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State Trans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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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朝鮮時代) 도작농업(稻作農業)의 발전(發展)과 인구증가(人口增加) (Rice Cultivation and Demographi Development in Korea : 1429-1918)

  • 이호철
    • Current Research on Agriculture and Life Sci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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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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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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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9
  • Rice culture in Korea has a long history ranging over two thousand years. In the agriculture economy of pre-mordern Korea, however, its importantce was not as great as generally assumed. In fact, rice culture reached full development only after the 1920s when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carried out its drive to increase rice production in the Korea peninsula. It was not until the mid-1930s that rice became the staple in Korean diet. This can be attributed to two factors : (1) a mountainous topography that provides little irrigated fields and (2) a climate characterized by droughts in spring and heavy precipitation in summer. The present paper attempts to answer some of these questions. Specifically it will focus on these : Did the development of rice culture actually result in population growth? What are the salient features of agricultural develdpment and population grow in traditional Korea? Does the case of Korea conform the prevailing generalization about the agriculture in East Asia? I have discussed the development of rice culture and population growth in the Chos$\breve{o}$n dynasty, focusing on the relation between the rapid spread of transplanting and the rapid growth of population from the seventeenth to the nineteenth century. Here are my conclusions. (1) The spread of transplanting and other technological innovationsc contributed to the rapid growth of population in this period. However, we should also note that the impact of rice culture on population growth was rather limited, for rice culture was not the mainstay of agricultural economy in pre-modern Korea. Indeed we should consider the influence of dry field cropsn population growth. Nevertheless, it is obvious that the proliferation of rice culture was a factor crucial to population growth and regional concentration. (2) How should we characterize the spread of rice culture in the whole period? Evidently rice culture spread from less then 20% of cultivated fields in the fifteenth century to about 36% of them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Although rice as a single crop outweighed other crops, rice culture was more then counter-balanced by dry field crops as a whole, due to Korea's unique climate and geography. Thus what we have here in not a typical case of competition between rice culture and day field culture. Besides, the spread of rice culture in the seventeenth and eighteenth centuries accomplished by technological innovations that overcame severe springtime drought, rather than extensive irrigation. Althougt irrigarion facilities did proliferate to some extent, this was achieved by local landlords and peasants rather than the state. This fact contradicts the classical thesis that the productivity of rice culture increased through the state management of irrigation and that this in turn determined the type of society. (3) We should further study other aspects of the transition from the stable population and production struture in the fifteenth and sixteenth centuries to the rapid population growth and excessive density of population thereafter. We should note that there were continuing efforts to reclaim the land in order to solve the severe shortage of land. Changes also took place in the agricultural production relations. The increase in land producrivity developed tenancy based on rent in kind, and this in turn increased the independence of tenants from their landlords. There were changes in family relations-such as the shift to primogeniture as an effort to prevent progressive division of property among multiplying offspring. The rapid population growth also produced a great mass of propertyless farm laborers. These changes had much to do with the disintegration of traditional social institutions and political structure toward the end of the Chos$\brev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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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학교 교육현황 분석을 통한 디지털 교육매체 디자인 국외 사례 연구 (A Case Study On Digital Education Design In Foreign Countries By Analysis Education Condition)

  • 김정희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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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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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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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디지털 매체의 발달을 교육에 접목하려는 움직임이 꾸준히 증가하였고 이는 디지털 교육 디바이스의 발전을 가져왔다. 국가적 차원에서 발전을 하고 있는 일본과 교육 분야에 막대한 국가 예산을 사용해 디지털 교육의 선진국으로 자리 잡고 있는 영국 그리고 복지국가의 기반 위에 적극적인 디지털 교육을 이끌고 있는 스웨덴이 디지털 교육 매체분야의 선진국이다. 특히 영국과 스웨덴은 디지털 교과서 등 디지털 교육 매체시장이 포화상태이며 시장의 경쟁으로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즉 빠르게 발전을 추구하는 과정을 지나 디자인적인 질을 중요시하면서 디지털 교육 매체를 선별 적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7년 초등학교 5학년 수학 디지털 교과서를 시작으로 국내 디지털 교과서의 시장이 열렸고 IT 선진국답게 짧은 시간 안에 과학, 영어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는 등 커다란 발전을 보여줬다. 이에 디지털 교육 매체 분야의 디자인 적용의 빠르고 효율적인 가이드 설립을 위하여 디지털 교육 선진국의 디지털 교육매체 및 설문을 기반으로 한 적용 사례 분석을 통해 한국디지털 교육 매체 디자인의 나아갈 방향 잡는 기초 자료가 필요하다. 이에 본 연구는 LG 유럽 디자인 센터를 중심으로 디지털 교육 매체의 선진국인 영국과 복지사회 기반의 탄탄한 교육 정책을 보여주는 스웨덴을 사례 연구 대상국가로 선정하며 4개 학교의 전교생을 대상으로 설문, 휴리스틱 분석, KJ법을 통해 분석한다. 분석결과 양적인 증가뿐만아니라 디지털 소셜라이징 안에서 보다 현실적이고 다양한 시뮬레이션 경험을 추구하는 등 콘텐츠의 질 향상을 원하고 있으며, 아날로그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상호 보완적으로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환경 및 편한 GUI 디자인이 요구되고 있었다. 이에 향후 교육 플랫폼과 교육 관리 시스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간의 유기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통합 솔루션디자인을 중심으로 질 높은 교육 시뮬레이션 및 GUI 디자인을 기획해야하며 이는 교육 주체뿐만 아니라 교육 환경을 포함한 분야를 통합한 사전 조사 및 설문 분석을 통해 모든 교육 특성을 고려하여 디지털 교육 매체 의 디자인의 질을 높인 기획을 해야 한다. 본 연구 결과는 디지털 교육 해외 선진국의 발전 된 현황을 파악하여 국내 디지털 교육산업의 디자인 기획시 기초 자료로 활용하는데 의의가 있다.

전통공간 재현을 위한 광한루원의 수목정비방안 연구 (A Study on the Maintenance Plan of Trees in Gwanghalluwon Garden for Representing Traditional Space)

  • 이원호;김동현;김재웅;안혜인;김대열;조운연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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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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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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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연구는 전통공간의 수목정비방안 마련을 위해 광한루원을 사례로 진행되었다. 이를 위해 전통공간의 수종 선정과 수목정비 동향에 대한 이론적 고찰이 선행되었으며, 광한루원의 현장조사를 통한 식재현황을 분석하고, 과거 문헌 및 기록 등에 나타나는 수종 및 식재경관을 토대로 광한루원의 수목정비방안을 도출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전통공간의 수종 선정과 수목정비에 관한 동향을 살펴본 결과, 전통공간 내에 식재된 외래수종에 대하여 맹목적인 지양은 한계가 있으며 전통공간의 수종 선정에 대한 논의는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시점에서 수목정비에 대한 외래수종의 무분별한 제거 및 향토식물의 맹목적 식재 등의 이분법적 정비방안 및 비검증된 사료의 맹신은 배제되어야 한다. 둘째, 광한루원 내에 식재된 수종을 조사한 결과 소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배롱나무 등 전통공간에서 애용되었던 수종들이 주로 식재되어 있으나 각 공간의 성격을 고려할 때, 광한루 일대를 제외한 광한루원 경내의 수목 식재는 전통공간의 성격과는 무관한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문헌이나 문학작품 등에서 나타나는 광한루원의 수목식재 관련 기록을 살펴본 결과, 현재 광한루원 내에 식재된 수종 중 버드나무류, 배롱나무, 대나무(이대), 연꽃만이 나타나고 있어 고증을 통한 수목정비에는 무리가 따른다. 넷째, 광한루원의 각 권역별 수목정비방안을 모색한 결과, 광한루 권역은 역사적 시대성과 장소성을 지니고 있으며 오늘날 그 모습을 복원해나가고 있어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완월정 권역은 광한루의 건조물군과 유사한 형태로서 자칫 원형으로 오인될 수 있으므로 완충식재를 통한 전이 공간 조성 등 광한루 권역과는 다른 별도의 장소성 확보가 필요하다. 월매집 권역과 잔디광장 권역은 과거 성외 장시이자 대규모의 숲으로서 율림의 상징적 복원과 동시에 경내의 편의시설 및 관리시설의 집적을 통해 성외 장시의 모습을 재현하도록 하며, 완월정 동측 잔디광장은 완월정 권역과 연계하여 활용적 측면에서 현재와 같이 개방된 형태를 유지하는 방안을 제언하고자 한다. 광한루원 경계 권역은 고증의 측면과 현존요소의 진정성 여부를 살펴보았을 때 전통공간의 장소성과는 연관 짓기 어려운 장소로서 과거 문학작품에서 나타나는 문화경관을 반영하는 것 또한 하나의 정비방안으로 고려할 만하다 판단된다.

CrPt3(001) 박막의 자성: 제일원리계산 (First Principles Calculations on Magnetism of CrPt3(001) Thin Films)

  • 정태성;제갈소영;임성현;홍순철
    • 한국자기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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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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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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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CrPt_3$ 합금은 큰 Kerr 효과를 보여 주는 강한 자기결정 이방성을 가지고 있고 흥미롭게도 훈트 제3법칙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 연구에서는 $CrPt_3$ 합금 박막의 두께의 따른 자성과 자기결정 이방성의 변화를 제일원리계산 방법을 이용하여 연구하였다. 기준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덩치 $CrPt_3$의 다양한 자성 상태, 즉 강자성(FM), A-, C-, G-type 반강자성(A-, C-, G-AF)에 대한 계산을 우선 수행하였는데 덩치 $CrPt_3$은 FM 상태가 안정하였고 이는 실험과 일치하였다. A-, C-, G-AF 상태가 FM 상태일 때 보다 총에너지가 각각 0.517, 0.591, 0.183 eV 만큼 높았고 Cr의 자기모멘트는 FM, A-, C-, G-AF 일 때 각각 2.782, 2.805, 2.794, $2.869_{{\mu}_B}$으로 확인되었다. $CrPt_3$(001) 박막의 표면은 CrPt 표면과 Pt 표면으로 두 종류의 원소 구성을 가질 수 있다. 각각의 표면에 대해 3층에서 9층까지 두께를 변화시켜 가면서 계산을 수행하였다. CrPt 표면의 3층 박막은 덩치와는 다르게 C-AF 상태가 FM 상태에 비해 8 meV 안정하였고 그 보다 두꺼운 5층, 7층, 9층 박막은 덩치처럼 FM 상태가 안정하였다. Pt 표면의 3층 박막은 C-AF 상태가 FM 상태에 비해 37 meV, 5층 박막은 G-AF이 FM 상태에 비해 54 meV 만큼 안정하였고 그 보다 두꺼운 7, 9층 박막은 덩치와 같이 FM 상태가 더 안정하였다.

기록학의 도입과 기록관리혁신(1999년 이후) (The Introduction of archival science and the renovation of records Management(since 1999))

  • 김익한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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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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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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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이 글에서는 1999년 기록관리법이 제정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록관리가 어떻게 발전해왔고 기록학 분야의 성장은 어떠하였는지를 다루고 있다. 특히 기록관리와 관련된 주체를 기록생산기관, 기록관리기관, 기록 전문가 집단, 시민사회로 설정하고 각 주체들의 시기별 변화의 특징을 조망하는 데에 역점을 두었다. 그 결과 기록관리기관과 전문가 집단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직 기록생산기관과 시민사회 영역이 아직도 불균형 발전하고 있는 현상을 지적하였다. 기록관리법 제정 시기의 한국의 기록관리는 국가기록원과 전문가 집단의 일부 선도적 인물들에 의해 기록관리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는 전형적인 엘리트 모델에 의한 성장 시기로, 결과적으로 기록관리법의 제정이라는 역사적 성과를 이루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각 주체의 기형적 발전 양상이 두드러졌다고 평가된다. 참여정부 시기의 한국의 기록관리는 기록관리 혁신이 강력하게 추진됨으로써 이전 시기와는 구별되는 발전의 양상을 나타내었다. 이를 추동한 힘은 기록관리기관과 기록 전문가 집단의 성장이 보다 보편화 되어 엘리트 모델을 일정 부분 극복할 수 있었던 데서 찾아진다. 특히 대학원 교육을 통해 성장한 전문가 집단이 양질적으로 성장하여 기록관리기관과 전문가 집단이 협력하는 패턴이 정착되기 시작하였다. 국가기록관리 혁신 로드맵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실천됨으로써 한국의 기록관리는 점차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발전의 단계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기록생산기관과 시민사회 영역에서의 기록관리의 발전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따라서 전문 교육의 정상화와 전문적 교육을 통해 배출되고 각 기관에 배치된 기록연구사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각급 기관에 기록관리기관을 서둘러 설치하고 기록연구사를 조기 배치하여 기록생산기관의 미발달 상황을 조속히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도선국사·수미선사비>의 제작 장인과 양식 연구 (A Study on Stonemason and Style of the Stele for State Preceptor Doseon and Seon Master Sumi)

  • 김민규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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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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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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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영암 도갑사 도선 수미비〉는 1651년 봄 비문이 완성되고, 여산(礪山)(현재 익산시 여산면)에서 석재를 채취하여 1653년 4월에 완성한 작품이다. 이 비는 당시 왕실의 지우(知遇)를 받던 벽암(碧巖) 각성(覺性), 취미(翠微) 수초(守初) 등 고승대덕이 건립을 주도하고, 인평대군 등 정치인들의 도움으로 건립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작품은 범종(梵鐘)의 용뉴(龍?)를 모방한 '용뉴형(龍?形) 이수(?首)'라는 새로운 이수형식(?首形式)의 첫 작품이다. 더불어 이 비석의 영향을 받은 용뉴형 이수의 비석들은 이후 왕실과 사대부 비석으로 전래되어 18세기까지 제작된다. 또한 이 비석은 음기(陰記)의 내용을 통해 조말룡(曺唜龍)이라는 왕릉 석물을 제작하던 석공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조말룡은 석공 중에서 유일하게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品階)를 받은 인물로 비석에는 동일한 품계인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작품을 통해 분석한 조말룡의 이수 조각 양식은 17세기 최고 수준의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며, 이를 바탕으로 17세기 능묘 비석의 장인들을 추정할 수 있다. 이처럼 <도선 수미비>는 비석의 건립 과정 및 후원세력, 제작 장인 등이 분명해 사료적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최고의 장인들이 동원되어 제작되어 이 시기 비석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왕실 및 사대부의 후원으로 제작된 불교 석조물이 다시 왕실과 사대부의 능묘 석물로 전파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발해 도성의 구조와 형성과정에 대한 고찰 (An Investigation into the Structure and Formation Process of the Capital of Balhae)

  • 김진광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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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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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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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바둑판식 좌우대칭구조로서 궁성 - 황성 - 외성의 3중성 구조를 지닌 상경성은 발해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가장 전범적인 도성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발해 도성제도의 변천과정은 발해 중앙행정체제의 완비로 발해정체제도 보편화과정의 단계적 표지라고 할 수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대상은 상경성으로, 그 구조는 중원의 수당장안성(隋唐長安城)과 그 형식면에서 많은 유사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상경천도 당시 수당장안성과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상경성 발굴결과와 선학들의 연구결과를 검토해 보면, 상경성은 수당장안성의 외적 구조만이 아니라 그 내면에 투영되어 있는 조영원리도 수용했음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당시 발해의 국력수준에서 현재와 같은 조영이 불가능함을 주장했던 단계별축조설은 궁성의 중심점인 2호 궁전과 3~5호 궁전 사이에서 조영시기의 차이를 발견할 만한 층위가 확인되지 않은 점, 상경성 전체가 동일한 영조척에 의해서 계획되었다는 점, 그리고 3조제를 수용했을 가능성이 농후한 점 등의 측면에서 좀 더 깊이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결국 상경성 조영은 치밀한 계획에 의한 문왕 치세 당시 국가의 운영원리가 반영되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따라서 상경성의 조영과 그 원리는 초축 당시 상당한 정도로 중원문화를 이해하고 있었음을 전제하는 것이며, 상경성이 지니는 위상과 구체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더 나아가 이것은 국가의 통치체제가 마련되고 사회전반으로 투영되었으며, 그가 구상하는 천하관(天下觀)이 발해국 전체로 확대되어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Li1+xFexTi2-x(PO4)3-y(BO3)y 계 유리 전해질에서 Fe 및 BO3 치환 효과 (Effect of Fe and BO3 Substitution in Li1+xFexTi2-x(PO4)3-y(BO3)y Glass Electrolytes)

  • 최병현;전형탁;이은정;황해진
    • 전기화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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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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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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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Li1+xFexTi2-x(PO4)3-y(BO3)y (x = 0.2, 0.5)계 유리에서 Fe doping과 BO3 치환이 유리 또는 결정화유리(glass-ceramics) 전해질의 구조적, 열적 및 전기적 특성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였다. 또한, Li1.5Fe0.5Ti1.5(BO3)3 유리분말을 소결하고, 소결 온도에 따른 결정상과 이온전도도 영향도 검토하였다. Li1+xFexTi2-x(PO4)3-y(BO3)y 유리에서 Fe2+ 및 Fe3+ 이온은 network modifier로서 FeO6 팔면체를 형성하거나 network former로서 유리망목구조에 들어가 FeO4 유사 사면체를 형성하면서 유리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편, BO3는 BO3 또는 BO4 그룹을 형성하였는데, BO3 치환량이 작은 경우 boron은 (PB)O4 망목구조를 형성하지만, BO3 치환량이 증가하면 붕소이상현상(boric oxide anomaly)이 생겨나면서 BO4는 BO3로 변화하고 이로 인하여 비가교산소(non-bridging oxygen)가 증가하였다. BO3 치환은 유리전이온도와 결정화 온도를 낮추는 효과가 있으며, Fe 첨가량이 증가하면 Fe3+의 일부는 Fe2+로 환원되며, 유리전이온도와 연화온도를 낮아지게 하고 결정화온도를 높아지게 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Li1+xFexTi2-x(PO4)3-y(BO3)y (x = 0.2, 0.5) 유리에서 BO3 함량이 증가함에 따라 이온전도도는 증가하였으며, x = 0.2 및 0.5에서 각각 8.85×10-4 및 1.38×10-4S/cm의 이온전도도값을 나타내었다. 본 연구에서 얻어진 높은 이온전도도는 Fe3+의 산화상태 변화와 붕소이상현상에 의한 BO3 생성 및 이로 인한 비가교산소의 생성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Li1.5Fe0.5Ti1.5(BO3)3 유리를 800℃에서 소결한 결과 이온전도도가 급격히 저하되었는데 이는 결정화유리 분말이 고온에서 유리화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유리분말을 800℃에서 소결한 후, 다시 460℃에서 조핵하고, 600℃에서 결정성장을 시킨 결과, 이온전도도가 열처리전과 동등 수준으로 회복되는 것을 확인하였다.

Brownmillerite Ca1-xSrxFeO2.5(x=0, 0.3, 0.5, 0.7, 1.0)의 결정학적 및 자기적 성질에 관한 연구 (Crystallographic and Magnetic Properties of Brownmillerite Ca1-xSrxFeO2.5(x=0, 0.3, 0.5, 0.7, 1.0))

  • 윤성현;양주일;김철성
    • 한국자기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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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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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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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Brownmillerite 산화물 $Ca_{1-x}$Sr$_{x}$FeO$_{2.5}$ (x = 0, 0.3, 0.5, 0.7, 1.0)의 결정학적 및 자기적 성질을 알아보기 위해 x-선회절 분석법과 Mossbauer 분광법을 이용하였다. 먼저 적정 조성의 전구체(precursor)를 합성한 후 산소가 결핍된 분위기에서 열처리함으로서 여분의 산소가 제거된 다결정 시료분말을 얻었다. Rietveld방법을 사용한 x-선 분석 결과, 시료의 결정구조는 공간군 Pcmn(x = 0, 0.3), Icmm(x = 0.5, 0.7, 1.0)인 orthorhombic 구조를 가지며, Sr의 함량이 증가함에 따라 격자상수가 모두 증가하였다. Neel 온도(T$_{N}$)이하에서의 Mossbauer 스펙트럼은 조성에 관계없이 면적비 1:1인 날카로운 12선이 관측되었다. 분석 결과 이들은 팔면체 자리와 사면체 자리의 Fe 이온에 기인하며 각각 -0.3 mm/s와 0.4 mm/s 정도의 전기4중극자 분열 값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T$_{N}$ 이상에서의 Mossbauer 스펙트럼은 조성에 관계없이 1.6 mm/s 정도의 전기4중극자 분열 값을 갖는 이중선으로 나타났다. T$_{N}$은 Sr의 함량이 증가함에 따라 760K에서 710K까지 단조 감소하였다. 두 공명흡수선의 면적 비는 조성에 관계없이 거의 1:1로 나타났다. Debye온도 분석결과 Fe이온이 사면체자리에서 더 견고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알았다.어 있음을 알았다.

온산공업지역 산성 토양 프로화일 내에서의 점토광물의 생성과 중금속 이온의 거동에 관한 광물학적 연구 (Mineralogical Study on the Clay Formation and Heavy Metal Speciation in the Acidified Soil Profile of the Onsan Industrial Area)

  • 이상수;김수진
    • 한국광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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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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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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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이 논문은 온산공업단지 내 화강암의 풍화 및 토양화 과정, 그리고 토양 내 중금속 오염과 토양 광물간의 관계에 관한 연구이다. 프로화일 연구를 위해 각 깊이별로 토양시료를 채취하여 각 샘플에 대한 실험분석을 실시하였다. X선 회절분석 결과 주 구성 점토광물은 캐올린 광물과 버미큘라이트, 그리고 미량의 일라이트이다. 포름아마이드 처리를 통해 프로화일 내 토양 중의 캐올린 광물의 종류에 대해 분석한 결과 프로화일 하부에 존재하는 캐올린 광물은 대부분 할로이사이트 임이 밝혀졌으며, 지표면으로 갈수록 상대적으로 캐올리나이트에 대한 할로이사이트의 양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상부로 갈수록 할로이사이트에서 캐올리나이트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110^{\circ}C,\;300^{\circ}C,\;550^{\circ}C$ 열처리를 한 결과 X선회절분석 그래프 상의 $10\;{\AA}에서\;14\;{\AA}$ 사이의 피크가 분화된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 관찰된다. 이는 시료상에 수산화알루미늄 혼합층 버미큘라이트가 존재함을 지시한다. 이것은 구연산나트륨 처리실험을 통해 버미큘라이트 층간 불순 알루미늄 이온을 추출하여 원형상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열처리시 $14\;{\AA}$피크가 다시 $10\;{\AA}$으로 변화하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재확인하였다. 토양의 수소이온농도 분포 양상이 하부에서 3.9, 상부에서 3.6으로 상부로 갈수록 산성화경향이 심해지는 경향을 보여주는데, 이는 산성화된 토양에서 안정적으로 나타나는 수산화알루미늄 혼합층 버미큘라이트의 존재를 뒷받침하고 있다. 토양 내 중금속 이온의 존재양상에 대한 연구를 위해 연속추출실험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중금속 이온이 프로화일의 상부의 철/망간 산화물과 유기물에 흡착되어 있으며 점토광물에는 적은 양만이 흡착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결과는 대부분의 중금속 오염물들이 상부 토양에 농집되어 있고 점토광물에는 낮은 중금속 함량을 보여주는 것은 산성화된 토양을 이루고 있는 주 점토광물인 캐올린광물과 수산화알루미늄 혼합층 버미큘라이트가 낮은 흡착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한다.