調査硏究)가 부족(不足)하고 예방대책(豫防對策)이 미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현지답사시(現地踏査時) 얻었던 자료(資料)와 기 연구자들의 보고서 등을 참조로 하여 우리나라 산사태(山沙汰)의 발생조직과예방대책을 살펴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1. 지난 6년간(年間)의 자료(資料)로 1일(日)200mm이상(以上), 1시간당(時間當) 60mm이상(以上)의 호우지대(豪雨地帶)를 보면 횡성, 원주, 영동, 무주, 남원과 순천을 연결하는 서부지역과 경상남도의 남부해안지방(南部海岸地方)에 분포(分布)되 있다. 이 원인(原因)은 산맥(山脈)과 저기압(低氣壓)의 방향(方向)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사료(思料)된다. 2, 호우(豪雨)의 정점(頂點)의 분포(分布)는 야간에 나타나며 이 시점에서 산사태(山沙汰)를 일으키고 막대한 피해(被害)를 주는 것 같다. 3. 평창지역(平昌地域)의 산사태(山沙汰)는 화강암(花崗巖)의 조사질양토(粗砂質壤土)와 석회암(石灰巖) 정암(貞岩)의 점토질토양(粘土質土壤)에서 발생(發生)하며 토석류(土石流)는 기암면(基岩面)이나 석회암토양(石灰巖土壤)에서 나타나는 반시(盤尸)을 따라 일어나고 있었다. 4. 이들 암석(岩石)에서 유래한 토양(土壤)의 투수력(透水力)은 빠른 것 같으며 화강암토양(花崗巖土壤)은 토성(土性)의 영향으로 석회암토양(石灰岩土壤)은 토양구조(土壤構造), 폐식(廢植)의 높은 함량(含量)과 근계(根系)의 영향 때문이다. 5. 산사태발생(山沙汰發生)의 근원지의 지형(地形)은 대부분 곡두(谷頭)의 요형지(凹型地)와 산복 상부의 요형(凹型)지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유거수(流去水)의 집수력(集水力)때문인것 같고 이 지점의 토양단면(土壤斷面)을 보면 석회암지대(石灰岩地帶)는 혼연성토양(混淵性土壤), 화강암지대(花崗岩地帶)는 발(髮)한 심토호(深土戶)으로 되있다. 6. 산사태지(山沙汰地)의 경사도(傾斜度)는 대부분 $25^{\circ}$이상(以上)에서 나타났고 경사위치(傾斜位置)는 산복상부의 6~9부 능선에서 나타났다. 7. 산사태지(山沙汰地)의 식피(植被)는 대부분 화전(火田)경작지, 화전초지(火田草地), 화전조림지(火田造林地), 황폐지(荒廢地)의 불량임분(不良林分)과 미림목지(未林木地)이었다. 일부 성림지(成林地)(중경목지)에도 나타났으나 대개 표상(表上)에 암석시(岩石尸)이 있는 지역이다. 8. 산사태위험도(山沙汰危險度)는 몇가지 환경인자(環境因子)로 즉 식피(植被), 경사도(傾斜度), 경사형태(傾斜形態) 및 위치(位置), 기암(基岩)과 분포형태(分布形態), 토양단면(土壤斷面)의 특성(特性) 등(等)으로 추정이 가능할 것 같다. 9. 가옥피해(家屋被害)는 대부분 다음과 같은 지형(地形)에서 나타나고 있다. 충적추(沖積錐)와 선상지요형사면(扇狀地凹型斜面)의 산록, 곡간(谷間)이나 야계변(野溪邊)의 소단구(小段丘)와 붕적토지(崩積土地) 등(等)이다. 가옥피해위험지(家屋被害危險地)는 항공사진으로 가옥(家屋)주위의 지형상태(地形狀態)를 참고를 하면 판정(判定)이 가능할 것 같다. 10. 산사태(山沙汰)의 예방대책(豫防對策)으로 위험지(危險地)의 진단기술(診斷技術)의 개발(開發), 현지조사(現地調査)를 통해 가능한 조속(早速)히 예방사방(豫防砂防)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가옥(家屋)과 부락(部落)의 피해예방대책(被害豫防對策)이 수립(樹立) 실행(實行)하여야 되며 재해방비림(災害防備林)의 조성책(造成策)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11. 산사태(山沙汰)에 의한 가옥(家屋)과 부락(部落)의 피해위험도(被害危險度)를 판정(判定)하여 지도사업(指導事業)을 통해 알려 주어야 한다. 12. 사태위험지(沙汰危險地)의 계벌작업(階伐作業), 화전경작(火田耕作), 연료채취(燃料採取)를 철저히 금지(禁止)시키고 피해위험지(被害危險地)의 가옥(家屋)신축을 규제시켜야 될 것이다. 따라서 산림경영계획(山林經營計劃)의 편성시 산사태(山沙汰)여부 토양침식(土壤浸蝕)과 홍수문제(洪水問題)들이 고려되어야 하며 재해예방대책(災害豫防對策)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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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구례오미동가도(全羅求禮五美洞家圖)'를 통해 본 운조루(雲鳥樓)의 공간배치계획과 경관 고찰 (A Study on the Space Planning and Landscape of 'Unjoru(雲鳥樓)' as Illustrated in the Family Hereditary Drawing, "Jeolla Gurye Ohmidong Gado(全羅求禮五美洞家圖)")

  • 신상섭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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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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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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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계화기법(界畵技法)으로 그린 '전라구례오미동가도(全羅求禮五美洞家圖)'를 통해 운조루(雲鳥樓) 살림집의 공간배치계획과 경관 기법을 고찰한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오미동가도'는 창건주 류이주(柳爾?)가 용천부사로 재임할 때(1782년) 설계도면을 보내 집을 짓게 하였다는 점, 정형화된 풍수적 사신사 구조의 자리잡기와 기본계획도 성격이 농후한 점, 그리고 합각지붕이 1804년에 솟을대문으로 중수되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운조루 창건시기(1776~1783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운조루는 지리산 노고단(祖山)과 형제봉을 주산(主山)으로, 오봉산(案山)과 계족산(朝山)을 안대로 자리했는데, 동쪽으로 흐르는 동방천(外明堂水)을 표현하는 등 배산임수 풍수국면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다. 셋째, 운조루는 직교 축선에 위계를 설정하여 품(品) 자형 건물군이 5영역으로 분화된 구조인데, 바깥뜰 외원과 뒤뜰 후원을 갖춘 5동(棟) + 6마당(庭) + 2원(園)의 토지이용체계를 가진다. 넷째, 심미성과 풍수적 화기비보(火氣裨補)를 겸한 바깥뜰(외원)의 조성은 연못(방지원도형)을 중심으로 유교와 도교적 관념 등 상징적 경물(景物)을 대입시켜 지속 가능한 생태정원을 구축하고 있다. 다섯째, 사랑마당에는 화계(花階)와 화오(花塢)를 가꾸었고, 괴석, 학과 매화나무, 소나무, 위성류, 초화류 등 조경 요소를 활용하여 선경의 이상세계를 구축함은 물론 정심수를 도입하는 등 형이상학적 상징성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사랑채 누마루에서 조망되는 원경과 중경, 그리고 앙부(仰俯) 경관 등 자연의 경(景)이 내부로 관입되거나 외부로 확장되는 차경(借景)과 관경(觀景)의 미를 발견할 수 있다. 여섯째, 북쪽 담장 밖의 소나무 총림과 조산(造山)은 주거환경의 쾌적성 제고 측면은 물론 풍수적 채움의 미학이 고려된 전통조경기법 사례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